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5촌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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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7년 박근혜 대통령과 5촌 지간이였던 박용철, 박용수 두 사촌지간 사이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2 배경

1990년에 박지만·박근령청와대에 탄원서를 보내는 등 육영재단 소유권과 관련하여 박근혜와 박지만·박근령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었다.

2007년 시간이 지나면서 조직폭력배와 불법용역요원들까지 동원된 폭력 사태가 벌어지고 갈등양상이 변화해 박지만이 박근혜 편에 서서 당시 육영재단 이사장이었던 박근령을 쫓아내는 형국으로 발전되었다.

3 전개

당시 박지만의 최측근으로 폭력 사태를 주도한 사람이 박용철로서 그는 박정희의 둘째 형 박무희의 손자이며 국제전기기업 대표인 박재석의 아들이였다.

2007년 당시 박용철은 박근령의 남편인 신동욱 전 백석대학교 교수와 함께 중국 칭다오에 갔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첫날 밤에 신동욱은 자신의 신변에 위협을 느낀다며 건물에서 뛰어내려 골절상을 입고 중국 공안에 신고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신동욱은 귀국해서 “박지만이 박용철을 시켜 자신을 살해하려 했다. 육영재단 강탈사건은 박지만이 허수아비 역할이고 배후는 박근혜의 주변 사람들이다”라고 주장했으나, 박근혜·박지만 양자로부터 명예훼손·허위사실유포로 고소당했다.

재판과정에서 신동욱이 주장한 청부살인시도에 대한 건은 인정되지만 박지만과의 연관성은 부정됨. 박용철은 박지만이 이 사건과 무관하고 박지만의 측근인 정 씨가 사주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결국 신동욱은 법정구속을 받게 되지만, 이후 재판과정에서 박용철이 자신의 증언을 뒤집는 일이 발생함. 2010년 9월 1일에 육영재단 전 법무실 부장 이 씨가 “박지만이 박용철에게 신동욱을 제거하라는 지시를 내린 육성녹음이 있고 통장으로 돈을 부쳐준 증빙이 있다”는 얘기를 박용철에게 들었다고 증언. 박용철도 “박지만 EG그룹 회장의 비서인 정용희 실장이 나에게 박지만 회장의 뜻이라고 말한 육성을 핸드폰에 녹음해놨다”고 증언하였다.

2010년 9월 27일 이후 신동욱 측 변호인이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박용철을 증인으로 신청하였다.

박용철은 2011년 9월 1일에 재판에 한 번 출석하고 그로부터 5일이 지난 9월 6일에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 수유분소 앞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4 수사결과

박용철의 시체는 얼굴과 배가 칼날에 수십차례 난자되고 두개골이 함몰되어 있었다. 칼날에 찔리고 복부를 후벼 판 흔적이 전문적인 살인기술에 의해 당한 것으로 추정되며, 치명상을 입고 쓰러진 뒤에도 사망을 확인하기 위해 장도리에 머리를 세 차례 가격된 상황이였다.

박용철 피살현장으로부터 3킬로미터 떨어진 야산에서 박용수가 목을 매달린 채 죽어 있었다. 박용수도 박무희의 손자로서 박재호 동양육운회장의 아들이였다.

경찰은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한 후 죄책감에 자살했다고 수사를 결론지었다.

근데 밑에 보면 알겠지만 경찰이 결론지은 수사 내용은 믿기 힘든 면이 강하다. 그냥 빨리 사건을 매듭지으려고 하는 면이 보인다.

5 의혹

유가족에 의하면 박용철과 박용수는 사이가 좋았고 원한관계도 없었을뿐더러, 박용철이 찜질방을 운영할 때에 박용수가 사업자금도 대준 적이 있었다. 사건 전날 박용철·박용수와 함께 술을 마셨던 황 씨의 증언으로는 당시 분위기도 좋았다고 한다.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박용철은 105킬로그램의 거구에 폭력전과 6개가 있었고, 박용수는 167센티미터의 키에 70킬로그램이 조금 넘는 체형에서 남들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성격이라고 한다. 폭력경험도 없는 사람이 사촌 형을 칼로 난자해서 살해했다는 것도 이상하거니와, 박용철의 시체에 난 ㄱ자와 V자로 꺾여 있는 상해흔적은 평범한 사람이 하기 어려운 살해수법이였다.

박용수가 노트 한 장을 찢어 간단하게 글귀를 남긴 유서가 매우 이상하였다. 자신의 시체를 절대 땅에 묻지 말고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달라는 게 유서 내용이였다. 경찰에서는 박용수의 필적을 대조해봤는데 확인이 어렵다고 결론내렸다. 그런데 주진우 기자가 사설검증원에 의뢰해본 결과 확증할 수 없지만 서로 같은 필체는 아니라고 본다는 대답을 들었다. 갑자기 자살하는 사람이 남긴 유서라고 보기에는 모든 걸 묻어버리려는 느낌이 짙었다.

박용수의 시체를 부검한 결과 설사약이 나왔다. 몸에 알약이 들어가면 30분이면 녹는데 알약이 그대로 남았다는 것은 자살하기 20분 전에 먹었다는 의미. 사촌 형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자살을 결심했는데, 목을 매달기 20분 전에 설사약을 먹는다?

박용철의 시체를 부검한 결과 수면제 성분이 검출되었다. 즉 박용철은 항거불능인 상태에서 칼과 장도리 등으로 가격당해 죽었다는 뜻이다. 박용수의 시체에는 목과 팔 무릎 곳곳에 긁힌 상처가 있는데 목을 매달기 전에 누군가와 몸싸움을 벌였다는 증거이다.

목을 매달고 숨진 박용수의 시체에는 큰 타월이 덮여 있었다.

박용수의 가방에서 발견된 칼에는 박용철의 혈흔이나 박용수의 지문이 검출되지 않았다. 피살사건현장에서 60미터 떨어진 개천에서 발견된 다른 칼에는 박용철의 혈흔이 검출되었으나 박용수의 지문은 없었다.

피살사건현장에서 박용철의 핸드폰이 사라졌다. 살인교사가 녹음됐다는 핸드폰이 없어졌다.

이 사건을 기사화한 주진우 기자에게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친척이라는 사람이 핸드폰 메세지로 추가적인 정황을 알려주었다.

피살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물청소를 해서 너무 깨끗했다.
피살현장이 아니었는데도 경찰은 박용수가 머물던 여관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박용수는 평소에 술을 잘 마시지 않는데 왜 대리운전을 불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박용철과 박용수는 어느 친척보다도 사이가 좋았다. 박용수가 박용철의 사업자금도 대주었다.
박용수가 박용철을 죽이고 자살했다는 경찰의 수사결과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