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삼국지)

士仁/傅士仁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후한 말, 삼국시대의 인물. 자는 군의(君義). 유주 광양군 사람으로 형주 공방전 당시 오에 투항했다. 위와 오에서도 조롱을 받았다고 한다.

2 이름 논란

정사 삼국지 관우전에는 부사인으로 기록되었고 삼국지연의도 이를 따랐지만, 정사 전체적으로는 사인으로 쓴 용례가 더 많아 현대에 나온 역사서적들은 거의 사인으로 쓴다.

다만 호삼성은 사인을 칭할 때 부라고 불러 호삼성은 부사인이 이름이라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삼국지집해를 보면 역사학자들도 이를 가지고 논의한 것을 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

부씨는 실존하는 성으로, 부융, 부첨 부자 등이 대표적이다. 남자 두 글자 이름도 왕망으로 인해 적기는 했지만 있기는 했다. 예를 들어 주불의, 주만세. 여성 이름으로는 왕원희, 보연사, 반근숙, 전혜해, 위화존 등 많다.

3 정사

관우 수하의 부하 장수로 형주 공방전 당시 관우가 북상하기 직전 미방과 함께 선봉이 되었다. 관우전에는 관우가 그들을 업신여겼고 관우가 출군한 이래 미방, 사인은 군수물자를 공급했으나 그를 돕는데 전력을 다하지 않자 관우가 ‘돌아가면 응당 죄를 다스릴 것’이라 하니, 미방과 사인은 모두 두려움을 품고 불안해했기에 손권의 꾀임에 영접했다고만 나오는데 여몽전을 보면 내역이 조금 다르다.

여몽전에는 여몽이 관우의 부재를 틈타 형주에 쳐들어오자 처음에는 사인이 공안에서 막아 지키니 여몽이 우번에게 명해 그를 설득하게 했는데 오히려 사인이 이를 만나기를 거부했다. 단순히 반역자의 이미지라고 보기엔 애매한 부분이고 분명 사인 역시 처음에는 수비를 맡아 성을 지키려고 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에 우번이 '우리가 왔는데 척후도 없고 봉화도 오르지 않았으니 내응(배신자)이 있었다는 거쯤은 알 수 있지 않아? 어차피 여몽장군이 남군으로 육로를 끊고 살길이 막혔는데 여기서 버텨봐야 니 가족만 망하고 싸워도 살길이 없으니 항복하라고'라고 협박 편지를 보내니 사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투항했다고 한다. 우번은 사인의 투항 이후 이는 휼병[1]이니 사인은 남군으로 데러가고 공안에 병력을 주둔시켜야 한다고 했고 여몽은 그 말을 따랐다. 이후 기록에서는 미방이 사인을 보자마자 항복했다고 하는데 오록에는 손권과 내통한 주체가 군수물자 다 태워먹고 관우에게 질책을 들어 두려움을 품은 미방으로만 묘사되어 있다. 그러니까 같은 꾀임이라도 사인은 어쩔수 없이 항복한거고 미방은 대놓고 항복할 생각을 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이후 형주를 잃은 관우는 갈 곳 없는 상태에서 맥성을 나섰다가 게임 오버...

기록으로 보면 연의와는 반대로 미방보다 오히려 나은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높은것이다.[2] 연의의 진정한 피해자. 그래봐야 반준의 발톱때에도 못 미친다.

이후 그나마 기록이 존재하는 미방과는 달리 사인이 어떻게 되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쩌리 취급 받다 죽었을지, 적당히 부를 누리다 죽었을지는 알 수 없다.

4 연의

연의에서는 우번과 친구라서 우번이 쉽게 투항시켰다고 하지만 사인은 유주 광양군 사람[3]이고 우번은 양주 회계군 여요현 사람이다. 유주는 북방이고 양주는 남방에서도 구석에 있는 곳인데 이렇게 북쪽과 남쪽 사람이 그렇게 쉽게 교류했을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어쨌든 저항없이 쉽게 항복한 것만으로도 더럽게 욕을 처먹을 판에 스스로 발벗고 나서서 미방을 항복하게 설득했다. 다만 이건 연의에서의 이야기이고,

삼국지연의에서는 후일 유비가 이릉에 쳐들어왔을 때에, 마치 유비군이 손권따위는 발라버리고 오나라를 정ㅋ벅ㅋ할 기세로 나오자 겁을 먹었고, 때마침 미방이 "다시 유비에게로 돌아가자"고 권유하는 말에 넘어갔다. 사인은 일말의 불안감은 있었지만 미방이 "내 여동생은 촉제(유비)의 부인이었고 (여동생의 친아들은 아니지만) 아두(유선) 태자는 내 조카니 용서해 줄 것이야" 한 마디에 마음을 돌렸다. 그러나 유비는 이들이 오자마자 곧바로 뼈와 살.... 아니 머리와 몸통을 분리시켜버렸다. 그러나 이 기술은 연의 한정으로, 그가 이릉대전 당시에 유비에게 사형당했단 기록도, 항복했단 기록도 없다.

연의에서는 미방과 함께 쌍으로 배신자로 미움을 받는 인물이지만 실제로는 과연 그런지 미심적은 인물이다. 오히려 진짜 배신자인 미방 때문에 덩달아서 동급 취급 받는 장수라고 볼 여지가 있다. 이 녀석도 사실은 좋은 녀석이었어

5 미디어 믹스

5.1 창천항로

창천항로에서 잠깐 등장했는데 장사꾼으로 위장해 성에 접근한 여몽을 단번에 알아챘다가[4] 그만 이에 개빡돌아버린 여몽에게 팔 잡고 붕붕을 당해버린다.(…) 근데 사실 이 작품에서의 사인이 가장 대우가 좋은 사인이다. 왜냐하면 여몽한테 무력으로 털리는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 배신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역사에서 여몽이 진취를 직접 죽여더러 삼국지 게임 기준으론 사인이 여몽에게 무력으로 털리는 건 당연하지만...

5.2 삼국지 시리즈

삼국지 12,13

삼국지 시리즈에는 덕분에 최하위 무장 중 하나로 등장. 그래도 백하팔인까진 아니다. 부사인같은 장수도 백하팔인에 못들정도로 백하팔인의 문은 높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41/63/38/23. 제사, 몽충을 가지고 있긴 하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42/61/28/19/12로 총합 162에 특기는 화시 1개 뿐.

삼국지 12에서의 능력치도 당연히 쓰레기이다. 거기다 형주 공방전 이벤트 발동 조건이고 이 녀석을 죽여야 촉한관우, 관평, 주창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미방도 쓰레기이지만 형인 미축과 혐오무장이 되고 사인은 그런 게 없으며 결정적으로 사인만 죽여도 이벤트는 발동되지 않는다. 연의 이미지가 게임에 많은 영향을 비쳤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부분. 일러스트는 귀요미 포즈

5.3 삼국지 공명전

삼국지 공명전에서는 오나라에 항복시 미방은 사인과 달리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여 여몽이 "그래도 미방은 염치라는 것이 있군. 그에 비해 부사인이라는 놈은..." 라는 식의 평을 받는다.

사인은 처음부터 미방에게 슬슬 약한 소리를 하다가(미방은 당연히 거절했다.), 항복을 권하는 사자가 오자 "항복을 하면 살려준다는게 사실이냐! 아니, 사실입니까?"라며 대놓고 비굴한 모습을 보인다.

5.4 삼국전투기

삼국전투기에서는 아라카와 언더 더 브리지촌장으로 등장한다.

5.5 진삼국무쌍 시리즈

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는 대대로 클론 무장, 역시 역사대로 관우를 배반하는 이벤트 때문에 촉빠들의 영원한 표적 중 하나로 활약(?)했다. 충격적인 것은....유비가 서주를 다스리고 있을때부터 유비군으로 나온다! 뭥미(...). 그리고 더 충격적인게...

진삼국무쌍 블라스트에서 정식 무장으로 참전했다!! 그것도 촉나라 무장으로!!!!! 그리고 촉빠들의 반응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진삼국무쌍7에서는 오군의 번성 전투에서 미방과 더불어 여몽의 생존 조건으로 걸려있다. 전투가 시작되어 미방과 부사인이 지키고 있는곳의 문을 열면 이들이 도망치는데 그전에 이들을 격파하는게 조건... 그런데 하필 탈출구가 지나치게 가까운 곳에 존재하기에 이들이 빛의 속력으로 도망가는 만큼 조건 달성이 무척 까다롭다. 특히 부사인은 방패병들이 지키고 있어 방패병들이 가로막아 부사인을 때리기 힘들고 제작진의 농간으로 공격내성이 없는 게임 조건상 방패병들의 슬라이딩 한 방에 경직이 걸려 그틈에 부사인이 도망쳐 버리기에 정말 스트레스 받는 조건이다. 때문에 오군의 입장에서도 공공의 적으로 찍혀버렸다. 괜히 적당한 난이도로 플레이하려다가 스트레스 받지 말고, 최대한 난이도를 낮추고, 최대한 화력 높은 방천극 같은 무기로 빠르게 때려잡아버리자.
  1. 譎兵, 기만술에 의한 군사행동
  2. 미방은 항복할지 말지 끝까지 갈등하는 연의와는 다르게, 항복 당시 이미 손권과 내통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3. 이 출신지 때문에 사인이 유비군의 초창기 일원 중 하나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비도 유주 출신이기 때문에.
  4. 여몽의 팔을 잡으며 "상인의 팔이 아니군." 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