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국가 또는 지역은 대한민국 외교부에서 여행경보 3단계인 철수권고가 발령되었습니다. 현지에 체류하시는 분들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시일 내에 최대한 신속히 귀국하거나 안전한 지역으로 대피하셔야 합니다.
해외 여행 시 반드시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사이트에서 해당 국가 또는 지역에 대해 정보를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틀:여행경보/설명문서}}
러시아 북캅카스 연방관구의 행정구역 | |||||
다게스탄 공화국* | 스타브로폴 지방 | 체첸 공화국* | |||
카바르디노-발카리야 공화국* | 북오세티야 공화국* | ||||
카라차예보-체르케시야 공화국* | 인구셰티야 공화국* | ||||
*별표는 철수권고 지역입니다. |
체첸 공화국 Чечен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 |
수도 | 그로즈니 |
인구 | 1,394,833 (2016) |
면적 | 15,647㎢ |
인구밀도 | 89.1㎢/명 |
시간대 | UTC+3 |
|
체첸어 : Нохчийн Республика (Nohçiyn Respublika, 노흐친 레스푸블리카), Нохчийн Пачхьалкх (Nohçiyn Paçẋalq, 노흐친 파치할크) / Нохчийчоь (Noxçiyçö, 노흐치최)
러시아어 : Чечен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체첸스카야 레스푸블리카) / Чечня (체치냐)
러시아 북캅카스 지방의 자치 공화국.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1991년 성립되었다. 수도는 그로즈니이다.
이 자치 공화국은 친러파인 람잔 아흐마토비치 카디로프(Рамзан Ахматович Кадыров)가 대통령을 맡고 있는 국가이다. 체첸의 독립을 요구하는 사실상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 단체로 바뀐 구 이츠케리아 체첸 정부와는 다른 정부이다.
1 역사
이슬람화 되기 이전의 체첸인들은 자신의 역사 기록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고고학상의 유적으로 오래전부터 동북캅카스에 살았던 것이 증명되었다. 체첸인과 인구시인의 선조라고 여겨지는 나흐 민족에 대한 기록은 7세기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16세기 말엽부터 동쪽 다게스탄으로부터 이슬람이 유입되어 점차 퍼져나갔다. 한편, 같은 무렵 모스크바 대공국을 중심으로 정치적 통일을 추진하며 국가 형성을 행하던 러시아는 17세기 말까지 전시베리아를 병합하였고, 18세기에는 남하를 개시, 발트해 연안, 흑해 연안, 카자흐 초원, 만주 동북부 등을 점차 병합했다. 또한 캅카스 지배의 거점으로서 북캅카스 중앙부의 테레크 주의 강변의 블라디캅카스(현재의 북오세티아 공화국)을 건설, 테레크 주 동쪽에 사는 인구시인, 체첸인의 정복을 추진했다. 이처럼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두에 걸쳐, 러시아 제국에 의해 일어난 캅카스의 지배를 둘러싼 전쟁사를 캅카스 전쟁이라 부른다.
러시아는 1801년 이란의 카자르 왕조를 무너뜨리고 동조지아를 병합, 남캅카스까지 세력을 뻗었다. 이리하여 1828년까지 오스만 제국령의 아자리야(조지아 남서부 지역) 지역을 제외한 캅카스의 거의 전역이 러시아의 지배 하에 들어왔지만, 그 중에서 체첸인을 필두로 한 다게스탄과 체첸 지역은 러시아의 지배에 격렬히 저항했다. 이들은 이맘 샤밀의 지휘 하에 1859년까지 격렬하게 항쟁하지만 결국 굴복. 단 잔당들은 몇 년간 더 저항했으며 이후에도 러시아가 혼란스러워지면 바로 봉기를 일으켰다.
체첸인은 18세기 전반까지 이슬람 수니파가 지배적인 종교가 되어, 이슬람신비주의(수피즘)의 지도자들이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서게 되었다. 체첸이나나 다게스탄 민족들은 이러한 이슬람신비주의교단의 조직력과 결속에 의지하여 러시아에 대한 저항을 계속해왔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내전에서 승리한 볼셰비키가 소비에트 연방을 건설하였다. 소련은 블라디미르 레닌의 민족자치 방침에 따라 1924년 체첸 자치주, 인구시 자치주를 설립, 1934년에는 병합하여 체첸-인구시 자치주로, 1936년에는 체첸-인구시 자치공화국으로 승격하였다.
그 후 정권을 쥔 이오시프 스탈린은 민족공화국에 의한 연방제를 전제로 한 레닌주의 대신, 민족자치공화국을 중앙정부의 집권적 통제 하에 두는 스탈린주의를 취했기 때문에, 민족자치의 실태는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몇 차례 체첸인들이 무장봉기를 일으켰지만 이때마다 스탈린은 일단 달래서 적당히 봉기를 수습한 이후 적당히 시간이 지나면 봉기 지휘부를 제거하는 수법으로 체첸을 통제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중인 1942년에는 소련에 침투한 나치 독일군의 일부가 북서캅카스에 도달하였는데, 스탈린 정권은 체첸인을 포함한 반러시아적 민족이 독일군과 연합하여 저항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독소전이 발발할 무렵 일부 체첸인들이 무장 게릴라 활동에 돌입하기도 했다. 독일군 침투 후 1944년 2월, 스탈린은 체첸인과 인구시인의 대독일 협력을 의심하여, 체첸인과 잉구시인 50만명을 중앙아시아나 시베리아로 추방했다.
1953년 니키타 흐루쇼프가 정권을 취득, 1946년 스탈린 비판을 개시하였다. 스탈린이 행한 체첸-인구시인 민족 추방도 비판 대상이 되어 1957년 두 민족은 체첸으로의 복귀와 체첸-인구시 자치공화국의 재건을 인정받았다.
소련 붕괴 이후 체첸-러시아 간 분쟁에 대해서는 체첸 사태 문서를 참고할 것.
2 지리
흑해와 카스피해로 둘러싸인 북캅카스 지방에 속하고, 캅카스 산맥의 북쪽 기슭과 평야에 펼쳐져있다. 국토의 동쪽과 북동쪽은 다게스탄 공화국과 면하고, 서쪽은 잉구시 공화국과 북오세티아 공화국, 남쪽은 조지아와 접한다. 면적은 17,300 제곱 킬로미터.
3 정치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이 선거 때마다 95%를 넘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보인다. 현재의 체첸 대통령이 람잔 카디로프고, 그가 푸틴의 최측근임을 고려하면 대략 답이 나올 것이다. 람잔의 아버지이던 아흐마트 카디로프도 친러파였다가[1] 2004년에 폭탄 테러로 암살당했다. 이러다보니 람잔과 구 이츠케리아 체첸(현 캅카스 에미레이트) 측은 물과 기름 사이.
물론 푸틴과 러시아 연방을 지지한다는 것이 러시아인을 좋아한다는 소리까지는 아닌지라(...) 람잔 카디로프가 한 말 중에는 "나는 16살때 러시아인을 처음으로 죽였다(первого русского он убил в 16 лет)." 같은 소리도 있다. 참고로 그 아버지 아흐마트 카디로프가 한 말은 "우리 체첸인은 1명마다 150명의 러시아인들을 죽여야 전쟁이 끝날것이다!(Каждый чеченец должен убить 150 русских, и тогда война в Чечне прекратится!)" 이런 말을 했던 양반들이 러시아 연방에 가서 붙을 정도면 샤밀 바사예프나 하타브 같은 와하비 놈들이 얼마나 노답이었는지 알 만 하다
그래도 시리아 에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격퇴 작전 중 전사한 레반트 이슬람국가/2016년 3월#s-15 알렉산더 프로코렌코의 이름을 딴 거리 가 수도 그로즈니에 생긴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으니 러시아인에 대한 감정은 다소 복잡한 듯. 어쩌면 극적으로 상남자답게 싸우다 간 모습이 체첸 양반들이 보기에 굉장히 인상 깊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4 인구
1989년 행해진 체첸/잉구시 공화국의 통계에서는, 체첸인이 956,879명, 잉구시인이 237,438명, 러시아인이 269,000명을 차지했다. 그 후 서부가 잉구시 공화국으로 분립했기 때문에 잉구시인 인구가 대폭으로 감소했고, 내전과 사회 불안으로 대부분의 러시아인은 국내에서 퇴거했다. 2010년 체첸 공화국에 남은 러시아인은 약 24,000명이다.
5 종교
대부분의 체첸인은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동다게스탄에서 전해진 이슬람 수니파를 믿는다. 대부분이 테레크 카자크군이었던 체첸 내부의 러시아인들은 러시아 정교회를 믿는다. 수도 그로즈니에는 현재 러시아 정교회 교회 하나가 남아있다.
과거 체첸 분리주의자들 중 와하브파에 물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영향으로 한동안은 이슬람 극단주의가 성행한 적이 있었으나, 람잔 카디로프가 체첸의 전통적인 이슬람으로의 회귀라는 모토를 내세워서 이를 척결하는 데 앞장섰다. 대신 그 반대급부로 이젠 정부에서 앞장서서 체첸식 샤리아 율법을 적용하는 이슬람 국가가 된 게 문제. 아무리 체첸 고유의 수피즘이 중동 같은 동네의 정통적인 꼴통(...) 이슬람과는 다르다고는 하지만 샤리아라는 이름이 어디 안 가듯이 여성들의 복장 규장 및 단속은 물론이고 복장이 불량하거나 히잡 미착용자는 온갖 불이익을 가하거나 정부에서 비호하는 꼴통들의 테러 대상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이거 가지고 인권단체에서 대차게 까댔다. 그나마 체첸 공화국의 샤리아는 여성들의 숨이 아예 턱 막힐 정도인 중동보다는 나은 수준인 게 함정(...). 저게?[2]
사진(Фотосушка в Грозном (20 новых фото + репортаж) ) 수도인 그로즈니 기준이긴 하지만 중동과는 확실히 뭔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히잡 관련해서. 중동 여성들처럼 꽁꽁 싸매기도 하지만 저렇게 머리에 두르는 스카프 정도(머리카락이 어느 정도 보이도록 뒤로 묶거나, 정수리 부분만 가리고 머리카락의 대부분을 드러내는 수준)로 때우는 모습도 눈에 띈다. 처음 사진에 19세기에서 타임 슬립 해오신 듯한 영감님이 있는 건 무시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