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시파히
2차 빈 포위 당시의 시파히
목차
1 개요
سپاهی(오스만 터키어), sipahi. 무라트 1세 때 창설된 오스만 제국의 정규 기병대로, 오스만 제국의 정예 보병 군단인 예니체리와 비교할만한 오스만 제국의 주력 기병 군단. 오스만 제국의 기병대는 크게 '아큰즈'(Akıncı) 나 '델릴레르'(Deliler) 라고 하는 일부 비정규 기병대[1]와 이들 시파히, 그 밖에 크림 칸국 등 신하국이 파견한 군사들로 이루어졌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시파히가 주력이다 보니 '시파히' 라는 말 자체에 '기병' 이라는 뜻도 있었다.
오스만 제국의 주 민족인 투르크 민족은 오스만 제국 건국 이전부터 기마 전사 전통이 매우 강했으며, 오스만 제국 역시 건국 초부터 강력한 기병대를 군의 주력으로 삼고 팽창했다.
시파히는 크게 '티마를르 시파히' 와 '카프쿨루 시파히' 로 나뉜다. 티마를르 시파히는 각 주의 군대에 영지를 배분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지내다가 전시에 모집하는 봉건 영주들을 뜻하고, 카프쿨루 시파히는 오스만 제국 술탄이 상시적으로 모집, 유지하고 있는 근위 기병군단을 뜻한다. 광의적으로는 이 둘을 같이 묶어서 '시파히' 라고 하지만, 일반적으로 '시파히'는 티마를르 시파히만을 뜻한다.
참고로 Spahi라는 기병도 있는데, 이들은 프랑스 및 이탈리아 식민지군이 운용하던 경기병대로, Sipahi 에서 유래했다. 스펠링이 i 하나 차이라 그런지, 아니면 모음 표기를 대체로 하지 않는 아랍 문자 때문인건지, 어쨋든, 서양측에서도 이걸 헷갈려한다. 예를 들어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3이라든가….
그리고 흔히 세포이 항쟁이라는 통칭으로 불리고 있는 인도 제1차 독립전쟁의 주축인 "세포이" 용병의 어원이기도 하다.
2 티마를르 시파히
티마를르 시파히(Timarlı Sipahi, 영지를 가진 시파히)는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시파히' 라고 불리는 병사들이다. 무라트 1세가 창설한 이들은 군복무에 따라 보답으로 토지를 봉분받는 '티마르 제도' 에 기초[2]한 기병들로, 중세의 기사와 크게 차이가 없는 봉건 영주들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세세한 것까지 따지자면 차이가 제법 있어서, 기사들처럼 며칠 정도만 군복무하는 대신 필요하면 언제든 군 모집에 응해야 했으며 자신의 영지에 대한 경찰권은 가지고 있었지만 지방 법관의 판결이 없이는 범인을 처벌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한 영지 관리를 소홀히했을 경우 처벌을 받는가 하면 영지 내에 위치한 황무지를 농경지로 개간할 경우 포상을 받기도 했으며, 문서상 주군의 영지를 똑 떼어 봉토로 받은 기사들과는 달리 시파히들은 법적으로 오스만 제국의 국유지를 잠시 빌린 것에 불과했다. 즉 한 마디로 말하자면, 기사들보다는 자율권이 훨씬 적었다는 말이 된다[3].
이 '티마르'는 동시에 티마르 제도 하에서 배분되는 영지의 최소단위를 뜻하는데, 하나의 '티마르' 는 2만 에이커를 넘지 못하는 규모였고 시파히 중에서도 일반병들에게 배분된 토지 규모였다. 시파히 중간장교급에게는 더 큰 단위인 '지아멧(ziamet, زعامت)' 이 배분되었는데, 한 지아멧은 2만 에이커 이상에서 10만 에이커 미만에 달하는 토지였다. 그리고 지아멧 위에 '하스(has, خاص)' 라는 것이 더 있었는데, 최대 10만 에이커에 달하는 대토지였던 하스는 최고위 장교 전용이었다. 이러한 제도는 메메드 2세 때에 완비되었는데, 티마르부터 하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토지에는 세금을 면제했다.
'티마르'를 배분받은 시파히들은 시파히 자신을 제외하고도 최대 다섯명에 달하는 '제벨루(jebelu)'들을 군에 복무시켜야 할 의무가 있었고, '지아멧' 을 배분받은 시파히들은 최대 스무명까지, '하스' 를 받은 경우는 스무 명 이상을 군에 복무시켜야만 했다. 이들 '제벨루' 들은 일반적으로 시파히 본인의 아들이나 형제, 조카들이었고, 무장은 시파히들과 비슷했다. 한마디로 말해, 제벨루는 중세 기사들의 스콰이어나 평민 중기병과 비슷한 존재라고 보면 된다. 한편 티마르만 받고 7년동안이나 군무를 수행하지 않을 경우 토지를 박탈당했는데, 그 경우에도 시파히라는 이름 자체는 남았다. 그리고 이후 다시 티마르를 받을 만한 전공을 세우면, 실질적 시파히로 복귀할 수도 있었다.
전시에 시파히와 제벨루는 크게는 '루멜리(발칸) 시파히' 와 '아나돌루(아나톨리아) 시파히' 로 분류되어 지휘를 받았다. 유럽에서 싸울때는 '루멜리 시파히' 가 우익[4]에, '아나톨리아 시파히' 가 좌익에 섰고 아시아에서 싸울 때는 그 반대로 서서 싸웠다. 이들의 무장 또한 지역에 따라 달랐는데, 루멜리아 시파히들이 둥근 방패와 랜스, 검, 투창과 체인 메일 등 유럽 기사에 가까운 무장을 한데 반해, 아나돌루 시파히들은 둥근 방패와 킬트, 터키식 복합궁과 검 등 전통적인 궁기병의 무장을 갖추었다. 또한 무장이 다르다 보니 전술도 달랐는데, 먼저 루멜리 시파히는 투창을 이용해 적군의 기병대를 유인한 다음 기병대와 보병대가 따로 떨어진 틈을 타 기병대를 포위, 섬멸하는 전법을 즐겨 썼다. 또한 아나돌루 시파히는, 보통 궁기병이 그렇듯 활과 화살을 이용한 '치고 빠지기' 가 기본. 하지만 화약무기의 발전으로 갑옷의 중요성이 낮아진 17세기 후반부터는 열병식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갑옷을 일부만 입거나, 아예 벗어던지고 전투에 임했다.
이들은 고전시대 오스만 제국군의 주력이자 군의 대부분이였으며 초기 팽창에 큰 공헌을 했지만 '토지를 배분받는 봉건 영주' 라는 점과 화약무기의 발달로 인해 점점 규모가 축소-약화되었고, 예니체리들이 팽창, 강성화하면서 티마르로 분배될 토지도 계속 줄어들었다[5]. 티마를르 시파히의 전성기였던 1600년대에는 티마를르 시파히만 5만여 명, 제벨루들까지 모두 헤아리면 14만 명에 달할 정도였지만, 19세기가 되면 시파히와 제벨루를 합처 수천 대로 감소했다. 그리고 이들도 그리스 전쟁 이후 신식군 도입과 체제 개혁의 과정에서 티마르 제도와 시파히 징집 의무가 폐지되어 소멸했다. 극소수 남아있던 티마를르 시파히들은 자신의 영지를 사유재산으로 인정받고 조용히 은퇴했다고 한다.
3 카프쿨루 시파히
'카프쿨루 시파히'(Kapıkulu Sipahi, 문지기 시파히) 는 '카프쿨루 부대' 의 일원인 근위 기병대이다. 창설자는 무라트 1세.
초기 모집 방식은 예니체리와 동일했다. 즉, 데브시르메 제도를 통해 점령지의 기독교 가정에서 남자 아이들을 징집해 25세까지 훈련시키고, 개중 가장 성적이 좋은 자는 제국의 고위 관료로, 그 다음은 이 '카프쿨루 시파히'로, 나머지는 예니체리로 보내는 것이다.커미사르와 템페스투스 사이온의 차이
그러나 예니체리처럼 전원이 데브시르메 제도를 통해 모집된 것이 아니었으며 공적을 세운 병사들 또는 투르크 귀족층에게서도 모집했고, 메흐메트 2세 시대에 이르면 아예 '제국 내에 영토를 가진 튀르크인을 가운데' 에서만 선발하게 되었다.
카프쿨루 시파히는 총 6개 부대로 나누어 편성되어 있다.(Sipahi(ler[6]), Silahtar(lar), Sağ Ulûfeci(ler), Sol Ulûfeci(ler), Sağ Gârip(ler), Sol Gârip(ler)) 이 가운데 실라흐타르는 레인저 같은 특공대로, 오스만 제국군 중 가장 뛰어난 전사만이 이 부대에 속할 수 있었고, 다른 시파히들과는 달리 일반 병사들도 뛰어난 무술을 가지고 전공을 세웠다면 이 부대에 포함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실적만 있으면 올라갈 수 있는 위치인 것. 단 이 부대에 속하려면 어지간한 전공가지고는 택도 없었다. 또한 예니체리를 비롯한 보병들도 이 부대로 전입이 가능했는데, 그를 위해서는 자살 임무를 수행하고 살아남으라는 무시무시한(?) 조건이 붙었다. 그리고 어찌어찌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예니체리 뿐만 아니라 다른 카프쿨루 시파히들에게도 '이런 동료를 저버린 배신자 색휘' 취급 받았다. 하지만 일단 전입하면 막대한 부와 명성을 누릴 수 있게 되기에, 자살 임무 지원자가 끊이지 않았다고(...). 이 부대의 지휘관인 실라흐타르 아아(Silahtar Ağa)는 황제의 개인 무술 스승 겸 보좌관으로도 활동했다.
또한, 시파히 부대는 처음부터 오스만 제국의 귀족 엘리트들에게서 모집했는데, 이들은 술탄의 경호대 및 의장대로 활동했으며, 카프쿨루 시파히 6개 부대 중 가장 대규모였다.
그외의 부대들은 대부분 데브시르메 제도를 통해 모집한 실전부대였다. 이들도 출신 및 사회적 위치로 인해 분류되었는데, 일반적으로 Ulufeci는 중산층, Garip은 가난한 하류층 출신이였다. 하류층 출신 부대인 Gâripler는 다른 부대에 비해 경무장했다고 한다.
이들의 무장은 플레이트 메일 또는 체인 메일, 둥근 방패와 검, 합성궁, 메이스와 도끼였으며 티마를르 시파히 중 '루멜리 시파히' 와 비슷한 무장과 복장을 했다. 갑옷은 티마를르 시파히들과 마찬가지로 17세기 후반부터는 거의 입지 않았다. 전장에서 이들은 술탄 및 총독의 근접 호위와 예비대 역할을 했다.
술탄은 이들을 예니체리에 대한 견제세력으로 적극 양성하여 한때 2만여에 달했으나 예니체리의 발호를 막지는 못했다. 그래도 예니체리들을 제거하는데 적극 활동했으며, 예니체리가 사라진 이후 이들도 군제의 서유럽화에 의해 해체, 소멸했다.
4 예니체리와의 대립과 소멸
이들 시파히들은 '티마를르 시파히' 와 '카프룰루 시파히' 할것 없이 예니체리들과는 서로 반목하는 관계였다고 알려져 있다. 스스로 정예부대라는 자부심이 넘첬던 예니체리들은 같은 교육 과정을 거쳤지만 자신들보다 엄선된 '카프룰루 시파히'들을 질시했으며, 예니체리들의 세력이 확대되면서 티마르 제도로 관리되던 토지를 잠식해 들어가자 '티마를르 시파히'들 또한 예니체리들과 빈번하게 충돌했다. 이들은 튀르크 토착 귀족들의 지지를 받아 자신들의 권익을 침해하는 예니체리와 대립각을 세웠으며, 예니체리들이 횡포를 부리기 시작한 시대에 술탄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군사력으로 남았다. 이로인해 "Atlı er başkaldırmaz."(기병들은 반역하지 않는다)라는 터키 금언이 생겼다.
이들은 1826년 마흐무트 2세가 예니체리들을 숙청할 때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예니체리 반란군을 격파하는데 다대한 공을 세웠고 이후에도 잔존 예니체리 병력들을 추적, 섬멸하는 일에 전념했다.
2년이 지난 1828년, 이들 시파히들도 사라졌다. 토사구팽처럼 들릴지 모르나 시파히부대의 해체와 재개편 과정은 피로 얼룩진 예니체리들과는 달리, 상당히 평화로웠다고 하며, 티마르 제도가 폐지되고 모집에 응해야 할 의무가 소멸되어 티마를르 시파히 제도는 폐지,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게 했으며, 자신의 영지를 사유재산으로 인정받고 큰 반발 없이 조용히 은퇴했다고 한다. 또한 카프룰루 시파히들은 부대 해체 후 새로 개편된 서구식 기병대에 합류하는 형태로 사라졌다.
5 각종 매체의 시파히
시파히들은 미디블2: 토탈 워의 투르크 팩션의 주력 기병대로 등장했다. 또한 엠파이어: 토탈 워의 오스만 제국 및 마리타 연합(어째서?)에서도 등장. 올팩션 모드를 깐다면 이슬람 국가들 모두가 사용 가능하다.
5.1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3
생성 가능 시대: 식민지 시대
인구수: 3
비용: 식량 280,(홈시티에서만 받을 수 있으며, 받을 때마다 식량이 필요하다. 기병 양성소에서 생산은 불가능.)
HP: 750(기본)
이동 속도: 6.5
방어: 원거리 방어 10%
공격(공성): 데미지 28, 사거리 6, 공속 3
공격(근접): 데미지 35, 범위 3, 공속 1.5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3 오스만 제국의 결전병기. 백병전에 한해서는 코끼리도 이길 수 있는 최강의 기병이다.
영어명은 Sipahi 가 아니라 Spahi, 번역은 스파히 기병... 그렇다. i를 빼먹었다. 그래서 번역이 '시파히' 가 아니라 '스파히' 가 된 것.그래서 스파이랑 자주 헷갈린다. 게다가 이 게임에는 스파이도 등장하기 때문에 더더욱.
산업시대로 시대업할 때 체력과 공격력이 30% 상승, 제국시대로 시대업시 체력과 공격력이 50% 상승한다. 시대업에 따라 호위업, 제국업을 하는 셈이다. 제국시대까지 테크가 올라가면 이건 인간이 아니다. 단, 코드상 이러한 시대업에 따른 능력치 상승은 오스만 제국만 가능한 이야기라는 데 주목. 스파히 기병 관련 카드 중에 모든 팀원들이 병력을 받을 수 있는 팀카드가 한장 있는데, 이걸로 스파히 기병을 받는다 해도 오스만 제국이 아니라면 능력치 업 효과를 누릴 수 없다. 근데 그래도 세다.
공격력도 공격력이지만 스플까지 붙어서 수가 모이면 모일수록 강력무비한 최강의 기병으로 군림한다. 비슷한 인구수 3 퀴러시어 기병과 비교해 봐도 접근전은 훨씬 강력하다. 대신 퀴러시어 기병은 기병양성소에서 양성이 가능하다.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체력에 더해 비전투시에는 자체적으로 체력을 회복하기도 한다. 근데 이 스킬은 이동중에는 불가능하다. 너무 과신하지 말고 운용상 좀 편해졌다고만 생각하자.
그러나 약점도 명백. 원거리 방어가 10%밖엔 안된다는 게 너무나도 뼈아프다. 때문에 드라군같은 경기병이 모여서 점사하면 픽픽 쓰러진다. 체력으로 방어력 부재를 커버하긴 하지만 재생성 불가라 몸빵으로 쓰기에도 귀하다. 이 점이 가장 치명적으로, 단기적으로 일정 수를 확 뽑아 몰아치는 올인 테크라면 모를까 장기전으로 갈 수룩 소모전을 하면서 하나 둘 제거해버리면 두 번 다시 못나오기 때문에 금방 파워가 사그라든다.
설정을 보면 티마를르 시파히 같다[7].
지원 카드는 체력과 공격력을 15% 상승시키는 기병 전투력(3시대). 병력 수송 카드는 3시대에 스파히 기병 3명 수송(필요식량 600), 5명 수송(필요식량 1000), 4시대에 4명 수송(필요식량 800), 6명 수송(필요식량 1200), 4명 수송(필요식량 1200, 팀 카드)가 있으며, 제국시대(5시대)까지 올라가면 이미 사용한 병력 수송 카드도 한번 더 사용할 수 있다.(이건 모든 국가가 공통) 또한 3시대에 재상(Grand Vizier)을 정치가(Politician)로 선택하면 시파히 3기를 시대발전 보너스로 얻을 수 있다. 오스만이 경제력이 나쁜 팩션이 아니라 카드수송에 필요한 식량이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경험치를 모으기가 힘들고 시파히가 인구 수를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작정하고 모으기는 힘들다.
위의 항목을 보다시피 오스만의 희망과도 같은 막강한 위력의 기병 유닛이며, 그 전투력은 무시무시하다. 그러나 두차례의 확장팩이 나오면서 다른 강력한 중기병들도 나왔고, 특히 아시아 왕조에서 인도 가 나오면서 눈물나는 비교대상이 되고 있다.
즉, 기본적인 스팩의 강력함 측면에서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막강한 인도의 코끼리 창병과, 홈시티로 받는다는 측면에서는 홈시티 카드로만 받을 수 있을 뿐더러 횟수 제한 없이 받아올 수 있는 인도의 연검병과, 자체 체력회복 측면에서는 똑같은 회복 능력을 보유한 인도의 구르카와 비교되고 있는 것. 지못미.(...)인도랑 무슨 웬수를 졌다고...[8]
5.2 미디블2: 토탈 워
총 4종류의 유닛이 있는데 중기병인 시파히 랜서와 카푸쿨루가 있고 궁기병인 시파히 궁기병대가 있고 시파히 랜서의 보병 버젼인 하마 시파히 랜서가 있다.
시파히 랜서는 서유럽의 쇄갑 기사대급의 무난한 기병이고[9] 카푸쿨루는 이 게임 최강의 기병 중에 하나다. 동급의 유럽계열 중기병보다 돌격력은 떨어지지만 메이스를 들고 더 높은 능력을 지녀서 기병 잡는 기병으로 활약한다. 보병 상대로는 돌격력이 비교적 약해서 돌격 자체는 동급의 유닛보다 쌔지는 않지만[10] 돌격 이후에 그 막강한 능력과 ap가 있는 메이스로 대활약을 한다.
시파히 궁기병은 중궁기병으로 웬만한 중기병급 스탯에 강한 활까지 들었다. 하지만 중궁기병이기에 타 경기병에 비해 속도가 느리므로 일부 경기병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 대다수의 경기병 따위 그냥 돌격해도 이기긴 한다. 또한 체력도 잘 관리해야한다.
하마 시파히 랜서는 유럽의 중보병대급 유닛이며 그들보다 공격력과 사기는 높지만 숫자가 울트라 기준 30이 적기에 비슷비슷한 유닛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게임서 투르크는 모루 역할을 할 보병이 부족하기에[11] 중후반을 책임지는 유닛이 된다.
보통 중반이면 하마 시파히 랜서, 시파히 궁기병대, 시파히 랜서에 오스만 보병[12] 조합이 완성[13]되니 그 것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확장을 하는 것이 좋다.하지만 몽골과 티무르의 축복을 받은 무슬림들에게 자비란 엄따.[14][15]
여담으로 후속작 엠파이어: 토탈 워에서도 시파히 랜서가 나오지만 게임 시대 배경 자체가 한참 뒤인 전열보병의 시대인지라 일제사격에 우수수 쓸려나가기 바쁘다(…).
5.3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
- 문명 3
- 방패 100 공격력 8 방어력 3 이동력 3이란 능력치를 가지고 있으며 산업시대 후반 탱크, 해병대가 나오기 전에는 가장 높은 공격력을 자랑한다. 대신 방패도 탱크와 동일한 100을 먹는게 단점. 다만 3편에서는 각 문명당 고유 유닛이 하나밖에 없었는데, 시파히가 나온다는 말은 예니체리가 잘렸다는 소리다[16].
- 문명 4
- 문명 5
- 오스만의 고유유닛으로 등장.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사의 대체유닛이어야 할 것[18]이 어째서인지 창기병의 대체유닛인데다, 창기병 자체가 성능이 애매한데다 예니체리가 너무 좋고, 거기에 결정적으로 테크가 예니체리보다 늦기 때문에[19] 예니체리에게 밀려서 구경하기도 쉽지 않다. 안습.
예니체리와 시파히의 반목을 고증하다니, 조흔 고증이다.그나마 별 티도 안나는 장점이라면, 기병대는 잘 잡는다는 것. - 확장팩으로 넘어오면서 장창병을 창기병으로 업그레이드하도록 바뀌었기 때문에 이전에 뽑아둔 창병 계열을 업그레이드해서 써먹을 수 있어서 활용 자체는 쉬워졌고, 철이 부족해서 장검병 대신 장창병을 주력으로 굴렸다면 르네상스 시대의 주력 유닛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소총병의 테크도 뒤로 밀려버린 탓에 상대적으로 훨씬 오랜 시간 전장에서 현역으로 돌아다닐 수 있다. 패치로 약탈시에 체력 25 회복이 가능해진 이후로는 무한약탈을 통해 도대체 죽지를 않는 바퀴벌레 생명력을 보여주는 것도 가능은 하다.
- 오스만의 고유유닛으로 등장.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사의 대체유닛이어야 할 것[18]이 어째서인지 창기병의 대체유닛인데다, 창기병 자체가 성능이 애매한데다 예니체리가 너무 좋고, 거기에 결정적으로 테크가 예니체리보다 늦기 때문에[19] 예니체리에게 밀려서 구경하기도 쉽지 않다. 안습.
- 하지만 테크트리상 예니체리의 등장이 훨씬 빠른건 여전하며, 장검병을 업그레이드해서 예니체리를 만들 수 있게 되었으므로 철만 있었다면 예니체리 역시 활용이 쉬워진 탓에 여전히 밀린다. 게다가 그나마 잘 잡았던 기병대의 테크가 뒤로 밀리며 전투력이 엄청나게 상승한 탓에, 이전에는 가볍게 압살했던 기병대도 이젠 약간의 우위를 점하는 정도에 그친다. 기병대와 같은 전투력의 소총병이라도 뜨면 정말로 정찰 이외의 용도를 찾을 수가 없게 된다. 게다가 업그레이드인 대전차포 역시 테크가 한참 뒤로 밀려서, 시파히는 보통 산업시대 중후반에 전멸하고 다시는 볼 수 없게 되거나 후방도시에 주둔시킨 한두기 정도만 존재 자체가 잊혀진 상태로 살아남게 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정말 여러모로 안습.
- 고증 면에서 생각해 보면, 활은 어딘가에다 팔아먹고 창질만 하는 것이 루멜리아 시파히나 카푸쿨루 시파히 같다. 그리고 게임 내 백과사전에 티마리 시파히에 대한 설명만 적혀 있으므로[20], 루멜리아로 결론지을 수 있을 듯.
- ↑ 이들은 기본적으로 민병대로, 유럽 국가들과의 국경지대에 배치되었다. 민병대이다보니 예니체리나 시파히와는 대조적으로 봉급을 받지 않아 이웃나라의 마을이나 방어가 취약한 도시를 공격한 뒤 약탈한 전리품을 봉급이다 생각하고 나누어가져야 했는데, 그 이웃나라가 항의해 와도 오스만 제국의 정부는 '미처 몰랐네? 미안.' 으로 일관하기 일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잘 나가던 시기. 즉 아큰즈가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의 오스만 제국에게 '이웃나라' 는 '잠정적인 정복 대상' 에 불과했으며 아큰즈들의 약탈로 평상시에도 피해를 입힐 수 있음은 물론이요 어디의 방어가 취약한지도 알 수 있었다.
- ↑ 티마르 제도 자체는 오르한 때에 마련되었다. 다만 중세 서유럽까지 갈 것도 없이 군사 복무의 대가로 토지를 주는 제도는 고대 페르시아와 로마 제국, 비잔틴 제국 등에도 있었는데, 그 가운데 비잔틴의 프로노이아 제도를 본뜬 것이 티마르가 아니냐는 설이 가장 유력.
- ↑ 이는 애당초 티마르 제도의 존재 이유가, 군비 절감과 함께 새로 정복한 마을을 가능한 한 빨리 오스만 체제에 편입시킨다는 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즉 새로 정복한 지방을 기존의 영토와 점차 동화시켜 결국에는 황제의 지배하에 둔다는 것으로, 유럽의 봉건제에 비해서는 훨씬 중앙집권적인 의도가 강했다.
- ↑ 전통적으로 우익이 명예로운 자리로 여겨졌기 때문이라고.
- ↑ 이에 오스만 제국은 하나의 티마르를 두 명 이상의 시파히에게 분배하거나 이 마을에서 조금, 저 마을에서 조금씩 떼어 티마르로 하사하거나 하는 방침을 생각해내기에 이르지만, 그런 것은 미봉책조차도 되지 못했다. 티마리 시파히라는 병사들이 존재하기 위한 기본 전제가 '각자의 티마르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라는 것(생활비와 군사비를 마련해야 하므로)이었는데, 그게 제대로 될 리가 없었기 때문.
- ↑ 이하 'lar/ler'는 복수형.
- ↑ 이전 버전에서는 카푸쿨루 시파히 같다고 되어 있었는데, 설정에 '오스만 제국의 기병대 대부분은 시파히였다고 한다' 라는 식의 문구가 들어있다. 즉, 친위대가 아니라 '기병대 대부분' 에 해당.
근데 왜 생산이 안되니 - ↑ 이건 여담이지만, 실제 역사에서 오스만 제국과 인도. 즉 무굴 제국은 대체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16세기 이후 인도양에서 세력을 넓혀가고 있던 포르투갈을 견제해야 한다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 또 둘 사이에 페르시아라는 공동의 적도 함께 두고 있었다.
- ↑ 시작하면 바로 뽑을 수 있는 쇄갑기사들과는 달리, 조금 늦게 나오는게 유일한 단점이다.
- ↑ 그래도 꽤 강하다. 어디까지나 최상위급 기병들 중에서 '비교적.
- ↑ 예니체리 중장보병, 사라센 민병대, 하시신이 있지만 예니체리 중장보병은 최강급 유닛이지만 빨리 죽기에 모루로 적합하지는 않고 사라센 민병대는 울트라 기준 30명이 더 많지만 스탯이 더 낮고 민병대라 사기가 낮아 하마 시파히 랜서만 못하다. 하사신은 다 좋은데 수가 반이다....
- ↑ 이름은 보병인데 궁병이다. 이름도 거짓은 아니라 보병급 스탯을 가진 궁병이다. 즉 궁보병
- ↑ 단 적 기병의 돌격을 잘 막을 자신이 있다면 하마 시파히 랜서 대신 오스만 보병으로만 채워도 된다. 웬만한 보병 정도는 이겨버린다. 조금 높은 스탯의 유닛이 부담되나 궁병이나 오는 도중 상당수를 잡고 이 조합에는 기병도 있으니 큰 문제는 없다.
- ↑ 그 전에도 궁기병이 있으니 확장이 용이하지만 공성전이 조금 난감하다. 아자비같은 저급유닛으로 백병전은 우울하다.
- ↑ 다만 공성전 부분은 게임 시스템을 탓할 게 아니라, 역사를 탓하자. 오스만 제국 초창기의 역사가 깨알같이 고증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예니체리 항목 가운데 '창설 배경' 문단 참고.
- ↑ 사실 오스만이 3편에서 첫등장을 하다 보니 이래저래 시험작 같은 느낌이 나는데, 가령 지도자도 메메드 2세나 쉴레이만 1세 같은 쟁쟁한 군주들은 어딘가에 밀어놓고 제국의 창건자라는 이유로 오스만 1세가 선정되었다.
- ↑ 4편 오리지널에서는 문명별로 고유 유닛이 하나씩 주어졌고, 첫번째 확장팩인 워로드부터는 고유 건물이 하나씩 추가되었다.
- ↑ '땅을 지급받는 대신 기병으로 복무하여 군사력을 제공한다'는 특징이 유럽의 중세 봉건제에서의 기사 계급과 상당히 비슷한 특징을 보인다.
- ↑ 예니체리를 뽑으려면 화약을 연구해야 하고, 창기병을 뽑으려면 금속학을 연구해야 한다. 하지만 금속학을 연구하려면 먼저 화약을 연구해야 한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시파히는 예니체리보다 테크가 늦을 수밖에 없다.
-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3에서도 그렇고, 카푸쿨루는 완전히 무시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