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천국 불신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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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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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천국 불신지옥의 예. 안전모는 정말 이유 없이 그냥 쓴 것일까? 스페이스 마린 분대장 배너 시저의 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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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독교개병대의 만남

'구름 위 성층권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주님을 뵙는다!' 하나님 아버지의 집으로 믿는 자들을 데려가십니다. 정말 너무나 기쁘겠죠? 돌아가신 부모님과 친구들도 만나고요.

불신자들이 겪을 시련에 우리는 마음이 아픕니다. 구원받지 못할 테니까요.

불지옥이던 얼음지옥이던 우리만 살게 되니까 좋다는 이야기죠. '주께 영광을! 미리 준비해서 우린 다가올 재앙에서 빠지자!' 우리 생각이 맞다면 신은 냉정하고 잔인하고 사악해요. 우리가 죄를 짓기를 기다리시다가 이때다! 하고 온갖 고통을 준다는거죠. 불지옥과 얼음지옥이라고요? 말도 안 될 뿐더러 아주 사악한 짓입니다.

네셔널 지오그래픽 채널 <바이블 미스터리 -요한계시록과 종말론>

개신교의 교리 해석 중 하나.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주장하는 교리로, 복음주의 기독교와 개신교 소속의 간판만 걸고 설치는 광신도가 외치는 가장 기본되는 교리와 이 플래카드를 모토로 하는 자칭 '전도 활동' 을 가리키는 일종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예수천국 지옥'이라면 반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겠지만…

사진에서 근거로 든 '요14:6(요한복음 14장 6절)' 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라는 내용이며 '행4:12(사도행전 4장 12절)' 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하는 내용이다. 문맥적으로는 마가(마르코)16:16 (부활한 뒤에 제자들의 부족한 믿음을 책망하며) 믿고 세례를 받는 이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요, 그렇지 않는 사람들은 단죄를 받을 것이다(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1]라는 내용과 연관성이 있다.

2 의미

위 영상은 명동예수천국 불신지옥 전도단에 대한 내용이다. (유튜브)

예수를 모르는 시대에 태어났건 접한 적이 없다면 그 행위로 판단할 수도 있다고 조심스레 주장하거나 우리는 알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아이러니한 부분에 대해서는 성경에 명확하게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천국 불신지옥" 표어가 과격하긴 해도 근본주의 개신교의 정체성을 가장 화끈하게 보여주는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구의 장점이라면 다른 종교의 표어보다 이해하기 쉽다는 것이다.[2] 또한 외부에는 대놓고 말을 잘 하지 않지만 기독교 교파를 가리지 않은 전 세계 보수교단의 교인의 거의 대다수가 실제로 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 예수를 믿지 않았다고 죄 없는 사람을 지옥으로 보낸다는 단순한 논리는 아니고 조금 더 상세설명을 하자면 기독교계에서는 모든 인간은 죄를 가지고 태어나며 살아가면서도 끊임없이 죄를 짓는데 지옥에 가는 것은 단순히 예수를 안믿어서가 아니라 자기가 쌓은 죄 때문에 가는 것이고, 예수를 믿으면 모든 죄가 사해진 깨끗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보면 '예수를 안믿어서 지옥에 가는 것'은 맞다.

마르틴 루터 이래 'sola scriptura(오직 성서)' 의 기치를 내건 개신교 계열에선 이걸 부정하면 그냥 이단 되는 것이다.

한국의 개신교 교파 중 이걸 부정하는 교파는 아무도 없으며, 또한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받고 믿지 않는 자는 지옥 가고 영혼을 구하는 전도행위는 종말 때최후의 심판이 닥치면 예수 그리스도 재림으로 타락한 세상이 멸망하고 불신자가 모조리 심판받기 전, 승천한 예수가 내린 신자들이 따라야할 지상과제로 따르고 있다. 결론적으로 '예수천국 불신지옥' 이라는 외침은 개신교 내부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교리 중 하나이다.

이들은 의도적으로 복음을 회피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한 불신지옥은 역사적으로 아주 분명하고 확실하게 규정해왔고 지금도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신자들의 경우에도 예수를 그릇되게 믿거나 성실하게 믿지 않으면 지옥 형벌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다. 그럼 타인에게 민폐 끼치고 다니는 개독 예수쟁이들도 지옥행

가톨릭 등지에서는 이렇게 완전하게 사는 사람은 소수이기에 소소한 죄를 짓거나 보속(죄로 끼친 피해를 반성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갚아가고 열심한 신앙생활이나 고통으로 대신하는 것)을 충실히 하지 않는 신자들은 일단 구원이 예정된 연옥을 통해 정화되는 연옥 교리를 가르친다. 물론 이 연옥 교리도 성경에 근거가 있지만 개신교에서는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구약 제2경전에 포함된 내용이라 차이가 나는 것이다. 자세한 것은 연옥 문서 참조.

반 농담이지만 절대로 예수천국 佛神지옥이 아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 기준으로는 佛神도 이미 훌륭한 지옥행. 실제로 초등학생들은 부모님이 교회에 다니냐 절에 다니냐를 놓고 싸우는 일이 빈번하다. 그래서 불자들은 극락에 간다고 하더라. 거듭 말하지만 불신지옥의 불자는 不자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이 바른 해석.

3 비판

자연히 타종교인들이나 무신론자, 그리고 다른 계파의 그리스도교인들[3]에게 욕을 먹는 교리. 저 말을 해석하면 '아무리 착하고 남을 위해 한평생 헌신하고 이웃과 국가와 세계의 복지 향상을 위해 뛰어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여지없이 지옥으로 간다' 는 것이기 때문이다. 흔한 레퍼토리로는 "한민족을 구한 영웅 이순신, 성군 세종대왕개신교를 듣도 보도 못해본 사람들이 모두 지옥에 갔단 말이냐?" 하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인간애를 바탕으로 사람을 이끌어야 할 종교가 저렇게 믿지 않으면 너 지옥이라는 병맛 멘트를 날리는 게 얼마나 웃긴 일인가.[4][5]

헌데 개신교 위주의 성경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른다면 로마서의 내용에 정말로 개신교를 듣도 보도 못해본 사람들은 죽고 나서 심판대에 올라 일정한 잣대에 의해 천국과 지옥행이 결정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6]

이 외에도 기독교를 알게 되었는데 믿지 않으면 무조건 지옥행인가?라는 의문, 즉 알면 지옥에 가는 개념인식 재해?인가?라는 의문도 충분히 제기할 수 있기 때문.

쉽게 말해 이 문제에 대한 근본주의 개신교와 다른 기독교 종파들의 차이는 믿음이 구원의 절대적인 요소냐? 아니면 곧이곧대로 해석한 결과인가?의 문제다. 이러한 차이점은 근처의 개신교 목사와 가톨릭 사제 등에게 물어보면 차이가 있는데, 목사의 경우에는 '믿음이 없으면 결국 구원받을 수가 없다'이고, 사제의 경우에는 '그 사람이 믿음이 없었다고 해서 지옥으로 가는 건 아니다'라는 답을 해준다.

개신교에서 하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예수와 야훼에 대한 믿음을 제외하면 다 '하면 좋은 것' 이다. 참으로 믿는다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 개신교를 꿰뚫는 진리이기 때문에 안 해도 믿음만 참이라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어떻게 보면 위험한 해석도 존재한다. 이에 대해 개신교 신학자들이 내린 결론은 '정말 하나님과 예수를 믿는 자라면 그는 선한 자이기 때문에 안 할래야 할 수가 없다' 는 것(위의 보편교회 해석과 같다). 이렇게 놓고 보면 가톨릭과의 차이점은 단순히 자유의지의 존재 여부밖에 없어진다(…). 사실 '예수천국 불신지옥' 은 꽤나 복잡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단순화한 것이라고 봐도 좋다. 어쨌든 이 때문에 다른 그리스도교 종파들은 이 표어를 무식하다고 깐다.

일반적인 가치관과 개인의 자유의지를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들은 일반적인 개인의 권리와 자유보다 개인신앙을 우위에 놓는 해당 표어 같은 개신교의 교리 때문에 개신교인들이 비윤리적이고 반사회적인 행각을 벌이는 것에 대해 무신경해지게 되었다고 여긴다.

종교에 관심이 없는 행인을 붙잡고 지옥 갈 거라고 저주를 퍼붓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일 수야 없다. 더더군다나 지나가는 초등학생 아이를 붙잡고 불교 신자 할머니가 임종을 맞고 잘못했다고 싹싹 비는 해괴하고 불쾌한 녹음본을 들려주는 등[7] 그 과정에서 다소 타인의 감정을 해치는 일이 잦다.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는 개신교 목회자들의 행각이 뉴스 언론 매체를 통해 지겹도록 나오는 현실에서 착하게 사는 '세상 사람들' 은 지옥 가는 반면 아무리 망나니짓을 해도 믿음만 있으면 천국 간다는 논리가 분노를 사게 만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 근데 사실 이것도 기독교 교리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단편적인 현상만을 본 지나친 편견인 것이, 제대로 된 개신교 신학자들은 이렇게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악행을 일삼는 자들은 애초에 제대로 믿고 회개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해석한다. 결국 이런 사람들은 하느님의 판단에 따라 믿어도 지옥 가는 것.

서울특별시에서는 종로나 명동, 남대문 쪽의 번화한 거리에 이 표어를 단 깃발을 들고 흰 헬멧을 쓰고 라디오로 전도 테이프를 틀면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목격할 수 있다. 여러 교회에서 나온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런 방식으로 전도하라는 소명을 주셔서 활동하고 있다'고 자신들의 전도 동기를 소개한다. 문제는 이 사람들의 전도 멘트. 차라리 확성기로 외치는 것은 그냥 지나치면 그만이지만 접근하면서 전단지를 돌리는 경우 '예수님 안 믿으면 지옥갑니다', 심한 경우는 '안 믿고 세 발자국만 걸어가면 벼락 맞아 죽어서 지옥갑니다' 라고 하기까지 한다. 그럴 때는 세 발자국 걸어간 뒤 아무 일 없다고 해주자 과연 이런 방식이 그들이 노리는 전도의 효과와 얼마나 부합되는지 의문. 물론 개인의 신앙 차원에서 개신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비개신교인들을 보면 안타까워서 저렇게 열정을 쏟는 것으로 좋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행인들에게 민폐 그 자체가 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 전도의 목적이 한 사람이라도 더 개신교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 표어는 차라리 안 쓰니만 못한 역효과를 내는 문구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외치는 분들을 만나면 친히 만나서 사도 바울이 했던 말을 논해보거나 누가복음(루카 복음서)에 나와 있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이야기를 해도 좋을 것이다.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아래의 누가복음(루카 복음서) 10장에 잘 나와 있다.

율법학자: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 율법서엔 어떻게 적혀 있더냐?
율법학자: 하나님을 받들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럼 그대로 하면 된다.
율법학자: 그럼 누가 제 이웃입니까?
예수: 누군가가 길가에서 강도에게 습격당해 중태에 놓여있었는데 사제가 이를 보고 지나쳤고 레위인[8]들도 그를 보고 지나쳤다. 그러나 이방인인 사마리아인이 이를 보고 위태로운 사람을 데려가 치료해주고 돌보아주었다. 누가 상해를 입은 자의 이웃이었느냐?
율법학자: 선의를 행한자 입니다.
예수: 너도 그렇게 하여라.

사마리아인을 이웃으로 삼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마리아인처럼 행하란 이야기다. 이웃이 될 수 있는 이방인, 즉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고 했지만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란 문구와 그들의 행위는 사랑이라기보다는 앞서 말했듯이 민폐다. 이들에 대한 평가는 내한하는 외국의 유명 목사들의 일반적인 인터뷰로 정리하겠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사랑을 강조하셨다.

비록 다른 종교라 할지라도 그들을 끌어 안아야[9]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정확히는 사회 개혁이나 타인에 대한 사랑 없이 강요하는 것은 예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이단이다.

 
물론 개신교 내에서의 신앙 입문담[10]을 보면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들을 처음에는 미쳤다고 비웃었지만 '얼마나 대단하길래 저런 조롱과 욕을 견디면서 외쳐대는가. 한 번 교회에 나가볼까' 하는 경우도 상당수 있긴 하다. 입덕하는 거랑 비슷해보인다 과거 이러한 입문담들[11]은 보수적 개신교회가 이러한 막무가내식 전도방식을 고수하게 만드는 힘이 되어왔다. 따라서 현 개신교계에서는 이러한 극렬 전도자들에 대해 '개인의 신앙 문제일 뿐' 이라고 하면서 주변에 끼치는 누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오히려 이런 노방전도를 못하거나 말리는 요즘 개신교인들은 열정이 죽은 껍데기라고 표현하며 노방전도자들을 물질적으로 적극 지원하고 옹호하는 것이 보편적 상황.

문제는 그렇게 여기는 행태가 전혀 바뀌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신도가 줄어들수록 더더욱 이래야 늘어난다고 여기는 이들도 많다. 해외 나가서도 저러는 이들이 많은데 일본과 미국에서 한국어와 영어 및 일본어로 저러고 다니는 이들도 사진이나 목격담으로 인터넷에 올라오곤 한다. 아니 사실 일본에서는 외국어를 몰라도 가능하다. 한인 밀집지역인 '신오쿠보' 는 한인민박이 많다 보니 한국 여행자들이 꽤 많이 가는 곳인데 전철역에서 나오면 '한국에서 오셨어요?' 또는 '얼마나 있다 가세요?' 등 동료 여행자처럼 접근해서는 '계시는 동안 우리 교회 나와보세요' 식으로 나오는 일본 유학생들이 있다. 실제 개신교인이라도 돈 들여 간 데서 그럴지는 의문이며 기껏 돈 들여서 유학 보내줬더니 한창 공부할 시간대인 평일 낮에 그 짓을 하고 있다. 알제리아르메니아 같은 나라에선 한국인은 선교 요주인물로 블랙리스트에 올라와 있다.

반면 진보적인 목사들은 이들을 '대형교회와 보수주의의 상징' 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많은 종교 전문가들 역시 이들의 열정은 인정하지만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데 의견을 함께한다. 인터넷에선 "XXX(범죄자 이름)도 예수 믿으면 천국 가나요?" 하는 반박이 종종 있으며 한 기사에서는 "이 세상의 온갖 죄는 다 지었으면서 예수를 믿었다는 이유만으로 천당에 간다면 그런 사람들 모이는 천당에는 가지 않겠다" 하고 통렬하게 비판한 경우도 있다. 사회는 여럿이 함께 살아가는 곳임을 고려할 때 뭔가 문제가 있는 행위임을 부정할 수 없다. 흉악범이 구원받은 것을 성경내에서 굳이 찾아보자면 2가지의 사례가 있는데 역대기의 왕 므낫세와 예수 옆에서 같이 십자가형을 받은 회개한 죄수를 들수있다. 보통 이론상 죽기전 참회하면 가능하지만... 실제론 아주 드물다고 본다. (이론과 실제의 괴리) 개신교 교리에 따르면 회개한 사람은 죄를 지속적으로 멀리 하고자해야 하기 때문. 유병언이같은 지능형사탄은 개신교도들이봐도 지옥행이다.

개신교 입장에서도 절대 막무가내로 꺼내선 안 될 말이다. 일단 비신자들의 입장에서는 기독교의 예수를 단지 자기 안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죄가 없다 한들 지옥에 보내버리는 피도 눈물도 없는 존재로 인식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때문에 성경과 역사 속의 복음 전파자들도 사랑과 함께하지 않는 복음전도는 무가치하다고 비판한 것이다.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골로새서 4:3)"과 일맥상통한다. 이미 초대교회부터 경거망동으로 비난을 사지 않도록(호크마주석 참조) 행하라고 하고있다. 잘못된 행동으로 비난을 사게되면 당연히 상대가 복음을 받아들이기는까지 더더욱 많은 시간, 아니 아예 기회가 더는 없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참고로 극단적인 이신칭의 교리, 믿음만이면 어떤 죄를 저질러도 괜찮다! 는 식의 삐뚤어진 교리이해를 좀 더 심화 발전시키면 구원파가 된다. 실제로 외국 자유주의 성향 교단에서는 한국의 몇몇 근본주의교단의 가르침이나 구원파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보기도 한다. 뭔 짓을 해도 예수만 믿으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나 구원받았다고 스스로 깨닫기만 하면 되는 것이나 그게 그거니까.

3.1 발전형

예수천국 불신지옥이 개신교를 믿지 않는 타인들에게 적용되는 법칙이라면 개신교인들에게 적용되는 발전형 논리도 존재한다.

  1.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
  2. 그런데 어떤 개신교인이 전도를 하지 않고 개신교를 열심히 믿었고 또한 선행도 충실히 쌓았다.
  3. 그 사람이 죽어서 심판을 받게 되었다. 근데 그 개신교인은 지옥행.
  4. 그가 지옥에 간 이유는? 전도를 안했기 때문.
  5. 왜 전도를 안하면 지옥에 가는가? 타인들을 지옥에 보내지 말아야 할 의무가 개신교도에게는 있는데 남들에게 전도를 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이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몰랐고 이 때문에 개신교도 아닌 사람들은 지옥에 가게 된다. 이는 전도를 하지 않은 개신교도의 탓이기 때문.

개신교입장에서 구원이 선행이라고 주장하면 이단 취급받는다. 구원을 선행으로 판단하지 않기때문. 특히 예정설을 받아들이는 장로교인들은 발전형은 행위구원 이단취급한다. 구원에 내 공로는 아무것도, 절대로 없는 0%라고 보기 때문이다.

천주교의 경우는 예수의 지상 대명령(마태오 복음서 28장 19절) - 너희는 모든 민족들에게 세례를 주고 제자로 삼아라 라는 구절을 불성실하게 이행했으므로 죄라는 논리인데 교리적으로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선행과는 달리 기독교인의 입장에서는 2번 항목의 선행의 목록에 신앙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헌신적인 복음 전파의 의무가 들어가기 때문. 사도과 초대교회 지도자들도 박해받으면서 열심히 복음 전파하는 것을 전 신자들이 당연히 해야만 할 의무로 가르쳤다. 물론 전교에 소홀히 했다고 해서 그 교인이 지옥에 간다는 식으로 아전인수 해석하지는 않는다.

야훼 문서에도 나와 있지만, 선행을 한다거나 뭔가 인간이 스스로 이룬다고 해서 구원받는다로 정리되지는 않는다. 다만 천주교의 경우 '믿음은 선행과 병행되어야 한다' '구원의 영역은 하느님의 몫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왈가왈부할 수 없다. 하느님이 알아서 판단하실것'이라며 유보 입장을 보이고 있고, 근본주의 개신교의 경우에는 '그런거 없이 모두 지옥'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논리대로라면 아무리 예수 열심히 믿고 선행을 많이 해도 제일 마지막에 전도된 사람은 지옥행이며 결국 누군가는 반드시 지옥에 떨어진다는 논리가 성립되고 만다. 결국 자승자박이다.

3.2 타협형

일부 개신교인들은 위의 문제들을 인식했는지 몇 가지 한정 조건을 걸었다. 무엇보다 말도 안 되는 것은 예수라는 이야기도 접해보지 않은 일부 인물들까지 몽땅 지옥을 간다는 논리를 수정한 것이다. 즉, 예수라는 이름을 접하지 않은 상태의 사람만이 예수를 믿지 않아도 지옥을 가지 않는다는 논리. 이런 타협형은 예수라는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 이 세계에 많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러한 복음이 모두 전파되는 순간 기독교의 말세가 찾아온다고 생각한다.[12]

다시 말하면 성경 복음을 한번이라도 들은 인간은 자기 의지로 믿지 않으면 지옥이라는 것이 되는데, 이것 또한 비신자 입장에서는 심히 이해가 안 되는 논리이다. 그러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아무도 지옥을 안 갈텐데 왜 알려주는가?

오죽하면 이런 일화가 전해질 정도.

이누이트 족: 내가 신이나 죄악에 대해 몰랐다면, 난 지옥에 가야 되는 거요?
성직자: 아뇨. 모르셨다면야 지옥에 가진 않죠.
이누이트 족: 그럼 왜 나한테 그걸 알려준 거요?

사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예수를 한번도 접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언급은 성경에도 명확하게 나와있지 않아서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개신교 내에서도 아마 그의 행적을 보고 하나님께서 구원을 결정한다는 사람도 있고, 모조리 지옥행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지옥에 간다고 주장하는 얼간이들이 한두명이 아니라는게 문제. 여기에 대한 주요 견해는 아래 결론에 설명하지만 유대인은 율법으로 이방인은 양심으로 판단한다고 본다.

부디 개신교도들은 알 수 없는 것을 함부로 단정 짓지 말도록하자. 이것도 일종의 월권행위(교만죄)다.

4 개신교 측의 주요 입장 정리

일단 개신교도로서 예수를 믿는다면 저 말을 부정할 수가 없으며 오히려 이게 그르다고 한다면 모든 개신교도들은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어찌 보면 부모 욕보다 더 심한 욕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개신교와 천주교가 구원에 대해서 다른 입장을 가지게 되는 근본 교리이기 때문이다.[13]

개신교의 기본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모든 형태의 죄악은 징벌 받아 마땅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친히 죄의 값은 죽음이라고 선언하셨다. 하지만 아담의 타락 이후, 모든 인간은 일생동안 말과 행동, 생각으로 죄를 지으며, 따라서 지옥의 형벌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사 죄인들이 받을 형벌을 십자가에서 대신 받아 죽으셨다. 그리고 이 구원사역을 마친 3일 후에 부활하셔서 하늘로 돌아가셨다. 이제,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과 구세주로 모시는 사람은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되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며 살아간다[14]" 즉,죄값으로 내가죽어야만 했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인간이 되사 나 대신 죽으셨다 이런 교리 하에서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난 죄 지은적 없다, 따라서 예수가 내 죗값을 치뤄줄 이유도 없다" 하는 입장이 되고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죄의 대가로 지옥에 가게 된다는 과정으로 이어진다.[15]

이러한 인과관계에 따라 예수에 의해 죄가 대납되었음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 기존의 빚은 그대로 남고 그 위에 인간의 노력으로 아무리 선행을 쌓는다고 해도 죄값을 지옥으로 치를 수밖에 없게 된다는 교리로 이어진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로움' 은 개인의 선악이 아닌 이러한 인정과정, 다른 말로 믿음에서 비롯된다는 '이신득의(以信得義)' 교리는 여기에서 나온다. 물론 이 믿음 이후에 행동의 선악이 어떤 영향이 있느냐는 해석의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성경 안에서 해석하는 한 예수를 이미 알고도 부정한 사람이 지옥을 피할 방법은 없다.

물론 아예 예수를 모르고 죽은 사람이 어떻게 되느냐는 논쟁도 가능하지만 진짜로 신이 존재한다면 그런 사람들도 모든 이가 납득할 수 있을 만한 판단기준으로 처리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된다.[16] 적어도 이 문서를 볼 정도의 사람이라면 그런 쪽으로는 해당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안녕하세요. 언젠가 죽을 여러분" 과 마찬가지로 듣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표어인 데다 무리를 해서라도 교리를 확장할 필요가 있는 일부 사이비 종교에서 남발했기 때문에 지금은 이토록 까이는 여덟글자가 된 것이 아닐까.

결론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표현의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근본 교리는 과격한 광신도나 평범한 개신교도나 기본 교리는 다른 것이 없다. 다만 차이라면 저걸 타인에게 무작정 강요하는지, 아니면 개인적으로 믿기만 하고 잘 드러내지 않는지에 대한 것이다. 즉 흔히 말하는 예수쟁이와 정상적 기독교인의 차이. 사후세계에 대해서는 죽지 않고서야 알 길이 없기 때문에, 창조물들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믿지 않았다고 지옥에 보낸다는 논지가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현세 기준으로는 각자 알아서 판단해야 할 듯. 외계인들은 무조건 지옥행일듯

5 왜 이 말을 하는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장 6절, 개역개정판)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한복음 3장 36절, 개역개정판)

결론적으로 이것이 개신교의 정체성이자 핵심 교리이기 때문이다.

서두에도 말했지만, 국내 개신교 교단 중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부정하면 이단으로 낙인 찍힌다.[17] 그리고 세계적으로 봐도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부정하는 종파는 세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즉 개신교의 모든 것은 결국 예수천국 불신지옥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곧 교리인 고로 이들을 막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예수쟁이들도 교회 출석하는 교인이다.

실제로, 명동에 자주 출현하는 노상 전도 무리는 인근의 영락교회 소속 신자가 섞여 있고, 영등포 인근에 출현하는 무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신자와 대다수 한국교회에서 이단으로 분류한 성락교회 소속 신자가 혼재되어 있는 실정이다. 일부 이단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6 세계

사실 전 세계적인 추세를 보더라도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강성 복음주의 개신교단이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세력과 인구를 키우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예수천국 불신지옥 교리는 어처구니없게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세계적으로 자유주의적 성향의 교단은 신자들의 참여율 저조와 신앙의 타협화로 인해 갈수록 세력이 약해지고 있으며, 이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오히려 보수적인 예수천국 불신지옥 교리를 내세우는 공격적인 개신교단이 기독교 신자가 늘고 있는 제3세계를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근본주의적인 교파가 힘을 얻고 있다. 미국에서는 개신교인들 중 3천만 명이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 고 믿는다는 통계가 나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북서유럽에서조차 타 국가들처럼 대놓고 공격적인 전도를 못할 뿐이지 불신지옥 교리를 가진 보수 및 근본주의 교단과 교회들은 국가 평균을 웃도는 출산률과 결합하여 현상유지중이라 급격하게 쇠락해가는 주류 교단들과 대비된다.

교회에 갑시다. 안그러면 악마가 잡아가요!(…)

미국의 바이블벨트 등의 지역에 가면 이런 식의 흠좀무한 포스터를 자주 볼 수 있다.위아더월드

한국에 1년 동안 머물다가 간 터키 사진작가 아리프 아쉬츠는 신촌에서 이런 예수쟁이를 보고 충격받았는데 무슬림이 저렇게 알라천국 불신지옥이라며 설치다간 정말로 탈레반 이상가는 미친 광신도로 취급당한다, 아니 사우디아라비아조차도 대낮에 길거리에서 저러면 종교경찰 무트와에게 잡혀가 1급 테러범 용의자로 취급되어 온몸으로 처맞고 수용소에 갇혔을 것이라며 한국도 기독교 탈레반이 이렇게 설치는 걸 보고 무섭게 느꼈다고 신나게 깠다.

미국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번역한 'JESUS=HEAVEN, NO JESUS=HELL' 이 적힌 피켓을 들고 거리 행진을 벌여 국제적 망신을 샀다. 한국 국기 들고가지마 제발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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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지만 일본(...)에서도 볼 수 있다. 주로 검은 바탕에 흰색, 노란색 글씨로 사후 심판받으리(死後さばきにあう), 하나님과 화해하라(神と和解せよ)등의 문구가 새겨진 간판을 볼 수 있는데, 속칭 '그리스도 간판'(キリスト看板)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6.1 믿음과 구원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

결론부터 말하자면 애매모호하다. 공의회에서는 믿음이 없으면 구원의 길이 없다고 하지만, 일선 사제들과 고위 성직자들 사이에서는 그렇다 아니다를 놓고 서로 견해가 다르다.[18]

다만 비신자의 구원 문제에 대해 개신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그럽게 보는 것이 일반적인 분위기라 정리될 수 있긴 하다.

가톨릭 교회는 개신교 주요 교파들과는 달리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직접적으로 내세우며 비신앙인들에게 강조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 교리서> 등에서는 명백히 가톨릭 역시도 자기 탓으로(즉 가톨릭 교회의 존재를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가톨릭 교회에 속하기를(즉 가톨릭 신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를) 싫어하거나 거부한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19]

846. 공의회(2차 바티칸 공의회를 말함)는 성경과 성전에 의지하여 이 순례하는 교회가 구원에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한 분만이 중개자요 구원의 길이시며, 당신 몸인 교회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신앙과 세례의 필요성을 분명한 말씀으로 강조하시면서, 동시에 교회의 필요성도 확인하셨다. 사람들은 마치 문과 같은 세례를 통하여 교회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톨릭 교회를 필요한 것으로 세우신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교회에 들어오기를 싫어하거나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저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가톨릭 교회에서 확실히 해두는 사실이 있는데, 그리스도교 신앙을 자기 탓 없이 받아들이지 못했을 경우[20]에는(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접하지 못한 채 하느님이 은총으로 주신 자연적인 선행과 양심을 따르는 선한 삶을 살았던 경우에는) 구원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

848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만 아시는 길로, 자기의 탓 없이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을 신앙으로 이끄실 수 있다.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다.343)) 그러나 교회는 복음화의 필요성과 동시에 그 거룩한 권리를 가진다.”344)
847 이 단언은 자신의 잘못 없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사실, 자기 탓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분의 교회를 모르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양심의 명령을 통하여 알게 된 하느님의 뜻을 은총의 영향 아래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342)

일단 가톨릭 교회에서는 중세부터 림보라는 신학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가톨릭 교회에서 제시된 림보는 두 가지가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그 복음이 전해지기 이전(그러니까 복음을 접할 기회 자체가 없었던 이들)의 의로운 사람들이 편하게 머무는 고성소 림보, 그리고 세례받지 못하고 죽은 유아나 영아들이 가는 유아 림보가 있었다. 림보 자체는 교리는 아니었지만, 거의 교리에 준할 정도로 신학자나 가톨릭 대중에게 익숙한 생각이었다. 이중 유아 림보설은 2007년 폐기되고, 현재는 세례받지 못한 아기가 불상사로 죽더라도 결국 그건 자기 탓이 아니므로 당연히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단, 림보설을 말할 때 유의할 점은, 단테 알리기에리신곡같이 가톨릭 세계관을 다룬 창작물에서의 림보에는 선량하게 살았다는 이유로 예수 그리스도 이후의 불신자들도 머물고 있다는 식으로 나와있기도 한데, 이런 식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상상력이 가미된 창작일 뿐 중세에도 현재도 가톨릭 교리가 아니다. 2016년 기준으로, 가톨릭 교리에서 림보는 예수 그리스도 이전 의인들만을 대상으로 기능했고,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 부활과 승천 이후 비어 있는 고성소 림보뿐이다. 자세한 건 림보 항목을 참고하자.

또한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는 구절처럼, 겉으로는 믿는 척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행하지 않는 자들. 즉 신앙적 위선자들의 경우 역시 진정 가톨릭 교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교회 안에 있더라도 명백히 구원받지 못한다고 밝히고 있다.

가톨릭의 교리적 원칙은 이러하지만, 물론 세상 일이 원리원칙대로만 흘러가는게 아니기도 하고 사람들마다 다양한 사정이 있을 수 있음을 감안해 보통 가톨릭의 일선 사제들의 상당수는 가톨릭을 믿지 않은 비신앙인의 구원 여부를 함부로 단죄하거나 평가하는 데는 유보적인 입장(함부로 왈가왈부하지 않음)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반면 이런 추세에 반대하고 교리서에 적힌 원칙을 강조하는 입장의 사제들도 만만찮게 있다.

약간 더 자세하게 파고 든다면, 일단 가톨릭이 견지하는 기본적인 기치는 각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대체로 존중하고 잘 활용하는 편이며, 온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서로 다른 신앙, 믿음체계, 사고방식 등을 어떻게 기독교 신앙에 맞춰 풀이하여 개종자를 낼 것인가를 2천년 이상 고민해온 양반들이라 최근 몇 세기 동안 본진인 서구권에서는 교세가 크게 축소되었다고는 하지만[21] 아무래도 개신교보다 수백 년 앞서 온 세계에 선교를 해온 전문가들이다.

이러다보니, 가톨릭의 사제들이 전도의 과정에서 깨달은 최초의 난점이자 딜레마가 바로 앞서 거론된, "그럼 우리 조상님들은 기독교라는 것은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자신이 전혀 접해보지도 못했고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것을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죄다 지옥에 떨어졌다는 말이냐?" 라며 극도의 불쾌감을 드러내는 전도지역의 주민들과 마주친 일이었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 상 세상 모든 일을 주관하고 세상 모든 것을 스스로의 이치에 따라 행하시는 분이 하느님인데, 그렇다면 서양에서 멀리 떨어진 동양이나, 다른 오지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모두 신의 뜻으로 각자 사명을 띄고 세상에 태어난 것인데, 기독교와 복음이 전해질래야 전해질 수 없는 상황에서 수 백, 수 천년 동안을 태어나 살아오다 죽었다면, 신은 별 이유도, 잘못도 없이 처음부터 지옥에 떨어질 운명을 지고 태어난 사람들을 대량으로 만들었다는 소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오래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이전 시대 사람들을 한정으로 림보 개념을 유지해오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문화가 서양과는 어떠한 접점도 없이 완전히 다른 곳에서 전도는 심각한 거부감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19세기에 들어와 전 세계에 기독교가 전파되고, 슬슬 자유주의의 바람이 불면서 여러가지로 획기적인 새로운 시각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대체로 가톨릭의 경우 각 교황의 성향에 따라 기본 지침과 방침이 다른 경우가 많고, 지역에 따라서도 차이가 많이 있지만, 일단 각종 헌장, 교서 등을 통해 공식적으로 등장한 과거 교황들의 견해에는 의외로 놀랍도록 합리적인 이야기가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오늘날까지도 종교와 믿음, 구원에 대한 진보적 해석을 하는 많은 가톨릭 교인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요한 23세가 시작하고 바오로 6세가 마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다.

마지막으로, 아직 복음을 받지 못한 이들도 여러 방식으로 하느님과 연결되어 있다. 우선 계약과 언약을 받은 백성들이 그러하니, 그들 중에서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태어나셨다. 그 조상으로 인해 이 백성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선물과 선택은 변경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원의 계획에는 창조주를 인지한 모든 이들 또한 포함된다.

이들 중 첫 번 째는 무함마드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이 있으니, 이들은 스스로 아브라함의 신앙을 따른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최후의 날 모든 인간을 심판하실 단 한 분의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우리와 함께 믿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하느님은 음지에서 그들이 접해보지 못한 하느님의 은총을 찾아 방황하는 이들로부터 결코 멀리 계시지 않으니, 인간에게 생명과 호흡과 다른 모든 것을 주신 이가 바로 하느님이며, 구세주는 모든 이의 구원을 바라시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이유로 인해 복음과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성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으며, 하느님의 뜻을 다하고자 하는 은총으로 양심의 부름에 따라 움직이는 자들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라.

또한,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이유로 하느님과 그의 은총을 명백히 알지 못하지만, 선한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하느님의 섭리는 구원에 필요한 도움을 거절치 않으신다. 교회는, 그들이 간직한 모든 선함과 진실됨을 복음을 맞이할 준비로써 인정한다. 그러한 것들은 영생을 위해 모든 인간을 비추시는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교회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종 인간은 악마에 속아 헛된 생각을 논하고 하느님의 진리를 거짓과 바꾸어 놓으며, 창조주가 아닌 피조물을 숭배하기도 한다. 혹은, 하느님 없이 세상을 살다 죽음으로써 최후의 절망에 놓이기도 한다. 고로, 하느님의 영광과 이 모든 이들의 구원을 염원하는 교회는 하느님의 명령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니, "너희는 모든 인간에게 이 복음을 전하라." 교회는 이 명령을 조심스럽고 진지하게 수행하고 있다.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제 16장, "LUMEN GENTIUM"(민족들의 빛)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바오로 6세 1964.11.21

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내용이 발표되었을 때, 일부 보수적인 교인들은 바오로 6세를 "빨갱이 교황"이라며 반발할 정도로 거부감을 드러냈는데, 그만큼 상기 내용은 보수적인 신앙의 입장에서는 충격적이다. 우선 바오로 6세는 이슬람에서 늘 주장해온 바 "우리들이 모시는 알라는 너희 기독교들의 하느님과 같은 분이다"라는 주장을 인정했다. 다시 말하지만, 교황 개인 입장피력 같은게 아니라 공의회 중에 나온 교의헌장이다. 공신력 있는 가톨릭의 공식 입장이라는 소리다. 둘째로, 여러가지 상황에 따라 기독교가 될 수 없었던 사람이라고 해도 그 스스로의 선행과 바른 삶이 곧 복음을 받아들였음과 같은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였고, 그런 사람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인정한다. 당시 보수적 기독교도들이 왜 눈이 뒤집혀 뒷목잡고 쓰러졌는지 알 것 같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내용을 좀 더 살펴보면,

사실, 육신을 취하신 말씀의 신비를 통해서만 인간의 신비를 논할 수 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은 미래의 인간, 즉, 주 그리스도의 표상이었다. 최후의 아담 그리스도는 성부와 그 사랑의 신비함을 알려주는 계시로써 인간을 인간에게 완전히 드러내어 주시며 인간이 높은 분의 부름을 받았암을 밝혀주신다. 따라서, 이 모든 진리가 그리스도 안에 그 근원을 두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 정점을 도달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신 그분은 완전한 인간이다. 아담의 후손으로 인해 원죄로 일그러진 신성함을 그는 회복시켜 주신다. 그분은 인간 본성을 취하셨으나 소멸되지 않으셨으므로 우리 안에서도 인간 본성은 자동적으로 고상한 품위로 높여졌다. 성자께서는 당신의 화신으로 어떤 의미에서 당신을 모든 사람과 일치시키신 것이다. 인간의 손으로 일하시고 인간의 머리로 생각하시고, 인간의 의지로 행동하시고, 인간의 마음으로 사랑하시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심으로써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셨으며, 원죄를 빼고서는 모든 점에 있어서 우리와 같으셨다.

무죄한 어린양으로서 당신의 피를 흘리심으로써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며, 하느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당신과 화해시키고, 우리 사이를 화해시켜주셨으며, 악마와 죄와 구속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주셨으며, 우리 개개인이 사도와 함께,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 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우리를 위하여 수난하심으로써 그분은 우리가 모방하고 따를 발자취를 남겨주셨으니, 우리가 그 길을 따르면 생명과 죽음이 성스로이 되어 새로운 뜻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많은 형제들 가운데 맏이로 나신 성자의 모습을 닮은 그리스도교 신자는 “성령의 첫 열매"를 받게 되었으니, 그것을 통해 사랑의 새 계명을 지킬 수 있게 됨이라. "계승의 보증"인 성령을 통해 "우리 몸의 속죄"를 받는 그 날을 위해 모든 인간이 새로이 될 수 있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 일으키신 분의 성령이 그대들의 안에 있으니, 그리스도를 살리신 분께서 그대들 안의 성령을 통해 또한 그대들 또한 살려주실 것이다." 고로, 그리스도교 신자는 많은 환난을 겪으며 악을 거스르고 죽음마저 각오해야 할 의무가 주어진다. 그러나, 부활의 신비에 결합되어 그리스도의 죽음을 닮고자 할 것이니, 그는 부활을 서둘러 기다릴 것이며 그것을 통해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은총이 마음에 내려진 모든 선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진정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인간을 위해 죽으셨으며, 인간이 부름 받은 목적도 사실 한가지이며 성스러운 것이라, 성령은 오직 하느님만이 아시는 방법으로 모든 인간에게 부활의 신비의 일부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주셨다.

인간의 신비는 이와같이 위대한 것이며, 그리스도교의 계시가 믿는 이들에 밝혀주는 진리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슬픔과 죽음의 의미가 풀리게 되는 것이다. 복음을 떠나서는 이러한 것들은 우리를 사로잡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셨으니, 스스로 죽으심으로써 죽음을 물리치셨다. 그는 우리에게 풍성한 생명을 내려주셨으니, 성자의 자녀들로서 성령을 이어나가며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현대 세계의 사목헌장, 제 22장, "GAUDIUM ET SPES"(기쁨과 희망)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바오로 6세 1965.12.7

이 역시 상당히 놀라운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구원의 이치가 기독교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는 공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이 발언이 무게는 기존의 교리상 "오로지 예수를 통한 구원"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듯한 의미를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후일, 이로 인한 파장을 수습하면서 카톨릭에서는 '그래도 오직 믿음으로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공식 교리다'라고 재차 확인했으나, 다만 "하느님은 곧 사랑이요 자비이시기에, 믿음의 은총이 내리지 못한 자들이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받기를 원하지 않으실 터이니, 반드시 그런 자들을 위하여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다른 구원의 길을 준비해두셨을 것이다"라는 말을 꼭 붙이게 된다. 즉, 쉽게 말해서, "기독교인인 내 입장상 하느님 안 믿고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공언할 수는 없지만, 솔직히 하느님이 불신자라 할지라도 그를 구원하실지 아닐지는 인간인 내가 함부로 단정할 수 없다"라는, 앞서 언급된 유보적 태도를 취하게 된 것.

1260: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인간을 위해 죽으셨으며, 모든 인간은 같은 운명으로 성스러운 부름을 받았으니, 성령은 오직 하느님께서만 아시는 방법으로 모든 인간에게 부활의 신비를 영접할 기회를 내린다. "복음과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진리를 찾아 나섬으로써 하느님의 뜻과 그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세례의 필요성에 대해 알고 있었더라면 세례를 분명히 받았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1261: 세례를 받기 전에 죽은 아이들에 대해서 얘기한다면, 교회는 그들에게 하느님의 자비에 맡길 수 밖에 없으며, 그들을 위한 장례의식을 치루어 줘야 할 것이다. 하느님의 위대한 자비는 모든 인간의 구원을 바라시며, 아이들에게 자상했던 예수는, "아이들을 내게 올 수 있도록 하라. 그들을 방해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니,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에겐 구원의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희망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가능한한 많은 아이들이 성스러운 세례의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1992)

위의 교리문답은 보수적 성향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절 나온 것이다. 이 경우에는 "기독교도가 되어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기독교도가 되지 못했거나 세례를 받지 못한 채 죽은 사람들에게는,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어떠한 식이든 하느님은 분명 구원의 문을 열어두셨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이 경우엔 바로 위에서 본 바오로 6세가 내비친 견해보다 한 발짝 물러난 보수적인 해석이지만, 사실 이 자체만으로도 근본주의적 개신교도들의 해석보다 훨씬 유연하다고 할 수 있는데, 공식적인 교리가 오로지 하느님을 통한 구원을 얘기하고 있음에도, 하느님이 무슨 공무원도 아니고 인간의 구원 여부를 세례를 받았느니 못 받았느니 하는 일개 종교의식의 여부로 결정하거나, 정황상 도저히 기독교가 될 수 없었던 사람인데도 그 이유로 지옥에 보내버린다는 기계적인 꼰대 존재가 아니라는 해석을 열어둔 것이기 떄문이다.

사실, 구원의 여부에 대한 희망적이고 포용적인 사례는 바오로 6세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사도들로 계승되어 온 로마 교회의 교인들로서, 교회 바깥의 구원은 없다는 신앙을 지켜야 한다.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은 교회뿐이며, 교회로 들어오지 않는 자는 절망 속에서 사라져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참된 신앙에 대해 가망 없이 무지한 자들 또한 주의 눈에는 죄인들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인간 개개인의 성품, 인종, 국가, 지식, 그러한 차이들로 인해 어느 정도의 무지함까지가 용납될 수 있는지를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권리가 도대체 누구에게 있다는 말인가?

교황 비오 9세, 대중연설, 1854. 12. 9.
우리의 성스러운 신앙에 대해 가망이 없을 정도로 무지한 자들이라고 할지라도, 하느님이 만드신 세상의 법칙을 조신하게 지키며, 모든 인간에게 하느님이 내려주신 양심에 따라 살고, 하느님을 따를 기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직하고 올바른 삶을 사는 사람들은 성령에 인도되어 구원에 도달할 수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보시며, 사람의 마음 속을 살피시며, 그의 생각, 태도, 의도를 모두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위대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선하신 하느님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죄를 저지르게 된 어느 누구도 영원히 단죄받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

교황 비오 9세, 이탈리아 주교들을 향한 연설, 1863. 8. 10.

다만, 여기의 참된 신앙에 대해 '가망 없이 무지한 자'들의 범주에는 고의적으로 가톨릭 신앙을 알면서도 거부하는 경우는 들어가지 않는다.

(성경은) 그러나 ‘’‘자기 탓 없이’‘’의 범주에 고의적으로 단순한 무지를 책하지 않고 (가톨릭 신앙에 대한)'고의적인 거부'를 단죄한다. “나를 배척하고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단죄하는 것이 따로 있다”(요한 12:48).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25:41, 야고 2:14).][22][23]

앞서 언급한 것처럼 새로운 교황이 등장함에 따라 (기존의 교리는 고수하되) 사목적 태도에 있어서 가톨릭의 방향은 수시로 변화하기 마련이고, 지역별, 국가별, 문화별로 서로 처한 상황이 상당히 다르다고 할 수 있으나, 분명한 것은 19세기 자유주의 신앙의 등장과 함께 가톨릭의 수장은 확실한 공식적인 언사를 통해 여러 차례 위와 같은 해석을 공포하였으며, 이 덕분에 오늘날 확실하게 개신교보다는 넓은 가능성의 영역을 열어놓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가톨릭 매체인 평화방송 신앙교리 등에서는 사제들이 예수천국 불신지옥 교리를 전면 부정하는 식의 설교를 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가톨릭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가톨릭 교리서의 원칙을 강조하는 다른 신부의 강론도 있으며, 그리고 퇴임한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 역시도 최근의 가톨릭 교계가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방적인 정신에만 매몰되어 가톨릭 신앙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점을 잊어버리고 다원주의적 가치관에 빠져 있는 점을 경고하기도 했다.[24][25]

즉 결론적으로, 공의회 규정에서는 원칙상으로 가톨릭 신앙 이외의 구원을 인정하지 않는 예수천국 불신지옥과 비슷하게 보일 수 있는 규정을 가지고 있지만, 포괄적인 구원에 대한 해석에 대해서는 사제들끼리도 서로 견해가 다르다.[26] 때문에 일선 사제들이 구원관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교리 해석 자체는 사제의 신학적 성향에 따라 분분하기 때문에 같은 가톨릭 교회의 사제라 해도 구원관에 대해서 상충되어 보이는 입장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마치 개신교에서 같은 교파의 울타리에 소속된 목사들끼리도 서로의 신학 해석이 다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7 결론

특정 종교를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십억명의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낸다고 협박하는 헛소리. 해외에서만 해도 당장 국제망신에 다른 선교사들까지 추방시키니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너희 모두 예수를 믿지 않으니, 지옥에 갈 것이다"라고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기독교 기준에서 위선자의 틀에 들어가게되는 거다. 당장 성경에서도 모두의 죄는 믿는 자건 안 믿는 자건 똑같고, 남들을 판단하는 것은 오만이라고 했다.

그것이 과연 올바른 종교인의 모습인지는 스스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당장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만 그 뜻대로 제대로 사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인지, 그리고 같은 죄인인 입장에서 다른 사람에게 '너 지옥 간다' 고 공격적으로 정죄하는 것이 그 가르침에 맞는 것인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당장 마태복음의 산상수훈 장면을 보더라도 '남의 눈의 티를 보기 이전에 자기 눈의 들보(기둥)을 빼어 버리라' 는 얘기가 나온다. 쉽게 말해 다 같은 죄인인데 남한테 뭐라 하지 말고 너나 잘하세요가 핵심인 듯. 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권면을 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살피라는 의미이다.

개신교는 원 뿌리가 가톨릭이 성경에서 멀어져서 세속화된다고 비판하면서 떨어져나간 종파이기 때문에, 성경구절 하나하나에 과도하게 맹신하고 곧이곧대로 해석한 결과물이 지금의 공격적인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고 봐야 한다.[27]

무엇보다. 무조건 예수 믿는다고 구원받는 건 아니라고 예수 스스로 말했던 것을 기억하자. 하지만 믿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한 것도 기억하자.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마태복음 7장 21~23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장 6절.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로마서 2장 12~16절.

여기서 말하는 율법(모세오경) 있는 자는 유대인들, 율법 없는 이방인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저 구절을 잘 살펴보자. 물론 이것은 예수의 복음을 접한것을 고의로 거부한것에 대한 답이 아니다. 이 구절은 복음을 한번도 듣지 못한 이들과, 예수가 태어나기 전,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사람들의 구원여부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성서비평학적으로 바라보면 이 복음전도를 하라고 하는 성서의 내용은 예수가 직접 언급한 것이 아니라 성서의 편집과정에서 후대에 가필되거나 추가된 부분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보는 것이 대체적인 성서학자들의 견해이다. 예수가 직접 명령했으니까 이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개소리라는 것. 물론 가필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구절이 터무니없는 소리라는 건 아니며, 애초에 개신교도들의 주장과는 달리 교회 전통 속에서 전해진 예수 전승을 가지고 성경이 첨삭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기에, 비록 저자와 편집자의 개성이 성경에 반영되었다고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안에 내제되어있는 초월적인 구원의 논리와 성령의 영감을 생각하며 읽으면 그만이다. 즉 저자가 원래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문자 하나하나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참고로 이 동영상에 등장한 류상태 목사는 대광중학교 교목이었는데 강의석 사건으로 교목직을 그만둔 사람이다.

"마태복음 28장이 복음주의 진영의 가장 전초적인 선교 대 명령어로 자주 인용되는 말씀입니다. 내가 하늘의 권세를 가졌으니 너희는 세상 끝까지 가서 모든 사람을 제자로 삼아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 세례를 주고... 이런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그건 명백하게 예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그건 나중에 세례가 기독교 공동체 내부에서 실천됐던 아주 후기의 발전이 예수님 말씀처럼 덧붙여진 것입니다. 그러면서 봐라, 성경에 있지 않냐. 이건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성서 근본주의자)은 성서가 어떤 역사적인 과정을 거쳐서 기록되고, 편집되고, 그리고 전승됐는지,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성서는 오랜 역사를 거쳐서 기록되고, 전승되고, 또 편집되는 과정에서 편집자의 의도가 반영이 된 겁니다."

한신대 신학과 교수
"마가복음(마르코 복음서)은 16절까지 있는데, 8절까지가 원래 마가복음에 있는 거고, 이 뒷부분은 나중에 덧붙여진 부분으로 보거든요. 문체도 다르고. 근데, 이게 누가 말했는지는 중요치 않고 성서에 있다는 게 중요한 거에요. 한국 기독교인들에게는…"

제 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소장
"하나님은 악인이나 선인이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이게 무슨 뜻이냐 이게 엄청난 말씀이에요. 윤리적인 잣대까지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는 선인도 악인도 없다는 거에요. 뭐, 천국 가고 지옥 가고 이런 거는 없다는 거에요. 하나님은 조건 없이 그냥 품어준다는 거죠. 그런데, 그런 하나님을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가는 하나님으로 만들어버렸어요."

전 목사

참고로 과거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도 해당 내용으로 다루었는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한신대학교 계열 신학교수와 제 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소장, 전직 목사 등과 인터뷰를 했다. 이들의 공통적인 주장은 "성경에 나온 모든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행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8 트리비아

  • 최근에는 '예수천국' 문구가 빠진 업그레이드판 '불신영원지옥' 도 서울 시내에 나타나고 있다.
  • 불교에도 비슷한 문구(?)가 있다. 일본 불교 교파인 정토진종은 전국시대에 잇코잇키라고 하는 봉기를 일으켰는데, 이때 나아가는 자는 극락에 살고, 물러나는 자는 무간지옥에라고 쓴 깃발을 사용하였다. 전진천국 후진지옥
  • 대승 불교에서는 지옥에 떨어져도 지장보살님이 구제해주신다. 예수쟁이들이 도를 넘는 행위를 가하면 이걸로 상큼하게 발라주자(...).
  • 찜질방의 불가마에 갔다와서는 지옥 갔다왔다고 드립을 치는 경우도 있다. 이왕 지옥 가려면 불가마로 가야하고 여긴 한국인들에겐 지옥이 아니라 천국이라고.
  1. 다만 마가복음(마르코 복음서) 16장은 후대에 첨가된 것이라는 의혹이 있다.
  2.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나 '나무묘호렌게쿄' 같은 말이 뭔 뜻인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3. 정교회, 가톨릭
  4. 거기다가 이 불신지옥이 때로는 후욕패설로 쓰이기도 한다.
  5. 철모르는 어린이들이라도 종종 이런 교리에 반발심을 가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어린 시절 남들 따라 교회 다녔다가 이런 과격한 교리에 반발을 품고 스스로 교회에 발을 끊은 이들도 있다.
  6. 성경의 해석 문제는 옛날부터 논쟁거리였다. 다만 과거에는 이를 곧이곧대로 해석하는 성향이 강했으나 지금은 예수가 강론을 할 때 비유적으로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성서 역시 비유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는 견해가 늘어나고 있다.
  7. 모 위키러의 어릴 적 경험. 심지어 본인의 할머니 역시 불교 신자... (패드립)
  8. 레위인은 대제사장의 가문을 포함한다. 굳이 제사장 집안이 아니더라도 일단 이들은 성직자나 해당 관계자의 일을 하였고 유대 민족들 중에서도 가장 큰 위치에 놓였다. 참고로 현재 유태계 사람들중에 Levy, Levi, Levine의 성을 가진 사람들이 이 레위인들의 후손이다. 다만 레위인은 시체에 닿으면 밥줄이 끊기기 때문에 약간의 쉴드 여지가 있긴 하다.
  9. 단 '끌어 안는다는' 말이 기독교 복음전파의 사명을 포기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복음전도는 성향을 가리지 않고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다.
  10. 성경을 비판하려고 연구하던 과학자들이 도리어 은총을 받아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다, 어느 스님이 모든 것을 버리고 평생을 자기 수련에 마치고 죽기 직전에 한 유언이 자기 죄가 아직도 "수미산보다 크구나" 하고 말했다는 이야기 등등 여러 버전이 난무한다. 당연히 대부분은 뻔한 거짓말.
  11. 어디까지나 과거 이야기이다. 1970년대, 80년대 초만 해도 지방에선 수십만 명의 공동 개신교 집회가 여러번 벌어졌을 정도다. 참고로 광복 이후 전국의 개신교도가 채 100만도 안 되었던 것이 겨우 50년 사이에 무려 10배가 넘는 1,000만 명(1995년 통계청 조사)에 달했을 정도로 한국은 단기간에 개신교도 수가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폭발적이었기에 이런 입문담이 꽤 많았다. 그러나 이후로 갈수록 개신교도 수가 줄어들면서 2005년 통계에선 900만 이하로 내려갔다. 자업자득
  12. 이 하늘 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선포되어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될 터인데, 그때에야 끝이 올 것이다.(마태오 복음서 24장 13절, 가톨릭 성경)
  13. 천주교에서는 과거부터 '림보' 라는 개념을 통해 불신자나 신의 존재에 대해서 알지 못했던 자들에 대한 사후세계 장치를 설정했었고 현대에 들어서는' 자기 탓 없이' 믿음이 없다고 구원이 불가하지는 않다고 가르친다. 이건 개신교 측에서 말하는 대로 착하게 살면 구원받는다는 단순한 행위구원론이 아니라 좀 더 복잡한 측면으로 접근해야 할 신학적인 내용이다. 쉽게 말하자면 구원은 하느님의 영역이니 그 분께서 잘 판단하실 것이라는 뜻이다. 다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지 않고 단순히 자력으로 천상에 들어가는 것은 자신의 행동과 믿음을 병행하여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가르친다.
  1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3장 23~26절, 개역개정판)
  15.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요한일서 1장 8절·10절, 개역개정판)
  16.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로마서 2장 14~15절, 개역개정판) 근데 가슴에 손을 얹고 자기가 평생 양심에 한 치도 어긋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냐가 문제다
  17. 개신교의 근본 교리는 '구원의 척도는 오직 믿음뿐이다'이기 때문. 그러므로 근본주의 개신교 신자들은 천주교를 이단 취급(단, 에큐메니컬 계열 개신교 중도, 진보 교단에서는 천주교를 이단으로 취급하지는 않는다)하는 것뿐만 아니라, 같은 개신교이지만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안식일교나 성공회(反에큐메니컬 계열 일부 근본주의 교단들은 성공회도 이단 취급한다)조차도 이단취급한다. 애초에 개신교가 천주교와 분리된 건 당시 천주교가 부패한 측면도 있지만, 구원에 대한 해석 논쟁 문제도 있었다.
  18. 구원의 권한은 오직 하느님에게만 있다는 전제 자체는 일치하지만, 믿음이 없었다는 이유로 하느님이 구원을 배제하느냐 아니면 전부 구원해주냐에 대해서 상호간의 견해가 다른것이다.
  19. 이 문구는 가톨릭 교회에 속하기를 거부한, 개신교 신자들도 구원이 없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기에 에큐메니즘 관점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20. 이 교리는 개신교의 해석인 복음을 듣지 못한 경우, 로마서에 나오는 이방인은 양심으로 판단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21. 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22. 출처 : 마리아사랑넷, 가톨릭사전,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항목
  23. 참고로 이 구절은 개신교의 이신칭의 교리를 비판하는 성경적 근거로 이용되기도 한다.
  24. 기사 출처는 LIFESITE NEWS.
  25. 가톨릭에 비해 교리가 많이 유연한 성공회조차도 다원주의적 가치관은 단언코 경계한다.
  26. 김수환 추기경의 경우, 생전에 도올과의 인터뷰에서 다른 신앙을 가지거나 신앙이 없더라도 인간으로서 참되게 살면 하느님께서 다 구원해주신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27. 공관복음서에도 나와 있듯이 예수는 강론을 할 때 항상 비유적인 표현으로 말했고, 예수 스스로가 자신이 비유적으로 강론을 하는 것을 인정했으며 그 이유에 대해서도 말한 적이 있다. 이것으로 유추했을 때 성서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건 중세 시대에나 통할 방식, 아니 중세만도 못한 해석 방식이다. 중세에는 적어도 성경이 유기적 영감으로 쓰여졌다는 신학적 노선도 존재했고, 초창기 그리스도교의 성인인 아우구스티노 역시도 그렇게 주장했다. 당장 예수의 강론을 비유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상당히 위험한 내용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