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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표준F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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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라디오 김태원입니다 (20:10) | 강타의 별이 빛나는 밤에(22:05) | 박정아의 달빛낙원(00:05)[2] | |||
이윤석 신봉선의 좋은 주말 (20:10) |
MBC 표준FM에서 오후 10시부터 0시 자정까지 H.O.T 출신 싱어송라이터 강타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
오남열 아나운서부터 현재 25대 DJ인 강타에 이르기까지 47년을 이어온 MBC 표준FM의 간판 프로그램.
별밤 치면 아직도 윤디가 우선순위로 검색된다(...)
응답하라 1988에서 많이 나온다...
"지금은 별이 빛나는 밤."[3]
1 소개
1969년 3월 17일에 처음 편성. 무려 47년째 방송중인 MBC 표준FM의 최장수 프로그램이다. 라디오계 큰형님 1996년 12월에 10000회(!)를 돌파했을 정도니. MBC 라디오가 AM 전용에서 표준FM 동시송출로 바뀐 게 1987년(서울)에서 1999년(전국송출) 동안이니까 사실상 MBC 라디오의 역사 그 자체라고 봐도 좋은 레벨. 한마디로 MBC 라디오의 한 역사를 쓰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 시간대 지상파 표준 FM 방송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청소년층, 젊은층을 대상으로 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별밤을 방송하는 DJ를 별밤지기라고 한다. 이는 이문세 DJ 시절 한 청취자가 '등대지기'라는 말에서 창안하여 엽서로 제안한 것으로 이문세가 수용한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상상이 잘 안 가지만, 처음 편성 당시에는 청소년 교양진작 차원의 명사와의 대담 프로그램이었다고 하며, 초대 별밤지기는 오남열 전 아나운서. 2대 별밤지기는 장학퀴즈 진행자(1973~1990)로도 유명했던 차인태 전 경기대학교 교수.
3대 별밤지기로 당시부터 유명 DJ였던 이종환이 들어서면서 음악방송으로 전환했다. 특히 유명한 별밤지기로는 김기덕과 이문세가 있으며, 특히 이문세는 무려 11년[4] 동안 별밤지기로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적어도 30대 초반 위로는 별밤지기라고 하면 우선 이문세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고 그 자신의 애착도 상당하다.[5][6] 그 외에 별밤지기를 거쳐간 사람 중 유명인으로는 조영남, 서세원, 이수만, 이적, 이휘재 등이 있다.[7] 이하 역대 별밤지기는 하단에 기재돼 있으니 참조하시길.
옛날이나 지금이나 젊은 층의 청취율은 본좌급에 속한다. 지금이야 인터넷 등의 매체가 확산되어 과거의 영광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인터넷을 통한 다시듣기가 없던 이문세/이적 시절에는 테이프로 녹음한 방송 내용을 리어카에서 팔 정도였다. 흠좀무.
그리고 매해 여름 공개방송을 했는데,특별히 추첨된 시청자들을 초대하여 1박 2일동안 즐기며 지내는 여름캠프와 같이 라디오 중계도 했다. 1991년 공개방송에서는 이제는 고인이 된 신해철을 비롯하여 가수 이상우나 이승환을 비롯한 당시 인기 가수들이 여럿 나와 웃기는 토크쇼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팝송 제목 대기에서 이경규가 <The World Playing>이라는 제목을 말하였기에 모두 "처음 듣는데 그거 대체 무슨 뜻이죠?" 라고 아리송해하자 "이 세상 놀다보면."이라고 엉터리 노래라고 답변하여 아주 폭소가 터지기도 했었다...
더불어 여기서 여고생 나레이터로 활동하던 여고생이 바로 성우 윤미나 고교시절! 이 당시, 430:1 이라는 어머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나레이터가 됐다고 한다. 여하튼 이 당시 나레이터로 활동하던 게 인연이 된 윤미나는 성우가 아닌...바로 아나운서를 꿈꿨다고 한다. 자세한 건 윤미나 문서를 참고할 것. 참조로 그 선배 여고생 나레이터는 KBS 소속의 김희선과 MBC 소속의 김아영. 결국 그 3명 모두 성우로 방송계에 정식 데뷔가 된 셈.
전 별밤지기인 박경림과 옥주현은 별밤을 통해 먼저 인지도를 쌓고 연예계에 데뷔하여 별밤지기가 된 케이스다. 박경림은 이문세가 별밤지기일 시절 '돌발소녀'라는 기믹으로 등장해 이름을 차츰 알리기 시작했고, 옥주현은 별밤의 장수 꼭지 중 하나인 '별밤 뽐내기'의 연장원 출신으로 가창력을 인정받아 대성기획에 스카웃되어 핑클의 메인보컬이 되었다. 그 외에도 이기찬, 리아, 이수영, 신용재, 려욱 등이 "별밤 뽐내기"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21세기에 들어서는 그럴 일이 별로 없으나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무명이었던 연예인들이 별밤에서 인지도를 쌓으며 인기를 얻은 케이스가 많다. 예를 들면 80년대 중후반의 이경규[8][9]라든지, 컬트삼총사[10]라든지.
여담으로 이 프로그램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낸 동명의 작품도 있다. 출연은 최수종,하희라. 이들은 지금은 부부
2 요일별 코너[11]
3 특징
오프닝곡은 전 별밤지기 김기덕이 직접 고른 Frank Pourcel의 Merci Cherie를 쓰고 있다. 제목보다 멜로디가 익숙한 오프닝곡이다.들으러가기
40여년 동안 이 곡을 쓰고 있는데 2000년대 초 이 곡을 리메이크한 음악을 오프닝으로 썼다가 다시 원곡으로 돌아온 에피소드가 있다. 한편, 지역국별로 다르나 충주MBC에서 90년대 중반에 이 곡을 편곡한 것을 오프닝으로 쓰다가, 별밤 분위기가 안 난다는 항의가 들어와 다시 원곡으로 바꿨다고. 부산MBC 별밤의 경우, 1990년대 후반에 El Bosco 소년 합창단의 Nirvana라는 곡 앞부분을 오프닝으로 이용했다. 대전MBC는 2004년~2005년경 오프닝곡으로 스티브 바라캇의 Rainbow Bridge를 썼다. [12]
별밤의 리즈시절이던 이문세의 별밤 시기에는 유독 독특하고 유명한 에피소드가 많다. 그만큼 이 시절의 별밤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초절정 인기 프로그램이었다는 증거. 밤의 교육부 장관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게 아니다.
일단 별밤지기 이문세가 직접 부른 2부 오프닝 로고송이 있었다. 1부 오프닝곡은 앞서 언급한 Merci Cherie였고 11시에 시작되는 2부 오프닝 때 이 노래가 나왔다. 히든싱어와 놀러와 별밤 40주년 특집 편에서 이 노래를 직접 부르기도 했다.
이 노래를 실제 라디오에서 들어봤다면 그들은 2015년 현재 30~40대로 성장한 이들이다.[13] 들어보자. 가사는 이렇다.
창밖의 별들도 외로워~ 노래 부르는 밤~다정스런 그대와 얘기 나누고 싶어요.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별밤 방송 중 2부에 생일축하 사연이 나올 때면 별도의 축하곡이 있었다. 이것도 이문세가 직접 불러준 뒤에 생일축하 사연을 소개하는 형식이었는데... 이 노래가 실제 앨범에 들어가기도 했다. 2002년 발매된 14집의 '추카해요'가 바로 그 곡이다. 가사 중간에도 '별이 빛나는 이 밤에'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 노래까지도 라디오에서 실제 들어 본 경험이 있다면 당신은 진정한 별밤가족이다!!
별밤의 상징 중 하나는 매주 일요일에 진행하던 공개방송이었다. 이 역시 이문세가 별밤지기를 맡던 시절에 가장 흥했으며 이문세 본인도 공개방송 현장에서 별밤 공개방송이 가장 애착이 가는 코너라고 회상한 바 있다. 이 당시 공개방송은 정동 MBC 라디오극장[14]에서 주로 진행됐다.
또 별밤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쨈'잼콘서트'다. 당대 음악성 좋은 뮤지션들이 함께하는 콘서트로 이 역시 이문세가 별밤지기를 할 당시부터 시작했다. 원래 1989년에 별밤 20주년 기념 특별 콘서트로 기획된 일회성 콘서트였지만,[15] 이게 당연히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 2000년까지 지속되었던 것. 그러나 2000년을 마지막으로 잠시 자취를 감추다 윤하가 별밤지기를 맡은 2011년에 장충체육관에서 잼콘서트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2011년 11월 25일 잼콘서트 'Reborn'은 잼밴드 멤버인 별밤지기 윤하, 김종서, 노민혁(애쉬그레이), 스윗소로우, 다비치, 성훈(브라운아이드소울), 박원(원모어찬스}, 알리, 일락의 활약 아래 3시간동안 진행되었다. 게스트로는 원더걸스와 소녀시대, 블락비, 킹스턴 루디스카, 포맨이 왔었지만.. 진짜는 바로 심수봉! 자신의 히트곡인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와 여자이니까를 불렀고, 가장 압권은 블락비와 함께 부른 에픽하이의 우산! 그리고 드럼 솔로도 훌륭했다.[16]
별밤을 다시 듣거나 인터넷, 스마트폰 어플을 통해서 듣기 위해서는 'MBC 미니'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된다.
그리고 생방송 도중 DJ에게 하고싶은 말이나 사연을 보내고 싶다면 휴대폰 문자를 이용할 수 있다.[17]
4 지역방송
별이 빛나는 밤에 시간대는 오래 전부터 지역방송 시간대여서 지방에서 주말 공개 방송이나 특집 방송을 제외하면 서울 별밤 듣기가 거의 불가능했었다.[18] 그러다가 2000년대 초반부터 서서히 지역 별밤이 축소, 중지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2014년 9월 21일에 강릉MBC와 삼척MBC를 마지막으로 모든 지역별 자체 방송 중지되고 그 다음날인 9월 22일부터 전국 방송으로 전환되었다.
4.1 지역별 자체방송 중지 시기
MBC경남[19]을 제외한 모든 지역 계열사에서는 2000년대 중반까지 자체적으로 방송되었다. MBC경남만 유일하게 본사 릴레이 방송으로, 2000년대초 당시 옥주현이 진행하던 별밤을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가청권이었다.
- 부산MBC - 2011년 2월 27일
- 대구MBC - 2008년 가을[20]
- 광주MBC - 2014년 4월 13일[21]
- 춘천MBC - 2012년 10월
- 원주MBC - 2013년 10월
- MBC강원영동 강릉본부 - 2014년 9월 21일[22]
- MBC강원영동 삼척본부 - 2014년 9월 21일[23]
- 청주MBC - 2013년 10월[24][25]
- 충주MBC - 2013년 10월
- 목포MBC - 2011년 11월
- 여수MBC - 2014년 4월 13일[26][27]
- 포항MBC - 2010년 10월 31일
- 안동MBC - 2010년 11월
- 울산MBC - 2012년 10월[28]
- MBC경남 창원본부 - 2000년[29]
- MBC경남 진주본부 - 2000년[30]
5 역대 별밤지기
- 1대 - 오남열
- 2대 - 차인태
- 3대 - 이종환
- 4대 - 박원웅
- 5대 - 안병욱
- 6대 - 조영남
- 7대 - 오혜령
- 8대 - 고영수
- 9대 - 이필원
- 10대 - 김기덕
- 11대 - 문진호
- 12대 - 이수만[31]
- 13대 - 서세원
- 14대 - 이문세
- 15대 - 이적
- 16대 - 이휘재
- 17대 - 박광현
- 18대 - 정성화, 박희진 [32]
- 19대 - 옥주현
- 20대 - 박정아
- 21대 - 박경림 [33]
- 22대 - 윤하 [34]
- 23대 - 허경환 [35]
- 24대 - 백지영 [36]
- 25대 - 강타 [37]
6 경쟁 프로그램
- 김현빈의 해피타임 (인터넷 라디오 FM2U, http://mbcradio.saycast.com/, 토요일 밤 11:00~12:00)
- 강서은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38] (KBS 해피FM, 106.1MHz(서울/경기))
- 최백호의 낭만시대 (SBS 러브FM, 103.5MHz(서울/경기))
- 조은형의 가요세상 (wbs FM)
- 슈퍼주니어의 키스 더 라디오 (KBS 쿨FM, 89.1MHz(서울/경기))
- 테이의 꿈꾸는 라디오 (MBC FM4U, 91.9MHz(서울/경기))
- 케이윌의 대단한 라디오 (SBS 파워FM, 107.7MHz(수도권))
- 허윤희의 꿈과 음악 사이에 (CBS 음악FM, 93.9MHz(서울))
- 월드 투데이 (KBS 제1라디오, 97.3MHz(서울/경기))
- 이주향의 인문학 산책 (KBS 제1라디오, 97.3MHz(서울/경기))
- ↑ 8시 한정 10분 진행.
- ↑ 주말 한정 00:00 정각부터 방송 시작.
- ↑ 오프닝멘트이며, 짧막한 이야기 후 "지금은 별이 빛나는 밤"으로 마무리된다.
- ↑ 1996년 11월 어느 신문에 의하면 총 4000회를 진행했다고 한다. 당시로 치자면 절반 가까이 되는 횟수를 진행했다는 말이 된다. 정기 휴가를 뺀 긴 공백기라 해도 결혼 때문에 비웠던게 거의 전부였을 정도.
- ↑ 고별방송 중 한 여고생과의 전화연결에서 여고생이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이문세도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별밤지기를 물려받았던 이적이 굉장히 부담스러워했다고.
- ↑ 밤의 문교부장관으로 불릴 정도로 청소년층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받았던 이문세가 떠나면서 MBC는 신승훈, 김건모 등 당대 최고의 톱스타에 심지어는 은퇴하고 미국에 은둔 중이던 서태지까지 고민하다가 결국 삼고초려 끝에 이적을 영입한다.
- ↑ 지역 방송까지 따지자면, 배기완도 춘천MBC 재직 시절 별밤지기를 한 적이 있다.
- ↑ 가끔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80년대 말 녹음된 방송내용을 들으면 이경규가 한 꼭지의 패널(공개방송)로 등장했던 게 나온다. 80년대 중후반 당시 이경규는 인지도가 약간 안습인 코미디언이었다. 당시 일주일에 한번 녹음 방송하던 '별밤 공개방송'의 위상은 대단하여, 현재의 라디오방송과는 다르게 '조용필'부터'서태지와아이들'까지 최고의 인기가수들이 나오는, 가장 영향력 있는 꼭지였다. 별밤이 각 지역MBC 자체 방송을 하던 시절에도 공개방송만은 전국 송출이었을 정도. 개그맨 한 명이 나와 공개방송시 보조 진행을 했는데(이경규 전에 이성미등), 이때 인기가 그만그만하던 이경규가 특유의 입담(그때의 컨셉은 '돈만 밝히는 이경규')으로 청소년들에게 이름을 많이 알렸고, 이경규가 지금까지 장수하는 시작은 몰래카메라 등이 아니라 '별밤'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당시 별밤의 위상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 ↑ 1990년대 초반까지 코미디의 대세는 대본에 따라 철저한 연습 끝에 비공개 녹화해서 방송하는 꽁트였다. 꽁트연기로 심형래, 김형곤, 최양락 등이 당시 최고의 코미디언으로 군림했을 때 이경규는 부족한 연기력으로 변방을 떠돌았다. 이때 연기가 필요없는 라디오 공개방송에서의 즉흥토크로 대박을 치면서 뜨기 시작한다. 매주 월요일이면 전날 방송된 별밤 공개방송에서 이경규 토크부문만 따로 녹음해서 길거리 리어카에서 팔 정도가 된다. 이때부터 MBC일밤에서 주병진과 함께 토크 코미디 전성시대를 열게 된다.
- ↑ 이적이 별밤지기를 하던 1996~1997년에 개그강의를 하는 듯한 컨셉인 '컬트 대학교'란 고정코너를 맡았는데, 그때 이미 지금의 컬투쇼 뺨치는 꽁트를 해냈다.
컬투쇼의 베타 테스트경규 옹의 포스에는 약간 밀리긴 했지만, '컬트삼총사의 컬트 대학교' 테이프 역시 리어카에서 팔리곤 했다. - ↑ MBC '별이 빛나는 밤에' 사이트 참조
- ↑ 이 당시 대전MBC 별밤은 현재도 표준FM에서 새벽 2시대 로컬방송을 진행하고, 각종 캠페인/영상 등에 나레이션을 넣고 있는 박경량씨가 맡았다. 박경량씨 톤이 차분한 편이라 이 당시 별밤에 나오는 노래들도 대체적으로 차분한 편이었다. 이는 2005년 가을개편으로 FM 오후 4시대 <가요산책>을 진행하던 박진희 아나운서(현 TBN DJ)가 들어오면서, 원래 시그널로 돌아왔고 청소년 참여도 많아지며 분위기가 괜찮아졌다. 그리고 박진희 아나운서는 대전MBC의 마지막 별밤지기가 되었다.
- ↑ 이문세가 별밤지기로 활약한 시기는 1985년부터 1996년까지다.
- ↑ 현재 경향신문이 입주하고 있는 그 건물이다. 경향신문과 MBC가 한지붕 가족이던 시절 건물을 같이 쓰다가 1982년 MBC가 정동을 떠나 여의도로 사옥을 옮기면서 C공개홀로 사용됐던 장소를 라디오 전용 공개홀로 개조한 뒤 꽤 오랫동안 라디오 공개방송 전용 공간으로 썼다.
- ↑ 응답하라 1988 9화에 이 내용이 등장한다.
- ↑ 원래 심수봉은 미8군에서 활동했었던 드러머 출신이다!
- ↑ 문자참여: #8001 정보이용료 SMS: 50원, MMS: 100원
- ↑ 드라마 응답하라 1994 8화 중에서 지방 살 때 이문세 별밤을 듣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말이 나온다.
- ↑ 당시 마산MBC와 진주MBC
- ↑ 2010년 11월부터 2012년경까지 주말 별밤 시간대에 권오성의 해피타임이란 프로그램을 자체제작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주말에도 본사 별밤을 방송 중이다.
- ↑ 광주MBC는 2012년 7월 31일 문형식씨가 진행하던 추억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종방하고 한동안 본사 방송을 재송출했다가 2013년 5월 홍진선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신설했지만 2014년 봄 개편으로 다시 본사 별밤을 방송하고 있다.
- ↑ 전국에서 마지막까지 별밤 로컬방송을 제작했다.
- ↑ 전국에서 마지막까지 별밤 로컬방송을 제작했다.
- ↑ 과거 이 시간에 김병재씨가 진행하는 오! 마이 라디오가 방송되었다. 제목이 유일하게 별밤이 아니다...
- ↑ 응사에서는 빙그레가 공병호라는 진행자가 진행했다고 나온다.
- ↑ 호남권에서 마지막까지 별밤 로컬방송을 제작했다.
- ↑ 참고로 1994년 당시 별밤지기는 강현주 前 아나운서. 응사에서 순천 출신 해태와 여수 출신 윤진이가 들었다.
- ↑ 영남권에서 마지막까지 별밤 로컬방송을 제작했다.
- ↑ 응답하라 1994에서 언급되는 마산 별밤 진행자는 김혜란씨. 2015년 기준으로 경력 30년이 훌쩍넘은 지역 유명 라디오DJ로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 참조.
- ↑ 응사 별밤 부분 마지막에 삼천포도 김혜란의 별밤을 들었을 것이라는 대사가 있는데, 삼천포는 마산MBC보다 진주MBC가 더 잘 들리기 때문에 만약 들었다면 진주 별밤을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 ↑ SM엔터테인먼트의 그 사람 맞다
- ↑ 별밤 최초의 남녀 공동 DJ. 다만 지역 자체방송에서는 이전에 공동 DJ로 방송한 곳도 있었다.
- ↑ 2008년 3월 31일자로 별밤지기가 됨. 별밤이 끝나고 방송하는 심심타파를 진행할 시절부터 별밤지기 자리를 은근히 노리고 있었다. 도중에 잠시 출산으로 자리를 비웠는데, 이 때 한 달간 이수영이 진행을 대신했다. 2011년 5월 8일로 하차.
- ↑ 2011년 5월 9일자로 별밤지기가 됨. 2014년 11월 2일자로 진행 종료. 후임 DJ가 선임될 때까지 딕펑스의 김태현, 씨스타의 소유, 보라가 임시로 진행하게 됨. 2016년 6월 6일 ~ 12일까지 임시 DJ로 한시적으로 복귀.
- ↑ 2014년 11월 17일자로 별밤지기가 됨. 2015년 11월 15일 하차
- ↑ 2015년 11월 16일자로 별밤지기가 됨. 2016년 6월 5일 하차.
- ↑ 2016년 6월 22일자로 별밤지기가 됨. 강타가 24일까지 스케줄로 인해 자리를 비우는 관계로 6월 6일부터 6월 12일 까지 22대 별밤지기인 윤하가 임시로 진행을 맡았고 13일 ~ 23일은 이수영이 맡았다.
- ↑ '밤을 잊은 그대에게'는 이 시간에 방송되는 국내 라디오 프로그램 중 역사가 가장 오래 됐다. 1964년 5월 9일 동양방송 라디오가 개국하던 날부터 방송됐으니 50년이 훌쩍 넘은 최장수 프로그램.
장수만세특히 1980년 11월 30일 언론통폐합으로 인해 동양방송의 마지막 라디오 방송으로 이 프로그램이 방영됐는데 당시 황인용 DJ가 울먹이면서 하던 클로징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1991년부터 1년여간 잠시 폐지된 적이 있지만 1992년 가을에 부활해 현재까지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