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이 단란주점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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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사바이 단란주점.jpg

1 개요

1998년 6월 14일, 대한민국서울특별시 신사동에 위치한 사바이[1] 단란주점에서 20대 남성 3인조로 추정되는 범인 패거리들이 단란주점 업주와 그녀의 지인이었던 택시기사, 손님 등 3명을 살해하고 1명이 중상을 입은 사건이다.

숱한 시체를 봐왔을 법의학자조차도 지금껏 봐왔던 범행 중에서 가장 잔인하다고 혀를 내둘렀을 정도로 끔찍하기 짝이 없는 사건이었다. 현장에서 수많은 지문과 족적, 혈흔은 물론이고 목격자들까지도 있었으나 끝내 범인을 검거하는데 실패하여 사건 발생 후 15년이 지난 2013년 6월 14일 자로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영구 미제 사건이 된 사건이다.[2]

2 사건 현장 상황

사건이 일어났던 1998년 6월 14일 새벽 2시 반, 그 해 그 달에는 프랑스월드컵이 한창이던 때였고 사건이 일어난 그 날엔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가 열렸던 날이었다.[3] 그래서 전 국민들의 시선은 경기가 열렸던 프랑스의 리옹을 향해 있었다.

그런데 그 날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사바이 단란주점에는 한바탕 피바람이 불었다. 사건이 알려지게 된 건 사바이 단란주점의 손님이었던 최 씨 성을 쓰는 여자가 아랫도리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피를 철철 흘리며 계단에서 올라오면서였다. 그 때 단란주점 옆에서 손님을 태우기 위해 대기 중이었던 택시기사 한 씨가 그 여성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사건이 알려졌다. 사건 신고를 받은 경찰은 급히 사바이 단란주점으로 출동했는데 그 때 그들의 눈 앞에는 매우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당시 사건 현장이 얼마나 끔찍했던지 처음 출동한 경찰도 잠시 주춤거리며 현장에 접근하기를 주저했다고 한다. 현장은 베테랑 형사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끔찍했다고.)

이 단란주점의 여주인인 이 씨와 그녀의 지인인 택시기사 고 씨, 또 다른 지인인 김 씨 3명이 모두 처참한 주검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여주인 이 씨는 허벅지와 등에서 칼에 찔린 상처가 발견되었는데 매우 깊숙하게 찔려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참혹했지만 입 가장자리에는 무려 13cm 길이의 칼로 찢겨나간 상처가 있었다. 그녀의 시신은 마치 미국의 미제 사건 블랙 달리아 사건의 피해자 엘리자베스 쇼트의 모습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또 택시기사 고 씨는 몸에 무려 17군데나 칼에 의해 찔리고 베인 흔적이 발견되었다. 가장 끔찍하게 죽은 사람은 김 씨라는 여인이었는데 그녀는 목이 반 쯤 잘려 있었고 이마에는 마치 발로 짓밟힌 듯 선명한 신발자국까지 남아 있었다!

그 3명의 시신들은 모두 밧줄로 결박당해 있었고 물이 틀어져 있었는지 바닥이 흥건했다. 또 접시와 술잔, 술병 등의 기물들이 깨져 파편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상태였다. 이 사건에서는 여러 가지 주목할 만한 증거들이 여럿 나왔다. 먼저 피해 여성들의 머리카락을 칼로 자른 흔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왜 범인은 죽은 여성들의 머리카락을 잘라갔을까? 일단 범인으로서는 빨리 달아나야 하는데 머리카락을 뭉텅이로 잡고 자르는 행위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행위이다. 다음으로 피해자의 엉덩이를 칼로 찔렀다는 점인데 엉덩이는 치명상을 입힐 만한 부위가 아니라는 점에서 불필요한 자상을 남긴 이유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목이 반쯤 잘린 채로 발견된 김 씨 여인의 시신에서도 특이한 증거가 발견되었는데 발바닥에 혈흔들이 묻어 있었다. 이로 봐서는 범인들은 2명을 항거불능의 상태로 만든 후에 김 씨는 결박하지 않고 끌고 다니면서 공격을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단란주점의 카운터의 수화기는 내려져 있었고 주변은 뭔가 급하게 뒤진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고 씨의 바지 주머니에는 칼로 찢긴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마치 강도의 소행인 것처럼 보였다. 수사 결과 금목걸이와 금팔찌,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현금 일부가 없어진 것이 확인되었다. 또 피해자들에게는 구타를 당한 흔적도 있었는데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이삼재 전 총경은 입식 옷걸이[4]를 부숴서 만든 몽둥이로 때린 것이라고 밝혔다.

시신의 참혹한 상태와 현장에 난무한 혈흔 때문에 수사에 참여한 경찰들에게는 이 사바이 단란주점 살인사건이 역대 최고로 잔혹하기 짝이 없던 강도살인사건으로 각인이 되었다고 한다.

3 사건 경위

목격자인 이 씨 언니의 진술에 따라 추적해 본 사건의 전개는 다음과 같다. 6월 13일 저녁 10시경, 본래 사바이 단란주점의 여주인이었던 이 씨 대신에 이 씨의 언니가 대신 가게를 보고 있었는데 그 때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자 3명이 들어왔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1번 방으로 들어갔고 용의자 A가 도우미를 요구했다고 한다. 그런데 용의자 B가 지금은 아가씨를 부를 때가 아니라고 말리며 저들끼리 설왕설래 하다가 결국 양주 1병과 과일 안주를 주문해서 먹고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 20분 후인 10시 20분에 단란주점 근처에서 식당 종업원 일을 하는 최 씨가 지인인 김 씨와 함께 맥주 한 잔을 하려고 이 사바이 단란주점을 찾았다. 잠시 후 이 사건의 피해자이자 단란주점의 여주인인 이 씨가 언니와 교대하기 위해 왔고 언니는 남편이 밤 11시 50분경에 데리고 와서 단란주점을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씨 언니 부부가 가게를 나설 때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이 있었는데 용의자들이 최유나의 흔적이라는 노래를 불렀다는데 그 때만 해도 누가 볼 때는 여유가 있어보였고 또 양주도 마시면서 차마 이들이 끔찍한 살인을 저지를 것이라고는 예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차분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범인들은 박강성의 장난감 병정과 문 밖의 그대, 박상민의 하나의 사랑, 녹색지대의 준비 없는 이별 등을 불렀다고 했는데 차마 살인을 일으킬 사람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모두가 서정적인 가사의 발라드 노래들만 불렀다는 것이다. 그리고 6월 14일 자정, 이 씨의 지인이자 택시기사였던 고 씨가 멕시코전을 보려고 단란주점에 잠깐 들렀다고 한다. 그리고 전반전이 끝난 새벽 1시 반에 이 씨의 언니가 가게에 전화를 걸었다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단란주점에서는 아무 일이 없었다.

이러한 진술을 토대로 미루어볼 때 범행은 이 씨의 언니가 전화를 걸었던 6월 14일 새벽 1시 반에서 경찰에게 신고가 들어온 새벽 2시 반까지 1시간 사이에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도대체 범인들은 누구이고 그들은 왜 사바이 단란주점에서 한바탕 피바람을 일으켰던 것일까? 도대체 이 단란주점의 업주와 그 지인들은 무슨 원한을 샀기에 그토록 참혹한 죽음을 맞았던 것일까?

4 경찰의 수사

당초 경찰은 이 사건을 접했을 때만 하더라도 정말 빠른 시간 안에 범인을 검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하고 무려 18년이 지난 2016년 현재까지도 범인을 잡지 못했으므로 이같은 경찰의 판단은 오판임이 드러났다. 하지만 경찰이 그런 판단을 내렸던 것도 전혀 납득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일단 그 날은 축구 중계가 있었던 날이라 단란주점을 찾은 손님들이라고는 피해자 3명과 범인 3명해서 6명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그 6명 중에 3명이 죽었으니 자연히 범인은 나머지 3명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범인들은 너무도 많은 증거품들을 남겨두고 갔고 지문들도 덕지덕지 남아 있었다. 한 두 개도 아니고 무려 39개나 되는 지문을 남겨놓았던 것이다. 그런데다 범인들을 목격한 목격자들까지 있었으니 경찰 입장에서는 이만큼 착한 범인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초 확신했던 그 착한 범인은 알고 봤더니 매우 교활하고 영악한 범인이었고 현재까지도 계속 숨바꼭질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처음 사건을 접했을 때 쉽게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자만했던 게 18년 째 범인 검거에 실패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일단 경찰들의 예상이 틀어지기 시작한 것은 CCTV가 없었다는 점에서였다. 사건이 일어난 1998년만 하더라도 방범용 CCTV 설치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상태였기에 범인의 얼굴을 제대로 잡아내기가 어려웠다. 경찰들은 탐문수사를 통해 범인들의 도주로를 파악하고 다른 목격자들을 찾는데 주력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또 경찰의 예상이 틀어졌다. 경찰이 간과했던 건 바로 사건이 일어난 날짜였다. 경찰들은 일단 사건이 일어난 때가 초여름이었기에 새벽에도 어느 정도 통행이 있었을 것이고 또 사바이 단란주점 건너편에 포장마차가 1~2군데 있었기에 목격자들이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라 믿었다. 만일 사건이 하루만이라도 전에 일어났거나 아니면 하루만이라도 뒤에 일어났다면 그 예상이 들어맞았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난 1998년 6월 14일은 하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월드컵 첫 경기가 열렸던 날이었다. 그 때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다들 알겠지만 차범근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경우의 수 자체를 논할 필요도 없이 우수한 성적으로 본선 진출을 이루었기에 사상 첫 16강 진출을 이룰 수 있는 기회라고 호들갑을 떨어댔고 특히 멕시코의 전력을 얕보고 강력한 1승 제물이라고 언론에서 온갖 설레발을 쳐댔기에 그 어떤 경기보다도 시청률이 높았던 때였다. 즉, 이 탓에 목격자들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결국 경찰들은 범행 현장에서 범인들의 흔적을 찾는데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사건 현장에서 범행 흔적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었으나 채취된 시료들 중 DNA는 남아있는 것조차 당시 기술로는 불분명하게 나와 지문에 몰두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39개의 지문을 찾아냈다. 그런데 이 중 31개는 대조 가치가 없다고 보았고 나머지 8개의 지문으로 대조해본 결과 모두 주점 관계자들의 지문으로 밝혀졌다. 거기다 지문이 묻어 있었을 법한 술병과 술잔 등도 범인들이 모두 산산조각을 내버려 지문을 채취할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면 쪽지문 하나로도 밝혀낼 수 있었지만 1998년 당시 과학 기술로는 역부족이었고 또 사건이 일어났던 날 서울에는 비가 많이 내린데다 범인들이 수돗물을 틀어놓아 경찰이 출동했을 당시엔 바닥이 온통 물 천지였다고 한다. 그 탓에 지문 채취에 난항을 겪었고 물 때문에 지문이 훼손되어 어렵게 발견한 것들도 감식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5 생존자 최 씨의 증언

그래서 경찰은 마지막 남은 생존자 최 씨에게 희망을 걸었다. 최 씨는 여전히 사건 당시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너무도 충격적인 일인지 현재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최 씨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범인과 대화도 주고 받았다고 한다. 최 씨의 진술에 따르면 피해자 김 씨가 자신에게 6월 13일 밤 10시 경에 자기 얘기 좀 듣고 가라고 하며 신사동의 사바이 단란주점으로 끌고 갔다고 한다. 그리고 들어간 지 얼마되지 않아 용의자 A의 얼굴을 봤다고 한다. 그때 그는 화장실 가려다가 잘못 들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여주인 이 씨가 자신과 김 씨에게 범인들이 있던 2번 방에서 합석하라고 안내했다고 한다. 그래서 가보긴 했지만 그리 오래 있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남자들 사이에서 뭔가 섬뜩한 기운을 느껴 먼저 나왔고 김 씨도 뒤이어 나와 1번 방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잠시 후 화장실이 급해서 방을 나온 최 씨는 카운터에서 택시기사와 업주 이 씨 그리고 3명의 용의자 사이에 단란주점 카운터에서 실랑이가 벌어진 것을 목격했다. 그녀는 관심없이 화장실 갔다가 1번 방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녀가 1번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상황이 갑자기 긴박하게 돌아갔다. 그 용의자 A, B, C와 택시기사 고 씨, 업주 이 씨가 함께 1번 방에 들어왔는데 고 씨와 이 씨의 손은 뒤로 돌려진 채로 결박되어 있었고 용의자 3명이 고 씨와 이 씨를 발로 차서 1번 방에 처넣었다고 한다. 택시기사 고 씨는 말로 해결하자고 했고 업주 이 씨는 살려달라는 소리만 했다. 그러나 범인들은 고 씨와 이 씨를 잔혹하게 구타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범인들은 뒤이어 겁에 질린 채로 있었던 1번 방 손님인 김 씨와 최 씨에게 다가가 위협했다. 범인은 두 여인 중 먼저 김 씨에게 다가가 금목걸이를 내놓으라고 했는데 최 씨가 "그거 그냥 줘 버려!"라고 소리쳤음에도 불구하고 김 씨는 금목걸이를 넘겨주려 하지 않았고 흥분한 범인은 김 씨를 끌어내 바닥에다 패대기치고 구둣발로 이마를 차고 지근지근 밟다시피 하며 구타했다고 한다.

폭력이 오고 간 이후 처참한 살육극이 벌어졌고 생존자 최 씨는 먼저 옆구리를 칼로 찔려 정신을 잃은 탓에 목에 칼이 들어왔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범인들은 이후 피해자들의 머리를 흔들며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확인하고 증거 인멸을 했는지 안 했는지 서로 지들끼리 확인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때 최 씨는 겨우 죽은 척을 해서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그리고 범인들은 "빨리 가자! 시간이 없다!" 라는 말을 하면서 도주했다고 한다. 최 씨는 목과 옆구리를 칼에 찔렸지만 다행히 급소를 피해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최 씨가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게 있는데 그건 범인들이 자신들이 털어놓은 범행 동기였다. 범인들이 칼로 그녀를 위협할 때 그녀는 "남편이 지금 뇌수술 중이라 일을 못해서 내가 식당에서 일해서 받은 일당 가지고 겨우겨우 먹고 살고 있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때 범인이 "아줌마, 우리도 회사 잘려서 아줌마랑 같은 처지거든? 우리도 안 이러고 싶어."라고 했다고 한다.[5] 그리고 그들은 폭력과 함께 금품을 요구했고 실제로 현금 6만원과 귀금속, 신용카드, 체크카드 등을 빼앗아갔음이 드러났다.

6 범행 동기는 무엇인가?

일단 현장에 남겨진 흔적들과 피해자의 증언들을 고려해볼 때 언뜻 봐서는 금품을 노린 범죄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런데 사건의 실체를 깊이 들여다 보면 금품을 노린 범죄라고 보기엔 몇 가지 석연찮은 점이 있었다. 우선 이 범죄가 강도의 짓이라고 보기 어려웠던 이유는 피해자 고 씨의 상태였다. 당시 고 씨는 금시계를 차고 있었는데 시계줄은 풀려 있었으나 시계를 가져가진 않았다. 또 고 씨 손가락에는 금반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범인들은 금가락지를 뺏지도 않았다. 그 외에도 여인들의 손목에 차고 있던 반지와 금팔찌 등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즉, 귀중품을 노린 범죄라고 하기엔 남기고 간 귀중품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급히 귀금속들을 훔치고 입막음을 위해 피해자들을 살해한 후 달아났기 때문에 미처 다 못 챙긴 것으로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발견된 시체의 상태를 절대 잊어선 안 된다. 범인들은 업주 이 씨의 입을 찢는다든지 엉덩이를 칼로 찌른다든지 하는 불필요한 시신 훼손을 했고 또 여인들의 머리카락을 뭉텅이로 잡고 자르는 짓을 했다. 이렇게 사건 현장 훼손에 오랜 시간을 쏟았다는 점을 보면 강도의 소행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현금 일부와 신용카드, 체크카드, 귀금속 일부가 없어진 건 사실이었기 때문에 경찰 측에선 피해자들의 통장에서 돈을 인출하지 않았는지 수사했지만 단서를 찾지 못했다. 카드를 쓰거나 훔쳐간 귀금속들을 장물로 내놓았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장물품표를 발부해 전국 보석상에 뿌리다시피 했지만 좀처럼 귀금속들의 판매처를 찾을 수 없었다. 이로 보아선 강도가 목적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피해자들의 현금과 카드, 귀금속 일부를 훔쳐간 건 강도의 소행으로 위장하기 위한 일종의 연막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생존자 최 씨 또한 범인들이 단순한 강도로는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최 씨는 범인 일당들 중에서 유독 A가 조폭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범인들이 조폭들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1990년대 말에는 대도시 유흥가를 중심으로 조폭들이 활개를 치며 갖가지 폭력 사건이라든지 살인사건을 저지른 경우가 많았다. 특히 강남에서도 노른자위에 해당하는 신사동은 그 무렵에 조폭들의 이권 다툼이 활발했던 곳이었다.

생존자 최 씨는 범인들이 사용한 칼이 예사롭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칼의 길이가 부엌에서 쓰는 일반 식칼치고는 길이도 길었고 하얗고 반짝거리는데다 두께도 매우 얇았다고 한다. 이 증언대로라면 범인들이 쓴 칼은 흔히 사시미로 부르는 회를 칠 때 쓰는 회칼임이 분명했다. 당시 조폭들이 살인 무기로 회칼을 썼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말 이 사건을 일으킨 범인의 일당들이 조폭들일 수도 있다는 데 설득력을 부여한다. 정말 범인은 이 단란주점의 이권을 노린 조폭들이었을까?

2016년 2월 27일에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당시 사바이 단란주점이 딸린 건물의 건물주를 만나 그 사실에 대해 물었다. 당시 사바이 단란주점은 유명한 정치인이나 유명 연예인이 자주 들락거리는 고급 음식점에 딸린 단란주점이었다고 한다. 사바이 음식점은 3명이서 돈을 합자해 투자해서 운영한 고급 음식점이었다고 하는데 혹 이들 사이에서 지분을 놓고 다툼이 일어나진 않았는가 했지만 그건 아니라고 한다. 사바이 음식점은 1998년 무렵에 매출이 급감한 상태였고 이 씨 자매에게 따로 단란주점만 임대해준 것이지 조폭이 노릴 만한 이권 따위는 없었다는 것이다. 또 그 주점은 본래 사바이 음식점을 드나드는 손님들이 2차로 놀다 가라고 서비스 룸 형식으로 만들어둔 것이었고 이 씨 자매가 임대를 받아 단란주점을 운영한지는 고작 반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사바이 음식점 건물 관계자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해 가진 인터뷰에서 당시 참고인 조사를 받던 중 당시 형사들이 범행 동기에 대해 택시기사 고 씨를 노린 청부살해가 아니냐는 추리를 한 걸 들었다고 한다.

사실 생각해 보면 돈을 노린 범죄였다면 범인들은 주점에 들어온 직후에 범행을 저지르고 달아나는 편이 더 사리에 맞다. 그런데 범인들은 6월 13일 밤 10시 쯤에 단란주점에 들어와서 최소 3~4시간 정도 지나서야 범행을 저질렀다. 그 사이에 택시기사 고 씨가 축구 중계를 보기 위해 지인이었던 이 씨가 운영하는 이 사바이 단란주점으로 왔다. 이 점으로 미루어 보아 경찰 측에서는 이 사건은 단순 강도살인이 아닌 애초부터 고 씨를 타깃으로 노리고 저지른 청부살인의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나머지 여자들은 입막음을 위해 죽인 것이고 물건 일부를 훔쳐가고 카운터 등을 어지럽힌 것도 강도의 소행으로 위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택시기사 고 씨는 무슨 원한을 샀기에 남에게 청부살해를 당하는 입장이 되었을까? 정말로 이 사건을 저지른 자들은 살인청부업자였을까?

6.1 범인은 이 씨의 전 남편?

범행 동기가 단란주점의 이권을 노린 것이나 강도의 소행이 아니라 애초부터 택시기사 고 씨를 노린 청부살해 쪽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가장 먼저 범인으로 정확하게 말하면 살인을 교사한 인물로 거론된 사람은 업주 이 씨의 전 남편이었다. 사건 당시 업주 이 씨는 남편과 이혼한 상태였는데 이 씨의 전 남편이 이 씨와 사이가 각별했던 택시기사 고 씨가 불륜 관계가 아닌가 의심해서 살인청부업자에게 살인을 교사했던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택시기사 고 씨의 지인들은 그가 남들로부터 원한을 살만 한 짓을 저지르거나 보복당할 짓을 한 적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경찰들이 살인교사범으로 의심했던 이 씨의 전 남편도 그 무렵에 경제적으로 심히 쪼들리고 있었다고 한다. 다들 알다시피 살인청부업자들은 교사범들로부터 일종의 수임료(?)를 받고 난 이후에야 살인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 수임료(?)는 상당히 거액이다. 경제적으로 쪼들리고 있는 사람이 살인청부업자에게 지불할 거액의 수임료(?)를 지불할 능력이 없다는 점과 뚜렷한 혐의점도 없기에 결국 이 씨의 전 남편을 기소할 수는 없었다. 결국, 이러한 사실들 때문에 청부살해의 가능성을 주장한 경찰 측의 주장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6.2 범인 검거?

경찰이 조기에 범인을 잡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또 하나의 근거는 생존자 최 씨가 사건 당시의 일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범인들의 몽타주가 조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경찰은 무려 10만 장이 넘는 범인들의 몽타주가 그려진 수배지를 전국에 뿌렸고 당시 MBC에서 방영했던 공개수배 프로그램에서도 2차례에 걸쳐 공개수배를 때렸다. 그 결과 전국 각지에서 범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목격했다는 제보가 쏟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3인조 범인 중 1명을 검거하는데 성공했다! 경찰 측에서 검거했다고 주장하는 인물은 범인 3명 중 B였다. 일단 피해자의 진술로 얻어낸 B의 몽타주를 보았을 때 피의자의 얼굴은 몽타주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고 3명의 범인을 목격했던 이 씨의 언니도 피의자가 범인 3명 중 한 사람이 맞다고 주장하면서 정말로 범인 3명 중 1명을 검거하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피의자가 잡히게 된 이유는 공개수배 프로그램을 보고 난 후 피의자의 얼굴이 범인 3명 중 1명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이 사람이 범인인 것 같다고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체포된 피의자는 이 씨의 언니가 누군지도 몰랐으며 이 씨의 언니가 그를 보자마자 온갖 상욕을 퍼부었을 때도 도대체 저게 뭔 소린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 탓에 당연히 6월 14일, 사바이 단란주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대해 강력하게 부인했다. 그런데 이 때 사건 조기 해결에 목숨을 걸었던 경찰이 빼도 박도 못할 병크를 저질렀다! 그 당시 경찰이 저질렀던 병크란 바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강압수사였다. 사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피의자를 신나게 때려 조지며 "닥치고 그냥 불어!" 식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결국 강압수사에 못 이긴 피의자는 자신의 알리바이도 제대로 대지 못했고 결국 "내가 죽였다."며 허위 자백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후 사건이 있었던 그 날 피의자는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형과 축구를 보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으며 단란주점에서 술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범인이라면 알기 힘들었을 것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 날 멕시코와의 축구 경기에서 하석주가 골을 넣고 2분 만에 백태클로 퇴장을 당한 것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단순한 촌극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7 프로파일링으로 밝혀낸 새로운 사실

2016년 2월 27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프로파일링 전문가들과 함께 사바이 단란주점에서 일어난 이 살인사건은 계획적인 범죄가 아니라 우발적으로 일어난 범죄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렸다. 경찰들은 당초 이 사건은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라고 추측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말이었다. 어쩌면 18년 째 범인 검거에 실패한 이유도 이 사건의 초점을 우발적인 범죄가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라고 잘못 맞추는 바람에 그리 된 건 아니었을까?

7.1 범행은 우발적이었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소속의 권일용 범죄분석팀장은 이 사건이 계획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 첫 번째 근거는 자신들의 정체가 이미 노출되었다는 것을 들었다. 다시 사건 경위를 살펴보자면 범인들은 6월 13일 밤 10시 쯤에 왔는데 그 때 단란주점은 이 씨의 언니가 보고 있었고 그녀는 자정이 조금 못 되어서 업주 이 씨와 교대했다. 즉, 약 2시간 정도 자신의 얼굴을 본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다. 이미 자신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 단란주점에 머물렀고 또 여기서 살인사건까지 일으킨 점으로 볼 때 계획적으로 저질렀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계획적으로 일어난 범죄라면 뚜렷한 목격자가 있었고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범행을 저지를 수 없다고 판단해 계획을 미루거나 장소를 옮겼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경찰 측에서는 범인들이 신문지로 지문을 닦았다는 점을 들어 이것은 계획적인 살인사건이라고 단정했다. 본래 사람의 손에는 기름기가 있어서 물수건 같은 것으로 닦을 경우 기름기 때문에 지문이 남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신문지로 닦을 경우 신문지는 휘발성이 강해서 지문이 말끔하게 지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경찰들은 이 점을 들어 계획적인 범죄라고 단정했던 것이다. 또 자신의 족적 등 사건의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지우기 위해 물을 틀어놓고 나간 점, 자신들의 지문이 묻었을 잔과 술병들을 잘게 깨부수고 간 점들을 들어 계획적인 범죄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권일용 팀장은 정말 계획이 있는 살인범들이나 어떤 가학자들을 보면 신속한 처리와 증거 인멸의 계획이 현장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이 사건의 범인은 이미 모든 범죄가 저질러질 때까지 자기 흔적들을[6] 많이 남기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그것을 나중에 피해자들이 다 죽은 뒤에 증거 인멸을 시도하는 건 굉장한 위험도가 있는 일이다. 무엇이 남아 있을지 모르게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들어 그는 이 사건이 계획적 범죄가 아닌 우발적 범죄라고 주장했다.

범인들은 양주 3병을 마신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알코올 도수 40%가 넘는 독한 술을 3명이서 3병을 마셨다면 꽤나 술에 취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혹 성범죄와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을 수 있다. 실제 이 범인 일당들이 단란주점에 들어왔을 때 도우미를 요구하기도 했었고 피해자들은 옷이 벗겨지거나 찢긴 흔적이 있었으며 특히 생존한 최 씨는 하의가 발가벗겨진 채로 발견되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또 여자들의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잘려나간 건 여전히 미스터리다. 그런데 영국에서 2010년에 이른바 헤어컷 킬러라고 불리는 연쇄살인범이 검거된 바 있었다. 그는 여자들을 살해한 후 머리카락을 뭉텅이로 잘라갔는데 알고 봤더니 여자들의 머리카락을 보고 성적 흥분을 느끼는 성도착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이 사건도 머리카락 성도착증을 앓는 자들이 저지른 소행일까?

이에 대해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이수정은 아니라고 일언지하에 부정했다. 왜냐하면 성도착증을 앓는 자들이든 여성혐오를 앓고 있는 자들이든 그런 특이한 성적 취향이 있는 자들은 절대 같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자기들끼리도 그런 이상 성욕이 있는 것에 수치심이라는 게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범죄일수록 단독범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7] 그런데 이번 사건은 3명이서 저지른 사건이기 때문에 그런 특이한 성적 취향을 갖고 있는 자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하여 프로파일링 전문가들이 내린 결론은 이 사건은 계획적으로 저지른 사건이 아니며 술에 취해 있던 범인들이 피해자와 어떤 이유로 충돌하게 되었고 순간적인 분노나 우울함을 이기지 못해 우발적으로 저지른 사건이라는 것이다.

7.2 의문점

그러나 우발적인 범죄로 보기엔 몇 가지 의문점이 남아 있다. 그것은 바로 범인들이 이미 살인에 쓸 연장을 챙겨왔다는 점이다. 만일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이라면 대개 주변에 있던 도구들로 살인을 저지른다. 왜냐하면 즉흥적으로 일으킨 것이기 때문에 우선 손에 잡히는 것들로 범행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사건이 일어난 곳이 단란주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재떨이소화기, 술병, 주방에서 쓰는 식칼 등으로 살인을 저질러야 사리에 맞을 것이다.

그런데 범인들은 이미 살인도구를 챙겨왔다는 점이 문제였다. 피해자들을 결박할 때 쓴 것들은 케이블 타이였는데 일반적으로 케이블 타이를 지니고 다닐 만한 사람이 있을까? 그것도 단란주점에 말이다. 또 사건 당일 단란주점 문 앞에 차 한 대가 문을 막은 채로 주차되어 있다는 것도 목격되었다. 이는 범인이 이 단란주점에 차단하지 못하도록 막으려 한 짓으로 볼 수 있었다. 또 중간에 범인 패거리들 중 둘이서 실랑이를 하다가 1명이 위에 올라갔다 내려왔다고 했는데 연장을 챙기러 간 것인지 주점 문을 잠그기 위해 간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거기다 최 씨는 분명히 일반적으로 부엌에서 쓰는 식칼이 아닌 회를 칠 때 쓰는 회칼을 차고 있었다는 걸 분명히 기억해냈다. 범행에 쓰인 칼이 이 단란주점 주방에서 쓰이는 식칼이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범인들은 이미 여기 왔을 때 흉기를 지니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또 사건 현장에는 그 식칼을 꽂는데 썼을 것으로 보이는 칼집이 발견되었다는 점도 범인들은 이미 단란주점에 왔을 때부터 흉기를 챙겨왔다고 봐야 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 팀에서 그 문제의 칼집을 통해 범인들이 쓴 칼을 조사해 본 결과 그 칼은 잠수할 때 그물에 걸렸을 경우 자신을 구조하기 위해 그물을 자를 목적으로 쓰는 칼이라는 게 밝혀졌다. 당시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이삼재 전 총경도 이 칼은 공수특전단이 쓰는 칼이라고 했는데 역시 양쪽에 톱니가 있다는 게 특징이었다. 실제 생존자 최 씨도 톱니가 있는 그 칼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고 특히 그 톱니를 매우 강조해서 그렸다. 또 피해자들의 상처에서도 2가지 흉기를 쓴 것이 드러났다. 범행은 우발적으로 일어났는데 살인도구는 미리 준비했다는 게 다소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7.3 결론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해 인터뷰를 가진 전문가들이 내린 결론은 범행은 우발적으로 일어났지만 범인은 일반인은 아니며 과거에 살인을 해본 경험이 있는 인물이었다. 당시 시신의 부검을 담당했던 서울대학교 법의학과 유성호 교수는 시신의 행태를 들어 "살인은 처음해본 것이 아니거나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지 않는 이상 특별한 경험이 없는 한 이런 식의 범행은 힘들지 않겠는가?"란 견해를 밝혔다.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소속의 정성국 박사 역시 범죄 행태가 너무 잔인하고 너무 대범하다는 점을 들어 일반인이 저지른 범행은 아니라고 밝혔다. 즉, 이 살인사건은 우발적으로 일으켰지만 범인들은 과거에 살인과 같은 강력범죄를 저지른 경험이 있는 자들이란 것이다.

특히 생존자 최 씨는 용의자 A, B, C 중에서 A에 대해 매우 뚜렷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최 씨의 말에 따르면 A가 그 3명 중에서도 리더 격에 해당하는 인물로 보였다고 한다. 그가 살인지시 일체를 내렸고 또 증거 인멸 지시도 그가 내렸다는 것이다.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박지선 교수는 3인조 강도의 경우는 보통 1명의 주범이 있고 종범들이 존재하는데 주범으로 보이는 A의 머리길이가 다소 짧다는 점을 고려하면 혹시 그가 교도소에서 출소하지 얼마 안 된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청 소속의 김원배 범죄수사연구관[8] 역시 흉악범죄 전과가 있는 자들 혹은 장기복역수들 이런 사람들이 출소 직후에 보통 주점에서 이런 범죄를 종종 저지른다는 점을 들어 범인 중 적어도 1명은 전과자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3명의 범죄 경력은 제법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증거물이 바로 피해자들을 결박하는데 썼던 케이블 타이였다. 생존자 최 씨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도 케이블 타이에 결박을 당했는데 어떻게 몸서리를 치다보니까 저절로 풀어졌다고 한다. 본래 케이블 타이는 원래 짜매는 방향으로 짜매면 단단히 결박이 되어 성인 남성이라도 풀기가 어렵다. 하지만 반대로 짜매버리면 겉으로 봐서는 결박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금만 힘을 주면 단번에 풀리게 되어 있다. 그 경우라면 가냘픈 여성이라도 쉽게 풀고 나올 수 있다. 실제 현장에서 발견된 케이블 타이는 반대 방향으로 짜매져 있었다. 이는 결국 범인 중에 케이블 타이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걸 말해주며 3명 중에 치밀한 사람이 있지만 그와 반대로 범죄성이 떨어지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 놈은 아마 미필일 것이다.

그리고 당시 경찰들이 하나 놓친 증거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바닥에 뒹굴고 있었던 고무골무였다. 이것은 도대체 누가 사용했을까? 피해자들 중에는 이걸 떨어뜨릴 사람이 없는데 도대체 이걸 떨어뜨린 사람은 누구인가? 이 고무골무는 혈흔 하나 없이 깨끗했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했던 이삼재 전 총경은 이 고무골무를 피해자의 것이 아니라 범인의 것으로 보았다. 즉, 범인들 중 누군가가 실수로 흘리고 갔다는 것이다.

이 고무골무는 주로 전자제품을 제조하는 공장의 노동자, 제본소에서 일하는 노동자 등의 직군에서 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전자의 경우는 전자제품의 부품을 다루다 보면 정전기에 많이 노출이 되는데 고무는 부도체이므로 정전기 예방을 위해 주로 사용했고 후자의 경우는 책을 넘길 때 넘기기 좋게 하기 위해 많이 썼다는 것이다. 이 고무골무가 범인 중 한 사람이 흘리고 간 것이라면 범인은 전자제품 제조 공장 노동자였거나 제본소 노동자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고 보면 생각나는 게 하나 있다. 최 씨가 범인 중 한 명이 자신이 직장에서 구조조정을 당해 해고되었다는 것 말이다. 권일용 팀장은 이 말과 당시 시대적 배경을 연관지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범인의 말을 통해 볼 때 범인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든지 특별한 기술을 갖고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반복된 해고로 인해 자존감이 낮아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최 씨가 남편이 뇌수술 중이라 일을 못하고 자신이 번 돈으로 겨우겨우 먹고 산다고 했을 때 범인이 "나도 회사에서 잘려가지고 아줌마랑 같은 처지거든?"하고 자조적으로 내뱉은 말은 알게 모르게 범인이 내뱉은 범행 동기이고 또 범인의 심리상태를 말해주는 열쇠가 될 수 있다. 권일용 팀장은 이 사건이 일어났던 1998년 무렵에 들어 한국 사회에서는 불특정 다수를 공격하는 이른바 묻지마 범죄가 성행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즉,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봤을 때 범인 3명 중 A는 이미 여러 차례 강력범죄를 저질렀던 경험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고 다른 1명은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는 일이 잦았던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람들이다 보니 제대로 취직해서 밥벌이를 하기는 어려운 상태였고 그 때문에 자존감이 극도로 낮아져 있어 마치 과거 지존파들처럼 소위 돈 있는 놈들에 대해 이유 없는 적대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강남에서도 노른자위에 해당하는 신사동의 이 사바이 단란주점에 오게 되었고 그 때 그 안에서 무언가 자신들의 심기를 건드린 일이 일어났다. 그에 범인 3명이 격분해 순간적인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살인을 위해 준비해 온 연장들로 피해자들을 싸그리 다 죽인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하면 일종의 묻지마 범죄인 셈이다.

8 에필로그

이른바 태완이법으로 인해 2000년 8월 1일 이후에 일어난 미제 사건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폐지되어 범인을 잡을 경우 처벌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이 사바이 단란주점 살인사건은 1998년 6월 14일에 일어난 사건이라 공식적으로는 사건 발생 후 만 15년이 지난 2013년 6월 14일 자로 시효가 만료되었다. 현재 범인을 잡으려면 범인들이 1998년 6월 14일~2013년 6월 14일 그 사이에 3년 이상 외국에 체류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에만 가능하다. 범죄자가 형사처벌을 면할 목적으로 외국으로 도피할 경우 즉시 공소시효가 정지되며 해외에 체류한 기간은 시효기간에 산입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바이 단란주점 살인사건의 범인들 경우도 18년 째 소식을 들을 수 없는 걸 보면 이들도 해외로 도피한 게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다. 절대 희망을 버려선 안 된다.

특히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노(老) 형사들은 공소시효도 끝났고 이미 퇴직했지만 여전히 개인적으로 사건을 조사하고 있으며 공소시효가 끝났더라도 절대 이 사건을 잊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김원배 범죄수사 연구관은 이 사건은 분석 결과 3%~5% 이내의 특이한 범죄인데 그 범인들의 특징은 전부 연쇄성 범죄라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단 1건을 저질러도 여죄가 있었고 유사 범행이 계속 일어났으므로 추적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삼재 전 총경 역시 지금 이 사건이 18년 째 미제 사건인데 그 사이에 이 자들이 이것보다 더 큰 범행을 저질렀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으며 그 이후로도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 병력 2만여 명이 수사에 투입되었으나 미제에 빠진 1998년 6월에 일어난 사바이 단란주점 살인사건. 18년 전 그 날 경찰은 어디서 초점을 잘못 맞추었기에 많은 증거물을 획득하고도 범인 검거에 실패하게 된 것일까? 현재 범인의 나이는 40대 중후반으로 추정되므로 지금 범인들은 누군가의 아버지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남편일 수도 있고 이웃일 수도 있다.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절망하지 말고 희망을 갖고 범인을 잡을 수 있도록 기도하자.
  1. '편안하다', '좋다' 등의 뜻을 가진 태국어이다. 예를 들어 태국인에게 태국 마사지를 받을 때 마사지 잘 한다고 칭찬해주고 싶으면 '사바이!'라고 해주면 된다.
  2. 이른바 태완이법으로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되었으나 2000년 이전 사건은 모두 시효 만료 처리하기로 결정하여 결국 이 사건도 공소시효가 만료되었고 사실상 완전범죄가 되었다.
  3. 현지 시각으로 6월 13일 17시 반에 경기가 시작되었다. 프랑스서머타임을 쓰기 때문에 6월에 한국과 프랑스의 시차는 7시간이 나므로 한국 시각으로는 6월 14일 0시 30분에 경기가 시작되었다.
  4. 흔히 고깃집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나뭇가지 형태의 옷걸이를 말한다.
  5. 1997년 말에 한국에는 IMF 사태가 터져서 각 기업마다 대규모로 구조조정을 해서 인원 감축을 하던 때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6. 예를 들자면 가장 위험한 흔적인 지문이라든지.
  7. 쉽게 생각해서 바바리맨을 생각해 보자. 바바리맨 혹은 바바리걸은 자신의 알몸이나 성기 등을 남들한테 노출해 쾌감을 얻는 성도착증 환자들인데 그들이 여럿이서 같이 다니는 걸 듣거나 본 적이 있는가? 대개 그들은 혼자서 움직이지 절대 여럿이서 움직이지 않는다. 노출증을 앓고 있는 남자들이든 여자들이든 자기네들끼리도 서로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8. 본래 1998년 당시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이었는데 퇴직하고 범죄수사연구관으로 재직 중이며 여전히 이 사건에 대해 나름대로 조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