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짓 왕국

소설눈물을 마시는 새》에 등장하는 국가.

1 구 아라짓 왕국

상징은 흑사자. 아라짓 왕국의 시조는 레콘이었던 영웅왕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레콘이 세운 왕국으로 알려져 있다. 레콘은 신부찾기나 숙원 추구에만 열심인 개인주의자였기 때문에, 영웅왕 이후에는 인간들이 아라짓 왕국을 이어받게 된다. 아라짓 왕국은 왕의 정통성에 대해선 굉장히 유연한 편인 이유가 바로 이것. 왕에게 아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죄다 숙원이다 신부탐색이다 흩어져버렸으니 결국 왕의 혈통에 얽메일 수가 없었던 것. 왜 인간이냐면 레콘은 안정적인 세습이 절대 불가능하고, 도깨비들은 많은 사람들을 책임지는것에 부담을 가지는 것도 문제지만 워낙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있어서 사람들이 견디기 어려워할 거라고. 왕국의 주적인 나가는 말할것도 없고...

아라짓 왕국이 건국되던 당시에도 생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나가들의 침략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아라짓의 역사는 끝없는 나가들과의 싸움으로 뒤덮여 있다. 21대 극연왕에 와서야 나가를 한계선 남쪽으로 밀어내고 안정을 가져오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극연왕 이후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몰락하기 시작한다. 아라짓의 위축으로 인해 나가들이 다시 공세를 펼쳤고 결국 31대 권능왕을 마지막으로 왕국 아라짓은 700여 년 만에 멸망한다.

아라짓의 멸망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이 있었다. 누군가는 왕의 상징인 바라기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하고, 다른 누군가는 나늬 때문에 종족 간에 다툼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르고 있다.[1]

남부 전체를 지배하는 나가들과의 싸움에서 멸망했다보니 자연스레 아라짓이 북부 전체를 다스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북부의 규리하 변경백령이 왕국의 방패라 불리던 점을 생각해보면 북부에 존재하던 유일한 왕국이었을 뿐 북부 전체를 다스렸던 것은 아니라는것을 알 수 있다. 로마제국이 유럽의 유일한 제국이었다고 해서 유럽 전체를 다스리지는 못했던 것처럼.

왕국 아라짓이 몰락한지 800년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 눈물을 마시는 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팔백 년이 지나면서 아라짓 어를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어졌고[2], 왕국이 배출한 가장 뛰어난 전사들이었던 아라짓 전사[3]도 사라졌다.

아라짓의 마지막 왕이었던 권능왕이 만민 회의에서 키탈저 사냥꾼을 분노케 하는 우를 범하고, 그들이 '이제 왕은 없다. 그리고 왕이 이 모욕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북부에 왕은 없으리라!'라는 유명한 저주를 남기고, 그 이후 북부에 왕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1.1 아라짓 왕국의 계보

고대 아라짓 왕국의 왕위는 레콘인 영웅왕으로 시작되었지만 왕위는 세간에 알려진대로 세습에 관심없는 레콘이 아닌 인간에게 계승되어왔고 이는 마지막 왕이라 알려진 권능왕과 마지막으로 왕국과 함께 멸망하였다. 대개 왕의 칭호는 왕의 개성이나 특성을 2글자로 표현한 글자+왕이라고 불리며, 일반적으로 대관식의 마지막에 공표된다..

-아라짓의 시조. 위대한 전사이며 모험가. 레콘에 한정지어 놓고 보더라도 역사상 그보다 더 강대한 전사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영웅왕 참조

  • 2, 3대 왕 불명
  • 4대 복수왕 (79-92)

-왕국 아라짓에 대해 반역을 꾀하고 스스로를 왕이라 참칭한 마지막 반란자 기로인을 엔거에서 처단한다. '하늘에 두 태양이 없다. 두 번째 태양은 떨어져야 한다.' 는 말로 유명하다. 당시 왕국 내에 손꼽히는 도시 중 하나였던 엔거는 복수왕의 가혹한 공격에 의해 파괴되어 황량한 평원으로 바뀌고 말았다.(현재의 엔거는 고대 도시 엔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도시다.) …이후 지상에 왕이라 불리는 존재는 아라짓의 왕밖에 없게 된다.-

팬들에겐 복수라든가 태양 이야기를 보며 키 드레이번을 연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 5대 왕 불명
  • 6대 엄격왕 (164-195)

판사이 육형제 탑을 건설함. 판사이는 고 아라짓 왕국 멸망 이후 마립간이 다스리는 지역이 되었다. 2차 대확장 전쟁 시절의 마립간은 베미온 굴도하, 육형제 탑은 왕국 시대의 여러 문헌이 보존되어 있으며 왕의 방이란곳에 왕들의 비밀 기록이 기록돼있다, 아라짓어로 적혀져있기에 분노한 권능왕이 현대어로 번역해놓았다.이 방은 마립간만 들어갈수 있으며 그 비밀은 쉽게 공개되어서는 안된다.

  • 7대 전통왕 (195-208)

왕위 세습의 기틀을 쌓은 왕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아라짓의 왕위는 여러 번에 걸쳐 비혈족에게 계승된다. 또한 최초로 만민회의를 개최한 왕이기도 하다. 아라짓 건국 200년을 기념하는 행사로 열린 만민회의는 도깨비들의 즈믄누리와…. 이후로 50년마다 개최되는 정례 행사가 되었다.

  • 8, 9, 10대 왕 불명 (208-264)
  • 11대 인식왕 (264-284)

이름은 발케네 쿠스. 이름이 알려진 몇 되지 않는 왕들 중 하나이다. 당시엔 미지의 땅이었던 지러쿼터 산맥 이북을 탐험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 그 지역을 발케네라 명명했다.

  • 12대 법전왕 (284-295)

법전왕은 칙령과 조례로 구성되어 있던 아라짓의 법전을 통일하고 정립하였다. 군법의 성격이 강했던 그 이전까지 아라짓의 법규들에 비해 보다 일반사법에 가까운 법전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수백 년의 투쟁에 의해 나가들의 세력을 상당히 위축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 13대 왕 불명 (295-322)
  • 14대 자애왕 (322-330)

왕명과 어울리지 않게도 자애왕의 시대에는 역사상 최악의 재난이 일어났다. …결국 즈믄누리는 페시론 섬의 악당들에게 무사장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재고를 부탁하는 자애왕의 강력한 요청은 묵살되었다. 어떤 부탁이라도 즐겨 받아들이는 도깨비들이지만 무사장의 파견 결정만큼은 번복하지 않았다. 무사장의 출전은 결정된 순간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단신으로 페시론 섬에 상륙한 즈믄누리의 무사장은 그 후 한 시간에 걸쳐 페시론 섬의 생명체를 남김없이 불태웠다. 쥐새끼 한 마리도 페시론 섬에서 살아나가지 못했다.

저 불행한 무사장의 이름은 유리 기픈골. 불로 몸을 씻는 도깨비이다보니 섬 전체를 불태운 화염 속에서도 육체적으로야 멀쩡했겠지만 정신적으로 견뎌낼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도깨비와 무사장 항목을 보면 알수 있듯이 눈마새 최강 종족은 나가레콘도 아니고 바로 도깨비란것을 알수 있는 기록. 여담으로 자애왕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즈믄누리조차도 분노케하는 페시론 섬을 끝까지 자애롭게 지옥으로는 만들지 않으려고 했었기 때문인듯.

  • 15대 침묵왕 (330-337)

적을 잘 알고 싶어한 그의 욕망은 왕국의 백성들을 생각하는 훌륭한 태도였지만, 니름을 터득할 수 있다는 믿음은 조금 지나친 것이었다. 당연히 성공하지 못했다.

  • 16대 정력왕
  • 16대, 17대 왕 불명 (337-366)
  • 18대 야명왕 (366-383)

…준동하고 있는 나가들을 견제하기 위하여 천도를 단행했다. 천도 이후 이전 수도가 있던 지역은 상토(上土)로, 그리고 그에 대비하여 새로운 수도가 있는 지역은 하토(下土)로 불리게 되었다. 현재 상고토와 하고토로 불리는 지역이 바로 그곳들이다.

  • 19, 20대 왕 불명 (383-434)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여왕 극연왕은 이후 78년이라는 아라짓 역사상 가장 긴 시간동안 왕국을 통치했다. 왕위를 이을 예정이었던 그녀의 오라비가 그 자리를 고사했기에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가장 긴 재위기간 뿐만 아니라 가장 많은 치적으로도 유명하다. 새로이 세력을 키우고 있던 나가들을 기습적으로 공격하여 남쪽으로 멀리 몰아내었고….

자세한 사항은 항목참조.

  • 22대 독서왕 (512-547)

극연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당시 독서왕은 예순일곱 세였다. 극연왕의 재위 중에 태어난 셈이었고, 그 점은 그 시대의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장 나이 많은 노인들 외에는 나가의 공포를 아는 자들이 별로 없었고 사람들은 극연왕이 이룩한 안정을 사랑했다. 그 때문에 아라짓 역사상 최고령의 왕위 계승자가 대관식에 설 수 있었다. 사람들은 독서왕이 위대한 선왕과 비교될 시간도, 혹은 선왕이 이룩한 업적을 깎아먹을 시간도 별로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독서왕은 의외로 장수했다. 그리고 그 외에는 별다른 특기 사항을 남기지도 못했다….

  • 23대 탐미왕 (547-583)

독서왕과 달리 많은 특기 사항을 남겼지만 그 대부분이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한다. …사후에 행해진 기록 파괴와 나가의 준동에 의해 그 악행에 대한 많은 기록이 사라졌다.

  • 24대 추풍왕 (583-611)

…탐미왕의 기록이 제대로 남지 못했던 것은 추풍왕 시절에 일어난 나가들의 대공세 때문이기도 하다. 극연왕에 의해 극도로 위축되었던 나가의 세력은 백오십여 년이 지난 후에야 복구되었다. 하지만 되살아나게 되자 나가들은 북부를 향해 무서운 공격을 퍼부었다. 사람들은 거의 잊고 있었던 적들에 대한 기억을 힘겹게 되새겼지만, 이미 사라진 아라짓 전사는 되돌릴 수 없었다. 추풍왕은 나가들을 막아섰던 가장 용맹한 전사들이 없는 상황에서 나가의 대공세를 맞이해야 했다.

  • 25대 잔혹왕 (611-614)

아라짓 왕가에 단 두 명 존재했던 미치광이 중 하나다.(이 표현은 가이너 카쉬냅의 것이며 또 한 명의 미치광이는, 많은 사람들이 탐미왕이라고 추측하기는 하지만 누군지 정확하지 않다.) 스스로 잔혹왕이라는 왕명을 정한 이 정신병자는…. 잔혹왕을 암살한 자가 가이너 카쉬냅이라는 가설은 끊임없이 제시되지만, 가이너 카쉬냅 자신의 생몰연도마저 불명확하거니와 다른 확실한 증거도 없다. 이후 왕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든다.

  • 26, 27, 28, 29, 30대 왕 불명 (614-689)

75년이라는 기간동안 왕이 다섯 번 바뀐 것은 왕국 역사상 그다지 특이할 것이 없으나, 이 모두가 기록미상이라는 것은 이 다섯 왕 당시의 왕국 정세가 얼마나 혼미하고 급박했는지를 알게 해 주는 간접 자료이다.

…이 참혹했던 시절, 왕국의 사람들에게는 단 두 가지 희망만이 남아 있었다. 다가오는 만민회의와 왕국의 북부를 지키고 있던 용장 후사린 규리하가 두 희망이었다. …50년 만에 개최된 만민회의는 어이없는 파행으로 치달았다. 후사린 규리하가 왕국을 위해 목숨처럼 지키던 명예를 저버리고 변경백령을 떠났지만, 왕국의 몰락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항목 참조

2 신 아라짓 왕국

제2차 대확장 전쟁이 끝나고 구 아라짓을 이어 대호왕 사모 페이가 건국한 국가. 수도는 하늘누리. 그리미 마케로우가 왕위를 이은 직후 천일전쟁이 발발하지만 괄하이드 규리하의 전사를 계기로 북부가 결집되어 승리로 위기를 넘겼다. 건국된지 20여 년만에 신 아라짓은 아라짓 제국의 체제로 전환되었다.

3 관련 항목

  1. 가장 가능성이 큰 이야기는 왕검인 바라기의 소실로 인해 아라짓 전사의 충성을 잃어버린 타격이 컸고, 거기에다가 바라기의 실종 자체를 극연왕, 독서왕의 두 왕 대에서 쉬쉬해버린 바람에 추풍왕때 갑작스레 아라짓 전사를 소환할 수 없었다는것이 결정타였다는 것. 실제로 이 후로 아라짓은 쇠퇴기를 걷다, 마침내 권능왕이라는 미치광이에 의해 다 말아먹었다.
  2. 사실 23대 극연왕의 시대에도 아라짓 어를 쓸 줄 아는 사람은 학자나 왕족 등 일부 계층 뿐이었다.
  3. 작중 묘사하기를, 두 발로 걷는 자들중 가장 난폭하고 잔인한 미트스피너스 무력집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