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상

1 일반적인 의미

여자상업고등학교의 줄임말. (여자고등학교 + 상업고등학교)

2 강태공의 이명

강상 항목 참조.

3 후한 말의 원상 수하 장수

呂翔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원상의 수하 장수. 후한서의 원소전에는 고상(高翔)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정사 조조전, 원소전 등에는 여상으로 기록되어 있다.

203년 원상원담을 공격하고 있을 때 조조가 원담의 원군으로 와 원상이 퇴각하게 되는데, 이 때 여상은 여광과 함께 동평에서 반란을 일으켜 양평을 점거한 다음 조조에게 귀순하여 열후에 봉해진다. 더 중요한 점은 여기서 멍청한 원담은 포위가 풀리자 여광, 여상에게 인수를 파서 주는데 이 둘은 바로 조조에게 이 인수를 보여주어 조조는 원담의 배신을 확신하게 되고 이것으로 기록 끝.

삼국지연의에서는 여광과 세트메뉴가 되어 활약하며 여광의 동생이라는 설정이 추가되어 있다. 원상이 원담을 구원할 때 선봉으로 나와 3만의 군사를 이끄는 것이 첫 등장. 그러나 다시 형제들끼리 싸우자 원담을 공격한다. 원상의 뒤를 쫓으려는 원담을 여광은 왼쪽에서 여상은 오른쪽에서 튀어나와 복병으로 원담을 포위한다.

그러나 원담의 설득과 더 이상 원상에게 있어봤자 얻을 게 없다는 생각에 원담에게 항복했다가 원담은 이 둘 보고 자신이 아닌 조조에게 항복하라고 하는데, 조조는 이에 여광과 여상을 중매인으로 삼아 자신의 딸을 원담에게 출가시키기로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곽도는 대장인을 파서 여광과 여상에게 보내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원담은 곽도를 믿고 그대로 실행하지만 이미 조조 밑에서 후로 봉해진 여광과 여상인지라 바로 조조에게 그 도장을 보여준다. 다 망한 원씨가문의 대장군직을 받는 것보다 승리가 확실한 조조의 부하로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항복한 후에 초촉, 장남, 여광, 마연, 장의 등과 함께 유주를 공격한다.

하북을 평정한 이후에는 조인, 이전, 여광과 함께 번성을 지키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여광과 함께 요즘 유비가 나댄다면서 자신들에게 군사를 주면 신야를 점령하고 오겠다고 한다. 조인은 이에 진짜로 군사 5천을 건네주어 유비와 붙지만 여광은 전투 시작하기도 전에 일기토로 조운에게 끔살. 여상은 놀라 도망치다가 관우군의 복병의 공격을 받아 도망쳤지만 결국 장비의 복병을 만나 장비의 창에 사망한다.

3.1 미디어 믹스

삼국지 12,13

삼국지 시리즈에도 등장하며 무력 70을 겨우겨우 찍는 능력치를 대체적으로 지니고 있다. 형인 여광과 거의 비슷한 능력치. 통솔과 무력을 제외한 기타 능력치와 의리는 거의 최하위급으로 신탐 신의 형제와 비슷한 취급. 형제가 쌍으로 배신했으며 그 배신도 한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64/64/14/28의 3류 무장. 여광과 함께 돌파, 기사, 몽충을 가지고 있어서 쓸 수는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56/69/13/19/22로 쓰레기 무장. 특기라고 하나 있는게 치안인데 통솔이 56인지라 없는 것보다 조금 나은 수준.

삼국지 영걸전에서는 남양 전투에 등장하여 조운한테 일기토로 썰린다. 능력치는 당연히 구리고 클래스는 흉적.

삼국전투기에서는 여광과 함께 천원돌파 그렌라간죠건 바크사&바린보 바크사로 나온다. 덧붙이자면 타이틀컷에 등장했을 때에는 위의 고상이라고 쓰여 있었다는 기록 때문인지 둘이 형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루머가 있다고 쓰여 있다.

4 후한 말 조조 수하 장수

呂常

생몰년도 미상

219년에 양양을 지키고 있었는데, 우금의 지원군이 한수의 범람으로 패하자 관우조인이 지키고 있는 번성과 양양을 동시에 포위한다. 그러나 여몽이 관우의 기반을 취하자 관우가 퇴각하면서 양양의 포위는 풀렸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인의 부장으로 관우가 공격할 때 조인이 하후존, 적원 등을 이끌고 나갔다가 두 장수를 잃고 번성으로 철수했는데, 관우가 강을 건너 번성을 공격한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조인에게 수 천 명을 주면 양강에서 적을 막겠다고 나섰다.

만총이 조인에게 굳게 지켜야 한다고 만류하자 병법에 적군이 강을 반 건넜을 때 칠 수 있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적군이 성벽 아래의 해자에 이르면 막기 힘들다고 주장해 조인이 군사 2천 명을 줬다.

여상은 군사 2천 명으로 나가서 관우와 싸우려고 했지만 군사들이 관우의 위풍에 눌려 싸우지도 않고 도망가자 달아나는 부하들을 향해 고함을 쳤지만 멈춰 세울 수 없었으며, 결국 관우의 공격으로 군사 반 이상을 잃고 번성으로 철수했다.

코에이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3에 등장한다.

5 후한 말의 인물

呂常

생몰년도 미상

여예의 아버지.

후한 조정이 청류파와 탁류파의 대립 등으로 중앙 정계가 혼란스러워지자 이에 싫증난 유언이 조정에서 멀면 멀수록 힘을 키우기가 쉬울 것이라 생각해 처음에는 교주로 가려고 했다가 동부가 익주에 천자의 기운이 있다는 도참설을 이야기했다. 이에 유언은 동부의 말에 따라 188년에 익주로 들어가는데, 이 때 여상은 유언을 호송했고 유언은 익주를 평정했다.

이후 유언이 장로한중에 파견해 포야곡도를 봉쇄시켜 조정과의 연락을 차단해 중원으로 가는 길이 끊겨버렸고, 이로 인해 여상의 아들 여예는 어려서 고아가 된다.

유언을 호송한 것으로 볼 때 관직을 지낸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한 기록이 없어 어떤 관직을 지냈는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