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숭의야구장 |
개장 | 1934년 (원 완공일) 1964년 (확장 공사 완공일) |
폐장 | 2008년 9월 5일 |
소재지 | 인천광역시 중구 도원동 7번지 |
홈구단 |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1982년~1999년) SK 와이번스(2000년~2002년) |
크기 | 좌우펜스 91m 중앙펜스 110m 펜스높이 1.5m[1] |
잔디 | 인조잔디 |
좌석규모 | 12000석 |
1 역사
1920년 숭의종합운동장이 완공된 후 1934년에 야구장이 건립되었다.[2] 한동안 인천 지역의 아마야구 팀들을 위해 쓰이다가 1964년 새롭게 단장했다. 그 뒤 프로 출범 전까지는 아마야구 위주로 야구장이 쓰였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당시 보조 구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흔히 도원야구장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바로 앞에 수도권 전철 1호선(경인선) 도원역이 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원야구장이라고 검색해도 이 항목에 들어올 수 있다.
1982년 KBO 리그 출범과 함께 인천 지역 연고팀들의 홈 구장으로 이용되었다. 다만, 인천 지역 야구팀들의 역사가 워낙 안습한지라 가을잔치의 영광을 많이 누리지는 못했다. 전력이 워낙 약했던데다 구장 크기가 작고 펜스까지 너무 낮아 구단의 주인이 바뀌고 감독이 바뀔 때마다 대책을 세우게 되었다. 구장 크기를 넓힐 수는 없었으므로 펜스를 가지고 대책을 세웠다. 김성근 감독이 태평양 감독 시절 펜스 위에 철망 7m를 설치해서 펜스를 무려 8.5m로 바꿨다. 그러다가 후임으로 들어온 정동진 감독 시절 철망 높이를 5m로 낮췄고, 김재박 감독 시절에 3.5m로 낮춰서 최종 펜스 높이가 5m 가량이 되었다.
지금 경기하면 한경기 홈런수가 평균 4개쯤 될정도로 극 타자친화적인 구장이었다.그야말로 엄청 짧으니까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구장을 홈으로 썼던 구단들은 리그 톱클래스 수준의 물방망이(...) 팀이었기 때문에[3] 작은 홈구장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다. 안습
1.1 현대 유니콘스 시절(1996~2000)
현대 유니콘스 등장과 함께 구장은 대대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현대가 돈을 들여 구장을 개보수했는데, 먼저 비만 조금 오면 경기를 치를 수 없던 배수 시설을 완전히 뜯어 고치고 잔디보다 모래가 더 많아 흉해보였던 외야 그라운드에 인조잔디를 깔았다.[4] 이 과정에서 일본 야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흑토를 내야에 깔았다. 전광판도 단순히 볼카운트만 표시되던 것에서 애니메이션까지 나오는 것으로 새롭게 고쳤고, 관중석도 새단장했다.
하지만, 새단장해봤자 너무 낙후되어서 그리 티가 안 났다는 것이 문제였다. 현대에서 아예 근원적으로 개조할 구상도 있었다는데, 결정적으로 이 건물이 무허가 건물이라 건축허가가 나오지 않으면서 (...) 무산되었다. 무허가로 40년 넘게 쓴 거 자체가 용한 일이다.
출처 : 짠물야구[5] |
작은 규모라서 그런지 구장으로 들어올 수 있는 소위 '개구멍'이 있었으며, 심지어 구장 벽을 타고 올라가 구장에 출입했다는 도시전설이 있기도 하다. 역시 도원전사답다. 거기에 우측 펜스 뒷편 광성고등학교 쪽으로 언덕배기가 있는데 이곳에서 야구장 쪽 조망이 좋은지 여기서 공짜로 경기관람을 하던 도원전사야구팬들이 있었다. 어어?!
1.2 SK 와이번스 시절(2001~2002)
현대 유니콘스가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발표하고 야반도주한 뒤 SK 와이번스가 들어왔다. 21세기 이후 한화 이글스가 막장 투수진을 가지고도 깨지 못한 기록이 있는게 그게 피홈런 기록이다. 2000년 195피홈런을 기록했는데 그때 인천에서 115피홈런을 기록했다.(원정80) 홈경기 115피홈런도 당분간 깨지기 힘든 기록. 얼마나 친 타자구장인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 그러나 광주의 234홈런을 깨지는 못했다. 당시 SK타자들이 막장이었으니.. 그리고 오랜 공사 끝에 문학 야구장이 완성되자, 2002년을 끝으로 프로 경기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6] 그 뒤 미추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와 SK 와이번스 2군 경기장으로 사용되었다.
1.3 숭의야구장이 남긴 기록들
초창기 숭의야구장의 홈팀인 삼미, 청보, 태평양은 상대적으로 약한 전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 경기장에서 안습의 기록을 적지 않게 양산했다. 물론 팬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초특급 기록도 간혹 탄생했다. 예를 들어 밑에서 후술할 임호균의 최소투구 완봉승 등의 기록이 그렇다. 더불어 KBO 리그 최초의 기록이 숱하게 탄생한 기록의 산실이기도 하다.
- 1983년 9월 26일 : '너구리'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삼미 장명부가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두면서 한 시즌 개인 최다승인 30승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2023-08-03 22:58:52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은 투수 개인 시즌 최다승 기록이며 그 중 28선발승은 KBO 최다 선발승 기록으로 남아 있다.
- 1985년 4월 30일 : 무려 18연패에 빠졌던 삼미 슈퍼스타즈가 MBC 청룡을 상대로 4:0 승리를 거두며 길고 긴 연패를 끊어냈다. 그러나 이날 승리 다음날 삼미그룹은 야구단 매각을 발표했다. 안습
- 1986년 7월 15일 : KBO 리그 최초로 두 명의 투수가 합작해 매 이닝 삼진아웃을 잡아낸 경기. 주인공은 최계훈과 조병천.
- 1986년 7월 27일 : 해태 타이거즈와 청보 핀토스의 경기에서 KBO 리그 최초로 15이닝 0-0 무승부가 나왔다. 더 무서운 것은 이날 양팀에서 등판한 두수는 총 2명. 해태 선발 차동철[7]과 청보 선발 김신부[8]는 서로 15이닝동안 혼자 피칭을 했다. ㅎㄷㄷ
- 1987년 8월 25일 : 청보 핀토스의 임호균이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 KBO 리그 역대 최소투구 완봉승(73구)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 역시 2023-08-03 22:58:52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 1992년 8월 19일 : 스위치 히터인 OB 베어스의 장원진이 KBO 리그 최초로 양쪽 타석에서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기록은 안타와 2루타.
- 1994년 10월 22일 : 1994년 한국시리즈에서 LG 트윈스가 태평양 돌핀스를 4승 무패로 꺾고 두 번째 우승을 기록했다. 이것이 2023-08-03 22:58:52 현재 시점 기준 LG 트윈스의 마지막 우승.
- 1996년 10월 20일 : 현대 유니콘스의 정명원이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 KBO 리그 역대 최초로 한국시리즈 노히트 노런의 대기록을 세웠다.
- 1998년 5월 14일 : 해태 타이거즈의 이대진이 KBO 리그 역대 최다 연속타자 탈삼진(10개)를 뽑아냈다. 일명 '쿨바에서 쿨바까지'로 일컬어지는 기록.
- 1998년 10월 30일 : 1998년 한국시리즈에서 현대 유니콘스가 LG 트윈스를 4승 2패로 꺾고 인천야구 사상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 2000년 10월 11일 : 현대 유니콘스가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KBO 리그 역대 최초로 한 시즌 90승의 위업을 달성한다. 이 해 현대는 91승을 거뒀는데 이는 KBO 리그 사상 단일 구단의 한 시즌 최다승 기록이다.[9]
- 2001년 9월 22일 : SK 와이번스의 페르난도 에르난데스가 KBO 리그 외국인 선수 사상 최초로 '200이닝-200탈삼진'의 기록을 달성했다.
1.4 철거
2008년 인천광역시의 도시재생사업 과정에서 이 지역이 재개발 대상이 되자 한국 야구사와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야구장은 옆의 종합운동장과 함께 철거되었다. 이후 이 지역은 숭의 아레나 파크라는 축구전용구장으로 변신, 인천 유나이티드의 홈 구장이 됐고, 총 4동의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온다고 한다. 그러나 주상복합 아파트는 경기 불황 등을 이유로 사실상 취소된 분위기...였지만 상가가 없는 그냥 아파트 6동이 건립될 예정이다. 이 아파트의 시공사는 서희건설. 단지명은 도원역 서희 스타힐스 크루즈시티.
인천광역시는 숭의야구장 철거 과정에서 인천 지역 아마야구 대체 구장 마련을 약속했는데, 인천대공원 근처에 짓는다는 말만 있을 뿐이다. 대체구장이라고 지은 것이 저 바다 위의 두바이송도 LNG 기지에 지은 것이니... 그 사이 SK 와이번스가 강화군 길상면에 SK 퓨처스 파크를 지었지만 숭의야구장의 대체 경기장과는 무관하다.
참고: 인천 도원구장 연고팀의 사건사고도원전사
2 트리비아
- ↑ 펜스가 낮아 여기에 철망을 덧댄 방식으로 경기를 치뤘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참조.
- ↑ 위 사진과 같이 내야를 잔디 없이 전부 흙으로 덮은 구장 형태는 오사카의 한신 고시엔 구장을 포함하여 거의 대부분의 일본 아마추어 야구장에서 제일 흔하게 볼 수 있는 구장형태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증명하는 셈이다. 사실 이런 형태의 경기장은 국내에도 꽤 많았다. 프로 1군 경기장 중에서는 동대문야구장과 옛 광주구장, 대전구장의 옛 그라운드 형태가 이랬다. 인조잔디를 깔기 전의 이야기다.
- ↑ 물방망이라는 이미지의 정점을 찍은 것은 태평양 돌핀스. 김경기와 김동기 외에는 이 구장 담장을 훌쩍 넘길 만한 타자가 거의 없었다.
- ↑ 프로 초창기에는 호스를 동원해 덕아웃 앞에 물을 뿌리면, 물이 빠지지 않아 경기가 취소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 그래서 붙은 오명이 '개구리가 오줌을 눠도 취소되는 야구장'(...)
아 이 망할 야구장 - ↑ 삼청태현부터 SK 와이번스에 이르는 프로야구 역사는 물론 프로 출범 이전의 인천야구 이야기까지 실려 있는 인터넷 상의 인천야구 박물관. 그러나 언젠가부터 업데이트가 안되고 있다.
사이트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다.현대 유니콘스에 극도로 적대감을 보이고 있어서 현대 시절부터 응원해 온 넥센 팬들에게는 다소 거부감이 일 수도 있다. - ↑ 2002년에 문학 야구장이 완성되었지만, 2002 월드컵과 일정이 겹치는 관계로 정규리그 홈경기 중 6경기는 숭의야구장에서 치렀다. 1군 정규 경기는 2002년에 마지막으로 열렸지만 시범경기로 폭을 넓히면 2004년 3월 14일에 열린 롯데와의 시범경기가 마지막 경기였다.
- ↑ 현 건국대학교 야구부 감독. 'SF볼의 마술사'로 불렸으며 해태 타이거즈와 LG 트윈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 ↑ 재일교포 출신의 언더핸드 투수. 청보 핀토스와 태평양 돌핀스를 거쳐 LG 트윈스에서 은퇴했다.
- ↑ 현대의 91승은 16년간 독보적인 기록으로 남아있었지만 두산 베어스가 2016년 9월 28일 대전 한화전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91승을 기록해 타이기록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