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서술 시 출처를 밝히기로 합의되었습니다. 근거 없는 독자연구나 유언비어 등은 토론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문의는 문서의 토론 탭에서 해 주세요.
박근혜 관련 문서 | |
박근혜정부 · 역사관 · 개인처신 문제 · 어록 · 화법 · 별명 · 자택 | |
정책 | |
초이노믹스 · 노동개혁 · 임금피크제 · 국정화 교과서 · 창조경제 ·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 행복주택 · 뉴스테이 · 테러방지법 · 위안부 합의 ·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 |
평가 | 비판 |
평가(경제 · 외교 · 대통령 이전) · 지지율 | 정책 분야 · 민주주의 후퇴 · 자질 · 사이비 종교 논란 · 이명박근혜 |
사건 · 사고 | |
박근혜 피습 사건ᆞ박근혜 5촌 살인사건 · 2013년 · 2014년 · 2015년 · 2016년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 박근혜 편지 사태 | |
기타 | |
최태민 일가 · 친박 · 박사모 · 문고리 3인방 · 살려야한다 · 그러니까 제가 대통령 하겠다는 거 아니겠어요 · 대통령직을 사퇴합니다 ·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 길라임 · 신뢰의 리더십 박근혜 · 박근혜는 할 수 있다! · 저는 18년입니다 |
목차
1 개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자질, 자격 부족을 다루는 문서.
이미 국회가 탄핵을 소추하고, 헌재가 탄핵을 인용했다. 그러므로 국가와 법률 모두에서 박근혜를 대통령 자격 미달로 판정했다.
박근혜는 오랫동안 나라를 양분한 거대 정당의 중역에서 대통령으로 거듭났는데, 그에 걸맞는 정책적 비전이나 정세 파악 능력을 갖고 있긴커녕 공(公)과 사(私)도 구분을 못한다. 보안이나 국제관계도 주의하지 않는 외교에, 현실과 동떨어진 경제정책을 벌이면서, 실책만 저질렀다. 이렇게 지도자다운 능력이 없다면 사람을 끌어들이는 인품이라도 필요한데, 법률상 보장된 권리를 이용해 시위하는 국민을 IS에 비유하면서 훈계하며, 국무회의 때마다 정책의 주체인 자신의 책임은 생각도 않은 채 국회만을 탓해 임기 내내 비판을 자초했으면서도 이를 외면했다. 그러나 진보계가 꼬집던 박근혜의 문제들은 여태껏 보수언론과 정치권 등이 필사적으로 숨기고 변호해왔기 때문에, 대다수의 국민들은 정확한 실상을 몰랐다.
더 심각한 건 박근혜는 스스로를 참된 애국자라 여기는 망상에 빠져 있고, 기본적인 판단 능력마저 상당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결국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서 이 씨앗들이 싹을 틔워 당연하게도 대한민국을 엄청나게 망쳐놓았고, '같은 편 감싸기'와 '보수정권의 충견 언론'의 대표였던 조선일보마저 박근혜정부에 등을 돌릴 정도로 사태가 심각해졌다.
비판도 비판 나름이지만, 이게 비판의 일부라는 사실은, '인간 박근혜'부터가 엉망이라는 얘기다. 당장 전현직 대통령들의 비판 내용에 자질을 지적하는 대상은 박근혜가 유일하다.[1]
2 박근혜의 특이한 성장 배경
아버지와 어머니의 나쁜 점만을 골라 닮았다.
- 김종필[2]
대통령의 머리로는 창조경제에 대해서 3~40분 동안 이야기 할 만한 그런 지식이 없으세요.
- 안민석[3]
박근혜는 인격형성기인 1961년(9세)부터 청년기인 1979년(27세)까지, 사실상 전제왕정의 공주로 자랐다. 2010년대 시점에서는 대경실색할 일이지만, 민주주의의 'ㅁ'도 모르던 1960-70년대 시민들에게 박근혜는 말 그대로 공주였다. 당시 영남에서 올라온 유림들이, 마치 군주에게 하는 것처럼 10대 후반의 박근혜에게 단체로 큰절을 올렸을 정도.[4] 이렇게 10세부터 주위에서 공주처럼 떠받들었기 때문에, 본인 성격에 공주병이 고착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히 서술.
성장 과정에서 터진 문제는 둘째치고, 지도자에게 필요한 상식이나 지적능력이 전무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 이것은 무척 심각한 일이다. 박근혜는 중학교 입시[5] 때도 특혜를 받아 가톨릭계 명문[6] 성심여자중학교에 합격했고, 같은 재단인 성심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명문대학교인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진학했다.[7] 서강대에서는 어려운 과목인 전자공학을 주전공, 물리학을 부전공하여, 평점 3.82/4.00으로 졸업했다. 기사 아무리 봐도 무척 좋은 성적이다.
박근혜의 출신 학교나 졸업평점은 상당히 좋지만, 이것만으로 박근혜가 한 나라의 지도자에 걸맞는 자질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실제로 박지만은 '대통령의 외아들 박지만'으로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갔다. 정작 박지만 본인은 엄청 다니기 싫어한 대학이다.
이공계(전자공학과) 출신임에도,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기후변화 협약에 관해 질문하자, 박근혜는 답변에서 이산화탄소 혹은 탄산가스(모두 CO2를 의미)를 "이산화가스"라는 어처구니 없는 명칭으로 지칭해 비난받은 바 있다.
이런 명칭은 말실수라고 할 수 있다고 해도, 이산화탄소가 온실가스라는 것이나, 온실가스가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 등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며, 박근혜 화법으로 얼버무렸다.[8]
1974년 8월 15일 어머니 육영수가 살해된 이후에 영애로서 실질적인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은 것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어머니 육영수가 그러했듯 퍼스트레이디로서 각종 사회 및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뚜렷한 성과를 남겼다면, 그 또한 국가 지도자로서 자질과 경험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 뒤에도, 이름만 걸어놓은 재단(영남대학교, 정수장학회)에서 높은 연봉을 받으며 20년여의 시간을 외부와 근절된 상황에서 보내게 된다. 1981년에 박근혜는 영남대학교 이사장에 취임했지만, 자질이 모자라서 7년 만에 쫓겨났다. 그나마도 전두환이 준 자금 덕분에 겨우 버텼을 뿐이다.
게다가 전여옥이 지적했듯이, 체계적인 독서도 거의 하지 않았고, 길라임 해프닝에서 보듯이 저녁시간의 대부분은 TV드라마 시청으로 보낸 만큼,[9] 박근혜의 지적수준이나, 현실인식이 어떤 수준인지는 명약관화하다.
더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지금까지 모든 일을 최태민-최순실 일당이 결정해주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만큼[10], 그녀가 지도자에 걸맞는 능력이나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명명백백하다.
현실이 이런데도 박근혜 지지세력은 단지 박정희의 적녀[11]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이돌이나 여신처럼 그녀를 숭배했다. 지금까지 보여준 능력이나 업적이 전무함에도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곤 했다.[12] 이는 마치 철없는 아이돌 팬들의 아이돌 숭배를 연상시켰고, 박근혜를 "노년틀딱충의 아이돌"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원인이 되었다. 설령 중세의 군주제 군주라 해도, 선대왕의 실적이 좋았다고 해도, 본인의 실적이 저조하면 신민층은 등을 돌리기 마련인데 민주정에서 순전히 대통령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까지 숭배를 받았으니 받는 본인이 어떤 사고를 가지게 되었을지는 뻔하다.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며 한나라당의 쇄신과 새누리당의 상승을 이끌었지만, 정작 본인이 한 것은 그냥 얼굴마담이었고 전략이나 비전을 세우지는 못했다. 박근혜는 대선레이스에 오르면서 수많은 자질논란이 있었지만, 지지자들은 이를 부정했으며, 이렇게 무자질의 박근혜는 결과적으로 대통령까지 당선되었다. 아버지인 박정희가 5.16 군사정변을 일으킬 기회를 제대로 포착한 안목[13]으로 쿠데타를 성공해 대통령에 올랐고 새마을 운동으로 대표되는 그의 뚜렷한 업적이 있었던 것과는 달리, 박근혜는 아버지와는 아예 비교대상조차 아니었다. 정말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말하고 움직이는 마네킹.
2.1 다른 대통령과의 비교
박근혜는 대통령 당선 직후의 인수위 시절부터도 여러 문제점을 보였으며, 특히 박근혜를 뒤에서 조종하며 호가호위하던 최순실이 들통나면서, 박근혜의 부실한 자질은 봇물처럼 튀어나왔다. 아무리 봐도,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중에서 박근혜보다 지도자의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은 없다.
- 이승만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안전한 미주에서나마) 나름 독립운동을 한다고 했고,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는 도망쳤을지언정[14] 신성모가 병크를 터뜨리자 즉각적으로 해임하는 등 전쟁지도자로서 최소한의 자기 역할은 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반공 포로 석방 같은 도박도 감행하기도 하는 등 외교정치적 술수는 뛰어났다.[15] 또한 독도와 동해 배타적 경계수역에 대한 집착이 엄청나서, 독도 근처로 조업하러 오던 일본 어선들을 발견하는 대로 모조리 나포했었다. 그가 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지금까지도 유효하게 대한민국을 지키는 보루가 되고 있다.
- 윤보선도 영국 유학을 다녀와 독립운동 및 이승만 정부에 대한 반대운동에 투신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의 업적은 거의 없는 편인데, 당시 정부가 내각제라 모든 실권이 장면 내각으로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별 실권이 없는 대통령이었던 윤보선으로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 박정희는 본인이 반란군을 일으켜서, 권좌를 차지했다. 빛과 그림자가 뚜렷한 만큼 중요도도 남다르다. 특히 박정희가 류태영 박사에게 지시해 벌인 새마을 운동은 아웃풋이 꽤 쏠쏠해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뽑혔다.
- 최규하도 외교관으로서 능력을 인정받아, 외무부장관을 거쳐서 국무총리까지 역임했다.
- 전두환, 노태우는 철권통치와 부정부패로 악명이 높지만, 수십 년이나 한국군에 몸담으면서 별까지 달았다. 이들도 실책이 많지만, 자기 나름대로 내세울 공적이 있다. 무엇보다도 불법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에서 자기들이 리더를 맡을 정도면, 특정 민간인에게 국정을 절대 넘길 사람이 아니다.
- 김영삼과 김대중은 목숨을 걸고 폭정에 항거했다.
- 김영삼은 만 25세에 국회의원이 된 최연소 국회의원 기록과, 최다선 국회의원 당선 기록이 있다. 여기서 최연소 기록은 20대 총선까지도 깨지지 않았다. 민주화 운동 당시의 김영삼 비록 대통령으로서 평가는 좋지 않았지만[16] 적어도 중요한 정치적 고비마다 본인이 직접 앞장서서 정면 돌파를 감행했고, 재임 중 대형 참사가 잇달아 터져나왔을 때 본인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하여 민심 수습에 나서는 등 무슨 일이 터지면 참모들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그 뒤에 숨어 이미지 관리에 매달릴 인물이 결코 아니었다. 이쪽도 제명 파동, 질산 테러를 비롯한 온갖 폭압을 이겼다.
- 김대중은 정계에 입문하기 전인 20대 시절에 이미 향토 기업 대표로 움직였고,[17] 40대 후반에 제7대 대통령 후보로 뽑혀서 박정희와 격돌했다. 나중에 유신과 신군부를 물리치고,[18]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박근혜가 겪은 시련이 아무리 커도, 김대중과 김영삼보다는 훨씬 호의호식했다.
- 노무현은 가난한 고졸인데도, 고학으로 어려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부림사건부터 인권 변호사로 움직였고, 정치에 입문한 뒤부터 지역주의를 깨려고 고군분투했다. 이 과정은 참으로 파란만장했으며, 대통령으로 당선될 때까지 온갖 일을 겪었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적어도 인격적인 측면에서는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 이명박은 궁핍한 환경에서, 자기 공부만으로[19] 고려대학교에 들어갔다. 한일수교 반대의 일환인 6.3 항쟁의 주역[20] 이었으며, 대기업 새내기 직원에서 출발해서 계열사 대표 자리까지 차지했다. 퇴사한 뒤부터는 대한민국 국회의원과 서울특별시장까지 거쳤고, 마침내 대통령이 되는, 전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인생역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박근혜는 대단한 아버지의 후광을 활용한 선거의 여왕 이미지 이외에는 아무런 능력을 보여준 바가 없다. 다른 역대 대통령들이 그 이전까지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의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온 것과는 확연히 비교된다.
설상가상으로 박근혜는 인격마저 매우 불량하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자 박근혜가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보면 된다. 적어도 노무현처럼 눈물을 흘려가며 진심으로[21] 사안의 대처방안을 강구하는 스타일은 아닐지언정, 이명박처럼 차분하게 문제를 풀려고 노력이라도 했다면 이 문제로 욕을 듣지도 않았다. 하다 못해 김영삼처럼 최고 책임자로서 국민에게 머리를 숙이고 사과하는 제스처라도 취했다면 국민들도 그 무능을 비판할 망정 적어도 인간성을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22] 세월호 사고에 대한 박근혜의 대응은 그야말로 직무유기 그 자체였다.
정홍원 전 국무총리는 "(실제로 옆에서 모셔 보니) 대통령이 오랫동안 공부를 많이 해서 너무 많이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자주 있었다. 그런 점에서 '외부의 조력이 없이는 판단도 제대로 못하는 대통령'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는 일부의 주장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시크릿 가든 각 회차별 줄거리 공부를 많이 해서 너무 많이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카더라. 문화계 블랙리스트 명단 공부를 많이 해서 너무 많이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카더라.
하지만, 정홍원 전 총리는 그냥 한 때 모셨던 박근혜를 위해 실드를 쳐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박근혜와 참모 및 장관들 사이에서는 독대가 거의 없었다고 하며, 박근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던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마저도 독대한 바가 없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이분이 제대로 박근혜와 대면했을 기회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위와 같은 '쉴드'에 공감을 표시하는 사람은 박근혜의 맹목적인 지지자들 중에서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박근혜가 가진 정치적인 자질이라면, 자신이 가진 배경과 이미지나 후광을 이용하는 능력, 본능에 가까울 정도로 뛰어난 권력 획득 능력 정도다. 정말 박근혜가 정치가로서 자질이 전혀 없었다면, 국회의원부터 대통령 선거까지 사실상 무패행진을 한 것을 설명할 수가 없다. 이미지 정치라는 비판도 있지만, 국정 능력과는 별개로 이미지 정치 또한 정치가로서의 능력이 맞긴 하다.[23] 하지만, 박근혜의 경우는 그 외의 부분에서 죄다 무능한 것이 문제이다.
여기에다 정쟁에서 판을 유리하게 가져가는 능력도 추가될 수 있겠다. 즉, 자신이 위기에 몰리면 똘마니들을 동원한 어거지나 낚시를 통해 다른 정쟁을 야기, "수렁"을 만들어 정치권 전체를 이전투구의 장으로 몰아가고, 자신은 절제된 언행(사실은 부족한 언변)으로 참모들응딩이 뒤에 숨어 "우아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위기를 유유히 빠져나가는데 매우 능하다. 예를 들어, 참여정부 시절의 보안법 파동, 사학법 파동, 집권후에는 NLL파동, 국정화 교과서 파동,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덮기 위한) 이정현의 단식, (개헌 낚시를 던져 비박계를 분열시킨) 3차 대국민담화(2016년 11월 29일) 등등이 있다.
또한, 각종 의혹이 터졌을 때 본질을 흐리는 것에도 도가 텄다.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사건 때는 문건 유출로 초점을 돌려서, 여론을 교란했다. 물론 박근혜는 그 틈에 얼른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최근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는 최순실 태블릿 PC의 입수 경위를 문제삼아 증거 자체가 불법이라고 주장하며 해당 PC의 증거 능력을 부인한다. 사실 이는 김기춘의 작품일 가능성이 큰데, 이에 대해서는 그것이 알고 싶다 2017년 1월 14일자 방송을 참고.
이 자질들은 선거에서 이기는 데는 유용했지만, 불행히도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운영하는 데는 거의 쓸모가 없었다. 거기에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판을 유리하게 이끈다거나, 위기를 벗어나는 게 아니라 다른 세력들을 수렁에 빠뜨리고 자기만 살아남는 그야말로 일반인으로서 생각하기에 매우 비도덕적인 방법이며, 무엇보다도 사실상 국정과 관련된 자질은 전혀 갖추지 못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무능한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앉았다는 것에서 대한민국 헌정사에 영원한 비극이 시작되었다.
외부자들에선 박근혜의 정치적인 평가를 하면서 '동물적인 정치적 승부사 기질이 있다.', '선거유세지역 선정이 뛰어났다.', '권력에 대한 의지가 굉장히 강했다.', '최순실, 정윤회가 결정에 관여했을 가능성 커', '참으로 냉혹한 사람' 등 '선거의 여왕'으로서의 능력은 인정 했으나 인간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주지 않았다.
게다가, 철저하게 자기 혼자밖에 모르고 남의 의견을 듣기를 매우 꺼려하는 성격이다.[24] 실제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사람들의 사유를 들추면 더 가관이다.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사유를 보면, 문재인 지지가 있다. 그저 다른 정당 소속인 문재인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넣는 수준이면,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많은 문화예술인은, 되려 "내가 블랙리스트가 되는 훈장도 못 달아 자괴감이 느껴진다!"는 의견까지 피력했다.
3 무능력, 무책임의 극치
野, 박근혜 정부 3년 "무능과 부실, 독선으로 점철", 연합뉴스
“메르스보다 박근혜 정부 무능이 더 무섭다”, 한겨레
이상돈 "박근혜 정부, 무능한 정권으로 평가될 것", 프레시안
[사설 '메르스 非常사태' 대통령은 어디 갔나, 조선일보]
[박성원의 정치해부학 박근혜 정부의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 동아일보]
이준구 교수 “박근혜 정부를 한 마디로 말하라면 단연 ‘무능’이다”, 경향신문
중앙정부의 무능과 실패, 한국일보
‘아몰랑’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 놔두고 어디 갔나, 미디어오늘
조중동도 못 참겠는 박근혜 정부의 '메르스' 대응 '무능', 미디어스
朴정권의 '경제무능' 보수언론도 비난, 입법정책신문
[20대 총선與 참패 野 압승…"여권 오만·무능에 대한 국민 심판", 뉴시스]
무능한 너무나 무능한 박근혜 대통령, 뉴스타파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 박근혜의 무능 정면 비판, 서울의소리
'국가는 뭘 하나요?', JTBC
박근혜는 국정 대소사를 논할 때마다 무능하고 진실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왔다. |
무능은 불통, 독재자의 딸처럼 박근혜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박근혜는 각료회의나 기자회견에서 집권 이래로 꾸준히 혁신, 창조, 창출을 되풀이하지만, 집권 4년차인 2016년까지 아무런 성과도 못 보였다. 이것 때문에 한낱 립서비스로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각료회의나 기자회견에서 발언할 때마다 "옛날에 이런 말이 있는데~"란 뉘앙스로 시인이나 극작가의 말을 인용하는 모습을 종종 보이는데 특히 태양의 후예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을 때는 "송중기야말로 애국자다. 해외에 한류를 수출해야"고 말한다던가, 무역투자진흥회의 자리에서는 "최고상품 팀코리아되야", 문화관광사업회의에서는 "불만제로 관광환경 만들자"고 말해와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구체적 대책 수립은 둘째치고 일반인도 할 수 있고 알맹이도 없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나 하고 있다."는 지적을 많이 받고 있다.[25][26] 창조경제 정책이 유명무실하단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국가브랜드로 표절 논란에 휩싸인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로고가 선정되면서 더욱 비웃음을 샀다.
더욱이 집권 2년차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 당시 국가대응체계의 마비(박근혜 본인의 7시간 행적 묘연과 더불어)로 수백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집권3년차에 발생한 메르스 대유행 당시 조기에 감염병을 차단하지 못하고 공식 감염자 숫자 세계 2위, 심지어 중동국가인 요르단, 카타르, 오만에서 보고된 감염자 수를 크게 웃돌며 비중동 국가 중에서는 단연 1위를 차지하면서 (노무현 정부 당시 사스 유행 대처와 대조적) 정부 불신 기조를 키우는데 크게 일조하였으며, 국가원수이자 행정부의 최고책임자로서 부적절한 대처였단 평가를 받았다. 반면 실책을 덮으려는 언론통제, 조문[27], 방역[28] 연출, 국정교과서를 비롯한 역사왜곡은 너무나 대놓고라서, 이제는 욕도 하기 싫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많은 국민은 "박근혜는 그저 박정희와 육영수 때문에 대통령이 되었을 뿐"이라고 비난한다. 실제로 박근혜가 보이는 국정수행 능력은 너무 최악이다. 전국 지지율만 보더라도 국민들이 박근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일찍이 김영삼,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박근혜를 '칠푼이', '공주'에 빗댄 바 있고 전여옥 국회의원은 박근혜를 '공주병 걸린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이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2년 전에 "지도자가 나라를 운영하려면 용기, 합리성, 결단력 같은 덕목을 갖춰야 하는데 이게 다 판단력이죠. 사람을 볼 줄 아는 능력도 판단력이고요. 박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통치할 판단력을 구비했는지 의문입니다. 광범위한 보수 성향 시민들이 이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치명적인 거죠."라는 지적이 나온 바 있는데(윤평중 교수[긴급진단 “朴 대통령, 나라 통치할 판단력 있는지 의문”(보수인사 5인)]), 돌이켜 보면 매우 정확한 관찰이었다.
3.1 불성실한 근무태도
식사 주거 무료제공에 연봉 2억[29] 여기에 수백억 한도의 법인카드까지 제공. 집과 직장의 거리는 고작 300m. 그럼에도 관저에 쳐박혀서 일주일에 한두 번 출근하지만 매주 수요일은 (제멋대로 정한) 자체 정기휴일. 어쩌다가 출근할 때는 점심 때쯤 나와 오후 5시에 칼퇴근한 후,[30] 저녁시간은 드라마 시청으로 보냄. 이명박 시절부터 근무한 어떤 청와대 직원은 "이명박은 그래도 매일 아침 7시에 집무실로 출근하는데[31], 박근혜는 아예 출퇴근의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박근혜가 일반 회사원이었다면?" 이라는 가정을 하고 본다면, 아마도 가장 놀라울 부분이 이 부분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대통령은 물론 도무지 사회인이라고 조차 볼 수 없을 정도로 근무태도가 불량하다. 자기 마음대로 매주 수요일은 쉬는 날로 정했다는 보도가 끊이질 않는데 월화, 이틀 간 집무 보고 수요일에 쉰 후 목금 이틀 간 집무 보고 토일 다 쉰다는 소리다. 이 뿐이면 모르는데 그나마 출근 후에도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다거나, 심지어 (자기 멋대로라곤 하지만) 쉬는 날로 정하지도 않은 월, 화, 목, 금이더라도 출근조차 하지 않는다는 식의 뒷 이야기 또한 무성하다. 출근시간 자율, 오후 5시 칼퇴근 보장, 주4일 근무로 고용주(국민)와는 상의도 하지 않은 채 자기 마음대로 근무계약을 짜놓고 그마저도 안 지킨 것이다. 박근혜는 쉬는 날은 쉬고 절대로 근무를 연장하지 않았다.
전수조사 결과 1년 365일 중 129일은 탱자탱자 놀았다는 사실이 들통났다.# 대통령이 멋대로 4개월 내외를 낭비한 셈이다. 대통령은 일에 파묻혀서 지내는 존재라서, 법정 근로일을 넘기기 일쑤며[32], 대한민국은 평범한 직장인조차 초과 근무로 몸살을 앓는 나라다. 특권 의식에 사로잡혔는지, 지도자가 책임질 부분을 쥐뿔도 모르는지를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내가 제일 높은 사람이니 나는 좀 널럴하게 일한다.'는 관념이 참으로 두렵다. 스스로 노동시간 연장법안을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였던 것을 생각하면 그렇잖아도 긴 노동시간으로 인해 고통 받는 대한민국 직장인으로서는 더더욱 악몽이다. 유독 박근혜 정부에서는 '몸이 아파서 이 일정은 건너뛴다', '몸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링거투혼까지 발휘해 힘든 일정을 소화했다'는 식의 보도가 많았고, 2014년 4월 16일[33]도 마침 아파서 쉬었다는데, 1년 중 129일을 쉬어야 할 정도로 건강상태가 나쁘다면 애초에 대통령직에 출마해서는 안됐다. 게다가 이렇게 몸도 아픈 사람이 신체에 큰 무리가 가는 해외일정은 왜 그리 많이 잡은 건지, 생각이 없는 수준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진짜 문제는 이런 뒷이야기가 진실이건, 아니건 간에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런 허황된 말을 곧이 들을 만큼, 정황상 근무태도가 매우 불량했다는 증거가 넘친다. 김장수 전 안보실장도 청문회장에서 "세월호 사고 당시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집무실과 관저 2곳으로 모두 서면보고를 올렸다"고 실토했다.
평일 오전 10시에, 외근 다니는 영업 부서 회사원도 아닌, 대통령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는 이야기.[34] 대선후보캠프 대변인을 지낸 이혜훈 의원의 증언에 따르면 "저녁 7시 이후로는 절대 일을 하지 않으며, 방에서 tv만 보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힐링캠프에 출연했을 때, 모든 연예 관련 지식을 줄줄히 꿰고 있어 피디가 놀랐다고.
또한 대면보고를 절대 받지 않으며, 오로지 서면보고만 받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서면보고가 대면보고에 비해 더 제한 된 정보만을 담고 있으며, 절차면에서도 훨씬 비효율적이라는 것은 굳이 설명할 것도 없다. 말 한 마디면 될 사안까지도 양식 따져서 서류로 만들어 올리는 것은, 극도의 허례허식이다.[35]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증언에 따르면 "세월호 사고 당시 대통령의 행방을 모른다"고 하는가 하면, "주 1~2회 만나는 경우도 있고, 그마저도 못 만날 때도 있다"고 하며,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경우 "홍보수석, 정무수석 시절에 단 한 차례도 독대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이런 것이 단순히 업무태만이나 '여성으로서의 사생활'[36]로 치부될 수 없는 중대 문제임은, 이른바 '비선의료' 의혹에 관한 다음과 같은 언론 논평이 잘 보여 준다.
미용시술은 누구나 받을 수 있으며 대통령이라고 예외일 순 없다. 더욱이 과거 안면 테러를 당한 적 있는 박 대통령의 경우 후유증 때문에 시술이 절실했을 수 있고,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시술 사실을 일일이 공개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략) 주름을 펴고 얼굴의 비대칭을 해소하는 미용시술이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철도 파업과 메르스, 북한 도발 등 국가적 위기상황에도 아랑곳 없이 행해졌다면 ‘여성으로서 사적인 영역’에 대한 이해는커녕 국정운영 의지마저 의심받기 충분하다.#
3.1.1 세월호 참사 당시 공백 논란
세월호 7시간 공백 논란에 대해 박근혜는 관저에서 서면 보고와 유선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다는 게 현재까지 나온 청와대 주장이다. 거기서부터 문제 제기가 시작됐는데, 박근혜는 취임 후 관저에서 주로 근무(?)했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관련기사 관련기사
이에 대해 야권과 일부 언론에서는 "관저는 집무 공간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대통령이 관저에서 머물렀다는 것은 곧 출근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관련기사
그런데 세월호 참사 당일, "금방 일어난 것처럼 머리를 부스스하게 연출하였다"고 박근혜의 전속 미용사의 증언이 나왔다! 중앙대책본부를 방문하기 전, 민방위복을 입는 것에 맞춰 일부러 머리를 부스스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면 세월호 참사 당일 언제 가서 머리를 해주었느냐??"고 취재진이 미용사에게 계속 물어봤으나,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며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직 청와대 조리장이 "박근혜는 평일에도 주로 관저에 머물렀다"고 고백하였다. 관련기사 초기에는 조리장이 익명으로 나왔으나 실명을 공개하였다. 한상훈 조리장이며, 촛불민심을 보고 용기를 냈다고 한다.관련기사 실명이 공개된 것에 대해 우려마티즈 드립도 일부 있으나, 오히려 실명을 공개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박근혜가 혼밥을 즐겼다는 것에 대해, 일간지에서 "히키코모리 대통령"이라는 표현도 나왔다. 대통령의 식사시간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중요한 시간이다. 이런 식사시간을 일반인도 아니고 대통령이 그냥 혼밥으로 보낸다는 건,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전혀 할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관련기사
이런 문제가 불거지면서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의 대통령집무실 정부중앙청사 이전 공약이 다시 힘을 받고 있다. 사실 18대 대선에도 있던 공약인데 다른 공약에 묻히다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소통문제가 불거지면서 이 공약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른 것. 물론 미국 백악관의 대통령비서실과 집무실이 같은 동에 있고, 툭하면 참모진들과 마주칠 수 있는 구조라는 것에 착안한 것이지만.
3.2 무책임과 나몰라라
본인의 지지자들이 집회 도중 사고로 죽어나가도 박근혜는 묵묵부답이었다. 심지어 사망사고 발생 이틀 뒤인 3월 12일에 삼성동 사저로 돌아왔을 때, 친박 의원들에게 활짝 웃으며 죄책감이 조금도 없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대변인을 시켜서,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들려줬기 때문에, 헌재의 결정에 사실상 반기를 들었다. 파면되었는데도 끝까지 헌법을 지킬 마음이 없다는 소리다.
4 불안정한 정신상태
4.1 변기교체 요구 등 결벽증 의혹
박근혜의 결벽증은 지나치게 과도하여 정신병의 일종인 강박증으로 의심된다[37]. 만약 자연인 박근혜였으면 그냥 웃고 넘길 사안이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 박근혜로서 혈세까지 낭비하며 저런 병적인 행각을 보였기 때문에 더욱 문제다. "변기 공주"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이런 일화가 있다.
- 전여옥이 2007년에 증언한 바에 의하면, 패스트푸드, 즉 햄버거를 먹을 때도 나이프와 포크를 썼다고 한다. 또한 이미 단종된 브랜드의 샴푸를 요구해서, 참모들이 시장을 뒤지느라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 2012년 대선 TV토론회 당시 박근혜가 가지고 있는 빨간 가방이 아이패드가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토론회 규칙상 A4낱장 외에 다른 물건을 지참하지 못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는 이후의 3차 토론에서 기어이 빨간 가방을 가지고 토론에 임하였다.
- 2013년 영국 방문을 했을 때, 하루 숙박했던 5성급 호텔[38]에 샤워기 꼭지와 침대 매트리스(침대시트가 아니다!)를 교체해 달라고 호텔 측에 요구했고, 여기에 화장대 주위에 쓸 조명과 스크린 장막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 송영길이 인천시장으로 재임하고 있었을 때, 국정 간담회차 인천을 방문한 박근혜는 송영길에게 시장 집무실을 빌리겠다고 요청. 송 시장은 흔쾌히 "쓰시라"고 했지만, 얼마 안 가 경호실 관계자가 자기 집무실에 달린 변기를 뜯어내 나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놀란 송 시장이 "왜 교체합니까?"라고 묻자 경호실 관계자가 "대통령이 쓰실 변기를 새로 달아야 합니다"라고 했다고.
새 변기를 뜯어가지는 않았다고. 대통령 하사 변기.화장실이 급해서 변기 설치하려고 집무실을 빌린 게 아닌가 싶다
- 2014년 부산 ‘아세안 정상 회의’ 행사에 참석할 때 잠시 머무를 대통령 대기실이 설치됐는데, 그 안에 ‘박근혜 전용 변기'를 설치하기 위해 인근에서 수도를 끌어오는 공사를 하는 촌극을 벌였다. 며칠 머무르는 것도 아니고 단 몇십 분 머물 장소에조차 전용 변기를 설치한 것이다. 10개국 정상들과 부인들이 쓰는 화장실이 있음에도 박근혜는 끝끝내 ‘전용 화장실’을 만들었고, 이후 행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대통령은 타인과 화장실을 함께 쓰지 않는다’는 말이 떠돌았다고 한다.
-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제4차 핵 안보 정상 회의’ 당시 각국 정상과 국제 기구 대표들의 단체 사진에 박근혜가 빠져 회의를 주최한 미국이 “박근혜를 챙기지 않았다”, “한국을 무시한 것 아니냐”, “국제적으로 왕따를 시키는 것이냐”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이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인 <팟짱과의 인터뷰>에서 어느 공무원에게서 제보받은 내용에 의하면, 당시 사진 촬영에 박근혜가 참석하지 못한 이유는 이러하다. 정상 회담 장소에 있는 화장실엔 가고 싶지 않아서, 전용 변기가 설치되어 있는 현지 숙소의 화장실까지 갔다와야 했기 때문이라고. 만약 회의가 열리는 장소가 한국이었다면 전용 변기를 설치하는 공사를 할 수 있었겠지만, 미국에 있는 핵 안보 정상 회의장의 변기까지 뜯어내는 건 불가능하여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 2013년 해군 2함대 인천해역방어사령부 사령관실에 방문예정 통보를 하며 사령관 집무실 화장실에 전면 교체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제보자에 의하면 해당 군부대는 갑작스런 화장실 교체에 쓸 예산이 없어서 다른 예산까지 끌어다 써서 화장실의 타일부터 변기까지 싹 갈았다고 한다.#
- 원주시의 한 공군 부대를 방문하기 전 기존의 VIP 전용 화장실을 대대적으로 공사하여 박근혜 전용 변기를 설치하였는데, 이 와중에 애꿎은 남성용 소변기까지 모두 떼어냈다고 한다. #
그녀가 지나가면 남자화장실이 여자화장실로 바뀌어 버립니다.
- 탄핵후 피의자로 대검찰청에 조사받으러 갈때도 개인용 변기를 챙겨갔다.#
특급 호텔 관계자들에 의하면, 전세계의 어느 해외 정상이나 유명 스타 같은 귀빈들이라도 이런 황당한 요구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 하였다. #
이런 식이면 대통령이 방문하는 곳마다 변기를 교체하려고 했다는 것인데, 참으로 결벽증이 어처구니 없는 수준이다. 1970년대 이전 한국에 방문하던 외국 고위 인사들이 수세식 좌변기 설치를 요구한 적도 있기도 하지만, 그때는 한국에서 좌변기는커녕 수세식 화장실도 드물었을 때니 이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영국인들이 자국에 있는 5성 호텔에서 진상 고객짓을 하는 박근혜를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보나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지지 이유를 묻는 설문에는 항상 외교를 잘해서가 수위로 꼽혔다. 물론 박근혜가 정말로 외교를 잘했다면 위에 열거된 기행들은 호사가들의 흥미거리 정도로만 남았겠지만 박근혜 임기말(2017년 초 기준) 한국외교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상태다.
뿐만 아니라 생얼로는 공적이든 사적이든 대면도 극히 피했다고 한다.
- 한상훈 셰프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에 입사해서, 조리장으로서 박근혜 취임 후에도 재직하며 3년간 박근혜의 밥솥을 책임졌다. 그는 퇴임하면서 자기가 모셨던 대통령에게 작별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박근혜는 "머리 단장과 메이크업이 되지 않았다"며 작별 인사를 받는 것을 거절했다고 한다. 청와대에서 오랫동안 재직했던 직원이 퇴직할 때는 대통령과 직접 대면해서 작별인사를 하고, 기념 사진을 찍는 것이 관행인데도, (생얼이라서 기념 사진을 안 찍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만나기조차 거절한 것은 상식 밖일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박근혜는 본인의 이런 결벽 성향 때문인지, 모내기 참가나 일일 탄광 체험, 일일 미화원 체험, 일일 유격과 같이 정치인으로서 필수적인 "보여주기 쇼"도 거의 없었다. 먹방도 거의 없었는데, 2007년에는 시장 상인이 오뎅꽂이를 하나 쥐어 주었으나, 끝내 먹지 못했다. #[39] 이런 모습은 바로 전 대통령인 이명박과 비교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의 여왕" 소리를 들은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 다만 이 선거의 여왕이란 칭호는 단순히 그녀의 능력과 행보로 따낸 타이틀로 볼 수 없다. 그보단 그를 아무 이유없이, 말그대로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지지층에 의해 얻은 칭호다.
지방을 다녀갈 일이 있어도 머물지 않고, 반드시 그 날 아무리 시간이 늦더라도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와 자야만 했다는 점도 있다.
저렇게 숙소를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세팅을 시킴에 그치지 않고, 모든 스위치 및 서랍에는 꼭 라벨을 붙였다고 한다. 즉 모든 스위치의 ON/OFF를 꼭 자신이 읽을 수 있도록 라벨링을 했다는 것. 그것까지도 아니라 필통과 같이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것까지 라벨링을 했다고 한다. 후술되듯 이는 박근혜의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 일종의 장애를 앓고 있다는 유력한 증거가 된다.
4.2 강박장애?
박근혜 행적을 살펴보면 결벽증 의심정황보다 강박장애로 해석할 근거가 더 많다. 일단 박근혜는 일정한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위에 열거된 사례도 강박증에서 비롯되었다는 의견이 강세다. 어떤 행위에 대해 강박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며, 그 조건을 만족하지 않는다면 극도의 불안과 초조함을 느끼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행동해왔다는 것.
2007년 박근혜 대선 경선후보 시절까지 측근으로 움직였던 전여옥 전 의원은 이렇게 증언했다. "보좌관이 박근혜 위원장의 샴푸를 사야 하는데, 단종이 돼 아무리 찾아도 못 찾았다. 왜 최근 나온 제품들을 안 쓰고 옛 제품만 고집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이와 같이 박근혜는 샴푸 하나조차 바꾸길 꺼려할 정도로 일상의 패턴을 유지하려 했다.
햄버거를 먹을 때도 포크, 나이프를 들었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식사는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우아하게 하는 것'이라는 강박 때문일 수 있다. '손이 더러워질까 걱정해서 집어먹지 못한다'거나, '내 손이 더러울까봐 음식을 건드리기 꺼려진다'는 이유가 아니라, '포크와 나이프 같은 식기가 없이 식사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이유일 거라는 해석이다. 선거유세 때 정치인이라면 의례 하게되는 '길거리 음식 먹방'을 유독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영국 방문시 침대 매트리스를 갈았던 것도 같은 느낌의 침대에서 자길 원했기 때문이며[40], 샤워기 역시 평소에 쓰던 버튼을 눌러야 물이 나오는 샤워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해석 할 수 있다.[41]
변기와 관련 된 소동 역시 쓰던 것과 같은 기종의 변기가 아니라면 일을 볼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일 수 있다. 배설행위를 할 때 심리적으로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가 아니라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다.[42] 결벽증 때문이 아니라 변기가 다르면 강박장애 때문에 불안 증상이 나타나, 쓰던 것과 같은 변기가 아니면 일을 볼 수 없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정치인은 지방일정이 있어 지방에 가는 일이 잦다. 이런 경우 시간이 늦어지면 대개는 그 곳에서 하룻밤 정도 묵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 또한 "잠은 집에서 자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또한 박근혜는 심한 불면증을 앓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불면증은 강박장애나, 불안장애의 증상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또한 메이크업과 헤어, 그리고 의상이 완비되지 않으면 사람을 절대 만나지 않으며, 식사 자리에 사람을 초대하는 일 또한 일절 없다는 것 역시, 결벽증으로 해석하는 것보다는 강박증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다. 강박증이 심한 경우, 자기 눈에 자신의 흠점이 보이면 그 부분을 가리기 전까지는 남의 눈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식사자리에 사람을 초대하지 않는 것 역시 원래 혼자서 tv를 보며 식사해왔기 때문에 이 패턴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거나, 자신이 밥을 먹기 위해 입을 벌리거나, 흘리거나 하는 행동을 드러내기 싫어서라는 해석이 남들과 같이 식사하면 더럽기 때문에 꺼렸다는 해석보다 자연스럽다는 시각도 있다.
비선의료의 주체인 의사 김영재의 증언을 보면, 김영재는 박근혜가 흉터[43]에 대해 컴플렉스가 있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 흉터, 뾰루지 등 외모에 대한 강박도 갖고 있기 때문에 주치의를 통하지 않고 비선의료 행위를 한 것 아닌가하는 추정도 가능하다. 세월호 7시간 당시의 행적을 밝히지 않은 것도 헤어세팅이 본인이 만족 할 만큼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며, 박근혜가 미용사를 근 20여년이나 존속한 까닭도 바로 강박 때문이 아닐까 의심할 수 있다. 보통은 청와대 전속 미용사가 아니라 극히 비효율적인 외부의 비상근 미용사를 계속 쓸 이유가 없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세월호 당일 의료시술이나 약물투여 행위가 있었다면 의사가 아니라 간호장교 조여옥 육군대위가 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굳이 다른 의사를 부르느니 평소에 감초주사, 백옥주사, 마늘주사를 놔주던 측근이 행하는 것이 더 심리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는 것. 그 사람이 전문적인 의사가 아닌 야매 돌팔이라고 해도 말이다.[44] 뿐만 아니라 박근혜의 주변인물들은 모두 오래 되었고[45], 어떤 패턴과 동선을 따라야만 하며, 이를 따르지 않을시 눈에서 레이저가 뿜어져 나온다는 말 역시 무성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식발언을 보면 국론분열을 극도로 꺼리고,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발언을 굉장히 많이 하는데, 이 또한 분열과 혼란을 극도로 꺼리고 무엇이든 일사불란한 것을 원하는 강박증 때문이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하다. 무슨 국가운영을 위한 플랜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혼란을 개인적으로 참지 못한다는 것. 박근혜 자신이 보기에 대한민국은 매우 혼란하며, 그 때문에 자신은 늘 불안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항상 위기상황이라는 것이다. 자신은 항상 그렇게 나라만 걱정하는 애국자라는 배경은 당연히 깔고간다.[46]
이렇게 해석하면 예컨대 "국가비상상황이니 공직자들은 국내에서 골프를 열심히 쳐야 한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발언도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공직자가 해외로 골프치러 나가는 것은 혼란한 것이니 애국자인 자신이 늘 불안장애를 겪지만, 이들이 국내에서 골프를 친다면 애국자인 박근혜 입장에서 불안이 해소되니 국가의 위기가 해소되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의심에 불과하긴 하지만 박근혜의 강박증이 이 정도로 심하다면 의존성 성격장애와 결합되어 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불안증상이 가시질 않는데 생활능력을 포함해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전무한 박근혜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변인물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기 떄문이다. 아니, 사실 원인이 무엇인지 지목할 수 있는 능력 역시 없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 때문에 사이비종교, 최태민 등에 심각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최순실 일가가 전횡을 일삼을 수 있었던 이유도 박근혜가 의존성성격장애를 앓고 있다고 보면 맞아떨어진다. 또한 의존성 성격장애는 회피성 성격장애와 함께 나타날 가능성도 높은데, 만약 여기까지 인격장애가 있다면 평소 사람을 만나지 않는 행적도 설명할 수 있다.
또 다른 의견으로는 부모가 둘 다 총에 맞에 죽었다는 사실, 커터칼 습격, 주변인물의 의문사 등과 무의식 중에 연관해 자신의 목숨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것이라는 설도 있다. 실제로 박근혜가 젊었을 때 가졌던 가장 큰 의문은 '어머니(육영수)는 착한 사람인데 왜 총에 맞아 죽었나?'하는 것이었으며,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 거의 모든 저명한 종교계 인사들과 만났다고 한다. 그 중 가장 박근혜에게 큰 깨우침(?)을 준 답변이 바로 최태민의 '꿈에서 육영수가 직접 말하길 박근혜를 아시아의 지도자로 만들기 위해 희생한 것'이라는 소위 현몽설이다. 이후 박근혜의 삶을 보면, 최태민에 홀린 것 아니냐는 말을 동생들이 할 정도로 최태민에게 극도로 의존하게 된다.
아마 최태민의 신탁, 예언이 적중하고, 그의 뜻에 반한 인물들이 제거되는 것을 보며 그를 따라야 한다는 강박사고가 생긴게 아니겠냐는 것. 만약 최태민의 뜻과 어긋난 행보를 보일 시 자신이 위험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식의 불안에 사로잡혔다는 추측이다. 실제로 최태민이 박근혜의 팬티 한 장까지 주술적 의미를 부여해 관리하는 등 모든 생활 전반을 관리했기 때문에, 최태민을 맹신에 가까울 정도로 추종하던 박근혜의 입장에서 이를 어기는 행위는 마치 종교적 금기를 어기는 것과 같은 의미였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것이 생명에 대한 두려움과 결합되어 강박장애로 발전한 것 아닌가 하는 해석이다. 꼭 생명과 관련된 불안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기반, 지위 등의 상실에 대한 큰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을 개연성도 높다. 자신의 능력에 비해 과도한 지위에 오른 경우 불안감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의존성 성격장애를 겪게 되고, 의존대상의 지시에 대해 강박장애를 얻는 것 역시 가능하다.
의존성성격장애에 의한 강박장애 발생설에 따르면 얼핏 이해 할 수 없는 박근혜의 기행은 최태민의 개입이 매우 구체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예컨대 변기의 경우 최태민이 '이 화장실이 기운이 좋아 여기서 일을 보면 신이 복을 내려준다' 이런 식으로 말했다면? 최태민은 박근혜가 자신의 곁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얼렁뚱땅 얼버무린 것일 뿐인데 박근혜가 이를 마치 신탁처럼 받들었다면? 같은 기종의 전용 변기를 매번 설치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할 수 있지 않을까? 샴푸 같은 경우에도 정황상 최태민이 사다준 것이 유력한데 박근혜가 '왜 이 샴푸를 권유하셨나요?'하는 식으로 물었다면 사이비교주인 최태민이 과연 뭐라고 답했을까? '기운이 박근혜와 잘 맞다' 던가, '육영수 여사가 쓰던 것이라 기운이 좋다'는 식으로 얼버무릴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샴푸가 단종이 되어도 바꿀 수 없었던 것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도 충분히 가능하다. 청와대 출입의사 중 정신과 전문의가 단 한 명도 없는 점 역시 이상한데, 최태민 등이 멀리하도록 지시했을 가능성 역시 배제 할 수 없다.[47]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 인터뷰에 따르면 전문가들 역시 박근혜를 강박장애 환자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손혜원 의원이 공개한 제보에 따르면 독일출장 시 해외교포 모임에 잠깐 들렸던 장소에서 마저도 전원 온오프 스위치를 알려주는 라벨링을 반드시 했어야 했다고 한다. 심지어 욕실의 온수 냉수도 스티커를 붙였어야 했다고. 이를 같은 방향에서 해석하면 자신이 하는 행동이 틀려서는 안 된다(고 믿)는 강박행동으로 볼 수 있다.[48]
4.3 조현병 스펙트럼?
반면 김어준의 파파이스 16.12.23 방송분에 출연한 정신과전문의 김현철 소장은 조금 다른 얘길 한다. 박근혜에게 강박증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강박증 ≠ 강박장애라는 것이다. 강박장애가 있는 사람, 예를 들어 어느 특정 변기에서만 일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면 그 변기가 없으면 아예 일을 안 보는 식으로 그런 강박증을 자기 선에서만 해결하려고 들지 저렇게 변기를 떼거나 샤워기를 바꾸는 등 민폐란 민페를 다 부리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실제로 강박장애를 앓는 사람들의 경우는 자신의 강박증을 인지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에 큰 불편함과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에 타인의 앞에서 이런 모습을 들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강박적 행동을 숨기려 하지만 숨겨지지 않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다.[49] 박근혜의 경우는 자신의 강박증상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고 있기 때문에 김현철 의사는 "악성적인 자기애를 보유했고, 현실인지 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해당 방송분에선 박근혜가 원했던 룸 셋팅이 나오는데 화장을 할 때 가로세로 1.5미터의 거울과 10개의 조명과 배경 담당의 하얀 스크린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이러한 장치들은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아름답게 만들고,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부분에서 김현철 소장은 악성적인 자기애에 빠진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이런 증상은 약 1년 정도 꾸준히 약물치료를 진행하면 상담치료도 필요없을 정도로 완치가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김현철 소장은 정신과 전문의가 아니더라도 이 사람이 정신과 진료가 필요하다, 아니다 정도는 의사라면 누구나 알 수 있었을텐데 이를 지적하는 의사가 청와대에 단 한 명도 없었던 것 아니냐는 생각을 전하기도 했다.[50] 여기서 추론해보면 자신에 대한 지적을 허용치 않는 박근혜 특유의 권위주의가 문제이거나, 더 나아가서 박근혜가 정신병을 앓고 있는 편이 더 조종하기 쉽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방치하려는 세력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식의 의견도 제시해 볼 수 있겠다.
강박장애가 아니라고 김현철 소장이 확신하는 부분은 박근혜가 먼저 이해 할 수 없는 요구들을 한다는 부분인데, 강박장애 환자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생각이 이상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타인에게 먼저 요구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강박증은 있지만 그것이 강박장애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강박장애보다 더 낮은 수준의 정신상태가 아니겠느냐는 분석을 했는데 조심스럽게 조현병[51] 스펙트럼의 일종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근거는 자신의 강박증상이 이상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는 것이며, 적어도 박근혜 스스로가 느끼고 있는 현실은 바로 우리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그 형태라고 믿고 있으며, 이는 현실인지능력이 현저히 낮은 것 아니냐는 추론을 하게 하기 때문이다. 스위치 라벨링 같은 이해 할 수 없는 요구들은 조현병 스펙트럼 중 피해망상에 의한 것 아니겠는가 하는 가설을 제기했다.
예컨데 거실 불을 끄면 폭탄이 폭발한다고 상상하거나, 전자레인지를 호텔에 반입해 호텔식이 아닌 식사를 따로 조리해 먹은 것도 독살에 대한 불안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52]
조현병 스펙트럼에 들어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현실에 대한 인지와 감각이 무척 다르다. 전문가라도 진단하기 전까지 확신할 부분이 적다. 조현병으로 가정하고 박근혜의 행적을 살펴봐도, 박근혜를 강박장애라고 가정했을 때 보다도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얼굴 표정이 사라지고, 언어구사력이 현저히 떨어지며, 방콕을 선호하고,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믿음'과 '의심'이 굳세다. [53] 이러한 증상들은 박근혜에게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일치한다. 단, 강박장애든 조현병이든 정식 진단은 아직 안 떨어졌다.
결론. 박근혜의 정신상태는 단순히 일상생활에만 불편을 주는 강박장애가 아니라 좀 더 심각한 정신질환인 조현병 스펙트럼에 해당할 수 있으며, 어떤 경우라도 대통령을 맡기에는 상당히 부적절한 정신상태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4.4 리플리 증후군?
정신과 전문의인 서천석 박사는 박근혜가 리플리 증후군과 비슷한 증세를 보인다는 심리분석을 내놓았다. # 리플리 증후군이란, 현실을 부정하고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기반으로 성공한 모델을 자기자신에게 투영하여, 자신이 다른 사람이나 가상의 사람이라고 거짓말을 계속 반복하다가 그것이 정말로 실제 자신이라고 믿게 되는 정신병을 말한다. 서천석 박사는 박근혜의 특징으로 “우선 지적으로 취약한데, 무엇보다 자기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약하다. 둘째, 대인 관계에서 타인을 믿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약점이 드러날까 두려워한다. 셋째, 그럼에도 자기 스스로 자기 관리를 하는 것조차 어려워하기에 소수의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의지해왔다”라고 3가지를 꼽았다.
상상 속의 소설이라는 단서를 붙였지만 "높은 자리에 머물고 싶어하지 않았나 싶다. 모두가 받드는 존재로 살기를 원해 왔고 스스로 그럴 만하다고 믿었을 것"이라고 박근혜의 심리상태를 분석하며 “그는 거짓 자기를 스스로 자기라 믿으며 마음의 평화를 지켜가는 리플리증후군과 비슷해 보인다. 결정적인 차이는 리플리증후군처럼 적극적으로 자기와 주변을 속이기 위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매우 특수한 그의 조건 덕분인데 그는 ‘영애=공주’로서 십대를 보냈다. 스스로를 포장하기 위해 타인에게 체계적인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타인이 적당히 포장해준다. 그저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노력하는 수준이면 충분했다. 무능이 드러나지 않도록 노출을 피하는 정도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라고 그녀가 다른 리플리 증후군 환자와 다른 환경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환자들처럼 굳이 애써 상상 속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오히려 주변에서 박근혜가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포장해주다보니 스스로 자신이 굉장히 대단한 사람으로 착각하게 되었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상태에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었지만, 그 트라우마를 계기로 일체의 정신적 성장을 이뤄낸 적이 없었던 것 같다는 점을 지적했다.[54]
4.5 가는 곳마다 나라 망신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전술한 바에서도 언급했지만 국내에서 변기를 뜯어 고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영국에서는 5성급 호텔에서조차 침대 매트리스를 교체해 달라고 떼를 쓰는가 하면, 중국을 방문했을 때는 행사가 길어지자 시진핑에게 "배고파 죽겠다"고 말해 어린애같은 투정을 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가는 곳마다 체통을 지키지 못하고 대한민국의 국격을 갉아먹어도 너무 갉아먹었다. 너무 배고파서 그랬다면 돌려서 표현해도 될 텐데, 굳이 직설적으로...?
헌데 되게 웃기고 환장할 노릇인게 전술한 그 행사, 바로 중국의 전승절 행사다. 이게 뭐냐 하면 중국 인민해방군이 1.4 후퇴로 대한민국 국군과 미군 및 UN군을 평양 이남으로 몰아낸 일을 축하하는 행사라는 거다. 역대 대통령들은 그 더럽고 불쾌한 행사를 무시하는 차원에서 계속 불참해왔건만 박근혜는 그게 좋다고 참석한 것이다. 이쯤 되면 역사에 대한 인식은 물론 사리판단도 제대로 못하는 인간이 대통령 노릇을 한 셈이다. 아무리 사드 문제가 있고 뭔가 외교마찰이 벌어질 중대한 사한이 발생하더라도 어느 나라든 그런 문제를 신중하게 접근하는 게 원칙인데 시진핑이 그런 거 없이 그냥 대놓고 막 나갔다는 건 그 정도로 박근혜를 개무시하고 깔아뭉갰다는 얘기가 된다.
사실 시진핑이 대한민국에게 대놓고 압박을 가하고 으름장을 놓는 그 중심에는 박근혜같이 생각도 개념도 없고 사리판단도 못하는 위인 따위가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한국은 그런 띨띨한 대통령이 재임할 정도로 쉬운 나라라서 마음대로 대해도 된다는 판단에 입각한 것이다. 이미 주변국 국가수반들조차 박근혜를 사람 취급을 안한다는 얘기다. 그나마 버락 오바마는 성격이 착한 사람이라 박근혜에 대해 어리둥절한 반응만 보였을 뿐이다.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때 국왕을 만난 자리에서, 최순실에게 천만원짜리 구치 가방을 선물하여 로비한 KD코퍼레이션의 제품 [55]을 네덜란드 국영석유기업인 로열 더치 쉘에서 사달라는 청탁을 했다고 한다. 몰상식도 한참 몰상식이다. 서울신문
히잡의 경우만 해도 원래 이슬람교를 믿는 자기 나라 여성에게만 해당시키는 거지, 외국 여성에게까지 강요하진 않는다. 그래서 서구권 여성 정치인들도 이슬람 국가에 방문할 때 히잡을 착용하지 않는다.# 이자벨 아자니가 괜히 히잡을 보며 불같이 분노해서 히잡 반대시위의 주동자가 된 게 아니다.
박근혜/평가/외교 문서를 읽다 보면 더 자세하게 나오기 때문에 해당 문서를 참고하면 되겠지만, 박근혜의 나라 망신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5 권위주의와 독선, 그리고 고집
한국에 닥친 가장 큰 위협은 박근혜 대통령의 권위주의다.
뉴욕타임즈
쉽게 말해서 공주병이다.
정계 입문, 한나라당 - 새누리당 국회의원 및 대표, 대선 후보에서부터 집권 4년차 이후 탄핵이 인용되어 파면된 현재까지도 박근혜 대통령이 일관적으로 보여주는 문제점 중의 하나였다.[56]
박근혜 대통령의 권위주의와 불통은 결국 박 대통령의 민주주의와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몰이해에서 그 원인이 있다는 해석이 있다. 특히 대통령이라는 직분을 '민주주의 하에 통치행위를 양도받는 계약(= 주권자인 국민 전체를 대신하여 나라를 이끄는 대리인)'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아버지인 박정희와 함께 운명적으로 엮여진 일종의 소명 같은 것으로 말도 안되는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57] 실제로 대한민국의 대통령 중심제는 의정부와 삼사가 국정에 개입하여 입헌군주제에 '가까운' 귀족정치였다는 조선시대 전제 왕권에 비해 국정 운영에 있어서 권력 집중적 형태가 부각되어 삼권분립의 침해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대유행, 한국사 국정교과서 도입 등 정치적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해명과 소통, 적극적인 대처 대신에 "지금은 국가 위기니 국민 대통합을 이루고 국민 분열을 막아야 한다"는 발언을 계속해왔다. 이러한 발언이 진정성이 느껴지는가는 둘째치고, 정치적 반대파를 봉쇄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 통치행위를 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고 할 수 있겠다. 박근혜 대통령은 10살 때부터 20년 가까이 되는 시간을 절대 권력의 자리에 있었던 아버지와 함께 청와대에서 로열 패밀리 생활을 하였고, 정계에 입문한 9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항상 권력의 최정점 또는 그 근처에서 살아왔다. 60여년이란 시간 동안에 박근혜라는 사람의 신분은 20년 동안 '독재자의 딸 - 15년 동안 정수장학회/영남대학교의 이사장 - 15년 동안 국회의원 및 거대 야당의 대표 - 대통령'이었으니 가히 일반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권력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유시민 작가를 비롯한 진보 계열의 정치평론가들은 현재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권위주의와 불통은 박근혜 대통령의 생애 전반을 아우르는 제왕적 이미지와 무관하지 않으며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고 평한다.[58] 박 대통령의 편향된 이념관과 역사관은 물론, 최저임금 발언 등 민생에 무지하다는 것도 당연한 결과물이란 것이다. 또한 이런 태도가 계속되면 남은 재임 기간 및 그 이후에도 무능한 통치자로 역사에 남을 가능성이 크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민과의 소통 부재 역시 권위주의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취임 4년차인 2016년 1월 현재 공개 기자회견을 가진 횟수가 고작 5회로, 전임 집권 행정부와 비교하면 한참 모자르다 못해 대한민국 역대 최하 수준이다.# 게다가 집권 후 7개월 동안은 단 1차례의 기자회견도 없었다.
2016년 1월에 이루어진 기자회견의 경우, 회견 전에 질문을 받는다며 청와대에서 홍보를 나서 국내 기자는 물론 외신 기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게다가 회견 직후 사전에 질문지가 유출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회견 도중 박 대통령의 '내가 기억력이 좋아서 이 질문을 다 기억한다'는 발언은 거짓말로 드러났다. 후술할 외신과의 악연 문단에서도 볼 수 있듯 외신 기자들의 볼멘 목소리가 많다.
고질병이었던 '인사 참사'와 세월호 참사 당시 국민과의 소통 부족으로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등 논란이 생겨났으며 미숙한 해명으로 국민의 신임을 잃어가는 것이 현황이다. 좋게 표현하자면 외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걷는 리더쉽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대의민주주의를 이념으로 택하고 있는 민주공화국에서 이런 방식이 맞는 길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이러한 문제는 더욱이 정책 추진에 있어서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 정책 문제나 외교문제에서 청와대와 대통령 뜻으로만 해결하려고 했지 현실과 현장의 실무자들이나 이해 관계자들과의 대화를 제대로 절충하거나 경청하지 못하는 문제를 낳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한중 FTA에서 제조업에 엄청난 이익이 될 것처럼 선전하는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의 이야기와 다르게 우리나라의 제조업계는 한중 FTA로 비상인 상황이다.
이익이 되는데 정작 이익 당사 집단은 비상이자 경쟁력 강화라는 이야기의 대비는 그 문제는 정책 추진에서 관련 핵심 당사자들과의 의견 조율과 대화 경청이 부족한 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위안부 협상에서도 위안부 피해자들과의 기본적인 대화 경청이 없이 진행된 것에 대한 국내의 불만과 비판과는 다르게 너무나 판이한 인식으로 협상을 추진했다는 걸 대통령 스스로가 보였던 점도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또 유승민 원내대표를 '배신의 정치인'이란 대명사로 부르면서 '이런 사람은 반드시 떨어뜨려 달라'는 식의 선거 개입 발언을 공개 석상에서 하는가 하면 '진실한 사람을 선택해달라'면서 새누리당의 총선 참패의 한 원인으로 손꼽히는 '진박(진실한 친박) 마케팅'에 불을 당기는 등 행정부 수장이 계속 입법부의 일에 개입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문제 또한 잦았고 또 컸다.[59] 그리고 그 배신의 정치를 자신이 직접 저질렀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친박계였던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공천 작업을 하는 와중에 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과 은밀히 만났던 게 드러났고#, 또 윤상현 의원,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현기환 정무수석이 서청원 의원을 위해서 친이명박계인 김성회 전 의원에게 출마 지역구를 (서청원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도 화성시 갑에서 다른 곳으로) 바꾸라고 거의 협박식으로 강요하며 '이게 박근혜 대통령의 뜻이다'라는 말을 하는 등#1 #2 청와대가 새누리당의 공천 과정에 깊숙이 개입해 왔던 게 아닐까하는 의심을 입증해주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결국 박근혜정부의 정책 전반에서 나타나는 '나를 따르라'는 식의 권위주의적 가치관과, 행정부 수장으로서 입법부에 대한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 게 원칙인데도 거의 노골적으로 새누리당의 국회의원 공천에 개입하는 모습이 (새누리당의 압승이 확실시 되었던) 4.13 총선의 참패를 가져왔다는 평가가 압도적이다.[60] 또 국회에 '민의를 따르라'고 요구하는 등의 책임 회피식 태도를 보여 다시금 비판받았다.[61] 또한, 쏟아지는 내각 교체 요구를 일축하며 총선 참패의 원인으로 꼽히는 노동개혁,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의 문제시되는 정책 역시 계속 추진한다고 밝히면서 기존처럼 일방적인 국정 운영을 강행할 것을 시사하였다.[62]
박 대통령의 책임회피식 태도는 계속해서 나타나는데 4월 26일 중앙언론사 보도국장 편집국장들과의 청와대 오찬간담회에선 총선 참패가 자신의 국정 운영에 대한 심판이 아닌 "국회에 대한 심판"이라고 강조하며 자신에 대해 쏟아지는 총선 참패의 책임을 회피하였다.# 대통령의 이런 모습에 보수 언론으로서 줄곧 박 대통령을 옹호해왔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조차도 "자폐적 권력"이라고 칼럼의 형식을 통해 비판하였다. #, #2
공무원사회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교육 역시 국가주의와 집단 통제를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일례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5급 공무원들이 사용 중인 교재를 보면 국가를 '일정 지역을 지배하는 최고 권력에 의해 결합된 인류 집단'이라 소개하면서, 보편적인 민주 국가에 없어서는 안 될 '주권재민'의 개념을 누락시켜 비민주적인 관료집단을 육성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장희 외대교수는 이러한 교육과정이 "경찰국가적인 질서와 원칙만 지나치게 부각시켜 시민의 자유 영역을 상당히 위축받게 하고 있다"고 비판하였으며, "중국의 가치를 중시했던 김구 선생에 비해 이승만은 보다 거시적 시야를 갖고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해 나라의 기틀을 잡았다", "자랑스러운 한국인 반기문 사무총장"[63]과 같은 주관적인 표현을 써 정치적 중립성 위반 문제도 거론되고 있다. 당시 반기문은 대선주자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
또, 일제 패망 당시 김구의 한탄 중 "우리는 아직 민족적 자각이 부족하다", "헛꿈을 꾸고 귀중한 시간만 허송해"란 끝부분만을 인용하여 국민성이 미개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 제3장 위대한 대한민국에는 처음에 나온 '국가의 정의'가 반복되고, '개별 집단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부분이 나온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통제가 실패하면 소말리아와 같은 꼴이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 세월호 참사 수습기간 당시 "반대하는 사람을 다 안고 가는 짓을 왜 해야하느냐"라며 역정을 냈다고 한다. 역시 대통령이라는 직책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부족하며, 자신을 대통령이 아닌 왕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
# 박근혜가 인터뷰 당시 탄핵이 기각되면 국민의 이름으로 검찰과 언론을 정리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하여 이 역시 권위주의에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5.1 국립중앙박물관장 사퇴압력
파일:/image/028/2016/03/25/145887321978 20160326 99 20160325114511.jpg
병신양요
2016년 3월 9일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이 퇴임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관심을 가졌던 프랑스장식미술전 개최를 반대하다 청와대의 압박으로 퇴임했다고 밝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프랑스장식미술전은 한불수교 130년을 맞아 기획된 전시로 프랑스의 명품 업체들이 참여해 상품을 전시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김영나 전 관장은 "상업적 전시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할 수 없다"고 완강히 거부했고 결국 전시가 무산되었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관심을 가진 것은 전시가 무산된 이후"라고 밝혔으나,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전시에 대한 거부가 상부에 대한 집단항명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특히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은 지난해 박 대통령이 이 전시에 가 보고 싶다고 관심을 나타내자 이례적으로 김영나 전 관장을 수차례 불러 전시를 성사시키라고 계속 압박한 것으로 드러나는 등, 청와대가 문화예술계 전시와 관련해 기관장 인사까지 일일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며 도를 넘는 권력 행사란 비판이 일었다.
2017년 1월 17일, 사건의 내막을 밝힌 인터뷰가 나왔다.#“청와대에 보고서 올린 직후 최순실 측근 ‘가만두지 않겠다’ 협박” 2급 고위공무원이었던 문체부국장이었다가 정유라의 승마 관련 문제를 처리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쁜 사람"이라고 지목[64]해 국립중앙박물관 국제교류단장으로 좌천되었다가, 프랑스장식미술전 개최 논란이 벌어지자 또 다시 박근혜가 직접 "이 사람 아직도 있어요?"라며 해고를 종용해 공직을 떠났던 노태강 전 국장이 당시 상황을 밝힌 것이다.
노 전 국장은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에 700만~800만원 짜리 원피스 등 프랑스 명품을 전시하라고 했다. 전시관 앞에서 판촉 행사까지 하겠다고 했다”, “지나친 상업성에 박물관 직원들이 나자빠졌다. ‘병인양요’에 빗대 ‘병신양요’라고들 했다”라며 “김영나 관장이 끝까지 반대하다가 잘렸다”고 밝혔다. 국가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외국 명품 브랜드 판촉장으로 전락 할 판이었고, 이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국립중앙박물관 직원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소임인데 김영나 전 관장, 노태강 전 단장 등은 맡은 소임을 다하다 잘려나간 것이다. 국정을 이런 식으로 보면 모두 아첨이나 떨지, 대체 누가 업무를 할 수 있겠냐는 비판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박근혜가 왜 프랑스명품전 개최에 혈안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표면상의 이유는 한불수교 기념사업이나, 고작 이런 이유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명품 판촉장을 여는 행사주최에 혈안이 될 이유는 없고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1. 박근혜는 프랑스에 유학했고, 박정희가 걱정했을 정도로 프랑스 명품에 사적으로 큰 관심이 있었다는 점, 2. 최순실도 검찰 출석 시에도 프라다 신발을 신고, KD코퍼레이션으로부터 부정청탁 뇌물로 샤넬 가방을 받는 등 명품을 좋아한다는 점, 3. 국가에서 진품임을 보증해주는 외국 명품 판촉장이 열리면 자연히 막대한 커미션이 딸린 이권사업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점 등 정황증거들로 미루어보아, 이 사업은 박근혜-최순실의 사익추구를 위한 직권남용이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한 추측일 것이다.
프랑스가 왜 남의 나라 국립박물관에 판촉장을 열려고 했는가에 대해서 '지나친 무례가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프랑스에서 이런 제안을 한 것은,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종종 이런 행사가 열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은 국가에서 운영자금을 대주는 것에 비해 프랑스는 사기업들의 후원금이 많고, 후원기업들과 함께 행사를 열기도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측 담당자가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정을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 기준에 비추어 제안한 것 아닌가 하고 추측하고 있다.
평론가들은 이 사건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집권 4년 차 레임덕이 걱정되던 와중에, 김영나와 노태강 등이 소신을 지키기 위해 항명하자, 본보기 삼아 날려버렸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 사건이 만약 사익추구 목적이 아니었더라면, 일종의 '충성심 테스트'가 아니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일부러 무리한 요구를 하고, 말을 듣나 안 듣나 보려 했던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것도 막장 운영임은 두 말할 것도 없으나, 차라리 권력싸움을 위한 충성심 테스트였던 것이 낫다. 이것이 아니라면 이 사건은 무조건 1. 사익추구를 위한 직권남용, 2. 박근혜는 무엇이 문제인지 구별조차 못하는 바보 멍청이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6 파면 이후 무대응 및 입장발표 거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진행될 때 한번도 법정에 나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박 전 대통령 쪽 내부에선 헌재 재판관 8명의 탄핵 인용·기각 전망을 5 대 3, 또는 4 대 4 정도로 확신하고 있었다고 한다. # 법정에 나가지 않은 것 자체가, 나는 이 나라의 최고 권위자이고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법정이란 곳을 나가야 하며 그러고보니 법정에는 전용 변기 설치가 안 되있네 사법부 니까짓게 나를 어떻게 판단할지 생각하지 말고 당연히 무죄선고를 해야지라는 권위주의적인 태도였다.
물론, 이런 태도는 재판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피의자 신분일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주 좋은 예로 데꿀멍이라는 단어가 있다(...) 피의자 신분으로 반성의 태도 없이 오만한 모습을 보이면, 사법부의 재량으로 감형해 줄 수 있는 부분도 전부 풀로 형량을 때려버리는 괘씸죄가 추가된다.
게다가, 처음부터 헌재의 탄핵심판 인용 가능성을 사실상 배제하고 '퇴진 매뉴얼'을 제대로 논의하지도 않았다. # 참모진이라는 것들은 4대 4로 탄핵이 기각될 수도 있다는 거짓말 관측까지 내놓으며 내부적으로 박 전 대통령의 업무 복귀를 대비한 시나리오까지 마련했다는 모양이다. 그래서 참모들조차 탄핵 인용 가능성을 제대로 보고하지 못했다는 증언도 있다. # 그러면서도 꼴에 탄핵 기각 축하용 5단 케이크마저 준비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 5:3으로 치열하게 기각될 것으로 예상했던듯
이를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박근혜를 호위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의 직위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려는 간신, 그리고 권신의 표본이 되어(...) 간신이 아니라면 버티지 못하는 자리였겠지? 4년여의 임기 동안 실제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박근혜에게 당장 듣기좋은 사탕발림만 나불댔으며, 박근혜는 여기에 대해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은 채로 이를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는 것. 그리고, 박근혜에게는 본인의 생각과 다른 의견 자체를 제시하기 어려울 정도로 독선과 고집, 권위주의가 극심했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당연히 이런 막장 꼬라지를 가만 두고 볼 수 없었던 헌재는 8:0 만장일치로 탄핵을 인용하였다.
시크릿 가든 보듯이 늘 하던대로 TV 생중계를 시청하며 팩트폭행을 당한 자신의 파면 사실을 알게 된 박근혜는 비서실장에게도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친박계 조원진 자유한국당 의원의 방문도 거부했다. 토사구팽 이렇게 입을 닫고 있던 박근혜는 3월 12일 삼성동 자택으로 이동 후 단 4문장의 탄핵 불복 선언을 대변인을 통해 발표한 것이 전부[65]. 결과가 어떻든간에 발표가 된 직후, 자기 자신은 그 결정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일단 담화를 진행하여 국민들의 결정에 겸허히 따르겠다고 말하는 것이 사회 갈등을 줄이려는 정치인의 기본적인 자세인데도 말이다.
그동안 자신에게 사건이 발생하면 지지자들의 결집을 모으기 위해 애매모호한 근혜체 메시지를 던져대던 것과는 전혀 다른 행동. 이 행동 자체가 지지자들을 향한 ‘묵시적 불복 선동’이라는 해석도 나오는 중이나, 그냥 자신이 탄핵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의견도 있다. # 어느 쪽이든 박근혜 자신의 권위주의적인 모습이 심각하게 드러나는 중이다.
7 사이비 종교와 유착관계
해당문서 참조.
7.1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박근혜가 은인처럼 생각한다던 최태민[66]의 5녀이자 정윤회 전처(2014년에 이혼) 최순실[67]이 국정 전반에서 전횡을 일삼으며 비선실세로 대통령을 조종하여, 사실상 국정을 주도한 사건. 쉬운 말로 짧게 말하자면, 이것이 박근혜정부인가, 아니면 최순실정부인가 하는 문제다. 투표로 당선된 것도, 당선인이 공직에 올려준 것도 아닌, 무자격자 민간인이 국가 기밀과 비밀 문건들을 청와대 인사들을 통해 보고받으며 국가기관의 공적인 사무를 주도했다. 즉, 절차적 민주주의가 뿌리부터 짓밟혔다.
자세한 것은 해당문서 참조.
8 인사 참사
당시 여론을 반영한 풍자 개그.[68]
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꾸준히 인사 문제가 거론되어 왔다. 당선되었을 때부터 탕평책 인사를 뽑아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고 인사 선임에 대한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성시경 인사[69]라는 코드 인사를 보이기도 했지만, 전임의 논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인수위 때부터 시작해 취임 1달도 지나지 않아 불과 3개월만에 박 대통령 본인이 지명한(임명) 장차관급 인사 7명이 부동산투기와 탈세, 병역기피 등의 문제로 줄줄이 낙마하는 위기를 맞았으며,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의 공금 유용문제로 도덕성을 크게 실추되었으며 청와대 대변인인 윤창중 성추행 사건으로 방미 성과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다. 아래 논란까지 이어지며 곤혹을 치러야 했다. 이후 MB정부 공직자 이수 4대 필수과목[70]이 박근혜 정권에서도 별 다를 게 없다는 비판이 꾸준하게 지적되었다.#1#2#3#4
2013년 박근혜 정부 낙마 사례 | |||
성명 | 직책 | 사퇴일 | 사유 |
김용준 | 국무총리 후보자 | 1월29일 | 아들 병역, 편법 증여, 투기 의혹 |
이동흡 |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 2월13일 | 특정업무경비 사적 유용 의혹 |
김종훈 #s-3 | 미래부 장관 후보자 | 3월 4일 | 이중국적, CIA 이력 문제 |
황철주 | 중소기업청장 후보자 | 3월15일 | 보유주식 백지신탁 문제 |
김학의 | 법무부 차관 | 3월21일 | 성접대 의혹 |
김병관 | 국방부장관 후보자[71] | 3월22일 | 무기중개업체 고문 경력 문제 |
한만수 |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후보자 | 3월25일 | 역외 탈세 의혹 |
윤창중 | 대통령비서실 대변인 | 5월10일[72] | 성추행 문제 |
이남기 |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 | 5월22일 | 윤창충 성추행 문제의 책임 |
채동욱 | 검찰총장 | 9월30일 | 혼외자 의혹[73] |
진영 | 보건복지부 장관 | 9월30일 | 청와대의 연금정책 갈등[74] |
당장 국무총리 자리만 보더라도 김용준[75], 안대희[76], 문창극[77]이 후보 심사 중 낙마했고 정홍원은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사퇴의 뜻을 밝혔으나 안대희와 문창극이 사퇴하면서 총리직을 더 유지해야 했다. 이후 총리로 지명된 이완구는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 정치자금 의혹으로 총리가 된지 불과 70일 만에 자진 사퇴했다. 그리고 혐의가 인정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14년 박근혜 정부 낙마 사례 | |||
성명 | 직책 | 사퇴일 | 사유 |
윤진숙 | 해양수산부 장관 | 2월6일[78] | 여수 기름 유출사고 수습 중 언행문제 |
안대희 | 국무총리 후보자 | 5월28일 | 전관예우(변호사 시절 과도한 수임료) |
문창극 | 국무총리 후보자 | 6월24일 | 부적절한 교회 강연 내용 |
김명수 | 교육부 장관 후보자 | 7월15일[79] | 논문 표절 의혹 |
정성근 | 문체부 장관 후보자 | 7월16일 | 청문회 중 폭탄주 회식 문제 |
김명수 교육부장관 후보의 경우 논문을 표절하고 제자의 연구비를 갈취했다는 의혹을 받았고 청문회에서 무신불립[80]의 뜻을 몰라 뒤쪽 직원들에게 물어본 뒤 "신뢰가 없으면, 뭐라고?"라고 되물어 제지를 받았으며,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청문회에서 청문위원들의 질문에 하나도 대답하지 못해서 '몰라요 장관', 뒷사람이 알려준 말을 그대로 따라 대답하여 '앵무새 장관' 이란 별명이 붙었다. 시도 때도 없이 웃는 태도 때문에 '크크큭' 이란 별명은 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윤진숙을 모래 속의 진주라며 장관에 임명을 강행했으나 초기부터 해당 분야에 대한 얕은 지식수준을 보이며 자격논란에 휩싸였으며, 여수 기름 유출 사건이 터진 이후 "1차 피해자는 해당 기업, 2차 피해자는 어민"이라는 발언[81]으로 질타를 받자,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가 올린 해임건의안을 박근혜 대통령이 받아들여 결국 경질되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메르스 방역 실패로 경질되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에 의해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으로 임명되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경우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 유신헌법의 초안을 만든 사람이었으며, 이병기 현 국정원장(2015~)의 경우 참여정부 시절 한나라당이 자행한 희대의 불법 정치자금 전달방식 '차떼기' 사건의 배달책으로 곤혹을 치뤘던 사람이어서 청문회에서 이 사실이 지적되기도 하였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경우 그 유명한 초이노믹스 정책 추진의 실패로 경제난을 불러일으켰다.
뽑은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역량 부족, 비리 의혹 때문에 청문회 통과에 난항을 겪거나 청문회에도 가기 전에 낙마하는 바람에 "저런 사람들만 뽑는 것도 능력이다"라며 조롱을 받기도 했고, 이때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박근혜 정부는 외부에서 인사를 기용하기보다는 이미 청문회를 통과한 사람을 다른 자리에 앉히거나[82], 아니면 국회의원들을 입각시키는 방법으로 인사를 단행하기 시작했다[83]. 한국의 국회의원은 의원직을 유지하면서 장관직이나 국무총리직을 겸직할 수 있는데,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자에게는 신상털기에 가까운 날선 비판을 하지만 현직 동료 국회의원이 장관으로 내각에 들어가게 되었을 경우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확률은 명백하다고 한다.
2015년 박근혜 정부 낙마 사례 | |||
성명 | 직책 | 사퇴일 | 사유 |
이완구 | 국무총리 | 4월27일[84] | 성완종 뇌물 수수 의혹 |
문형표 | 보건복지부 장관 | 8월26일 | 메르스 사태 책임 |
김무성, 유승민, 김종인, 이상돈 등 한나라당 시절이나 대선 후보 시절 뜻을 같이해 친박으로 분류된 인사들도 현재는 모두 박 대통령과 결별했으며, 이렇게 소원해진 사람들에 대한 원한이 남아 보복함으로써 대통령으로서 부적절한 처사란 비판도 일었다.
2016년 8월 16일에 단행한 개각도 실망스럽단 평가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표적수사, 넥슨 게이트, 어버이연합 게이트 연루, 아들의 꿀보직, 처제의 조세회피처, 가족회사 논란에 휘말려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된 우병우 민정수석을 일방적으로 비호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결국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박 대통령의 우병우 감싸기를 정면으로 비판하였다. # 또, 문체부 장관으로 한국 문화 탄압에 앞장서고 있는 전 여가부 장관 조윤선을 임명하면서 진보 뿐만 아니라 20대 남성이 주류인 일베저장소 등의 친정부성향 커뮤니티에서도 비난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얼마 후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우병우 민정수석비서관 등 측근 비리를 폭로하자, 청와대는 묵과할 수 없는 사안, 국기를 흔드는 일이라고 변명하는 내로남불스러운 모습을 보여 줬다. ##2
8.1 낙하산 인사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장의 최종 임명권자는 대통령이다. 그런데 집권 1년차 말기인 11월에는 박근혜정부 임명된 공공기관장 77명 가운데 낙하산 인사가 절반에 가까운 44.2%인 34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낙하산 인사도 새 정부에선 없어져야 한다”고 한 발언과 배치돼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2015년에는 출범 이후 지난 2년 동안 303개 공공기관에 임명된 2천 109명의 임원 중 318명으로, 5명에 1명 꼴로 낙하산 인사가 있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되어(MB정부의 30% 증가율) 비판을 받고 있다.
2013년 말에는 연매출 7조원에 이르는 대형 공기업인 한국도로공사 사장에 박근혜 캠프 유세지원단장을 맡은 친박계 중진의원 김학송이, 한국마사회장에는 박 대통령의 대표적 재계 인맥으로 꼽히는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이 임명돼 자기 사람에게 자리 나눠주기란 비판을 받았다.
2014년 3월에는 김행 전 청와대 대변인이 양성평등교육원장에 임명되었으며, 세월호 참사 직후에는 이른바 해피아(해수부+마피아)가 관련기관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줬다. 해수부 산하 항만공사 역시 별 다를 거 없는 상황. 9월에는 인터넷 관련지식이 전무한 백기승 전 국정홍보비서관이 인터넷진흥원장으로 부임해 보은인사란 비판이 나왔다. 같은 달 제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이 전문성과 무관한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임명되면서 야당의 항의를 받았다. 이 시기를 '2차 낙하산' 시기라고 한다.
8.2 편파적 인사
이명박 대통령 시절의 인사 편중이 고소영이라면, 박근혜 정권은 성시경이다. 박 대통령 본인의 역사관 논란은 옛날부터 존재했다. 그런데 2015년 하반기 폭풍의 눈이라 불리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가 일어나자 국정화를 주도하는 집필진과 교육부 중책에 뉴라이트 극우 성향의 인물들이 임명되었다. 심지어 전임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김기춘은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유신헌법의 초안을 만든 사람이었고, 집권 1년차부터 박 대통령이 임명을 요청한 장관후보자들 대부분이 청문회에서 역사관 논란이 불거졌다. 역사적으로 평가가 확정된 사건에 대해서 특히 그렇다는 반응인데 대표적으로 박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가 일으킨 5.16 군사정변에 대해서 판단을 유보하거나 혁명이라고 발언하는 등 민주국가에서 공직자의 역사관을 검증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요소란 것을 감안하면 심각한 문제다. 대통령의 눈치보기 행태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 #2 #3 그밖에 이인호, 문창극, 고영주, 박효종 등 정치적으로 극우 성향을 가진 뉴라이트 인사들을 요직에 대거 앉혀 비판받았다. 박근혜/역사관 문서 참조.
8.2.1 코드인사
친박 문서 참조. 박근혜 대통령은 당초 원조 친박으로 불렸으나, 취임 이후 자신이 임명한 측근들('청와대 얼라들' 발언)과 정책('복지 없는 증세는 허구' 발언)에 대해서 비판한 유승민 의원을 향해 공개석상에서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달라"고 비난, 4.13 총선의 새누리당 공천과정에 친박으로 분류되는 의원들을 움직여 유승민을 포함한 비박계 의원들을 소외시켰고, 탈당한 의원들의 지역구에 친박 의원들을 대거 공천하게 만들었다. 이는 새누리당 총선 참패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으나, 4월 26일 오찬 간담회에서 유승민이 복당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중이 담긴 발언을 하여 또다시 물의를 빚었다. #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던 참여정부 시절, 한나라당이 코드 인사라고 많이 까댔던 것을 생각하면 내로남불에다 언어도단이다.
9 소통문제
새누리당 인사들은 발신번호 표시제한 전화로 연락이 온다[85], 솔직하게 터놓고 소통하지 않는다, 만나거나 접근하기 어렵다는 경험 등을 예로 들며 박근혜가 소통 능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2004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맡고 있던 박근혜와 함께 원내대표로 활동하였던 김덕룡은 박근혜가 소통이 안 되는 것을 넘어 "먹통"이라고 평가하면서, 당시 박근혜에게 정수장학회 문제를 털고 넘어가야 한다고 조언을 했지만 자신의 조언을 거부한 것은 물론 이후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것을 예로 들었다. 또한 박근혜에게 친구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으며, 참모들조차 주요 현안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누구와 상의하는지 모른다고 했다.출처 최순실과 했나보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이는 비슷해서 극단적으로 사람을 잘 만나지 않으며 공무처리도 정말 알려지지 않는 측근이 아닌이상 대통령과 직접 대화하거나 건의하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전임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총리실 비선을 통해 일으킨 민간인 사찰사건과 달리 박근혜 대통령은 처음부터 수십년간 알고지낸 몇몇 지인들, 즉 비선이 아니면 접근조차 어렵고. 모든 일을 극소수의 심복들을 통해 전달 받으려는 태도가 애초부터 이런 사건을 불러왔다. 당대표였던 김무성마저 대통령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고 토로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예 그 이외의 사람들은 대통령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속칭 문고리 3인방을 만나지 않으면 안되는 구조를 자초하게 된 것이다.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나서도 아직도 소통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았다. 그러한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김병준을 총리로 지명한 개각이다. 사실 국회에서 거국중립내각에 대한 안이 나온 이후에도 한 번도 청와대는 관련 입장을 표명한 적이 없고, 국회 주요 의원들과 제대로 된 회의를 한 적이 없다. 여당 지도부 의원 몇명이랑 얘기한 것이 전부다. 그 어느 누구도 청와대의 의중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국회는 내각과 관련한 협의를 계속 진행하였으나, 갑자기 아무런 상의도 없고, 심지어 여당의원들조차 제대로 모르는 개각을 시도하였다. 이는 국회의 협상테이블을 청와대가 걷어차 버린 꼴이 되었다.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개각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더 이상 청와대와 국회가 제대로 된 협의를 할 수 없다고 봐도 될 정도이며, 정국의 혼란만 더욱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심지어 이에 대한 해명을 한답시고 세 차례의 대국민 통보담화를 할 때도, 기자들의 질문을 하나도 받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하고 들어갔다.
세계의 여러 지도자 예를 보면 버락 오바마는 기자들을 모아놓고 연설할 때는 꼭 기자회견을 한다. 같은 여성지도자인 영국의 테레사 메이도 마찬가지다. 같은 한국인 지도자인 김대중의 경우만 해도 '국민과의 대화'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국민들 중 지원자를 받아 같이 출연해서 대화를 했다. 국민과의 대화 프로그램은 김대중 정권 내내 방송되었고 김대중이 퇴임 이후에도 노무현 역시 국민과의 대화에 출연하였고, 상대당 후임 대통령인 이명박도 '대통령과의 대화'로 제목은 변경하지만 같은 포맷의 프로그램에 출연하였다. 각 방송 내용에 따라 논란이 된 바가 있긴 했어도 김대중 이래의 대통령들이 국민과 소통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건 이어진 기조였지만, 박근혜는 임기 중 한번도 이런 프로그램을 추진하지 않았다.
이렇듯 국가 지도자라면 항상 소통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지도자 1명이 모든 시민들과는 소통할 수는 없으니 지도자의 생각을 대신 전해 줄 기자가 필요한 것이고 간접적인 방식이라도 지도자의 의견을 시민들에게 보여주는 기회가 기자회견인 것이다.
역사적 예를 들자면 1980년대 냉전 말기 미국을 통치했던 로널드 레이건은 취임 초인 1981년에 자기의 국정철학을 알 수 있는 라디오 담화를 무려 7번이나 했고 그 후에도 시민들을 위한 메세지를 많이 남겼다. 그 결과, 1984년 대선에서 미국 선거 역사상 가장 큰 승리를 거두었다.[86]
이렇게 시민과 소통하는 지도자는 정책의 찬반여부와는 상관없이 큰 인기를 얻는 것이 정석이다. 만약 박근혜가 언론에서 사건을 터뜨렸을 때 재빨리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국민과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최소한 시민들이 직접 거리로 나와 탄핵을 요구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87] 애초에 비교하는 것이 사치일지도 모른다.
박근혜 정부 초반인 2013년 3월부터 2014년 7월까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낸 유진룡은 "박근혜 대통령은 토론이 뭔지도 모른다"라고 밝혔다. 또한 해경 해체 문제를 놓고 장관들의 의견도 안 들어보고 결정하냐고 반발하자, 어떻게 모든 사람들 말을 다 들어주냐고 되레 역정을 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안종범 전 수석의 검찰 진술에서 지시할 때도 전화로만 했으며, 수첩 읽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9.1 최태민 일가의 비선실세 행세
박근혜는 대통령 당선되기 전부터 최태민 일가가 비선실세 행세를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당선 후에도 여전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틀:최태민 일가와 박근혜
10 사고 공화국
박근혜정부는 사고공화국이라는 오명을 가진 문민정부가 떠오를 정도로 수많은 안전사고를 겪어 막대한 사회적 손실이 발생했다. 세월호 사건 불과 2개월 전에는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가 일어났고, 판교 공연장 환풍구 붕괴 사고 및 뒤이은 해양 사고인 돌고래호 전복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발생도 문제지만 수습 및 대책 수립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 역시 수많은 국민들이 실망할 수준이었다. 그 결과 기업에 대한 정부당국의 관리감독이 미흡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원전 정책 관련해서도 안전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으며[88], 정부의 과대 광고 및 핵피아(핵 + 관피아) 논란이 있다. 이를 주제로 뉴스타파가 2014년 원전묵시록 기획을 다룬 바 있으며 그 대표적인 사례로 논란에 중심에 있는 고리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
사실 사고가 많이 일어난것만으로는 대통령을 비판할 근거는 미약하다. 이것들을 잘 대처했다면 그 사고들이 대통령과 연관이 없다면 오히려 "우리 대통령은 능력있네" 라고 할 수가 있다. 문제는 그것들에 제대로 대처를 못한것도 아니고 그냥 안한것(...)
10.1 세월호 참사
세월호 참사는 사고 발생 이후 재난대응체계의 마비, 구조당국의 무능한 대처와 직무유기, 부패한 기업과 정부의 유착(관피아)이 빚어낸 재앙이었다.[89] 때문에 국정운영의 최고 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과 박근혜 정부가 많은 비판을 받는 이유가 되었다. 또한 유병언 사망 원인, 세월호 실소유주 논란, 세월호 7시간 행적, 급변침 원인 등등 각종 의문점들이 풀리지 않아 온갖 음모론이 양산되는 원인이 되었다.
구조요청을 받고 출동한 해양경찰이 구조는커녕 상황도 파악하지 못하고 선내진입도, 퇴선방송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언론보도로 밝혀지면서 여론이 악화되자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대국민 사과문에서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겠다"는 발언으로 도마에 올랐다.
일각에서는 "문제가 있는 기관을 쇄신해야지, 해체해서 될 일이냐?"는 지적이 나왔지만 야당의 반대로 해경을 존치하는 대신에 국민안전처 산하로 옮기기로 결정되었다. 또한, 세월호 참사 대처 과정에서 무능한 모습으로 일관한 해경 관계자들을 엄벌에 처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김경일 123정 정장, 김수현 서해해경청장 등 일부를 제외하고 김석균 해경청장과 최상환 차장, 이춘재 경비안전국장, 여인태 경비과장, 고명석 대변인, 이용욱 정보수사국장, 황영태 상황실장 등의 주요 책임자들은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고 승진하여 그저 말 뿐인 궁색한 사과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게다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나면서 세월호 참사 때 수습은 뒷전이고 정유라를 위한 승마 개혁 따위에 급급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10.1.1 베일에 감춰진 대통령의 7시간 행적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304명의 인명 피해를 낳은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이 묘연하여 큰 비판을 받았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서면보고를 받은 오전 10시로부터 7시간이 흐른 오후 5시에 중앙대책본부 현장을 방문해 회의를 주재하며 "(단원고) 학생들은 모두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던데 발견하기가 그렇게 힘듭니까?" 라고 질문하였다. 이에 관계자가 "승객들이 배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구명조끼가 별로 소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1분 5초부터 시작)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관계자의 저 대답을 듣고 박근혜 대통령은 "아, 갇혀 있어요?" 라는 식으로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문제가 여기서 발생했다. 서면보고를 받았다면서 어떻게 7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승객들이 뒤집어진 배 안에 갇혀 있다는 가장 기초적인 상황조차 몰랐던 거냐(상황파악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함)라는 질타를 피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2014년 7월 7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 시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으며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고 대답했다. 대통령의 동선은 공개해도 될 것과 공개하지 말아야 할 것(기밀)이 있지만, 공개할 수 없다도 아니고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동선을 파악하지 못한다고 발언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해명이다. 만약 이 7시간 동안 전쟁 같은 국가 초비상 사태라도 발생했으면 대체 어쩌려고 그랬냐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당연히 알고는 있지만 절대로 밝힐 수는 없어서 저런 대답을 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무성해졌고 조선일보는 칼럼에서 그 7시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정계에 갓 입문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맡았었던 정윤회 씨와 밀회를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일본의 우익 성향의 신문인 산케이 신문이 이를 인용하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은 여전히 오리무중으로 세월호 특조위의 주요 진상규명 과제 중 하나로 뽑혀 왔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에는 이 문제가 정치권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정진석 당시 원내대표가 특조위 활동 연장을 조건으로 박 대통령 7시간 행적 조사 제외를 요구한 사실을 폭로하자, "(대통령이) 뭘 숨기고 있길래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7시간이란 행적도 공개 못하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
10.1.2 합동분향소 연출 논란
박 대통령이 정부 합동분향소 방문 당시 조문에 동행하고 박 대통령이 위로했던 할머니는 청와대측이 섭외한 인물인 것으로 확인되며 논란이 일어났다. 노컷뉴스와 CBS에 따르면 정부 핵심 관계자는 30일 "미리 계획했던 건 아니지만, 청와대 측이 당일 합동분향소에서 눈에 띈 해당 노인에게 '부탁'을 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90] 청와대는 방송으로 논란이 확산되자 CBS 측에 소송을 걸었고, 법원은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한편 CBS 측은 방송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변함없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10.2 메르스 대유행
메르스 유행 시기 한국 사회는 유언비어가 나도는 등 대혼란에 휩싸였다.
보건당국의 총체적 무능으로 인한 대처 실패[91]로 중동 한정의 감염병이었던 메르스에 의해 189명이 감염되고 그중 38명이 사망하면서 치사율이 20.4%을 기록했다. 2012년 질병 최초 보고 이후 중동 이외의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에서 메르스 환자가 고작 '27명'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 때는 세계적인 사스 대유행을 겪고도 사망자 0명, 감염자 4명에 불과하였다.
첫 감염자가 보고된 5월 20일 질병관리본부가 최초 감염자 검사/격리 요청을 거부하고 운동회를 개최하고, 정부당국은 대한병협에서 병원명단을 공개하는 것을 막고 지자체와 일반국민을 상대로 정보를 차단하였으며[92] 감염자 관리에 실패하여 외국과 마찰까지 빚는 상황에서도 박 대통령이 임명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청와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독자적 대응을 하려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협박하는 식의 추태를 보여주며 여론이 크게 악화되게 만들었다. 2016년에는 박근혜 정부에서 메르스 유행 종료를 선언한 뒤에 감염자 3명을 추가로 확인하고도 은폐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10.3 한국수력원자력 원전문건 유출사태
이명박 정부 시절 환경영향, 안전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밀어붙여 비판받던 원전정책의 기조를 그대로 유지해나가고 있다. 이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는데, 2012년 대선후보 시절 문재인 후보의 원전 안전성 정책 질문에 구체적 답변 없이 철저하게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답변했기 때문이다.
결국, 2014년 12월 북한 세력으로 추정되는[93] 원전반대그룹에서 잇따라 원전 자료를 빼내 유출시키고[94] 성탄절까지 원자력발전소를 가동 중단하지 않으면 원전을 폭파시키겠다는 협박을 가해와 불안한 여론이 조성됐는데도 늦장 대응 등 한 달 가까이 속수무책인 태도를 보여와 국민들의 실망을 가져왔다. 관련기사
2015년에도 원전자료가 인터넷에 유출되었고, 해킹범으로 지목된 원전반대그룹에서 대한민국의 적대국에 관련 자료를 팔아넘기겠다는 위협을 계속하고 있는데도 한수원 등 수사당국은 범인을 잡긴 커녕 "일반적인 수준의 문서가 유출된 것에 불과하다"는 비상식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태의 핵심은 한수원의 허술한 보안체계 관리 때문에 자료가 유출되고 국민적 불안감이 형성된 것이기 때문.
심지어 북한 세력 소행이라고 발표한 이후에도 유출 경위만 대략적으로 파악한 상황이지 사실상 범인(및 범죄 집단)의 실체나 행적에 대한 수사는 답보 상태라 합수단 발표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후에도 보안 문제가 심각하며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고, 옆나라 일본의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 사태를 보고서도 상황이 이러하다는 것은 정부의 안전불감증이 도를 넘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0.4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2016년에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진상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어났다.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가 국내에 처음 반입되었던 것은 1996년이었고 이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서도 꾸준히 그 위험성이 제기되었다. 그런데 박근혜정부가 이 사건으로 큰 비판에 직면한 이유는 취임 1년차인 2013년에 가습기 살균제의 흡입 독성 화학물질에 의한 피해구제법,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법, 생활용품 안전 관리 및 피해 구제법, 화학물질 및 화학물질이 함유된 제품 등에 의한 피해 구제법이 야당에 의해 발의되었고, 집권당인 새누리당과 박근혜 행정부는 가해 기업과 소비자 간의 문제라고 선을 그으며 사실상 반대 의견을 내어 3년째 국회에서 계류 중이었다는 사실이 2015년 말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보도 등으로 폭로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 주도로 편성된 50억원 규모 긴급 구제 추경 예산안을 '근거법 부족'을 이유로 전액 삭감하였으며, "사고가 날 때마다 특별법 제정해서 보상할 것이냐"고 뻔뻔하게 대응하였다. 이때 기획재정부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한 달 차에 임명한 현오석이었다. 13년 7월에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관련법 공청회에서는 김상민 의원이 새누리당에서는 단독으로 참여하였는데, 이는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이 박 대통령을 향해 귀태(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의 후손이라고 막말한 것에 대해 항의하는 차원에서 주요 원내활동을 잠정 중단하기로 하면서부터다. 한편 전국경제인연합회은 기업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해당법에 대한 반대하는 취지의 보고서를 작성하여 박근혜 정부에 제출하였다. 친박 실세라고 불리던 최경환 의원은 가습기 청문회에 대해서 "수사해서 처벌할 사안이지 국회가 정치적으로 갑론을박할 사안인가"라며 일축하였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기업 수사와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3년 뒤에야 시작된다.
노컷뉴스 취재결과 2015년에 환경부가 유럽연합에서 생활용품에 사용이 금지된 유해물질이 국내 업체가 판매하는 세정제와 살균·탈취 및 방향제 제품 등에 포함된 것을 파악하고도 사용제한 등의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이 2015년 4월 발표한 ‘살생물제 안정성 평가기법 도입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업체에서 판매하는 세정제 31제품, 탈취제 24제품, 방향제 41제품에 대한 활성 성분 설문조사 결과 세정제에서 유럽연합에서 퇴출된 ‘시트릭에시드’[구연산]이 포함돼 있다. 탈취·방향제에는 ‘시트릭에시드(구연산)’, ‘벤질 벤조에이트’, ‘클로록실레놀’, ‘2-메틸-4-이소티아졸린-3-온’ 등 EU에서 사용 금지 물질 4개가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제/살균, 소독제, 방균제 등에 사용되는 ‘2-메틸-4-이소티아졸린-3-온’은 유독 물질로 흡입할 경우 치명적일 수 있고 피부 접촉 시 심한 화상 등을 일으킬 수 있음에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2011년 피해자가 대거 나온 이후 국무총리실과 보건복지부, 환경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도 박근혜 정부 취임 이후 2016년까지 5년 동안 계속되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임기 중에 진상이 속속들이 드러나는 와중에 정부의 후속대처가 미흡했다는 점이다. 2013년 6월 20일에는 가습기 살균제 흡입으로 아내와 사별한 유가족이 박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정부 관련자들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제조사 처벌을 탄원하였고, 청문회가 열린 7월에 질병관리본부에서 조직된 폐손상 조사위원회에서 피해 의심 사례를 대상으로 가습기 살균제와의 관련성을 조사한 것을 시작으로 정부에서 자체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으나 2016년까지 221명만을 피해자로 인정하였고, 더욱 황당한 것은 2016년 피해사례 접수는 1월 4일을 마지막으로 종료됐다. 앞으로 실제 사례가 발생해도 구제받을 길이 없어졌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등 박근혜 정부의 핵심 정책을 추진 중인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서는 피해자 구제 접수 신청에 대해 연장할 의도가 없음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환경부장관 역시 박 대통령이 임기 초반인 3월에 임명한 윤성규로 현재까지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고 재직 중이어서 사퇴하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 참고로 윤성규는 제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대선 캠프에서 선대위 환경 정책 담당 특보, 지속국가가능책임단장 등을 맡았을 정도로 박 대통령 후보 시절 환경정책을 책임진 사람이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임명 당시 환경부 내부와 시민단체에서는 윤석구를 "책임감있고, 꼼꼼하며, 합리적인 사람"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기업 관리감독의 주체인 정부 관료들에 대한 행정적 처벌 역시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더욱 논란이 되고 있다.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유가족에게 편지를 받은 적이 있던 박근혜 대통령은 "생활 화학제품 안전관리에 미흡한 부분은 없는지, 사각지대는 없는지 다시 한번 점거해서 미진한 부분은 조속히 보완하고, 재발방지에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고 원론적인 입장 표명만을 하여 비판받았다. #
10.5 2016~2017년 대한민국 AI 유행
해당 항목을 참조하면 된다. AI는 과거 노무현 정부 때도 두 번 터졌다. 그 시기는 각각 2004, 2006년이며, 이 당시는 큰 문제없이 넘어갔다. 그리고 굳이 노무현 정부와 비교치 않아도, 같은 시점인 2016년 이웃나라 일본도 AI를 겪었지만, 재빨리 움직인 덕분에 피해가 적었고 이는 박근혜 정부와 크게 대조된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한 후, 12월 9일부터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책임을 지고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만 한다. 물론 권한대행이 아니었더라도 메르스 때를 보면 지금이랑 별반 차이 없었겠지만...
11 안보무능
박근혜정부는 이명박정부와 마찬가지로 반공안보를 강조했지만, 방산비리, 인권 후퇴 문단에 상술한 병영부조리 해결과 병사들의 처우개선은 안중에도 없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대통령이 임명한 국방부 장관 한민구가 군대 내의 살인사건을 그런 작은 사건,부분적인 일이라고 말하며 군인권에 대한 인식의 수준이 어떤지 나왔다. 또, 구체적 대책을 내놓지 않고 소위 '립서비스'만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박근혜식 선군정치'로는 방산비리 못 막는다
MB 정부 시절 방위사업청이 출범한 이후 방산비리는 끊이지 않았으며 현 정부에 들어서도 국가보훈처와 대한민국 국방부는 "세금 7조원을 쏟아붓고도 내무반 현대화에 실패" 등 비리의 온상이라 비판받을 정도로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이에 대해 방산비리는 생계형 비리다라며 옹호하여 방산비리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어떤지 알 수 있다.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박근혜 정부는 집권 2년차인 2015년에 들어서야 부랴부랴 내부조사를 실시하였고, 그 결과 방산비리 규모가 1조원에 달한다[95]는 발표를 내놓았다. 그외에 방산비리 증거를 인멸한 회사 임원들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등 법의식이 아주 심각한 수준이다.[96]
안보의 핵심인 대북견제조차도 말만 그럴듯할 뿐 유명무실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2#3 무능함의 대표적으로 한미관계를 소원하게 한 친중외교가 있다. 정부는 북한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을 끌어들였으나, 북한의 광명성 발사와 사드 국내 도입에 대해 중국이 강력히 반발하며 한국정부를 비난하면서 물거품이 돼 버렸다. 또, 국방위 국정감사에서는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경우 한 달 정도 전에 징후를 알아낼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2016년 1월 7일 북한의 수소탄 실험을 사전에 포착하지 못해면서 정보력도 형편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국정원장 “우리가 졌다”···핵실험 한 달 전엔 알 수 있다더니 그밖에 DMZ 목함지뢰 매설 사건, 북한 무인기 추락사건에서도 미흡한 안보대체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밝혀지기도 했다. 2014년 6월 19일에는 북한군 3명이 경기도 파주 인근의 DMZ를 통과해 경계초소까지 와서 귀순유도 표지판과 귀순벨을 가져가기도 하였다.
이와중에 대체복무 폐지 안건이 공개되며, 국방부의 실태를 드러내는데 일조했고, 아무런 생각이 없었음은 물론, 그냥 방치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말았다. 적정 병력에 대한 고찰이 없었음은 물론이고 다른 부서와 어떠한 상의도 없었다는 점에서 국방부의 막장성은 물론이고 국방정책에 대한 방향성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군 인권개선에 대한 관심도 전혀 없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안보무능에 대한 질타가 더더욱 커지고 있다. 주요 국방관련 기밀을 최순실이 열어보면서 "안보는 1번"이라던 새누리당의 개소리가 사실은 "안 보는 (안보상황을 전혀 보지 않는) 1번"이었다는 게 밝혀진 것이다.
결정적으로 박근혜 편지 사태에서 보듯이 대한민국의 절차를 무시하고 국보법을 위반해가며 김정일한테 보냈던 편지 내용이 북한에서 쓰는 주체 연호를 사용한 것부터[97] 마치 존경하는 늬앙스의 글이 나오면서 그 동안 완전히 무너진 셈이다. 국가원수가 아니었던 시절, 야당대표라는 신분이었던 박근혜가 국보법을 위반해가며 불법 대북접촉까지 해가며 보낸 문서의 내용이 빼도박도 못할 북한정권 고무 및 찬양이었으며,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런 이적행위에 대해 간첩죄까지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98]
12 종합 평가
어느 분야에서든 뭐하나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음은 물론이며 모든 분야에서 골고루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마치 바이러스 걸린 컴퓨터처럼 여기저기서 에러가 나오고 있다.
- 근태 : 중고등학교 때 출석만 열심히 해도 받는 개근상조차도 박근혜와는 거리가 멀다. 다른 직함도 아니고 대한민국 최고의 직함인데도 근무태도가 나쁘다. 심지어 자기 마음대로 수요일을 휴일로 정하고 그나마 일하는 월화-목금요일마저 일을 대충 한다. 이건 역사적으로 과거 만력제 같은 나라를 기울게한 임금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박근혜가 탄핵소추를 당하고 나서 '시국이 엄중하니 근무기강이 해이해지지 않도록 하라'라는 공문이 공무원들과 공공기관 직원들에게 시달되었다고 하는데, 그런 공문이 시행되는 것 자체는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하필 탄핵의 계기 중 하나가 세월호 7시간 의혹으로 상징되는 대통령 자신의 근무기강이 심각하게 형편없었던 해이한 상태였다고 하니 이 공문을 받은 많은 이들이 자괴감을 느꼈다고 한다.
- 프라이드 : 강박장애와 결벽증이 있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최소한 나라망신 소리는 듣지 않도록 노력하는 면모는 필요하다. 이것은 국가 수반이 지킬 최소한의 의무다. 하지만 박근혜에게 그런 노력은 없었고, 대한민국을 망신시킨 일도 수두룩하다.
- 소통 : 대통령은 민주주의 국가의 우두머리라서, 국민이 내비친 의견도 받아들일 신분이다. 하지만 박근혜는 그런 점이 일절 없으며 심지어는 김대중 정권부터 이명박 정권까지 이어온 국민과 소통하는 프로그램마저 폐지했다. 또한 기자회견도 거의 하지 않아 독단적이고 권위적인 면모만 보여왔다. 그렇다고 그 권위주의를 빛내는 뛰어난 능력이 있느냐? 그것도 아니다. 이런 형국이니 박근혜를 '닭대가리'라고 놀리는 지경까지 갔다.
- 사이비 종교 : 국가지도자가 가장 멀리해야 하는 부분이 사이비 종교다. 하지만 박근혜는 사이비 종교인 영생교와 깊이 엮였다. 러시아 제국이 무엇 때문에 멸망했는지 생각해보자. 국가 지도자는 사이비 종교를 척결할 신분이다. 하지만 박근혜는 되려 자기가 그 사이비 종교에 사로잡혀 떠받들고 있으니 문제가 상당히 심각하며 이는 역대 대통령 그 어느 누구에게도 없는 문제점이다.
- 무능 : 박근혜는 차라리 독단적으로 일을 감행하더라도 자기 스스로 판단한 것이였더라면 탄핵소추까지 갈 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는 골방에 박혀서 하루종일 드라마나 시청하는 위인이었고 대통령 역할은 최순실이 다 해먹은 형국이었다. 제아무리 역대 대통령들 중에 비선실세가 있었다고 할 지라도 이렇게 아예 주인 노릇을 하는 비선실세는 없었다. 적어도 곽영주는 이승만을 누구보다도 잘 따랐고, 경호실장 차지철도 박정희에게 엄청 충성했다. 심지어 이상득은 이명박의 큰형인데도 동생 말을 잘 들었다. 하지만 최순실은 이와는 반대로 박근혜를 뒤에서 완벽하게 조종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기가 막혀서 말이 안나오는 지경이다.
- 인사능력 : 한마디로 개판이다. 박근혜가 추천하는 인물들마다 죄다 논란 속에 인사청문회에서 낙방했다. 게다가 능력과 인품이 아닌 자기가 원하는(더 정확히 말하자면 최순실만의 취향에 의한) 사람들을 국가 주요직위에 앉히려 했다.
이렇듯 모든 분야에서 골고루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이며, 다른건 둘째치더라도 사이비 종교 문제까지 터졌다. 대통령 자질도 따질 때이지만,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국민에게 먼저 책임을 물어봐야 할 수준이다.박근혜 안 뽑은 사람들은 무슨 죄...
최종적으로 대통령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은 커녕 일반 소시민보다도 못한 상식과 추태들의 끝에 참다못한 국민들의 손에 최초로 대통령직에서 쫓겨남으로서 온갖 크고 많은 논란이 있을지언정 나름 공도 있어 현재까지도 칭송하는 사람들이 많은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 [99][100]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박근혜/평가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 좀 더 깊게 들어가자면, 이는 인간으로써 정신적 결함이나 신체적 결함, 또는 정치적 감각의 결여 되어있다 수준이 아니다. 대통령직을 스스로 계속 유지시킬 자질이 있나 이전에 일반 서민이였다면 아르바이트라도 1개월이나 할 수 있었을지 의아하게 만드는, 사회화 자체가 완료되지 못한듯한 사회적 교육 수준과 문화적 교양과 품위가 전혀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 ↑ 김종필의 부인 박영옥은 박정희의 큰형인 박상희의 딸이다. 즉, 박정희의 조카사위.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육영수와 오랫동안 알던 사이였다. 심지어 한국전쟁 직전부터 육본 정보국에서 박정희와 같이 복무했다. #
- ↑ 탄핵 직전인 12월 8일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한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의 발언을 부정하며 한 말이다.
인생 최대 위기인격모독을 하는 발언이기에 청와대도 발끈했다. 하지만 이런 발언을 '비판'하는 이는 있어도 놀랍게도 부정하는 이는 없었다. 실제로 박근혜는 이때 이재용과 독대한 자리에서 창조 관련 이야기가 아니라 대부분의 면담시간을 "정유라에게 삼성이 왜 빨리 지원을 하지 않냐"며 화를 내고 독촉했다고 한다. JTBC - ↑ 일부 친박 시위대는 박근혜가 파면당해 자택으로 돌아왔을 때조차, 박근혜를 군주제 국가에서 사용하는 용어인 "마마"라고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동아일보
- ↑ 본래는 전과목을 시험 보는데, 박근혜가 중학교 입시를 치를 때는 "어린이들의 수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국어와 수학 2과목만 보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듬해부터는 다시 원래대로 전과목을 시험 보는 것으로 바뀌었다.
- ↑ 성심수녀회는 한국에 성심국민학교(여학교), 성심여자중학교, 성심여자고등학교, 성심여자대학교를 세웠는데, 설립 초기 성심학교는 소수정예 교육으로 유명했다. 실제로도 있는 집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 ↑ 단, 서강대학교는 박근혜가 입학할 무렵에는 개교한 지 10년밖에 안 되는 대학교였고, 종합대학으로서의 인증도 1970년에야 받았다. 다만 서강대를 조금 쉴드하자면, 당시에는 명문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국 대학 중에서는 그나마 제대로 된 교육과정을 가지고 엄격한 학사관리를 했기 때문에, 80-90년대에 명문대로 떠오를 수 있었다.
- ↑ 박근혜의 답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굉장히 준비를 잘 해서, 법적인 조치를 잘 하든지, 이런 거에 대해서 커다란 부담을 갖지 않도록, 정부가 유도를 하고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떡하면 이산화가스, 산소 가스… (이하 생략)" 온실가스에 대한 규제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하기 때문에 교토 의정서가 발효된 것이다. 당연히 박근혜가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마나한 이야기. 더구나 산소를 산소가스라고 지칭하는 것은 둘째치고, 산소가 온실가스에 들어간다고 잘못 안다! 초등학교 고학년생도 이것보다 격조가 높게 답변한다.
- ↑ 박근혜가 드라마광이라는 사실은 여러 일화에서 교차검증 되었다. 가령 2012년 힐링캠프에 출연했을 때, 다른 것은 어버버 하다가도 TV시청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달변으로 변할 만큼, 모든 드라마&예능 프로를 꿰고 있었다. 참모로 일했다가 결별한 이혜훈과 전여옥의 증언도 그렇고,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드라마 관련 행사에 특별히 관심을 보이고 참가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세월호 사건이 터진 그 시점에서도 드라마에 빠져 있었다는 의혹이 있을 정도이다.
- ↑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최순실이 적어준 듯한) 수첩에 있는 말만 한다고 해서, "수첩공주"라는 말을 들었으며, 한때 측근이었던 전여옥과 이혜훈의 증언에 의하면, 회의 때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있다가 잠시 나가 어디에(최순실에게) 전화를 해보고 돌아와서 결론을 내리곤 했다고 한다.
- ↑ 박근혜의 이복언니인 박재옥도 정상적인 결혼에서 태어난 적녀 맞다. 게다가 박재옥의 어머니 김호남은 박정희의 첫 아내이고, 육영수는 2번째 아내이다.
사실혼 관계의 동거녀 이현란까지 합하면 3번째하지만 박재옥의 존재는 박정희 재임 내내 비밀이었으며, 박정희의 복잡한 여자관계는 물론이고, 박정희가 이혼남이며 육영수와 재혼했다는 사실도 대중에 알려지지 않았다. - ↑ 지금도 박근혜 지지자들 중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종북주의자들의 조작이며, 광화문 집회는 돈 받고 모인 거"라고 폄하하는 이들이 남아 있다.
- ↑ 물론 박정희는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다.
- ↑ 도망친 것 자체는 필요한 행동이었지만,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국민들을 속인 뒤 자기 혼자 줄행랑친 게 문제였다.
- ↑ 이 외에도 정부 수립 이전의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한 정읍발언과 미국에 국군 작전권을 일임하여 남북한 문제를 미국의 문제로도 확대시켜 미국을 쥐어잡는 술수로 대한민국과 미국의 공조를 좋든 싫든 강화하였다는 업적이 존재한다.
- ↑ 김영삼은 박근혜 이전까지만 해도 역대 최악의 대통령 1,2위를 다툴 정도로 평가가 낮았으나 박근혜정부 이후로는 김영삼의 비판자들조차 박근혜보다 차라리 김영삼이 훨씬 더 나았다는 데 100% 동의할 정도로 재평가되었다.
- ↑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부분인데 김대중은 정계에 들어오기 전에는, 기업을 굴렸다.
- ↑ 가택 연금, 투옥 수준이 아니었다. 납치, 내란음모 조작 사건까지 겪은 사람이다. 신군부가 사형을 선고했을 때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리하르트 폰 바이츠체커 서독 대통령을 비롯한 정상급 인사가 앞장서서 구명한 덕분에, 김대중은 겨우 살아남는다.
- ↑ 이명박이 쓴 자서전인 <신화는 없다>를 보면, 아침부터 밤까지 장사를 하다가 늦은 밤에 참고서들을 놓고 공부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 ↑ 즉 가진거라곤 지식밖에 없는 일개 대학생이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와 맞서싸웠다는것이다. 여기서 부터 공주처럼 자란 박근혜와 궤를 달리한다.
- ↑ 태안 기름 유출사고 때 어떻게 행동했는지 보면 된다.
- ↑ 김영삼은 자존심이 매우 강하기로 유명했으며 심지어 현직 대통령인 노태우에 대해서도 "노태우 당신!, 그러지 마!" 등 원색적인 표현을 쓸 정도로 거침이 없었다. 그런 인물조차도 국민에게 머리를 숙여야 할 때는 숙일 줄 알았다.
- ↑ 히틀러를 참고하면 이해하기 쉽다.
- ↑ 그러나 이 부분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할 수 있는데,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에 한정해서는 똥을 된장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맹목적으로 추종했기 때문이다.
- ↑ 국정 최고책임자는 싱크탱크의 충고와 의견을 받아들여 참모들과 함께 토론과,토의를 하여 구체적인 정책을 입안하거나 정책을 수립하거나, 미처 자신의 역량이 부족할 때는 부족함을 인정하고(부족함을 인정하는것도 지도자의 덕목이니) 의견과 조언을 적극적으로 구하여 자신의 역량을 키우거나, 참모들과 싱크탱크를 적극지원 및 협력하여 국정을 잘 이끌어나가는게 지도자의 의무다.
- ↑ 좋은 예시가 전두환이다. 실제로 전두환은 대통령 집권 초기 경제학 박사 김재익을 불러 경제학 과외까지 받았다. 이렇게 노력했는데도 경제를 도무지 모르니까, 그 교수에게 국가 경제를 맡겼다. 이때 김재익이 맡은 자리는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며, 유명한 별명인 "경제 대통령"까지 챙겼다. 그것 덕분에 1980년대 대한민국 경제는 대호황이었고, 아웅산 묘소 테러에서 김재익이 숨지자, '아까운 국가인재를 잃어버렸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였다. 전두환은 철권통치로 악명이 높지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유능한 인재를 볼 줄 알았고, 그렇게 찾은 인재에게 국가 경제를 바로 맡겼다. 누가 뭐래도 이것만큼은 인정할 부분이다.
- ↑ 세월호 참사 할머니 조문객 동원 논란
- ↑ 대책실의 살려야한다 문구
- ↑ 국회 탄핵이 의결된 이후에 사실상의 실업자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재에서 선고가 될 때까지 계속 봉급이 나왔다. 그리하여 세달동안 무위도식하며 연봉은 5천만원에 가깝다고 한다. 참고로 직장인들의 일반적인 연봉은 아무리 많아도 4천만원을 넘지 않는 경우가 절대다수다.
- ↑ 그나마도 칼퇴근은 집권 초기일 때였고, 갈수록 퇴근시간이 빨라져 후반기에는 오후 3~4시에 퇴근했다고 한다.
- ↑ 사실 이명박은 대한민국 대통령들 중에서도 유명한 워커홀릭이다. 청와대 직원들이 이명박의 근무 패턴을 따라가다 피로를 호소했다는 기사까지 떴다. 알다시피 저것은 대통령이 본분에 충실하다는 신호다. 다른 하나는 노무현이다. 이명박 정도는 아니지만, 노무현의 근무 패턴을 따라가다 힘들어하는 참모가 있었다. 게다가 문재인은 그때 비서실장이었는데, 격무에 시달리다가 치아가 약해져 임플란트를 여럿 박았다. 강원국 당시 연설비서관도 대통령이 연설할 일이 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새벽까지 머리를 맞대며 연설문 작성에 몰두했다.
- ↑ 박근혜의 관저 근무 파동이 터졌을 때 노무현도 관저근무를 하지 않았냐며 어그로를 끌었는데, 노무현은 근무시간 중에는 주로 비서동에 있는 간이 집무실을 이용했고, 관저근무는 저녁에 야근한 것이라는 게 밝혀졌다. 야간에 문서 결재한 시간을 보면 다 나온다.
- ↑ 이날은 자기가 쉬겠다고 정한 수요일이었다.
- ↑ 오전 6~7시 정도면 대통령 일과가 시작된다. 오전 10시라면 보통 대통령 일과가 몇 개는 끝났을 시점인데, 이 때까지도 관저에서 출근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으니...
- ↑ 예컨데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상사태가 난 직후, 대면보고하면 금방일 것을, 서면보고한다면 보고서 작성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 ↑ 유영하 변호사가 이 개드립을 쳐서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 ↑ 심리학 박사 황상민 전 연세대 교수의 주장에 의하면 박근혜는 강박증이 아닌 "17~18세 전후에 고착화된 성인 자폐증 증세를 갖고 있다고 한다.
- ↑ 여인숙이 아니라 5성급 호텔이다. 숙박객이 퇴실하고 나면 거의 소독 수준으로 청소한다.
- ↑ 이런 비판이 있자, 대통령 선거직전인 2012년에는 마지못해 시장에서 하나 먹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
- ↑ 단순 결벽증일 뿐이라면 청소를 다시 요구하거나, 커버를 갈아끼워달라는 식으로 주문하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 ↑ 결벽증 때문이라면 호스까지도 갈아끼워야 할 것이다. 보통은 이렇게까지 요구하기 어렵겠지만, 이 사람은 침대 매트리스까지 바꿔달라고 요구한 사람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보통 침대 커버를 갈아달라는 선에서 그칠 일인데 매트리스까지 간 것을 보면, 샤워기만 바꾸고 호스 교체를 요구하지 않은 것은 이상하다.
- ↑ 실제로 변비의 원인 중 하나다. 남성이라면 훈련소에서 큰 일을 해결하지 못해 불편해하는 동기의 사례를 한 번쯤 본 적 있을 것이다...
- ↑ 소위 커터칼 테러라고 부르는 그것 때문에 생긴 것
- ↑ 보통 사람은 이와 정반대로 느낄 것이다.
- ↑ 여러 가지로 문제가 되었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계속 데리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명된다.
- ↑ 강박장애를 앓으면 강박사고 때문에 특정 조건이 만족되지 않으면 항상 불안하다. 박근혜 입장에서는 이 불안이 바로 애국심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란 해석이다.
- ↑ 실제로 무당, 종교인 중에 일부는 자신들은 정신과 상담을 대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문제는 이 중 또 일부가 범죄와 연루 된 경우, 고의로 대상을 다른 사람들과 격리 시켜 자신의 뜻을 펴기 쉬운 환경으로 만드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다. 때문에 현실에서도 이런 인물들은 전문상담사 등을 만나지 못하도록 손 쓰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해 '나만 믿어'라는 식. 실제로 최태민은 박근혜가 박지만과 함께 있으면 부정 탄다는 식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 다음 단락에서 나오지만 조현병에 의한 피해망상 증상을 덧붙여 해석할 수도 있다. 단 이 경우에도 자신이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증상은 깔고 간다.
- ↑ 실제로 강박장애를 진단받은 바 있는 투고자가 설명하자면, 자신의 강박장애를 유발하는 마음 속 한 장면이나 한 단어가 머리 속에 스쳐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눈 앞이 하얘지고 뇌가 강제로 셧다운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투고자의 경우는 하필이면 그 증상이 친구들을 대면할 때 발동되었기 때문에, 강박장애 증상이 있었을 때는 인간관계 자체가 박살났다.
- ↑ '정신건강 전문의가 아니기 때문에 전문지식이 부족해 확언 할 수 없지만 일반 정상인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는 식의 대통령 주치의 증언이 청문회장에서 나왔다. 조심스러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김현철 소장의 생각은 보통 펄쩍 뛰거나 말도 안된다며 일축하는 것이 정상적 반응일텐데, 지나치게 말을 빙빙 돌리더라는 것이다.
- ↑ 옛 이름은 정신분열증이다. 그러나 이 병의 실제 증세는 우리가 상상하는 정신분열의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이름을 바꾸게 된 것. 자세한 것은 항목참조
- ↑ 부모가 모두 총격으로 사망했고 자신도 한 번 죽을 고비를 넘겼기 때문에 박근혜에게도 피해망상 증상이 있을 확률이 높다.
- ↑ 예컨데 최순실의 말을 믿는 이유가 이런 이상한 믿음 같은 것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다.
- ↑ 쉽게 예를 들면 미성숙한 4살 여자애가 공주놀이를 하면 자신이 정말로 공주라고 믿으며 논다. 이 때 주변에서 부모, 친구, 교사 등이 그 아이를 정말 공주처럼 대해주면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자신이 정말 공주라고 착각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공주라는 믿음이 굳건한 상황에서 갑자기 공주로 대접하던 주변인물들이 다시 평범한 4살 아이처럼 대하면 보통 사람들이라면 다시 평범한 아이로 돌아오게 되는데, 박근혜는 부모가 죽어 청와대에서 쫒겨나는 계기를 갖고도 자신이 평범한 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박근혜의 머리 속에 있는 박근혜라는 사람은 주변의 다른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무관하게 '항상 받들어 모셔져야 하는 특별한 존재'였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이 아꼈던 사람들이 줄줄이 '배신'하더라는 박근혜의 화법을 보면 매우 개연성 높은 추정이다. 따라서 자신을 공주로 대접해주는 사람만이 정상적인 사람이고, 그 외에 자신을 공주로 대접해주지 않는 사람들은 적대적으로 대하게 된 것이라는 개연성을 추측해 분석한 것.
- ↑ 이미 박근혜는 최순실의 부탁을 받고 정몽구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에게 이 회사 제품을 강매했다.
- ↑ 이를 상징하며 박근혜 대통령이 자주 사용하는 어휘가 "좌시(하지 않겠다), 엄단(하겠다)" 등이다. 전임 이명박 대통령 때도 이런 어휘가 나왔는데, 박근혜는 더더욱 많이 들먹인다. 게다가 국회의원일 때도, 본인이 몸담는 정당의 대통령이나 총재에게 사사건건 대들었다. 그때 이명박이나 이회창은 박근혜보다 경륜이 오래되었고 나이도 많다. 권위주의 자체도 문제지만 전여옥이 말한 대로, 박근혜는 오직 본인에게만 관대하다.
- ↑ #탄핵 직후 청와대 퇴거가 늦어진 이유도 탄핵이란 조치의 의미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 ↑ 노유진의 정치카페 71화
- ↑ 참고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 시절에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가 탄핵까지 당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도 노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웃으면서찬성한 적이 있다. - ↑ #
- ↑ #
- ↑ #
- ↑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공무원 교육교재에 삽입하였다.
- ↑ 정유라가 정당한 심사로 인해 국내 승마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하자, 최순실이 '승마협회에 심판 비리가 심각하다'며 승마협회 인물 7~8명을 비리인사로 몰아 쫒아내려 했던 사건이다. 누가 '나쁜 사람'인지 설명할 필요도 없다.
- ↑ "제게 주어졌던 대통령으로서의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를 믿고 성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 ↑ 최태민과의 부적절한 관계는 해당 문서 참조.
- ↑ 최태민은 사이비 종교 영세교의 교주이며 최순실은 그 후계자로 지목 받는 여자다. 또한 이 영세교는 또 다른 악질 사이비 종교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과 연관되어 있다는 강한 의심을 사고 있는 종교 집단이기도 하다.
- ↑ SNL 코리아 글로벌 텔레토비 2013.03.30 방영분
- ↑ 성균관대학교 - 고시출신 - 경기고등학교
- ↑ 위장전입·병역면제·투기·탈세
- ↑ 김병관이 낙마하고 국방부장관에 임명된 자가 그 김병관을 훨씬 뛰어넘는 똥별계의 전설인 한민구라는 것 역시 문제다.
- ↑ 10일 새벽 3시(한국시간). 미국 서부시간으로는 5월 9일 오전 11시
- ↑ 표면적으로 도덕성 문제로 경질되었지만 사실상 박근혜정권에 반하는 수사지휘로 인해 밉보여서 찍혀나간 것이다. 채동욱 항목을 참조하면 좀 더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지만 저 혼외자 의혹 자체가 박근혜정권의 의도적인 채동욱 죽이기 시나리오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본인이 채동욱의 내연녀이며 혼외자를 낳았다고 주장하던 여인은 채동욱이 유전자 검사를 요구하자 검사를 거부하고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도망쳤다(...)
- ↑ 개인의 비행으로 경질된 경우가 아니다
- ↑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으로 자진 사퇴
- ↑ 부당한 전관예우 의혹으로 자진 사퇴
- ↑ "일제강점기는 당시 조선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천벌이다!!"라고 교회에서 강연하는 동영상이 유포돼, 친일 논란으로 자진 사퇴
- ↑ 헌정사상 2번째 국무총리의 해임건의 따른 해임
- ↑ 지명철회
- ↑ 믿음이 없으면 일어설 수 없다는 뜻으로, 공적 사적 관계에서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자성어
- ↑ 기름이 유출되어 1차적으로 기업이 손해를 입고, 사고로 인해 2차적으로 어민까지 피해를 입었다는 취지로 풀이되나 당시 표현이 적절하지 못하였다.
진심일지도 모른다 - ↑ 황교안 현 국무총리가 대표적인 예. 원래 법무부 장관이었지만 이완구 사퇴 이후 국무총리로 임명됐다. 황교안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당시 축소, 은폐 수사 및 5.16 혁명 발언 등으로 공정성에 문제가 제기됐다.
- ↑ 최경환 기획경제부 장관, 황우여 교육부 장관,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이 그 예
- ↑ 사의표명은 4월20일 자정. 사의표명 일주일만인 27일 사표수리(재직 70일)
- ↑ 이유가 밝혀졌는데 그 이유가 어이없다. 박근혜는 최순실 등 일당들과 함께 대포폰을 쓰기 때문이다.
- ↑ 당시 상대 후보였던 민주당의 먼데일은 전체 선거인단 537석 중에서 고작 13석을 얻는다. 레이건이 일방적으로 승리한 선거이다. 그나마도 레이건을 찍지 않은 사람들은 포클랜드 전쟁에서 레이건이 영국 편을 들었기 때문에 그에 불만을 갖게 된 히스패닉들 뿐이다.
- ↑ 물론 아무 공직도 맡지 않은 자에게 국정을 사실상 맡겼다는 것 자체가 국기 문란 행위인 것은 맞다. 하지만 최소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진정성 있게 사과했다면 콘크리트 지지층 및 새누리당은 그래도 진정성 있는 모습은 좋지 않냐라고 옹호할 수도 있다.
물론 야당은 결사반대하겠지만이런 상황에서는 지지율이 한자리수가 나올 수도 없고 시민들이 하야라는 극단적 상황을 요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 ↑ #
- ↑ 진도VTS관제센터의 공무원들이 근무시간에 낮잠을 자는 등의 태도를 보였으며, 해양수산부 관계자들이 청해진해운의 뇌물을 받고 세월호의 불법 운영을 방조하였다.
- ↑ 전형적인 본질 흐리기식 발언으로 문제는 할머니가 유족이 아니었고 장면 자체가 연출이었다는 사실이지, 언제 계획해서 섭외했냐가 아니다.
- ↑ 국민의 안전불감증과 더불어 병원문화, 의료체계, 응급실관리, 인원관리 등 다각도에서 문제점이 불거졌다.
- ↑ 에볼라 유행 당시 미국과 중국의 대처와 크게 비교된다.
- ↑ 사건 발생 뒤 3개월이 지난 뒤에야 합수단에서 사회 혼란을 목적으로 한 북한의 소행이라고 발표했다. #
- ↑ #
- ↑ 다만 이는 1천억원 짜리 사업에서 10억 원짜리 비리가 발생했다면 1천억 짜리 방산비리로 발표하여 부풀려진 금액이다.
- ↑ 물론 이건 군사법원의 책임이 더 크다.
- ↑ 어떤 연호를 사용하는가 하는 문제는 국가의 주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로, 워낙 중요한 내용이라 국사 시간 때마다 강조되고, 각종 시험에서도 단골 출제되는 내용이다. 한 마디로 박근혜는 북한에게 사대한 것이다.
- ↑ 아버지 박정희도 반공을 지배체제로서 내세웠지만, 자신의 독재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라면 반공도 무시해 버렸다. 당장 10월 유신을 공표하기 전에 북한에게 사전 통보했던 전적이 있다.
- ↑ 참고로 호부견자 항목에서는 토론이 열려서 예시에 넣지 않기로 합의가 됐다. 박근혜가 견자인것은 너무나도 명백하지만, 박정희가 호부인지 견부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기 때문이다.
- ↑ 그럼에도 여기에 호부견자 링크를 건 이유는 박근혜가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현재까지도 아버지를 칭송하는 사람들의 표만으로 대통령직에 오른 점이다. 아버지에 대해 많고 많은 논란이 있어서 같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서 아직도 이를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견부' 라 부르기도 하지만, 대통령직의 선출과정을 생각하면 아직도 그 시절을 그리는 이들 또한 보통 많은게 아님을 알 수 있어서 '호부'라 부르기도 하여 논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가 다 해주실 거야" 라며 믿고 뽑아준 그들의 기대를 배신하고 왠 무당집안에게 나랏일을 멋대로 넘기고 자기는 놀고 앉아서 여왕행세나 하다 나락으로 추락했으니 먹칠당한 고인의 명예를 생각해주지 않을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서 일시적으로 예시한 것이다. 이 사태로 인해 그 시절 향수를 그리는 사람들 중 아직도 일부 사실직시를 못하고 미쳐 날뛰는, 전체 국민의 5% 안팤
의 컬티스트들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이 등을 돌렸으며, '박정희 신화는 끝, 몰락' 이런 기사들까지 올라왔을 정도이다.그동안 행태를 보면 아버님 얼굴에 먹칠하고 먹칠해서 또 먹칠하고 이번 사태로 마무리로 페인트로 냅다 때려부은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