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후한 말과 삼국시대의 여류 문학가
蔡琰
(177? ~ 239?)
대학자 채옹의 딸로 여류 문학가.
자는 소희(昭姬). 채염, 또는 채소희라고 불러야하지만 본명이 서진의 무제 사마염과 겹치고 자가 사마소와 겹쳐서 피휘를 하고보니 문희(文姬)가 되어 흔히 채문희로 알려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사마염은 불꽃 염(炎)이고, 채문희는 옥 염(琰)을 쓴다. 최염(崔琰)을 그대로 최염으로 표기하는 걸 보면 의미에 차이가 있는 문희로 피휘했다고 믿기도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소는 확실하게 겹친다.) 실제로 중국 위키 등에서는 항목 명을 채문희로 두고, 자를 문희와 소희 두가지를 모두 병기하고 있다.
채염의 여동생은 양휘유를 낳아 사마사와 결혼했으며, 채염의 외조카이자 채염의 여동생의 아들이 바로 진나라 명장 양호다. 그러니까 사형과 사형 아들놈 때문에 이름이 망했다.
1.1 생애
어릴 때부터 박학하며 재기가 있어, 말이 시원시원했다. 또 음악에도 정통하여 끊어진 현을 맞춘 일화가 있다.
채염이 6살 때부터 채옹과 밤에 금을 타다가 현이 끊어지자 채염이 2번째 현이라고 말했으며, 채옹이 다시 일부러 현 하나를 끊어놓고 물었더니 4번째 현이라고 하자 채옹이 우연히 맞혔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자 채염은 "오나라의 계찰이 여러 나라의 노래를 관람하고 흥성할 나라와 망할 나라를 알았으며, 사광이 율관을 불어 남쪽 노래가 상대가 되지 못함을 알았습니다. 이로써 살펴보건대 어찌 족히 알지 못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
위중도에게 시집갔지만 위중도가 요절해서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와 낙양에서 살았다.
195년 동탁의 잔당들이 난을 일으키고 흉노족이 이들을 격퇴하기 위해 낙양에 쳐들어왔는데 이 때 그녀의 미모가 출중해서 흉노의 기마병에게 납치되어 남흉노 좌현왕(左賢王) 유표에게 바쳐졌다. 유표의 첩으로서 총애를 받아가며 12년 지나는 동안 그 사이에 1남 1녀를 낳았다. 그 뒤 조조가 흉노족에 사신을 보내 거액을 지불하고 그녀와 그녀의 아이들을 데려오도록 교섭했지만 아이들은 결국 데려오지 못하고 그녀 혼자 돌아오게 되었다.
한편 돌아온 후에 관리 동사(董祀)와 결혼하여 살다가 동사가 형벌을 받아 죽게 되었을 때 조조에게 간청하여 형을 면하게 하기도 했다.
그런데 동사도 얼마 안 가 죽어서 또 재혼을 하고 일생동안 총 4번 결혼했다는 설이 있는데 출처가 불분명하다.
동탁이 죽고 낙양이 이각, 곽사가 싸움을 벌인 삼보의 난으로 채옹의 저술도 많이 사라졌는데, 조조 덕분에 고국으로 돌아온 후에 자신의 기억에 의지해서 아버지의 저술을 복원하는 것에 힘썼다.
조조 덕분에 고국으로 돌아온 후에 조조가 채문희에게 이전에 옛 전적이 많이 있었다고 들었다면서 그것을 기억했냐고 물었다. 채염은 예전에 4천여 권의 책을 주셨지만 난리통에 이리저리 흩어져서 남아 있는 것이 없다면서 자신이 기억해 외울 수 있는 것은 겨우 400여 편이라고 했으며, 조조가 18명의 관리를 보내 베껴오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채염은 남녀는 구별이 있어서 예법상 친히 주고받지 않는다 해 종이와 붓을 주면 진서(해서)든 해서든 분부한 대로 따르겠다고 하면서 전적을 깨끗이 써서 보내 바쳤는데, 문장에 빠지거나 틀린 부분이 없었다고 한다. |
이후 전란으로 유랑했던 비통한 기억을 생각하여 시 두개를 지었다. 하나는 비분가, 또 하나는 호가십팔박(胡笳十八拍, 흉노 노래를 다룬 시)인데 둘 다 현대까지 전해진다. 단, 호가십팔박은 후대의 창작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 자체는 절품이다.
1.2 미디어 믹스
1.2.1 삼국지 시리즈
삼국지 8,9 | 삼국지 10,11 |
삼국지 12,13 |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정식 무장으로 등장하는 것은 11편부터고 그 이전에는 NPC로만 등장했다.
삼국지 8에서는 홀로 여도사로 나오지만 결혼은 불가능하다. 장안에 붙박이로 체류해 여러 기술을 가르쳐준다.# 대신 낡은 칠현금(금 3000)을 가지고 있으면 외모가 별로인 장용을 아내로 삼을 수 있다.# 이제 보니 소개팅 전문 주선자
삼국지 9에서는 207년 이전에 낙양의 평양을 수색하면 채염 귀환 이벤트가 뜬다. 금 1000을 소비하여 채염을 귀환시키면 채염을 귀환시킬 수 있는데 실행무장의 지력과 세력의 신망이 오른다. 이 이벤트 이후 혹은 시나리오 6 이후에 낙양을 수색하면 채염을 만나는 이벤트가 나오며 실행 장수에게 혼란, 연사, 덫, 투석 순으로 병법을 알려준다. PS2판에서는 진삼국무쌍 3 엠파이어즈의 데이터가 존재할 경우 신무장으로 등록되며, 72/12/88/86의 좋은 군사형 능력치에 돌진, 비사, 혼란, 배반 등의 고급 전법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는 설전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왜 채염과는 결혼할 수 없냐고 항의하는 유저들이 간혹 있었다.(...)
삼국지 11에서는 드디어 무장으로 직접 사용 가능. 능력치는 12/11/77/80/87. 일러스트가 예쁜 편이기 때문에 감상하고 싶다면 뭐 상관 없지만(...). 특기가 시상이라 군악대 만들고 기력 회복에 도움이 된다.
삼국지 12에서의 전법은 뜬금없이 화계. 여담이지만 흉노족이 등장하는 삼국지 12의 특성상 195~206년까지는 흉노족 장수로 등장해도 될 법한데 이 기간에는 뜬금 없이 사망으로 처리되어 있다. 따로 이벤트도 없어서 195년 부터 200년 시나리오 사이에는 그녀를 볼 수 없다. 그러다가 207년부터는 조조군 장수로 등장.
삼국지 13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61/11/77/80 이고 중신특성은 합리철저. 전법은 기병수비진이며 병과적성은 창C/기B/궁C. 특기는 농업2, 문화6, 교섭3, 신속3 이다. 나름 중신특성도 있고 문화가 높은 장수는 많지 않기 때문에 열심히 내정 돌리면 된다. 다만 일러스트를 12의 것을 그대로 가져왔는데 10,11보다 역변했다는 평이라 전 시나리오에서 모두 미혼으로 차리되어 있는데도 인기는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채염과 비슷한 이미지의 신무장 얼굴이 있지
1.2.2 진삼국무쌍 시리즈
채문희(진삼국무쌍) 항목 참조.
1.2.3 창천항로
창천항로에서는 북방을 토벌한 조조의 대사 속에서 언급된다. 상기의 이유로 흉노에게 있었고 채옹의 시가 흉노인들의 발음으로 남아있다는 이야기.
1.2.4 영웅조조
채옹이 중상시의 모함으로 삭방에 유배가게 되자 그 전에 조조를 만나 채옹이 조조에게 주라고 한 악기인 금을 전해주면서 집에 찾아왔을 때 조조가 지은 시에 대해 이야기한다.
채옹의 유배가 풀리고 낙양으로 돌아온 후에는 흉노족이 낙양을 공격하자 어떤 흉노족이 겁탈하려 들지만, 채옹과 그의 딸을 알고 있는 흉노족 사람이 채염을 정중히 흉노로 모시게 하면서 흉노로 끌려간다. 조조가 교섭을 통해 채염은 중원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는데, 한나라, 흉노 양 측의 평화와 함께 고향을 잊은 적이 없었기에 돌아가기로 한다.
중원에 돌아와서 동사와 결혼했다가 동사와 죄를 지어 죽을 위기에 처하자 동사를 살려주길 요청하며, 동사의 보살핌 덕분에 살아남은 것으로 자신을 위하려다가 죽을 위기에 빠진 것을 이야기한다. 조조가 반 년 안에 채옹이 가지고 있던 4천 권의 장서의 내용을 모두 작성한다면 동사를 무죄로 방면하기로 하는데, 채염이 이 일을 반 년 안에 해낸다.
2 후한 말의 인물
蔡琰[1]
생몰년도 미상
자는 문규(文珪).
후한 말에 여러 채씨들이 가장 번성했는데, 파서태수를 지냈고 채모와 같은 할아버지였다고 한다.
풍속통의에 따르면 동래태수 채백기(蔡伯起)의 아들로 왕부가 남양태수에 임명되면서 채백기의 아들을 등용시키려 했는데, 채백기가 채찬이 아직 어리다고 하면서 동생인 채염은 어른스럽다고 해서 등용되었다. 이로 인해 채염은 채찬보다 1년 일찍 등용되었다.
2.1 미디어 믹스
같은 꿈을 꾸다 in 삼국지에서는 채모의 종제로 형주의 팔대명가에 해당하는 진가는 유기를 지지하면서 무력을 바탕으로 나머지 일곱 가문을 위협하고 있었는데, 진가를 견제하기 위해 채염은 신야에 군 지휘관으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채부인 소생에게서 유종이 태어나자 진가가 채가에게 경고하는 차원에서 진가에게 살해당했으며, 문빙은 진가에 파견되는 고수 두 명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라 자인했다. 진가에서 형남 4군 공략을 구실로 황충을 남쪽으로 내려보낸 상황이라 채염이 죽자 채모는 마땅히 신야에 보낼 장수가 없었다.- ↑ 여류 문학가 채염과 동명이인. 한자까지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