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사관학교

대한민국 국군 장교 임관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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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0년대에 육·해·공군에 존재했었던 사관학교. 4년제인 정규사관학교와 비교할 때 2년제로 짧아 단기사관학교라 하기도 했다. 현재는 모두 폐지되었고, 육군제2사관학교의 경우엔 1972년에 육군3사관학교로 통합되었다.

1968년 1·21사태 이후 대간첩 작전부대 창설 및 증편으로 정원이 5,844명 증가했으며, 1974년에는 간부정예화계획에 의거 갑종 및 단기사관후보생을 폐지하고,단기사관학교 설치법을 마련하여 육군 제3사관생도로 통합하여 모집했다. 이와 함께 해·공군도 1975년에 각각 제2사관학교를 창설하고 생도를 모집했으며, 각 군 사관학교도 모집인원을 2배수로 대폭 확대했다. #

2 육군제2사관학교

당시 장교양성에 있어서는 보수과정을 분리시키고, 2년제 단기사관학교로 제도화하기 위하여, 1968년 10월 15일 육군 제2사관학교와 제3사관학교를 창설했다. 육군 제2사관학교는 당시 전남 광주시(현재 지명 광주광역시)에 소재하던 육군보병학교를 감편하여 창설하였고, 육군 제3사관학교는 4개 학교(정보, 헌병, 부관, 경리학교)가 있던 경북 영천군에서 전후방으로부터 차출된 새로운 창설요원들에 의해서 창설되었다.

육군 제2사관학교와 육군 제3사관학교는 동시에 창설되었지만 육군 제2사관학교는 교육생 수용준비가 늦어지는 바람에 제1기생은 육군 제3사관학교에서만 교육했다. 1969년 3월 18일 육군 제3사관학교의 개교식이 열렸고, 1970년 1월 20일 제3사관 1기 생도 771명이 임관하였다. 제2사관 1기 생도들은 같은 해 5월 29일 임관[1]하였다. 1970년 동일한 두 개의 단기사관학교가 있으면 부정적인 요인이 야기될 수 있으므로 이원화하지 말고 하나로 통합할 것을 대통령이 지시함으로써, 1972년 4월 26일 교육환경이 열악한 육군 제2사관학교가 제3사관학교에 통합되었다. 육군 제2사관학교는 1972년 2월 25일 6기생을 마지막으로 총 2724명의 장교를 배출했다.

창설학교의 명칭을 육군 제2·3사관학교라 명명한 것은 1968년 9월 20일 육군본부 정책회의에서 육군사관학교를 제1사관학교라고 염두에 두고 새로이 창설되는 단기사관학교를 숫자 순에 의하여 명명한 것이었다.

육군단기사관학교령

3 해군제2사관학교

해군 제2사관학교는 초급장교의 만성적 부족현상을 해소하고, 우수한 중·단기 복무장교의 확보를 목적으로 1975년 5월 10일 경상남도 진해시에 창설되었다. [2] 교육연한 2년 동안 항해·기관·상륙 3개 병과를 양성, 임관 후 복무연한은 6년이며, 정원은 240명이었다. 해군의 장교양성제도 변경에 따라 1983년 8월 27일 7기생 임관을 마지막으로 교육을 종료했다.

해병대의 경우, 고졸자를 대상으로 해병학교에서 해병대간부후보생[3](해간)으로 모집해오다, 1973년 해군으로 편입되면서 해군사관학교와 해군제2사관학교에서 장교를 공급 받았다.#

2013년에 총동문회를 창설했다.

3.1 출신 인물

  • 안희수 : 해병준장(1기, 1977년 임관, 해사 31기 상당)
  • 김영섭 : 해군준장(2기)
  • 박승훈 : 해병대 준장(2기), 해병대 교육훈련단장 역임.
  • 류지영 : 해병준장(6기), 국방부 근무지원단장 역임.
  • 조돈천 : 해군준장(7기)
  • 조동택 : 해병소장(7기)

해병대의 안희수 준장[4]해군의 김영섭 준장[5] 등이 장군제독으로 진급했으나 사실상 준장이 진급 상한선이었다. 현재는 해군준장 조돈천 제독(7기)[6], 해병준장 류지영(6기),조동택 장군(7기)이 마지막 제복군인이다. 그러나 조돈천 제독은 2014년 12월 26일 전역식을 가졌다. 반면 2015년 6월 조동택 장군은 현재 계룡대 근무지원단장으로 류지영 장군은 해병대 부사령관으로 재직중. 준장으로 최대 6년까지 버틸 수 있기 때문에 아직 더 있을 수도 있는 것으로 추정. 2016년 류지영 장군은 전역했으며, 조동택 장군이 계룡대근무지원단장으로 근무중이다.

4 공군제2사관학교

공군 제2사관학교는 정규사관학교 교육을 제외한 조종·정비·관제·통신전자분야의 초급장교 양성을 목적으로 1975년 12월 1일 충청남도 대전시에 창설되었다. 교육은 공군의 초급장교로서 기본수양과 실무장교로서 필요한 전문적 업무수행능력을 배양하는 데 목표를 두고 실시되었으며, 교육과목은 교양·기초필수·전공 과목으로 나누어 균형있는 교육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1976년 4월 개교 이후 1984년 4월까지 총 1026명의 공군 장교를 배출했다. 단시일 내에 소정의 초급장교양성 목적을 달성함으로써 7기생 배출을 끝으로 1984년 4월 30일 폐교되었다.

조종간부후보생(조간)은 1971년 조종사관후보생으로 명칭이 변경되고, 1976년부터 공군제2사관학교로 입교를 하였다. 이때부터 10개월 이었던 교육기간도 2년으로 늘어났다.# 부대 별칭은 은하대라고 불렸다. 공사는 성무대.

공군제2사관학교 총동문회

4.1 출신 인물

파일럿이 좀 나오긴 했지만 주요 장성까지 올라간 사람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6년 9월 7기생 대령 한 명이 전역했고, 영관급이 다 전역을 해버렸기 때문에 현재 공군에 남은 인원은 없는. 듯 하지만 현재 단장급(준장)이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2000년대 후반에 남은 중령 이상의 2사 출신들은 파벌 싸움이고 뭐고 관심도 없이 자기들 끼리 거의 여가 생활을 보냈다. 후배가 없어 파벌 형성이 안 됐기 때문이다. 최근 공군의 2스타 중 한명이 공군2사관학교 출신의 최대 자랑이자 최후의 보루급으로 남아있다. 해당 인물은 김진홍 소장(6기)으로 1983년에 임관했다. 공군사관학교로 치면 31기에 해당한다. 2014년말에 소장에 진급했다. 하지만 방공포병 출신[7]이라 공군방공유도탄사령관이 마지막 보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진홍 소장은 공군항공과학고등학교 10기 출신이기도 하다.
  1. 3사관 2기가 다음날인 5월 30일 임관하였고, 11월 26일 3기부터 제2·3사관 생도들이 같은날 임관하였다.
  2. 현재의 해군전투병과학교 건물을 사용했다.
  3. 정식 명칭은 해병대사관후보생이나, 당시에는 간부후보생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4. 1기, 해병대교육훈련단장, 계룡대 근무지원단장 역임.
  5. 2기, 해군대학 총장 역임.
  6. 장보고-III 사업단장.
  7. 방공포병이 1991년에 육군에서 공군으로 전군한 것을 생각하면 본래는 다른 특기였다가 이후에 방공포병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 때문에 한동안 공군 방공포병의 고급 장교와 부사관은 육군 출신들이 득시글거렸다. 2사 같은 경우엔 조종사들이 공사에 비해 팬텀 후방석을 주로 배정받았고 진급을 위해 많은 후방석 출신들이 방공포로 전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