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의원 총선거 | ||||
2005년 9월 11일 | ← | 2009년 8월 30일 | → | 2012년 12월 16일[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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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후 단일 정당 중의원 최대의석 확보
1955년 이후 54년만의 비 자민 정당의 과반 승리
2009년 8월 30일에 치러진 일본의 중의원 총선거. 여러모로 대기록을 남긴 선거였는데 일본 민주당이 무려 308석의 의석을 차지하며 55년 체제 성립 이후 자민당 이외의 타 단일정당으론 처음으로 원내과반과 정권교대를 이루어냈다.[2] 드디어 해냈다
2 선거 이전
2.1 자민당의 위기
2005년 중의원 총선거에서 우정해산이라는 승부수를 던지며 승리하는데 성공한 자민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이었지만 그 여파도 잠시...소득불균형 심화로 고이즈미는 인기를 잃어간다. 이후에 자민당 총재 임기 만료로 아베 신조 내각이 출범하지만 각종 부정부패와 스캔들, 그리고 아베 개인의 건강 악화로 내각이 총사퇴한다. 처참히 망한 참의원 선거결과는 덤 그 다음 총리인 후쿠다 야스오는 민주당이 장악한 참의원에서 전후 헌법 처음으로 문책 결의안을 받아 신임표결까지 받는 수모를 당했다. 망했어요 또 그 다음 총리인 아소 다로는 막장을 달리다 최악의 경기 침체로 몰락하였고 민주당에게는 정권교체를 위한 절호의 기회가 오게 되었다.
2.2 민주당의 돌풍
한편 민주당은 2009년 5월 11일에 오자와 이치로가 정치자금 스캔들로 대표직을 사퇴하고 하토야마 유키오 체제가 성립하면서 다소 위기에 봉착한듯 보였지만, 자녀수당 신설 같은 사회복지정책의 대폭 확대와 정경유착 철폐 등의 공약을 내걸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전화위복하게 된다.
그 결과 2009년 7월 도쿄도 중의원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자민당은 벼랑끝에 몰렸고 아소 다로 총리는 결국 중의원 해산을 선언했다.
하토야마 유키오는 선거 유세 기간 동안 부정부패 척결과 관료주의 정치로부터의 탈피를 외쳤고, 각종 선거 여론조사에서도 줄곧 민주당의 압도적인 리드가 이어졌다. 그래도 설마 그 자민당이 이렇게 무력하게 정권을 내줄까 의구심을 품던 국민들도 있었지만 그 결과는...
3 선거 결과
선거일 | 2009년 8월 30일 |
선거내용 | 지역구(소선거구제) 300명 + 권역별 비례대표 180명(석패율제 시행) |
선출인원 | 480명 |
투표율 | 69.3% |
민주당 | 자민당 | 공명당 | 공산당 | 사민당 | 다함께당 | 국민신당 | 기타 정당 [3] | 무소속 | |
지역구 | 221석 | 64석 | 0석 | 0석 | 3석 | 2석 | 3석 | 1석 [4] | 6석 |
비례대표 | 87석 | 55석 | 21석 | 9석 | 4석 | 3석 | 0석 | 1석 [5] | 0석 |
합계 | 308석 | 119석 | 21석 | 9석 | 7석 | 5석 | 3석 | 2석 | 6석 |
4 각 당 반응
4.1 자민당
선거후 자민당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그냥 참패도 아니고 창당 이후 최저 의석 + 최초의 제2당을 기록하면서 불명예를 안았다. 사실 자민당이 야당이 된 것은 1993년 이후 최초였는데, 그나마 1993년 총선때는 제1당의 지위는 유지한 채 과반에만 미달하여 야권이 연정을 통해 비 자민 연립정부를 출범한 것이었기 때문에 충격이 덜했다. 하지만 2009년 총선은 비 자민 정당이 단독으로 과반을 차지한 사실상 최초의 사례가 되었기 때문에 충격이 더했다.
결국 아소 다로 자민당 총재는 30일 밤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리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뿐만 아니라 당내 유력 인사들도 줄줄히 낙선하여 막대한 타격을 입었고 이후 한동안은 당의 생사마저 불투명했다.
4.2 민주당
마침내 꿈에 그리던 정권교대를 이루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3년후...
단독 과반은 물론 상임위 장악에 필요한 의석수인 269석까지 훌쩍 넘기면서 당은 그야말로 잔칫집 분위기. 이 압승을 바탕으로 제2의 장기집권이 가능할지도 관심이었다. 물론 우리는 결과를 알고 있다. 이후 9월 16일 하토야마 유키오가 사민당, 국민신당과 함께 연립내각을 구성해 총리에 취임함으로써 민주당 정권이 출범했다. 70%에 달하는 지지율로 시작한 만큼 결과도 좋아야했지만, 하토야마 총리 취임 직후부터 정경유착을 철폐한다던 공약과 반대로 오히려 선거자금 스캔들이 터지고, 사민당이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문제 관련하여 정부방침에 반대하면서 결국 연립에서 탈퇴하고 만다. 그렇게 70%의 지지율은 1년도 안돼 공중분해 10%대로 추락했고, 결국 하토야마 총리는 정치자금 문제 및 후텐마 기지 이전문제로 사민당이 연립정권에서 이탈한 데 책임을 지고 2010년 6월 2일 사임하고 만다.
5 관련 항목
• 고이즈미 준이치로
• 아베 신조
• 후쿠다 야스오
• 아소 다로
• 하토야마 유키오
• 제46회 일본 중의원 총선거
• 자유민주당(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