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리코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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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hua Fit the Battle of Jericho.

예리코의 전투(여리고의 전투)
날짜
불명
장소
이스라엘 여리고
교전국1교전국2
교전국히브리가나안(팔레스타인)
지휘관여호수아
나머지는 불명
불명
병력불명불명
피해 규모불명불명
결과
히브리인 승리
기타
가나안 평정의 시작

1 개요

타나크의 예언서 여호수아서에 묘사되는, 히브리인(유대인)과 가나안인의 전투. 전장이 현재 이스라엘의 예리코였기 때문에 흔히 예리코의 전투라고 불린다. 개신교에서는 예리코를 여리고라고 하여서 여리고의 전투라고 부른다.

현재 유대인이 이스라엘을 차지하는 가장 근원적인 명분이자 시오니즘의 실질적인 당위성이 되는 사건. 물론 더 이전에 있었던 출애굽 사건 같은 것도 있지만 명분 제공 차원을 넘어 본격적인 실천에 옮긴 것은 이것이 최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하기 전까지 유대인은 어떤 도시에도 정착하지 못한 이집트 출신 난민이었다. 그러나 이 전투를 통해 가나안 주민들로부터 예리코를 "강탈"함으로써 유대인은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들의 '조국' 이라는 것을 갖게 된다.

참고로 아브라함 시절의 경우는 어디까지나 남의 땅 더부살이 차원이었지 가나안을 통치했다고 말하기 힘들다. 게다가 어느 정도 사료적 증명이 되는 예리코 전투 이후와 달리 이집트 이전 시대의 행적은 나중에 가나안 지배를 정당화하려고 꿰어맞춘 전설에 가깝다는 견해도 있다.

성경에 기록된 이 전쟁은 종교적인 이유로 매우 미화되어 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명백한 침략 전쟁이다. 타나크의 다른 전투들도 상당히 미화되었지만 예리코의 전투의 경우 성경에 묘사된 그대로를 따르자면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 예리코를 먼저 쳐들어간 것도, 그리고 그 예리코의 힘 없는 노약자와 유아까지 다 살육한 것은 바로 유대인이다. 침략 및 살육 행위를 역사/종교적으로 미화하여 노래까지 만들어 부른다고 생각을 해보자. 살던 사람을 싹 다 죽여버렸기 때문에 따질 사람마저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살육했어도 가나안 완전 정복에는 실패하고 유대와 혼합되어 버린다 다만 이를 실제역사라고 볼 수 있는 역사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어떻게 받아들이든 묘사 자체는 잔혹함이 변함이 없기 때문에 저연령층에게 타나크 성경공부를 시킬 때 이 사건은 대충 넘기거나 그냥 빼고 넘어간다.[1]거짓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진실을 덜 말한 것 뿐입니다. -헤르메스 ; 거짓말 좀 작작하라고 제우스가 질책하자 한 말. 물론 제우스의 어이는 안드로메다로 가출해버렸고, 그후는... 더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큐베: ...그렇게 해서 성벽이 무너졌고 유대인은 자신들의 조국을 가지게 되었어.

아이들: (무혈입성이라니!) 와! 잘됬다. 가나안사람들과도 잘 살았겠네!
큐베: ...뭐, 유대인들에게 있어선 그런셈이지.
(진실을 알게된후)
아이들: 가나안사람들을 모조리 죽였다는데 왜 거짓말 한거야!
큐베: 난, 가나안사람들이 전원 무사했다고 한 적 없는데? 그리고 유대인과 내통한 몇몇 사람들은 죽지 않았어.
아이들: 나머진 어쩌고?!
큐베: ...그런건 몰살된게 당연하잖아? 왜 그렇게 단일개체에 집착하지? 수명뿐이지만 가나안사람들은 무사했고 잘 살았어.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어.
아이들: (...)

사실 타나크 자체가 잔혹하고 현대인의 관점에서 비윤리적인 대목이 많기 때문에 한국이든 미국이든 타나크를 공유하고 있는 교회 입장으로는 저연령층은 타나크 먼저가 아니라 신약부터 가르치는 편이다.그래야 세뇌시킬 시간을 벌수있기 때문이다 신도화가 완료된후 예리코 전투를 그들만의 논리(...)로 가르치면 불쌍한 아이들은 할렐루야!(...)를 외칠 뿐이다. 만들어진 신의 예리코전투 관련실험 결과를 참조하라.

이쯤되면 기독교와 다른 사이비종교 간의 다른 점을 찾는게 더 어렵다.다른점이라곤 기독교는 헌금을 "은근히" 대놓고 요구하고, 사이비 종교는 대놓고 요구한다는 것 뿐이다.

다만 가톨릭의 경우에는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라 대마계촌신약이 초마계촌구약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비중있기 때문에 신약부터 가르친다. 그런 이유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한 전례 개정 전에는 미사 도중에 구약성서를 봉독하지 않았다. 같은 사도전승의 교회는 정교는 아직까지도 성찬예배 도중에 구약성서를 봉독하지 않는다.

성경 중에서도 구약, 그중에서도 특히 예리코의 전투 부분은 '과연 성경이란 무엇인가?', '성경은 축자적으로 참인가, 유기적으로 참인가?' 등의 개념이 잡혀있거나 최소한 비슷한 개념이라도 잡혀 있어야 이해할 수 있기에 저연령층에게 교육하기는 쉽지가 않다. 또 교육하더라도 학살을 옹호하는 식으로 주화입마 당하는 아이들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여러 모로 골치가 아픈 문제이다.

실제로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간에 어린이 구약교육의 경우는, 주님이 세상을 창조했고 아담과 하와가 잘못을 했다(에덴동산),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고 착하게 살면 구원 받는다(노아의 방주)는 정도의 교훈에서 그친다. 구체적이고 진지한 신학적인 견해는 성인들의 성경 교육에서 배우게 된다.

본 문서가 성경의 역사 기술 방식과, 고대 전쟁에 대한 이해 없이 쓰여졌다는 기독교인들의 항의가 있었다.여튼 광신도들은 답이 없다

그러나 해당 내용은 기독교 측에서 자기 편한대로 성경을 해석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으며, 성경과 야훼의 도덕성과 신빙성을 약화시킨다. 성경이 왜곡이 섞여있고 편집과 필사상의 비의도적 오류도 있으며 고대인들의 낙후된 세계관과 유대인들의 민족성 등이 섞여있는, 인간적인 한계가 있는 경전임을 감안하여, 신으로 부터의 계시가 아니라, 인간의 저작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하는 것이 바람직한 나무위키의 서술방식일 것이다.

1.1 보완사항

타나크의 도덕성과 합리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이며 단순한 타종교 신화와 다를게 없다고 보는 시각에 그리스도교(특히 교부들과 교부학을 중요시하는 가톨릭과 정교)에서는 오히려 그것 때문에 야훼가 기독교인 입장에서 지성을 초월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예형론이 발전한 많은 이유 중 하나에 불과하긴 하지만, 타나크의 이런 장면 때문에 교부시대 때 예형론이 더욱 더 발전하게 되는데, 예를 들면 염소에게 빨간 비단을 입히는 건 매맞고 채찍질을 당해 온몸에 유혈이 낭자한 그리스도의 예형이라거나, 구약에서 돌로 새겨진 하느님의 말씀인 십계판을 보관하는 계약궤는 신약에서 육화된 하느님의 말씀을 안에 품은 성모 마리아의 예형이라거나 하는 식이다.

그리고 예형론이 발달하게 됨에 따라 구약성서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예언서로 보고 그 안에 있는 예리코의 전투 같은 역사적 사실들이 실제로는 안 일어났어도 무방하게 됐다는 마인드가 교부시대 때부터 생겼다. "예를 들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홍해 건넘이 실제로 일어났든 안 일어났든 상관없고, 그건 단지 신약에서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의 세례와 세상의 나그넷길 걸음의 예언이며 예형일 뿐이다"라던가..

그렇게 돼서 "예리코의 전투 또한 신약에서 그리스도께서 악마를 이겼다라는 것에 대한 예표이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든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든 별 상관없다"라는 견해 또한 교부시대 때부터 있었다.

이걸 보고 바로 밑의 '가톨릭의 해명' 문단을 읽으면 더 좋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성서사가가 분풀이 겸 정신 승리로 그렇게 기록했는데 이게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가 되었고, 이게 더 폼나고 그럴싸하다고 생각돼서 하느님의 섭리는 신비하다라고 생각했다는 소리...그걸 문학적 분류로 "소설"이라고 합니다 감벽의 함대영원의 제로와 다른게 없다.

다만, 19세기 들어서야 교황청에서 "요즘에 자꾸 구약성서에 나오는 일이 실제 사건이 아니라는 말이 도는데, 실제로 구약성서에 나오는 일이 맞는지 아닌지 면밀히 알아보아라"라는 식으로 말하는 걸 보면 "실제로 있던 일이 아닐 거다"라는 것은 신학적 이론으로만 존재했지, 보편적인 견해는 아니었던 것 같다.

2 내용

성경에 기록된 정황으로는 당시 유대민족은 이집트로부터 벗어나긴 했지만 앞날이 막연하기만 했던 떠돌이 집단으로 첫 지도자였던 모세는 계시를 통해 가나안 땅이 하느님으로부터 약속받은 땅이라며 그 땅의 선주민들을 축출하고 가나안을 차지할 것을 명했다. 하지만 정작 이를 실천할 능력이 되지 못해 40년간 광야만을 떠돌았을 뿐이었다.

성경에 따르면 이런데, 실제로는 40년이 아니라는 이야기부터 당시 팔레스타인람세스 2세의 전쟁 때문에 유대인들이 정착하기 어려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성서에 나오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포도 이야기와 저주는 예리코 전투 이전 유대인들이 가나안에 정착하려다 실패했음을 암시한다는 분석도 있다.

종교적 해석에 따르면 처음에는 유대인이 이집트를 나와서 바로 가나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정찰을 위해 보낸 스파이 12인 중 단 둘,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하느님을 믿고 바로 침공하자라고 주장하고 나머지 10인은 가나안에 가면 다 죽는다고 유대인을 선동하다가 하느님의 분노를 사서 여호수아와 갈렙 단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세 포함 아무도 40년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막을 뺑뺑이 돌라는 벌을 받았다.

이후 모세의 사후 리더의 자리는 여호수아가 잇게 되었다. 그는 유대민족을 전투종족으로 개량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했고 체계적인 가나안 공격에 착수했다. '하느님이 약속해준 땅이다' 라는 미명하에 마침내 유대군이 요르단 강을 넘어 가나안 침략을 개시했으나 가나안 주민들이 '어서 와줍쇼' 할 만큼 정신줄 놓은 사람들이 아니므로 당연히 자신들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맞서 항전했다.

예리코의 방어가 예상보다 굳건하여 교착 상태에 빠지자 유대 침공군은 차츰 전의를 잃어갔다. 여호수아서 6장에 따르면 이때 여호수아에게 하느님의 계시가 있었다고 한다. 요약하자면 성채를 일곱 번 돌고 제사장이 나팔을 불면서 하느님의 영광을 외치면 성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었다.

다음으로는 백성이 성에 들어가 성 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고 남녀 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했으며 무리가 불로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다고 되어 있다. 이렇게 적으니 설명이 좀 긴데 한 마디로 파괴, 살육, 방화, 약탈을 했다는 것이다.

예리코를 발굴했을 때 집집마다 곡식이 쌓인 채 남아있었다면서 그런 전투없었다 개소리를 하는 광신도가 있는데, 위의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자 가나안민족을 몰살시키고 거기에 나라를 세웠다고 되어있다. 그럼 유적에 남아있는 곡식이 가나안침공 전의 것인지 학살자집단이 거기 살면서 쌓아 둔 것인지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어찌되었든, 예외적으로 유대의 스파이들을 숨겨준 기생 라합과 그 일가는 살려줬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라합의 자손에서 다윗예수가 나왔다는 건 주목할 일. 그런데 가나안 선주민 입장에서 보면 한 짓이 아즈텍에서 말린체가 한 짓이나 진배없다 성서에서는 붉은 줄을 내린 성벽 부분만 무너지지 않아 라합 일가는 살아 남았다고 한다.

이렇게 진멸당한 예리코는 유대민족 최초의 거점이 되었고 가나안 정복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예리코 전투 이후로도 가나안을 둘러싼 싸움은 당연히 계속되었다. 다만 초토화몰살이 자행된 예리코 성과는 달리 다른 가나안 정착민들에 대해서는 유화적으로 구슬린 사례도 종종 있다. 이 경우는 그 부족 대표가 속임수를 써서 머나먼 곳에 있는 부족에서 온 것처럼 구라를 쳐 동맹를 맺은 후 나중에 진상이 밝혀져서 그 대표가 종(노예)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쩌면 패해서 평화조약을 맺은 것을 완곡히 이야기 했을 수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유화적으로 구슬린 사례"나 "평화조약"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성경을 다시 한번 읽어 보도록 하자.

예리코 어찌 됬는지 봤지?

닥치고 노예가 될래?
아니면 죽을래?

참고로 성경에서 말하는 평화조약이란 조약을 맺으면 전부 노예가 되는 것이고, 조약을 거절하면 멸살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다시한번 성경을 읽어보라.

3 의의

이 신화적 사건이 종교적으로 후대에 야기한 파급력은 엄청나게 크다. 당장 팔레스타인 분쟁 자체가 이 전투의 결과에서 싹이 텄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며 십자군이 편성될 당시에도 성전이라는 명분에 대한 주요한 근거였다. 아니 애초에 예리코를 공격하지 않았으면 성경이 쓰여질 수조차 없었다. 곧 세계사마저 뒤바꿔놓은 전투였다.

물론 성경의 기록을 역사적 사실로 본다면 말이다. 하지만 사실 유대교가 바알 신앙으로부터 분리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으며 그 이전까지는 사실 종교적 차이가 있었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출애굽기나 유대 민족이란 것이 존재했는지가 의문이란 것. 사마리아만 봐도 알 수 있다.예리코 자체가 서아시아와 아프리카 사이 길목에 놓인 요충지로서 고고학적인 조사에 의하면 인류 최초의 도시들에 맞먹을 정도로 오래 되었다는 점, 그리고 이후에도 여러 번 만들어졌다가 불탄 곳이라는 점을 들어 이렇듯 처참한 사건은 예정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런데 예리코 전투 이후 유대인들은 파괴시킨 도시에 대해 아예 재건을 금하도록 했다. 그리고 저주까지 내렸다. 성경에 따르면 그 뒤 북이스라엘에서 국방 목적으로 예리코 성을 재건했는데 건축 책임자의 자식들이 모두 죽는 일이 실제로 있었다고 언급된다. 이 점은 근동에서 자주 일어나는 건축물에 대한 인신공양을 빗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예리코를 개축할 당시 유대인들은 야훼 신앙에서 다소 마음이 떠나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고대의 일이었다지만 현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엄연히 침략에 전쟁 범죄를 저지른 셈이며 성경에서 부정하는 악마의 행위들을 히브리족 스스로가 주의 이름으로 벌인 셈인데 그것을 과오로서 인정하지 않고 신성한 전쟁이라고 주장하는 행위에 대해 비판이 많다.

다만 상기의 의미부여는 일종의 상징적 해석과 의미 부여에 가깝고, 역사적, 고고학적으로 이 사건을 현대 팔레스타인 분쟁과 연계하는 것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일단 당시 당시의 가나안 토착 세력과 현재의 팔레스타인 지역 거주 아랍인들 간의 접점이나 계승 관계는 역사적, 고고학적으로 증명된 바가 전혀 없다. 양자는 유대 민족과 대립했다는 측면에서만 공통점을 가질 뿐이다. 오히려 당시의 가나안 토착 세력은 이후 수백년에 걸쳐서 유대 민족과 융합되어서 소멸한 것으로(혹은 유대 민족이 그에 맞게 변화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사건을 놓고 기독교에서 당시 유대 민족의 관점을 현재 서구의 관점과 동일시하는 것도 말이 안되고, 현재의 이슬람이 당시의 침략 당한 가나안인들과 자신들 사이의 접점을 찾아 동일시 하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되는 일이다.

3.1 과학적 검토

이런 성경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과학적 사실에 관한 의문점을 남긴다.

• 나팔을 불고 하느님의 영광을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고?

물론 성경에는 실제로도 그대로 되었다고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고고학적 연구에 의하면 예리코 성벽은 여호수아의 침공 전부터 무너져있던 상태였다고 하는 개소리를 하는 광신도가 아직도 있다(...). 현대의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법이나 기타 측정법은 약 수백년의 오차를 가진다. 고대 양피지의 제조연대 측정같은 분석대상이 극히 제한적이고 분석대상의 품질이 높은(분석대상에 기타 잡것(유기물 등등)들이 섞여있는 비율이 매우 낮다는 것을 뜻함) 물건 조차 오차는 100년을 가볍게 넘긴다. 그런데 침공전부터 성벽이 어떻게 무너져 있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아마도 그 헛소리를 한 학자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공간을 보고 온게 틀림없다.(...)
그 학자를 붙잡아 고문(?)하면 21세기 최고의 발견(타임머신 상용화)를 할 수 있다!!!! 덤으로 인류 역사와 과학교과서에서 그 이름이 지워 질 일은 없을 것이다!!
참고로 현대 고고학에서 성벽이 무너졌었다라고 유추하기 위해선 1.같은 성벽내에서 축조방식이 다른 부분이 있다. 2. 주변 지층에 분석대상에 영향을 줄만한 단층, 혹은 지각활동이 없었다. 3. 축조방식이 다른 두 성벽의 지질을 분석했을 때 완벽히 이질적이다 등등 의 조건들이 확인되면 성벽은 이전시대에(그것도 언제 무너졌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당시 역사서와 대조해서 그랬을 거 같다 수준의 결론이 나올 뿐. 뭐 성경이 역사서라면 할말이 없지만 성경관련 글들을 읽어보라. 과연 성경을 역사서라고 할 수 있는가!!) 무너졌었다라고 보게 된다.
만약 발굴했을 때 무너져있는 상태이고 보수, 증축, 개축한 증거가 없을 경우 고고학적 결론은 이 성벽은 약 몇세기에서 몇세기사이에 "만들어진(무너진이 아니다!!!!)"성벽이고 언제무너졌는지는 잘 모르겠다...이다.

그 개막장 일본서기도 정신승리논법(...)으로 떡칠되어 있어서 그렇지 자국내(일본국내) 이야기는 그나마 꾸며내지 않았다.(국외 이야기는 소설을 써놔서 그렇지(...)) 하지만 성경은 자기들이야기(유대인)도 소설을 써놨으니(...)

최근 들어서는 엄청난 함성으로 공명이 이루어져 우연히 토성(흙벽)의 진동수와 맞아 무너졌을지도 모르겠다는 드립도 있다(<바이블 사이언스>의 경우). 물론 과학성에서는 완전히 꽝. 이게 가능하다면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청력은 물론 뇌까지 엉망진창으로 만들겠다 공격하는 유대인들도 다 죽었을듯(...)사람의 성량은 유리컵 하나 제대로 깨뜨리지 못한다.히스토리 채널의 고대의 전투를 주제로 한 시리즈 다큐에서는 여리고 성의 함락에 대해 색다른 해석을 내놓았는데 성경에서는 여호수아의 첩자들이 자신들을 도와준 라합에게 '나중에 우리가 공격할 때 너와 너의 친지들을 해치지 않게 너네 집이 어디인지 창가에 줄을 내려서 표시를 하라' 고 하는데 라합의 집은 성벽에 있었으므로 나중에 침공군이 성벽을 돌면서 수비대의 시선을 뺏는 동안 일부 특공대가 몰래 이 밧줄을 타고 성 내로 들어와 성문을 열어주고 불을 지르는 등의 사보타주를 벌여 함락시켰다는 것.

주경철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는 자신의 연구도서인 대항해시대/ 해상 팽창과 근대세계의 형성(서울대학교 출판부/ 과제번호 A00056/ KRF-2002-0410A00056)이라는 책에서, 이러한 유대민족의 팽창에 관련된 일련의 사건에 대한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조금 길지만 전문을 인용한다.

이제 우리가 주목하려는 것은 서로 다른 문명권-질병권의 병원균이 교환될 때 일어나는 가공할 질병의 발발 사례들이다. 면역을 갖춘 사람들에게는 거의 해가 되지 않는 병원균들이 이웃지역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사태가 역사상 종종 일어났으며, 문명 초기부터 이에 관한 여러 기록들이 남아 있다. 이스라엘 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서 이주할 때 야훼가 한 다음의 약속을 보라: "야훼께서 모든 병을 물리쳐 주실 것이다. 너희가 일찍이 이집트에서 앓던 온갖 나쁜 질병에 걸리지 않게 해 주시고,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이나 그 병에 걸리게 하실 것이다."(신명기 7장 15절 공동번역성서)
종교적 의미를 떼어놓고 이 문장을 보면 병원균과 면역 체계 사이의 불일치로 인한 가공할 전염병 사태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밀한 인구가 오랜 기간 거주해 온 나일 강 유역은 앞서 설명한 각종 문명병들을 보유한 지역이었다. 이곳 주민들은 그 병들에 대해 면역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큰 해를 입지 않지만, 이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한번에 외부 지역으로 나갈 경우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병균들을 보유한 숙주들이 대규모로 몰려오는 셈이다. 문명권 사람들이 주변 지역에서 흩어져 사는 집단을 쉽게 정복하는 데에는 사실 이런 전염병의 효과가 크게 작용하였다.(맥닐 1998: 97-99).
이를 일반화하여 맥닐의 법칙이라 부른다.(제3부 7장 3.1 397~398쪽)

나일강 하구의 이집트 지역이 문명병을 잔뜩 보유한 지역이었다는 것은 이미 출애굽 상황에서 증명된다. 더군다나 역시 출애굽에서 보면 알겠지만 성서에서 유대민족은 다른거 다 빼고 장정만 수십만이라는 초거대한 집단을 형성하며 가나안 땅을 침공한다. 거의 사람만 300만이라는 추론이 나오는데, 당시 이집트 전체 인구수에 맞먹으며 현대 대한민국 대전광역시 인구수의 두배이다. 현대 웬만한 규모 이상의 도시급의 인구 이동에, 이집트의 문명병이 당연히 따라붙어서 가나안에 먼저 침투했다는 것이다. 대항해시대때도 아메리카 대륙에 천연두와 각종 전염병이 퍼져서 잉카와 아스텍 등의 문명이 싹 다 붕괴해버린 예가 사례로 있다. 비록 유럽은 시기가 잘 맞아 버텨냈지만, 흑사병도 막강한 인구 타격을 남겼다. 물론 300만명의 유대민족 인구 이동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인 서유럽 침략군의 숫자는 말할 것도 없다. 코르테스는 테노치티틀란을 고작 300의 병사로 천연두를 앞세워 모두 쓸었다.

성이 이미 무너져 있었다는 고고학적 발견은 이러한 전염병의 외부 침투로 인한 성 내부의 사회적 혼란을 얼핏 드러내기도 한다. 상식적으로 가나안 국경지대에 유대 이방인이 그야말로 대군을 이루며 침략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는데, 성벽 보수를 할 생각이 없었을까.

이런 가설을 세우면 성을 점령한 뒤의 흉폭한 태도가 어느정도 납득이 가기도 한다. 전염병에 걸린 숙주를 싹 다 죽이고, 땅을 태우며, 오염되었을지도 모르는 곡식은 버리는, 일종의 예방 활동을 한 것이다. 잔혹한 것은 사실이지만. 의외로 이런 위생관념에 유대 민족은 종교적 언어를 써가며 상당히 철저하게 대했다.

자... 이쯤에서 위 글을 다시 읽어보자. 고고학적으로 성이 이미 무너져 있었다는데, 유대인이 쑥밭으로 만들어놨으니 무너져있는게 당연한게 아닌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라. 땅 파서 나온 고고학 유물은 그 지역이 버려져 매몰되었을 시점만을 확인할 수 있다. 땅을 파면 정확히 예리코침공전 시공간이 거기에 펼쳐지나?(...) 오히려 성 박살내놓고 보수도 못하는 유대인들의 어처구니없는 토목기술에 감탄이 나올 뿐이다.유목생활만 했으니 성같은 거 처음봤겠지

주목해야 할 것은 '성이 무너졌다' 는 사실이 아니라 성이 무너진 뒤 일어난 일이다. 이 부분은 아래 부분에서 더 자세하게 다룬다.

3.2 윤리적 검토

성경에 나타나는 야훼의 학살과 기독교의 해명을 다루는 항목이다.

사실 예리코의 전투 뿐 아니라 타나크의 출애굽해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들이 이미 다른 민족들이 살고 있던 가나안을 침략하고 전멸시킨 내용들이 심심찮게 나와 있다. 직접 확인해보자.

그러나 너희 하느님 야훼께 유산으로 받은 이 민족들의 성읍들에서는 숨쉬는 것을 하나도 살려두지 마라. 그러니 헷족, 아모리족, 가나안족, 브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은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명령하신 대로 전멸시켜야 한다. (신명기 20:16~17, 공동번역성서)

참고로 중세 유럽에서 악마라고 부르며 그렇게도 싫어하던 징기스칸 역시 '두 발로 걷는 것은 모두 죽여라' 식의 비슷한 명령을 즐겨내렸다. 또한 이런 전통(?)은 후로도 이어진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전하였다. "야훼께서 나를 보내시어 그대에게 기름을 부어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세우라고 하셨소. 그러니 이제 야훼의 말씀을 들으시오. 만군의 야훼께서 하시는 말씀이오. '아말렉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 한 짓, 즉 이집트에서 올라오는 이스라엘을 공격한 그 일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벌을 내리기로 하였다. 그러니 너는 당장에 가서 아말렉을 치고 그 재산을 사정 보지 말고 모조리 없애라. 남자와 여자, 아이와 젖먹이, 소떼와 양떼, 낙타와 나귀 할 것 없이 모조리 죽여야 한다." (사무엘기 상 15:1-3, 공동번역성서)

이젠 아예 빼도박도 못하게 유아 살해를 야훼께서 직접 명하셨다(...). 이제 예리코의 전투를 살펴보자.

백성들은 고함을 지르고 나팔 소리는 울려 퍼졌다. 나팔 소리가 울리자 백성은 "와!" 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 순간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자 백성은 일제히 성으로 곧장 쳐들어가 성을 점령하였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소건 양이건 나귀건 모조리 칼로 쳐 없애버렸다. (여호수아 6장 20~21절, 공동번역성서)

온 세상을 창조한 사랑 넘치고 전지전능하다는 야훼가 자기를 믿지 않는 자유의지를 행한다는 이유로 이스라엘인들에게 살 곳을 마련해준답시고 전멸시키는 것도 충격과 공포지만 젖먹이 아기까지 죽이는 짓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말 그대로 극단적인 편애 행위.

신자들이 이 내용을 옹호하거나 미화할 때 자주 하는 말이 주로 예리코는 아기를 인신공양하는 사악한 집단이기에 진멸당해 마땅하다고 한다. 그런데 제물로 바쳐질 그런 아기를 구하지도 않고 같이 죽였다. [2][3]

3.2.1 개신교의 해명

이에 대해 R.A 토리[4] 외에 개신교(특히 복음,근본주의)들은 다음과 같이 해명한다.

• 암세포?

가나안과 예리코의 장정들 뿐 아니라 힘 없는 노인과 아녀자, 갓난 아기까지 죽이라고 한 하느님의 명령이 얼핏 보면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그만큼 그들 민족의 죄악이 심각했다고 봐야한다. 이 죄악은 너무도 심각한 것이어서, 당시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에 심각한 패해를 주는 암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 암세포를 제거해내야 했다. 암세포를 절제하는 수술은 매우 무서운 수술이지만, 나머지 건강한 몸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은 인류를 위해 도덕적인 암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였던 것이다.

전술했지만, 갓 태어난 아기는 그 부모의 죄와는 상관없다. 또한 가나안과 예리코인들이 그 정도로 타락했다는 이야기 자체가 그들의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설사 그 주장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전지전능하다는 야훼가 교육이나 제도 정비를 통해 교화하는 방법을 충분히 생각해냈을 법한데 이런 방법 밖에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야훼는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것이 되는데, 기독교인이 그것을 인정할 리는 없다.

따라서 어떤 그럴듯한 변명을 덧붙이더라도 학살 행위는 정당화 될 수 없을 것이다. 역사상 유명한 자들도 자신들의 학살 행위에 온갖 변명과 핑계, 명분을 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좀 더 도발적으로 말하면, 이게 홀로코스트와 뭐가 다른가? 나치스가 할 만한 변명에 똑같이 대입해보자.

유대 민족의 장정들 뿐 아니라 힘 없는 노인과 아녀자, 갓난 아기까지 죽이라고 한 히틀러의 명령이 얼핏 보면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그만큼 그들 민족의 죄악이 심각했다고 봐야한다. 이 죄악은 너무도 심각한 것이어서, 당시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에 심각한 폐해를 주는 암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 암세포를 제거해내야 했다. 암세포를 절제하는 수술은 매우 무서운 수술이지만, 나머지 건강한 몸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히틀러는 인류를 위해 도덕적인 암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였던 것이다.

• 정당방위

만일 가나안 인들과 예리코인들이 멸절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 인들과 예리코 인들에게 멸절됐을 것이므로 어쩔 수 없는 정당방위였다.

이 역시 어이 없는 변명이다. 애시당초 침략한 쪽은 이스라엘이다. 북한이 적화통일이나 한국전쟁을 가지고 저따위 소리를 뇌까린다고 생각해보자. 참고로 이거 개독교 호모포비아들이 성 소수자들을 린치하면서 써먹는 레파토리 중 하나다. ("성 소수자들을 가만히 놔두면 저들이 이성애자들을 오염시킬 것이다") 그리고 야훼가 전지전능하면 굳이나 가나안 사람들을 진멸시키지 않더라도 새로운 땅 하나 정도는 뚝딱하고 만들어서 이스라엘 인들을 거주하게 하면 그만이다.

• 예수가 오기 전이라서?

부모들의 타락으로 인해 아이들도 오염되었을 것이며 이는 예수의 복음으로만 치유할 수 있는데, 당시는 예수가 오기 전이었다.
그리고 부모의 타락으로 아이들이 오염되었다는 말도 동의하기 어렵다. 어떻게 보면 우생학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 구약 시대니까 그 시점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다

성경에서 여리고 성 전투의 시점은 분명히 구약이고, 이방인들의 믿음과 구원이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진 시점은 신약이다. 즉 구약 시대에는 선택받은 민족인 유대인만의 야훼였으므로 성경에 쓰인 기록을 문제삼지 않을 수 있다. 처음부터 모두의 구원자로 기록되지 않았고, 여리고 전투 당시에는 선택 받았다는 유대인만의 야훼였던 시대에 쓰여졌으므로 성경의 중심 사상에서 전체를 놓고 보면 벗어나지만 쓰인 시점만을 놓고 보면 문제가 없다.

구약 시대니까 그럴 수도 있다는 말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구약 시대의 이웃에 대한 관용이나 사랑은 어디까지나 형제들, 즉 유대인 집단 내에 한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모순은 아니다. 하지만, 구약이 쓰여졌던 그 당시 시대를 감안해도 야훼의 행위는 21세기 현대의 보편 타당한 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 충분히 비윤리적이며 잔악하기 때문에 더더욱 구약 성경의 이 부분을 21세기 현대에 가치 있는 내용으로 받아들일 하등의 이유가 없다.

• 무지에 의거한 논증

하느님의 계획은 크고 광대해서 지각이 제한된 인간은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이건 전형적인 무지에 의거한 논증이다. 그리고 '지각이 제한된' 인간이 '함부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그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다가 벌이고 다니는 게 신이라면 인간은 그런 신을 숭배할 이유 따위는 없다. 평소에는 이해할 수 있다고 쳐도 간헐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대규모 학살을 하는 존재가 신이란 말인가?
게다가 위 신학자의 궤변은 상당히 위험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너희들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하나님(또는 사제)의 뜻을 헤아릴 수도 없고 이해할 머리도 없으니 닥치고 내(사제)가 해설해주는 것을 믿고 따르면 된다"라는 의도를 밑바닥에 깔고 있다.그리고 그걸 최근엔 이슬람국가(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의 칼리프가 시전했다(...).

외국얘기니 나 몰라라 하지말고, 자... 너희들이 모시는(...) 목사(사이비 종교)의 논리전개방식을 신앙심(?)을 최대한 배재하고 한번이라도 들어보려는 노력을 해봐라. 제발... 만약 그래봐도 우리 목사님이 최고다? 축하한다. 당신은 그의 마수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위의 "하나님의 계획은 .... 판단할 수 없다"라는 논리(를 비롯해 성경전반)를 아주 잘 이용하고 있는 단체 중 하나가 북한(주체사상; 이미 국제사회에선 종교로 분류됨)이다. 아래 글에서 주요 단어를 성경속 단어나 위 신학자의 궤변과 바꾸어서 읽어보자.

위대하신 수령님의 그 광대한 계획에 우리 조선인민들은 그 큰 은혜를 감히 헤아리지 조차 못합니다.

• 아이들은 죽는것이 나았을 것이다

가나안과 예리코의 아이들은 타락한 사회에 있느니 차라리 죽어서 하느님 품에 있는게 나았을 것이다.

죽은 아이들은 천국으로 간다는 가톨릭 등의 현대 교리에 따른 논증이다. 다만 이 교리를 적용한다고 해도 그 방법에 있어서 대단히 비윤리적이라는 건 절대 부정할 수 없다. 기독교와 별 관련 없지만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도 이것과 비슷한 논리로 지금 세상에서 힘들게 사느니 내세에서 행복하게 사는 편이 좋다면서 몽골인들을 죽였다.

• 신약성경 위주로 보자

최소한 현대에 사는 기독교인들이라면 이 이야기 가지고 타 종교 배척을 정당화하면 안된다. 그런데 일부 기독교인들은 구약이 아니라 예수님 하신 말씀을 제발 듣자(...)면서 왠지 모르게 신약과 예수를 가지고 기독교의 이미지를 미화시키려는 의도를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기독교 교리로 봐도 잘못된 것이다.허나 그런 개독들에 비해 예수는 행적 상으로만 보면 찬양받아 마땅한 모범적인 인물이었지만 예수쟁이들은 타락에서 돌아간답시고 오히려 막장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기독교는 구약과 신약을 동일하게 존중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구약이 원본이라면 신약은 패치(?)와 같은 개념이기 때문에 구약과 신약이 충돌하는 부분은 신약에서의 관점이 더 완전한 관점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물론 유대교는 신약? 먹는건가요? 라며 예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만

그러나 까놓고 말해 신약에서 예수에 의해 야훼의 성향이 다르게 그려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야훼가 구약에서 저지른 이러한 학살 행위를 미화하거나 덮어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독교 교리에 의하면 예수는 하느님으로서 태초부터 존재했으며 만물이 이 말씀을 통하지 않고 이루어진 것이 없다고 언급한다. 따라서 야훼가 명한 예리코의 학살이 이루어지는 동안 예수도 그 야훼의 우편에서 그 모든 것을 지켜봤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를 덧붙여 참조하면 그런 예리코의 유아 학살 행위를 직접 시행한 것이 예수(=야훼) 자신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 성경도 좀 틀릴수도 있지

여기에 대해 극소수의 개혁적인 개신교인들은 성경에 나온 내용을 사실 그대로 믿는 것은 사실 근본주의적인 것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기독교장로회, 감리교와 예장 통합 측의 아주 적은 부분적 교세가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수 교단에 비하면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이들은 근본주의자들이 성경을 그대로 믿으면서도 구약의 야훼의 학살을 애써 무시하며 조롱해도 상관 없지만 성경이 신화도 섞여있으며 왜곡도 섞여있고 편집과 필사상의 비의도적 오류도 있으며 고대인들의 낙후된 세계관과 유대인들의 민족성 등이 섞여있는 경전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이 문단의 비판은 사실 조금 핀트가 맞지 않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진보적 개신교인들의 주장에 대해, 성경이 신화도 섞여 있으며 왜곡도 섞여 있고 편집과 필사 상의 비의도적 오류도 있으며 고대인들의 낙후된 세계관과 유대인들의 민족성 등이 섞여 있는, 말하자면 인간적인 한계점이 존재하는 경전이라면, 성경이 그리스 로마 신화나 단군 신화와 같은 다른 신화와 다를 바가 대체 무엇인가?

사실 애초부터 모든 기독교 종파를 해석하는 통일되고 권위있는 해석이란 전무하며, 성경의 어느 구절이 비유인지 어느 구절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인지 알 수 있는 기준 역시 없다. 성경/논란 항목의 4중적 해석법 단락을 참조하면 알겠지만, 여기에 대해 크게는 가톨릭과 개신교, 그리고 개신교 내부의 25000여개의 종파들마다 저마다의 성경 해석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은 더더욱 시궁창에 가깝다.

이렇다 보니 기독교인들이 성경에 나타나는 유아 학살이나, 곤충이 네 발로 기어다닌다는 등의 비합리적인 부분들처럼 문자적으로 해석하기 불리한 부분에 대해서 풍유적/영적 해석 운운하는게 아니냐는 비기독교인들의 지적이 나올 정도다.게다가 성공회를 제외하면 성서무오설을 국내 개신교 종파들의 대다수가 지지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고신측),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측),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측), 순복음, 침례, 합동 보수, 성결교, 감리교, 그리고 C.C.C. 예수전도단, 밀알 등등의 대부분의 기독교 동아리 조차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독교 교단과 교회가 성서 무오설을 지지하는 교단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여기서 대한 예수교 장로회의 합동과 통합이 우리나라의 제일 큰 교단이다.

• 성경은 기독교적 해석법을 가지고 읽으라고 있는 책이다.

원래 성경 뿐 아니라 모든 종교의 경전은 그 종교의 교리적 관점에서 읽으라고 있는 책이다. 좀 더 자세히 서술하면, 바빌론 유수나 페르시아에 지배를 받은 것이나 이집트에 대한 기록 등은 개략적으로 성경에도 나와 있긴 하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들어가보면, 이집트 총리 대신을 역임했다는 요셉부터, 모세, 아론 및 여호수아 등등의 인물들에 대한 기록은 고대 이집트 왕조의 기록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집트인들은 그 자신이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해가는 과정까지 기술한 사람들로서, 그 자신들에게 불리하다 하여 기록을 누락시켰다는 개신교인들의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이 말에 이집트인이 다 똑같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는데 이 밖에도 예는 많다. 하나 더 들어보자면, 다니엘서에서 짐승으로 변했다고 묘사하는 느부갓네살은 해당 시기에 멀쩡하게 옆 나라 왕과 영토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으며, 성경과 비슷한 내용은 보이지도 않는다. 다니엘서에 의하면 느부갓네살은 짐승으로 변해 정사를 돌보지 못했다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왕이 짐승으로 변했다는 디테일한 기록은 무리이더라도 최소한 대리 통치인이나 섭정이 바빌론을 통치했다는 기록이라도 있어야 정상이다. 아니, 그 이전에 느부갓네살이 총애했다던 다니엘에 대한 기록도 바빌론 역사 기록에는 나오지 않는다.

또한 히브리 여인으로서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의 둘째 왕비가 되었다던 에스더의 기록도 헤로도토스의 역사의 내용과 상충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의하면 크세르크세스는 왕비가 교체된 적이 없으며, 그 왕비는 페르시아 장군의 딸인 후타오샤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한편 세계 그리스도교의 주요 종파인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루터교회는 성경을 소설책처럼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는데, 해당 종파도 성경의 내용 중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부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어디까지를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어디까지를 풍유적이며 영적(...)으로 해석하는 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는 것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성경/논란 항목의 4중적 해석법 단락을 보면 알겠지만, 가톨릭과 정교회, 성공회, 루터 교회는 성경 해석에 대한 통일된 기준이 없다. 한마디로 어디까지를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어디까지를 풍유적으로 해석하는지 그 기준이 다 제각각이라는 소리다.

게다가 매우 우연스러운 일이겠지만, 기독교인들이 비유적인 의미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성경 구절이 공교롭게도 대부분 야훼의 비윤리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부분이나, 비과학적이거나, 교차 검증이 되지 않는 구절들이다 보니, 답변하기 곤란한 것에 대해 기독교인들이 해석법 운운하며 변명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3.2.2 여호와의 증인의 자폭

집총거부 문제로 군대를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도 어찌 된 영문인지 이 전투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다. 집총 문제의 경우 이들은 사탄의 지배하에 있는 지구의 정부에 대한 권위는 자신들의 신으로부터 내려진 것이라 인정하지만 실제 자신들의 나라는 하늘 왕국이라고 믿고 교리에 의해 군대를 거부하기 때문.

물론 하느님의 군대라면 기꺼이 목숨을 바치고 무기를 잡을 준비도 되어있지만 이들은 교리적으로 성서의 '복수는 하느님의 것(아마겟돈)'이라고 여기며 폭력, 살인 등에 참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리코 주민들에 대한 학살에 대해선 이들은 물론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었으니 아주 당연하게 여긴다.군대 갔다오면 1억원을 준다하면 하나님의 뜻이라며 앞다투어 입대할 분들이군(...)

이 이중잣대야말로 여호와의 증인이 가장 크게 비판받는 이유 중 하나다.

3.2.3 가톨릭의 해명

모조리 죽여라! 신께서 가려내 주실 것이다. 우하하하하하하하! 죽여라 죽여!!!! 우히히히히 -십자군 전쟁중 우리의 위대하신 사제이자 위대한 교황특사이신 위대한 아르노 아모리님이 위대하신 하나님의 그 위대한 계시를 받아 그 위대한 은혜를 우리들에게 교시하시며... (알비주의 십자군과 강제 줄 바꿈의 (전통적사유:북한)을 참조)
신명기를 저술한 ‘학파’에 속하면서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를 최근(기원전 7-6세기)의 체험에 비추어 묵상하려는 편집자가 이러한 사실을 기초로 해서, 그 때까지 형성된 여호수아기의 자료들을 재해석하게 된다. 이러한 묵상은, 이전 작품에 가한 수많은 손질 외에, 특히 1장과 23장에 나오는 긴 연설에서 잘 드러난다. 이로써 가나안 땅의 정복은 이제 일부 이스라엘인들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의 일로 제시된다(10, 28-39 참조). 그리고 이 책에서는 요르단 동쪽 지파들이 계속 언급되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일치가 위협받는 시대에 그것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강조하는 것이다(1,12-16; 12,1-6; 13,8-32; 22,1-6 참조).

하느님과 맺은 계약은 이스라엘에게 나뉘지 않은 온전한 마음으로 그분을 위하여 투신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다른 신들을 섬기는 민족들과 공존함으로써, 하느님에 대한 충성이 언제든지 훼손될 수 있다. 그래서 여호수아기에 이 충성에 관한 생생한 관심이 배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가나안 땅에 사는 민족들을 전멸시켜야 한다고, 곧 그들을 모두 “완전 봉헌물”로 바쳐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전망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6,17.21; 11,12.14). 이 책을 읽는 이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이러한 조처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기보다는, 이 책이 쓰일 당시의 사람들에게 경고하기 위한 하나의 이론적인 설명이다. 이는 이스라엘인들이 피할 수 없었던 우상 숭배의 위험을 뼈 저리게 경험하고 난 뒤의 생각을 과거의 역사적 사건들에 투영시킨 것이다.
(중략) 반면에 예리고의 경우, 이 시대와 관련된 고고학의 결과는 매우 실망스럽다. 예리고 함락을 이야기하는 6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어떠한 자료도 나오지 않은 것이다. 이로써 이 이야기를 좀더 깊이 살펴보게 된다. 그러면 복잡한 과정과 복합적 구성을 드러내는 이 6장이 예리고라는 성읍의 포위 공격에 관한 자세한 보고서가 아님이 드러난다. 6장의 이야기는 일종의 ‘종교 의식’, ‘전쟁 전례’로 제시되는 것이다(6,2 각주 참조). 성서 본문이 우리가 제기하는 의문이나 질문에 항상 시원한 대답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성경해설 中>

예리코를 무너뜨리는 이야기는 가나안 도시국가들을 정복할 때 쓴 전략을 드러내 보이는 하나의 본보기다. 예리고를 정복할 때 그 도시에는 성벽이 없었고 아마 이미 주민도 살지 않았을 것이다. 그 도시는 벌써 두 세기 전에 무너졌다. 아마도 예리고에서 거룩한 전쟁을 예절적으로 표상하고 거행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 때 전례적인 세부 사항(계약궤, 행렬, 사제들, 일곱날, 나팔소리)과 전사에 관한 세부 사항(계약궤, 전사들, 전쟁의 함성, 나팔소리)을 곁들였을 것이다. <성서해설 - 국제가톨릭성서공회 편찬>

가톨릭에선 후대의 저자 혹은 편집자의 의도가 반영되어서 그렇게 쓰여졌으며, 이 전투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기보다는 이 책이 쓰일 당시의 사람들에게 경고하기 위한 하나의 이론적인 설명이라고 본다.

성경에는 유다인들이 가나안을 단기간에 모조리 밀어버린 뉘앙스로 나오지만, 역사적으로도 고고학적으로도 오랜기간 그곳 원주민과 공존한 것이 확실하다. 이 과정에서 우상숭배 등 원주민들의 영향이 나타났고, 후대의 유다인 편집자는 '그때 원주민 놈들 전멸시켰으면, 우린 오염되지 않았을텐데 ㅜㅜ'라는 의도를 가진것이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 역시 흡사 나치삘이 나는 병맛 논리이고, 기원전 사람들의 현대적 가치와는 동떨어진 논리가 반영되어 있지만, 성경에 고대인의 사상이나 도덕 등이 반영된다는 것이 가톨릭에서 성경의 권위가 죽이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신앙적으로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사랑하시고, 많은 것을 주려고 하신다."이지, 누구누구를 죽여라 하는 것이 아니다. 여호수아기를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 "역시 종교의 이름으로 이교도를 죽여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아래의 예문을 윗글의 주요단어와 바꾸어서 읽어보라. 위의 광신도의 궤변의 막장성이 얼마나 심각한 지 보일 것이다.

어떤 아주머니가 식칼을 들고서 슈퍼마켓으로 처들어가 현금 100만원을 강탈해 달아나려다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계산원을 수십차례 찔러죽였다. 그후 그 아주머니는 아이에게 플레이스테이션을 사주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를 사랑하고 좋은 것을 사주려는 아주머니의 마음이지, 슈퍼마켓을 터는것과 사람을 찔러죽이는 것이 절대 아니다! 특수강도나 살인은 이 이야기에서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이 뉴스의 교훈은 아이를 사랑하는 아주머니의 마음이 너무나도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야훼 뉴스: 오늘의 미담

간단한 예시로, 동화 백설공주의 결말은 백설공주와 왕자가 계모를 죽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 동화는 어린이들에게 "계모가 너희 괴롭히면 죽여도 된단다"고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 이 동화에서 중요한건 권선징악이다. 물론 성경을 동화책처럼 생각해서는 안되지만, 중요한 것은 책이 애초에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이다.백설공주의 결말은 왕위 쟁탈에 성공하자마자 그렇게 싫어하던 왕과 똑같이 폭정을 일삼았다는 내용이다.

고대/중세의 동화는 아이들에게 당시사회의 현실을 알려주는 교육자료로 쓰였다. 동화의 주요 인물과 지명을 바꾸면 당시 사회의 이슈가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비유법. 유명동화의 기원에 특정사건이 모티브가 됬다라던가 하는건 다 그 때문이다. 무법천지였던 당시 사회에서 특정 높으신 분을 비판했다간 바로 사형이었으니, 동화로 각색하고서 에둘러서 비판했다. 훗날 동화의 내용이 자기이야기라는 걸 깨달은 지도층은 동화를 무자비하게 검열하게 된다. 대놓고 검열하면 오히려 자기(혹은 선조)이야기라는 걸 인증하게 되니, 주로 감정에 의한 호소를 동원하기도 했다. 어머머 너무 잔인해~ 동심파괴라니 너무한거 아님? 애들에게 살인기술 가르치는 내용 금지! 등등(...). 동화 원본과 현재의 걸레가 된 내용을 비교해보라. 동화가 잔인하면 동심이 파괴된다고? 당시 어른들은 그런생각 안했을 거 같은가? 동심파괴보단 진실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 걸 더 큰 죄악으로 여겼을 뿐이다.

명심하자. 성경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당대인의 사상을 감안하고, 경전이 본래 하고자 하는 말을 파악하며 읽는 것이다. 쿨타임 됐다. 성서무오설 까자. 물론 성경은 성령의 영감을 받아서 만들어진 책이지만, 그것이 문자 하나하나가 참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런식으로 성경을 읽는 태도는, '예리코의 전투'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에 대해서도 매우 중요한 태도이다. 이런 것들을 감안하지 않고 성경을 읽을 경우 자칫 근본주의 성향을 가지거나, 성경의 참 뜻과는 10000광년 쯤 멀어진 신앙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부에서는 "고대 히브리인들의 사상이나 문화 같은게 성경에 반영되었다는걸 너희들은 인정하지? 그러면 성경은 물론이고, 기독교의 신은 성서사가에게 시대를 초월해서 성서를 쓰게 하지 못 했으므로 권위가 없는거 아니냐?"라는 식의 비아냥을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는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성서무오설과 오히려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근본주의자들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사상이나 문화 같은게 성경에 반영되었다는걸 인정하면, 성경과 신의 권위가 추락한다."고 주장한다. 단지 "그러니까 기독교는 사기"와 "그러니까 성경은 100% 무오함"이라는 결과만이 다르게 나왔을 뿐이다.

비록 설정놀음에 불과해 보이고, 복잡하기 이를데 없는 설명이기는 하다. 그러나 가톨릭은 내부적으로 비록 고대인들의 사상이나 문화가 반영되었지만 성경의 권위를 믿는 자체적인 논리를 가지고 있다. 즉 가톨릭에서도 주장하지 않는, 오히려 근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성서무오설이 가톨릭을 비난하는 근거가 된다면, 가톨릭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하기 이를데 없는 일이다.


• 반박

그러나 성경/논란 항목의 4중적 해석법 단락을 보면 알겠지만, 대체 어느 부분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며, 어느 부분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말아야 할지의 기준이 없다. 카톨릭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 같은 사건 말고는 성서에 나오는 것이 모두 역사적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라는 마인드를 전제로 깔고 있다. 아니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왜 역사적사실인거임? 자기에 유리한 내용만 진실이라니 ㅋㅋㅋ 현재 학계의 입장은 "예수"의 모티브가 되는 어떤 인물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크다"라는 것이다 무려 교부시대 때부터. 영국의 가톨릭 주교회의는 모세의 십계판 수여와 복음서에 나온 예수 이야기 말고는 다른 이야기들은 역사적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류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고대 유목민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인정하지만 해석하는 이들의 비교적 현대의 기준으로 전혀 동의할 수 없는 것과 동의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 문서에서는 기준이 있다고 적었으나 결국 그 기준을 정하는 교단 내부의 주장이 외부에서 보았을 때 어떤 명확한 근거가 있어보이진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얼마 안되는 빵과 물고기로 장정 수백명을 먹여살리지 못했을 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후에 부활한 건 사실이며 예리코 전투는 비유지만 성모 발현과 같은 기적은 현실로 인정된다. 이런 기준에는 신은 시대를 초월한 도덕적인 존재라는 기본 바탕이 깔려있을지는 몰라도 그 신을 구사하고 있는 성경에 나와있는 몇몇 내용은 분명히 이런 기준에 반하고 있다. 결국 성경의 일부 부분을 어떤 식으로든 부정하게 되는데 부정하는 부분과 긍정하는 부분의 기준은 신은 도덕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결국 기본적으로 신이 도덕적이어야한다고 믿어야만 이런 해석법이 타당하게 되는 셈이다. 결국 어느 정도 결론을 내놓은 다음의 해석법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런 시각에 대해서 문자 그대로의 내용에 의문을 가지는 것이 성서무오설과 다름없는 근본주의적인 행태라는 것은 다소 핀트가 엇나간 비판이다. 여기에 대한 카톨릭의 해석은 결국 신앙이 있고 나서의 해석일 뿐이며 , 근본주의자들은 이런 성경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에 위에서 보듯 죽어마땅했다와 같이 여러가지 이유를 따로 덧붙인다. 그러나 결국 이런 논리들도 그들의 내부 논리와 신념을 받아들인 다음에야 현대의 도덕 기준과의 괴리를 신앙심으로 메꿀 수 있도록 만들 뿐이다. 그런 성서무오론자, 그런 근본주의자들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 성경의 내용이 다소 괴악하더라도 성경의 권위를 인정해주기 위해서 카톨릭의 내부 논리를 받아들여야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믿지 말 것을 강요하면 안되고 신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기 때문에 내부의 논리가 있다면 그 도덕성을 제대로 평가해줘야하지만 기독교의 교의에 대해서 의문을 표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진지하게 믿는 신자들이 제우스를 절조없는 바람둥이 신으로 받아들인다면 신화를 신화 그대로 믿는 근본주의 광신도들, - 헤라클레스와 같은 영웅을 만들기 위해서 간음을 한다고 주장하며 제우스가 변장했을 지도 모르는 동물들과의 수간을 권장하는 - 의 행태와 결론만 다를 뿐이라며 신화 무오설에서 벗어나야한다고 말한다면 어떨까. 그리고 제우스가 괴물들을 무찌르게 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오와 간음했다는 부분은 신의 것을 함부로 탐해선 안된다는 교훈담이라고 하면 어떨까. 그 말을 듣는 것이 애초에 그 신화를 진지하게 신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단순한 그리스 로마 신화의 독자였다면 어떨까.

결국 이런 면은 성경의 명확한 한계라고 볼 수 도 있고 카톨릭을 믿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볼 수 도 있다. 위의 해석에 반박을 하자면 기본적으로 다른 해석 - 아마도 신은 선하지 않거나 성경은 다소 한계점이 있다 - 도 가능하다 정도일 것이다.

일례로 들어진 동화의 이야기는 성경과는 최소한 두가지 면에서 다르다. 동화는 적게나마 순화되어왔다. 실제 동화는 이렇다는 식으로 잔혹한 동화 시리즈가 히트를 칠 정도로. 결국 사람들은 권선징악이라는 부분만 따로 빼내서 보면서도 잔인한 면을 무시한 것만은 아니다. 물론 여전히 끔찍한 동화들도 남아있긴 하지만 말이다. 내용적인 면에서도 동화의 행동 객체들은 결국 백설공주와 왕자지만 성경의 객체는 절대적인 도덕적인 잣대와 권위를 가진 야훼이다.

3.3 기독교의 입장을 배제한 결론

정면돌파를 시도하는 개신교의 해명은 물론, 비교적 온건한 가톨릭의 해명 역시 '전지전능하고 선한 신'이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신자들의 믿음을 공고히 하는데나 쓰일 뿐, 기독교 내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논리적오류 투성이인 궤변을 밀어붙이려는 불한당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성경이 시대적 한계가 분명한 당대인의 사상임을 감안한다면 성경이 그리스 로마 신화나 단군 신화나 여타 다른 신화나, 몰몬경이나 불경, 힌두교 경전 등 다른 종교의 경전들과 다르다는 그 어떠한 근거도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과 야훼를 비교하여 야훼만이 실존하는 신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성경은 온갖 오류와 이문과 상호 모순과 비과학과 전근대적인 내용들이 즐비하다. 오히려 다른 신화들보다 "격"이 떨어지는, 조잡한 소설이라고도 봐줄 수 없는 잡설(雑説)로 쳐도 과분할 지경이다. 이렇게 성경이 인간적인 한계가 분명히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축자적으로 진리로 믿는다는 말 자체가, 여기에는 기독교도들의 신앙심이라는 주관적인 요인 외에 어떠한 합리적 이유도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자들의 마음 속의 신앙심을 제외하면 외부적으로 볼 때 성경이 다른 종교의 경전이나 여타 다른 신화와 비교해서 다르다는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야훼 또한 제우스나 오딘, 토르와 동급으로 보인다."는 소리다.

당연히 기독교에 대한 신앙심이라는 극히 주관적인 요인을 강요하는 논리는 논증할 가치도 없다.

야훼가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존재라고 하면서 어째서 야훼의 유아 학살을 문제시 삼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으나, 이러한 부분에 대해 허구라 하더라도 그러한 야훼를 합리화/옹호하는 행위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임을 근거로 들 수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허구의 인물이라도 유아 학살을 자행했다면 그 인물을 미화/합리화 하는 것은 당연히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덧붙이자면, 성서무오설을 일관되게 주장하자니 자승자박에 빠져버리고, 이것을 포기하고 유연한 해석을 하면 신자들에게나 효과가 있을 뿐, 기독교 신자가 아닌 모든 사람들에겐 성경의 권위가 일반적인 신화 수준 이하로 추락하는 것이 성경과 기독교를 비롯한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의 딜레마라고 하겠다.

4 영향

땅밟기를 위시한 이른바 영적전쟁 운운하는 각종 교계 병크들의 근거도 바로 이것. 특히 부산 지역 기도회에서 있었다는 "부산시내의 모든 (불교) 사찰이 무너지게 하소서." 등의 발언을 보면 이른바 '마귀의 세력' 이 예리코 성마냥 무너지고 불타기를 소망하는 뉘앙스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 이중잣대

리처드 도킨스만들어진 신을 통해 종교라는 미명하에 빚어지는 인간의 잔학성으로서 이 사건을 매우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또 이 책의 386~388쪽에는 이스라엘 어린이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예리코의 전투 내용을 읽어주고 그 반응을 파악한 표본조사도 실려있다. 어린이들은 여호수아와 예리코의 전투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았는데, 내용 전개는 그대로 두고 무대를 이스라엘 대신 3000년 전의 중국 왕조로, 여호수아를 '린'이라는 이름의 장군으로 살짝 바꿔 소개해줬더니 대부분 침략자 쪽을 나쁜놈이라고 보았다 한다(...). 패드립 좀 더 자세한 내용은 만들어진 신 항목을 참고할 것.

이 일화를 동화처럼 재밌게 묘사해서 아직 역사에 대한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어린이에게 읽게 한다는 사례도 있다. 아무래도 미친 것 같아요 기독교의 친유대주의 성향이 강한 몇몇 기독교인들이 이러는 일도 있고, 이딴 미친 짓을 국가 정책으로 시행하는 이스라엘은 말 할 것도 없다. 고대의 엄연한 침략 전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전쟁 자체에 대한 분노를 키워야 할 나이에 전쟁과 학살을 미화하는 사상을 주입시키는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5]

사실 인권이나 국제법 따위는 있을 리가 없던 고대 민족 간의 치열한 점령 전쟁을 미화해서 설명한 것인데 그걸 현대 기준에 적용시키는 것이 무리라고는 할 수 있다. 모든 종교의 경전들은 그 시대의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전형적으로 담고 있다. 게다가 구약은 유대민족들의 역사책이라고 생각하는 이스라엘에서는 지금도 실제로 구약을 가지고 역사를 배운다!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그래도 차마 창세기부터 역사로 배우지는 않지만.

물론 구약이 역사서라는 주장은 당연히 근거가 부족하다. 일단 교차검증이 안 되기 때문에 주류 사학자와 고고학자와 문헌 비평가들은 성경이 역사서라는 주장을 가볍게 개드립 취급한다.

• 백인의 의무

결정적으로 제국주의 시대 때 강대국들이 아시아, 아프리카의 약소국을 침략, 수탈할 때 써먹던 논리 중 하나가 이 사례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는 백인의 의무가 있다.

사실 백인의 의무에 관해서는 "미개하고 더럽긴 한데 황인과 흑인을 우리가 고생해서라도 사람이 되게 이끌어주고 깨우치게 하자!"는 그 당시 기준으로는 상대적으로 유색인종을 생각해 주는 논리였다는 주장이 있긴 한데 애초부터 유색인종들을 백인들보다 못한 존재로 상정했다는 것부터가 에러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봐도 말로는 저러면서도 실제로는 수탈은 기본사양에 학살은 옵션으로, 생각해 주기는 개뿔이었다는 점에서 이미 확인사살이다. 생각해준 건 사실이다. 뼛속까지 털어먹을 "노예"로서...

그나마 차이가 있다면 노예를 열등종족 취급하면서 학대한 사람과 노예가 열등하긴 하지만 우리가 개나 고양이 잘 대해주려고 하는 것처럼 어느 정도 돌봐주는 사람의 차이 정도일 것이다. 다만 이 역시 이론적으로나 이런 차이점이 있었을 뿐이지 실제로 노예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전자나 후자나 똑같은 수탈이었을 뿐 별다른 차이점은 없었다. 당장 일제의 대동아 공영권 사상이 어떠했는지 보자.[6]

사실 미개한 집단을 우리가 잘 깨우쳐주자는 선민의식은 인종 뿐만 아니라 모든 집단 사이에서 자주 일어나는 병크이다. 당장 동아시아에서도 역대 중국 왕조들이 오랑캐 교화드립을 치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 시대에는 여진족과 왜구들을 힘으로 누르기보다는 군자의 덕으로 이끌어주자는 주장이 많았다. 예를 들면 조광조여진족을 기습해서 토벌하자는 작전에 반대하며 상대를 기습하는 건 군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5 대중 매체

폴아웃: 뉴 베가스의 DLC Honest Hearts의 내용은 예리코의 전투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인물의 이름이 조슈아 그레이엄인 데다 이 사람 출신지가 뉴 가나안이고 무엇보다 신의 이름을 내세우면서 정복과 파괴를 한다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다.

흑인 영가 중에 이를 소재로 한 것이 있다. 제목은 Joshua fit the battle of the Jericho. 19세기 초에 만들어져 1865년에 공식적으로 기록되었다. 주인의 종교를 받아들인 흑인 노예들이 불가능한 승리를 다룬 이 찬송가를 무슨 생각으로 불렀을지...

독일파워 메탈 밴드인 헬로윈의 1집 앨범명이 월스 오브 제리코(Walls of Jericho) - 예리코의 성벽인데, 프로레슬러 크리스 제리코의 링네임과 대표 피니쉬인 월스 오브 제리코(Walls of Jericho)는 여기서 따온 것이다.

나치 독일의 폭격기였던 Ju87의 급강하 사이렌 소리가 여기에서 비롯된 '제리코의 나팔'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이카리 신지에게 "이 문은 이제부터 제리코의 벽이야, 절대 넘을 수 없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신지는 아스카와 합숙을 하고 있을 당시, 미사토가 잠시 외출해서 밤 동안 집을 비워서 단둘이 남았던 적이 있었는데 아스카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면서 들어오는 건 꿈도 꾸지 말라고 화를 내면서, 경고를 했다. 그러나, 위의 설명대로 제리코의 벽은 신자들의 함성만으로 무너졌던 벽이었다. 즉, 신지가 아스카의 방에 들어올 마음이 있었다면 들어올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아쉽다, 신지가 교회를 다녔어야 그 의미를 알 수 있었을텐데...?

6 참고 문서

  1. 대충 넘어갈 경우에는 살육이나 정복보다 '벽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라는 것에 집중해서 공부시킨다. 신에 대한 강한 믿음은 성벽도 무너지게 만든다 같은 식으로 교육한다
  2. 참고로 구약성경 레위기 27장에선 명확히 인신공양은 지켜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민수기에 보면 야훼가 인신공양을 받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내용이 나온다.(...) 성경/논란 항목과 인신공양 항목 참조.
  3. 인신공양을 하는 사악한 집단이라서 진멸당해 마땅하다고 한다면 멀리 갈 것도 없이 가상 이야기이긴 하지만 심청전이나 은혜갚은 두꺼비 이야기에서 인신공양 묘사가 나오는 걸 미루어볼 때 조선 사람들도 제물로 바쳐질 심청이나 다른 처녀들까지 포함해서 야훼와 유대인한테 진멸당해 마땅하다고 해야 한다.(…)
  4. 1856~1928 미국의 신학자,목사, 신학성향이 복음주의자다. 그의 1907년 저서 <성경의 난제 해석>에 잘 나와 있으며, 아래의 의견도 여기서 발췌한다.
  5. 다만 실제 교회에서 이 이야기를 어린이들에게 들려줄 때를 보면 직접적으로 라합 빼고 성 안에 있는 사람들과 가축 등의 생명을 다 죽였다고 어린이들에게 설명하면 너무 잔인한 내용이라서 하나님과 유대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까봐 또는 동심파괴를 받을까봐 곤란함을 느끼는 건지 그렇게 직접 얘기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직접 죽인 게 아니라 성이 무너져서 사람들이 다 깔려 죽었는데 라합과 그 일가만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니면 그냥 성을 점령했다까지만 설명하거나 또는 성 안의 총독이 나쁜 사람이라(안의 백성들은 죄없이 시달림을 받고) 성 안을 점령해서 그 사람만 감옥에 집어넣었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근데 어린이들을 배려해서 설명한다기보다는 어째 변명이나 왜곡에 더 가깝게 들리는 거 같지만 물론 진짜로 원래 내용을 어린이들에게 미화시켜서 다 얘기해서 세뇌시키는 곳도 없지는 않다.(...) 결국 어느 쪽이든 진퇴양난이란 얘기다.
  6. 그 사상의 건전성이나 선진성에서는 "아시아 국가들과 친구가 되어서 다같이 번영(공영)하는 세상을 만들자"였던 대동아 공영권 쪽이 근거없는 인종우월을 깔고가는 '백인의 의무'보다 훨씬 우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는 대동아 공영권을 허울좋은 명목으로만 내세웠을 뿐 실제로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을 식민지로 만들고 수탈하기 바빴으니 그 쓰임새에서 백인의 의무랑 비슷한점이 매우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