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로마제국의 멸망
- 로마 제국은 포용력이 강한 다신교를 버리고 제국 통치를 위해 기독교를 국교로 하는 독선적인 정책을 펼치면서 반발한 타 민족들의 반발로 멸망했다.
- - 힌두교에서 보듯 다신교라고 해서 다른 종교에 포용적이고 관대한 건 아니다. 게다가 기독교의 확산과 국교화 과정을 보면 기독교 때문에 로마가 망했다기보다는 로마가 망해갔기 때문에 기독교가 퍼졌다는 느낌이 더 든다. 로마 제국이 망할 때쯤에는 제국 영토 대부분에 기독교가 퍼졌을 뿐 아니라 침공해온 게르만족조차도 종파는 다르지만 기독교를 믿고 있었다. 한편 가로세로 세계사에서는 다신교 때문에 타 민족의 반발을 샀고, 기독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포용력을 강화하였다고 묘사하였다.
- 로마 제국의 멸망은 대개 군인 황제 시대와 같은 끝없는 내분과 게르만족의 침공, 정복전쟁의 중단과 사회 구조 변화로 인해 국가 수입이 줄어들면서 커진 재정 적자 등의 복합적인 원인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기독교 이전의 로마 제국이 열려있는 제국이였다고 이야기하나 이는 전혀 아니며 로마 민족이 아니면 야만족이라 멸시하는 건 공화정 때나 제정 때나 바뀐 게 없었다.
- 참고로 이탈리아 편에 나온 오류가 여기서 또 나오는 건 에스파냐편에도 이런 설명이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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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 대한 저자의 증오심이 느껴지는 부분
2 근대
- - 황제가 죽고 난 후에도 잉카 제국은 왕자 망코를 중심으로 계속 저항했고 몇 차례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에스파냐도 이를 진압하는 데 굉장히 고생했다.
- - 1711년에 신성로마제국 황제 요제프 1세가 사망하면서 황제의 동생이였던 카를은 카를 6세로 황제 자리에 오른다. 만화에서는 그 설명이 누락되었다.
- 1710년 카를이 이끄는 동맹군은 프랑스-스페인 연합군을 격파해 마드리드에 입성했지만 이에 놀란 영국이 프랑스와 협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 - 카를 대공을 지지하는 연합군은 1706년 마드리드에 입성했다. 그러나 반격을 당해 곧바로 마드리드에서 철수해야 했고 카를 대공이 1711년 카를 6세로 새로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자 영국은 다시 카를 5세 시절의 합스부르크 제국이 되돌아오는 것을 우려하여 펠리페 5세 지지로 선회하였다.
-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후 신성로마제국은 이탈리아 영토를 할양받았지만 오스트리아와 떨어져 있던 영토라 큰 의미는 없었다.
- - 오스트리아 항목의 오스트리아 지도를 참조.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스페인 왕의 계승 전쟁에서 신성로마제국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유와 도시 지역의 부 때문에 이탈리아 지역의 영토를 할양받기를 원했다. 이건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 - 조지 오웰이 파시즘과 다를 바 없던 스탈린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반소련주의자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조지 오웰은 비판적인 사회주의자였고 본질은 반독재, 반파시즘주의자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는 그의 스페인 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한 소설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스페인 내전 기간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공화파를 지지하는 젊은이들이 국제 여단을 조직해 국민파 편에 서 국민파와 맞서 싸웠다는 오타가 있다.
- - 인민전선을 말한 듯 하다
- 국민파와 독일군의 게르니카 공격은 공화파를 지지하던 바스크 지역에 대한 보복전이였다.
- - 게르니카는 내전 당시 바스크군의 주둔지 중 하나였고 독일의 게르니카 폭격은 도주하던 바스크군의 퇴로를 막기 위해 도로, 교량등을 파괴하는 것이 목적이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애꿏은 민간인들이 크게 피해를 입은 건 사실이나 사건 경위에 대한 설명이 잘못되었다.
- 개정판 192쪽 3번째 가로줄 오른쪽 칸의 사진 설명을 보면 볼리비아의 수도 카라카스...... 이런 설명이 나온다. 게다가 두 칸 왼쪽으로 가면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 ...... 이렇게 바르게 설명해 놓았는데도 말이다.
3 기타
- 중국어로 `그렇다`를 `쓰`로 표현했는데 실제 중국인이 들으면 쓰러질만큼 발음 차이가 심하다. 중국어로 `그렇다`는 `쉴`로 발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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