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육군의 제1야전군사령관 | ||||
15대 김학원 | → | 16대 윤성민 | → | 17대 김윤호 |
대한민국 국군의 합동참모의장 | ||||
16대 류병현 | → | 17대 윤성민 | → | 18대 김윤호 |
역대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 | ||||||
22대 주영복 | → | 23대 윤성민 | → | 24대 이기백 |
1926년 전라남도 무안군에서 태어났다. 목포 문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9기생으로 입교하였으며 육군사관학교 수료 후 장교로 복무하였다.
1979년 12.12 군사반란 당시 육군참모차장(중장)으로 육군의 정식 지휘계통에 있었으나, 우유부단한 처신으로 사태를 진압하지 못하였다. 12월 12일 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신군부측 인물인 우경윤 대령(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 허삼수 대령(국군보안사령부 인사처장)에 의해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로 연행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에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의 재가 없이 육군본부 지휘부를 수도경비사령부로 옮겨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과 함께 신군부와 다른축에서 행동했다. 다음 날 새벽, 신군부 편에 선 수도경비사령부 헌병대장 신윤희 중령에 의해 무장해제를 당하고,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로 연행되었다. 그러나 곧 풀려나고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 등 신군부 인물들의 권유를 받아들여 제1야전군사령관직을 수락하여 김학원 중장의 뒤를 이어 취임하였다.
1980년 5월 대장으로 진급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위원, 합동참모의장을 역임하였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 국방부장관을 지냈다. 임기 중이던 1983년 추진한 녹화사업이 말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