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수

파일:Attachment/25748 1-550367 28198.jpg
이름차민수(車敏洙)
영어명Jimmy Cha
생년월일1951년 1월 15일
출신지서울특별시
출신학교동국대학교
입단1974년
단수五단(2015년)

1 개요

대한민국의 프로 바둑기사이자 프로도박사. 2014년 기준 바둑은 五단이다. 드라마 올인의 실제 주인공[1]. 학력은 동국대학교 경제학 학사이고, 한국관광공사 상무이사를 맡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에 카지노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를 창립해서 회장으로 재직중.

미국식 이름은 지미 차(Jimmy Cha).

2 상세

아버지가 한국전쟁납북되어 유복자로 태어났다고 한다. 어머니가 그에게 다양한 재주를 남겨주길 원해서 어린 시절 무술[2]이나 음악[3]에 이르기까지 안 배워본 게 없을 정도라고. 그 중에서도 바둑에 특히 재능을 보여, 대학 재학시절 아마추어 대회를 초토화시키다시피 하고 1974년 프로에 입단했다.

상당히 촉망받는 기재였지만 얼마 후 미국으로 이민, [4] 애써 이런저런 사업을 벌였지만 카지노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사업은 다 말아먹고 이혼까지 당한 후 빈털터리로 귀국했는데, 어머니에 의해 거의 쫓겨나다시피 미국으로 돌아가서 아예 본격적으로 포커에 뛰어든 것이 인생 역전의 계기가 되었다. 무일푼에서 내기바둑으로 밑천을 간신히 확보하여 다시 카지노행, 카지노 딜러와 재혼하였고 부인의 격려에 힘입어 급성장할 수 있었다고. 이후 프로 갬블러로 부와 명성을 얻었으며, 너네 아직도 바둑하냐 이민 이후 바둑은 거의 손을 놓다시피 하며 지냈다. 하지만 인생 말아먹는 와중에도 틈틈이 미국인들에게 바둑을 보급하는 일에 힘썼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기원에서는 계속 初단에 머물러 있던 그를 四단으로 특별히 승단시켜줬다. 여담으로 그가 포커에 뛰어든 것은 바둑 애호가이던 아마추어 포커선수에게 바둑을 가르쳐 주는 반대급부로 포커를 배운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그렇게 갬블러로 성장하던 1989년 뜬금없이 후지쯔배 세계바둑대회에 참가하여 화제가 되었는데, 당시 일본기원에서 현역으로 활약하던 미국인 프로기사인 마이클 레드먼드를 누르고 본선에 진출했기 때문. 본선진출도 이변으로 여겨지던 와중에 그는 일본의 유명기사 두 명을 연파하여 8강에 진출하더니 8강전에서는 천하의 조훈현 九단을 이길 했다. 막판까지 이기고 있다가 10집 이상을 깎아먹는 실수를 하며 역전당한 것(...)

그래서 당시 대국을 검토하던 몇몇 프로기사들은 그가 친구의 자존심을 살려주기 위해 일부러 져준 것이 아니냐고도 했다. 차민수 본인의 해명에 따르면 져준 건 당연히 아니라고 즉각 반발했는데, 다만 자신이 한국 최강자를 이길 경우 벌어질 후폭풍이 신경쓰이긴 했다고 한다.

어쨌든 8강까지 진출해서 다음 대회 시드를 확보, 이번에는 첫 경기에서 당대 일본 최강자인 조치훈 九단을 이겼다. 초반 실수로 불리해진 바둑을, 좌상쪽 빈 공간을 모두 집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멋지게 성공하며 역전승한 것. 세계 바둑계가 경악하기에 충분했지만 8강에서 녜웨이핑 九단에게 패하면서 파란은 멈췄다. 이후로는 바둑으로 큰 활약을 보여주지는 않고 있다.

조훈현 九단과 절친한 사이로 유명하다. 차민수 五단이 공군본부에서 방위병으로 복무하면서 장교들을 바둑으로 때려잡고 다니자, 그에게 번번이 진 간부들이 당시 공군본부에 현역 복무중이던 조훈현을 데려와서 대리전을 붙인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 둘은 군복무 기간에만 100여 판이 넘는 대국을 두면서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덤으로 조훈현과 대결하며 '세상에는 넘사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은 차민수는 곧장 미국 이민을 택했다나 뭐라나.

조훈현 九단과 에피소드가 인터넷 바둑에서도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는데 2000년대 초반 인터넷 바둑이 보급되던 시절 거의 대부분의 게임을 이겼는데 그러다가 자신을 어떻게 플레이해도 반집차로 이기는 상대를 만났다고 한다. 수십판을 내리두고 물어보니 그 사람이 조훈현이었다는 일화가 월간 바둑에 소개된 적이 있다.

서봉수 九단과도 깊은 인연이 있는데, 그가 고3 때 고1이었던 서봉수와 기원에서 만난 것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가 3점을 접어줄 정도였는데 단기간에 따라잡히더니, 서봉수 九단이 먼저 프로에 입단[5]한 이후로는 자신이 흑을 잡고도 거의 이기기 힘들 정도가 됐다고(...).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일어난 천안문 사건으로 인해 중국 공산당수배에 쫓기고 있던 루이나이웨이 九단과 장주주 九단 부부한국기원으로 데려온 사람이다. 홍콩을 거쳐 대만, 미국 등에 머물며 일본으로 망명을 신청했지만 일본기원에서 활동을 거부당한 루이-장 부부를 차민수 五단이 보고 조훈현 九단과 상의하여 한국기원에 데려온 것. 이후 루이나이웨이 九단의 활약이 촉매가 되어 한국 여류바둑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생각하면 일본기원은 땅을 치고 후회할 듯

몇 년 전부터는 카지노 관련 사업들과 함께 다시 바둑 쪽에도 신경을 쓰는 듯하다. 한국바둑리그에서 감독 겸 선수를 맡아 활약하기도 했고[6], 국내기전에도 간간이 출전하는 중. 그리 눈에 띄는 승률이나 성적은 아니지만 신예 기사들을 상대로는 나름 선전하고 있다.

2014년 4월 14일, 五단으로 승단했다. 19기 LG배 조선일보 기왕전에 참가하였는데, 예선전에서 승리하면서 五단으로 승단하기 위해 필요한 점수를 채웠다.

3 더 지니어스 게임의 법칙에 참가

2013년 더 지니어스:게임의 법칙에 참가했는데, 예상과 달리 3회 만에 탈락하며 화제와 논란을 낳았다.

탈락 당시 진행했던 데스매치의 상대는 인피니트김성규였는데, 차민수의 입장에서는 아들뻘 애송이에 지나지 않는 상대였다. 게다가 진행했던 게임 자체도 완벽한 심리전 게임인 전략 윷놀이였다. 오랜기간 포커플레이어에, 바둑기사로까지 활동했던 그가 이런 게임에서 성규에게, 그것도 갑작스럽게 역전패로 진다는 것 자체가 쉽게 납득할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 탈락한 데 대해 '각본이 아니냐'는 의문이 많았고 제작진이 직접 해명하기도 했다. 일단 당사자의 입장은 인터뷰를 참조. 일단 기본적으로는 중후반까지만 해도 압도적으로 쳐바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것.

하지만 존재감 없이 있다가 광탈했느냐? 라고 물으면 절대 그렇지는 않다. 초반부 다수 연합 세력의 수장으로 활동하며 김구라와 게임의 양대산맥을 이뤘으며,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빠르게 게임을 이해한 다음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필승전략을 설명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선대용사? 특히 게임에 대한 설명이 끝날때마다 말버릇으로 "심플?" 이라고 말하는데, 이 발음이 아주 찰지다.(...) 씜플? 그래서 별명이 차씜플

어쨌든 그는 처음부터 참가자, 제작진, 시청자들 모두 쉽게 예상할수 있을 정도의 넘사벽 우승후보였고, 실제 게임 내에서도 우승후보다운 우수한 게임 이해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플레이어들에게 지속적으로 각인시켜왔기 때문에 다른 플레이어들의 경계심을 불러일으켰고, 그것이 게임의 탈락 원인이 된 듯 하다.[7] 더 지니어스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차민수/더 지니어스 참조.

이후 극강이라는 자막이 쓰인 짤이 더 지니어스 갤러리에서 돌아다녔다. 극강민수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중 ㄱㄱㅁㅅ^^

4 포커게이머로서의 실력

차민수의 경력에 대한 여러 말들이 오고간적이 있는데 일단 기록상으로는 세간에 알려진 정도로 엄청난 프로갬블러는 아니다.

다만 그렇다고 실력도 없이 아는 척을 한 것도 아니다. 간단하게 PorkerDB[8] 사이트만 참고해도 Amarillo Slim's Superbowl of Poker, Los Angeles 리미트 홀덤 대회[9]를 우승하여 4만 달러, 한화로 3천2백만 원을 거머쥐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당시 96년이었으므로 현재 물가로 환산하면 몇배는 커졌다) 월드 포커 클래식에서도 5만 달러를 획득하여 3등을 차지했지만 WSOP나 WPT같은 대회에서는 뚜렷한 활약을 펼친 적은 없다. 게다가 이 후엔 그렇다할 성적은 없고 어디까지나 차민수도 프로 갬블러로 활약했다는 거지 알려진 것처럼 잘나간 건 아니다. 당장 상금 액수들을 환산해보고 경력들을 알아 보면 알 것이다.

WSOP의 성적은 좋지만은 않다만 나쁜 성적도 아니다. 여러번 출전해서 33회(13위), 34회(8위-5위-7위-27위), 37회(24위-38위)를 하였다. 참고로 대회 참가자는 평균적으로 200명와 비교하면 상당한 상위권이다. 하지만 세계랭커라고 하긴 뭐한 것이, 일반적으로 WSOP라 하면 메인이벤트, 즉 입장금 $10,000에 상금만 $8M 이상 하는 메인이벤트를 일컫는데, 메인이벤트서 입상한 경력은 없다. 그리고, PokerDB에 따르면 미국 내 랭킹이 2천위 밖이며, 세계로 따지면 4천위에 육박한다. 토너먼트 상금이 $320K, 대략 3억2천만 원 정도 된다고 하면 그리 독보적인 플레이어라 할 순 없다. 참고로 한국의 상금순위는 전체 53위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 차민수의 편을 들어주자면. 첫 번째로는 당시 포커씬의 경우 토너먼트 상금풀이 지금처럼 크지 않아 많은 수의 플레이어들이 활동하던 무대는 아니었다. 당시에도 WSOP main event의 우승자에 한해 그 해의 월드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었으나 그 의미는 하나의 명예에 가까웠고 이 타이틀 만으로 플레이어의 실력을 판단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이 대회에서 2회 연속 우승자였으며 현재 살아있는 레전드, 포커의 대부라 불리는 도일 브런슨의 경우 가장 위대한 플레이어로 데이비드 칩 리스를 항상 1순위로 꼽으나 리스의 경우에는 WSOP내 3개의 이벤트를 우승했으나 main event에서는 단 한번도 우승하지 못했음에도 앞서 말한 듯이 최고의 플레이어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현존하는 최강의 플레이어라 여겨지는 필 아이비 조차 메인 이벤트 우승은 한번도 없다. 추가적으로 절대 다수의 포커 플레이어들은 토너먼트 포커와 캐시 포커를 전혀 다른 게임이라 여기고 접근하고 있으며 당장에 유튜브 동영상 몇 개만 보더라도 최고의 토너 플레이어들이 캐쉬 게임에서 죽을 쑤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WSOP내에서 12개의 이벤트에서, 역대 최다, 우승한 필 헬무스가 있다) 두 번째로는 지금은 가장 권위있는 대회가 WSOP, WPT, EPT등이 있지만 당시에는 WSOP 다음의 권위를 가지는 투어는 앞서 이야기한 SBOP였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플레이어로 여겨지며 WSOP main event에서 3번 우승한 스튜어트 에럴 엉거(Stuart Errol Ungar)의 경우에도 최고로 인정받는 이유들 중 하나가 SBOP main event 3회 우승이다. 물론 차민수의 경우 main event가 아니었고 관련 기록도 없기에 때문에 의미가 없다.

그리고 차민수 본인도 자신이 캐쉬게임을 훨씬 많이 했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포커에 손을 대게 된 계기가 돈을 벌기 위함이었기에 당시 크지 않은 상금을 위한 대회도전보다는 캐쉬게임을 선택했다고. 그러므로 대회기록을 통해 차민수의 포커 경력이나 실력을 따진다는 것은 어느정도의 한계점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들 캐쉬게임 기록 또한 다른 세계 최고 갬블러들처럼 좋거나 많거나 한 것도 아니며 현존하는 전설적인 갬블러들은 모두 WSOP 대회같은 대회 참여 및 우승경력들이 있으며 최근 우승자인 미국의 조 맥케헨이나 스웨덴의 마틴 제이콥슨의 경우 지금 제일 잘나가는 선수 중 한 명이다.

과거 신정환의 도박 관련 논란이 있었을 때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인터뷰
  1. 물론 대부분은 각색된거다.
  2. 미국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던 당시 마피아 밑에서 보디가드를 한 적이 있다고 하지만 근거없는 낭설. 전혀 증거나 연계성이 없는 발언이다. 믿지는말자. 애초에 미국내 마피아가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채용하지를 않는다. 영화를 많이 본 듯.
  3. 바이올린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고려했을 정도라고.
  4. 프로자격까지 얻어놓고 미국으로 이민가며 기사생활을 내던진다는게 언뜻 이해되지 않을지도 모르나, 이는 당시 한국 바둑계의 열악한 상황속에서는 특별히 이상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기전 우승상금으로 받은 돈이 우승턱으로 다 나가는게 일반적이었던 때니 말 다했다. 이는 훗날 조훈현과 서봉수의 치열한 대결을 통해 점차 한국바둑이 프로의식을 갖게 됨으로서, 또 인기를 끌며 기사들의 생활 수준이 크게 향상되면서 개선되었다.
  5. 서봉수 九단은 1970년, 차민수 五단은 1974년.
  6. 한게임 팀의 감독을 맡아서 2012년에는 통합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7. 첫회에서 이준석이 탈락한 원인과 비슷한 셈. 김구라도 '차민수를 떨어트려야 한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게임에 참여했다고.
  8. 공교롭게도 아래 서술해 놓았지만 반대로 이 곳 랭크에선 순위밖으로 밀려나있다.
  9. 다만 이 대회가 네임드 있는 대회는 아니다. 게다가 SBOP 메인대회에서 입상한 적은 없으며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