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1994년

삼성 라이온즈 시즌별 성적
1993년 시즌1994 시즌1995년 시즌
페넌트레이스 성적
순위승률
5606420.484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1 스토브리그

1.1 코칭스태프 이동

계약이 만료된 이선희 코치가 한화 이글스와 계약했다. 역시 계약이 만료된 김무종 코치와는 재계약을 포기하고 대신 미국 연수에서 돌아온 후 갈 곳 없던 김경문을 배터리코치로 영입했다. 박용진 2군 감독과도 계약이 만료돼 대신 김충 前 MBC 청룡 코치를 2군 감독으로 영입했다.

한편 은퇴한 박승호, 미국 연수에서 돌아온 장태수, 1992년 은퇴한 박정환을 2군 코치로 임명했다.

1.2 선수 이동

1993년 시즌 후 박승호, 정윤수 등이 은퇴했다. 한희민도 방출됐다.

1991년 말 현역병으로 입대했던 강종필이 복귀했다.

1993년 12월 28일에는 김용국과 윤용하가 태평양 돌핀스로 현금 트레이드됐다.

1994년 1월초 대만의 쥔궈 베어스와 자매 결연을 맺었는데, 이때 방출된 한희민이 쥔궈 베어스에 입단했다. 원래 한희민은 쥔궈 구단이 요청을 했기 때문이었는데, 당시 대만 타자들이 언더핸드에 무척이나 약했기 때문에 쥔궈 구단이 한희민을 지목했다고. 때마침 한희민도 방출된 후 불러주는 팀이 없었다. 이후로도 삼성은 간간이 2군 투수들을 연수차 쥔궈 베어스로 보냈다.

한편 재일 한국인으로 닛폰햄 파이터즈에서 활동하다 은퇴 선언을 한 김실을 영입했다. 1군 경험이 있는 선수지만 교타자로 파워도 떨어지는데다, 전년도 영입한 아마야구 출신 재일교포 선수들도 그리 기대만큼 활약을 못했기에 다소 의문이 드는 영입이었다.

1.3 신인 지명

  • 포지션은 지명 당시 기준.
이름포지션경력계약금
1차감병훈투수경북고 - 단국대3000만원
2차1라운드김한수내야수광영고 - 중앙대4500만원
2라운드임채영포수현대공고 - 경남대4000만원
3라운드김태균내야수부산고 - 중앙대2500만원
4라운드최찬욱외야수경남상고 - 경성대1200만원
5라운드이태준투수부산공고(중퇴)1500만원
고졸 연고고재섭투수경북고2800만원
김동섭투수대구상고800만원
김민우내야수대구상고6000만원
박종호포수경북고6000만원
조문식투수경북고2800만원
최우채내야수경주고700만원
해외교포최용희투수미국 롱비치주립대20만 달러(약 1억 6000만원)
신고선수최병국내야수대구상고 - 단국대800만원
최익성외야수경주고 - 계명대1500만원

1993년 9월 1일 재미교포 최용희(다니엘 최)를 계약금 20만 달러, 연봉 3천 5백만원으로 영입했다. 총액이 당시 환율로 1억 9천 5백만원으로, 당시 이상훈 다음으로 가장 많은 금액이었다. 다만 이는 기타 주택 제공등의 부대 조건을 뺀 것이라 실질적으로는 역대 최고 대우였다. 문제는 최용희의 투수 영상[1]과 대학 기록만 보고 영입한 것인데, 실제로 최용희는 1993년 미국 4대 대학리그 중 하나인 웨스턴 컨퍼러스 리그에서 20경기에 등판해 17승 2패 2.4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2]. 하지만 이러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1993년 드래프트에서 15라운드에 지명됐을 정도로, 현지에서 평가가 좋았던 선수는 아니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최용희는 만 4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기 때문에 한국어를 전혀 못했다. 재미교포가 아니라 그냥 까만 머리 미국인 미국인이나 다름 없던 최용희는 좀처럼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는데, 삼성에서는 주택만 제공해주고 이밖에 최용희가 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 없었다[3].

2 전지훈련

1993년 말 하와이에서 열린 윈터리그에 최용희, 최한경, 신동주를 파견했다.

1994년 전지훈련은 호주와 일본으로 떠났다. 우용득 감독이 호주를 선택한 것은 미국과 달리 시차 적응이 필요치 않았기 때문. 대신에 LA 다저스 코치들을 인스트럭터로 초빙했다. 그러나 시즌 5위로 밀리며 호주 전지훈련은 삼성에겐 흑역사가 되고 말았다.

3 정규 시즌

암흑기의 도래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선수들이 줄줄이 부상으로 이탈했다. 그런 악재로 인해 팀 순위가 좀처럼 오르지 않자, 구단에서는 백인천LG 트윈스 감독을 타격 인스트럭터로 초빙했다. 타격 부진을 타개해보겠다는 게 그 이유였지만, 백인천 인스트럭터를 초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달 간 있기로 했던 백인천의 선임 기간을 시즌 종료까지로 연장했다. 결국 백인천을 영입한 건 감독 교체를 위한 수순이었던 것. 우용득 감독이 이에 반발하면서 감독과 구단간의 갈등만 깊어졌다.

결국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60승 64패 2무로 5위를 차지했다. 창단 이래 최하위 기록. 또한 11년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도 실패했다.

삼성은 창단 초기부터 풍부한 지역팜 덕분에 별다른 노력 없이도 좋은 자원을 모을 수 있었지만, 1980년대 후반 이후로 점점 자원이 말라가고 있었다. 구단에서는 나름대로 2군 선수들을 미국이나 일본 교육리그에 파견하는 등 노력을 하긴 했지만, 코칭스태프 차원에서의 제대로 된 선수단 리빌딩은 지지부진하면서 결국 한계에 봉착하고 말았다.

4 선수별 개인 성적

  • 진한 표시는 리그 5위내 성적.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4.1 투수

  • 우완
 이름경기수선발등판이닝세이브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12이태일212012861003.381204260
17박충식3226203⅓
(3위)
14
(공동 6위)
832.35
(2위)
17438130
(7위)
20이용철403⅓00010.80722
25김종국101⅔00016.20311
39최용희62231215.48261515
30김상엽7424⅔2204.74231721
31김승남25260⅔1313.86544135
33류명선131382544.26421219
39박종철2020000.00010
48손영철3040009.00435
52오봉옥193330436.82461713
60곽채진14845⅓2203.57323828
67김인철13528⅔0225.02351616
75최한경41
(6위)
5101⅔679
(8위)
3.288445102
76조문식100⅓00054.00210
77이상훈27270⅓2204.48752835
  • 좌완
 이름경기수선발등판이닝세이브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14성준2624152⅓14
(공동 6위)
803.371306846
19감병훈301⅔0000.00101
28김태한3023176⅓10912.76
(8위)
14674121
(10위)
47박용준11118⅔0001.931567

4.2 타자

  • 포수
 이름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
2박선일96177.2324180216162
22이만수109233.253591401237240
23김성현101250.27669101530262
38임채영52.0000000000
44박종호811.1822000221
49최형현1815.0000000000
  • 내야수
 이름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
1류중일36131.3284383422225
5김성래105276.246681011443393
6강기웅107332.244811234363512
10양준혁123427.300
(8위)
128
(6위)
21
(9위)
119
(4위)
87
(1위)
62
(10위)
15
15김태균65139.2453480217101
42김태룡741140.2372720217151
50김한수103279.272761321031416
54강두곤79.2222000001
56정경훈89300.25075611294329
(5위)
57이동수614.2143001120
-최병국57.1431000000
  • 외야수
 이름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
3최찬욱1216.0000000020
4최홍주39.0000000010
8김실115337.27392115
(3위)
333514
11정영규59127.236306226140
24강태윤3568.30921401830
26최익성11.0000000000
35한기철8361.262163017147
37신동주2532.1886100030
40이종두126417.27111315117
(6위)
525912
45강종필6156.232131013134
46동봉철100319.254811225334415
61박규대22.0000000000

5 수상 및 기록

  1. 그것도 최용희의 부친이 직접 준 비디오테이프 1개가 전부였다.
  2. 롱비치주립대 역대 단일시즌 다승 1위. 2위는 2004년 15승 1패를 기록했던 제러드 위버. 다만 승리를 제외한 다른 기록은 위버 쪽이 더 낫고, 위버는 2003년에도 13승을 기록했다.
  3. 최용희는 입단 후 어깨 부상을 당해 한동안 재활했는데, 재활하는 동안 운동을 마치고는 혼자서 금호강가에 가서 그나마 입에 맞는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외로움을 달랬다. 이를 본 삼성 팬들은 외국에서 거액을 주고 데려온 선수가 유유자적 강가에서 삼겹살 파티를 즐긴다고 오해했지만, 다행히 어떤 스포츠신문 기자가 이런 최용희의 사연을 취재하면서 오해가 풀렸다. 그런데 왜 굳이 남들 다 보는 밖에서 삼겹살을 먹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