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

1 장료의 아들

張虎

생몰년도 미상

위나라의 명장인 장료의 아들로 222년 장료가 사망하자 편장군에 임명되었다는 기록만 남아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악침과 함께 세트 메뉴로 사이좋게 다니며 여기에 가끔 대릉이 낄 때가 있다. 2차 북벌 때 악침과 함께 선봉, 부선봉이 되어 촉한의 부대와 전선에서 싸웠으며, 조진이 울화병으로 사망한 뒤에는 사마의제갈량의 진법 승부에 악침, 대릉과 함께 참가한다.

그러나 결국 제갈량의 포로가 되었다가 제갈량의 아량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으며, 4차 북벌 때 악침과 함께 위수를 지키면서 오의, 오반의 군대를 무찌르고 오반을 죽이는데 성공한다. 공손연이 배반을 일으켰을 때 사마의 휘하에서 공을 세우지만 후에 친구 악침이 죽은 후에는 나오지 않는다.

정사에서는 편장군으로 임명된 기록만 남았을 뿐인데 삼국지연의에서는 행적이 여럿 추가되어 삼국지연의의 수혜자가 되었다.

1.1 미디어 믹스

삼국지 12,13

삼국지 시리즈에도 그냥 그런 무장으로 자주 등장. 악침, 대릉과 세트로 잘 엮인다.

삼국지 3에서는 그냥 그저그런 2세 장수일 뿐이다. 같은 2세 장수로 비교해도 하위권. 물론 옆동네의 바보 황제같은 동네의 병졸만도 못한 장수보다는 상황이 좀 낫긴 하지만 모든 2세 장수 중 가장 대박친 장수아버지의 재능을 하나씩만 물려받은 2세 장수들에 비해서는 안습하다. 육지54 수지23 무력61 지력57 정치52 매력41에 야망4 운6 냉정7 용맹9라 장군도 못되고 군사도 못된다. 이는 친구인 악침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아버지를 닯아서인지 용맹만 평타 이상이긴 하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72/74/48/44. 분전, 돌파, 몽충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와 비교하면 분투, 분신, 돌진, 돌격, 기사, 파괴, 덫이 없다. 심지어 같은 세트인 대릉조차도 돌진을 가지고 있는데...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74/73/44/46/56으로 능력치마저 악침과 비슷한데(72/75/41/49/57에 총합 차이도 1밖에 안난다.) 특기는 훈련,돌격,역공 3개 뿐이라 특기가 5개인 악침보단 조금 떨어진다.

삼국지 11부터 아버지랑 무척 닮은 얼굴로 등장해서 수많은 장료빠들에게서 감격과 그리움의 눈물을 뽑아냈다. 11탄 능력치는 무력 통솔 모두 70대의 B급 무장이지만 등장하는 시기를 보면 준수한데다가 병과 적성이 A가 많아 특기만 잘 달아주면 후반부 시나리오에선 훌륭한 A급 장수로 활약할 수 있다.

삼국지 12에는 친구 악침과 함께 사이좋게 짤렸다가 PK에서 둘 다 등장. 일러스트는 아버지와 꼭 닮았다.

영걸전 시리즈에서는 공명전에서만 등장. 여기서도 악침, 대릉과 세트 메뉴 취급받는다. 궁병대인 악침과 다르게 이쪽은 보병대. 친구 악침과 사이좋게 낙양 전투 1에서 사망. 이쪽은 강유에게 썰린다.

삼국전투기에서는 기록이 지나치게 부실해서인지 최훈이 장료빠임에도 그 아들인 장호는 짤렸다.

2 황조의 부장

張虎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강하태수 황조의 수하 장수.

원래는 강하 땅의 도적으로 진생과 함께 양양을 차지했지만 190년경에 유표괴월과 방계 등을 보내 설득하자 항복해 유표에게 귀순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강하 사람으로 일찍이 진생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지만 유표에게 항복해 상장이 되었다고 하며, 손견이 형주를 공격해 남양의 등성에서 싸울 때 먼저 나서서 한당과 30합 정도 일기토를 벌이다가 밀리고 있던 와중에 진생이 도와주러 나갔다가 손책의 화살에 맞아죽는 것에 놀라 그 틈에 한당의 칼에 맞아 사망했다.

이 인물과 관련된 삼국지연의의 오류는 장무 항목 참조.

2.1 미디어 믹스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4에서 등장한다.

삼국전투기에는 친구 진생과 함께 삼계탕 세트로 나와 그 중 닭을 담당하지만 나오자마자 한당한테 닭은 겨드랑이가 급소라는 말과 함께 썰린다.

삼국지를 품다에서는 손견이 황조가 지키는 번성을 함락하자 진생과 함께 공격했다는 보고로 나오는데, 스토리에 직접 개입하는 장수로 있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직접 잡으러 가는 몹으로 설정되어 노련한 유표군의 창병 50명과 함께 처치해야 한다.

3 후한 말의 인물

張顥

생몰년도 미상

자는 지명(智明). 장봉의 동생.

상산 사람으로 양국의 상을 지내다가 비가 갠 후에 까치가 근처 땅 위에서 나는 것을 보고 사람을 시켜 땅을 파보게 했는데, 그 곳에 땅으로 떨어져 변한 둥근 돌이 있었다. 장호가 사람을 시켜 망치로 깨뜨리도록 하자 충효후인(忠孝候印)이라 써진 황금으로 된 인장이 나왔다. 태상을 지내다가 178년 3월에 태위에 임명되었다가 9월에 파직되었다.

부자(傅子)에서 영제 때 관직을 팔아서 산 현상을 이야기하면서 단경, 최열, 장온, 번릉 등이 뇌물로 삼공의 벼슬을 사고 장온, 번릉 등이 재능이 뛰어난 선비라고 이야기했다.

이들도 그런데 장호도 유오, 당진과 함께 이들의 무리는 어떻겠냐고 언급되었는데, 유오는 중상시와 친하게 지냈고 장호는 당진과 함께 중상시의 가족 관계였기에 함께 묶여서 언급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