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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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치안국장
경무부장초대2대
조병옥이호김태선

李澔, 일본식 이름: 李家澔
1914년 2월 7일 ~ 1997년 5월 24일

대한민국의 전 친일반민족행위자, 경찰공무원, 법조인, 정치인이다. 형 이활은 제6대 국회의원(민주공화당)을 지냈다.

1914년 경상북도 영천군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경성제2고등보통학교, 일본 리쓰메이칸(立命館) 중학교, 사가 고등학교,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도쿄제국대학 재학 중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였다. 귀국하여 일제강점기 말기 검사로 근무하였다.

8.15 광복 후에도 검사로 근무하였다. 1948년 서울고검 검사로 재직 중 국회에서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상정되자 엄상섭 등과 함께 민족정기 앙양에 협조하며 자기반성을 한다는 의미로 퇴직원을 제출했으나 수리되지는 않았다. 1949년 초대 치안국장(현 경찰청장)에 임명되었다. 6.25 전쟁대한민국 육군 법무감(준장)과 계엄 부사령관, 정전위원회 대표 등을 지냈다. 1953년부터 1955년까지 국방부 차관을, 1955년부터 1958년까지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1960년 4.19 혁명으로 4월부터 8월까지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냈는데 7월부터 8월까지 국무원 사무처장을 겸직하였다.

1967년 6월부터 1968년 5월까지 내무부 장관을, 1968년 5월부터 1970년 12월까지 법무부 장관을 다시 역임하엿다. 1971년 1월부터 1974년 1월까지 주 일본 대사를, 1975년 7월부터 1981년 7월까지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지냈다.

5․17 내란 이후에는 전두환이 설치한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장을 맡았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사법 부문에 수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