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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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高句麗

1 개요

요동 지방에 있었던 고구려의 잔여 세력. 역사 기록에는 고려라고 전한다. 고구려, 고려와의 구분을 위해 소고구려라고 부른다.[1] 북한에서는 고구려후국이라 부르며 발해의 번국 취급 하지만 근거는 없다.

사실 아직까지 소고구려는 하나의 '학설'에 불과하다. 기본적으로 고구려 이후에 등장하는 고구려 관련 기록들을 정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설명으로, 명확하게 정권으로서 존재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으며, 독립된 열전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고대에 국(國)이라는 개념은 영토, 국민, 주권을 갖는 근대적 국가 개념이 아니라, 왕실이 이어지는 것을 여부로 판단한다. 따라서 왕계가 이어진 '고구려국'이 일종의 속국 혹은 번국 형식으로 당나라에 부용되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백제의 부여씨 왕가도 그러했던 사실에서 유추할 수 있다.

비슷한 예로 신라가 백제지역에 세운 괴뢰국인 보덕국이 있으나, 보덕국은 얼마 못가서 반란이 진압되어 사라졌다. 일본에서도 고구려 왕족에게 고구려 유민들이 모여사는 마을의 지배를 임명하기도 했으나, 왕가의 계승으로서 큰 의미를 갖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소고구려가 존재했다고 보는 입장은 고구려 관련 기록의 독립성을 더욱 강조한다. 당나라에서 고구려 왕족을 보내 요동 지방과 압록강 유역의 고구려 유민들을 다스리기 위해 세운 괴뢰국이지만 점차 요동에 대한 당의 영향력이 사라지면서 떨어저 나간 것으로 보기도 한다.

고구려의 마지막 왕 보장왕의 아들 고덕무가 요동지방을 다스리기 위해 당에 의해 699년 안동도독으로 임명된 것을 소고구려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그에 따르면 고덕무는 소고구려의 시조가 된다. 그러나 독립적인 지위가 아닌 당 관직 체제 내의 안동 도독으로 존재하는 이상 독립국으로 보는 것은 무리이다. 차라리 괴뢰국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당나라가 안사의 난으로 인해 혼란에 빠지면서 독립한 것으로 보인다. 818년에 고려국이 조공을 보냈다는 기사가 나온다. 그러나 발해의 선왕이 즉위하면서 요동지역을 편입하게 되면서 멸망한 것으로 보인다.

827년 3월에 고구려승 구덕이 신라에 온 것을 소고구려 유민의 신라 귀화로 보기도 하지만 승려의 국경을 넘나드는 이동이라는게 워낙 숱한 일이라 이런식으로 끼워맞추기도 난감하다. 삼국시대에 국경을 가장 많이 넘나드는게 승려와 사신이다. 더구나 구덕이 당나라에 가서 경전을 구해온 점을 보면 소고구려의 멸망과는 무관하게 이곳저곳 돌아다니던 승려였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엔닌, 신라의 혜초 등과 별 차이가 없다.

2 역대 국왕

소고구려의 역대 국왕
소고구려 1대 국왕 고덕무

3 참고자료

  1. 고구려5세기 이후 고려로 국호를 바꿨는데 현재 고구려라고 부르는 것은 왕건의 고려와 구분하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