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투어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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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나이 든 후 헤이하치
Arthur Schopenhauer[1]

1788년 2월 22일 - 1860년 9월 21일

1 본문

5분사탐-윤리 - 16강 쇼펜하우어의 인생관 _#001

근대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천재 철학자이자 예술영역에까지 영향력을 끼친 독일의 철학자.

염세주의자로 유명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생철학, 즉 인간의 삶에 집중한 철학의 창시자이다. 2000년 서양철학 전통을 정면으로 들이박은 최초의 인물. 후에 서술하겠지만 칸트의 사상과 더불어 인도철학의[2]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고전학자였던 프리드리히 니체는 쇼펜하우어를 접한 뒤 엄청난 영향을 받고 고전학자의 영역을 뛰어넘어버렸다.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 톨스토이, 아인슈타인, 바그너와 비견되는 20세기 철학 문학 예술에 거대한 영향력을 떨친 철학자.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의외로 그는 부모의 유산을 받아서 즐겁게 살고 있었는데, 그 동안의 사색을 글로 연재해서 오늘과 같은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는 말년에서야 자신이 명성을 얻었다는 걸 알았으며 이를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자신의 명성에 지나칠 정도로 신경쓴다는 뜻의 쇼펜하우어 증후군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 단순히 명성을 쫓았다기보다는 그만큼 자신의 사상이 많은 사람들에게 퍼지기를 기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건 모든 사상가가 어느 정도씩은 다 가지고 있는 마음이다.[3]

이미 언급했듯이 니체는 쇼펜하우어를 사숙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그의 영향이 없었으면 나오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4] 니체는 반시대적 고찰에서 자신의 철학을 형성해주고 발전시켜준 쇼펜하우어를 기리며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를 집필한 적이 있다.

여성에 대해서는 말 그대로 치를 떨었으며, 자신의 저서에서도 사랑은 성욕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5] 일화에 따르면, 사색을 하던 도중 여성들이 시끄럽게 수다를 떨어 방해받자, 쇼펜하우어는 당장 조용히 해달라고 신경질을 냈지만 여성들은 무시하고 계속 수다를 떨었고, 성질을 이기지 못한 쇼펜하우어는 그 중 한 여성을 창문 밖으로 내던져 버렸다고 한다. 이후 소송까지 간 끝에 오랫동안 병원비를 대느라 고생했다는 후문.

2 사상

모든 현상은 삶에 대한 맹목적인 의지가 드러난 표상이라는 것이 그의 사상의 요점이다. 현상의 배후에 이데아 같은 실체가 따로 있다는 것을 부정했다. 현상을 나타내는 실체가 바로 의지라는 것. 이렇게 되면 신이나 천당 같은 것도 부정된다.

젊은 나이에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라는 책을 썼는데 철학을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명서이다. 특히 실존 철학과 프로이트 심리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가 염세주의자로 알려진 이유는 사후세계의 구원 같은 헛된 희망이나 낙관주의를 부정하고, 고통으로 가득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사상은 불교의 일체개고(一切皆苦)와 거의 흡사하다. 하지만 불교가 염세주의가 아니듯이 그의 사상도 염세주의가 아니다.
불교에서 고통의 원인을 집착이라 말하고 집착을 끊음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본 것처럼, 그 역시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맹목적인 의지의 허망함을 인식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사실 그의 철학은 의지를 강조하는 것처럼 알려져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넘어서는 인식의 힘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그러한 인식을 통하여 고통스런 세상에 대해 초연하면서도 명랑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 본 것이다(물론 가장 좋은 것은 처음부터 의지에 속박되지 않는 것,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불교와 인도철학에 공감한 이유이다. 반면 니체는 그의 철학을 계승하면서도 이 점에 반대하여 삶의 의지 자체를 긍정하려는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

그러나 쇼펜하우어의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몇몇 사람들이 염세주의에 빠져 자살한 경우가 있었으나[6], 결코 쇼펜하우어는 죽고 싶어 안달난 사람이 아니었다. 콜레라를 두려워해서 다른 나라에서 몇십년을 사는가 하면, 호신용 권총을 침대 옆에 두고 자며, 묵던 여관에서 불이 났는데 가장 먼저 꽁무니를 뺀 사건이 있다고 한다.
쇼펜하우어에게 자살이 해답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자살이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이지만 정작 그 후에 당사자는 그것을 인식하지를 못하게 된다는 점에서 어리석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 앞의 고통을 마주하지 않고 단순히 피하려고 자살하는 것은 여전히 어떤 맹목적 의지에 지배당하는 것이며, 그 자체가 동물적이고 저급하다는 것이다(물론 본인이 그랬던 것처럼 고통스런 상황을 피하려 노력하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겠지만). 그는 절대 자살하지마라! 는 식으로 말하지도 않지만, 그것은 결코 최선의 행위가 아닌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자신을 지배하는 의지 자체를 인식함으로써,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고통을 말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고통의 '초월'을 지향한다. 이 부분이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안타까운 점이다.

쇼펜하우어는 국내에서 거의 읽히지 않는 작가이고 연구도 전무하다. 특히 그가 20세기에 니체에게 영향력을 내어준 직후에 한국 철학계에 받아들여진 경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니체가 쇼펜하우어를 완성하고 극복했기 때문에 쇼펜하우어는 읽을 필요가 없다(!)는 철학자들도 있는 실정이다. 그의 주 저서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2015년 3월에서야 홍성광이 번역한 번역본이 을유문화사에서 완역되었다.[7] 그를 스타로 만들어준 (한국에서는 인생론이라 번역되는) 저서도 30% 이상 번역된 것이 없다. 그 중 최악은 저대중들을 위해 쓴 저작 속에서도 자극적인 부분만 짜깁기해 팔아먹는 실정이다. 그는 염세주의자이기보다는 도덕을 추구한 현실주의자였다.

칸트 사상과 우파니샤드에 영향을 받았다 말한 바 있으며[8] 동시대 인물인 헤겔을 매우 싫어했다. 자기 개에게 헤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말도 있으나 진짜 개이름은 아트만[9]이었다.

쇼펜하우어는 서양철학 전체를 다 까는 사람이다보니 그의 사상과 정반대되는 인물이었던 헤겔에게 도전한 적이 있었다. 헤겔보다 꿀릴 게 없다고 생각해서 같이 베를린 대학의 강사로 재직할 때[10] 헤겔과 같은 시간대에 강의를 열었으나, 헤겔은 당시 최고의 철학자로 이미 명성이 자자했던 데 비해 쇼펜하우어는 거의 듣보잡에 가까웠다. 당연히 수강생 숫자 배틀에서는 쇼펜하우어가 완패. 그리고 쇼펜하우어는 교직에서 물러났다. 철학자들의 캐삭빵

3 영향[11]

3.1 영향을 받은 인물

3.2 인물들의 언급과 일화

3.2.1 톨스토이

레프 톨스토이는 쇼펜하우어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언급했다고 한다. 또한 톨스토이의 서재에는 쇼펜하우어의 초상화만 유일하게 걸려 있었다고 한다.

"나는 쇼펜하우어가 인간들 중 가장 천재적인 인물이라 생각하네"

3.2.2 바그너

리하르트 바그너는 쇼펜하우어에게 자필 헌사를 보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음악극인 '니벨룽의 반지'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그것을 보냈다고 한다. 바그너의 후기 작품, 그러니까 트리스탄과 이졸데,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파르지팔 등에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어느정도 수용되어있다. #

하지만 쇼펜하우어의 반응은 그리 좋지 못했는데, 그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좋아했으며, 바그너의 대본을 보더니 그냥 시를 쓰는게 낫다고 했다(...)

3.2.3 키르케고르

쇠렌 키르케고르는 자신의 일기장에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대한 감동과 공감의 흔적을 남겼다고 한다.헤겔까인것도 똑같다

3.2.4 니체

프리드리히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발견한 후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그 충격에 대한 소감으로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겼다.

"매 문장마다 거부, 부정, 체념 등을 외치고 있었다. 나는 이 책에서 세계, , 고유한 정서를 볼 수 있는 거울을 만났다. 정말 대단한 만남이었다. 나는 아무런 경향성도 없는 예술의 꽃을 보았고, 질병치료, 추방과 도피처, 지옥천국을 보았다. 자기 인식에 대한 욕구가 밀려들었다."

그 후 니체는 생의 의지라는 개념을 적극 수용하여 자신의 철학에 써먹게 된다.

3.3 명언

희망은 마치 독수리의 눈빛과도 같다. 항상 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득히 먼 곳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희망이란 바로 나를 신뢰하는 것이다.
행운은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용기가 있는 사람을 따른다.
자신감을 잃어버리지 마라.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존중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시야의 한계를 세계의 한계로 간주한다.
Der Mensch kann zwar tun, was er will, aber er kann nicht wollen, was er will.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지만, 의지를 원할 수 없다.

기독교가 불교에 맞선다는 것은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다.

4 저서

5 관련 링크

  1. 독일어의 외래어 표기법상 쇼펜하워가 정확하나, 쇼펜하우어라는 표기가 굳어진 상태. 국립국어원에서도 쇼펜하우어가 정식 표기로 정해져 있다. 그런데 독일 초대 총리인 콘라트 아데나워의 경우, 아데나우어가 아닌 아데나워가 공식 표기다. 이거 이중잣대 아냐?
  2. 예로 우파니샤드.
  3. 실제로 쇼펜하우어 증후군이란 말은 잘 쓰이진 않는다.
  4. 여기서 나오는 차라투스트라는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 조로아스터'를 의미한다.
  5. 평생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았던 어머니와의 사이가 매우 나쁜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
  6. 이런 일화도 있다. 그의 사상에 경도된 학생들이 자살하는 사례가 빈번해 학교측이 우려를 표하자 이에 자살을 비난하는 논평을 냈더니 그의 제자중 한명이 그의 논평에 반발해 자살했다고...흠좀무.
  7. 2009년에 같은 출판사에서 먼저 출판되었는데 그 번역본에서는 칸트 철학 비판이 빠져있었다. 이번 번역본에서는 칸트 철학 비판을 추가하고 문장도 다듬었다.
  8.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서문에는 칸트를 모르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하고 있으며 우파니샤드에 관해서 자주 언급하고 있다.
  9.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로 자아라는 뜻
  10. 사실, 헤겔이 마련해 준 자리였다(...).
  11. 홍성광 옮김,『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주)을유문화사, 2009. pp 682~684
  12. 많은 유사과학자들이 그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의 "모든 진실은 세 단계를 거친다. 첫째, 비웃음을 당한다. 둘째, 거친 반대에 부딪힌다. 셋째,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를 자주 인용한다. 물론 지하에 있는 쇼펜하우어가 들으면 땅을 칠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