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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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생각하는 보부상의 모습. 이미지 출처

褓負商

1 개요

보부상으로 많이 알려졌는데 부보상이라고도 한다. [1]
정확히는 등짐장수인 부상(負商)과 봇짐장수인 보상(褓商)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었다.
그 외에도 '장돌뱅이', '장돌림', '장꾼' 등 여러 가지로 불렸다.

조선시대 등 전통사회에서 장시를 중심으로 지게등으로 물건들을 가지고 다니며 활동했던 전문적인 상인들이나, 이런 상인들이 속한 단체를 말한다.[2]

2 역사

2.1 개항 이전

조선 건국 당시 이성계를 도와 막대한 자금을 보태거나 정보책으로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조선 정부는 이 대가로 보부상들에게 독점 판매 등의 여러 이권을 주었는데, 그래서 당시에 그들을 현대인들이 생각하듯 그냥 떠돌이 장사꾼으로 대했다가는 큰 코 다치기 일쑤였다고 한다. 조정도 반역 같은 중죄가 아닌 한 눈감아주는 일도 많았으며, 그런 특권에 기대 보부상들은 때론 독점 판매에 거슬리는 비보부상 장사꾼을 상대로 테러를 가하거나 죽인다든지 불을 지르는 일도 자행했다.[3] 국가의 비호 아래 활동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어용활동을 많이 하였는데, 동학농민운동때도 이들과 전투가 있었으며 독립협회에 반대하는 어용단체인 황국협회를 만들기도 했다.

온갖 병란이나 왜란같은 전쟁에서도 보부상이 용역으로 조선군 병량 및 군자금을 돕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를 전후로 하여, 친일파가 되기도 했지만, 반대로 갈라져서 의병에 자금을 보태주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임에도 보부상에 대하여 다룬 드라마가 거의 없고, 혹 등장하여도 비중이 적었다. 역사 교과서에서 주로 왕이나 문무대신, 학자들을 다루다 보니 시청자들에게 보부상보다는 이들을 더욱 친숙하게 느낀 것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마차나 수레를 이용한 일반적인 행상인이 되지 않고 도보로 걸어다녔던 까닭은 한반도의 지형이 산지가 많고 도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마차나 수레가 갈 수 있는 지역이 한정되어 있었으며, 생산지와 소비지가 대규모로 발전하지 않았기 (어촌에서 농촌으로 팔러 가는 식으로)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는 5일장으로 대표되는 조선 후기 장시의 발달을 이끌어내었다. 그러나 조선의 주요 상단들의 경우 국내 무역보다는 중국, 일본과의 무역에서 얻는 이익에 집중하였다. 또한 국제무역에서 획득한 이윤은 재투자로 이어지기보다 정치자금으로 흘러들어가기 일쑤였고, 그 결과 한양을 제외하고는 도시의 발달이 일어나기 어렵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정조 때 시전상인과 사상·난전의 갈등으로 대표되는 신해통공이 유독 강조되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2.2 개항 이후

보부상단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하는 시기는 개항 이후이다. 1866년 병인양요 이후 정부가 의병 모집에 관심을 기울이다가 보부상단 조직에 관심을 가져 보부청을 설치하여 이들을 관리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1883년 혜상공국의 설치로 이어졌는데, 갑신정변 때 혁신정강 14개조의 개혁안에 등장할 만큼 폐단이 컸던 듯 하다. 1885년 혜상공국이 폐지되고 상리국이 설치되며 부상은 좌단, 보상은 우단이라 불렸다. 이들은 정부의 후원을 받으며 동학농민운동 때 정부군과 함께 농민군 토벌에 앞장서기도 했다.

2.3 대한제국 시기 이후

정부는 독립협회 해산의 보상으로 황국협회의 청원을 받아들여 상무회의소를 보부상 중심의 상무사로 변경하였다. 상무사는 관료가 고위직을 겸임하는 형태의 국가어용상단의 성격이라 할 수 있다. 이 상무사 중 제주에 있었던 대정상무사는 제주교안 시기 세금징수관과 결탁한 천주교 세력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일제 강점 이후 일제는 보부상 말살을 시도하여 전국의 보부상 단체는 거의 소멸되었다. 구한말 정치적 목적에 동원되다 보니 보부상단의 내적 발전보다는 외연적 확장에만 치우쳤고, 일제 자본에 밀려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3 조직

보부상은 대개 가족 없이 홀로 다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상단을 조직하여 상부상조하며 상권을 확보하고자 했다. 보부상들에게 상단은 강한 단결력과 엄격한 규율을 바탕으로 한 절대적인 것이었다. 때로 상단 내에서 연락할 일이 있을 경우 사발통문(동학농민운동의 그것과 같다)이라는 독특한 연락방식을 활용하였다.

4 분류

4.1 소규모

'보상'과 '부상'으로 나뉜다.
보상과 부상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 없었으며 그들의 힘이 커지고 상권이 뚜렷이 구분되면서 별도의 조직을 갖추었다.

4.1.1 보상 (褓商 : 봇짐장수)

상품을 보자기에 싸서 들거나 질빵에 걸머지고 다니며 장사했다.
주로 포, 면, 비단, 종이, 모시, 금, 은, 동, 인삼, 녹용, 수달피, 담비가죽, 갓 망건, 필묵 등 가볍고 작지만 값비싼 상품을 취급했다.
개항 이후엔 우산, 궐련초, 성냥, 옥양목, 광목, 사탕류 등 외국 상품도 판매했다.

4.1.2 부상 (負商 : 등짐장수)

상품을 지게에 얹어 등에 짊어지고 다니며 장사했다.
생선, 소금, 나무그릇, 질그릇, 가마솥이나 무쇠로 만든 용기 등 무겁고 크지만 비교적 값싼 5가지 상품에 대한 전매특허권을 가지고 있었다.

4.2 전국단위

전국단위로 활동한 대표적인 상인들은 지역에 따라 아래와 같이 나뉜다.

  • 경강상인 : 이쪽은 보통 서울(京)과 한강(江)을 거점으로 활동한 상인들이다. 서울로 들어오는 쌀을 전국 각지에서 조달하였다.
  • 송상 : 이쪽은 개성(송악)을 거점으로 해서 상업 활동을 한 상인들을 말한다. 주로 인삼을 재배·판매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 유상 : 평양(유경)을 거점으로 하던 상인들이다.
  • 내상 : 부산(동래)을 거점으로 하던 상인들이다. 일본과의 무역을 통해 부를 쌓았다.
  • 만상 : 이쪽은 일반 보부상들과는 달리, 의주(만부)에서 중국과의 비공식 무역을 주로 하던 보부상들이다. 즉, 국제상인들.[4]

5 창작물에서의 보부상

게임에서는 보통 갑자기 불쑥 나타나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희귀한 아이템이나 효과가 좋은 아이템을 판매하는 NPC나 던전이나 사냥 도중 등장해 포션 등의 보급품을 판매하는 NPC로 나온다.

소설이나 드라마 등에서는 갑자기 나타나 말을 걸며 귀찮게 하거나 떠돌면서 방랑하는 모습이 중점적으로 그려진다.

6 관련 문서

7 기타

  • 계속해서 돌아다녀야 하는 직업적 특성상 역마살과 연관짓는 경우가 있다. 이를 메밀꽃 필 무렵 등의, 보부상이 주인공급인 많은 작품에서 이러한 연관성이 나타난다.
  1.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부보상과 보부상이 동의어로 올라 있으나, 한국전통상학회를 비롯한 학계에서는 부보상이 옳은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1, #2 참고로 위키백과에서도 부보상이란 제목을 사용한다.
  2. 중세유럽의 길드나, 현대의 조합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3. 이를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작중 주인공 견자는 보부상을 건드리느니 새끼 데리고 있는 암곰을 건드리는 게 낫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무슨 일에 대해 정보를 찾다가 우연히 보부상이랑 충돌했는데 여기서는 보부상들이 아예 칼뽑고 덤벼들기까지 한다! 이게 만화적 과장이 아니라 실제 보부상은 저처럼 조정 비호를 받다보니 무장도 하고 다녔으며 말이 상인이지 상당히 강한 칼잡이를 보부상으로 데려가서 경호를 서는 경우도 많았다. 야사에서 보부상을 산적이 털어버리자 관군이 출동할 것도 없이 보부상 스스로가 와서 산적들을 끔살시켰다고 할 정도로 힘이 있었다는 게 나올 정도.
  4. 현대로 치면 국제보따리장수들을 생각하면 되겠다.
  5. 정착하는 삶과 방물장수로서의 떠도는 삶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형상화 되어 있다. 실제로 이 시를 지은 신경림은 2012년 6월 29일자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대 때 삶에 대해 고뇌하면서 공사장이나 광산 등을 전전하다 방물장수들을 따라다니며 방랑했다고 밝혔다.
  6. 실존인물이지만, 최인호의 이 소설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7. 작품 말미에 성기가 엿판을 맞추고 그와 동시에 팔 책과 잡동사니도 챙긴 후에 화개장터를 떠나게 되므로 엿장수 뿐만 아니라 보부상의 삶을 살게 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