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기독교

<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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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대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움’으로, 그 백성을 ‘기쁨’으로 창조하리라. 나는 예루살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나의 백성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 그 안에서 다시는 우는 소리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리라. 거기에는 며칠 살지 못하고 죽는 아기도 없고 제 수명을 채우지 못하는 노인도 없으리라. 백 살에 죽는 자를 젊었다 하고 백 살에 못 미친 자를 저주받았다 하리라. 그들은 집을 지어 그 안에서 살고 포도밭을 가꾸어 그 열매를 먹으리라. 그들이 지어 남이 그 안에서 사는 일이 없고 그들이 가꾸어 남이 그것을 먹는 일이 없으리라. 정녕 내 백성의 수명은 나무의 수명과 같고 내게 선택받은 이들은 저희 손이 이룬 바를 즐기리라. 그들은 헛되이 수고하지 않으며 자식을 낳아 끔찍한 일을 겪지 않으리니 그들은 주님에게 복 받은 종족이며 그들의 자손들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부르기도 전에 내가 대답하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내가 들어 주리라. 늑대와 새끼 양이 함께 풀을 뜯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며 뱀이 흙을 먹이로 삼으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그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라.”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이사야서 65장 17절~25절.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 마태오 복음서 5장 8절.
"천국은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1] - 마태오 복음서 13장 44절~46절.
그 뒤에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맞을 신부가 단장한 것처럼 차리고 하느님께서 계시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 나는 옥좌로부터 울려 나오는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제 하느님의 집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있다. 하느님은 사람들과 함께 계시고 사람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하느님이 되셔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다. 이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에 싸여 그 빛은 지극히 귀한 보석과 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과 같았습니다. 그 천사는 또 수정같이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나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느님과 어린 양의 옥좌로부터 나와 그 도성의 넓은 거리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었습니다. 강 양쪽에는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달마다 열매를 맺고 그 나뭇잎은 만국 백성을 치료하는 약이 됩니다. 이제 그 도성에는 저주받을 일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과 어린 양의 옥좌가 그 도성 안에 있고 그분의 종들이 그분을 섬기며 그 얼굴을 뵈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마에는 하느님의 이름이 새겨져 있을 것입니다. 이제 그 도성에는 밤이 없어서 등불이나 햇빛이 필요없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빛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 무궁토록 다스릴 것입니다. - 요한묵시록 21장 1절 ~22장 5절 중.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은 다음 2가지 뜻이 있다.

1. 현세적 개념에서, 하느님의 통치가 실현되어 평화가 구현된 이상적 세계 질서
2.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다음 죽은 사람의 영혼이 종말에 있을 부활을 기다리며 안식을 취하는 곳

원래 성경 해석자들이 이해하는 천국이라는 단어는 2번 개념 한정이었다. 그러나 가톨릭에서 천국이라는 표현을 1번 개념으로 사용한 이후, 1번과 2번 모두를 '천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지칭하게 되었다. 일단 가톨릭에선 하느님의 나라=하늘나라=천국이며 1번, 2번 모두를 뜻하는 말이다.

2 이상적 세계 질서

성경에서 말하는 본래의 천국 개념. 동의어는 아래 서술했듯 '하느님 나라'.

기독교에서는, 이 세상의 마지막 때에 예수의 재림, 전 인류의 부활, 최후의 심판을 통해 전 우주에 걸쳐 하느님의 다스림이 실현되고, 공평하고 정의로운 새 세상이 열린다고 믿는다. 이렇게 하느님의 다스림이 온전히 실현된 이상적 세계질서를 가리키는 말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 그리스어로 '바실레이아 투 쎄우' 이다. 기독교는 이러한 하느님의 나라를 이상적 세계질서로 내세운다.

이렇게 하느님의 다스림이 완벽하게 실현되어, 하느님의 공평과 정의가 구현된 이상적 세계가 바로 기독교의 하느님의 나라다. 하느님의 나라라는 표현은 마르코 복음서루카 복음서에서 사용되었다. 그런데 같은 공관복음서라도 마태오 복음서은 예외적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모두 '하늘 나라' 또는 '천국', 원문에는 '바실레이아 투 우라논'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유대 전통에서 하느님을 '하늘'로 지칭했기 때문이다.

즉 어원적 의미를 놓고 보면 '천국'과 '하느님의 나라'는 완전한 동의어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 심지어 개신교인들조차도 이러한 '하느님의 나라'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낙원과 천국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2] 이는 개신교가 전파되고 보급되면서 개신교에서 말하는 낙원 개념이 다른 종교에 존재하는 천국 개념과 유사한데, 마침 성경에서 죽어서 가는 낙원이 아니라 기독교의 이상세계인 하느님의 나라를 '천국'이라고 지칭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오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일단 전문 신학자들은 천국에 대해 사람이 죽었을 때 구원을 받은 사람이 들어가는 장소가 아니라, 기독교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세계 질서로서의 하느님의 나라를 가리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어쨌든, 개신교에서 말하는 천국은 '이 세상의 종말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에서 구현될, 지상 낙원지상락원과는 다르다! 지상락원과는!과 같은 하느님/하나님의 다스림'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에 대해 나들목교회 대표목사 김형국의 저서 <청년아 때가 찼다>의 내용을 인용하여 개신교의 용어 정의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님의 주요 사상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많은 사람이 '사랑'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예수님의 주요 사상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의 윤리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랑보다 더 큰 개념입니다. 마가가 예수님의 복음을 설명하는 첫 번째 말씀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였고, 마태 역시 비슷하게 "이 때부터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라고 기록했습니다. 마태가 사용한 '천국'이라는 표현은 마가가 사용한 '하나님 나라'와 동일한 뜻입니다. (중략)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위해 쓴 복음서입니다. 유대인들은 감히 '하나님'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기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 대신 완곡하게 '하늘에 있는 나라'(Kingdom of Heaven)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중략)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원래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을 살려 썼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와 '천국'은 독자에 따라 표현을 달리했을 뿐 동일한 단어입니다. (중략) 예수님이 오셔서 선포하신 것이 공통적으로 하나님 나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중략) 하나님 나라는 복음서 전체에 흐르는 주제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사랑하며 예수님을 따라간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나라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중략)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의 중심 사상입니다. [3]

2.1 용어정리

개신교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 천국(The kingdom of heaven) :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함 (사후 세계를 일컫는 용어가 아님)
  • 하늘(heaven) :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초월적인 장소, 하늘(sky)과는 다른 말
  • 낙원(utopia) : 예수님을 믿고 죽은 영혼들이 머무르는 장소. 하늘과 가까운 장소
  • 음부(sheol 또는 hades) : (의인과 악인 구별 없이)죽은 영혼들이 머무는 장소를 일반적으로 일컫는 말. 둘로 나뉘어 어두운 쪽에 악인이 밝은 쪽에는 의인이 있다. 낙원도 음부의 일부분인 것 같다.
  • 지옥(gehenna 또는 hell) : 죽은 영혼들이 마지막에 부활한 후 최후 심판을 받고, 그 결과로 악인들이 가게 되는 장소 [4]

하지만 가톨릭에서는 '천국'과 '낙원'을 동의어로 간주하여, 둘 다 죽은 뒤에 영혼이 겪는 사후 상태로 생각한다. 또한, '음부'를 '저승'이라고 부르며, 그리스도 이전 죽은 의인들이 머무는 곳으로 생각한다. 이 외에 개신교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연옥 개념이 있다. 이러한 것이 가톨릭과 개신교 용어의 차이점이다.

2.2 3번 항목과의 차이점

신약성경에 나타난 예수의 발언들을 보면 다음과 같은 점에서 2번과 3번 항목이 서로 구별되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영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마태오복음 12장 28절)
  •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코복음 1장 15절)
  •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하느님의 나라가 권능을 떨치며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마르코복음 9장 1절)
  •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루카복음 11장 20절)
  •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루카복음 17장 20~21절)
  •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루카복음 21장 31절)
  • 이 사람은 의회의 결정과 처사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유다인들의 고을 아리마태아 출신으로서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루카복음 23장 51절)

이러한 내용들을 보면 하느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오는', 이 세상에 '구현되는' 개념이지 죽은 다음에 들어가는 사후세계의 개념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인들은 재림, 최후 심판, 부활, 그리고 영원한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서 믿으며,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게 부활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사후 세계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사후 세계에서 부활을 기다리다가 부활을 해서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다.

다만 낙원이라는 곳이 종말에 이루어질 하느님의 나라와 본질과 속성 면에서는 같다는 것, 그리고 낙원과 하느님의 나라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는 점에서 낙원을 '천국'으로 지칭하는 것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낙원에 간 사람들은 부활한 다음 하느님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릴 것이 확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낙원에 들어가는 것이 종말론적 이상 세계로서의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사실상 본질 면에선 똑같다. 그리고 낙원의 본질 역시 하느님의 나라의 본질과 같다. 낙원은 하느님의 통치가 '육체로부터 분리된 영혼'에 대해 이루어지는 곳이라면,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통치가 '전 우주와 물질 세계에 걸쳐서' 이루어지는 곳이다. 둘 다 하느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긴 마찬가지.

2.3 현재적 하느님의 나라와 미래적 하느님의 나라

위에서 예수의 발언을 보면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와 있다'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즉, 성경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나라에는 '지금 여기 이 땅에서 구현되는 하느님의 통치'로서의 개념, 다시 말해 '현재적 하느님의 나라'가 있는 동시에, 또한 '미래에 완성될 하느님의 통치, 하느님의 통치가 전 우주에 걸쳐 구현되어 성취될 이상적 세계질서'로서의 개념, 즉 '미래적 하느님의 나라'가 있다. 요약하면, 하느님의 나라는 지금 이 땅에 와 있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합동신학대학원의 이승구 교수는 2013년 8월 10일에 있었던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구약 선지자들에게 있어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먼 미래의 일이었다. 당시 유대인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고 바리새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는지가 그들의 관심사였다. 하나님 나라는 오는 것이었다. 장차 올 나라,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을 말한다. 그런데 마태복음 12:28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메시야 사역을 언급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였다"고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말한다. /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과 현재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유대인에게는 '세상' 개념이 없다. 세상을 시간 개념으로 즉, '세대'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 세대가 끝나면 또 다른 세대가 온다고 생각했다. 유대인에게는 오는 세대가 하나님 나라다. 이 세상(세대)과 오는 세상(세대), 이것을 '두 세대 이론'이라고 한다. 이 틀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획기적인 변화를 가지고 오신다. 유대인들은 이 세상이 끝나면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고 한 반면,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겹쳐 있다. 예수님이 처음 오셨을 때 이 겹침이 시작되었고, 즉 오는 세상이 이미 왔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이 세상은 더 이상 있지 않고 이미 왔던 오는 세상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표적들은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음을 보여 준다. 이 표적은 예수님이 누구신가와 동시에 하나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5]

김형국 목사도 <청년아 때가 찼다> 라는 에서 이와 유사한 이론을 전개한 바 있다.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셨을 때에도 '지금 곧 임하였다'는 뜻과 '이제 곧 임할 것이다'라는 두 개념이 공존합니다. 여기에 하나님 나라의 독특성이 있습니다. (중략) 하나님 나라는, 현재 이미 임했지만 아직 완전하게 임할 것이 남아 있습니다.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운 듯하지만, 이 개념은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already, not yet"(이미, 그러나 아직)이라는 말이 바로 이 개념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지만, 아직은 완전히 임한 것이 아닙니다. (중략) 하나님의 다스림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도 있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있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 시대가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가 완전하게 임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중략)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시고, 그가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는 이미 이 땅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하나님 나라는 완전하게 임할 것입니다. (중략) 이것을 '종말론적 이중구조'라고 합니다. [6]

김형국 목사와 이승구 교수의 견해를 종합하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나라는 '현재 이 세상에 와 있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며, 예수의 재림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2.4 종파별 신학적 견해

2.4.1 장로교의 입장

장로교에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을 통해, 다음과 같이 종말에 성취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7]

  1.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실 날을 정하셨는데, 그분은 성부께로서 모든 심판하는 권세를 받으셨다. 그 날에는 배도한 천사들이 심판 받을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땅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와 자기의 생각, 말, 행동을 직고하고,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을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이 날을 정하신 목적은 택하심을 입은 자들의 영원한 구원에서 그분의 자비로우신 영광을 나타내시고, 악하고 불순종하는 버려두신 자들의 영벌에서 그분의 공의로우신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그 때 의인은 영생에 들어가고, 주 앞에서 나오는 충만한 즐거움과 유쾌함을 경험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불순종한 악인은 영원한 고통에 던지우고, 주의 얼굴과 그분의 능력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3. 그리스도는 우리가 심판날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기를 바라시는데, 그것은 모든 사람의 범죄를 막으시고, 고난에 처한 경건한 자들을 더 크게 위로하시기 위함이다. 마찬가지로 그분은 그 날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않으실 것인데, 그것은 그들이 주께서 오실 그 때를 모름으로 인해서 모든 세상적 안일함을 떨쳐 버려 항상 주의하고, "주 예수여 오소서, 속히 오소서, 아멘"이라고 말할 준비가 항상 되어 있게 하시기 위함이다.[8]

장로교 신학자인 이승구 교수는 위의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왕으로서의 통치가 있는 곳이다. 마태복음 4:17에서 예수님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은 죽어서 가는 천국이라는 관념을 깨는 말이다. (중략)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와 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이 나라 안에 있게 된다. 바울은 골로새서 1:13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고 말한다.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지금 여기서 이미 하나님 나라에 있다. 중생하면 하나님 나라에 있는 것이다. 지금 믿는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우리 속에서 의미가 잘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자신이 하나님 나라에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 사람답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은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를 잘 알아서 정치, 경제, 문화 등 사는 모든 영역에서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중략) 구약 시대는 하나님 나라가 아직 오지 않은 시기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하나님 나라가 왔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임했지만, 동시에 아직 오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하나님 나라는 비로소 극치에 이르게 된다. 이미 온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즉 영적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재림 때 눈에 보이게 온다. 이것이 새 하늘과 새 땅이다. / 결론적으로 구원을 세 상황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이 땅에 이미 천국이 임했다. 따라서 우리는 매일 천국을 사는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 둘째,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우리 몸은 썩고 영혼은 예수님이 계신 하늘에 있게 된다. 그리고 셋째,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비로소 우리의 몸은 부활하여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9]

장로교 신학자 가운데,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 신학'을 하나의 신학 체계로 깔끔하게 정리해 신학 이론화한 사람이 바로 숭실대학교 교목실장 김회권 교수이다. 김회권 역시 김영재 교수, 이승구 교수와 마찬가지로 천국에 대한 흔한 오해를 저서 <하나님 나라 복음>에서 강력하게 지적하는 한편, '신의 나라 신학' 체계를 정리하여 신학 이론으로 집대성한 바 있다. 김회권이 집대성한 신의 나라 신학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 나라 복음은 하나님이 이 땅과 세상을 직접 다스리신다는 복음입니다. (중략) 하나님 나라 신학이란 하나님 통치의 목적과 의도의 빛 아래에서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신학입니다. (중략) 하나님 나라 신학은 몇 가지 구체적 명제들로 표현됩니다.

1. 천지 창조와 인간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의 다스림에 있습니다. (중략)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이 하나님의 통치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신학이 하나님 나라 신학입니다. 이 신학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통치는 사랑의 교제와 감복을 가리킵니다. (중략) 이 놀라운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통치 원리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도 영적, 인격적 통치에만 순복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중략)
2. 하나님의 다스림은 하나님과의 교제에 참여할 때 일어납니다(시 22:3). 인간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찬양을 드리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통치가 일어납니다. (중략) 하나님의 다스림은 우리가 신뢰와 순종을 드릴 때, 찬양하고 기도할 때 경험되고 느낄 수 있습니다. (중략)
3. 하나님 통치는 하나님의 맏아들인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가장 현저하게, 지속적으로, 기획적으로 나타났고 그 절정이 아브라합의 후손 나사렛 예수를 통해 구현되었습니다. (중략)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불순종한 아담 인류와 불순종한 이스라엘의 저주받은 역사가 속량되고 갱생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체가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100% 구현된 영토요 백성이었고, 그 스스로 하나님 통치권을 매개하고 구현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혹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라는 말과 동의어가 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중략)
4. 하나님 나라는 나사렛 예수를 주(主)로 영접한 사람들에게 성령 내주와 성령충만으로 실현됩니다. (중략) 하나님 나라 신학은 부활, 승천하신 하나님 아들 예수가 아버지를 대신하여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아 세계를 통치하고 계심을 믿는 신학입니다. 개인의 인격과 삶이 하나님 통치에 편입되는 일은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가능해집니다. (중략) 곧 성부의 성자 파송, 성자의 성부 증언과 성부 순종, 성령의 성자 대리와 증언이 부단한 선순환과 상호 침투를 일으키는 과정을 부각시키는 삼위일체 신학입니다.
5. 마지막으로 하나님 나라는 동심원적 확장 구조를 이루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중략) 하나님 나라 신학은 지금도 예수가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아 세계를 다스리심을 믿습니다. [10]

2.4.2 감리교의 입장

감리교는 좀더 적극적으로 '천국'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있다. 1930년도에 나온 교리적 선언과, 1997년도에 나온 신앙 고백에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 교리적 선언: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실현된 인류사회가 천국임을 믿으며 하나님 아버지 앞에 모든 사람이 형제됨을 믿으며"
  • 신앙고백: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 우리 몸의 부활과 영생 그리고 의의 최후 승리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믿습니다."

감리교는 직접적으로 '천국'을 '신의 뜻이 실현된 인류사회', 곧 '신의 나라'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장로교와 마찬가지로 재림, 심판, 부활, 영생, 신의 나라를 믿는다.

2.4.3 성공회의 입장

성공회의 신앙 고백인 39개조 신조에는 직접적으로 신의 나라에 대한 언급은 없다.[11] 그러나 39개조 신조 가운데 하나가 니케아 신경, 사도신경, 그리고 아타나시우스 신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내용이다.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과 아타나시우스 신경을 보면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 니케아 신경: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영광 속에 다시 오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이다."
  • 아타나시우스 신경: "그가 오실 때 모든 사람들은 자기 육신과 함께 부활하여 자기 행위에 대하여 셈 바치리라. 선을 행한 자는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고 악을 행한 자는 영원한 불로 가리라."

니케아 신경이 번역본이 많은데 이건 성공회 것이다. 여기에서 '그분의 나라'가 바로 이렇듯 이상 세계로서의 신의 나라를 의미하는 것.
아타나시우스 신경을 통해서는 성공회에서도 장로교, 감리교와 유사한 재림, 심판, 부활, 영생,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신앙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공회 신학자인 톰 라이트(Tom Wright) 교수는 '죽음 이후에 영으로 머무르는 중간 상태와 최후 심판 때에 모든 사람이 부활하여 심판을 받고 영생과 영벌로 나뉘게 되는 것은 다른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12] 즉 1번 개념과 2번 개념은 서로 구분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2.4.4 루터교의 입장

루터교의 신앙 고백인 아우크스부르크 신앙 고백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와 있다.

Also they teach that at the Consummation of the World Christ will appear for judgment, and will raise up all the dead; He will give to the godly and elect eternal life and everlasting joys, but ungodly men and the devils He will condemn to be tormented without end.

이것은 예수가 이 세상에 다시 와서 심판을 집행하실 것이며, 모든 죽은 사람들이 부활하게 될 것이고, 의인들(the godly)에게는 영원한 생명과 영속되는 기쁨을, 그리고 악인들과 악마들에게는 끊임없이 고통 받는 저주를 줄 것이라는 내용이다. 다른 종파의 종말 및 부활에 대한 인식과 일치한다.

2.4.5 정교회의 입장

정교회는 '천국'이라는 용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하느님의 나라' 및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교회 교리문답에서 신학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둘째 청원 :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1 '하느님의 나라'는 어떤 것인가?
사도 바울로가 말하듯이 교회에서 존재하는 은총의 나라인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인 것입니다."(로마 14, 17)
2 그러면 그 나라가 아직 오지 않았는가?
은밀히 내부에 와 있다.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겠느냐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질문을 받으시고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하느님 나라가 오는 것을 눈으로 볼 수는 없다. 또 '보아라,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루가 17, 20-21) 하느님의 나라는 바로 그리스도의 교회인 것이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라고 말하면서 모든 세상에 교회가 퍼지기를 기원하고 공번되기를 표현하는 것이다.
3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라는 청원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아 볼 수가 있는가?
이 청원에서 우리는 그의 영광스러운 나라에 그리스도인들을 데려가기 위하여 세상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을 생각할 수가 있다. 이렇게 말로 청원하면서 그리스도와 항상 함께하기 위한 바람을 표현하는 것이며(필립비 1, 23) 그의 영광스러운 나라를 맞이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오심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또한 이 청원은 악마가 아닌 주님의 나라에 동참하고자 하는 우리의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

위와 같이, 정교회는 '신의 나라'라는 용어를 '그리스도의 교회'로 정의한다. 이는 '현재적 신의 나라'를 가리키는 것이다.
한편 정교회에서도 종말론적 개념, 즉 '미래적 신의 나라'에 대한 신학적 개념을 인정하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신앙의 신조 제 11조

6 세상에 종말이 올 것인가?
물론이다. 이 세상에는 종말이 올 것이고 영원한 세상으로 변화될 것이다. 사도 바울로는 로마서 8, 21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곧 피조물에게도 멸망의 사슬에서 풀려나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스러운 자유에 참여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2서 3, 13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정의가 깃들어 있습니다."
7 세상은 어떻게 변화되는가?
불로서 변화된다. 베드로 2서 3, 7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실 하늘과 땅은 지금도 하느님의 같은 말씀에 의해서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하느님을 배반하는 자들이 멸망당할 심판의 날까지만 보존되었다가 불에 타 버리고 말 것입니다."

정교회에서도 개신교 및 가톨릭에서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개념이 있지만, 그것을 '천국'이나 '하느님의 나라'라고 지칭하고 있지는 않다.
즉, 정교회 신학에서는 '하느님의 나라'라는 단어를 '현재적 하느님의 나라'로 보고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 규정한다. 한편 '미래적 하느님의 나라'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지칭하고 있다.

3 사후의 장소 또는 상태

기독교에서 사후 세계 개념은 다른 종교와는 다르게 좀 특이하다. 기독교는 사후 세계를 믿는다. 그러나 그 사후 세계는 인간이 거기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에서는 이 세상의 종말이 되면 예수가 재림해서 이 세상의 모든 악을 심판하고, 모든 사람들이 부활을 하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고로 기독교의 사후 세계는 이렇게 종말과 최후 심판, 부활과 하느님의 나라가 있기 전까지, 죽어서 육체와 분리된 영혼들이 머물러 있는 '대기실'의 개념이다. 이는 하느님의 나라에 남아서 영생을 누릴 의인들은 신 안에서 완전한 행복을 누리고, 하느님의 나라 밖으로 쫓겨나 영원히 고통을 받을 악인들은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져서 완전한 불행을 누리며 부활을 기다린다고 믿는 것이다.

가톨릭의 경우에는 이렇게 죽은 의인들의 영혼이 부활을 기다리며 완전한 행복을 누리는 곳을 '천국', 악인들의 영혼이 부활을 기다리며 완전한 불행을 누리는 곳을 '지옥', 그리고 의인이긴 하지만 죄를 지어서 아직 완전한 행복을 누릴 자격이 안 되는 사람들의 영혼이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면서 또 한편으로는 하느님 안에서 완전한 행복을 누릴 것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불완전한 행복' 을 누리는 곳을 '연옥' 이라고 부른다. 즉, 가톨릭에서 말하는 천국과, 개신교에서 말하는 천국은 다른 개념이다.

그러나 개신교의 경우에는 모든 신학과 교리의 근거를 성경에서 찾는 원칙에 따라 일단 '연옥'을 부인한다. 그리고 가톨릭의 '천국'에 해당되는 곳과 '지옥'에 해당되는 곳도 인정하긴 하지만 다른 용어를 사용해서 지칭한다. 상단의 '용어정리' 부분 참고. 즉 개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고, 육체는 땅에 묻혀서 종말에 있을 부활을 기다리며, 영혼은 의인일 경우 '낙원'으로 가고 악인일 경우 '음부'로 가서 부활을 기다린다고 믿는다.

3.1 개신교의 입장

개신교의 경우, 자세한 내용은 낙원/기독교 항목 참조.

3.2 가톨릭의 입장

가톨릭은 '천국' 이라는 단어를 '사후의 상태' 개념으로 이해한다. 이는 사도 시대로부터의 전승, 곧 성전에 따른 것이다. 성전이란 글로 기록되지 않고 전해 내려오는 전승을 가리키는 용어인데, 가톨릭에서는 성전을 인정하기 때문에 '천국'이라는 단어를 사후 세계, 더 정확히 말하면 사후의 상태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는 것이다.

여담으로 가톨릭에는 '천국에 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교황이 되는 것'이라는 오래된 농담이 있다. 교황의 신성함을 주장하는게 아니라, 교황이란 직책은 대단히 책임이 막중하고 그 업무의 양도 많아서 누구보다 빨리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

3.2.1 가톨릭의 사후 상태

가톨릭에서의 '천국'은 사후 세계를 지칭하는 공간적 개념+사후의 상태이다. 이것이 어떠한 상태인지에 대해서는 가톨릭 교리서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1023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간직하고 죽은 사람들과 완전히 정화된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된다. 그들은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1요한 3,2) “얼굴과 얼굴을 마주”(1코린 13,12) 보기 때문에 영원히 하느님을 닮게 될 것이다. 사도들에게서 이어받은 권위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린다. 곧, 하느님의 보편적인 안배에 따라 모든 성인의 영혼과……다른 모든 죽은 신자들, 그리스도의 거룩한 세례를 받고 죽은 사람들로서 그들이 죽을 때 더 이상 정화할 것이 없었거나……나아가 정화해야 할 것이 과거에 있었거나 정화할 것을 지닌 채 죽었어도 죽은 후에 온전히 정화된 영혼들은……그들의 육체 안에서 부활하기 전에, 그리고 최후의 심판 전에, 그리고 우리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부터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 하늘 나라, 하늘 낙원에서 거룩한 천사들의 모임에 받아들여졌으며, 받아들여지고 있고, 받아들여질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이후로 이 영혼들은 어떠한 피조물도 거치지 않고 지복 직관으로, 얼굴을 맞대고 신적 본질을 보았고, 보고 있다.

1024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과 함께하는 이 완전한 삶, 곧 성삼위와 동정 마리아와 천사들과 모든 복되신 분들과 함께 하는 생명과 사랑의 이 친교를 ‘천국’이라고 부른다. 천국은 인간의 궁극적 목적이며, 가장 간절한 열망의 실현이고, 가장 행복한 결정적 상태이다.
1025 천국에서 사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다. 뽑힌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살지만 그들이 그곳에서 자신들의 참된 신원과 자신들 본래의 이름을 간직하며, 간직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발견한다고 할 수 있다.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 생명이 있고 하늘 나라가 있다.
102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천국을 ‘열어’ 주셨다. 천국의 복된 사람들의 삶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결과를 완전히 차지하는 데 있으니,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믿고 당신의 뜻을 끝까지 충실하게 지켜 온 사람들을 하늘의 당신 영광에 참여시키신다. 천국은 그리스도와 온전히 한 몸이 된 모든 사람의 복된 공동체이다.
1027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과 하느님 사이에 이루어지는 복된 친교의 이 신비는 모든 이해와 표현을 초월한다. 성경은 이를 생명, 빛, 평화, 혼인 잔치, 하늘 나라의 포도주, 아버지의 집, 천상 예루살렘, 낙원 등 비유적인 표상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해 준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1코린 2,9).
1028 하느님께서는 초월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당신 스스로 인간이 직접 볼 수 있도록 당신의 신비를 드러내 보이시거나 인간에게 그러한 능력을 주실 때에만 그 참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천상 영광 안의 하느님을 뵙는 것을 교회는 ‘지복 직관’(至福直觀)이라고 부른다. 하느님을 뵙고, 당신의 하느님 주 그리스도와 함께 구원과 영원한 빛의 기쁨에 참여하는 영예를 누리며……하늘 나라에서 의인들과 하느님의 벗들과 함께 불멸의 기쁨을 얻어 누리는 것이 어찌 영광과 행복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1029 지복을 누리는 사람들은 하늘의 영광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피조물 전체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기쁘게 계속 수행한다. 그들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고 있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무궁토록 다스릴 것이다”(묵시 22,5).

한편, 가톨릭에서는 '낙원'이라는 개념을 '천국'과 거의 같은 개념으로 간주한다. 개신교에서는 '낙원'과 '천국'을 엄연히 다른 개념으로 간주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위에 인용된 가톨릭 교리서에서 '천국'을 '하늘 낙원'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또한, 가톨릭 대사전에서는 '낙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천국과 동의어. 폐쇄된 공원 혹은 유원지를 암시하는 고대 페르시아어 'pairidaeza'에서 유래되었으며, 히브리어 구약성서에서는 위의 의미로 3번이나 사용되었다(느헤 2:8, 코헬 2:5, 아가 4:13). 70인역 구약성서는 에덴 동산을 가리키는 말로 이 말을 사용하였다. 후기 유대문학에서 낙원은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랍비문학에서 많이 보인다), 정신적인 것이든 축복받은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더 쓰이게 되었으며, 신약성서에서도 정신적인 의미로 3번 사용되었다. 신약성서에서 ‘낙원’은 루카 복음서 23:43에서 처음 나오는데,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회심한 우도(右盜)에게 낙원에 대한 약속을 한다. 또한 요한묵시록 2:7에는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라는 언급이 나오며, 바오로는 코린토2서 12:4에서 낙원으로 붙들려 올라간 그리스도 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중세문학, 특히 후기에서 이에 대한 많은 고찰이 엿보인다. 근대에 있어서 낙원은 흔히 미래의 축복 상태를 암시한다.

즉, 가톨릭에서는 낙원=사후세계=천국의 등식이 성립한다. 앞서 말했듯 이는 사도 전승에 근거를 두고 있다. 개신교에서는 사도 전승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가톨릭과 개신교의 '천국' 개념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낙원'은 장소의 개념이고, '천국'은 상태의 개념이다. '천국'이라는 단어가 위의 교리서에 나와 있는 것과 같이, '죽어서 하느님과 함께 있을 수 있기에 누릴 수 있는 영원한 생명과 끝 없는 초자연적인 행복의 상태'를 가리킨다면, 그러한 상태로 존재하는 장소가 '낙원'인 것이다. 하느님이 있는 '장소'가 낙원이라면, 하느님과 함께 있는 '상태'가 천국이라는 것이므로, 거의 같은 개념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3.2.2 가톨릭의 종말론

그러나 가톨릭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나라'를 믿고 있으며, 단지 그것을 '천국'이라는 말보다는 '하느님의 나라','새 하늘 새 땅'으로 더 자주 표현할 뿐이다.

가톨릭 교리서에는 첫째로 '미래적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이를 보면 가톨릭에서도 이상세계로서의 하느님의 나라를 믿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038 최후의 심판에 앞서 “의로운 이들이나 불의한 자들이나”(사도 24,15) 죽은 모든 이가 부활할 것이다.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요한 5,28-29). 그때에 그리스도께서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마태 25,31-33.46).

1039 진리이신 그리스도 앞에서 각 사람이 하느님과 맺은 관계의 진상이 결정적으로 밝혀질 것이다. 최후의 심판 때에 각 사람이 지상 생활 동안 선을 행하였거나 이를 소홀히 한 일의 궁극적 결과까지도 드러날 것이다. 악인들이 행하는 모든 악이 낱낱이 기록되는데, 그들은 이것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 하느님께서는 잠잠히 아니 오시니"(시편 50(49),3)……그분께서는 왼쪽에 있는 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는 너희를 위해 내 보잘것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세상에 있게 했다. 그들의 머리인 나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지상에서 내 지체들은 고생하며 굶주리고 있었다. 만일 너희들이 내 지체들에게 베풀었더라면 너희가 준 것이 머리에까지 이르렀을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보잘것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세상에 둔 것은, 너희들의 선행을 나의 보물 창고로 가져올 심부름꾼으로 그들을 세운 것이었다. 그런데 너희는 그들 손에 아무것도 맡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 앞에서 아무것도 찾을 것이 없다."
1040 최후의 심판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 때에 이루어질 것이다. 아버지만이 그 시간과 날짜를 알고 계시며, 그분만이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결정하신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역사 전체에 대한 당신의 결정적인 말씀을 선포하실 것이다. 우리는 창조 업적의 궁극적 의미와 구원 경륜 전체를 이해하게 될 것이며, 모든 것을 그 궁극적 목적으로 이끄시는 당신 섭리의 놀라운 길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최후의 심판은 사람들이 저지른 모든 불의에 대하여 하느님의 정의가 승리한다는 사실을 드러낼 것이며, 당신의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1041 최후의 심판에 관한 가르침은, “은혜로운 때에, 구원의 날에”(2코린 6,2) 회개하라고 하느님께서 아직도 사람들에게 하시는 호소이다. 이는 하느님에 대한 거룩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고, 하느님 나라의 정의를 촉구하며, “당신의 성도들 가운데에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이들 가운데에서 칭송을 받으실”(2테살 1,10) 주님의 재림에 대한 “복된 희망”(티토 2,13)을 알리는 것이다.
1042 종말에는 하느님 나라가 완전하게 도래할 것이다. 최후의 심판 후에 육체와 영혼이 영광스럽게 된 의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다스릴 것이며 우주 자체도 새롭게 될 것이다. 온 교회는 "비로소 천상 영광 안에서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는 인간과 밀접히 결합되어 인간을 통하여 그 목적에 이르는 온 세상도 인류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새롭게 될 것이다."
1043 인류와 세상을 변화시킬 이 신비로운 새로움을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2베드 3,13)이라고 부른다. 이는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에페 1,10) 하느님 계획의 결정적 실현이 될 것이다.
1044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이 새롭게 된 하늘의 예루살렘에서, 사람들 가운데 거처하실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묵시 21,4).
1045 인간에게 이 완성은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 원하신 인류 일치의 궁극적 실현이 될 것이며, 순례 중인 교회는 바로 이 일치의 "성사"이다. 그리스도와 결합된 사람들은 구원된 사람들의 공동체, 하느님의 "거룩한 도성"(묵시 21,2), "어린양의 아내인 신부"(묵시 21,9)가 될 것이다. 이 공동체는, 지상의 인류 공동체를 파괴하거나 상처를 입히는 죄와 더러움과 이기주의로 생겨나는 상처를 더 이상 입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선택된 사람들에게 당신을 무궁히 드러내 주실 지복 직관은 행복과 평화와 상호 친교의 마르지 않는 샘이 될 것이다.
1046 우주와 관련하여 계시는 물질세계와 인간 사이의 깊은 공동 운명을 이야기한다.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로마서 8,19-23).
1047 그러므로 가시적인 우주도 역시 변화되고, "세상 자체도 그 최초의 상태로 복원되어 아무 장애 없이 의인들에게 봉사하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들이 누릴 영광에 참여하게 되어 있다.
1048 "우리는 땅과 인류가 완성되는 때를 모르며, 우주 변혁의 방법도 알지 못한다. 죄로 이지러진 이 세상의 모습은 반드시 사라진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정의가 깃드는 새로운 집과 새로운 땅을 마련하시리라는 가르침을 우리는 받고 있다. 그 행복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평화의 모든 열망을 채우고 또 넘칠 것이다."
1049 "그러나 새로운 땅에 대한 기대가 이 땅을 가꾸려는 관심을 약화시켜서는 안 되고, 오히려 그러한 관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이 땅에는 이미 새로운 세기의 어떤 밑그림을 제시하여 줄 수 있는 저 새로운 인류 가족의 몸이 자라고 있다. 따라서 현세 진보는 그리스도 왕국의 발전과 신중하게 구별되어야 하지만, 그 진보가 인간 사회의 더 나은 개선에 이바지할 수 있는 그만큼, 하느님 나라에 커다란 중요성을 지닌다."
1050 "인간의 존엄과 형제적 친교와 자유의 가치들, 곧 우리 본성과 노력의 훌륭한 열매인 이 모든 것을 우리가 주님의 성령 안에서 주님의 명령에 따라 지상에 널리 전파한 다음, 그리스도께서 성부께 보편되고 영원한 나라, '진리와 생명의 나라,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를 돌려 드릴 것이다.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통해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1코린 15,28) 것이다. 우리의 실체적이고 참된 생명은 성부께서 성자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모든 이에게 샘물처럼 부어 주시는 하늘의 선물입니다. 그분의 자비로써 우리 인간들에게 참으로 영원한 생명의 선물이 약속되었습니다.

한편 '현재적 신의 나라'에 대한 개념은 교리서에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다.

567 하늘 나라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지상에서 개시되었다. "하느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활동과 현존 안에서 사람들에게 빛나기 시작한다." 교회는 이 나라의 싹이며 시작이다. 그 열쇠는 베드로에게 맡겨졌다.

또한, 가톨릭 전례사전에서는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나라'라는 용어는 하느님이 왕으로 인식되고 모든 것이 그분께 굴복하는 상태를 뜻한다. 하느님 나라는 하늘나라와 같은 말이다. 하느님 나라는 요한 세례자가 선포하였고(가해 대림 시기 제2주일 - 복음) 예수께서 시작하셨으며(사순 시기 제2주간 수요일 - 복음) 교회 안에서 계속되고(연중 시기 제14주간 수요일 - 복음과 가해 연중 시기 제21주일 - 복음) 재림 때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의 영광 안에서 결정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다해 대림 시기 제1주일 - 복음).

하느님 나라의 구성원들은 하느님의 자녀이며 이 세상에서도 미래 세계에서 완전히 성취될 영원한 생명을 맛본다(나해 사순 시기 제4주일 - 복음).
하느님 나라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명백히 언급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하고 보편적인 나라, 진리와 생명의 나라, 성성과 은총의 나라,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를 다스리신다(감사송). 지상에서 나라는 불완전하지만 천상에서는 완전하다. 우리가 예수님의 복음에 따라 살면 그분 나라의 기쁨에로 나아갈 것이다(영성체 후 기도).

또한 다음은 가톨릭 용어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하느님 나라란 하늘 나라, 즉 천국을 말한다. 이는 예수께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신 데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여기의 하늘 나라란 하느님이 사람의 심성과 세상 만사의 주님으로 군림하시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기에 세상 만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며, 세상 만사가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날은 바로 하느님 나라의 완성이다. 하느님의 백성이란 원래는 이스라엘 민족을 일컬었으나, 지금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를 말한다. 따라서 누구든지 세례로써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라는 법도를 지키고 하느님의 자녀라는 새 신분을 누리면, 이는 하느님의 백성인 것이다"(마르 14,24; 사도 3,25; 로마 1,7). <하느님 나라와 백성-용어사전>

성서에서의 천국은 물질적인 천체, 하느님의 거처, 천국에 사는 자의 상태를 나타낸다. 교리적으로는 완전한 초자연적 행복이 있는 곳, 혹은 그 상태를 말한다. 천국의 행복은 지복 직관과 하느님의 사랑으로 되어 있다. 세상의 종말과 육신의 부활이 있을 때까지는 그리스도와 성모님 이외에는 영혼만 들어갈 수 있다. 천국은 영원하기에 결국 천국이란 최후의 심판 뒤에는 부활한 영혼과 육신이 들어가는 영원한 행복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마태 25,46). 그런데 우리가 흔히 쓰는 천당(天堂)이란 천국의 옛말이다.<천국-용어사전>

즉 가톨릭에서는 '하느님의 나라=천국=하늘나라'이다. 개신교에서 말하는 '현재적 하느님의 나라'와 '미래적 하느님의 나라' 개념이 가톨릭에도 유사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차이점을 찾자면 가톨릭에서는 '그 열쇠는 베드로에게 맡겨졌다'는 언급을 통해 교황의 권한을 인정하나 개신교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가톨릭에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지상에서 교회가 이룩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불완전하며(현재적 하느님의 나라), 그리스도의 재림 때 완전하게 이루어질(미래적 하느님의 나라) 영원하고 보편적이며, 진리와 생명과 은총과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로 이해하고 있다.

3.3 정교회의 입장

정교회는 '천국'이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정교회 교리문답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의 행적에 따라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신앙의 신조 제 11조

8 모두가 부활할 때까지 죽은 사람들의 영혼은 어떤 상태에 있게 되는가?
공심판의 시기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중간 상태에 있게 된다. 의로운 영혼들은 빛에 있게 되어 영원한 선한 것들을 미리 맛보며 쉬게 되고 불의한 영혼들은 그와는 반대인 상태에 놓이게 되어 영원한 고통을 미리 맛보게 되고 하느님과 멀리 떨어진 상태에 놓이게 된다.
9 왜 죽은 자들의 영혼들에게 죽은 즉시 완전한 행복과 벌을 주지 않는 것인가?
왜냐하면 완전한 심판은 육신의 부활이 있고난 후에 각 사람들의 행적에 따라 최후의 심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로는 디모테오 2서 4, 8절과 고린토 2서 5, 10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 날에 정의의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월계관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 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가는 날에는 우리가 육체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한 일들이 숨김없이 드러나서 잘한 일은 상을 받고 잘못한 일은 벌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0 죽은 이들의 영혼들이 죽음을 당한 후 중간 상태에서 선함과 고통을 맛보게 된다는데 성서 어디에서 그러한 것을 찾아볼 수가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증거하신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 부자와 라자로가 죽은 후 라자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행복을 느끼고 있고 부자는 뜨거운 불 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루카 복음서 16, 19-31)

정교회와 가톨릭의 차이점은, 가톨릭에서는 의로운 영혼들이 '완전한 행복'에 도달한다고 믿지만 정교회에서는 '미리 맛보며' 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아직 완전한 행복을 누리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4 같이보기

기독교/구원과 천국 교리
낙원/기독교
지옥(기독교)
연옥
구원
최후의 심판

예수천국 불신지옥
  1. 천국과 영생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에서의 부귀와 곧 사라질 명예를 버리고 믿음과 선행으로 자신을 천국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들라는 뜻이다.
  2. 합동신학대학원의 김영재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자신의 논문 <믿음 그리고 행함>에서 지적한 바 있다. 같은 대학원의 이승구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흔히 천국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이 있다. '죽어서 천국 간다'는 식의 생각이다. 이는 천국을 죽고 나서 가는 곳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하늘나라'라는 말을 '저 하늘에 있는 나라'로 이해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것과는 다르다." 출처: http://www.kscoramdeo.com/news/articleView.html?idxno=6429
  3. 김형국, <청년아 때가 찼다>, 죠이선교회, 2012, pp.56-58
  4. http://m.goscon.co.kr/articleView.html?idxno=28314&menu=1
  5. 출처: http://www.kscoramdeo.com/news/articleView.html?idxno=6429
  6. 출처: 김형국, 위의 책, pp.97-99
  7. 장로교에서는 하나님 나라 개념과 사후 세계로서의 낙원 개념을 명백하게 구분한다. 자세한 내용은 낙원/기독교 항목 참조.
  8. 출처: http://www.nazuni.pe.kr/faith/creeds/westminster/confession.php
  9. 출처: 위의 기사
  10. 출처: 김세윤/김회권/정현구, <하나님 나라 복음>, 새물결플러스, 2013, 18-24
  11.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성공회는 문서는 해당 이런 신조는 제한적 진리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 시대에, 그 장소의 사람들이 보기에 가장 옳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그 입장을 존중하나, 인간은 무오하지 않기에 시대가 변하면 성공회의 입장도 변할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하자면, 39개신조는 성공회에서 존중하는 문서이고 가치가 있다고 보나 그 내용을 그대로 모든 세계성공회공동체가 동의하지는 않는다.애초에 영국 국교에 해당하는 내용이라 다른데서 적용하기는... 그렇다고 영국 성공회(잉글랜드 성공회)에서도 저걸 그대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12. 출처: Tom Wright, For All the Saints, SPCK 2003, pp. 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