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瑄根
1905년∼1983년 1월 9일
대한민국의 역사학자,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호는 하성(霞城)이다.
1905년 경기도 개성군(현 북한 개성특급시)에서 태어났다. 쌍빈의숙, 휘문고등보통학교, 일본 와세다대학 서양사학과를 졸업하였다. 와세다대학 재학 중 전진한, 이하윤 등과 함께 비밀결사 '한빛회'를 결성하였으며, 신간회 동경지회에 참가하였다.
와세다대학 졸업 이후 귀국하여 조선일보에서 잠시 기자로 근무하였다. 이후 송도고등보통학교(현 인천 송도고등학교) 교사로 있었다.
1937년 만주국에 가서, 만몽산업주식회사 상무이사가 되어 관동군에 군량미를 공급하였으며, 만주국 협화회의 협의원을 지내는 등 일제강점기 말기 친일반민족 행위를 하였다.
8.15 광복 이후 귀국하여 1946년 2월 한성일보 주필이 되었다. 한편 조선청년당, 대동청년단을 창단하여 이승만을 총재로 추대하고 자신은 그 부단장 겸 기획위원장이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인 1950년 2월 국방부 정훈국장이 되었으다. 1954년 4월부터 1956년 6월까지 문교부(현 대한민국 교육부) 장관을 지냈다. 장관 재임 중인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개입하여 민주당으로부터 고소를 당하기도 하였다. 결국 1956년 6월 5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그에 대한 불신임안을 통과시켜 불명예 퇴진하였다.
이후 1956년 동아대학교 교수, 1957년 성균관대학교 총장, 1959년 11월 26일부터 1960년 5월 3일까지 대한상무회(현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회장, 1962년 경희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1963년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1969년 영남대학교 총장, 1974년 동국대학교 총장, 1976년 대한교련(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1978년 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초대 원장을 지내면서 유신 체제를 적극 찬양하였다.
박정희 정권이 무너진 후에도, 다시 전두환의 집권을 찬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