먼나라 이웃나라/문제점/5권(스위스편)

먼나라 이웃나라 문제점
네덜란드프랑스독일영국
스위스이탈리아일본한국
미국중국에스파냐
공정성 / 구성
  • 종교 전쟁을 설명하는 부분에 나오는 프랑스의 예(위그노 전쟁)로 나오는 '성 바르톨로뮤 대축일의 대학살' 때 어린 당시 국왕이 '앙리 4세'였고, 이 사건 이후로 위그노(개신교도)들은 박멸당했다.
- 당시 어린 국왕은 샤를 9세다. 앙리 4세는 위그노 전쟁을 종식한 인물이다. 덧붙여 앙리 4세는 위그노였다가 가톨릭으로 개종했기 때문에 위그노에 관대하여 '낭트 칙령'을 공포, 위그노들에 대한 탄압을 중단해 유능한 상공시민층이 대부분인 위그노들을 국내에 체류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가톨릭 광신자에게 암살당했다. 위그노들이 국외로 탈출한건 루이 14세가 낭트 칙령을 폐지한 병크를 저지른 이후에 일어났다. 간단히 말해 위그노 전쟁의 시작과 끝을 반대로 말했다(...). 독일 편에서도 나온 오류.
  • 부르고뉴 왕국의 카를 왕은 스위스 동맹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충격으로 인해 화병으로 사망했다.
- 일단 이름부터 독일식 카를보다는 프랑스식 샤를로... 부르고뉴는 공작이 통치하는 국가, 즉 공국(公國)이지 왕국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용맹한 카를(용담공)은 왕이 아니라 공작이다. 당시 먼나라 이웃나라의 독자들이 저연령층이라는걸 생각해보면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편의상 왕국과 왕이라고 한건 그렇다 칠 수 있다.
그러나 사망한 이유는 오류가 있다. 용담공 샤를(카를)은 화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낭시 전투에서 프랑스와 교전 중 스위스 용병할버드에 맞아 전사했다. 2012년 개정판에서는 '전장에서 세상을 떠났다' 고 수정되었다.
  • 스위스 동맹이 부르고뉴보다 프랑스와 동맹을 맺은 이유는 합스부르크 왕가에 대한 적대감 때문인데, 부르고뉴가 합스부르크의 핏줄을 가진 탓이다.
- 그렇게 이해를 하면 1515년 마리냐노 전투에서 스위스가 프랑스군과 맞붙은 이유부터 설명되지 않는다. 이 전투는 용담공 카를이 전사한 낭시 전투보다도 반세기 뒤에 벌어졌다. 본편에서도 스위스가 단 한 번 남의 나라, 즉 이탈리아를 공격했다가 프랑스군에 참패해서 이때 교훈을 얻고 영세 중립국이 되었다는 설명이 나오는데, 그게 바로 마리냐노 전투다.
스위스가 프랑스와 동맹을 맺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스위스 동맹이 마리냐노 전투 당시 대참패한 후 그대로 프랑스의 속국이 될까봐 불안해한데다, 마침 합스부르크와의 대립과 이탈리아 정복을 위해 평소 스위스 용병 전력에 눈독을 들이던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가 연이은 공격 대신 용병 전속 계약을 요청해 타결되었기 때문이다. 보다 자세한 것은 스위스 용병 항목 참조.
게다가 당시 부르고뉴 공작의 혈통은 프랑스와 같은 발루아 가문이다. 백년 전쟁 중 프랑스의 왕이 되었다가 잉글랜드의 포로가 되어 일생을 마친 선량왕 장이 본래 부르고뉴 공작 가문이었던 부르고뉴 가를 대신하여 발루아 가문으로서는 최초로 이 공국의 지배자가 되었다. 이후 장의 막내아들인 필립(용감공 필립)이 뒤를 이어 부르고뉴 공작의 자리를 상속한다. 이 필립의 증손자가 바로 책에서 언급되는 용담공 샤를이다. 따라서 부르고뉴 공작가는 발루아 가문이지 합스부르크와는 인연이 없다.
다만 샤를이 낭스 전투에서 전사한 뒤 샤를의 유일한 자식이자 외동딸인 마리가 영지의 보전을 위해 합스부르크 왕가의 막시밀리안과 결혼한 이후부터 부르고뉴에 합스부르크의 영향력이 끼치게 되고, 마리가 죽은 뒤 남편 막시밀리안은 프랑스와의 전쟁을 벌인 끝에 부르고뉴 공작령을 분할하게 되며 이는 훗날 합스부르크가 다시 부르고뉴 공위를 주장하는 계기가 된다.
그러므로 스위스 동맹이 단순히 합스부르크 혈통이라는 이유로 부르고뉴와 적대하고 프랑스와의 동맹을 선호했다는 것은 인과관계가 전혀 잘못된 설명이다.
  • 프랑스 제1공화국의 공격을 받자 스위스인들이 "우린 옛날부터 민주정이었는데?"라고 말한다.
- 하지만 스위스 주정청은 도시 귀족들의 과두적인 귀족공화정에 가까웠으며 민주적인 정부라고 하기는 곤란하다. 근데 이렇게 보면 당시 나폴레옹이 지배하던 프랑스도 엄연히 민주정이 아니었다(...). 스위스에 혁명세력이 커지자 스위스 귀족들이 이들을 탄압했다는 내용은 언급되어 있다. 이 부분은 나중에 수정되었다.
- 물론 이것도 맞는 말이지만, 나치 독일에 협력하면서 상호간의 이익을 추구가 맞아 떨어진 측면도 있다. 스위스는 특히 유대인 계좌 정보를 빼돌려서 조공으로 바치고, 나치 고위직들의 돈 창구 역할도 맡았다. 또 스위스 계좌는 연합국의 금수조치로 수입이 불가능한 품목들을 스위스 계좌로 우회해서 각종 품목을 수입하는 용도로 나치에서 잘 이용해 먹었다. 이 때문에 2차대전 후에 유럽에 마셜 플랜이 이뤄질 때도 이래저래 미운털이 박혀서 스위스는 지원해 주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왔다. 이후 개정판에서 이런 내용이 추가되었긴 했다. 또한 이를 스위스인들의 강인한 국민성 때문인 것처럼 묘사한 것은 나치 독일에 점령당한 다른 국가들 입장에서는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다. 지정학적으로나 지형적으로나 저항이 불가능했던 덴마크를 제외한 노르웨이나 네덜란드, 벨기에 등은 나치의 침공에 강하게 저항했기 때문. 결과적으로 위에 언급된 바와 같이 독일에 있어 무력 점령할 가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의 문제이지, 국민성이 있고 없음의 문제는 아니다.
  • 스위스 국적을 얻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우며, 귀화가 허가되더라도 거액의 돈을 기부금으로 바쳐야 한다.
- 하늘에서 별 따기 레벨은 아니다. 스위스에서 세금을 내면서 10년간 거주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고, 영주권을 받고 나서 12년간 거주하면 국적 신청이 가능해 총 22년이 필요하다.하늘의 별 따기 맞지않나? 누가 22년씩 기다리면서 스위스 국민으로 살고 싶어할까? 비교대상으로는 20년 거주가 필요한 브루나이, 25년의 카타르가 있다. 다만, 브루나이나 카타르보다 취업 비자 취득이 더 까다로우므로 이들 나라 보다는 사실상 더 어렵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캐나다, 유럽 선진 17개국의 시민권자의 경우 5년만 거주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어 난이도는 훨씬 낮아진다. 또 기부금은 없다. 아마도 저자 본인이 스위스 국적 따려다 물먹은 트라우마인듯 하다
거기다가 이 부분에서는 대한민국 국적을 따기가 무척 쉬운 것처럼 묘사되어 있는데, 그건 정말 소득 수준이 크게 떨어지던 예전 이야기다. 현재 대한민국이 정부 차원에서 저출산, 미결혼 등으로 인한 국가 인구 감소 위기에 21세기 글로벌 지구촌 사회 추세 영향을 받아들여 다문화 사회 이주민 장려 및 혜택 등의 정책을 시행해서 자국민이 보기에 쉽게 느껴지는 것일 뿐이며, 그 다문화 정책이라는 것도 사실은 결혼이민자 지원제도에 가깝다. 대한민국의 일반귀화 요건은 기본적으로 5년 거주인데 이는 일본, 프랑스와 같은 수준이다. 즉 결혼이민을 제외한 방법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따기는 결코 쉽지 않다.[1] 또한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이민·난민에 멕시코·일본과 함께 가장 인색한 나라로 꼽히기도 했다. 물론 고급 인력이야 일사천리로 진행시켜 주지만 이거야 뭐 지구상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어느 국가든 자기네 국가에 도움이 되므로 남의 나라 고급 인력이 귀화하는 것은 쉽다. 어떤 경우는 제발 와 달라고 스카우트도 하는데
  • 스위스 예비군들은 실탄이 든 총을 자기 집에 보관해도 되는데 아직까지 총기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
- 사고도 일어났고, 범죄도 일어났다. 이전 버전에서는 2013년까지 총기범죄는 일어나지 않고 사고만 빈번하게 났다고 서술되어 있었지만 실은 스위스에서 예비군들이 총기범죄를 벌인 건 2013년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 또한 스위스의 총기범죄율도 그렇게 낮다고 볼 수 없다. 2006년 기사에서 스위스의 총기범죄율은 서유럽 국가중 3위라고 한다. #
- (이 부분은 과거엔 독일편에 들어있었다.) 이를 종속이론이라고 하는데, 요즘에는 옛날만큼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론이다. 사실 스위스편 내에서도 과거 식민지배 국가들의 대내외적 영향력이 아닌 피지배당했던 나라의 부정부패 때문에 더 악화되는 걸로 묘사된다.[2] 다만 프랑스 예하의 서아프리카 식민지들 같은 경우에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인데, 프랑스가 이들 지역의 생산 구조 등을 식민지 독립 이후에도 별도의 조약 등으로 장악한 뒤 변화하거나 이를 통해 크게 이익을 보지 못하게 묶어 두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종속이론은 프랑스와는 별로 관계가 없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사이에서 먼저 나타난 것이고 '미국같은 강대국이 우리가 발전을 못하게 이런저런 방법으로 방해하고 착취한다'는 것이 주요 요지이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큰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물론 다른 서방 국가들은 이를 좋게 보지 않지만 프랑스와 이런 문제로 정면 대결할 가치는 없다고 생각하는지 현재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요즘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넒혀가는 중국 역시 프랑스의 구 식민지 지역 개입은 가급적 피하는 편이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먼나라 이웃나라/문제점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1. 참고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결혼을 통한 이민의 경우 위장결혼이 아닌 것만 증명되면 매우 쉽게 허가해 주는 편이다.
  2. 독일편에서는 이런 내용이 강조되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