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아시아 축구 연맹(AFC) 회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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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대만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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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라오스
레바논
마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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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몽골
몰디브
미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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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레인
방글라데시
베트남
부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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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리아나 제도
북한
브루나이
사우디아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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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시리아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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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예멘
오만
요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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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이라크
이란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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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일본
중국
카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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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쿠웨이트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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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투르크메니스탄
파키스탄
팔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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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호주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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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تیم ملی فوتبال ایران
정식명칭[1]تیم ملی فوتبال ایران
FIFA 코드IRN
협회이란 축구 협회 (FFIRI)
연맹아시아 축구 연맹 (AFC)
지역연맹중앙아시아 축구 연맹 (CAFA)
감독카를로스 케이로스 (Carlos Queiroz)
주장안드라니크 테이무리안 (Andranik Teymourian)
최다출전자알리 다에이 (Ali Daei) 149경기
최다득점자알리 다에이 (Ali Daei) 109골
홈 구장아자디 스타디움 (Azadi Stadium)
첫 국제경기 출전VS 터키 (1:6 패), 터키 이스탄불 (1950년 5월 28일)
최다 점수차 승리VS (19:0 승), 이란 타브리즈 (2000년 11월 24일)
최다 점수차 패배VS 터키 (1:6 패), 터키 이스탄불 (1950년 5월 28일)
VS 대한민국 (0:5 패), 일본 도쿄 (1958년 5월 28일)
별칭sumak bed (페르시아 양탄자 침대)<:> شیران ایران (이란의 사자), شاهزادگان پارسی (페르시아의 왕자)
ستارگان پارسی (페르시아의 스타), افتخار پارس (페르시아의 영광)
월드컵출전 4회, (1978, 1998, 2006, 2014)
아시안컵출전 13회, 우승 3회 (1968, 1972, 1976)
올림픽출전 3회 (1964, 1972, 1976)
유니폼어웨이
상의하양빨강
하의하양빨강
양말하양빨강

이란축구 국가대표팀을 다루는 항목.

1 개요

오랫동안 "동아시아의 맹주"로써 군림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더불어 오랫동안 "서아시아의 맹주"로써 군림해온 전통의 라이벌 국가로, AFC 전체에서 전통강호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이한 팀 중 하나다. 일본사우디 아라비아는 8, 90년대부터야 두각을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그 이전에는 이스라엘이라크가 아시아의 강호로 인정받았지만, 이스라엘은 AFC에서 추방되었고, 이라크는 계속 전쟁을 치르면서 축구대표팀도 몰락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아시아에서도 가장 폭발적인 공격축구 스타일을 자랑했으나, 그 이후 세대교체가 실패하고 이란 내에서 재능있는 자원들이 말라버림에 따라 축구스타일을 극단적으로 변화시켜 연식이 부족한 젊은 팬들은 이란에 다른 중동팀들처럼 전통적으로 침대축구하는 팀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 반대로 90년대~2000년대 초반의 이란을 생각하던 사람들이 최근의 눈이 썩어 들어가는 이란 대표 경기를 보면 의아할 것이다. 아시아에서 피지컬로 한국을 눌러 버릴수 있는 몇 안되는 팀이라 예전의 폭발적인 공격축구 기조로 돌아간다면 한국 입장에선 큰 위협이다.

이란 축구를 키운 장본인은 팔라비 2세. 당시 이란의 서구화를 주도한 팔라비 2세는 축구가 곧 서구화의 주요 방편이 될 것이라고 보고 투자를 했던 것이다. 물론 팔라비 2세 본인도 축구를 광적으로 많이 좋아해서 국가대표 선수들과 같이 공을 차기도 했다고 한다. 다만 전형적인 충성축구였던 모양이다.#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팔라비 왕조가 무너지면서, 정권을 장악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축구도 서구의 잔재로 규정하고 탄압하려 했지만,[2] 그야말로 축구에 미친 국민들이 이에 불만을 크게 터뜨리고 "축구를 탄압하다니? 차라리 팔라비 왕조 시대가 낫다!"라고 여론이 악화되면서 축구 박해는 그냥 유야무야 넘어가게 되어버렸다. 호메이니 정권의 핵심인사들 중에서도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3]

이란의 축구리그인 이란 프로리그이란-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1990년 전후로 잠시 주춤거린적도 있으나 아시아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수준이 매우 높으며, 국민들의 축구열기도 대단하다. 에스테그랄페르세폴리스 FC의 테헤란 더비는 FIFA에서도 주목할 정도이고, 매경기 10만명 이상이 모여서 응원을 하는 아시아 최대의 규모의 더비다.

월드컵 본선에 4회 진출(1978, 1998, 2006, 2014)했다. 본선 전적은 1승 2무 6패이며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아시아 국가로서는 3번째(북한-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로 월드컵 본선 승리를 챙겼다. 그 1승 대상이 된 나라는 바로 미국.(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2:1 승) 적성국이라 당시 언론에서도 화제였다. 월드컵 조운이 좋지도 않았고[4] 2000년대 중반 세대교체 실패로 크게 기우는 바람에 한국, 일본, 호주, 사우디가 해낸 16강 진출을 아직도 못하고 있다.

1994 FIFA 월드컵 미국때는 최종예선 첫 경기에서 한국에게 0-3으로 크게 졌고 이 패배가 발목을 잡아 결국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다. 이란의 최종성적은 2승 3패였는데 최종전 사우디전에서 패하기 전까지 2승 2패였기때문에 이때 마지막 경기전까지 2장의 티켓을 놓고 북한을 제외한 5개팀이 경합을 하는 형국이었다. 이 결과는 도하의 기적 참조. 80년대까진 국제경기에서 자주 만나지 못했던 두 팀은 이때부터 악연을 이어간다.

겨우 2년 뒤, 1996년 AFC 아시안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정반대로 6-2로 발라버려서 국내 축구팬에게 잊지 못할 아픔을 주기도 했다.[5] 이란의 축구 스타인 알리 다에이, 호다다드 아지지, 카림 바게리, 라만 레자에이, 바히드 하셰미안, 메디 마다비키아, 알리 카리미, 자바드 네쿠남 등은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그러다가 4년뒤인 2000 아시안컵 8강전에서 또 만나서 이번에는 이동국의 골로 2:1로 한국이 이겼는데 당시 이란 관중들은 6:2라는 걸개로 한국을 도발했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때는 플레이오프에서 아일랜드를 만나 원정에서 2-0으로 패했고, 홈에서 1-0으로 승리를 거두는데 그쳐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대신 그 해 열린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월드컵 4강으로 기세등당한 한국을 승부차기에서 꺾고, 결승에서 일본을 물리쳐 금메달을 획득했다.

아시안컵에서는 한일전보다 한국-이란전을 더 높게 치는 경향이 강하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나라는 아시안컵에서 자주 만나며 한 번씩 승리를 주고받으며 팽팽한 호각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1996년 이후 8강에서 승리를 주고 받고 하는 소울메이트가 되었고 2011년 아시안컵까지 5연속 8강에서 만나 조 2위로 올라온 팀이 조 1위로 올라온 팀을 꺾고 4강에 진출, 4강에서 필패 후 3.4위전에서 필승하며 3위를 가져가는 패턴으로 어느쪽이던 피를 본 건 마찬가지인지라 최고성적은 늘 3위였다. 이란이 아시안컵 성적은 대한민국보다 더 좋고 우승횟수도 더 많으며 아시안컵 대회가 열리기만 하면 항상 빠지지 않고 우승후보로 거론될 자격이 있는 팀인데 2007년, 2011년 아시안컵에서 2회 연속으로 8강에서 한국을 만나 4강도 못가고 주저앉았다.

홈에서 비정상적으로 강하기로 유명하다. 이란 대표팀의 홈구장인 아자디 스타디움은 해발 1,273m 고도에 위치해 있어 저지대에서 살다온 원정팀들이 적응에 상당히 애를 먹으며, 무려 10만명이나 수용하는 거대 구장인 주제에 여자들은 출입이 금지[6]되어 있기 때문에 경기장의 분위기가 상당히 구리구리하다. 게다가 잔디상태도 최악이라서 원정팀에겐 지옥이다. 이런 곳이니, 당연히 홈 어드밴티지가 아주 죽여준다. 다만 2004 아테네 올림픽 예선전 이란 대 한국 전에서 이천수의 결승골을 내주어 0-1로 패해 불패신화가 깨진 바 있으며[7] 성인 대표팀은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2009.3.28)에서 패한적이 있다.

아시아 정상권인 성인대표팀과 달리 청소년 대표팀은 상당히 약하다. U-17, U-20, U-23 대표팀 모두 아시아권에서는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한다.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는 1973년 자국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했고 76년 대회까지 4회 연속 우승(다만 3회는 공동우승)했지만[8] 그게 마지막. 70년대를 마지막으로 결승에 올라가지 못했고 2000년 자국대회에서 4위를 차지한게 23년만에 거둔 4강이었으며 이웃 앙숙 이라크가 이 대회 우승하여 쓴 얼굴로 봐야했다. 그리고 14년이 넘도록 4강에 오르지도 못했다.

그나마 AFC U-16 축구 선수권 대회은 2000년 대회에 처음으로 결승에 올라 준우승하고 2008년 우즈베키스탄 대회에서 한국을 제치고 우승했다. 2012년 자국대회에서 3위를 거뒀기에 여기선 좀 하는 편. 청소년 월드컵에선 FIFA U-17 월드컵에선 2009, 2013년 대회에서 16강에 진출하기도 했다.[9] 그러나, FIFA U-20 월드컵은 1977, 2001년에 본선에 올라가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게 전부.

이란 축구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알리 다에이가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란 축구의 모든걸 손에 움켜쥐고 있었고 이로 인해 선수단 세대교체 할 시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은퇴하기 전에는 후배 공격수들에게 자리를 안 내줘 세대교체 실패의 원인이 되었고 은퇴하고 나선 감독이 되어 알리 카리미 같은 에이스들과 불화를 일으켜 성적 하락의 원인이 되었다. 더불어 이란축구협회 중요한 요직도 차지해놓고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 스폰서도 알리 다에이가 직접 만든 회사 유니폼을 쓰게 했으며 선수 선발에도 자신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은 선수들은 철저히 배제했고 다른 이란 축구계 인사들이 한국에도 친숙한 이란계 미국인이자 당시 이란 리그를 제패했던 페르세폴리스 감독이었던 압신 고트비를 감독으로 올리자 자신이 직접 압력을 넣어 고트비를 자르고 감독을 역임했다.

이로 인해 대표팀 성적이 급락하자 비난여론이 폭발하면서 결국 알리 다에이가 물러나고 고트비가 복직하였고, 협회와의 유연한 관계조율로 나쁘지 않은 대표팀을 구성했다. 그리고 2010년 9월 한국과의 평가전에서 1:0으로 승리. 후반 20분 부터 침대축구를 해서 축구 카툰의 칼카나마는 웹툰에서 이란의 3대 전술은 압박, 역습, 침대라고 에둘러 까기도.
(#보러가기)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축구 3, 4위 결정전에서도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3:1로 앞선 상황 후반 접어들면서 역시나 침대축구를 시전하면서 꼴볼견이 재현되나 했으나 지동원의 연속골로 3:4 대역전패를 당했다. 3:3 상황까지는 신나게 드러눕고 아픈 척 하다가 역전당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미친듯이 뛰어다니는 이란 선수들의 모습이 이 날의 백미. 후반 추가시간에는 골키퍼까지 한국 진영에 와서 진상짓을 하다가 선수가 바로 공을 잡고 골대 쪽으로 그냥 골을 차려는 찰나, 이라크 주심이 경기를 끝내줘서 그나마 3:5 캐관광은 면했다. 그리고 고트비가 사임했다. 사임하기 전 2014 월드컵 3차예선에선 3승 2무로 마지막 6차전 상관없이 최종예선행을 확정지었다.

감독을 교체하고 돌입한 월드컵 최종예선에선 1차전 우즈베키스탄 원정에서 1:0으로 승리해 우즈벡 감독을 모가지시켰다. 하지만 2차전 안방경기에서 카타르에게 0:0으로 비기며 불안감을 주더니만 3차전 레바논 원정에서 0-1로 패해 한국과 같은 레바논 쇼크(항목 참조)를 당한다. 그리하여 4차전 한국전이 굉장히 중요해졌다. 2014 월드컵 예선 4차전에서 지옥의 이란 원정과 기성용 체제 이후 경기 안풀릴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 한국팀의 부진으로 1명이 퇴장당하고 감독까지 퇴장당하는 악조건을 이겨내고 1:0으로 승리했다.

이란 안방에서 열린 5차전 예선전 우즈베키스탄 경기는 0-1로 패하면서 조예선 3위로 추락했으나 2013년 6월 4일 카타르 원정에서 구차네자드의 결승골로 1-0으로 이긴 이후 레자 구차네자드의 연속 득점포를 앞세워 레바논, 한국을 차례로 꺾으며 3연승을 질주하며 극적으로 본선에 합류했다. 특히 한국한테는 15차례의 슈팅을 허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끈끈한 압박으로 실점을 허용하지 않은 다음 후반 15분 김영권의 클리어링 미스를 구차네자드가 놓치지 않고 연결해 조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안겼다. 경기가 끝난 직후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이 최강희 감독에게 주먹감자를 날려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브라질 월드컵에선 F조에 속해 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맞붙게 되었다. 과거에 비해선 해볼만한 조편성이라 이란 내에선 16강에 대한 열망을 강하게 드러냈으나 나이지리아전에서 무승부에 그치고 아르헨티나전에서 극단적인 텐백 전술로 90분을 버텼으나 추가시간 1분을 남기고 리오넬 메시에게 결승골을 허용해 패했다. 마지막 보스니아전까지 1-3으로 패하면서 탈락하며 일본, 한국과 사이좋게 탈락했다.

2014년 9월 15일에 벌어진 인천 아시안 게임 조예선에서는 베트남에게 1:4로 지는 이변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란이 압도했음에도 슈팅이 15번 날려 그마저도 패널티골로 1골 들어간 거랑 달리 베트남은 5번 유효슈팅을 날려 들어간 탓.[10] 여기서 끝나지 않고 키르키스스탄과 2차전에서 무를 캐면서 광탈 위기를 맞게 되었다. 결국 키르기스스탄이 0-1로 베트남에게 지면서 골득실로 밀려 아시안 게임 16강조차 가지 못하고 탈락했다.

2014년 11월 18일에 한국과의 평가전에서 1-0으로 승리했다. 이걸로 한국의 테헤란 원정 전적은 2무 4패가 되었다.

2014년 10월에 열린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태국에게 1-2, 예멘에게 0-1로 패하며 남은 개최국이자 조 1위인 미얀마전 승패와 상관없이 여기서도 광탈했다. 2012년에 열린 U-19 아랍에미리트 대회에서는 8강전에서 한국에게 1-4로 처발리긴 해도 조예선에서 일본을 2-0으로 이기며 조 1위를 차지하던 것과는 대조적.

2015년 3월 선수 차출 문제로 케이로스 감독이 자진 사퇴를 선언했다. 아시안컵 8강 탈락 후, 노장 선수들의 은퇴와 불안한 세대교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란 축협 입장에선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현재 세금 문제로 잡아 놓고 있는 중인데 과연 어찌될지... 결국 세금에 굴복한(...) 케이로스 감독이 사퇴를 번복했다. 하지만 네쿠남의 은퇴 공백을 어떻게 메워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남았다. 다행인 점은 2차 예선 상대가 고만고만 하기에 정비하고 테스트해볼 시간은 충분하다는 점이다.

2015년 러시아 월드컵 2차 예선에서 투르크메니스탄과 비기면서 안좋은 쪽으로 화제가 되었다. 하짐나 그 이후 무패 행진을 거두며 최종예선에 진출했고 최종예선에선 한국을 아자디에서 실력으로 가볍게 눌러버리고 1위로 순항중이다.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 부임이후 해외거주 이란 교포선수들이 자주 대표팀에 들어오고있다. 레자 구차네자드, 아쉬칸 데자가, 다니엘 다바리, 스티븐 베이타슈르 가 대표적. 하지만 구차네자드, 데자가 빼고는 뚜렷한 활약을 펼치는 선수는 없고, 일부 교포출신들은 어렸을때부터 해외에서 살거나 아예 그쪽에서 태어난경우가 많아 문화적 차이[11], 종교적 차이[12]에 심할경우는 아예 모국어인 페르시아어도 모르는경우가 있어서 기존 이란 출신 선수들과 갈등도 있는 편이다.




이란은 아시아에서 마지막으로 아시아치타가 남아있는 나라로, 이란의 축구대표팀은 보호캠페인에 동참하자는 취지에서 그들의 유니폼에 아시아치타를 그려넣었다.

여자 축구대표팀도 있는데, 히잡을 쓰고 하의를 7부 바지로 입는 등, 노출을 최대한 막는 차림블래터[13]가 이 유니폼을 싫어합니다.을 하고서 경기에 나서지만, 11명 선발 중에 4명이 남성으로 발각났다.(...)# 저 중에 10번 선수가 유달리 체격이 좋고 인상이 늠름해서(...) 네티즌들이 양심도 없다고 비난을 했는데, 10번은 여자가 맞았다고 한다.(...)

2 역대 전적

2.1 FIFA 월드컵

역대 월드컵 전적 순위 : 53위

년도결과순위승점경기득점실점
1930 우루과이 월드컵불참
1934 이탈리아 월드컵불참
1938 프랑스 월드컵불참
1950 브라질 월드컵불참
1954 스위스 월드컵불참
1958 스웨덴 월드컵불참
1962 칠레 월드컵불참
1966 잉글랜드 월드컵불참
1970 멕시코 월드컵불참
1974 서독 월드컵예선 탈락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조별리그14위1301228
1982 스페인 월드컵기권
1986 멕시코 월드컵실격[14]
1990 이탈리아 월드컵예선 탈락
1994 미국 월드컵예선 탈락
1998 프랑스 월드컵조별리그[15]20위3310224
2002 한일 월드컵예선 탈락
2006 독일 월드컵조별리그25위1301226
2010 남아공 월드컵예선 탈락
2014 브라질 월드컵조별리그28위1301214
2018 러시아 월드컵?????????
2022 카타르 월드컵?????????
합계본선진출 4회4/20[16]612138722

월드컵 진출 횟수 네 번, 최고성적 조별리그 1승 2패, 총성적 1승 3무 8패로 월드컵 랭킹 53위에 올라와 있다. 중동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가장 실력이 뛰어난 쌍두마차 역할을 해온 나라로서, 탄탄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힘이 있고 역동적인 축구를 구사했던 나라였으나 2000년대 중후반 슬럼프를 겪은 이후로는 줄곧 수비와 침대에 의존하고 있다.

월드컵 랭킹이 높진 않은데 진출 횟수에 비해서도 낮은 편이다. 아시아에서의 위상과는 달리 단 한 번도 조별리그를 통과해본 적이 없는 나라인데, 조별리그가 최고성적인 나라들 중에서는 스코틀랜드여긴 여덟번 나가서 한번도 못오른 넘사벽, 코트디부아르, 남아프리카공화국, 튀니지 다음으로 순위가 높다. 12경기에서 승리를 겨우 한번 했는데, 그들의 숙적 미국을 상대로 2:1 승리를 거둔 것이 월드컵에서의 유일한 승리다. 그래도 한국보다는 월드컵 첫승이 빨랐다.

다른 나라들과의 상대전적은 독일 1패(1998), 아르헨티나 1패(2014), 네덜란드 1패(1978), 세르비아 1패(1998), 멕시코 1패(2006), 포르투갈 1패(2006), 미국 1승(1998), 스코틀랜드 1무(1978), 나이지리아 1무(2014), 페루 1패(1978),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1패(2014), 앙골라 1무(2006)이다.

대륙별 상대전적은 유럽 1무 6패, 남미 2패, 북중미 1승, 아프리카 2무를 기록 중이다.

한경기 최다득점 기록은 1998년 조별리그 미국전 2:1 승리로 두 골을 넣었다. 하지만 이 경기 외에 한경기에서 두 골 이상 넣어본 적이 없다. 최다실점 기록은 1978년 조별리그 페루전 1:4 패배다.

처음으로 월드컵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으로, 최전성기였던 네덜란드 조에 쿠비야스가 버티던 남미의 강호 페루, 전 대회에서 1승 2무를 하고도 조 3위로 미끄러진 스코틀랜드와 묶여 험난한 신고식을 치뤘다. 똑같이 탈락한 스코틀랜드전만 무재배로 선방했을 뿐 나머지 두 팀에게 3점차로 패하면서, 아시안컵 3연속 우승의 아시아 챔피언으로서의 자존심은 와르르 무너지고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그 뒤로 호메이니 혁명, 이란-이라크 전쟁을 거치면서 1980년대에는 두 대회 연속 참가를 하지 못했고, 12년만에 복귀한 1990년 대회 예선에서는 중국에 밀려 최종예선 진출조차 실패하였다. 다음 대회에선 최종예선에 오르기는 했지만 2승 3패, 최종 5위의 성적으로 승점 자판기 북한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과의 경쟁에 모두 밀려 광탈했다.

1998년 대회에선 20여년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사우디에 밀려 조 2위로 최종예선을 마감해, 일본과의 플레이오프에 패하면서 오세아니아와의 플레이오프로 떨어져 전망이 어두워졌다. 그렇게 떨어지나 싶었는데 호주와의 플레이오프에서 홈 1:1, 원정 2:2로 무를 캐면서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간신히 본선에 올랐다. 특히 호주 원정에서 0:2로 일리다가 후반 막바지 두 골을 몰아넣은 것은 정말로 극적이었다.

20년만의 본선 무대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독일, 유고슬라비아의 2강 체제가 너무 뚜렷해 사실상 16강을 넘보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고, 정치적, 문화적으로 적대적인 미국을 상대로 2:1로 승리하면서 당 대회 아시아 국가들 중 유일하게 1승을 챙겨가며 본전 이상의 성과는 거두었다. 특히 미국을 이겼기 때문에 조별리그 광탈에도 불구하고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2002년 예선에서는 아랍연맹과의 대립 + 중국을 진출시키기 위한 FIFA의 고의적인 편애로 인해 최대의 희생양이 되었다. 최종예선에서 미국 못지않게 감정이 험악한 라이벌 사우디와 같은 조가 된 것이다. 전 대회 본선에 진출했음에도 톱시드는 중국이 가져가고, 옆조는 월드컵 본선 경험이 전무한 팀들끼리 모인 꿀조 중의 꿀조가 되면서 이란은 사우디와 피튀기는 경쟁을 해야했다. 사우디와의 전적에서 1승 1무로 앞섰지만 약체 바레인에게 1무 1패로 발목이 잡히면서 사우디와 승점 1점차로 조 2위로 마감, 유럽의 아일랜드와 플레이오프를 벌였다. 홈 1:0, 원정 0:2로 골득실에 밀려 진출에 실패했다. 이 무렵 이란의 전력은 최고조에 올랐고 괌을 20:0으로 이기는 등의 대활약을 하던 시기였기에, FIFA와 AFC의 동반 농간의 희생자로 안타깝게 월드컵을 TV로 지켜봐야 했다.

다음 대회인 2006년부터는 전망이 밝아졌다. 아시아 쿼터가 4.5장으로 확대되어 조 2위까지는 본선직행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번에도 일본에 밀려 3회 연속 조 2위로 최종예선을 마쳤지만 본선 직행에 성공, 8년만에 본선무대를 밟았다. 조편성도 매우 좋았다. 톱시드 중 가장 약한 멕시코, 1966년 이후 40년간 부진해왔던 포르투갈,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에 오른 앙골라와 한 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르투갈과 멕시코의 벽을 넘지 못하고 1무 2패 조 최하위로 떨어졌다. 멕시코전의 경우 8년전 한국이 상대했을 때와 비슷한 양상에 똑같은 스코어로 졌고, 최약체 앙골라를 상대로도 경기 내용에 밀리며 무승부로 끝내 이란 내에서의 비난 여론이 거셌다.

이 이후로 국대의 주축 선수들이 노쇠화로 대거 은퇴하면서 사상 최악의 침체기를 맞았다. 2010년에는 한국, 사우디, 북한, 아랍에미리트라는 최악의 조에 속하는 바람에 2승 5무 1패 조 4위로 탈락했다. 테헤란 홈경기에서 숙적 사우디에 패하는 굴욕까지 얻었고, 결국 이란은 팀컬러를 대대적으로 바꾸기에 이른다.

화끈한 공격축구를 버리고 극단적인 수비전략으로 선회, 침대축구까지 곁들이며 어중간한 약팀보다 한국과 같은 강호들을 잘 잡아내며 2014년 본선에 다시 올랐다, 레바논, 우즈벡에 패하고 카타르와 비기는 부진함으로 막판까지 탈락이 유력했지만 마지막 3경기를 모두 잡아내며 사상 최초로 최종예선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특히 마지막 한국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조 3위로 미끄러지는 상황이었는데, 거기다 원정경기였던 한국을 상대로 약점을 붙들고 늘어지며 1:0으로 승리하며 극적인 역전을 일구어냈다.

본선에서도 메시가 활약하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후반 막판까지 0:0으로 선방하는 등 놀라운 활약을 보이는 듯했으나 결국 1무 2패로 또다시 광탈했다. 자신들이 평가전에서 4승 1무로 앞서있던 보스니아에게 1:3으로 패하기까지 하면서 극단적인 수비전략으로만은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증명해야만 했다.

2.2 올림픽

  • 1976년 대회 8강

2.3 AFC 아시안컵

AFC 아시안컵 대회 순위 : 1위

년도결과순위경기득점실점승점
홍콩 1956기권
대한민국 1960예선 탈락
이스라엘 1964기권
이란 1968결선리그[17]우승440011212
태국 1972우승1위550012415
이란 1976우승1위440013012
쿠웨이트 19804강3위632116611
싱가포르 19844강4위62408310
카타르 19884강3위6222348
일본 1992조별리그5위3111214
아랍에미리트 19964강3위632114611
레바논 20008강5위4211737
중국 20044강3위633014812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20078강5위4220638
카타르 20118강5위4301629
호주 20158강6위43107310
아랍에미리트 2019?????????
합계우승(3회)13/16623718711945129

아시안컵에서 유일한 3연속 우승, 14회 연속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이란은 역대 아시안컵 전적 1위의 경지에 올라와 있다. 총 네번을 우승한 일본에게 우승컵 횟수는 밀리지만 온전히 획득 승점으로만 순위를 판단하는 아시안컵에서는 출전 횟수가 한국과 함께 공동 1위이기에 승점에서 따라올 만한 나라가 한국 외에는 없다.

그러나 이란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초반의 3연속 우승 이후로는 계속 부진하고 있다. 1979년 이후 10년간 혁명과 전쟁 등의 사회혼란을 겪으면서 아시안컵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고, 1990년대부터는 한국과 5연속 8강에서 만나는 징크스가 생겨 여기서 발목이 잡혀 잘해야 4강에 그쳤다. 특히 최근 세 대회에서 모두 8강에 주저앉으면서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다.

다른 나라들과의 상대전적은 한국 3승 1무 3패(1972, 1988, 1996, 2000, 2004, 2007, 2011), 일본 2무 1패(1988, 1992, 2004), 중국 2승 4무(1976, 1980, 1984, 1988, 2004, 2007), 사우디아라비아 1승 2무 1패(1984, 1988, 1996(2번)), 쿠웨이트 1승 2무 1패(1976, 1980, 1984, 1996), 이라크 4승 1무 1패(1972, 1976, 1996, 2000, 2011, 2015), 아랍에미리트 4승 1무(1984, 1988, 1992, 2011, 2015), 우즈베키스탄 1승(2007), 카타르 2승(1988, 2015), 이스라엘 1승(1968), 시리아 1무(1980), 바레인 2승(2004, 2015), 태국 3승 1무(1972, 1996, 2000, 2004), 북한 4승(1980(2번), 1992, 2011), 오만 1무(2004), 인도 1무(1984), 미얀마 1승(1968), 말레이시아 1승(2007), 대만 1승(1968), 캄보디아 2승(1972(2번)), 싱가포르 1무(1984), 홍콩 1승(1968), 레바논 1승(2000), 남예멘 1승(1976), 방글라데시 1승(1980)이다.

지역별 상대전적은 동북아시아 11승 7무 4패, 서아시아 16승 6무 2패, 중앙아시아 1승, 동남아시아 7승 2무, 남아시아 1승 1무를 기록중이다.

2.4 아시안 게임

2.5 청소년 대표팀

A대표팀에 비해 상당히 약하다. 아시아 지역 예선조차 뚫지 못해 세계 대회에 번번히 나가지 못하고 있다.

3 주요 선수

3.1 현역 선수

안드라니크 테이무리안
아쉬칸 데자가
레자 구차네자드
알리레자 자한바크슈
사르다르 아즈문

3.2 은퇴한 선수

자바드 네쿠남
알리 카리미
메디 마다비키아
바히드 하셰미안
라만 레자에이
카림 바게리
호다다드 아지지

알리 다에이
  1. 페르시아어
  2.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들은 축구도 가차없이 탄압해 축구장을 공개처형장으로 활용했다.
  3. 호메이니의 축구금지령을 알고 순간 호메이니를 총으로 쏴버릴까 고민하신 사람도 있었다(....)
  4. 78년에는 네덜란드와 쿠비야스가 버틴 전성기 페루, 98년에는 독일과 유고슬라비아, 2006년에는 포르투갈과 멕시코, 2014년에는 아르헨티나와 나이지리아 였다.
  5. 다에이 4골, 아지지 1골, 바게리 1골. 참고로 바게리는 이 날의 골이 국가대표 첫 골이었다.
  6. 허용을 놓고 자주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1990년대 개혁파인 하타미 대통령 시절에는 잠시 허용되기도 했었다. 1998년 월드컵 최종예선때 여성들의 축구장 출입이 허용됐었는데, 그때 서방언론에서 이란이 개혁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설레발을 많이 쳤다. 이례적으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축구 아시아 지역 예선 한국전과 2006년 독일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일본전에는 피부를 최대한 노출시키지 않는 한도 내에서 여성 원정 응원단의 입장이 일시적으로 허용되기도 했었다. 대신 이란 여자축구 경기에는 남자들이 출입금지된다.
  7. 이 승리도 무려 40여 년 만에 거둔 것이며, 한국 A대표팀는 아직까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있다.
  8. 12회 우승의 한국, 6회 우승의 이스라엘에 이어 3번째로 우승횟수가 많다.
  9. 2009년 대회에선 네덜란드를 이기고 16강에 올랐으나 우루과이에게 패했다.
  10. 알리 다에이의 전횡도 있지만, 이란의 유소년 축구 인재는 현재 시원찮은 상황이다. 이게 국대에도 영향을 미쳐서 케이로스 감독이 직접 유럽을 돌아다니며 이란계 선수를 찾아 귀화시키기도 했다.
  11. 이란의 교육과는 영 다른 교육을 받다보니.. 그리고 일부 선수중에는 과거 팔라비 왕조시절 중산층 이상 계층들이 이슬람 혁명때문에 해외로 대거 망명한 사람들의 2세인지라..
  12. 이란이라고해서 무조건 전부 무슬림은 아니다. 일부 선수중에는 가톨릭, 정교신자도 있다. 참고로 현 대표팀 주장인 안드라니크 테이무리안은 이란 국가대표 역사상 최초로 비 이슬람(테이무리안은 아르메니아 정교)출신 최초로 주장에 오른 케이스.
  13. 이 인간은 여자 축구 선수들의 핫팬츠 착용을 열렬히 지지한 적이 있다.(...) 그런데 2002년 카메룬 남자대표팀이 민소매 유니폼을 입고 출전하려 하자 보기 안 좋다며 깠다.(...)
  14. 이라크와의 전쟁으로 인해 홈경기를 제3국에서 치르기로 권유받았지만 이를 거부함으로서 실격당했다.
  15. 지역예선에서 조2위를 차지하고 2위 플레이오프에서 일본에 패, 호주와의 대륙 플레이오프에서 원정 다득점에 앞서 진출. 조예선에서 원수 미국을 잡으며 이란 역사상 처음이자 유일한 승리를 가져감.
  16. 월드컵 본선 출전 비율
  17. 이 대회는 5개국이 풀리그로 진행하는 대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