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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카트 술탄국(1650~1820) 무스카트 오만 술탄국(1820~1970) سلطنة مسقط سلطنة مسقط وعمان | ||
국기 | ||
1650~1820 (무스카트 술탄국) 1820~1970 (무스카트 오만) 1650~1856 (식민제국 기간) | ||
위치 | 아라비아 반도 남부 아프리카 동부 해안 이란 남부 | |
수도 | 무스카트 →잔지바르 | |
정치체제 | 전제군주제 | |
국가원수 | 술탄 | |
언어 | 아랍어, 페르시아어 | |
민족 | 아랍인, 페르시아인 등 | |
종교 | 이바디파 이슬람 | |
성립 이전 | 포르투갈 제국 | |
멸망 이후 | 오만, 잔지바르 |
1 개요
오만 제국은 19세기 초까지 강대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아라비아 반도 남부, 동아프리카 해안 지역, 이란 남부를 지배했던 국가이다. 이 시기 오만은 황제가 아닌 술탄(왕)이 통치하고 있었고 제국을 자처하지는 않았으나, 그 강대했던 영향력 때문에 식민제국으로 분류된다.
1856년 오만의 술탄이었던 사이드 빈 알 부사이드(Said bin Sultan Al-Said)가 죽자 술탄 왕위에 대한 계승 분쟁이 일어나 제국은 분열되었다.
2 역사
2.1 포르투갈의 지배
포르투갈 제국은 무역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16세기 초 오만을 침략했다. 강력한 해군과 대포로 무장한 포르투갈 군대의 공격으로 오만 점령은 손쉽게 이루어졌다. 게다가 당시 오만은 여러 세력으로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포르투칼이 지배하기 용이하였다.
포르투갈은 오만을 점령한 이후 세관을 세우고 걸프 만을 지나 인도와 동아시아로 가는 무역선에 관세를 부과하였다. 그리고 일정한 상납금을 바치는 것으로 아랍 영주들의 자치를 허용했다. 이후 포르투갈은 약 150년 동안 오만을 지배하였다.
그러나 포르투갈의 지배는 현지 주민들의 반발심을 키웠다. 기독교 국가인 포르투갈의 반이슬람 종교 정책과 경제적 수탈은 오만 토착 세력들로 하여금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야아리바 왕조의 술탄 이븐 사이프 1세(Sultan ibn Saif I)에 의해 포르투갈인들은 오만에서 추방되기 시작한다.
2.2 제국의 건설과 전성기
오만은 포르투갈로부터 무스카트를 탈환하고 인도양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술탄 이브 사이프 1세와 그의 후계자들인 바라밥 이븐 술탄(Balarab ibn Sultan, 1679-1692), 사이프 이븐 술탄(Saif ibn Sultan, 1692-1711)은 포르투갈로부터 노획한 함대와 자신들의 배들. 그리고 이후 새롭게 다시 건조한 배들을 이용하여 강력한 함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아랍, 인도, 유럽계의 선원들을 고용하여 야아리바 왕조의 함대가 탄생하였다. 이미 쇠퇴한 포르투갈 제국은 오만 제국의 해상 활동을 막을 수 없었다. 이후 오만 제국은 당대 식민제국이었던 대영제국, 프랑스 제국, 네덜란드 제국을 공격하며 세력을 과시하였다.
야아리바 왕조는 펨바, 잔지바르, 팟타, 킬와로 영토를 확장하였고 이는 기존의 식민제국들이 자신들의 무역 이익에 커다란 위협을 느끼게 만들었다. 프랑스와 영국, 네덜란드는 자국의 국익을 위해 오만을 제어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동맹을 맺어 오만을 견제했다. 프랑스는 걸프만, 영국은 인도 남부의 바다, 네덜란드는 홍해를 관리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오만의 세속적 지배와 이에 반대하는 보수적인 친이맘 체제 세력 간의 갈등은 증가하였다. 급기야 갈등은 내란으로 발전하였고 이 때를 틈타 1739년 페르시아의 나디르 샤(Nader Shah)가 개입하여 무스카트 및 오만 제국의 주요 도시들이 점령되었다. 점령한 지역의 지리적 이점 때문에 페르시아는 오만 지배를 공고히 하려고 하지만 소하르의 주지사였던 아흐마드 이븐 사이드(Ahmad ibn Said)에 의해 축출되었다.
1749년 아흐마드 이븐 사이드는 알 부사이드 왕조를 개창하였고 이로써 야아리바 왕조는 완전히 종말을 맞았다. 오만의 이맘으로 선출된 그는 오만을 통일하고 오만의 내륙과 해안지방을 안정시켰다. 알 부사이드 왕조는 오만 해군과 상선단을 구축하고, 오만을 번영시켰다. 이 시기 오만 제국은 국제 물품인 커피, 설탕 및 사치품들과 향료를 매매하여 엄청난 부를 창출하였다.
이러한 오만 제국의 절정기는 1807년 오만의 지배자가 된 사이드 이븐 술탄(Said ibn Sultan) 때였다. 그는 당시 혼란스러웠던 정치상황을 타파하고 걸프만과 동부 아프리카 해역에 대한 오만 제국의 재해권을 확보하고, 서구 열강 사이에서 독립적인 외교를 펼쳤다. 서구 열강과의 대등한 거래는 오만 제국에게 많은 부를 가져다주었다.
사이드 이븐 술탄의 치세 때 오만 해군과 상선단은 대대적으로 근대화하였다. 세계적인 무역을 추구한 그의 전략에 의해 제국 최고의 수출 도시인 잔지바르는 무스카트와 함께 오만 제국의 공동 수도가 되기도 하였다.
2.3 제국의 분열
그러나 사이드 이븐 술탄이 1856년 사망하자, 오만 제국은 그의 아들들에 의해 분열되었다. 마지드 이븐 사이드((Ma jid ibn Said)는 잔지바르를, 수와이니 이븐 사이드(Thuwayni ibn Said)는 오늘날의 오만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오만 제국이 계승 분쟁으로 분열의 조짐을 보이자 영국과 프랑스 등 서구 열강들은 이 때를 놓치지 않고 개입하였다.
결국 오만은 1892년 영국의 보호국이 되어 쇠퇴를 계속하다가 1970년대에 들어서야 석유, 천연 가스를 기반으로 재기하기 시작하였다.
3 참고 문헌
- 송경근, '오만해양제국의 융성과 추락',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