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스포츠

< 이란

1 개요

이란스포츠에 대한 문서이다.

2 축구

"압박. 역습. 침대." (By 칼카나마)

전후 아시아 축구의 정상권에서 밀려나본 적이 없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란 역시 오랫동안 중동의 강호로 군림해왔다. 특히 이란 축구는 70년대에 최전성기를 맞았는데 이 시기에 국대-청대 가리지 않고 각종 아시아 대회를 대부분 휩쓸었다. 전후 아시아 축구의 역사에서 한국-이란이 전통 강호에 속한다면 일본-사우디는 80년대 이후부터 두각을 나타낸 신흥 강호로 분류된다. 이란 국대에 대한 자세한 것은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그런데 국대와 달리 자국 프로리그는 70년대까진 없었다.하긴 아시아에서 60년대만 해도 프로리그를 갖춘 나라가 40년대에 이미 2부리그까지 가지고 있었으며 한국 축구계 최초의 해외 진출 사례를 남긴 홍콩 단 한 곳이었던 걸 생각하면 이상한 것도 아니다. 참고로 사우디아라비아나 다른 아랍 지역도 통합 프로리그가 없었다. 그래서 주로 각 지역 도시 챔피언쉽에 참여했다. 타즈와 페르세폴리스가 60년대 중반을 휩쓸었고 파스(Pas), 사힌(Shahin), 타즈(Taj), 다레이 FC(Daraei FC)는 테헤란 리그 강호들이었다.

그러다가 1972년, 탁트 잠시드 컵이 개최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통합 프로리그. 주로 테헤란 지역 팀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참가했으며 파스가 2번 우승을 거뒀다. 그러다가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면서 1980년부터 89년에 이르기까지 지역 컵대회와 일부 지역 리그 챔피언쉽이 개최되었다. 종전 클럽들이 팔레비 왕조와 연관이 컸고 호메이니가 축구를 그다지 안 좋아했다는 점도 큰 원인이었다.[1] 더불어 종전 프로축구팀들은 이름을 강제로 바꿔야 했는데 페르세폴리스는 피루지,타즈는 에스테그랄로 이름을 바꿔야했다. 이런 프로리그의 축소로 인하여 이란 국대도 타격을 맞이했다가 1989년 쿼즈(Qods)리그가 개최되었으나, 일부 지역 통합리그라 한계가 있었다.1991년에는 리그 이름을 아자데간 리그로 바꾸고 1991/92시즌부터 시작하는 전국통합 프로리그로 새롭게 문을 열게된다.그러다가 1995년에는 리그 이름을 이란 프로리그 (IPL=Iranian Pro League)라는 바꾸었다.

90년대 후반에는 주요 스타들의 해외 이탈[2]로 국내 축구인기가 급감하기도 하는 등 한국에 비하면 꽤나 부침이 심했다. 이대로 가다간 안되겠다 싶어서인지 다시 2006년부터 이름을 페르시안 걸프컵 (Persian Gulf Cup)으로 바꾸고 해외로 떠난 이란계 축구지도자 재입국을 허락하며 리그 발전과 인기를 힘을 기울이게 된다.그 결과 아시안 챔피언스리그에서 최다 관중 기록을 가진 나라가 바로 이란이다. 9만 5225명 관객이 보러온 피루자 대 분요드코르의 2008년 경기.

세파한-파스, 에스테그랄-피루지는 리그 라이벌이자 더비로 알아준다. FIFA에서 선정한 세계 10대 더비에 유일한 아시아 쪽 더비로 들어간 에스테그랄-피루지 경긴 이란에서도 문제시되었는데 경기장이 무려 10만석이 넘는 관중석이다보니까 폭동이 날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2009년 리그에선 1-1로 경기를 서둘러 끝내던 적도 있는데 자칫하면 10만에 이르는 관중들이 충돌할 위기가 있었기 때문. 때문에 관중들은 더 흥분해 날뛰었다.

이란은 다른 중동 국가들과 달리 부유한 국가가 아니고 인구도 많기 때문(이란 인구는 약 8180만인데 사우디아라비아(3070만), 카타르(190만), 아랍에미리트(820만) 다 합쳐도 이란 인구 절반 수준이다)에 돈빨로 운영되는 여타 중동 리그들과는 시스템 자체가 다르다. 물론 이란 쪽이 훨씬 건전한 시스템이다. 거기다 저 관중 수는 여성 없이 기록되는 것이다. 이란 법상 여자가 남자 사이에서 경기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열악한 상황에서도 이러한 꽤 훌륭한 리그 기반과 자신들만의 독특한 축구색, 또 아시아에 속하지만 유럽에 더 가까운 우수한 피지컬 그리고 가장 중요한 침대. 덕분에 한국은 늘 이란의 압박과 높이에 고전해야 했다.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최종 예선 경기에서도 0:1로 패하며 제파로프(우즈베키스탄)샤다라빠를 실망시켰다. 다만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서는 북한과도 비기며 탈락했다.

자세한 건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참조.

3 풋살

실내 축구인 풋살은 아시아 최강이자 세계적인 강호. 한국에선 낯설고 풋살 월드컵조차도 못 나가며 아시아에서도 하위권 수준으로 밀려난 풋살이지만 해외에선 풋살은 실내축구 겸 축구선수도 나와 하는터라, 브라질이나 스페인같은 축구 강호들도 풋살은 강호들이다.그런데, 이란이 아시아 풋살컵 대회를 연속 우승하고 있다. 게다가 풋살 관심도가 크고 투자도 큰 일본이나 중국까지도 7-0 정도로 깨부술 정도로 압도적이다.이란은 2000년 초반부터 이미 14개의 1부 풋살리그와 3부리그까지 갖춰 승강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인기와 인프라도 상당하다. 1999년부터 시작된 AFC 아시안 풋살 챔피언십에서 한국을 9-1로 제치고 우승한 뒤로 13번 치뤄진 대회에서 10번 우승한 최다 우승국가이다.(일본이 나머지 3번 우승) 2012년 대회 조예선에서 한국은 이란(이란은 이 대회에서 3위)에게 1-14로 대패했다.

더불어 2008년 브라질에서 열린 6회 피파 풋살 월드컵에서 이란은 8강(16개 나라 참가)까지 올라 아시아 유일 토너먼트 진출 성적을 거뒀다(한국은 진출조차 못했다). 조예선에서 이 대회 우승 2번을 거둔 강호 스페인과 3-3으로 비겼고 체코와 우크라이나같은 나라들도 이겼다. 8강에서 개최국이자 대회 우승한 브라질도 고전 끝에 이란을 1:0으로 이겼을 정도로 강하다.

참고로 피파에서 발표한 2010년 풋살 세계 랭킹(1위가 브라질,2위가 스페인,3위가 이탈리아) 4위가 바로 이란이다. 하지만 이란에선 우린 풋살론 세계 3위는 된다고 이 랭킹에 불만을 표시했는데 2009년 이후로 벌인 이탈리아와의 풋살 경기에서 2승 1무(5:5,2-1,1-0)를 거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니 2010년 말부터 2011년 초까지 1회 리그를 시작한 FK리그 자문으로 초빙한 게 바로 이란 풋살 지도자들이다.

2012년 11월 타이에서 열린 7회 풋살 월드컵에서도 2승 1무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와일드 카드없이 조 2위로 16강에 올랐으나 콜롬비아에게 연장 끝에 1:2로 패하여 8강에선 탈락했다.콜롬비아를 이겼더라면 4년전 조예선에서 이긴 바 있던 우크라이나(와일드카드로 올라온 일본을 6:3로 이기며 8강 진출)와 격돌할 수 있었기에 이란에서 아쉬워하는 반응이다. 참고로 조예선에서 이란과 2:2로 비긴 스페인(다른 5경긴 다 이겼다)이 결승까지 올라갔으며 콜롬비아가 4강까지 올라가 브라질과 격돌해 졌고 브라질이 대회 우승했다.

그러나 엄청난 돈다발로 투자하고 인기가 꽤 많아지는 일본이나 중국 풋살도 나날이 발전되어가는 상황에 2014년 베트남에서 열린 AFC 아시아 풋살 챔피언십에서 이란은 일본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해 준우승했다. 참고로 15골을 넣으며 득점왕이 된 호세인 타이베디를 비롯하여 골득점 순위 1,2,3위(2,3위는 공동)를 죄다 이란 선수가 차지했다. 1999년부터 시작된 13번에 걸쳐 치뤄진 대회에서 이란이 모두 10번 우승하며 최다 우승팀이지만 2012,14년 대회를 일본에게 연이어 우승을 빼앗겼다. 다만 이란은 두 대회에서 모두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졌고 크게 진 적은 없다.

4 농구

축구 외에는 다른 구기종목은 도통 관심도 안 기울이던 나라였으나 1990년대 이후부터 농구나 배구에 큰 관심을 두고 외국 코치진을 영입하거나 준실업리그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활발한 건 농구. 농구라면 아시아권에서 상당히 알아주는 편이다. 1970년대만 해도 미국 및 유럽과 관계 개선으로 미국코치들을 끌어오기도 하고 농구나 야구가 제법 인기가 있었던 시절도 있었다. 1959년에는 유로바스켓에 특별참가하기도 했다. 비록 오스트리아에게 49-60,스페인에게 42-71로 동네북처럼 털렸고 최종 순위 17위 꼴지를 기록했지만.

하지만 이슬람 혁명으로 친서구 정책을 취하던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1980년대만 해도 미국의 더러운 스포츠로서 야구와 농구는 푸대접을 받으며 많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부터 서서히 농구에 관심을 가지고, 2000년대 와선 아시아 최강급 강호로 달라졌다. NBA로 진출했던 하메드 하다디(전 멤피스 그리즐리스) 같은 선수(하다디는 이란 리그로 돌아왔다가 2013년부터 중국리그에서 뛰고 있다.)까지 있다. 그런데 하다디가 미국 언론에게 한 인터뷰를 봐도, 그 이전 이란에선 농구가 어떤 대접 받았는지 알만하다. 가드 메흐디 캄라니, 포워드 사마드 니카 바라미와 함께 황금세대를 형성하고 있다. 아시아쿼터가 적용되어 2015년부터 세 선수 모두 중국에서 뛰고 있다.

"내가 어릴적에는 이란에서 농구를 제대로 아는 이들이 별로 없었다. 나도 축구선수를 꿈꾸었고, 지금은 농구선수인 나도 어릴적에는 농구라는 말과 실내에서 하는 종목이라는 말을 듣고 뭐야? 실내 축구야? 이랬으며 농구장을 처음 보았을때, 이상하다, 골대가 뭐 저렇게 좁아? 저걸 어떻게 발로 차서 공을 넣으란 말야?" 이랬을 정도다."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최다 우승을 거두던 중국을 2000년대 와서 우승을 막은 게 2010년 초반까지 이란 밖에 없다. 2007년 중국의 5회 연속 우승을 막으며 우승(이땐 중국이 4강도 못 진출했으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매달리고자 2진급을 보냈기에 이 탈락은 중국에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했고 2009년 대회에선 바로 중국에서 열린 대회였고 1진급이 대거 출동했던 중국을 결승에서 70-52로 작살내며 우승을 차지했다. 중국인들은 야오밍이 없었다곤 해도 안방에서 압도적 응원을 보내고도 아시아 국가를 상대로 이 정도로 대판 깨진 건 오랜만이라며 대폭발했다. 이전까지 1993년 아시아 선수권에서 거둔 4위가 대회 최고성적이었던 이란은 2007,2009년 대회를 우승하며 중국과 더불어 아시아 최강을 다투는 농구강호로 발돋움했다.

점프볼이나 월간 루키같은 농구잡지들도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농구에서 중국과 더불어 가장 무서운 금메달 후보로 꼽으며 분석했었는데, 결과는 동메달이지만 금메달을 받은 중국의 판정 깽판으로 이란과 은메달을 받은 한국에서 말도 많고 불만도 있었다.참고로 아시안 게임에서 주력들이 나오지 못한 걸 생각하면 동메달도 상당한 것이다,

이란 농구의 진정한 무서움은 아랍 농구 강호인 요르단이나 카타르와 달리 귀화선수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꽤 짧은 기간동안 자국 유망주를 키워 이 정도로 성장한 것.하다디는 NBA에선 벤치 멤버이지만 아시아 무대에선 최강급 선수이며, 2011년 NCAA에서 활약하는 아르슬란 카제미가 미래의 유망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터키에서 열린 2010 농구 세계 대회에선 비록 미국같은 강호들에게 크게 졌으나 튀니지를 이기며 1승 5패를 기록했으나 아쉽게 16강은 탈락했다. 성적만 보면 애걔 싶겠지만 아시아 최강이라는 중국도 다른 조에서 똑같은 1승 5패를 거두고도 운좋게 16강에 겨우 진출했을 정도이다. 그동안 국제농구대회 동네북이던 앙골라도 1승 5패를 거두고 모처럼 16강에 오르는 저력을 보였는데 이란과 레바논(캐나다(농구론 무시못한다.)를 이기며 역시 1승 5패를 기록했으나 탈락했다)은 운이 좀 안 좋았다. 참고로 2000년대 이후 한국 농구 킬러가 되어버린 요르단은 이 대회에서 6전 전패로 탈락했다. 더불어 한국은 이들 네나라에게 밀려 대회 참가조차 못했다(...)

윌리엄 존스컵 국제 아시아 농구대회도 4회 연속으로 우승하고 있다. 2011년 8월 6일부터 14일까지 열린 이 대회에서도 한국과의 예선에선 59-77로 졌으나 정작 결승에선 66-59로 한국을 제치고 4번째 연속 우승을 거뒀다. 비록 중국이 참가하지 않았으나, 한국이나 이란이나 국대 1진이 나온 대회였다.결승에서 김주성이나 문태풍같은 한국 주력들은 이란 에이스 하다디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9월 중국에서 열리는 아시아 농구 선수권 대회에서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결국 이 대회에서도 이란은 한국을 조예선에서 79-62로 이겼다. 그런데, 예상을 뒤엎고 8강에선 요르단에게 84-88로 지는 바람에 탈락했다. 일단 이란은 요르단이 잘했다는 평을 내렸으나(참고로 결승까지 올라간 요르단은 중국에게 겨우 1점차로 아쉽게 졌을 정도로 잘했다.) 중국 기자가 노골적으로 요르단을 응원하는 등의 이란 견제를 보였기에 이란 여론에선 분노하고 있다.

2013년 7월에 열린 윌리엄 존스컵 예선에서도 4연승 행진을 달리던 한국을 71-68로 이긴 게 이란이다. 이 경기에서 하메드 하다디는 34득점을 올리며 이란의 농구 에이스임을 입증했다. 우습게도 현재 그는 멤피스 그리즐리스에선 벤치 멤버이지만 아시아 최강 선수 중 하나로 중국에서도 두려워하는 선수가 되었다. 결국 이란이 대회 우승하면서 2000년대 와서 이 대회 최다 우승팀이 되었다. 뭐 비록 이 대회가 매해 열리는 이벤트 대회이며 중국이 참가하지 않는(대만에서 열리기에) 대회이긴 하지만.

그런데 2013년 8월 2일에 열린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 한국은 이란에게 65-76으로 또 지고 말았다. 전 경기에서 중국을 16년만에 이길때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인지 모르지만(...) 결국 이란이 3번째로 대회 우승하고 한국은 16년만에 대회 3위에 들어서 2014년 세계 대회 진출권을 얻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2010년 터키에서 열린 농구 월드컵에서 첫 국제 농구 월드컵 출전을 했는데 튀니지를 71-58로 이기며 1승을 거두고 미국,브라질,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에게 패했다.최종 순위는 19위.

2014 스페인 농구 월드컵에선 A조에 속해 스페인, 이집트, 세르비아, 브라질, 프랑스라는 상대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집트 빼면 죄다 농구강호로 상당한 팀들인지라 고전이 예상됐고 결국 이집트를 이긴 거 빼고 1승 4패로 탈락했다. 최종순위는 20위. 그러나 4강에 진출한 프랑스를 상대로 76-81 선전을 벌였으며 세르비아와 브라질 경기에서도 꽤 선전한 모습을 보였다.

덕분에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농구에서도 우승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준결승전에서 카자흐스탄에게 고전하며 80-78로 겨우 이기긴 했지만 어찌됐든 사상 처음으로 아시안 게임 결승에 진출하여 개최국 한국과 우승을 다투게 되었다. 결국 결승에서 한국에게 77-79로 패하면서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이란으로서는 아쉽지만 사상 첫 남자농구 은메달이다. 1951년 뉴델리 대회와 2006년 도하,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 남자 농구 동메달을 받은 게 여지껏 이란 남자농구 최고성적이었다. 아쉬운 패배이긴 했어도 2018 남자농구에서도 우승후보로 거론될 듯 하다.

그리고 2016 FIBA 아시아챌린지 대회 조예선에서 이란이 홈경기라고 해도 한국은 이란에게 무려 47:85라는 압도적인 대패를 당했다. 그리고 결승에서 다시 맞붙어서 또 47:77로 대패하면서 한국이 이 대회 2번째 준우승(2004년 카타르에게 패해 준우승)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이란은 2012,2014년에 이어 3회 연속 이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5 배구

아직 세계적으로 강호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지만, 역시 농구와 마찬가지로 2000년대 와서 이란 남자배구도 장족의 발전을 일궈냈다. 아시아 배구 남자선수권 대회에서 1993년,2002년 4강에 든게 최고성적이던 이란은 2009년 준우승을 시작으로 2011,2013년 연속 우승을 거둬들이며 아시아 최강급으로 확실히 거듭났다. 아시아 성적말고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도 발전하여 2013년 FIVB 세계 남자배구 랭킹이 12위로 아시아 최강이다. 그 다음이 일본(17위), 중국(18위), 대한민국(21위)다. 2013년부터 승강제를 도입한 FIVB 월드리그에서 아시아 유일의 10위권(8위)성적을 기록하며 아시아팀 유일의 디비전 1(1부)에 속해있었다.(2013 대회에서 한국은 15위,일본은 18위 꼴지)

그것도 모자라서 참가국이 28개로 대폭 늘어난(2013 대회는 18개국 참가) 2014 월드리그에서는 디비전 1에 속한 팀 중 랭킹이 가장 낮았음에도 대회 2위를 거둔 브라질, 3위를 거둔 이탈리아, 7위를 거둔 폴란드와 같은 조를 이뤄 다같이 6승 6패를 거뒀다. 이란은 이탈리아를 상대로 안방에서 2승 2패를 주고 받았을 정도였고 이런 선전에 힘입어 아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4강까지 진출했으며, 결국 4위로 대회를 마쳤다. 참고로 이란을 준결승전에서 막은게 우승한 미국이었다. 그 덕분에 2014년 세계랭킹도 11위로 한 단계 상승했다. 이젠 점점 세계 강호가 되어 가는 중. 여담으로 같이 나간 한국과 일본은 조별리그에서 나란히 4위 꼴찌를 하며 (한국은 3승 9패, 일본은 1승 11패)공동 19위, 중국은 23위였다.

이로서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대표팀의 전망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결국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예선전에서 이란에게 남자 배구는 1-3으로 패하면서 금메달 전망은 불투명해졌고 한국은 한일전에서 패해 결승이 좌절됐다.결국 결승은 이란이 중국을 쉽게 처바르며 진출해 일본과 금메달을 다투게 되었는데 이란으로선 아시안 게임 사상 첫결승진출이다.(2002,2010년 대회 동메달이 최고성적) 결국 일본을 3-1로 이기고 사상 첫 아시안게임 남자배구 금메달을 획득했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배구에 대하여 세계적인 큰 손이자 시장성을 가지고 있으며 인기와 여러 모로 압도적인 일본조차도 2008년 대회 6위(참가국 16개국)가 최고 성적이다. 그마저도 그 일본도 2000년대 와서 10위권에서 헤매다가 모처럼 잘한 게 이 성적.(1990년 자국 대회에서 6위했지만 이 당시 참가국이 8개 나라였다 그리고 12개국으로 늘어난 1993년 대회에서 6위)더불어 일본은 21번 이 대회에 나갔던 반면, 이란은 2013년 사상 처음으로 나가 8위, 2014년 4위를 거둔 것. 단 2번만으로 4강진출. 게다가 일본조차도 연속 대회 10위권 진출이 아예 없다. 덤으로 16번 이 대회에 나간 한국팀의 최고성적은 1995년 대회 6위. 게다가 이 대회에서 1990~2014년 대회까지 모두 25번 개근을 한 나라가 브라질과 이탈리아 뿐인데 바로 2014 대회에서 이란은 이 2나라와 조예선을 이뤄 조예선 2위였다.

공교롭게도 이란 국대감독으로 기여한 게 1970~80년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주전 센터이자 한국 선수 최초로 이탈리아에 진출했던 박기원 감독으로,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이란 대표팀의 감독을 맡아 종전에는 4강에도 못 올라온 이란 남자배구가 은메달을 따게 했다. 참고로 이 대회 우승팀은 대한민국이었다. 이 여파로 이란에서 배구 인기가 높아지고 유럽 지도자들까지 초청하면서 이란 배구가 나날이 성장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그 박기원 감독은 2011년 한국 남자배구 국대감독으로 활약 중인데 2011년 이란에서 열린 아시아 배구선수권 대회 4강전에서 이란을 만나 1:3으로 졌다. 이란에서 열린 대회이니 불리하겠다고 하지만 참고로 2008년 이후(2008년 타이 나콘라차시마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배구연맹(AVC)컵에서 이란에 1승1패를 기록했음)로 한국남자배구는 이란에게 6연패를 당하고 있다. 그리고 아시아 선수권 결승에서도 중국을 3:1로 이기고 우승했다. 덕분에 박기원 감독이 대회때문에 이란에 가게 되면 경쟁팀 감독임에도 체육관에 있는 모든 이란 관중들이 기립박수를 보낼 정도라고 한다. 이란 배구의 히딩크 같은 존재라면 비슷하게 이해할 수 있을 듯.

2011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 배구 월드컵에선 이란 남자배구는 9위를 기록했지만 안방팀인 일본이 10위, 중국이 11위로서 아시아에서 가장 성적이 좋았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어느 정도 실력이 있음을 증명했다.

그리고 2012 런던 올림픽 진출 최종예선에서도 한국을 3:0으로 이겼고 일본도 3:0으로 뭉갰다(중국에겐 3:2 승) 다만 호주에게 1:3로 지면서 이게 타격이 되어 올림픽 2차 토너먼트를 넘진 못했다. 이 때 세르비아에게 0:3으로 완패했지만 1년전 배구 월드컵에선 세르비아를 상대로 3:2로 이겼기에 유럽 세에 어느 정도 맞설 실력을 보여줬다.

2013년 10월 2일에 열린 아시아 선수권 대회 8강전에서도 한국을 3:1로 이겼는데 공교롭게도 한국 감독이 바로 박기원 감독이라 이란 제자들에게 한방 먹었다. 게다가 10월 6일에 벌어진 결승에서도 한국은 0-3으로 또 지면서 이란전 7연패를 당하고 있다. 그리고 2014년 9월 29일에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도 1-3으로 또 지면서 이란전 8연패 기록(...)

2010년 초반에 이란 (지진으로 엄청나게 파괴된)을 둘러본 여행자가 본 것에 의하면 이재민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축구 아니면 배구를 하고 놀 정도로 배구붐이 이란에서 상당했다는 느낌을 쓸 정도.

2015 월드리그에서 미국, 폴란드, 러시아와 함께 B조에 속해 미국, 폴란드 원정에서 4연패하며 불안하게 출발했으나 최종 성적 6승 6패로 B조 3위를 차지하며 1그룹에 잔류했다. 최종 랭킹은 7위(32개국 참가). 전년에 이어 2년 연속 4강은 실패했지만 3년 연속으로 8강 이상을 기록한 셈이다. 참고로 일본이 공동 13위, 한국은 공동 18위, 중국은 24위를 기록하며 여전히 이란이 아시아에서 가장 성적이 좋았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권이 열린 2015 아시아 선수권 대회가 하필이면 이란에서 열리는 통에 한중일 모두 한숨쉬게 되었다. 2010년대 들어 한중일 모두가 이란에게 고전하고 있는 와중에 그것도 이란 홈에서 대회가 열리니. 2011,2013년 두 대회를 이란에서 연속으로 우승한 만큼, 이번에도 이란 3연패 우승이 확실시 되고 있다. 게다가 국제배구연맹(FIVB)은 세계랭킹 기준으로 아시아 상위 3개 팀에 세계예선 출전권을 부여할 전망이라 2015년 7월 기준으로 개최국 이란(10위)과 호주(13위)는 무난하게 출전권을 획득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남은 한 장을 두고 한국(16위)과 중국(17위)이 혈전을 벌이게 되었는데 이 대회 성적으로 3위가 결정나기 때문. 거기에 21위 일본도 3위를 한다면 랭킹이 오를 가능성이 있기에 절대 대충 할리가 없어 아주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게다가 해발 1200미터가 넘는 아자디 배구 스타디움에서 경기가 열릴 전망인데 여기서 한국은 역대성적 2무 4패, 중국은 3무 3패, 일본은 3무 4패같이 도통 이겨보질 못한 원정 지옥이다(참고로 월드 리그에서도 미국이나 브라질같은 세계적 강호들이 여기서 연패했을 정도다).

그런데! 2015년 8월 5일 예상을 뒤엎고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린 제18회 아시아선수권 8강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한국은 이란에 3-1로 이기면서 8연패 사슬을 끊었다! 이란 원정에서 거둔 첫 승리이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일본에게 2-3으로 패하면서 5-8위전으로 추락,7위라는 역대 최악의 결과로 끝난 한국은 2016올림픽 예선에서 일찌감치 탈락했다....

그리고 이란은 2015년 아시아 배구 선수권 대회 결승에 올랐으나 일본에게 1-3으로 패하면서 3회 연속 우승이 좌절됐다. 이란 홈경기였고 3년전 결승에서 일본에게 당한 1-3 패배에 대한 설욕을 하지 못한데다가 난공불락이던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한국과 일본에게 첫 패배를 당했다. 그렇긴 해도 이란은 2위로 2016 리우 올림픽 본선에 진출했다.(일본은 자동진출이라 패하던 말던 원래부터 진출했었기에.)

2016 리우 올림픽 본선 1차예선에서 이란 남자배구는 일본을 3-1, 중국을 3-2, 호주를 3-0으로 이겼으며 베네수엘라, 폴란드,캐나다도 연이어 이겨(프랑스에게 0-3 패배) 폴란드에 이어 조 2위로 2차본선에 아시아로서 유일하게 진출했다. 그리고 8강까지 올라 은메달을 받은 이탈리아에게 0-3으로 져서 탈락했다. 그래도 아시아 유일 2차 토너먼트 진출 기록을 거두면서 이란의 배구 실력은 아시아 최강급을 입증했다.

6 핸드볼

핸드볼도 그다지 강호가 아니던 이란은 역시 2000년대 와서 급격하게 강해졌다.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일본에게도 져서 4위를 하던 게 최고성적이었으나 2006년 한국을 31-27로 이기고 첫 남자핸드볼 동메달을 받았다. 물론 핸드볼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이 2006년 대회에서 쿠웨이트에게 억지로 패배했던 한국이었지만 적어도 3,4위전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나마 2010년 광저우 대회 결승전에 처음 올라온 이란을 한국이 32-28로 이기고 금메달을 받았지만 2014 바레인 아시아 선수권에서 이란과 비기면서 4강진입에 실패한 한국 핸드볼 대표팀은 세계 대회 진출조차 이란에게 넘기며 탈락했다.

핸드볼 항목봐도 알겠지만 한국이 나날이 선수층이 얇다는 문제가 타격이다. 그러나 위에 배구와 농구만 봐도 90년대만 해도 한국으로선 그다지 어렵지않던 이란이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하자 아시아 최강급으로 탈바꿈했다. 게다가 다른 아랍권이 핸드볼 또한 유럽 선수 귀화로 단시간에 발전된 거랑 다르게 핸드볼도 이란은 귀화선수보단 자국선수 위주로 발전하고 있기에 머지않아 핸드볼도 아시아 강호로 발돋움할 여건이 크다. 알다시피 이란은 유럽계 백인 인종이 많아서 아랍이나 다른 아시아권보다 힘이나 키에서 압도적인 면이 크기에 이 점으로도 배구와 농구가 발전된 것처럼 핸드볼도 강해질 듯 하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는 프랑스 및 쿠바같은 다국적 용병(...) 귀화선수로 무장하여 한국까지 제치고 금메달을 받은 카타르에게 21-29로 패해 결승진출에 실패했고 마찬가지로 일부 해외 귀화 선수들을 여럿 가진 바레인에게 25-28로 져 4위를 차지했지만 3회 연속 대회 4강에 진출한 만큼 이란 남자 핸드볼도 이제 쉽게 볼 상대가 아니다.

7 다른 스포츠

구기 종목과 복싱 레슬링 다음으로 인기 있는 스포츠는 태권도. 한국 다음으로 태권도를 하는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거기다 종주국인 한국에도 없는 프로 태권도 리그가 매주 열린다. 한국 킬러로 악명 높은 이란의 태권도 영웅 하디 사이 베네코할이 테헤란 시의원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2011년 한국에서 열린 세계 태권도 선수권 대회에서도 한국을 제치고 종합우승을 차지하면서 1973년 대회 이후로 38년동안 종합우승을 독차지한 한국을 제쳤다. 이란에선 이 우승을 두고 월드컵 우승 분위기급으로 환호했다고 한다. 아시안 게임 태권도에서도 1986년부터 2014년까지 모두 70개 금메달을 받은 한국에 이어 이란은 모두 39개 메달을 받으며 2위.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도 금 6, 은 2, 동 2개를 받은 한국에 이어 이란은 금 4, 은 2,동 1개로 태권도 메달 2위(다만 전체 메달에서는 금 2, 은 4,동 3개인 중국이 2위)를 차지했다.

가라테도 상당한 강호이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는 금메달 3개, 동메달 2개를 받으면서 금 3,은 1, 동 2개를 받은 일본을 바싹 추격했다. 역대 가라테 아시안 게임 메달로 금 26개,은 10개, 동 7개를 받은 일본에 이어 금 12개, 은 8개, 동 7개인 이란이 추격 중이다.

카바디도 꽤 강호이다. 카바디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인도가 아시안 게임이나 월드컵까지 모조리 남녀 동반 우승을 하는 와중에 이란은 남자 카바디 은메달 최다 수상국가이며 카바디 월드컵 준우승도 했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힘센 남자 인간 거중기라 불린(세계신기록) 아테네 올림픽 역도 무제한급 금메달 리스트 후세인 레자자데가 이 나라 출신. (2016년 기준으로는 용상에서만 기록 유지하고있다)
[1] 레자자데의 스내치 기록도 같은 이란의 베다드 살리미가 갈아치웠다. 하지만 클린앤저크+스내치 총합의 기록은 조지아가 더 높다

WWE 최초의 중동계 레슬러 아이언 쉐이크( 본명 후세인 호스로우 알리 바즈리)도 이 나라 출신이다.

현재 서구 웨이트 트레이닝계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전통 근력운동 체계인 주룩하네가 존재한다. 과거에는 중무장 전사를 양성하는 시스템이었고 근대에 들어서는 레슬링선수를 키우기 위한 시스템이 되었다. WWE의 이란인 선수 아이언 쉐이크가 이 주룩하네 방식으로 운동한 레슬링 선수이며, 항상 링에서 이 주룩하네 운동 중 하나인 클럽벨을 시연해서 잠깐 유명해지기도 했다.

중동 내에서 동계스포츠가 활성화 된 나라이기도 하다.겨울과 추운 지역이 공존해 있기에 그렇게 된 것이고 다른 동계스포츠 나라에 견주면 약체급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랍 지역에선 강호(쿠웨이트나 사우디아라비아가 동계스포츠 종목 선수들을 두고 있으나 기후적으로 불리해서인지 이란에게 압도적으로 진다.동계아시안 게임에서도 이들은 나왔다가 대패를 당하거나 불참한다.) 참고로 흔히 이란하면 더운 나라로 알지만 수도 테헤란을 포함한 중부와 북부지방은 겨울되면 강원도급으로 눈이 오는 지역이다.

한편 한국에서는 이란이 올림픽을 포함해 어떠한 마라톤 경기도 주최하거나 참여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으나 도시전설로 보인다. 마라톤 경기의 기원이 페르시아아테네 간의 전투로 페르시아가 패전했던 마라톤 전투라 자국의 역사적 수치를 기리는 경기나 다름없는 관계로 절대 참여하지 않는다고 하고, 그로 인해 1974년 테헤란 아시안 게임에서 마라톤도 제외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란 선수의 마라톤 기록이 공식적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면(이란 육상연맹의 기록) 이는 도시전설로 보인다. 이상하게 한국에서만 널리 알려진 얘기이다. 한국어 위키피디아에는 마라톤 항목과 1974년 아시안 게임 항목에 언급이 있는데 영어 위키피디아에는 특별히 언급이 없다. 다만 1974년 아시안 게임 항목에 마라톤이 아예 없고, Asian Games champions in men's marathon틀에 '1974: not held'라고 적혀있긴 하다. 정확한 건 관계자 확인이 필요할 듯하다.

야구미국이 본고장인 농구와 배구와 달리 여전히 푸대접을 많이 받는 편. 그래도 90년대 와서 인식도 많이 좋아졌으나 인프라 부족 및 여러가지로 약체 수준이다. 종종 이란 야구관계자들이 한국에 와서 둘러보고 가기도 한다.

  1. 호메이니는 축구를 아예 폐지시키고 싶었지만 당시 이슬람혁명을 주도한 핵심인물들이 축구를 좋아했고 골수꼴통 이슬람 학자들마저도 마찬가지 였던지라(.....) 이들의 반대가 너무 심했고, 무엇보다 축구 폐지하면 이란국민들은 당장 팔레비 다시 불러오라고 시위 일으킬꺼다.란 우려가 이들에게 퍼져있어서 호메이니는 축구폐지의 뜻을 접었다.
  2. 98년만 해도 유럽 리그에선 1,2부리그 합쳐서 35명이나 되는 이란 선수들이 유럽 중상위리그(분데스리가터키 쉬페르 리그,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벨기에 주필러 리그같은 리그로 이는 당시 아시아 최다)에서 활약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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