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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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錢鎭漢
1901년 11월 5일 ~ 1972년 4월 22일

대한민국독립운동가, 노동운동가, 관료, 정치인이다. 호는 우촌(牛村)이다. 전 정치인 정재철과 현 국회의원 정문헌이 각각 그의 사위, 외손자이다.

1901년 경상북도 문경군에서 태어났다. 극빈가정 출신으로, 소년기에는 여관 심부름꾼으로 일하다가 1917년 경성부로 올라와 고학하였다. 1922년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 경제학과에 입학하여 1928년 졸업하였다. 1926년 협동조합운동사를 만들어 항일운동은 물론 노동운동과 협동조합운동, 대중운동의 발판을 삼았다. 이를 발판으로 항일독립운동, 노동운동을 하다 여러 차례 투옥되었다. 이후 산에 들어가 참선을 하다가 광복을 맞이했다. 광복 이후 정치가로 활동했지만 죽을 때까지 참선을 멈추지는 않았다. 후일 "정치는 부업이고, 참선이 본업이었다."라 말하기도 하였다.

1945년 8.15 광복 이후 처음에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하다가 한국민주당 발기운동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후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론을 지지하면서도 노동운동을 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노동총연맹 후보로 경상북도 상주군 을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제헌국회에서 활동하면서 제헌헌법에 노동3권과 노동자의 이익균점권 등 노동 관련 조항들을 명시하는데 기여했다. 당시 회의록에는 보통 다른 의원들은 5분정도 발언하는데 전진한 의원은 이익균점권 조항 명시를 주장하는데 약 20분 동안 발언해 당시 신익희 부의장이 짜증을 내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그의 노동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초대 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1949년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을 창립하고 이후 국제노동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노동총연맹 후보로 경상남도 부산시 무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최원봉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2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 재보궐선거에서 대한독노동총연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부산시 을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5년 이후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였다. 1955년 노농당을 결성한다.(노동당이 아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노농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갑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윤명운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 서울특별시 성동구 갑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유성권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같은 해 윤보선의 대통령 출마로 치러진 서울특별시 종로구 갑 지역구 재보궐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3년 민정당 창당에 참여하고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에 반대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독립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당 유진오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제3공화국(드라마)에서는 배우 고 김상순씨가, 야인시대에서는 성우 이종구씨가 연기하였다.

2 이익균점권

제헌 국회의원이었던 그는 헌법에 노동자 경영참여권과 이익균점권 관련 조항을 추가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중 이익균점권은 헌법에 명시되지만 노동자 경영참여권은 치열한 토론 끝에 명시되지 못했다.

이익균점권은 제헌헌법 제18조 제2항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체에 있어서는 근로자는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해서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라는 조항으로 명시되었으나 5.16 군사정변 이후 삭제된다. 이는 지금 시대에도 매우 급진적인 조항으로, 쉽게 말하면 "주주가 기업에 자본을 출자해 기업의 이익을 일부 분배받는 것처럼, 노동자들도 기업에 노동력을 출자하므로 그만큼 기업의 이익을 분배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약 60년 전에 우파 정치인이 주장한 내용이다.(...)

3 자유협동주의

자유협동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바탕으로 각자가 창의적으로 제 소질과 재능을 발휘하는 사회, 노동과 자본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 사람들간의 상호연대와 자립, 자치, 협동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추구하는 사상이다. 전진한의 말에 따르면 “음악에 있어서 악사가 각자 법열 속에서 자유로이 자신의 악기의 성능과 자기의 개성을 발휘하여 전체와 협동함으로써 하나의 심포니를 형성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전진한은 우파 정치인으로써 자칫 자유를 억압하고 독재의 도구로 악용될 수 있는 공산주의를 반대했지만, 자본가에 의한 일당적 사회지배 또한 우려하였다. 그 결과 1955년 이승만과 결별하고 노농당을 창당, '자유협동주의'라는 책을 펴내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 사상을 제창했다. 그는 협동조합운동을 통해 개인과 사회, 자유와 협동, 노동과 자본의 대립과 조화를 독자적인 자유협동주의 사상체계를 통해 발전시켜나갔고, "협동이 없는 자유는 방종과 탐욕으로 흐르며, 자유가 없는 협동은 전체주의파시즘으로 귀결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4 참고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