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장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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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역대 국왕
27대 영류왕 고건무28대 보장왕 고보장29대(?) 안승왕 고안승
왕호보장왕(寶臧王) / 고장왕(高藏王)[1]
고(高)
보장(寶臧) / 보장(寶藏) / 장(臧) / 장(藏)
생몰년도음력597? ~ 682년
재위기간음력642년 10월 ~ 668년 9월 (25년 11개월)

1 소개

King Guarantee
고구려의 제28대 이자 마지막 임금. 망국의 군주이지만 재위기간은 27년으로 의외로 긴 편이다.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도 재위기간이 20년으로 결코 짧지는 않지만

영류왕의 아우인 고태양(高太陽)의 아들. 즉 영류왕의 조카. 연개소문쿠데타로 추대되었기에 큰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이는 연남생, 연남건, 연남산 형제의 시대에도 마찬가지라서 사실상 실권 없이 보냈다.

당태종이 다시는 요하를 넘지 말라고 할 만큼 당의 침공을 수차례 막아냈으나, 당고종의 내분을 노린 재침에서 결국 고구려의 멸망을 맞게 되자, 결사 항전을 주장하는 남건을 물리치고 남산과 함께 항복 사신을 보내는 데 찬성한다.

다만 연개소문 일가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다. 일방적으로 연개소문에 휘둘리는 군주였다는 해석도 있는가 하면, 오히려 연개소문이 전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겉으로는 협력하나 이면에서는 대립하면서 나름대로 자신의 권력은 지키면서 제 역할을 했다는 해석도 있다. 항복 이후에 고구려 부흥운동을 일으키려 한 업적이 있기에 현재로서는 전자보다는 후자 쪽에 해석에 무게가 실리기도 하고, 또 대중매체에서도 그렇게 그려지는 편이다.

2 항복 이후

고구려 멸망 후 나라로 압송되었고, 이후 전쟁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하여 사평대상백원외동정(司平大常伯員外同正)에 책봉되었다. 과거 고구려의 중심지방이였던 요동지방에서 고구려 부흥운동이 거세자 그를 요동주도독 조선왕(遼東州都督 朝鮮王)에 봉하고 안동도호부로 부임하게 하여 부흥운동을 무마시켜보려 했으나 오히려 보장왕은 말갈과 손을 잡고 고구려 부흥을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는 실패하였고, 681년(신문왕 1년) 땅(지금의 쓰촨성)에 유배당했으며, 죽은 후 위위경에 봉해졌다.

그 후 당은 기만정책으로 보장왕의 손자가 요동에 봉해진다. 이후 계속 세습되어 독립적인 정권인 소고구려가 되었다는 학설도 있다.

3 삼국사기 기록[2]

3.1 삼국사기 21권

一年冬十一月 왕이 즉위하다
一年 신라의 김춘추가 와서 군사지원을 요청하다
二年春一月 왕이 그 부친을 왕으로 봉하다
二年春一月 당에 조공하다
二年春三月 당에 도교를 구하니 노자의 도덕경을 보내주다
二年夏閏六月 당 태종이 왕을 책봉하다
二年秋九月 신라가 당에 구원병을 청하다
二年秋九月十五日 밤이 밝은데 보름달이 보이지 않다
三年春一月 당이 상리현장을 보내 신라를 공격하지 말 것을 요구하다
三年秋七月 당 태종이 고구려를 공격할 준비를 하다
三年秋九月 당 태종이 백금과 숙위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다
三年冬十月 당 태종이 고구려정벌의 필요성을 역설하다
三年冬十一月 당 태종이 고구려 공격을 위한 병력을 동원하다
四年春一月 당의 이세적의 군대가 유주에 도착하다
四年春三月 당 태종과 이세적이 출정하다
四年夏四月 당군이 고구려의 성을 공격하다
四年夏五月 비사성이 함락되다
四年夏五月 당군이 요동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다
四年 백암성이 당 태종에게 항복하다
四年 개모성이 함락되다
四年 고구려 군대와 말갈 병력이 당 태종의 군대와 싸워 패하다
四年 당군이 안시성 전투에서 패하여 돌아가다
四年冬十月 당 태종이 고구려원정을 후회하다
五年春二月 당 태종이 고구려원정이 실패한 이유를 묻다
五年夏五月 당 태종이 다시 고구려 정벌을 논의하다

3.2 삼국사기 22권

六年春二月 당군이 소규모 병력으로 다시 침략하다
六年夏五月 당의 이세적 군대가 쳐들어왔다 돌아가다
六年秋七月 당군에 패하다
六年秋八月 당 태종이 고구려를 정벌하고자 배를 만들게 하다
六年冬十二月 왕자 임무를 당에 들여보내 사죄하다
七年春一月 당 태종이 바다를 건너 공격하게 하다
七年夏四月 당 고신감의 군대에 패하다
七年夏六月 당 태종이 고구려를 정벌하고자 하다
七年秋七月 평양에서 머리가 2개인 아이가 태어나다
七年秋七月 당 태종이 배를 만들게 하다
七年秋九月 평양에서 노루와 이리 떼가 서쪽으로 이동하다
七年秋九月 당군이 박작성을 공격하다
八年夏四月 당 태종이 고구려 침략전쟁을 포기하라고 유언하다
九年夏六月 보덕화상이 백제로 가다
九年秋七月 곡식이 서리와 우박 피해를 입다
十一年春一月 당에 조공하다
十三年夏四月 고구려 멸망을 예언하는 말이 떠돌다
十三年冬十月 거란을 공격하였으나 패하다
十四年春一月 신라의 33성을 빼앗다
十四年春二月 당이 공격해오다
十四年夏五月 당군이 요수를 건너와 큰 피해를 입히고 돌아가다
十五年夏五月 평양에 폭우가 내리다
十五年冬十二月 당의 황태자 책봉을 축하하다
十七年夏六月 당군의 공격이 실패하다
十八年秋九月 호랑이가 평양성 안에 들어와 사람을 잡아먹다
十八年冬十一月 온사문이 설인귀의 당군에 패하다
十九年秋七月 평양 강물이 핏빛으로 변하다
十九年冬十一月 당이 고구려를 공격해오다
二十年春一月 당이 평양을 향해 공격해오다
二十年夏四月 당이 고구려 원정을 중지하다
二十年夏五月 신라 북한산성을 공격하다
二十年秋八月 소정방의 당군이 평양성을 포위하다
二十年秋九月 당군에게 항복하다
二十一年春一月 방효태의 당군이 연개소문과 싸워 전사하다
二十五年 태자가 당의 태산 제사에 참가하다
二十五年 연개소문의 아들 사이에 권력 다툼이 일어나다
二十五年夏六月 연남생이 당으로 달아나다
二十五年秋八月 연남건이 막리지가 되다
二十五年秋九月 당 고종이 연남생에게 벼슬을 내리다
二十五年冬十二月 당 고종이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한 준비를 하다
二十六年秋九月 당군이 고구려의 성을 빼앗다
二十七年春一月 당이 유인궤를 요동도부대총관으로 임명하다
二十七年春二月 부여성 등 40여 성이 당에게 함락되다
二十七年夏四月 동북쪽에 혜성이 출현하다
二十七年秋九月 멸망하다
二十七年冬十月 당군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가다
二十七年冬十二月 당이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두다
唐 高宗 摠章二年春二月 왕의 서자 고안승이 신라에 투항하다
唐 高宗 摠章二年夏四月 당 고종이 고구려인을 대거 옮기다

고대사 인물답지 않게 기록이 매우 상세하다. 삼국사기에서 신라 문무왕과 보장왕만 2권을 차지한 왕이다. 기록 양이 고려시대의 왕들보다 조금 낮은 정도. 하지만 보장왕 본인에 대한 기록은 얼마 없다.[3]

보장왕은 고구려왕 중 최다의 기록을 보유했으나, 안타깝게도 망국의 왕이 되었다.

덤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된 왕 중에서 신라왕은 문무왕의 기록이 가장 많이 남아있으며, 백제는 의외로 시조인 온조왕이다. 문무왕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모든 왕들 중에서도 기록이 가장 많아서, 명실상부한 No.1 이다.

4 대중매체에서의 모습

명색이 고구려의 마지막 왕이다 보니 고구려 말기를 다룬 각종 소설과 영상물에 거의 빠지는 법 없이 등장한다. 이때 묘사되는 모습이 작품마다 다른데, 그 갈래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번째는 연개소문에 의해 의도치않게 왕좌에 올라 소심하고 찌질한 모습만 보이는 모습, 두번째는 꽤 강단있는 모습으로 등장해 연개소문과 함께 국정을 주도해 나가는 모습 등이다. 특히 보장왕이 연개소문과 결탁해 영류왕을 살해했다는 독특한 내용전개도 나오고 있는 중. 특히 이후에 나온 창작물일수록 제법 영민하고 능력도 갖춘 왕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어찌 보면 한국 역사의 마지막 임금들 중 가장 창작물에서 대접이 좋은 왕. 아무래도 고구려 멸망 후에도 고구려의 재흥을 꾀했던 역사적 행적이 작가들이나 시청자들에게 어필하는 면도 있는 듯하다.

4.1 삼한지

김정산의 소설 삼한지에서는 그야말로 나약한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제위 내내 연개소문의 허수아비 신세가 되어 늘 끌려다니기만 하는 모습만 보여준다(...).

다만 작중에는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시해한 후에 보장왕의 아버지인 대양에게 눈물콧물 다 쏟으며 애걸복걸한 끝에(...) 보장왕을 옹립한 것으로 묘사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연개소문은 진심으로 보장왕에게 충성을 다 하고 있는 듯한 묘사가 많이 나온다.

4.2 연개소문(드라마)

SBS에서 방영한 연개소문에서는 이배국이 연기하였다.

4.3 대조영(드라마)

KBS에서 방영했던 대조영에서는 길용우가 연기하였다.

연개소문에게 휘둘렸다는 세간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상당히 중후한 성격의 인물로 묘사되며 나름 현명하고 결단력도 있으며 연개소문에 꿀리지 않는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는 망국의 군주로써 주색에 빠져 사는 한심한 모습으로 위장하여 당나라 관리들을 감쪽같이 속이고는 작중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대조영의 고구려 부흥 운동(동명천제단)을 뒤에서 몰래 지원하다가 결국 꼬리가 잡혀 당나라로 압송당해 유배생활을 하다가 그 곳에서 죽는 것으로 묘사된다. 죽기 직전 대조영이 찾아오자 고구려의 마지막 왕의 권한으로 그를 다음 고구려의 왕으로 지명한다.그리고 수백년 후 환생환생한 대조영을 보필하며 삼한 재통일을 이루었다 카드라

4.4 대왕의 꿈

KBS의 사극 대왕의 꿈에서는 안신우가 연기하였다.

작중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켜 새롭게 왕위에 오르는 장면에 처음 등장하는데, 결연한 표정으로 왕관을 받아들여 자신의 머리에 쓰고 옥좌를 차지하는 장면이 인상깊다.

연개소문에게 휘둘리는 듯한 모습으로는 묘사되지 않으며 오히려 연개소문과 함께 국정을 의논하며 그와 뜻을 함께하는 등 상당히 친밀한 관계로 묘사된다.

4.5 칼과 꽃

KBS 전 사극 칼과 꽃에서는 온주완이 연기하였다.

작중에는 영류왕의 조카로써 왕을 보필하는 일종의 가신(家臣) 내지 호위무사와 비슷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역시 기존의 비실비실한 이미지는 어디에 던져버렸는지 몸이 날렵하고 무예에 능하며 용맹하면서도 현명한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영류왕에게 충성을 다하며 영류왕과 대립하는 연개소문 세력과 치열한 암투를 벌이지만 왕을 시켜주겠다는 연개소문의 꾀임에 넘어가 결국 연개소문의 쿠데타에 동참하여 궁을 장악하고 주인공인 영류왕의 공주에게 칼까지 들이댄다. 여기서 과거가 드러나는데 실은 어려서부터 부모와 동떨어져 살며 영류왕의 직속 부하가 되도록 교육받았으며 이때문에 꽤 오래전부터 영류왕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연개소문과 더불어 영류왕을 시해한 보장왕은 결국 처음에 약조한대로 연개소문의 지지를 얻어 왕위를 얻게 된다.

하지만 점차 연개소문에게 쏠리는 권력에 불안감을 느끼며, 도수 등의 귀족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나, 도수 등이 연개소문의 휘하로 들어가면서 실패한다. 연개소문이 이 사실을 알게되면서 거의 모든 권력을 빼앗긴 허수아비가 되고 만다. 자신이 허수아비라는 사실을 자각하고는 내관 복장을 입고 내관인척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4.6 평양성

영화 평양성에서는 정규수가 연기하였다.
소심하고 나약한 전형적인 허수아비 임금으로 묘사된다.

  1. 망한나라의 왕이라 시호가 없다. 보장왕은 이름 + 왕. 의자왕도 마찬가지다.
  2. 보장왕은 2권이나 될 정도로 기록이 많다.
  3. 고려왕조 왕들은 고려사 덕분에 보통 매년 기록이 3개 이상 남을 정도로 상세하다. 조선은 역사학계의 넘사벽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등 각종 기록 덕분에 연, 월단위가 아닌 일단위 기록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