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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相楚
1922년 12월 15일 ~ 1989년 2월 26일
대한민국의 전 법학자, 언론인, 정치인이다. 호는 월강(月崗)이다.
1922년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났다. 신의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일본 후쿠오카고등학교 문과를 졸업한 뒤, 도쿄제국대학 법문학부 법과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1944년 일본 학병으로 중국전선에 배치되었다. 팔로군지구로 탈출하여 조선의용대의 일원으로 항일 독립전쟁에 참가하다가 8.15 광복을 맞이하였다.
1946년 초 고향으로 귀환하였다가 북한 공산당에 의해 체포되어 강제노역의 감옥생활을 하였으다. 1949년 초 월남하였고 이후 반공주의자가 되었다. 이후 일선 대학교에서 법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한편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역임하고 사상계 편집에 참여하면서 이승만 정권의 독재를 비판하였다.
1961년 2월 김상돈이 서울특별시장 선거 출마를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함으로써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마포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정당 전진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일선 대학교 교수로 돌아간 한편 중앙일보 논설위원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1966년 동양방송에 출연해서 삼성그룹의 사카린 밀수 사건을 옹호하다가 물의를 빚었다.
그러나 10월 유신 이후 친여 인사로 변하였다. 1976년부터 1980년까지 제2기 및 제3기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할 무렵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위원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