緣故地移轉
Relocation
목차
1 사전적 정의
연고지 이전, 또는 연고 이전은 혈통, 정분, 법률 따위로 관계나 인연이 맺어진 곳인 연고지를 옮기는 행위를 말한다.
과거에는 주민등록상 본적지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2 스포츠에서의 연고지 이전
사실 연고지 이전이라는 단어는 지역밀착이 강한 프로스포츠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이다. 구단을 소유한 구단주의 입김 또는 지자체+지역 주민의 비협조 등으로 이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기업형 구조를 가진 독립 리그형태의 운영 국가에서 특히나 자주 일어나는 모습들을 볼 수가 있다. 유럽 축구의 경우는 대부분의 구단이 지분은 외국인에게 있다고 해도 지역 기반으로 창단한 지역클럽이 많고 축구팀은 어지간히 큰 도시면 다 하나씩은 있기 때문에 연고이전할 곳이 없어서 못하는 상황이지만, 미국, 일본, 한국같은 기업형 리그에서는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도시로 연고지 이전을 감행하는 경우가 상당수이며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가장 인구가 많고 광고효과를 누릴 수 있는 서울특별시로 연고지 이전을 감행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을 가지 못하는 구단의 경우 서울 인근의 위성도시에 구단을 연고지 이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프로스포츠 팀이 연고지 이전을 하게 되면 그 파장은 상당히 크다. 사실 극단적인 경우가 아닌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프로스포츠 팀 정도면 경기 한번에 최소 1000명, 구장 규모에 따라 수천 수만명의 유료관중이 경기장을 찾아오게 되어있고 이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로 인한 경제효과가 생기기 때문에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연고지 이전 떡밥이 나오면 기존의 연고지 팬들뿐 아니라 리그 팬들이 들고 일어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며 이러한 경우에는 팀 성적에 상관없이 팀과 선수, 그리고 해당 팀 팬들까지 어마어마한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한국 프로스포츠 중에서는 K리그팬들은 유럽의 그것을 본받으려 애쓰는 탓에 연고이전에 특히 민감하고 격렬한 반응을 보인다. 2000년대 이후 연고지 이전을 한 성남 일화 천마, FC 서울, 제주 유나이티드 등의 팀을 패륜이라고 지칭하는 등 강도 높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연고지 이전을 했다고 무작정 비난 받지는 않는다.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광주 나산 플라망스처럼 경기장 사정이 좋지 않아 임시로 다른 연고지에서 홈경기를 가진 경우도 존재하며 성남 일화 천마처럼 라이트 시설이 없고 그런 낙후된 시설에서 더 좋은 조건의 연고지로 제안을 받아 이전한 경우도 있다.[1] 이러한 경우들은 어쩔수 없는 사정이기 때문에 팬들이 어느정도 이해하는 편. 그리고 대기업구단들이 전부 중소도시에 몰려있는 기형적인 K리그 구조에서 기업구단이 대한민국 수도이자 프로스포츠 최대 빅마켓인 서울특별시로 연고지 이전을 하여 프로축구 파이 확대와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축구인들과 K리그팬들도 많이 존재한다. 심지어 국내 축구 갤러리 같은 축구 커뮤니티에서에서는 대기업 구단-중소도시 위주, 시도민구단-대도시 위주의 기형적인 연고지 구조를 바로잡지 않고서는 K리그 흥행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치며 전면적인 연고지 재조정이라는 급진적인 방안까지 나오고 있다.
이외에 충주 험멜이나 고양 Hi FC, 대전 코레일 같은 사례도 있지만 전자의 두 팀은 아마추어 내지 실업 리그를 전전하던 시절 연고지를 옮겨다닌거라[2] 팬층이 거의 없다시피해 별 반응이 없다. 후자의 대전 코레일은 모기업 이전에 따라 대전으로 옮겨간 것이지만 원체 팬이 없는 실업 축구 무대이다보니 역시 큰 반응이 없었다.
뉴올리언스 세인츠처럼 팬들의 적극적인 반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3]으로 연고지 이전 떡밥을 잠재우는 경우도 존재한다.
3 대한민국 스포츠의 연고지 이전 사례
3.1 KBL/WKBL
3.1.1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2011년 모기업인 오리온이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연고지 이전에 대한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홈 관중들이 야구팀과 축구팀에 비해 너무 없다."라는 핑계로 결국 대구에서 고양으로 연고지 이전 했다. 다만 대구 오리온스 시절에도 대구시에 대한 연고정착 의지는 부족했는데 숙소와 훈련시설은 용인시에 있었고 구단 사무실은 서울특별시에 위치해 있었다. 그나마 용인시의 훈련시설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자 2010년 9월에 대구로 훈련장과 숙소를 이전했는데 1년후에 연고지 이전을 감행하였다.
3.1.2 구리 KDB생명 위너스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했는데, 너무 시설이 낙후하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구리로 연고를 이전했다.
그러나, 이후 배구의 대한항공-흥국생명, 여농의 신한은행이 그곳을 쓰는데다가 교통편도 좋은데 왜 그런짓을 했는지 아이러니. 게다가 현재의 구리체육관은 여자부 최악의 관중 동원력을 자랑한다.[4]
3.1.3 부산 KT 소닉붐
1961년에 창단된 중소기업은행 실업 농구단을 1997년 나산그룹이 인수, 광주광역시를 홈으로 사용하는 광주 나산 플라망스라는 이름으로 구단을 창단했다. 그러나 나산그룹이 2년만에 부도나면서 골드뱅크가 인수, 99-00시즌 이후 여수시로 연고지 이전을 했다. 그러나 골드뱅크-코리아텐더도 썩 좋은 사정의 팀이 아니라 더 나은 인수 기업을 찾기 위해 좀 더 큰 연고지로 이전하는 방안이 추진되었고 02-03시즌이 끝난후 부산광역시로 연고지 이전 했다.
수많은 연고지 이전 사례 중 이전 과정에서 잡음이 없었던 사례 중 하나인데 코리아텐더 구단 측이 "농구 밖에 모르는 선수들의 생존을 위해 여수를 떠납니다. 집안의 미래를 위해 가난한 딸을 부잣집에 시집 보낸다고 생각해주십시오. 그래야만 친정이 있는 서쪽 여수의 하늘이라도 바라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시민들에게 눈물로 호소했고 여수시민들도 "아쉽지만 이왕 큰 도시 가서 잘 되길 바란다"고 환송하며 훈훈하게 마무리한 바 있다. 결국 코리아텐더는 부산으로 연고지를 옮긴 뒤 초대형 무선 통신기업이었던 KTF에 인수돼 안정적 생존 기반을 갖추게 됐다.
이 당시의 인연으로 당시 부산 KTF 매직윙스는 2007~2008시즌 마지막 홈경기를 코리아텐더 시절 연고지였던 여수시에서 치르기도 했다. 감동적인 당시 경기 관련 기사.
3.1.4 부천 KEB하나은행
연고지가 멀리 있다 보니 이동 거리가 너무 길어서 홈, 원정 할 것 없이 선수들이 매우 힘들어했고, 그래서 결국 버티다 못해 비어있는 부천으로 가버린 케이스다. 이래서 수도권 몰빵이 일어나는 거다[6]
3.1.5 서울 삼성 썬더스
97년 프로농구출범 당시 연고지는 수원시였다. 그러다 00-01시즌이 끝난후 KBL에서 서울특별시를 연고지로 사용할수 있게 하자[7]당시 청주를 홈으로 사용하던 청주 SK 나이츠와 함께 서울 입성금을 지불하고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해 서울 삼성 썬더스가 되었다. 현재는 수원에서 삼성 썬더스 경기를 보러 가려면, 지하철을 타거나 수원 버스 3000(강남역)이나 777번,7770번(사당역)을 타고 2호선으로 갈아타면 된다.
3.1.6 서울 SK 나이츠
97년 프로농구출범 당시 연고지는 청주시였다. 그러다 00-01시즌이 끝난후 KBL에서 서울특별시를 연고지로 사용할수 있게 하자[8] 청주시의 지원 미비를 이유로 들어서[9] 당시 수원을 홈으로 사용하던 수원 삼성 썬더스와 함께 서울 입성금을 지불하고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해 서울 SK 나이츠가 되었다.
3.1.7 아산 우리은행 위비
대체 왜 이전했는지 이해가 안가는 사례. 여하튼 아산 이전으로 인해 WKBL 모든 구단이 한번이라도 연고이전을 하게 되었다.
3.1.8 울산 모비스 피버스
한국프로농구의 전설적인 팀이었던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10]가 2001년 해태 타이거즈를 기아자동차가 인수하면서 현대차그룹의 1사 1팀 정책에 따라 현대모비스로 운영 주체가 변경되어(인수 대금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연고지를 울산광역시로 옮겼다. 공교롭게도 울산은 현대모비스의 본사와 공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3.1.9 청주 KB 스타즈
연고지 때문에 속을 많이 썩힌 구단이다. 원래 연고지는 성남시였지만, 곧바로 천안시로 옮겼다. 국민은행 연수원을 연습장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내린 조치였다. 그런데 천안시에서 남자 배구단만 밀어주면서 체육관 대관을 해 주지 않으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연고지 이전을 단행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 연습구장인 KB인재개발원을 임시 경기장으로 사용하였다.[11] 청주시와 2년간의 협상 끝에 2011년 1월부터 청주에서 경기를 치루게 되었다.
천덕꾸리기 신세였던 천안과 달리 청주 첫 경기에서 매진을 기록하면서 성공적으로 연고 이전을 했다. 충청북도에 프로스포츠 팀이 없는 것도 이유겠지만, SK 나이츠의 청주 시절에 늘 만원사례를 이뤘을 정도로 농구 인기가 있다는 것도 이유다. 그런데 이게 오래 가느냐가 문제일 뿐. 그런데 2014-15 시즌 현재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듯 하다. 특히 3년차인 청주 아이유 홍아란의 맹활약으로 남자팬들을 많이 모으고 있다. "아란아! 나랑 결혼하자" 라고 써진 플래카드를 들고 응원하는 홍아란 선수 사생팬도 생겼다 카더라(...) 청주실내체육관은 부천 KEB하나은행의 부천실내체육관,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의 도원체육관과 더불어 WKBL에서 수용 인원이 3000명 이상인 구장이다.
3.1.10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
여기는 다른 팀과는 다르게 주민들에 의해 쫓겨난 케이스이다. 2004년부터 쓰고 있던 안산 와동체육관은 원래 지역민을 위한 생활체육용으로 지은 체육관이라 프로농구단이 쓰기엔 규모도 작고 관중석의 배치도 불편하며, 교통도 안좋은 곳이었다. 그래서 지역주민들이 체육관을 본래 목적대로 사용하게 해달라고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하였고, 결국 한계에 부딪혀 체육관이 남아도는 인천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그런데 도원체육관이야? 사실 그 사이 안산에는 상록수체육관이 새로 생겼으나, 이곳은 프로배구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의 홈구장이 되었다. 이는 경기장 이용 방법등 행정적인 부분에서 신한은행이 거부했던 조건을 받아들인 것도 있었지만, 안산시에 활동중인 생활체육 배구팀만 수십개일 정도로 프로팀만 없었을뿐 전부터 배구가 활성화되어 있다는 점도 한몫을 차지했다. 그래서인지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배구 경기 일부가 이곳에서 열렸다. 고향에서 경기하게 된 김연경이 펄펄 날았던 것은 덤.
3.1.11 전주 KCC 이지스
2001년 현대전자 소속이었던 대전 현대 걸리버스가 KCC로 주체가 바뀌면서 팀명 변경과 동시에 연고지를 전주시로 옮겼다. 연고지 학교였던 대전고등학교에서 프로농구 선수를 배출하지 못하게 되는 시기와 맞물린다.
3.2 V리그
3.2.1 GS칼텍스 서울 KIXX
- 인천광역시 : 2005 ~ 2009
- 서울특별시 : 2009 ~ 2012, 2015 ~
-
경상북도 구미시 : 2012-13 시즌 한정/경기도 평택시 : 2013-14 시즌 한정[12]
그냥 GS그룹의 서울 사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문제는 인천과 구미, 평택에서는 모조리 다 챔결 진출을 맛 봤지만 서울에서는 못 봤다는 건 함정.
3.2.2 경북 김천 하이패스
특이사항으로 연고 이전이 본사의 이동과 맞물린다. 이 때문에 떠돌이라 해도 좋을 만큼 연고정착이 잘 되어 있지 않다. 연고지 이전 후 이호 감독이 선수들과의 불화로 사퇴했음에도 건강악화라고 발표하는 병크를 저질렀다. 양치기
이 팀이 김천으로 연고이전해서 성남시에는 프로팀이 성남 FC 한 팀밖에 안 남았다. 그러나 신분당선 지하철을 타고 20분만 올라가면 프로야구 경기장과 프로농구 경기장 근처로 갈 수 있다.
3.2.3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KOVO 초대 총재가 김혁규였다. 경상남도지사를 역임한 인물이라 그분의 압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초창기에 아직 프로가 정착되지 않았던 시절에 일정도 제멋대로였던 상황에서 마산 연고지를 쓰다보니 이동 거리가 너무 길어서 홈, 원정 할 것 없이 선수들이 매우 힘들어했는데다가 당시엔 옆동네인 창원의 창원 LG 세이커스라는 큰 산이 있던 점과 결합 되면서 결국 버티다 못해 수원으로 가버린 케이스다.[14]
3.2.4 서울 우리카드 한새
- 우리카드는 2015~16시즌부터 장충체육관에서 경기하며 팀명도 서울 우리카드 한새로 바뀌었다. 그리고 아산시에는 프로팀이 하나도 없게 되었다가 같은 계열사 여자 농구단이 연고를 이전하며 아산시에도 다시 프로구단이 생겼다.
결자해지
엄밀히 말하자면 임시연고지였기 때문에 연고이전 사례에는 해당이 안된다.
3.2.5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위의 WKBL KB 스타즈처럼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의 등쌀에 밀린 케이스다. 초창기에는 현캐와 공동 연고를 쓰고 있었으나, 현대캐피탈에서 각종 개념찬 행동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평범하게 운영하고 싶었던 흥국생명과 계속 부딪히게 되었다.[15] 그래서 서로 불편해 하던 와중에 천안시 측에서 당연히 현대캐피탈의 손을 들어주면서 내쫒기게 되었다. NHL처럼 공생은 싫다 마침 서울에 우리캐피탈 드림식스가 창단하면서 자매 구단으로 GS칼텍스가 베팅하였고, 이참에 비게 된 대한항공 점보스의 짝으로 갈아타서 인천으로 옮기게 되었다.
3.2.6 성남 상무 신협
상무와 같이 마산을 연고로 마산실내체육관을 같이 사용하던 한국전력과 현대건설이 상당한 이동거리 때문에 수원시로 이전하였지만 이 쪽은 아예 홈경기 개최권을 포기하고 수년간 연고지 없이 원정경기로 치르다 2010년에야 국군체육부대가 있던 성남시[17]와 연고지를 맺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연고지 이전이라고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하지만 2012년 프로배구 승부조작 사건의 여파로 프로리그에서 퇴출되어 현재는 실업리그와 전국체전 등에서만 참가하고 있다.
3.3 KBO 리그
KBO 리그는 최초 창설 과정은 물론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해당지역에서 성장한 향토기업이나[18] 지역 출신 오너가 운영하는 기업[19]을 구단 운영 주체로 선정하는 등 강력한 지역 연고제 정착과 지역감정을 리그 탄생의 기반으로 했던 덕분에 연고지 팀에 대한 지역민들의 충성도가 국내 프로스포츠 중에서 가장 강력하다.
때문에 다른 종목과 달리 연고지 이전이 쉽지 않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연고지를 옮긴다고 하면 동네 민심이 해당 기업에 완벽히 등을 돌려도 모자랄 수준으로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따라서 구단 오너 측이 자의적으로 연고지를 옮긴 사례는 2000년 현대 유니콘스가 사실상 유일하다. 후술하겠지만 OB 베어스의 연고지 이전은 최초 서울을 연고로 창단하려던 계획을 KBO의 중재로 충청 연고 구단 창단으로 변환한 것에서 시작된다. 3년간 임시 연고지로 충청지역을 썼다가 KBO와의 약속대로 연고지를 옮긴 것이기 때문에 현대 유니콘스의 사례와는 조금 다르다.
NC 다이노스의 경우도 홈구장 부지 선정 문제로 연고지 이전을 할 뻔 한 적이 있다.
3.3.1 현대 유니콘스[20]
멀쩡하게 운영되던 팀이었지만 인천에서 인기가 없었고[21], 서울 지역을 원했던 현대그룹의 지시로 2000시즌부터 대뜸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 속에 결국 서울 입성은 미뤄졌고 해체될 때까지 수원시 수원 야구장을 임시연고로 삼았다.
수원에 있는 동안에는 공식적인 연고지가 없었으므로, 1차지명권이 소멸되어 KBO 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 구단이 해체될 때까지 1차지명을 할 수 없었다.
3.3.2 OB 베어스
한국프로야구 창단 당시 서울연고를 원했지만, 지역분배로 어쩔수 없이 대전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쓰게 되었다. 단 이때 한국야구위원회와 이용일 사무총장이 "3년후에는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게 해주겠다."라고 약조를 받았다.
1985년에 "이제 약속 지켜!"라며 서울특별시로 연고 이전, 동대문야구장을 홈으로 썼었으나 아마야구계의 반발이 심했고, 이때문에 1985년부터 1988년까지 임시로 잠실 야구장을 같이 쓴다는 조건으로 MBC 청룡이 홈구장으로 사용하던 잠실 야구장으로 구장 이전(?)을 시도했다. 그런데 1988년 후에도 아마야구의 텃세에 동대문야구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잠실 야구장에 눌러 앉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역사 때문에 잠실라이벌인 LG 트윈스 팬들과 두산 베어스 팬들은 사이가 영 좋지 못하고 LG 팬들은 두산 팬들을 '세입자'라고 부르며 그들에게 "진정한 잠실의 주인은 황족 엘지다!"라고 일상적으로 비아냥 대고 있다. 물론 두산 팬들은 팀 성적으로 맞대응 한다.(...)
3.4 K리그
타 종목과 달리 연맹이 삽질해서 옮길 생각 없는 구단들 내쫒았다 훗날까지 이어질 사단을 만들었다는게 특이점이다. 관중동원력 짱짱한 대도시에 열악한 시민구단이 들어서 있는 K리그의 이상한 구도를 이해하려면 이 연고이전에 얽힌 역사를 알 필요가 있다.
3.4.1 울산 현대
광역지역연고제를 도입했던 초기에는 인천과 경기도를 홈으로 하고 있었으나 1987년에 강원도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이후 1990년 현대의 본거지라고 할수있는 울산광역시로 연고를 이전해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3.4.2 FC 서울
- 충청도 : 1984 ~ 1989(6년)
- 서울특별시(동대문운동장) : 1990 ~ 1995(6년)
- 경기도 안양시 : 1996 ~ 2003(8년)
- 서울특별시(서울 월드컵 경기장) : 2004 ~
K리그 초창기인 슈퍼리그 시절, 광역연고제에 의해 충청도를 연고지로 하는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으로 출범하였다.[22] 그 후 1990년 서울로 연고이전하여 동대문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였으나, 6년만인 1996년 지방 축구열기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안양으로 연고지를 이전당했다.[23] LG, 일화, SK 모두 옮길 생각 전혀 없는 상태에서 쫒겨났고 이는 훗날 더 큰 논란을 불러온다. 그 후에도 다시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할 것이라는 소문은 끊임없이 나왔고 특히 2003년 후반기부터 언론을 통해 연고이전 기사를 흘리면서 언론플레이를 하곤 했다.[24] 2003년 말 서울 연고 신생팀을 창단하려던 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의 계획이 시민구단 창설에 부정적인 서울시의 태도로 수포로 돌아가고 타 연고지 구단의 연고이전론이 제기되자 가장 먼저 서울 연고이전의사를 내배쳤다. 같이 서울 이전을 간봤던 부산 아이파크가 신청 철회를 하자 단독 후보가 되어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연고이전 승인을 받고 다시 서울로 연고이전을 하였다. 일련의 과정들은 서울연고공동화정책 항목을 참조.
3.4.3 성남 FC
K리그 최초 단독으로 서울을 연고로 하는 일화 천마 축구단으로 창단하였지만 유공과 LG가 잇따라 서울로 연고이전을 하면서 서울 연고를 세 팀이서 나눠쓰게 된다. 1996년 지방 축구열기 활성화라는 명목하에 천안으로 연고지를 이전당했다. 그 후 천안시에서 천안오룡경기장의 부실한 시설과 더불어 성남시의 연고지 유치 제안을 받아들여 결국 성남으로 연고지를 이전 했다. 동대문 일화가 천안으로 밀려나는 과정은 서울연고공동화정책 항목 참고.
3.4.4 제주 유나이티드
-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경기도 : 1983~1986
- 인천광역시, 경기도 : 1987 ~ 1990(4년)
- 서울특별시 : 1991 ~ 1995(5년)
- 경기도 부천시(실질 연고지 서울특별시 목동운동장) : 1996 ~ 2000(5년)[25]
- 경기도 부천시 : 2001 ~ 2005(5년)
- 제주특별자치도 : 2006 ~ 현재
창단 후 K리그 초창기에는 서울, 인천, 경기 지역을 연고로 하는 유공 코끼리 축구단으로 창단하여 1987년 광역연고제가 시행되면서 인천, 경기 연고 구단으로 사실상 인천 연고 구단이 되었다. 그 후 1991년에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하였다. 서울 연고이전 후에도 인천, 경기 연고시절 전력 때문인지 수원 등 경기도 각지에서 순회경기를 치르곤 했다. 그러나 서울 연고시절은 잠시였고 5년만에 경기도 부천시로 연고지를 다시 옮기게 된다. 서울연고공동화정책 참조. 그러나 부천에는 프로경기를 치를만한 경기장이 없었고 따라서 목동운동장에서 한동안 홈경기를 치러야 했다. 이른바 '목동시대' 2001년에야 부천종합운동장에서 홈경기를 치르기 시작했다. 목동시절엔 윤정환을 필두로 한 리그 최상급 미드필더 진으로 좋은 경기력을 보였으나 니폼니쉬 감독과 윤정환이 떠나고 모기업 투자가 점점 줄어든 부천 홈경기 개최시절부터 팀 성적이 급전직하 했다.
축구단 못 마땅하게 여기던 SK그룹때문에 입지가 위태위태한 상황에서 제주도에서 프로축구단 유치를 하기위해 SK에 지원을 약속했고 이에 2006년에 제주도로 연고지 이전 하게 되었다.
3.4.5 충주 험멜
단기 연고 협약을 맺었던 의정부와 이천 두 곳 모두 지자체에서 연고 협약 연장을 원치 않았기에 2008년에 노원구로 이전했지만 노원구에서 홈구장으로 쓰던 마들 스타디움이 인조잔디 구장에 시설도 열악했고, 설상가상으로 2010년 실업축구연맹이 홈구장에 인조잔디를 금지하자 시측에서 적극적인 지원 의지를 보여온 충주로 옮겨가게 된다. 기업구단임에도 규모가 워낙 영세하다보니 지자체에게 갑의 횡포를 당한 격인데다가, 연고지를 옮겨다니던게 실업 리그 시절이라 그렇게 빡쳐하는 팬도 몇 없다.
3.4.6 고양 자이크로 FC
충주 험멜과 마찬가지로 실업 리그 시절 줄창 연고지를 옮겨다닌 사례. 2003 시즌은 익산 원불교 교도들의 항의로 전기 리그만 치르고 떠났다. 2004년에는 김포로 옮겨갔지만 역시 3년간의 연고 협약 기간 이후 연장에 실패, 와스타디움을 놀리고 싶지 않았던 안산시의 러브콜에 응하여 안산으로 보금자리를 옮긴다.
당시만 해도 할렐루야는 아슬아슬하게 우승에 실패하는 등 가능성이 있는 성적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안산은 이런 할렐루야를 유치하여 빠른 시일 내에 연고 프로 구단을 만들려고 했다. 이렇게 안산시가 계산적인 자세로 나오다보니 할렐루야의 성적이 시들해짐에 따라 지원 또한 줄어들었고, 2011년에 연고 협약 연장 문제로 잡음을 빚으며 관계가 파토나버렸다.
2013 시즌을 앞두고 마침 고양 KB의 해체로 연고 축구단을 잃어버린 고양에, 그것도 시로부터 지원도 얼마 받지 못하는 조건을 수용하는 저자세를 취하면서까지 옮겨갔으나 종교색 등으로 인해 환영은 받지 못하는 상황. 구단 사정도 그다지 좋지는 않다. 고양시에는 죄다 연고 이전 구단만 있다. 대교는 이천으로 이사갔다.
4 해외의 연고지 이전 사례
4.1 야구
4.1.1 대만프로야구
4.1.1.1 라미고 몽키스
2002년 대만의 양대리그중 하나였던 TML 소속의 "타이베이 타이양"과 "가오핑 레이공"이 합병한 디이진강이라는 팀이 전신이다. 이후 2003년에 대만의 라뉴 그룹이 인수, 라뉴 베어스로 창단되었고 최초 연고지는 가오슝이었는데 2011년 연고지를 가오슝에서 타오위안으로 옮기며 현재 이름인 라미고 몽키즈로 변경했다.
4.1.1.2 푸방 브레이브스
1993년에 타이중을 연고로 창단되었다. 이후 2012년에 모기업이었던 싱농그룹이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매각을 선언, E-United 그룹이 인수했고 인수와 동시에 연고지를 현재의 연고지인 가오슝으로 옮겼다. 그후 EDA 라이노스라는 이름으로 운영 되던 중 모기업이 변경되면서 연고지를 타이페이로 옮기게 되었다.[26] 해체후 재창단이 아니라 EDA 라이노스의 역사를 계승하기 때문에 연고이전 역사에 이름을 새기게 되었다.
4.1.1.3 중신 브라더스
4.1.2 일본프로야구
4.1.2.1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후쿠오카를 연고로 창단되었으나 모기업이 니시테츠 라는 지방 사철이라 돈도 없고 관중동원도 시원치 않은 판에 검은 안개 사건이라는 희대의 승부조작 사건으로 인해 직격탄을 맞게 되어 성적까지 밑바닥을 쳐버리고 결국 1972년을 끝으로 손을 뗐고 당시 롯데 오리온즈의 구단주 나카무라 나가요시가 인수해 현재의 넥센 히어로즈처럼 구단 명명권과 광고 수익 그리고 사재등으로 운영했으나 결국 gg를 치게 되며 1978년에 세이부 철도에 매각하게 된다. 세이부 철도는 매각 조건으로 사이타마로의 연고지 이전을 제시했는데 거절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결국 승인하고 1979년에 사이타마현으로 연고지 이전을 하게 되었다. 그 뒤 후쿠오카 팬들이 다시 그들 지역의 야구단을 얻는 데는 1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4.1.2.2 오릭스 버팔로즈
한큐 시절에는 오사카 근교의 니시노미야에 한큐 니시노미야 스타디움이라는 구단 소유의 전용구장을 보유하고 있었다. 니시노미야는 한신 고시엔 구장의 소재지이기도 하다. 한큐 니시노미야 스타디움은 고시엔에서 차로 불과 10여분 떨어진 거리에 한큐전철 니시노미야 기타구치역 앞에 있었다.[27] 구단이 한큐로부터 오릭스로 인수된 후에도 구단 매각조건에 따라 2년동안은 오릭스 브레이브스로서 니시노미야 스타디움을 사용했다. 그러다 1991년부터 구단 이름을 오릭스 블루웨이브로 바꾸고 홈구장도 당시 신축구장인 그린 스타디움 고베[28]로 연고지를 이전했다.[29] 그후 2004년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를 합병함으로써 구단 이름을 오릭스 버팔로즈로 바꾸고 긴테쓰의 홈인 오사카 돔을 주 홈경기장으로 블루웨이브시절의 홈구장인 홋토못토 필드 고베를 보조 홈경기장으로 사용하는 현재의 체제에 이르게 되었다.
근데 니시노미야든 고베든 오사카/고베 시절이든 다 인기가 별로 없는 건 확실하지 않나?
4.1.2.3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1950년 시모노세키를 연고로 다이요 훼일스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었는데 1953년 영화회사 쇼치쿠와 합병하면서 팀 이름을 다이요-쇼치쿠 로빈스로 바꾸고 쇼치쿠 본사가 있는 교토로 이전했다. 2년후 쇼치쿠가 구단 운영에서 손을 때면서 다시 다이요 훼일스라는 이름으로 돌아왔고 가와사키로 연고지를 옮겼다. 1978년 요코하마 스타디움이 건설되자, 떠돌이 생활하던 롯데 오리온스와 치열한 경쟁끝에 이곳을 홈구장으로 사용[30]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4.1.2.4 치바 롯데 마린즈
일명 집시 롯데라고 불릴정도로 연고지 이전을 자주 했다. 마이니치 오리온스, 다이에이 오리온스, 도쿄 오리온스 시절인 1950년부터 1972년까지는 도쿄구장이 홈구장이었으나 도쿄구장이 철거된후[31] 집이 없어져 1974년부터 1977년까지 도호쿠 지역의 미야기 구장을 임시 본거지로 두고 고라쿠엔 구장, 메이지진구 구장등을 떠돌아 다니며 홈경기를 치뤘다.[32] 이후 1978년에 "우리도 제대로 된 홈구장을 갖고싶다!"라며 신축된 요코하마 스타디움을 놓고 역시나 떠돌이 생활을 하던 타이요 웨일즈와 경쟁을 한 끝에 탈락(...) 결국 낡아빠진 가와사키 구장을 1978년부터 1991년까지 홈구장으로 사용했다. 이후 1990년 치바 마린 스타디움이 완공되면서 1992년부터 이곳으로 이전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보면 알겠지만 구단주의 욕심이 아니라 집이 없어서(...) 떠돌이 생활한 정말 안습한 연고지 이전 케이스다. 동정심이 들정도로.
4.1.2.5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1946년에 창단된후 여러 기업에 매각과 인수를 거쳤지만 연고지는 도쿄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같은 도쿄돔을 홈구장으로 쓰는 전국구 구단를 응원하는 팬들이 압도적이었고, 만년 비인기 구단의 설움을 누리고 있었다.[33] 결국 닛폰햄에서는 이러한 안습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실내 돔구장이 있음에도 야구단이 없어서 비어있는[34] 홋카이도로 연고지 이전을 감행하게 되며 이는 홋카이도 닛폰햄의 최고의 한수가 되었다. 또한 이를 계기로 '도쿄나 오사카 혹은 그 인근에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마인드가 무너지고 '지방이라도 지역민들의 사랑만이라도 차지하면 살 수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되고[35], 일본야구 팀명에 지역명이 하나둘씩 붙기 시작했다. KBL이나 V-리그는 이걸 보고 좀 배우길
4.1.2.6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1938년부터 1988년까지 50년의 시간동안 오사카를 홈으로 두고 있던 팀이었다. 난카이 전기철도가 모기업이었던 난카이 호크스는 팀의 에이스였던 노무라 카츠야가 1977년 떠난 이후로 B클래스(리그 4~6위) 비밀번호를 찍고 있었다.[36] 결국 1988년 구단 창단 50주년 기념(...)으로 매각을 추진했고[37] 일본의 유통업체 다이에가 인수해 1989년 후쿠오카로 연고지 이전 했다. 그리고 다이에는 당시 800억엔, 한화 8천억원을 직접 때려박으며 신식 돔구장을 지었는데 10만에 소프트뱅크에 기업을 매각했다. 돔 구장은 해외자본에의 매각을 거쳐 최종적으로 소프트뱅크 측에서 경영권을 인수하게 되었다.
4.1.3 MLB
4.1.3.1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브루클린 : 1893 ~ 1957
- 로스앤젤레스 : 1958 ~
1957년까지 뉴욕 브루클린에 있었지만, 뉴욕의 최강자 자리를 유지한 뉴욕 양키스의 인기에 밀려 흥행이 저조해지자 같은 문제로 고민하던 뉴욕 자이언츠를 꼬셔서 반대편인 서부로 연고지를 옮기게 되었다. 아래 자이언츠와 함께 미국 스포츠 프랜차이즈의 역사를 바꾼 연고지 이전으로 손꼽히며 메이저리그의 미국 전역 확대에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이다.
4.1.3.2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 로스앤젤레스 : 1961 ~ 1965, 2005~
- 애너하임 : 1966 ~
위 LA 다저스가 이전해오면서 확장프랜차이즈로 편입되었지만, LA 다저스의 인기와 위세에 밀려 위성도시인 애너하임으로 밀려난 케이스. 이때문에 LA란 이름도 쓰지 못하고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로 활동했다가 우회적인 방법으로 LA이름을 달게 되었다.
4.1.3.3 미네소타 트윈스
- 캔자스시티 : 1894 ~ 1900
- 워싱턴 D.C. : 1901 ~ 1960
- 미니애폴리스-세인트 폴 : 1961 ~
워싱턴 세너터스가 미네소타 주로 이전하면서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텍사스 레인저스가 알링턴으로 이전하기 전 같은 팀명을 사용하였다.
4.1.3.4 밀워키 브루어스
시애틀 파일러츠가 재정난으로 위기에 봉착하자 1970년 버드 셀릭이 투자자들과 함께 이 구단을 사들여 밀워키로 팀을 옮겼다. 팀을 잃은 시애틀은 1977년 리그 확장을 통해 시애틀 매리너스가 창단되어 자리잡게 되었다.
4.1.3.5 볼티모어 오리올스
4.1.3.6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4.1.3.7 시카고 화이트삭스
- 수시티 : 1894
- 세인트폴 : 1895
- 시카고 : 1900 ~
4.1.3.8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필라델피아 : 1901 ~ 1954
- 캔자스시티 : 1955 ~ 1967
- 오클랜드 : 1968 ~
4.1.3.9 워싱턴 내셔널스
4.1.3.10 텍사스 레인저스
4.1.3.11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보스턴 레드삭스에 밀려 흥행이 저조해지면서 1953년 밀워키로 연고지 이전을 하는데, 이는 1903년 메이저리그 체제 정립 이후 최초의 연고지 이전으로 이후 50년대부터 70년대 초까지 대대적인 연고지 이동이 일어나게 된다. 밀워키에서 우승을 1회 기록한 브레이브스는 1966년 다시 애틀랜타로 연고지를 이전하였으며, 1995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연고지로 삼았던 세 도시에서 각각 우승하는 기록을 남겼다.
4.2 아이스하키
4.2.1 NHL
4.2.1.1 뉴욕 아일런더스
- 유니언데일(뉴욕주) : 1972 ~ 2014
- 브루클린(뉴욕시): 2015 ~
구단을 매각하면서 연고지를 뉴욕시 브루클린으로 옮긴다. 사실 팀 뉴욕 아일랜더스라 뉴욕시(New York City)를 대표하는 구단처럼 보이는데 정확하게는 뉴욕 주(State of New York)의 롱아일랜드를 대표하는 팀이다[39]. 팀로고에도 롱아일랜드 그림이 그려져 있고. 게다가 연고지 이전 예정인 브루클린도 바로 옆동네이면서 롱아일랜드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연고지를 이전한다고 해서 이름이 바뀌거나 팬덤이 변하거나 하지는 않을 듯 하다.
4.2.1.2 뉴저지 데블스
최초 캔자스시티에 창설되었지만 캔자스시티 치프스가 버티고 있어서 1976년에 콜로라도주 덴버로 연고지 이전한다. 그곳에서 콜로라도 로키스로 팀명을 바꾸고[40] 노력을 해보지만 역시나 인기를 얻지 못하고 뉴저지주 이스트 러더퍼드로 연고지 이전 했다.
4.2.1.3 댈러스 스타스
인기도 없고 존재감이 미미한 팀이었기에 구단주 노먼 그린이 언론재벌 톰 힉스에게 매각한후 텍사스로 연고지 이전 했다.
4.2.1.4 위니펙 제츠
애틀란타는 전통적으로 미식축구와 야구가 강세인 지역이라 아이스하키팀이 장사가 잘 되지 않았고, 결국 10-11시즌을 끝으로 舊 위니펙 제츠가 떠나서(1996년 이전) 아이스하키 팀이 없던 캐나다의 중소도시 위니펙으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4.2.1.5 캐롤라이나 허리케인스
4.2.1.6 캘거리 플레임스
4.2.1.7 콜로라도 애벌랜치
4.2.1.8 피닉스 카이오츠
- 위니펙 : 1972 ~ 1996
- 피닉스 : 1996
캐나다 위니펙에 위치했던 팀이었다. 팀명도 위니펙 제츠로 현재의 위니펙 제츠와 동일한 팀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95-96시즌을 끝으로 애리조나주 피닉스로 연고지 이전 했다. 그후 아이스하키 팀이 없던 위니펙에 한 팀이 연고지 이전을 했는데 그팀이 바로 위에 언급한 위니펙 제츠.
4.3 미식축구
4.3.1 NFL
4.3.1.1 샌디에이고 차저스
- 로스앤젤레스: 1960 - 1961
- 샌디에이고: 1961 - 현재
로스앤젤레스 이전이 확정된 램스와 더블어 LA 이전의 우선 협상권을 가지고 있다. 협상 여하에 따라서는 램스와 홈구장을 공유하면서 LA로 복귀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 그러나 소속 주전 선수들 중에 쿼터백 필립 리버스를 위시하여 샌디에이고 도시 자체에 애착을 가진 선수들이 꽤 있어서 이 선수들이 LA 이전에 반발하고 팀을 떠나면 팀이 순식간에 약체화할 위험이 있다. 게다가 애초에 자신들이 낸 제안이 부결되고 램스의 제안이 채택된 상황에 불만을 가진 상황이라 LA 이전의 가능성은 꽤 불투명한 상황.
4.3.1.2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샌프란시스코에서 산호세, 정확히는 산타클라라에 새로 지은 리바이스 스타디움으로 홈구장을 옮겼다. 그러나 팀명도 샌프란시스코로 포티나이너스로 유지하고 있고 홈구장 위치만 옮겼지 연고지 이전이라고 생각 안하는 분위기다.
4.3.1.3 로스앤젤레스 램스
- 클리블랜드 : 1937 ~ 1945
- 로스앤젤레스 : 1945 ~ 1979
- 애너하임 : 1980 ~1994 (단, 팀 명칭은 계속해서 로스앤젤레스 램스)
- 세인트루이스 : 1995 ~ 2015
-
다시로스앤젤레스: 2016 ~
4.3.1.4 애리조나 카디널스
시카고 베어스에 밀려 만년 2류팀으로 전락해버리자 1960년에 시카고에서 세인트루이스로 연고지 이전을 감행했다. 그런데 인기를 얻고자 연고지 이전을 했는데 그곳에 이름이 똑같은 야구팀이 존재했고 "인기 얻으려고 팀이름을 따라짓냐!"라는 비아냥도 얻게 되었다.[43] 이팀 때문에 인기는 커녕 투명팀 취급을 받게 되었다. 연고지 이전한 팀 + 성적은 개판 인 상황에서 카디널스는 두번째 연고지 이전을 감행했고 1988년 현재의 연고지인 애리조나 피닉스로 연고지 이전하게 된다.
4.3.1.5 오클랜드 레이더스
이미 한번 오클랜드를 배신하고 로스앤젤레스로 튄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클랜드로 복귀하자, 홈 경기장인 오버스톡 닷컴 콜리시엄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모잘라서 다시 연고지 이전을 추진 중이다(...). 일단 램스, 차저스와 경합한 LA 이전은 구단주 회의 때 램스의 손을 들어주면서 차저스가 우선 협상자로 선정이 돼서 밀려나있지만 차저스가 협상을 포기하고 샌디에이고로 남기로 결정할 경우에는 레이더스에게 LA 이전을 놓고 램스와 협상을 할 권리가 주어진다. 따라서 아직은 LA 이전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상태. 게다가 만약 차저스가 LA 이전을 확정하면 차저스가 비우고 떠나는 샌디에이고로의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 그렇게 싫으면 오클랜드는 왜 다시 돌아갔니?
4.3.1.6 인디애나폴리스 콜츠
- 볼티모어 : 1953 ~ 1983
- 인디애나폴리스 : 1984 ~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역대 최악의 연고지 이전 작전이 벌어진 팀이다. 그야말로 연고 이전계의 안좋은 쪽으로 레전설이자 NFL판 북패 No. 1.[44] 볼티모어 시와 팬들 등에 칼빵을 놓고 튀어 버린 팀이다. 자세한 내용은 인디애나폴리스 콜츠 원조 야반도주 항목 참조. 아직도 미국에서 연고 이전의 가장 안좋은 사례로 남아있다.
4.3.1.7 볼티모어 레이븐스
정확하게는 해체 후 재창단이다. 쌍방울 레이더스와 SK 와이번스의 관계를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구단주였던 아트 모델이 클리블랜드시에 노후해가던 기존구장 대신 신축구장 건설을 요구했지만 시에서는 돈이 없다며 거절했고[45] 이후 신축구장을 건설해주겠다는 볼티모어로 기습적으로 연고지 이전 했다. 풋볼팀 야반도주에 두번이나 엮인 볼티모어[46] 레이븐스의 전신인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역사는 1999년에 재창단된 클리블랜드 브라운스가 계승하고 있다.
4.3.1.8 테네시 타이탄스
원래 휴스턴 오일러스로 창단되었는데 홈구장인 애스트로 돔이 노후화 되었고 이때문에 신축구장 건설을 요구했으나 당시 휴스턴 시장이었던 밥 레이니어가 거절을 했고 같이 애스트로 돔을 홈으로 쓰던 야구팀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엔론 필드라는 신축야구장 건설을 시에서 허가한 상태였다. 이에 시에 대한 불만이 커진 휴스턴 오일러스는 1997년 새로운 구장을 건설해주겠다는 테네시 주 내쉬빌로 연고지 이전을 감행했다. 단, 이전 시점에서는 새 구장이 막 삽을 뜬 상태라 첫 1년은 멤피스의 리버티 볼, 그 다음 해에는 내쉬빌의 밴더빌트 스타디움을 임시 홈으로 사용했다.
4.4 농구
4.4.1 NBA
4.4.1.1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 필라델피아(1946~1962)
- 샌프란시스코(1962~1971)
- 오클랜드(1971~2019)
- 샌프란시스코(2019~)
4.4.1.2 뉴올리언스 펠리컨스
1988년에 창단된 샬럿 호네츠가 2002년에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로 연고지 이전하면서 뉴올리언스 호네츠라는 팀명을 사용햇으며 이후 2013년에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로 팀명을 바꿨다. 2005년 카트리나로 인해 홈구장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을때 옆동네 오클라호마에서 2년 동안 홈구장을 빌려썼고, 이때 뉴올리언스/오클라호마 호네츠로 잠시동안 이름을 사용했다.
이후 호네츠는 2014년부터 원래 있던 지역의 상징인 펠리컨을 따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로 이름을 바꿨고, 2004년에 샬럿에서 호네츠를 대신해 창단된 샬럿 밥캣츠가 NBA와 뉴올리언스의 동의를 얻어, 샬럿 호네츠로 이름을 바꿨다.
4.4.1.3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4.4.1.4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4.4.1.5 브루클린 네츠
원래 뉴저지에서 창단을 했는데 당시 ABA소속이었기에 NBA의 견제로 제대로된 홈구장을 가지지 못했고, 결국 홈구장으로 티넥 무기고[47]를 쓰게 되었는데 이곳도 뉴저지의 서커스단이 공연을 한다는 이유로 ABA 플레이오프 자격을 박탈당한 일도 있었다. 그래서 "아 씨발 여기선 못해먹겠다."라고 해서 간게 뉴욕 롱아일랜드 아레나였고 그곳에서 NBA 소속이던 뉴욕 닉스의 압박으로 결국 팀명을 뉴욕이 아닌 뉴저지를 쓰게 되었다.(...) 게다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대학교 홈구장을 전전긍긍하다 1981년에 뉴저지 브렌던 번즈 아레나로 연고지 이전 했다. 그야말로 안습의 향연.
그리고 07-08시즌이 끝난후 세계 34위의 갑부인 미하일 프로호로프가 구단을 인수하고 뉴저지에서 뉴욕으로 연고지를 옮겼다.
4.4.1.6 애틀랜타 호크스
4.4.1.7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시라큐스에서 챔피언 결정전 단골손님으로 활약했으나 스몰마켓의 한계로 좀더 큰 도시로 나갔는데 그곳이 현재의 필라델피아였다.
4.5 축구
4.5.1 일본 J리그
4.5.1.1 도쿄 베르디
J리그 출범 당시 도쿄에 리그 규격을 만족시키는 구장이 없어 가와사키로 이전했으며, 2001년 도쿄로 돌아왔다.
4.5.2 중국 슈퍼리그
대륙 스케일 답게 과거에도 많았고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 힘들다. 유목민 광저우 부리, 베이징 런허, 상하이 선신, 허난 젠예, 저장 이텅 등 원래 연고지에서 대륙 한바탕 유랑하고 다시 원래 연고지로 복귀한 경우도 많고 거기에 갑급리그, 을급리그까지 포함시키면 독립 문서로 만들어야 할 정도이며 다 합치면 연고이전 발생횟수가 200회 정도가 된다는 얘기도 있다.
이런 연고 이전팀들에 대해서 중국의 축구팬들은 "유랑거우"(流浪狗-떠돌이 개새끼)라는 멸칭으로 부르고 있다.
결국 2016년 1월부터 중국축구협회는 연고이전을 금지시켰다. 하지만 금지시키는 기한까지 여러 도시, 여러팀에서 연고이전이 진행되었고 대표적으로 구이저우 런허가 베이징으로 연고 옮겼다(.....)
4.5.3 잉글랜드 풋볼 리그
4.5.3.1 윔블던 FC-MK 돈스
- 런던(윔블던 지역) : 1889 ~ 2003(114년)
- 밀턴케인스 : 2004 ~
잉글랜드의 전무후무한 연고지 이전팀. 원래는 런던의 윔블던 지역을 연고로 하는 윔블던 FC였으나 1991년부터 원래 구장인 플로 레인이 규격에 맞지 않자 크리스탈 팰리스의 홈인 셀허스트 파크를 빌려쓰다 2003년부터 회장이 바뀌어서 회장의 고향인 밀턴케인스로 연고지 이전을 단행했다. 열받은 윔블던 팬들은 AFC 윔블던이라는 팀을 새로 만들었으며, 이후 MK 돈스, MK 돈스 서포터즈 클럽, AFC 윔블던 서포터즈 클럽, 서포터즈 연합이 한 데 모여 토의한 결과 윔블던 FC의 역사를 AFC 윔블던이 계승하는 것으로 결론내렸다.
2014년 8월 공교롭게도 MK 돈스와 AFC 윔블던 두 팀이 리그컵 토너먼트에서 맞붙게 되었는데, 역사의 단절을 뜻하는 머플러를 들어올린 MK 돈스의 팬이 카메라에 잡혔다. 윔블던 FC 시절을 잊고 MK 돈스는 MK 돈스대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나가겠다는 것.[48]
연고 이전의 뒷처리가 참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하기에 한국 프로축구에서 벌어진 큼지막한 연고 이전사례 몇 건을 생각해보면 씁쓸해지지 않을 수가 없는데, 하루 아침에 지역 팀이 떠나갔음에도 팬들이 모여 다시 새로운 팀을 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기에 가능한 일.
결국 한국 프로축구는 3S 정책의 일환으로 기업들 옆구리 찔러 급조된 태생적 한계상 팬들의 사랑으로만 자생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저런 사단이 났다 할 수 있겠다. 게다가 프로축구연맹도 각 기업구단 오너나 관계자들이 총재를 비롯한 높은 자리를 돌려먹는 판국이라, 저런 수 차례의 연고이전건에서 중재는 커녕 지역밀착보다 이익을 더 우선시하려는 구단쪽의 동향을 그냥 손놓고 지켜보거나 알게 모르게 도와주는 경우가 많았다.
4.5.4 멕시코 리가 MX
4.5.4.1 클럽 넥카사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 시티를 연고지로 하다가 아과스칼리엔테스 로 연고지 이전을 하였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멕시코 축구 리그는 연고지 이전이 많은 편이다.- ↑ 당시 최신식 시설의 천안종합운동장이 건설중으로 조금만 기다리면 최신식 시설을 가질 수 있었다는 비판도 있으나 해당 항목에 보이듯이 천안종합운동장은 조금만 기다리면 되기는커녕 일화가 떠난 한참 후인 2001년 7월에야 완공되었다. 게다가 천안시는 오룡경기장을 축구전용구장으로 리모델링해 주겠다는 약속도 파기했기 때문에 이미 일화의 신뢰를 상실한 상황이었다.
- ↑ 3년 기본에 협약 연장이 지자체 의사에 달려 있는 걸 감안하면 실업 리그에서의 연고 협약은 거의 경기장 사용권이나 다름없다.
- ↑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연고지 이전 설이 돌던 2005년에는 초대형 태풍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를 휩쓸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지역민들의 민심 이반이 극에 달해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팀의 중대한 볼거리이자 밥줄인 세인츠가 연고지 이전한다면? 이 때문에 지자체에서도 필사적으로 구단을 붙잡았다.
- ↑ 이는 구리체육관의 턱없이 적은 수용 인원도 한 몫 하고있다.
- ↑ 단, 1998~99, 1999-00 시즌 중 일부 경기는 군산시 월명체육관에서 치렀다. 사실상 전북·전남 광역연고였던 셈.
- ↑ 수도권 몰빵의 핑계 중 자주 나오는 것들이 바로 수도권에 몰린 숙소와 이동 거리다. 거기다 지방에 숙소와 연습장을 옮길 의지가 있는 팀도 드물다.
- ↑ 당시 서울 연고권 취득 조건으로 'KBL 출범 이후 우승 경험이 있는 팀'으로 한정했다. 고로 이 당시 연고지 이전 권한을 갖고 있던 팀은 부산 기아(1997 원년리그 우승), 대전 현대(1997~1998, 1998~1999 우승), 청주 SK(1999~2000 우승), 수원 삼성(2000~2001 우승)만이 갖고 있었다. 이 중 SK와 삼성이 연고지 이전을 택했다.
- ↑ 당시 서울 연고권 취득 조건으로 'KBL 출범 이후 우승 경험이 있는 팀'으로 한정했다. 고로 이 당시 연고지 이전 권한을 갖고 있던 팀은 부산 기아(1997 원년리그 우승), 대전 현대(1997~1998, 1998~1999 우승), 청주 SK(1999~2000 우승), 수원 삼성(2000~2001 우승)만이 갖고 있었다. 이 중 SK와 삼성이 연고지 이전을 택했다.
- ↑ 청주체육관 지붕에 불이 난 적이 있다.
- ↑ 현대모비스에 인수되기 전 부산시의 비협조로, 홈구장은 부산에서 울산으로 옮긴 상태였다.
- ↑ 잘 알려져있듯, 이건 여자배구에서도 인기팀
이자 막장팀으로 잡아가던 흥국생명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흥국생명은 아예 충청도를 떠나 인천광역시로 이전. - ↑ 12.0 12.1 2012-13 시즌~2013-14 시즌에 본래 홈구장인 서울특별시의 장충체육관 개축으로 해당 지역을 임시연고로 삼고 있다. 때문에 완전한 연고지 이전은 아니다.
- ↑ 옛 마산
- ↑ 정확히는 당시까지는 한국전력이 프로팀이 아닌 아마 초청팀이었기 때문에 현대건설이 이전한 것이었고, 한전은 그냥 따라 간거다. 물론 어차피 한전의 경우에도 훈련 체육관이 의왕이니 땡큐이긴 했지만.
- ↑ 대표적인 예를 하나만 들자면, 현대캐피탈에서 정태영 부회장이 자기도 관중석에서 일반 관중과 같이 볼테니 권위를 타파하자고 나서면서, 2007년에 목 좋은 자리에 이른바 VIP들이 폼잡고 앉아 보라고 만든 본부석을 싹 없애버리고 거기를 팬들이 앉는 가족석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니 흥국생명 역시 어쩔 수 없이 VIP들이 그냥 일반 지정석에서 봐야 되었는데, 현캐같이 개념이 충만하지 못한
사실은 막장의 끝을 달리던흥국 프런트의 높으신 분들에선 당연히 그걸 불편해할 수 밖에 없었다. - ↑ 옛 마산
- ↑ 2013년 10월에 문경시로 이전했다.
- ↑ 삼성 라이온즈가 대표적 사례. 삼성그룹이 대구에서 탄생한 기업이라서 그렇다.
- ↑ 빙그레 이글스가 대표적 사례. 당시 제7구단 운영 주체가 된 한국화약그룹 자체가 충청지역 향토기업이었고 창단 당시부터 구단주를 맡고 있는 김승연 회장도 충청남도 출신이다.
- ↑ 삼미 슈퍼스타즈 - 청보 핀토스 - 태평양 돌핀스의 역사도 포함
- ↑ 워낙 숭의야구장의 시설이 낙후됐던데다 1998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둔 이후 첫 경기인 1999시즌 개막전이 매진되지 못한 것이 연고지 이전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자세한 내막은 삼청태 항목 참조.
- ↑ 청주시에 모기업인 럭키금성 공장이 있었다.
- ↑ 동대문운동장 시절에 사실상 창원시를 제2의 연고지로 삼고 순회경기를 여러 차례 치렀기 때문에 정작 새 연고지를 안양으로 정한 것은 의외였다. 훗날 서울 연고 복귀를 위해 인접한 지역을 택했다는 것이 중론.
- ↑ 심지어 2003년 가을에 안양 홈경기를 킥오프 5분전에 우천취소시켜버리는 초유의 사태도 있었는데 구단측이 안양에 마음이 떠났음을 보여주는 사례.
- ↑ 참고로 1996년부터 2000년까지는 명목상으로는 "부천시"를 연고로 하고 있지만 홈구장은 목동운동장으로 사실상 서울 연고 구단이었다. 2001년 부천종합운동장이 완공되면서 부천에서 홈경기를 치르면서 실질적인 부천 연고팀이 되었다.
- ↑ 중신 브라더스가 연고이전항 상황이라 프로팀이 없었다.
- ↑ 일본 프로야구 초창기 구단 창단을 주도했던 사철 회사들의 부대사업으로서의 프로야구 비즈니스 모델의 전형이다. 당시 사철회사들은 자신들이 건설한 철도 노선을 따라서 택지, 백화점, 문화시설 등을 건설함으로써 고정적인 승객들을 유치하는데 혈안이 되어있었는데 프로야구단 창단과 소속 프로야구단이 사용할 구장 건설 등도 그러한 비즈니스 모델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을 따라간 구단으로는 한큐 브레이브스를 위시하여, 한신 타이거스, 난카이 호크스, 긴테쓰 버팔로즈, 도큐 플라이어즈, 니시테쓰 라이온즈 등이 있었다. 현존 하는 구단 중에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의 잔재로서 남아있는 구단이 한신 타이거스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이다.
- ↑ 명명권을 매각한 현재는 홋토못토 필드 고베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 ↑ 한큐의 홈구장이던 니시노미야 스타디움은 오릭스의 고베 이전 후 경륜장으로 용도를 바꾸어 명맥을 유지하다가 2004년에 헐리고 한큐전철은 그 자리에 대형 쇼핑센터를 지었다.
- ↑ 다이요가 요코하마 스타디움을 차지할 명분은 충분했다. 요코하마가 야구장을 지은 원인이 된 구단이 다이요였기 때문이다.
- ↑ 이건 1969년 다이에이 구단을 롯데가 인수하면서 다디에이 그룹측이 "너네 야구단 사간김에 우리가 지은 야구장도 사가!"라고 주장했는데 이를 롯데가 상큼하게 무시하면서 결국 해체되었다.
- ↑ 이때 롯데가 했던 개드립이 유명하다. "우리는 이제 전국구 구단이다." "우리는 어느 한 지역이 아닌 일본국민 전체에게 사랑받을것이다." "우리의 연고는 일본 그 자체다."(.....)
- ↑ 셋방살이 - 심지어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는 상대적으로 탄탄한 팬베이스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닛폰햄 파이터즈는 그런게 없었다.
- ↑ 콘사돌레 삿포로라는 축구팀은 있었다. 하지만 삿포로 돔이 몇천억을 꼴아박으며 공기부양식으로 야구장과 축구장 겸용으로 만들었는지 생각하면...
- ↑ 이 영향으로 신생구단이 오사카 긴테츠의 연고지였던 오사카를 포기하고 미야기 현을 타겟으로 삼았다. 그리고 태어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 긴테츠의 홈이었던 오사카로 연고이전한 오릭스 버팔로즈의 인기 차이는 적잖게 벌어졌다.
- ↑ 그리고 이 비밀번호는 무려 1997년까지 20년을 이어지게 된다!
- ↑ 실제로는 난카이 전기철도의 회장이었던 가와카츠 덴이 열혈 야빠로 자식들이 돈만 축내는 야구단을 팔아버리려 할때마다 "내눈에 흙이 들어오기전까지 절대 못판다!"라고 했는데 진짜 눈에 흙이 들어가자마자 냅다 팔아버린 것이다.(...) 사실 B클래스만 찍고 관중도 그닥 잘 못 모으는 야구단을 난카이 전철 이사회와 노조가 "적자만 내고 그룹 이미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 구단을 매각하라"고 요구해왔음에도 계속 잡고 있던 난카이 전기철도가 대인배스럽긴 하지만..
- ↑ 댈러스-포트워스 중간에 껴 있다.
- ↑ 그 이전에는 캔자스시티로 이적할 것이란 카더라가 나왔었다.
- ↑ 야구팀 이름이 맞다.
- ↑ 미네아폴리스의 위성도시로 미국에서 가장 큰 쇼핑몰인 몰 오브 아메리카가 위치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 ↑ 퀘벡 노르디크스란 팀명을 가졌었다.
- ↑ 근데 카디널스는 시카고에서 창단 되었을 당시부터 사용된 팀명이었다. 지역연고를 옮겼는데 그게 하필 세인트루이스여서 팀명이 같아진 것일 뿐인데, 당시에 이런 비아냥도 많이 받았다.
비인기팀의 설움 - ↑ NFL판 북패 No.2는 똑같이 야반도주로 옛 연고지를 떠난 구 클리블랜드 브라운스, 현 볼티모어 레이븐스이다.
양쪽 패륜에 둘다 얽힌 볼티모어참고로 NFL판 남패는 휴스턴에서 테네시로 연고지를 이전한 구 휴스턴 오일러스, 현 테네시 타이탄스. 그리고 뉴올리언스 세인츠가 NFL판 남패 No.2가 될 뻔 했다가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상처받은 뉴올리언스 시민들의 통합의 상징 비슷하게 되면서 그냥 뉴올리언스에 눌러 앉아서 남패가 되는 것은 면했다.그러나 북패, 남패를 뺨치며 연고지 이전을 밥먹듯이 하는 서패 오클랜드 레이더스 앞에서는 다 버로우. - ↑ 그러나 클리블랜드는 야구팀 인디언스의 신축구장은 허가해주고 돈지랄해가며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n Roll Hall of Fame)"을 건설했다. 이 사건 이후 구단주 아트모델이 연고지 이전을 결심했다.
- ↑ 그래서 볼티모어 레이븐스는 리그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적이 많은 팀이다. 일단 연고이전으로 얽힌 팀만 콜츠-브라운스이니....
- ↑ 실제 무기를 저장하는 무기고였다.
- ↑ 한국의 FC서울 연고이전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포지션을 취한 팬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