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로 13호

역대 아폴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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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LLO 13

"EX LUNA, SCIENTIA (달에서 지식을)"
아폴로 13호 미션 패치
발사일1970년 4월 11일
19시 13분 0초 UTC
달 착륙일-
귀환일1970년 4월 17일
18시 7분 41초UTC
미션 기간5일, 22시간 54분 41초
우주선사령선 - 오디세이(Odyssey)
달착륙선 - 물병자리(Aquarius)
사령관(CDR)짐 러블[1]
사령선 조종사(CMP)켄 매팅리 잭 스와이거트[2]
달착륙선 조종사(LMP)프레드 헤이즈[3]

1 개요

인류의 우주 탐사 역사상 가장 긴박하고 위험하며 대담했던 임무
나사가 접해본 역대 최악의 여건에서 시행된 역대 최고의 구출작전

아폴로 1호와 함께 아폴로 계획에서 실패로 끝난 2개 임무 중 하나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부분의 우주선 사고가 비극으로 끝난 것과는 달리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승무원 전원이 무사 생환한 그야말로 우주 탐사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이다. 그렇기에 성공적인 실패(Successful Failure)란 평을 내리기도 했다. 사령선의 콜사인은 Odyssey, 달 착륙선의 콜사인은 Aquarius.

2 왠지 안 좋은 느낌이 드는데

아폴로 13호는 저주의 13으로 NASA를 몸서리치게 만든 사건인데 출발 전부터 삐그덕댔다.

우선 당시 NASA 직원들 사이에서는 "두 번이나 해봤으니까 잘 될 거야."라는, 전혀 근거 없는 자신감이 퍼진 상태였다. 자고로 근거 없는 자신감만큼 위험을 부르는 것도 드문 법이다. 게다가 아폴로 계획에서 사소한 고장이나 실수는 자주 있었지만 현장에서의 임시방편조치로 인해 그게 큰 위험을 부르지 않았기 때문에 안전에 대한 감각이 둔화된 상태였다.

원래 모든 우주 비행 미션에는 실제 그 미션에 투입되는 정규 팀과 정규 팀에 참여하는 우주 비행사 중에서 어떤 이유로 비행금지 조치를 받을 경우 즉각 교체투입되기 위한 백업팀이 구성되는 원칙이 있다. 원래 아폴로 13호의 정규팀은 앨런 B. 셰퍼드 2세 사령관, 스튜어트 A. 루사 사령선 조종사, 에드가 D. 미첼 달착륙선 조종사로 구성이 되어 있었고, 실제 아폴로 13호에 탑승한 제임스 A. 러블 2세 사령관, 토머스 K. 매팅리 사령선 조종사, 프레드 W. 헤이즈 2세 달착륙선 조종사는 다음 미션인 아폴로 14호에 정규팀으로 탑승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셰퍼드는 10년 동안 만성 중이염을 앓고 있었고, 병은 완치했으나 그 동안 치료를 받느라 훈련량이 부족하다며 비행금지 처분을 받았다. 그래서 NASA는 14호의 정규팀을 13호의 정규팀으로 바꾸었다.

이 상황을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면, 그들은 원래 14호의 정규팀으로 내정되어 있었다. 아폴로 계획 때는 3개의 정규 - 백업 팀이 짜여져서 세번째 뒤의 미션에 타는 것이 원칙이었다. 최초의 달 착륙에 성공한 11호 정규팀은 8호의 백업팀이었고, 두번째로 성공한 12호 정규팀은 9호의 백업팀이었다. 10호 정규팀은 7호의 백업팀이었고.. 등등. 결국 13호를 타게 된 짐 러블의 팀도 11호의 백업팀이었고, 14호의 정규팀이 될 예정이었다. 즉 14호를 탈 예정이었다가 13호로 순서가 바뀐 것뿐이지, 14호의 팀이 13호 정규팀의 백업팀은 아니었던 것.

그럼 왜 13호 정규팀에 문제가 생겼는데 백업팀으로 교체가 되지 않고, 순서를 바꾸었냐... 하면, 이 때는 미션을 준비하는 단계였기 때문에, 굳이 백업팀으로 교체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달 착륙 훈련을 받고 있던 다음 미션의 팀으로 바꾸기가 더 나았던 것. 한 칸 밀린 앨런 셰퍼드의 팀[4]은 결국 14호에 정규팀으로 탔고, 이 팀은 13호와는 달리 달 착륙에 성공했다. 전화위복?

이후 교체된 정규팀은 달에 갈 준비를 하며 열심히 훈련을 받았는데 여기에서 또 한 번 삐그덕댔다. 새로 마련된 13호의 백업팀의 달 착륙선 조종사 찰스 M. 듀크 2세의 아이들이 홍역을 앓고 있었는데 이게 듀크에게 옮아버렸던 것. 그러자 13호 담당의는 이게 정규팀에게 전염됐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우주 비행사들은 어릴 때 홍역을 앓았거나 해서 면역을 가진 상태였는데 공교롭게도 매팅리만이 홍역을 앓은 경력이 없었다. 바꿔서 말하면 면역이 없으니 언제라도 걸릴 수 있다는 소리였고 듀크와 동일한 기자재를 만졌으니 홍역의 조짐이 보인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정규팀의 러블과 매팅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면서 반발했지만 돈은 국가가 내고 결정은 NASA가 한다. 결국 양쪽 팀에서 한 명씩 결격사유로 제외되는 곤란한 사태가 빚어지자[5] 예비팀 사령선 조종사 존 L. 스와이거트 2세 한 사람만 기용하게 된다. 사실 승무원이 NASA측에 항거할 정도면 이미 막장. 거기다 병도 안 난 사람을 병자취급하면 뭐. 압권인 것은 이게 불과 발사 7일 전에 벌어진 일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스와이거트도 정규 팀과 동일한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훈련량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갑자기 투입되어 7일 동안 다른 멤버들과 손발을 맞춰야 했다.[6]

3 미션 시작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아폴로 13호는 계획대로 협정세계시(UTC) 1970년 4월 11일[7] 오후 7시 13분, 미국 중부 표준시(휴스턴에서 사용하는 시간) 1313분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발사되었다. 그리고 13의 저주를 상기시키듯 추진 로켓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2단계 추진을 할 때 5개의 로켓 엔진이 동시에 예정된 시간까지 추력을 내줘야 되는데 공교롭게도 중앙 엔진이 2분이나 일찍 꺼졌던 것. 이로 인해 우주비행사들과 미션 컨트롤 센터(MCC)에서는 미션을 취소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나왔지만[8] 나머지 4개의 엔진을 좀 더 오래 사용하면 정상적으로 궤도에 올릴 수 있다고 판단하여 미션 속행이 결정됐다.

우주비행사들과 MCC 관계자들은 이 사소한 문제점에 대해 13의 저주와 연관된 상황을 일찍 겪으면서 액땜한 것 정도로 여겼다. 실제로 이후 지구 궤도를 돌고, 달로 향하는 궤도로 진입하여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이들의 비행은 그야말로 큰 사고없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렇게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4 휴스턴, 문제가 생겼다.

apollo13.jpg

협정세계시 1970년 4월 14일로 알려져 있지만, 미국 중부 표준시 기준으로 4월 13일, 아폴로 13호가 지구에서 321,860km 떨어진 지점에 도착했을 무렵 기계선의 산소 탱크가 갑자기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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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산소 탱크가 느닷없이 폭발한 것은 아니었다. 아폴로 우주선의 수소와 산소 탱크의 경우 극저온 상태에 노출되고 있었고 이 때문에 기체가 층을 이뤄 침전되는 현상을 일으키곤 했다. 그 영향으로 정확한 산소와 수소 잔량 파악이 어려웠는데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탱크에 팬을 설치하여 동시에 히터를 통해 히팅을 하면서 공기를 뒤섞을 수 있는 장치를 설치했다.

미션 컨트롤 센터에서는 당시 콘솔에 나타난 탱크의 기체잔량이 너무 낮게 나타나자 자연스럽게 이 팬을 가동시키라고 지시했고, 우주비행사들도 늘상 있어왔던 지시였기에 자연스럽게 이 팬을 가동시켰다.

그리고 몇 분 후 "시밤쾅!" 하고 폭발이 일어났다.

당시 기계선에는 2개의 산소탱크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 중 2번 탱크에서 이 사고가 일어났는데 하필이면 혼자만 죽은 게 아니라 멀쩡한 1번 탱크와 주변 배관까지 같이 아작내면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당초 우주비행사들은 폭발이 일어났다는 생각을 못했고, 그저 예전처럼 작은 운석 같은 것이 우주선과 부딪쳤을 것으로 인식했다. 보고를 받은 MCC측도 사고가 발생했음을 인지했지만 역시 뭔가가 폭발했다고는 판단하지 못했다.[9] 무엇보다 콘솔에 들어오는 정보만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상황 파악이 어려웠다. 일단 MCC에서는 2번 탱크는 파손됐지만 1번 탱크까지 이상이 생겼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무심코 내시창 너머를 본 러블이 우주선에서 하얀 입자가 뿜어나오고 있는 것을 파악했고, 뭔가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인지한 러블은 MCC에 "Houston, We've had a problem."이라고 리포팅했다. 이 말은 세간에는 "Houston, We have a problem."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10] 영화도 그렇고...어떤 표현이었든 간에 이는 아직도 NASA 베테랑들 사이에서 회자될 정도.

그리고, 결국 우주비행사들과 MCC 모두 사고로 2개의 산소 탱크가 모두 손상을 입어서 산소가 누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당장 우주비행사들의 생명이 중요한 문제였기에 MCC에서는 사실상 달 착륙을 포기하는 선택을 하면서도 1번 탱크를 살리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 일단 우주 비행사들에게 잠시 후 공기가 바닥나는 사령선을 폐쇄하고 신선한 공기를 쓸 수 있는 달 착륙선으로 이동할 것을 지시했다. 이렇게 달 착륙은 취소되고, 아폴로 13호의 달 착륙 미션은 우주 비행사들을 무사히 생환시키기 위한 미션으로 급변하기 시작했다.

4.1 실패라는 선택지는 없다.[11]

진 크랜츠가 이끄는 MCC 팀을 골치아프게 한 것은 역시 정확한 상황 파악이 어렵다는 점이었다. 그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콘솔을 통해 수신되는 정보, 그리고 사고 직후 사령선을 폐쇄하면서 얻은 최종 정보뿐이었다. 이로 인해 MCC에서는 최적의 상황을 미리 조성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문제가 하나 불거질 때마다 임기응변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MCC에서 결정해야 될 문제는 우주비행사들을 어떻게 지구로 데려올 것인가란 점이었다. 우선 우주선을 U턴시켜 지구로 데려오는 방식과 우주선에 인위적인 개입없이 자연스럽게 달의 뒷면을 선회한 다음 다시 지구로 돌아오는 방식이 고려되었다. 다만 주어진 정보 내에서 즉시 U턴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12] 이미 아폴로 13호는 달의 인력권에 접어든 상태였고, 이미 산소 탱크가 날아간 상황에서 연료전지의 정상가동이 어려운데 엔진을 한 번 점화하고 컴퓨터로 궤도를 계산하는 것 자체가 전기를 엄청나게 소모하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폭발로 인해 사령선의 엔진 쪽도 파손된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었기에 더더욱 모험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4.2 전력이 부족해요!

이렇게 귀환방법이 결정됐는데 또 하나의 문제가 불거졌다. 바로 전력문제였다. 연료전지의 정상가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남아있는 전력은 사령선에 있는 APU(Auxiliary Power Unit, 보조-비상전원공급장치)와 달 착륙선의 배터리가 전부였다. 게다가 사령선에 있는 배터리는 추후 지구 재진입 절차를 고려하면 막 쓸 수도 없는 상황. MCC에서도 지구로 도착하기도 전에 전력이 바닥나서 우주선이 깡통이 되어버린다는 계산이 나올 정도였다.

이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다시 MCC 전원이 머리를 싸매기 시작했고 결국 최소한의 생명유지장치와 꼭 필요한 장비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장비를 꺼버리기로 결정했다. 이 때문에 MCC 내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결국에는 항법 컴퓨터마저도,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꺼놓고 항로 수정이 필요할 때만 잠시 켜서 계산하는 식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그나마도 나중에 재진입하기까지 전력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제시되자 자동조종장치도 꺼버리고 조종사들이 아예 손으로 항로를 계산하고 달 착륙선의 수동조종장치로 항로를 수정하는 지경에 놓였다. 어쨌든 MCC와 우주비행사들의 피눈물나는 노력 끝에 지구로 돌아올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전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4.3 누가 나에게 이게 정부가 하는 일이 아니라고 좀 말해줘

어느 정도 상황이 안정세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했을 무렵 또 하나 예기치 못한 문제가 불거졌다. 이번에는 이산화탄소 문제였다. 우주 비행선의 경우 자체적으로 이산화탄소를 희석하고 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별도의 이산화탄소 제거기를 사용한다. 사령선의 경우에는 3명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를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애초에 달 탐사선은 2명만 탑승하는 상황을 가정했기에 딱 2인분의 이산화탄소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이에 따라 아폴로 13호 내의 이산화탄소 수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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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C에서는 사령선의 이산화탄소 제거기를 달 착륙선에 설치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지만, 정말 재수없게도 사령선의 이산화탄소 제거기는 사각형이었으나 달 착륙선의 제거기는 원통형이라서 호환이 되지 않았다.[13] 이걸 알게 된 진 크랜츠는 황당해하면서 "Tell me this isn't a government operation."라는 말을 남겼다. 직역하면 "누가 나에게 이게 정부가 하는 일이 아니라고 좀 말해줘"란 의미이지만 상황을 고려하여 의역한 자막 등에서는 "정부 지원 사업이 이 꼴이라니"로 번역[14]하는 편이다.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는 못했겠지만 긴급 상황에 대비해서 주요 장비들의 규격을 일치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쨌든 MCC에서는 이 장치를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우주선 안에 있는 재료만을 써야 됐기 때문에 쉽지 않은 문제였고, 결국 하룻밤을 꼬박 샌 끝에 우주비행사들의 양말과 도관용 테이프, 두꺼운 비행 매뉴얼 등을 사용하여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리고 우주비행사들은 MCC의 지시에 따라 빠르게 제작에 착수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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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이산화탄소 제거기 제작중 촬영된 기록 사진. 오른쪽은 스와이거트다.

결국 완성시켰다. 이를 통해 이산화탄소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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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완성된 이산화탄소 제거기의 모습

4.4 궤도수정의 문제

지구로 무사 생환을 하기 위해서는 궤도 수정을 수 차례 해야 했는데 여기에도 골치 아픈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산소 탱크 폭발로 인한 산소 분출이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무중력 상태에서 등속도 운동을 하는 우주선이었기 때문에 폭발 후 잔류한 산소들이 아직 탱크에 남아 있었는데, 이들이 기화되면서 새로운 벡터값(즉 운동량)을 우주선에 주어 우주선 궤도를 뒤틀어버렸기 때문에 이후 재점화 및 궤도 수정이 필요하게 됐고 이 절차를 여러 번 반복해야 했다.

두 번째 문제는 우주선에 감겨있던 단열재들이 기계선의 폭발로 조각조각나서 우주선 주위 천지사방으로 뿌려졌다는 것이다. 창문에서 단열재들이 3축 회전을 하며 태양빛을 반사함에 따라, 항법 시스템 중 제일 중요한 별자리 관측이 불가능하게 된다. 이 덕택에 기준으로 삼는 별들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고, 오로지 NASA의 슈퍼컴퓨터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전력문제로 자동조종장치도 가동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휴스턴에서 오는 정보에 기반하여 승무원들이 수동으로 궤도를 계산했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건강상의 문제로 후반에는 지상에서 계산 후 값을 주면 실행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원래 사령선 조종사였던 매팅리의 땜빵으로 7일 전에 합류했던 스와이거트가 바로 사령선의 절차(즉 매뉴얼)를 개발한 주인공이었다는 점. NASA 안에서, 스와이거트보다 사령선에 빠삭한 사람은 없었다.

4.5 버티기에 너무 열악한 환경

여러가지 산적된 문제들은 그럭저럭 해결되고 있었지만 우주비행사들이 노출된 열악한 상황은 해결할 수 없었다. 승무원들은 하루하루를 핫도그 한 개와 3온스(약 90ml 정도)로 버텨야만 했다. 결국 헤이즈는 신장염을 얻게 되어 귀환 후 오랫동안 고생했다. 왜 물이 3온스뿐이었나 하면 현대에도 그렇지만 은 워낙 중량이 많이 나가기 때문에 우주선에 직접 싣고 가지 않는다. 대신 연료전지가 가동을 하면 수소산소가 합성되어 부산물로 이 나온다. 즉, 우주인들은 이 물을 정수해서 마시게 되며 이게 정수기의 시초이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지만 산소가 부족하니 물도 부족해질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전력을 아끼기 위해서는 히터도 꺼야 했기에, 내부 온도는 영하로 떨어져 그나마 3온스의 물은 얼음으로 먹어야 했고, 당연히 방한 대책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추위에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월면화를 신어서 발이 시려운 상황은 피할 수 있었지만 원래 달에 내려갈 사람이 2명이니 월면화도 2켤레밖에 없었기 때문에 한 명은 그냥 근성으로 버티는 수밖에…. 결국 헤이즈는 우주에서 감기에 걸렸다.아니 신장염에 감기에

무엇보다 사고 후 며칠 동안의 고난(기아, 저체온증, 고농도 이산화탄소 환경에 노출 등)으로 승무원들의 심신은 한계에 내몰려, 한때는 무력감에 휩싸여 생존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NASA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이들은 마침내 4월 17일 지구재진입했다.

5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실패

간신히 재진입을 바라볼 수 있는 시점에 도달했을 무렵 또 다시 전력 문제가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지구 재진입을 위해서는 사령선을 가동시켜야 됐는데 정작 사령선에는 쓸 수 있는 전력이 얼마 없었다. 그럼에도 재진입을 위해 필요한 장비들은 끔찍할 정도로 많았다. 그 때문에 전력 부족으로 중간에 우주선의 동작이 멈추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빚어질 상황이었다. 단적인 예로 전력부족으로 낙하산이 펼쳐지지 않는다면 그대로 지구에 자유낙하할 판국이었으니….

결국 MCC에서는 지상에 잔류한 매팅리[15]를 포함한 동원 가능한 모든 인력을 몽땅 투입하여 있는 전력 없는 전력을 최대한 짜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반드시 필요한 장비와 없어도 상관 없는 장비를 분류하여 전력을 최대한 아끼고, 우주선에 남은 전력을 최대한 짜내는 방법을 연구한 끝에 어떻게든 재진입할 수 있는 절차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는 지상에 주어진 정보만으로 시뮬레이션하여 만들어낸 방법이었고 우주선의 정확한 상황이 파악된 것은 아니었기에 제대로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게다가 이전의 사고로 사령선의 재진입 모듈 역시 파손되지 않았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이라 NASA 내에서도 최악의 상황을 각오해야 됐을 정도로 변수가 많은 재진입이었다.

5.1 안녕, 아쿠아리우스

Apollo_13_Lunar_Module.jpg

지구 궤도에 진입 직전, 승무원들은 사령선으로 옮겨타 APU를 이용해 사령선을 재부팅하고, 달 착륙선 아쿠아리우스를 분리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달 착륙선을 분리한 순간이 제일 아쉬웠던 순간이었다고 한다. 달 착륙을 못한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마치 생사를 같이 한 친구를 잃은 것 같아서였다고.

이 때 달 착륙선이 대기권 진입 중 방사능 낙진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걸 우려하는 기사가 여러 곳에서 나왔다.# 달 착륙선의 경우 동력선이 여러 가지인데 그 중 하나로 플루토늄을 비롯한 방사능 물질이 들어간다. 열처리가 되어 있어 재돌입시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아폴로 13호에 실린 플루토늄은 3.9kg이나 되었는데 이것이 육지에 떨어진다면 그 일대는 수천 년간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된다. 만약 재수 없게 대도시 같은 곳에 떨어진다면 그 여파는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그래서 애초에 NASA는 달 착륙선은 달 궤도에서 버리고 오는게 정석이었으나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지구까지 끌고 왔으니... 물론 NASA는 이에 대해 태평양 깊숙히 떨어뜨릴 것이었지만 애초에 NASA가 일처리를 깔끔하게 했으면 이런 사태까지 오지도 않았잖아...라는 게 당시 사람들의 우려였다.

이 착륙선은 1970년 4월 17일 대기권에 재돌입해 소멸되었다. 다행히 계획대로 표면 실험장치군의 동력인 소형 원자력 발전 장치가 태평양에 낙하하도록 제어되었으며, 연료의 플루토늄대기권에서 모두 불타지 않고 뉴질랜드 북동쪽의 통가 해구의 바닥에 가라앉아, 향후 2,000년간은 방사선을 계속 방출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5.2 지구로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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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선을 분리할 당시 기계선의 사진(출처 위키백과)

위는 기계선의 사진인데, 이것을 보면 얼마나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다. 동력 시스템의 한쪽면이 통째로 날아갔으며, 폭발한 곳의 구멍은 길이 6.4m, 폭 1.8m라는 엄청난 크기. MCC에서도 기계선에 부착된 주 엔진은 사망선고를 내릴 수밖에 없었고, 별 수 없이 승무원들은 달 착륙선의 하강단계 엔진을 사용해야 했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노즐은 멀쩡해보여도 내부는 개박살난 상태다. 이걸 본 우주비행사들도 "세상에. 우리가 지금껏 저걸 타고 있었단 말이야?" 하고 놀랐다니 그 꼴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니 성공적으로 대기권 돌입이 가능할지는 의문이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계선이 폭발하는 과정에서 사령선의 밑바닥을 덮은 내열재가 손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사령선이 대기권에 돌입하는 순간 승무원들은 모두 타죽을 판이었다. 이는 (미래의 사고이긴 하지만) STS-107 컬럼비아호도 발사 당시에 발생한 내열재 손상으로 귀환 도중 공중분해, 승무원 7명이 모두 순직했다는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래서 고장난 기계선을 떼버리지 않고 그대로 지구 근처까지 달고 온 것도 이 때문이었다. 우주공간에 내열재가 무방비로 노출되었다가 손상을 입으면 끝장이기 때문이다. 덤으로 아폴로 13호의 예상 착수 지역 부근에 태풍경보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한마디로 그 개고생을 하고 목숨을 걸고 대기권을 돌파하자마자 태풍에 휘말릴 판이었다. 누가 13호 아니랄까봐...

Apollo13_splashdown.jpg

그러나 다행히도, 정말 다행스럽게도 내열재는 무사했고, 태풍의 영향권도 피했다. 재돌입 과정은 순탄했으나 지상에서 보던 사람들은 간을 졸였는데 3분 내로 통신이 재개될 거라 기대한 것과 달리 실제로는 대기권 돌입각도 문제로 3분 30초 후에야 다시 재교신이 가능해서 30초 동안은 다 죽은 게 아닌가 걱정을 많이 했다. 1970년 4월 17일 오후 6시 7분 41초에 사모아 섬 남서쪽, 서경 165도 22분, 남위 21도 38분의 태평양 상에 성공적으로 착수했다. 회수를 위해 대기했던 미 해군 강습상륙함 USS 이오지마(USS Iwo Jima) 함에서는 6.5 km 떨어져 있었다. USS 이오지마 함에서 성공적으로 모두를 구조, 닉슨 대통령은 그날 밤 베트남에서 군대를 철수하겠다고 밝힐 예정이었던 연설을 취소하고 바로 USS 이오지마 함으로 달려가 아폴로 13호 미션을 Successful Failure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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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수 후 환호하는 MCC 사람들. 사진 가운데 담배를 문 사람 오른쪽에 있는 모히칸 헤어스타일에 조끼를 입은 사람이 진 크랜츠이다. 출처 위키백과

6 복귀 이후

6.1 사고의 원인

우주비행사들이 돌아온 후 바로 사문위원회가 조직되어 시뮬레이터와 14호용 기계선에 의한 조사에 착수하였다. 물론 시뮬레이터와 다른 기계선을 이용한 조사였으므로 오류는 있을 수 있지만 폭발의 이유가 참 가관이었다.

  • 원래 28볼트가 최대 수용가능 전력으로 설계되었던 산소 탱크 히터 부품에 아폴로 우주선의 통용 전압인 65볼트가 넘는 전압이 걸렸던 것이다. 문제는 아폴로 우주선의 통용 전압이 65볼트라는 사실은 이미 아폴로 우주선이 제작되던 때 NASA가 제조사에게 통보했으며, 제조사도 이에 따라 각종 전기규격을 65볼트로 바꾸었지만, 탱크 히터의 온도조절장치와 부속된 전류차단장치 전압은 28볼트로 놔두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 아폴로 13호 제작 당시, 작은 사고로 인해 해당 탱크가 금속선반에 충돌하는 일이 있었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실제로는 이 충격으로 인해 주입관이 벗겨졌다. 문제는 이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단순 사고가 있었다고 보고만 올리고 납품해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통상적인 밸브 조절만으로는 탱크 내부의 액체산소를 배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때문에 다른 방법을 써야 하는 문제점을 만들었다.
  • 밸브 조절로는 해당 탱크가 산소를 배출하지 못해서 산소를 공급하지 못한다는 문제도 이미 보고되었으나, 일정이 급해서 대체방법을 쓰기로 했으며, 그 방법이 바로 연료 저장 탱크의 히터와 팬을 가동해서 내부의 산소를 녹이고 흐르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이미 대체방법을 써야 할 정도로 문제가 있는 탱크를 쓰는 것 자체가 문제였으나, 이미 이런 대체방법을 2번이나 사용해 본 케네디 우주 센터에서는 별로 큰 일로 여기지 않았다. 편법이 자주 사용되면 어느새 위험성을 잊어먹는 것이다.
  •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점검할 때 해당 탱크의 탱크 히터 온도조절장치는 이미 설정된 온도인 27도에 도달해서 전류를 끊는 동작까지는 정상적으로 동작했다. 하지만 28볼트용 온도조절장치에는 과잉한 전압인 65볼트의 전기가 해당 스위치와 전류차단장치를 녹여서 억지로 전기가 계속 흐르게 만들었고, 결국 장시간에 걸쳐서 전출력으로 가열이 진행된 나머지 탱크의 중앙관 속을 달리는 동선다발을 피복하는 테프론제 절연체를 녹였다. 이 절연체의 잔해는 후에 크게 문제를 일으킨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케네디 우주 센터의 해당 탱크 점검장치의 온도 표시기는 27도까지만 표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상 고온 같은 비상상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완벽하게 무시한 경우다. 그래서 이상 온도가 발생해도 외부 조작자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사건이 터진 이후 제대로 된 온도 표시기로 검사한 결과, 이런 경우에는 탱크 온도가 무려 538도까지 오른다는 것이 밝혀졌다. 애초에 이것만 알았어도 탱크를 바로 폐기해버렸을 것이다.
  • 결국 해당 탱크는 아폴로 13호에 장착되었고, 임무 개시로부터 56시간이 흐른 뒤에 수소의 압력이 저하되었음을 알리는 주 경고음이 들리자, 휴스턴은 통상적인 경우라고 생각하고 사령선 조종사 잭 스와이거트에게 탱크의 히터 스위치를 켜도 좋다는 지시를 내린다.
문제는, 앞서 케네디 우주 센터에서 점검한 결과로 인해 해당 산소 탱크 내부에는 액체산소와 함께 불이 붙을 수 있는 테프론제 절연체 조각이 떠다닌다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전기를 넣었으니 순산소 + 가연물질 + 전기 스파크가 합체된 대폭발이 발생했다. 덕분에 엄청난 폭발로 인해 옆에 있던 정상적인 탱크 및 공용으로 사용하는 배관까지 박살나서 우주선이 깡통으로 변해버렸다.
  • 그리고 무엇보다 골 때리는 점은 산소 탱크의 장착 및 해체 시 배관 등으로 인해 간섭을 받아서 조금의 실수만 하면 산소 탱크가 망가지기 딱 좋다는 사실은 아폴로 계획 처음 시작할 때부터 줄곧 발생 가능했고 보고까지 된 문제점이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문제가 하필이면 13호에 와서 터졌다는 것이며, 해당 장착 위치 부분의 개선도 이미 완료돼서 아폴로 14호부터 적용될 예정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사고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 부품 공급사와 사소한 사고를 형식적인 보고만 하고 넘기는 납품 과정 및, 이상 상태를 파악할 수 없는 점검기로 검사를 한 케네디 우주 센터와 함께, 전반적으로 일정만 중시한 나머지 사소하다고 판단된 사고는 원인을 규명하지 않고 편법으로 해당 부품이 작동하도록 만든 다음, 그걸 유지한다는 편법만능주의가 합쳐진 사건이었다. 즉 인재(人災)의 연속이었다.

따라서 해당 사건 이후 NASA에서는 13호 관련자와 해당 부품 공급사를 아폴로 계획에서 잘라버렸다. 하지만 이런 식의 안일한 대응은 그 뒤에도 이어졌고, 그 결과 인류의 우주 탐사 역사상 최악의 인명피해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16]

6.2 각종 상황에 대한 연구

초유의 사고가 났음에도 무사히 생환한 경우였고 그 과정에서 당면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야말로 시간에 쫓기면서 각자의 머리를 쥐어짜낸 끝에 해결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추후 사고 발생시 대처방법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됐다.

아폴로 계획을 준비하고 각종 상황에 대한 시나리오와 대처 매뉴얼을 작성할 때 사령선을 폐쇄하고 달 착륙선으로 비행하는 상황 자체는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사실 초기 단계에서 "고려해야 될 상황"으로 논의가 되긴 했지만 그럴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어 시나리오조차도 작성하지 않았는데 세상 일이란 것은 결코 알 수 없는 법. 특히 사령선 폐쇄를 결정하고 달 착륙선으로 제어권을 옮기는 과정에서 비행 관련 데이터를 완전히 넘겨주지 못하면 우주선은 그야말로 눈먼 깡통이 될 처지였다. 게다가 사령선이 시시각각 죽어가는 상황에서 시간조차도 많지 않았는데 조종사들은 이렇다 할 매뉴얼도 없이 달 착륙선의 컴퓨터를 부팅시키고, 잽싸게 값을 보정하여 데이터를 옮겨넣고, 성공적으로 사령선을 폐쇄했다. 그야말로 기적이 따로 없었다.

더불어 상기한 것처럼 3인의 조종사가 달 착륙선을 이용하는 상황을 상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역시 전혀 고려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문제가 불거졌고 사령선의 이산화탄소 제거기와는 호환도 되지 않는 개떡같은 상황. 그 때문에 MCC에서 간신히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냈고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사후 연구에서 이 임시방편은 매우 효율적인 방법으로 인정받아 이후 추진되는 아폴로 계획의 매뉴얼과 교육과정에 포함되는 위업을 달성했다. 다행히, 그 후로 이 임시방편이 실제 상황에 적용되는 일은 없었다. 이산화탄소 제거기도 14호부터는 상호 호환이 가능하게 바뀌었다.

6.3 아폴로 계획의 축소

이 미션 이후로 달 미션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미국내 여론이 거세졌지만, NASA는 진보한 달 미션이라는 슬로건 아래 기계선을 완전히 재설계해 아폴로 14호를 내보내게 된다. 사실 13호부터 진보할 계획이기는 했지만...실제로 13호에는 신형 우주복이 탑재되어, 이 우주복을 새로 시험해 보는 것이 13호의 첫 임무였다.

6.4 대중매체의 아폴로 13호

이 사건은 아폴로 13이라는 이름으로 영화화되었으며, 이 영화는 당시 사령관이던 제임스 러블도 몇몇 긴장감을 위한 장치를 제외하면 철저히 사실에 입각하여 만들어졌음을 인정했을 정도로 사실적으로 제작되었다. 이 영화에 러블은 자신들을 구조했던 USS 이오지마 함의 함장인 미 해군 대령 역으로, 러블의 아내는 아폴로 13 발사를 지켜본 관객 중 한 명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또한 동방영야초 6A면 야고코로 에이린의 스펠카드 '천주 - 아폴로 13'의 모티브가 되었다.

7 그 외

아폴로 11호의 달착륙 이후로 달 탐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시들해진 상태였기에 아폴로 13호의 비행은 TV에서도 별로 보도되지 않았지만, 사고가 나고서부터는 아폴로 11호를 능가하는 초유의 관심을 받게 된다. 달 착륙보다 이걸 시청자들이 더 많이 봤을 정도. 때문에 아폴로 13 제작진들이 다시 의기투합하여 아폴로 계획 전체를 다룬 TV 미니시리즈 지구에서 달까지에서는 톰 행크스 주연의 아폴로 13 영화에서 아폴로 13호 우주 비행사들의 개고생을 조명하는 동안 지상에선 기자들이 어떤 짓을 했는가를 다루는 식으로 조명되었다. 영화에서도 짐의 아내 마를린이 "우리 남편 달 간다고 할 때 무관심하던 기자양반님들이 죽게 생겼으니 현장 취재를 하시겠다고?! "라며 기자들에 대한 환멸을 드러내기도 했다.

우주비행사들과 관제사들은 무사 귀환을 이뤄낸 공으로 훈장을 수여받았다.

한편으로는, 우주비행사들이 달착륙을 하기 전에 폭발이 일어난 것이 역설적으로 그들의 목숨을 구했다. 만약 달 착륙을 한 후에 기계선이 폭발했다면, 지구로 돌아올 방법은 사라졌을 것이다.[17]

이 사건 이후의 승무원 3명과 매팅리의 운명도 묘한데 켄 매팅리를 멤버에 빼면서까지 아폴로 13호에 탑승했던 세 명은 모두 그 후로 달은커녕 추가 우주비행을 하지 못한 반면[18] 매팅리는 아폴로 16호에 탑승했고 우주왕복선 비행(그것도 국방부에서 일급 기밀 미션을 믿고 맡길 정도로 신뢰받았다!)도 두 차례 더 하고[19] 해군 소장으로 전역하는 등 우주비행사로서 성공적인 행보를 보였던 점이 대조된다.
  1. CDR 백업 존 영. 이후 이 팀은 16호에 배정된다.
  2. 원래 스와이거트는 백업이었는데 찰스 듀크의 홍역 때문에 홍역 면역이 없는 매팅리가 우주에서 발병할 가능성이 있다며 교체되었다.
  3. LMP 백업 찰스 듀크
  4. 사실 이 팀도 원래는 셰퍼드가 아니라 머큐리 계획 시절의 다른 베테랑 고든 쿠퍼가 사령관이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고든 쿠퍼는 훈련에 소홀하게 임한다는 이유로 디크 슬레이튼(머큐리 동기!)에게 잔소리를 듣다 잘렸고, 때마침 비행자격을 회복했던 셰퍼드가 머큐리 올드보이의 달 착륙이라는 상징성을 위해 선발되었다. 고든 쿠퍼는 결국 이들과의 관계가 멀어져 NASA를 아예 나와버렸고, 14호 미션을 앞두고 셰퍼드의 귓병이 걱정이다, 개인의 욕망보다 아폴로 미션에 있어서 무엇이 최선인지 생각해야 한다느니 하는 발언으로 초를 쳤다(...) 그리고 쿠퍼의 팀 중 사령선 조종사 돈 아이즐리의 경우는 갑자기 불륜 스캔들이 터졌다. 지금 같은 시대에는 그냥 사생활 정도로 묻어갈 수도 있지만, 이 시기 아폴로 우주인들은 세계구급 스타들이었기 때문에 불륜으로 인한 이미지 실추는 그냥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아폴로 7호 시절 우주에서 감기에 걸려 관제센터와 고성이 오가는 싸움을 벌였기 때문에 평가는 원래 안 좋았고, 결국 아이즐리를 마음에 안 들어했던 디크 슬레이튼은 아이즐리를 확 잘라버렸다.
  5. 막말로 홍역에 옮았던 듀크가 착륙선이 아니라 사령선 조종사였다면 13호는 아예 취소될 수도 있었다. 백업 팀을 이중으로 운용하는 것도 낭비라고는 하지만 좀 아스트랄한 사태임은 부정할 수 없다. 존 영짐 러블 모두 아폴로 사령선 조종사 경력이 있으니 존 영을 데려와서 시켰으면 될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우주비행사의 보직이란 것이 그렇게 발사 며칠 전에 쉽게 전환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아폴로 10호와 13호의 사령선은 이미 매우 다른 물건이 되어 있었기에...
  6. 영화상으로는 잘 안 맞는 것처럼 표현되었지만 스와이거트의 경우 사령선 메뉴얼을 작성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터라, 다른 맴버들도 딱히 걱정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7. 여담이지만 이 날짜를 6자리로 만들고(70년 4월 11일) 각 자리수를 다 더하면 13이 된다.
  8. 당시나 지금이나 엔진의 문제는 폭발이라는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결정이 요구되었다. 다행히 분사 시간과 출력 등을 고려하여 내린 결정이었다.
  9. 진 크랜츠 : "알았어. 우리가 해결해줄 테니까 우주 여행이나 계속해."
  10. 지금 이 동영상의 덧글들을 보면 다 이 실수에 대해 뭐라고 하는데, 감독 론 하워드가 일부러 이렇게 바꿨다고 말하였다. 이유는 "We have"라고 하면 "We've had"보다 더 긴장스럽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가, We have a problem 은 현재형으로, "지금 문제가 일어났다." 정도지만 We have had a problem은 현재 완료형으로 "문제가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로 해석된다.
  11. "Failure is not an option." 발언자는 MCC 팀 두목이신 진 크랜츠로 알려져 있으나...실은 영화 제작을 준비하는 동안 어떤 관련 인물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언급이 있었던 것을 잘 포장해서 쌈박한 문장으로 바꾼 다음, 그 문장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인 진 크랜츠의 대사로 바꾼 것이다. 진 크랜츠 본인도 마음에 들었는지, 나중에 자서전의 제목이나 MCC 팀 관련 다큐멘터리의 제목으로 사용되었다.
  12. U턴을 하려면 장시간 역분사를 해야 하는데 그 일을 할 엔진과 연료가 없었다. 사령선은 폭발로 인해 엔진 상태를 알 수 없고, 남은 것은 달 착륙선인데 달 착륙선 엔진은 달에서 사용하게 제작되었으며 장시간 분사할 연료는 탑재하지 않았다.
  13. 원래 달 착륙선은 그루먼 사에서, 사령선은 노스 아메리칸 항공 社에서 각각 제작되었다. 조별과제?
  14. 비슷하게는 "어떻게 정부 프로젝트라는 게 이따구일 수가 있지?", 또는 "이게 정부가 하는 프로젝트라는 게 믿기지가 않는구만." 또는 "정부에서 한 게 아니라고 해줘". 혹은 "누가 정부가 하는 일 아니랄까봐.", 아니면 "정부가 하는 일이 뭐 그렇지."처럼 냉소적인 의미로 해석한 자막을 넣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어떻게 해석하든 씨바 할 말을 잊은 대사임을 잘 알 수 있다.
  15. 당초 의료진의 주장과는 달리 매팅리는 평생 홍역에 걸리지 않았다. 영화에서 의료진을 노려보며 "나는 홍역 따위에 걸리지 않아"라 말하는 장면이 의미심장하다.
  16. STS-51-L 챌린저의 화재 원인은 단순한 고무링의 불량으로 인한 파손이였고 실제로 1년 전에 있었던 STS-51-C 미션에서 이와 유사한 이유로 디스커버리가 폭발하기 직전까지 갔음이 밝혀진 바 있었다. 하지만 담당 엔지니어의 간곡한 요청에도 NASA와 제작사는 이를 씹고 다음 겨울에도 우주왕복선 발사를 강행했다.
  17. 아폴로 13호가 달착륙을 마치고 착륙선을 폐기한 다음 아직 달 궤도에 있던 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면 궤도를 탈출할 추력을 잃고 생존을 위한 전기, 산소 등의 부족으로 비행사들을 태운 관으로 변했을 것이다. 달 궤도에서 탈출, 지구로 귀환 중에 사고가 발생했더라도 역시 전기, 산소 부족으로 비행사들은 사망, 그대로 지구 대기권에서 화장된다. 지구에 거의 다 왔을 때라면 아슬아슬하게 생존할 수도 있겠지만.
  18. 러블이야 은퇴할 예정이었지만, 특히 예산문제로 17호가 마지막 비행이 되면서 19호 사령관이 될 예정이었던 헤이즈의 경우를 보면... 이후 헤이즈는 우주 왕복선 시험기 엔터프라이즈의 테스트 파일럿으로 활동하고 우주왕복선 미션에 투입될 예정이었지만 스카이랩을 포기한 NASA의 결정에 반발하여 그루먼으로 이직했다. 하지만 헤이즈보다도 안타까운 경우가 있는데, 바로 매팅리 대신 투입되었던 조종사 잭 스와이거트. 이후 아폴로 15호 귀환 이후 세간을 들썩인 우표 스캔들에 연루되어 NASA를 그만두고 정계에 입문, 하원의원에 당선되었지만 채 의정활동은 해 보지도 못한채 51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암으로 사망했다.
  19. 매팅리의 세번째 비행은 앞서 언급된 STS-51-C 디스커버리 미션으로, 발사 과정이 챌린저 폭발사고의 전주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