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회민주당


일본국의 주요 정당
(괄호 안은 일본 중의원 / 참의원의 의석 수)
집권당자유민주당
(291 / 122석)
공명당
(35 / 25석)
야당민진당
(97 / 49석)
일본 공산당
(21 / 14석)
일본 유신회
(15 / 12석)
사회민주당
(2 / 2석)
자유당
(2 / 4석)
일본의 마음
(0 / 2석)
원기모임
(0 / 2석)
신당대지
(1 / 0석)
오키나와사회대중당
(0 / 1석)
파일:Attachment/Social Democratic Party.png
社会民主党
(しゃかいみんしゅとう)
영문 명칭Social Democratic Party: SDP
한글 명칭일본 사회민주당
창당일1996년 1월 19일
전신 : 일본 사회당(1945년 11월 2일)
주소도쿄치요다구 나카타4초메 4-3
(東京都千代田区永田町二丁目4-3 永田町ビル7階)
당수요시다 다다토모(吉田忠智)
부당수후쿠시마 미즈호(福島瑞穂)
간사장마타이치 세이지(又市征治)
이념사회민주주의, 평화주의
스펙트럼중도좌파[1]
의석수(중의원)2석 / 475석 (0%)
의석수(참의원)2석 / 242석 (1%)
공식 사이트일본사회민주당 홈페이지

1 개요

일본의 군소정당, 1996년사회당(일본)의 후신으로 창당되었다. 2013년 현재 일본의회 내 의석은 중의원 2명(5석에서 3석 감소), 참의원 4명으로 사민주의 정당 모임이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 참가하고 있는 정당이다.

2 성향

주된 정책노선은 평화복지이며 고용 창출 및 고용 안정, 충실한 복지를 근간으로 한 경제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원래는 일본사회당 말기의 노선을 계승해 '사민자유주의'를 내걸었지만, 1998년 자민당과 연립이 깨진 이후로는 상대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 색채가 강해졌다.

평화헌법의 수호와 헌법 이념의 실현을 호소하며, 자위대가 평화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6년의 '사회민주당 선언'이 대표적인데 '자위대의 축소를 도모하며 비무장의 일본을 목표로 한다'라는 강령이었다. 대체적으로 국제 분쟁을 외교를 통해 평화적으로 대처할 것을 주장한다.[2] 일단 미국에는 반대하면서, 한국이나 중국에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듯. 특히 북한에 대한 대응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강하다.[3]

다른 정당과 비교해 여성의 비율이 높은 것도 특징인데 성평등 의지와 여성의 권리 확립을 명확하게 지향한다.

3 지지기반

  • 오키나와 섬 중부와 그 주변 (나카가미 군(中頭郡) 요미탄 촌(読谷村), 가데나 정(嘉手納町), 자탄 정(北谷町), 기타나카구스쿠 촌(北中城村), 나카구스쿠 촌(中城村), 니시하라 정(西原町)등) 이 그나마 일본전역에서 유일하게 사회민주당 지지세가 과반을 넘는 유일한 지역이다. 그래서 위에 지역에 해당되는 중의원 선거구인 오키나와 2구에서 중의원 1명(테루야 칸토쿠)이 당선되었다.
  • 이외에 규슈쪽에서는 지역구는 아니지만 규슈 지역 비례대표로 중의원이 당선되기도 한다. 예전에 사회당 시절에는 규슈쪽에서 꽤나 세가 강했다.[4] 사회당 시절에 비하면 못하지만.

추가 바람

4 역사

사회당 말기 간 나오토가 중심이 되어[5], 사회당을 탈당하고 민주당(일본)을 결성하는데 사민당은 민주당으로 참가하기로 했지만 곧 참가 의견을 철회하였다. 하지만 간사장이었던 사토 간쥬 등을 포함하여 반 이상의 국회의원이 사민당을 떠나 민주당 결성에 참가했고 이때 사회당의 지지기반인 노동조합도 민주당으로 가는 바람에 1996년 10월 20일 중의원 총선거에서 30석에서 15석으로 의석수가 반토막 나 망했어요 상태가 된다. 이후 1998년 지지율이 부진한 자민당과의 연정을 깨지만 그 해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했다. 2000년 중의원 선거에서 20석으로 부흥의 움직임을 나타내려 싶었지만...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가 불거지고 민주당(일본)이 수권야당으로 부상하면서 다시 침물하고 말았다.

일본 미래당 등과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가 2012년 12월 16일 선거에서 그나마 있던 것도 3석을 잃으며 대패했다. 일본 공산당이 거의 유지한데 비하면 그저 안습. 그나마 이것도 출구조사에서는 한 석도 못 얻는 것으로 나왔었다(...). 소선거구제 지역구 1석, 비례대표 1석을 가까스로 얻어 원내 진입 유지. 2013년 참의원 선거에서도 민주당의 부진과 극우정당의 지리멸렬에도 진보성향 표가 공산당으로 몰릴것으로 예측되면서 잘해봐야 1~2석 정도 확보할걸로 보이고 최악의 경우 1석도 차지하지 못할걸로 예상된다(...) 결국 참의원 선거에서 단 한 석을 확보하는데 그치면서 패배했다.

당의 진로에 대해서 원로인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는 호헌을 기치로 야권 재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사민당이 발전적 해체를 할수도 있을것이라고도 언급. 그러나 개헌에 반대하는 민주당-사민당-공산당등의 성향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호헌만으로 야권이 재편될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2013년 8월 말, 후쿠시마 미즈호 대표가 사퇴하여 대표자리가 공석 상태이다.

그리고 2013년 10월14일 사민당 개칭후 첫 당수 선거에서 이시카와 타이가 구의원을 꺾고 요시다 다다토모 참의원이 당수로 선출되었다. (취임은 10월29일)

공산당이 카쿠산(확산)부 등으로 젊은 층에게 다가가려고 하고 새롭게 이미지를 쇄신하는 반면, 사민당은 글씨체라든가, 당 마크라든가, 홈페이지라든가 전반적으로 이미지가 낡아보인다. 그러나 정작 일본에서는 진보가 맥을 못 추고 있기 때문에 공산당도 밀리고 있는 판에 사민당은 더욱 인기가 없다. 거기에다가 자민당 등의 보수와 공산당이 인기있는 이유가 바로 반북인데, 사민당은 평화주의란답시고, 친북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6년 현재에는 존폐의 위기에 놓여 있다.생활당보다 출구조사 결과가 좋다는 건 함정 지난 2013년 참의원 때 고작 1명만 당선되었고 일본에서는 진보가 제 맥을 못 추고 있기 때문에, 거기다가 설상가상으로 진보 표는 민진당, 공산당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요시다 다다토모 대표는 민진당과의 합당을 고려하고 있고 무라야마 도미이치 사민당 명예당수, 81대 전 내각총리대신도 사민당이 점진적 해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미즈호 부당수는 사민당의 정책, 공약, 역사가 묻힐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하고 있다. 만일 민진당과의 합당이 실현될 경우, 가타야마 테츠, 무라야마 도미이치 내각을 일으켰고, 도이 다카코의 마돈나 열풍을 일으킨 71년 역사의(사회당+사회민주당 역사)/20년 역사와 전통의 사회민주당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1996년 사회당 해산 후 따로 갈라져 나온 신사회당만 남게 된다.[6] 그러나 민진당 내에서도 민진당이 좌익의 이미지가 날 수 있다며 반대하는 당원과 나쁘지 않다는 당원들과 의견이 갈리는 중이다. 오카다 가쓰야 민진당 대표는 여건이 된다면 한 번 진지하게 상담하고 싶다고도 했다. 일단 민진당 중에서도 사회당 출신 계파가 있긴 하다만.

공산당, 민진당과는 다르게 선거에서도 살아남기 힘든 모양이다. 지난 2013년 참의원 선거에서도 1석밖에 못 얻었고, 당 내 입장이 위에서 보듯 갈리고 있기 때문에 이번 선거가 요시다 다다토모, 후쿠시마 미즈호에게는 단두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마리텔이냐

심지어 도쿄 선거구에 후보로 공천한 마스야마 레나(増山麗奈)[7]후보는 평소 각종 선정적인 퍼포먼스 등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사람을 공천시켜서 논란이 일고 있으며 이는 사민당 이미지에도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극우 측에서는 후보자와 당까지 제정신이 아니라며 깠고, 결국 이 사람은 당선은 커녕 도쿄 선거구의 그 많고 많은 후보들 중에 중하위권에 그쳤다.

그러나 2016년 참의원 선거에서 전국 비례대표 후쿠시마 미즈호가 당선되면서 1석을 겨우 얻었다. 사회민주주의자 등 고정 지지세력들이 뽑아준 듯하다. 후쿠시마 미즈호가 당선이 확실해지면서 요시다 다다토모 당수는 낙선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고, 요시다 다다토모는 결국 낙선했다.

그래도 가고시마 현지사 선거에서 현직 보수계열 이토 유이치로 지사를 물리치고 민진당(일본)과 공동으로 후보 추천을 한 TV 아사히 기자, 해설위원 출신의 미타소노 사토시가 당선되는 등 어느 정도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써 유지를 할 수 있는 발판만 남겨둔 상태이다.

2016년 7월 26일, 생활의 당과 통일회파 희망의 회(希望の会)를 결성하였다.

그래도 중의원 쪽은 오키나와 2구, 전국 규슈 비례대표 2명이다.

5 기타사항

  • 한국의 정의당과 교류 중이다. 생각해 보면 묘하게 위치가 비슷하다. 성향도 같으니까# #

6 역대 선거결과

6.1 중의원 선거

연도의석수정수득표율(지역구/비례대표)
일본 사회당에서 당명 변경
1996155001,240,649(2.2%)/3,547,240(6.4%)
2000194802,315,235(3.8%)/5,603,680(9.4%)
200364801,708,672(2.9%)/3,027,390(5.1%)
20057480996,007(1.5%)/3,719,522(5.5%)
200974801,376,739(2.0%)/3,006,160(4.3%)
20122480451,762(0.7%)/1,420,790(2.3%)
20142475419,347 (0.79%)/1,314,441 (2.46%)

6.2 참의원 선거

연도개선의석/비개선의석득표율(지역구/비례구)
일본 사회당에서 당명 변경
19985/82,403,649(4.3%)/4,370,763(7.8%)
20013/51,874,299(3.5%)/3,628,635(6.6%)
20042/3984,338(1.8%)/2,990,665(5.4%)
20072/31,352,018(2.3%)/2,634,713(4.5%)
20102/2602,684(1.0%)/2,242,735(3.8%)
20131/2271,547(0.5%)/1,255,235(2.4%)
20161/1289,899(0.5%)/1,536,238(2.7%)
  1. 한때 중도우파 정당인 자민막부 일본 자유민주당과도 연정했었다.
  2. 결국 군사균형이 중요한데 군비증강을 통한 군사균형이냐 군축을 통한 군사균형이냐의 문제..당연히 후자가 지향되어야할 가치이고 여기서 중요한 것이 상대방의 합의를 이끌어낼수있는 외교력
  3. 특히 과거 북한에 방북단을 주기적으로 보내는 등 상당히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왔기에 그런 이미지가 강한 측면도 있다. 사회당보다 더 진보적인 일본공산당이 북한에 대한 비판적인 논조를 보이며 주기적으로 북한에 대한 강경한 논조의 성명을 발표하는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4. 그 악명높은 아소 다로의 지역구인 후쿠오카 8구도 원래는 사회당의 표밭이었다. 치쿠호 탄광 광부 및 노동자의 표가 몰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는 사회당/사민당의 세가 많이 퇴색되었다.
  5. 단, 간 나오토는 혁신정당에 몸을 담기는 했어도 사회당 소속 인물은 아니었다.
  6. 그러나 이 당은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이 당이 사라지면 일본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없어지게 된다.
  7. 할아버지는 일본사회당 토야마현본부서기장을 지낸 마스야마 나오타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