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No.7 | |
키미-마티아스 래이쾨넨(Kimi-Matias Räikkönen)[1] | |
국적 | 핀란드 |
생년월일 | 1979년 10월 17일 |
출생 | 에스푸 |
레이스 | 249경기 |
월드 챔피언 | 1회 (2007) |
그랑프리 우승 | 20회 |
포디움 | 80회 |
폴포지션 | 16회 |
패스티스트랩 | 42회 |
첫 레이스 | 2001년 호주 그랑프리 |
첫 그랑프리 우승 | 2003년 말레이시아 그랑프리 |
소속팀 | 자우버 (2001) 맥라렌 (2002~2006) 페라리 (2007~2009) WRC (2009~2011) 로터스 (2012~2013) 페라리 (2014~ ) |
목차
2007년 포뮬러 원 드라이버 월드 챔피언 | ||||
2006 - 페르난도 알론소 | → | 키미 래이쾨넨 | → | 2008 - 루이스 해밀턴 |
1988~1990년 핀란드 지역 레이스 클래스 A, B, C 우승 1991~1998년 핀란드 카트 챔피언쉽 97, 98 챔피언, 노르딕(Nordic) 클래스 포뮬라 A 우승 포뮬러 인터내셔널 A 우승 유러피안 카팅 그랑프리 슈퍼 A 클래스 종합 2위 1999년 영국 포뮬러 르노 윈터 시리즈 챔피언 스티브 로버슨 매니지먼트와 계약 2000년 영국 포뮬러 르노 챔피언-7승, 7번 폴, 6번 패스티스트 랩 유러피언 포뮬라 르노 시리즈 2번 우승 자우버 F1 팀 테스트 2001년 자우버 드라이버로 호주 그랑프리에서 F1 데뷔 |
연도 | 팀명 |
2001 | Red Bull Sauber Petronas |
2002 ~ 2006 | West McLaren Mercedes |
2007 ~ 2009 | Scuderia Ferrari Marlboro |
2012 ~ 2013 | Lotus F1 Team |
2014 ~ | Scuderia Ferrari |
1 개요
핀란드 태생.
플라잉 핀 3호기.(1호는 케케 로즈버그, 2호는 미카 하키넨)
스파의 제왕
페라리 소속의 포뮬러 1 드라이버. 07년 월드 챔피언.
그 특유의 매력으로 슈마허의 은퇴 기간동안(2007~2009) 가장 많은 연봉과 인기를 누렸던 F1레이스 스타. 전형적인 핀란드인의 성격 그 자체를 보여주는 표본.
다른 이들이 단계적으로 각 클래스를 밟아가며 F1에 입성하는 것과는 달리 카트 시절이 상당히 길었다. 이후 다음 클래스에서 '여기에 머무를 실력이 아니다'라는 평과 함께 F1에 입성한 뭔가 천재스러운 연혁을 지녔다. 르노시리즈에서 바로 F1으로
그런 배경 탓에 초기 F1 데뷔 때에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으나 데뷔하자마자 인상적인 실력을 보여주면서 불신을 잠재움과 동시에 데뷔 다음해 전통의 강호 맥라렌 입단이라는 사기적 행보를 선보였다. 맥라렌 입단에는 생각보다 일찍 은퇴를 한 맥라렌의 월드챔프이자 고향 선배이자 플라잉핀 2호기인 미카 하키넨의 배려가 있었던 듯 하나, 키미 래이쾨넨의 이미지가 맥라렌에 매우 잘 어울렸고 실력도 출중해서 꽤 이상적인 조합이었다.
미하엘 슈마허 은퇴시에 열린 행사에 참여를 안했는데 나중에 레이싱하기 전 생방송으로 인터뷰를 할 때 왜 참가하지 않았느냐라는 질문을 하자 "똥싸고 있었다"라고 답해 그의 인터뷰가 엉망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세계에 널리 알렸다.
F1 활동 초기에 술과 파티를 과하게 즐긴다고 알려졌으며 팀 내에서도 인간관계가 적극적이지는 못해 공적에서도 사적에서도 개인적인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못하다. (하지만 이건 핀란드인의 전형적인 특성이다. 인간관계에 절대 적극적이지 않고, 술을 정말 좋아하는게 핀란드인의 성향이다.) 심지어 싱가폴 GP에서는 리타이어한 키미의 안전을 살피던 스탭의 손을 쳐내며 역정을 부린 모습이 전 세계에 중계되기도 했다.
세바스찬 베텔과는 여유 시간에 배드민턴을 함께 칠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고 알려져 있다. 심지어 베텔이 2011년 Autosport Award에서 키미의 성대모사를 하기도 했다.
(1:13 부터)
하지만 현재 F1에서 최고속이라는 이미지 하면 압도적으로 키미를 연상케 하는데, 이는 그가 보유한 패스티스트랩 기록 때문이기도 하다.[2] 설령 우승하지 못한 레이스라도 가장 빠른 자는 키미 래이쾨넨이라는 분위기를 풍긴다.
레이스 마지막 랩에서 패스티스트 랩을 찍는 그의 모습은 마치 트로피는 넘겨줘도 가장 빠른 기록은 넘겨주지 않겠다는 집념처럼 보인다.(참고로 우승해도 패스티스트 랩은 찍는다.)[3]
과묵한 성격과 차가운 이미지의 미남, 핀란드 태생 등의 요인으로 별명은 아이스맨이다. 본인도 이 별명이 마음에 드는 듯 헬멧에도 아이스맨, 팔뚝에도 아이스맨 문신, 애마인 커스텀 바이크도 아이스맨, WRC 개인팀 이름도 아이스 1, 본인소유의 모토크로스 팀도 아이스 1 레이싱으로 지었다.
우승을 해도 세레모니 그런거 없고 리타이어를 해도 그다지 표정변화도 없기에 아래같은 스티븐 시걸 스러운 짤방마저 돌아다닌다.
그러나 천재스러운 데뷔로 F1계의 최고 신성이던 그도 어느덧 F1 현역 드라이버중 최고령이 되버렸고 페라리 복귀후 성적이 전체적으로 예전만 못해서 아무래도 은퇴설이 나오고 있다.
2 자우버 시절(2001)
원래 당시 2부라 할 수 있던 포뮬러 3000도 아닌 포뮬러 르노에서 뛰던 키미였기 때문에 F1용 슈퍼라이센스 발급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피터 자우버에 의하면 자우버가 강력히 주장해서야 간신히 가능했다고 한다.
하지만 개막전부터 6위로 포인트를 얻었고, 오스트리아와 캐나다에서는 4위에 오르는 등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
3 맥라렌 시절(2002~2006)
맥라렌 시절 여러 인상적인 결과를 냈음에도 당시 상당히 불안정하던 맥라렌의 머신덕에 리타이어가 잦았다. 또한 경쟁력 있는 머신을 받아도 여러 불운덕에 결국 챔피언이 되지는 못했는데 대신 F1 팬들에게는 머신만 뒷받침되어준다면 단연 챔피언감으로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다. 맥라렌 MP4-20이 2005년 시즌 가장 빠른 머신이었으나 안정성이 매우 떨어졌기 때문에 키미는 우승하지 못했다[4].
데뷔때부터 줄곧 페라리 이적설이 나돌았으나 맥라렌팬은 라이벌인 페라리에 맥라렌의 이미지 자체인 키미를 보내는데 반대했으며 페라리도 그놈한테 빨간옷 입히기 싫다는식으로 반대했다. 그러나 아니땐 굴뚝에 연기 날리없는 F1 계의 전통에 따라 2006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미하엘 슈마허의 자리를 꿰어차면서 마침내 2007년 페라리에 입단하게 된다.[5]
4 페라리 시절(2007~2009)
입단 후 시즌 데뷔전인 2007 호주 그랑프리에서 짧은 적응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팀동료 펠리페 마싸를 제치고 우승하면서 후반에는 지루해서 머신안에서 졸았다는 인터뷰 내용으로 많은 이들이 2007년은 그의 해가 되리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05, 06년 슈마허를 제치고 더블챔프가 된 르노의 페르난도 알론소가 맥라렌에 영입되었다. 동시에 F1 최초의 흑인 드라이버인 루이스 해밀턴이 데뷔함으로서 이 괴물같은 신인은 데뷔전 이후로도 내내 포디엄에 꾸준히 올라가는등, 오히려 슈마허 이후 F1계에서의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알론소나 키미보다 더 많이 받게 된다. 그리고 이후 키미는 성적이 영 신통치 않게 되면서 성질 급한 이탈리아(페라리 홈)팬들은 벌써부터 그의 능력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맥라렌이 더블챔프 알론소와 몬스터 신인 해밀턴의 내부 알력싸움과 페라리 기술 유출에 따른 페널티(컨스트럭터 점수 몰수!)등으로 자멸의 길을 걷는사이 페라리는 안정되어가는 키미와 팀동료 마싸와의 고른 활약으로 맹렬히 기세를 올려 2007시즌 후반 맥라렌을 추격하는데 성공하고 최종전 브라질 그랑프리에 이르러서는 챔피언 후보가 3명인 상황까지 이르렀다.
최후의 브라질 그랑프리를 앞둔 시점에서 각 드라이버들의 점수는 다음과 같았다.
1위 해밀턴(107점), 2위 알론소(103점), 3위 래이쾨넨(100점)
이상황에서 래이쾨넨이 챔피언이 되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우승(10점)내지는 최소 2위(8점) 이 전제 였고 라이벌 2명의 성적이 낮게 나와야지만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나 해밀턴이 5위만 해도(+4점) 키미의 챔피언을 날라갈 상황이었는데 브라질 그랑프리의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1위 래이쾨넨 2위 펠리페 마싸 3위 페르난도 알론소 7위 루이스 해밀턴
최종 드라이버 포인트 합계는
1위 키미 래이쾨넨(110점)
2위 루이스 해밀턴(109점)
3위 페르난도 알론소(109점) 우승수까지 4승으로 해밀턴과 동률이었다.
물론 브라질 그랑프리에서는 홈 드라이버 였던 펠리페 마싸가 우세했으나 그는 이미 챔피언 경쟁에서 탈락한 관계로 래이쾨넨에게 순위를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전체 승수로 보자면 래이쾨넨이 누구보다도 우세(시즌 총 6승)했기때문에 2007년 그의 챔피언 등극을 누구도 운이라고 평하지는 못했다. 다만 맥라렌의 자폭으로 두고두고 기억될 뿐.
결과적으로 래이쾨넨은 페라리로 이적하면서 05, 06년 르노에게 챔피언과 컨스트럭트 우승 깃발을 빼앗긴 팀에게 두자리 모두 되찾아주는 활약을 함으로서 성공적으로 안착한다.
2008년 에는 전년도 챔피언 답게 시즌 초반 우승도 챙기고 포디엄에도 오르고 했으나 여전히 성적의 기복이 심했고(잘할땐 우승권. 못할땐 가차없는 리타이어) 반대로 언제나 안정적인 성적을 올리던 해밀턴에 계속 밀리다가 마침내는 동료인 펠리페 마싸보다 성적이 저조했다. 결국 이번에는 작년의 마싸처럼 마싸의 챔피언 등극을 위해 그를 서포트할 수 밖에 없는 위치가 됐으며 그 역할 자체는 시즌 후반 페이스를 회복하며 충실히 수행했으나 마싸의 불운덕에 2008시즌은 컨스트럭터 챔피언을 지키는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2009시즌에는 초반부터 브론GP의 머신이 알자드급으로 압도적이었고 페라리의 F60은 허접머신이라는 것이 일찌감치 공개 돼버리면서 페라리 역대 최악의 시즌 출발중 하나라는 평을 듣는데 일조했다[6](마싸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도 중반에 불운한 사고로 잠시 자리를 비운 마싸를 대신해 페라리를 이끌면서 중후반 나름 개량된 머신으로 활약해 시즌 유일의 우승을 페라리에 바치기도 했다.(바로 스파에서)
그러나 시즌 진행중임에도 불구하고 틈틈히 랠리에 나가는 등 챔피언 등극이후 F1에 흥미가 떨어진 모습 등이 지적되었다.
특히나 2009년 말레이시아 그랑프리에서 폭우로 레이싱이 중지되었을때 남들은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레이싱에 대비하거나 드라이버 안전을 이유로 경기 중지를 위해 이리뛰고 저리뛰고 할때 혼자 레이싱 슈트 벗고 어슬렁 돌아다니며 아이스크림을 먹는 기행을 보여서 그런 지적의 좋은 자료가 되기도 했다.
5 WRC(2010~2011)
08년이후 성적 부진으로 예전부터 떠돌던 여러 그의 단점들이 다시 부각되었으며(팀내 커뮤니케이션의 부재) 명성이나 받는 연봉 규모(F1최대금액으로 알려져 있다.)에 비해 신통찮은 성적도 물론 이유가 되었겠지만 거대 스폰서 산탄데르를 등에 업은 페르난도 알론소에게 시트를 넘겨주고 F1을 떠나 2010년도에는 WRC로의 이적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2010년에는 우승팀 브론GP를 완벽히 인수한 메르세데스가 참가를 하면서 드라이버로 은퇴한 미하엘 슈마허를 기용한다는 빅뉴스가 터져버리는 바람에 그의 WRC 이적 뉴스는 빛을 보지 못했다.
아직 F1 은퇴를 공식 발표한 것은 아니고 과거 알랭 프로스트처럼 은퇴 후 다시 챔피언 등극을 한 예가 없지 않으며 그 또한 아직은 젊기에 F1으로 그가 돌아오길 바라는 팬들이 많았다.
2011시즌에는 계속해서 WRC시즌을 진행하는 한편 나스카에까지 진출하고 있다. 이로써 F1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6 로터스(2012~2013)
그런데 2012년 윌리엄즈팀으로 복귀한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로터스 르노로 복귀가 결정되었다!
복귀전인 호주 GP에서는 17그리드에서 출발하여 7위로 뛰어오르며 죽지 않았음을 보여줬으며, 복귀 4전만인 바레인 GP에서 2위로 복귀 첫 포디움에 올랐다. 이 또한 11그리드에서 출발하여 이뤄낸 것. 스페인 GP에선 3위로 복귀 두번째 포디움에 오르게 되었다. 중국 GP를 제외하곤 꾸준히 포인트를 얻으며 드라이버 챔피언십 3위까지 올라왔고 5번이나 포디움에 오르는 등 복귀 첫 시즌에서 좋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우승이 없다는 아쉬움이 항상 남아있었는데[7] 결국 아부다비 GP에서 1위를 기록하며 복귀 시즌 첫 우승을 차지했다. 1위와 더불어 팀 라디오를 통해 한바탕 웃음을 선사했는데 팀에서 알론소가 뒤따라온다고 하자 '나 좀 냅둬. 내가 뭘 해야할진 알고있어', 세이프티카 상황에서 타이어 관리를 하라는 말에 '알았어 알겠다고, 내가 알아서 하고 있으니까 일일히 상기시키지 마'라며 귀찮다는 반응과 더불어 오랜만에 우승을 차지하고, 인터뷰에서 "2009년 벨기에 이후로 첫 우승인데 기분이 어떻냐는 질문에, "Not so much" 라고 대답하며 쿨한 반응을 보이는 래이쾨넨의 모습이 압권. 레이스가 끝난 이후 'Leave Me Alone'라고 적힌 티셔츠 500벌을 만들어 로터스 팀에 선물하기도 했다.
나 좀 냅 둬[8]
래이쾨넨의 의도치 않은 개그(?)는 브라질 GP에서도 계속되었다. 54랩에서 비로 인해 머신의 트랙션이 흔들리는 바람에 잔디밭을 가로질러 탈출로로 진입했는데 공교롭게도 탈출로 끝이 막혀있어 U턴을 해 트랙으로 복귀해야 했던 것. 이로 인해 9위에서 14위까지 순위가 뒤쳐졌으나 59랩에서 11위까지 올라왔고 70랩에서 포인트권에서 달리던 디 레스타가 충돌로 리타이어 하는 바람에 10위로 포인트 피니쉬 할 수 있었다. 이때의 해프닝은 이른바 '키미의 모험'이라 불리며 아부다비에서의 팀 라디오와 합성된 영상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2012년 시즌은 리타이어 한 번 없이 207포인트로 드라이버 챔피언십 3위로 마치며 성공적인 복귀 시즌을 보냈다.
2013시즌 로터스에서 새로운 차량인 E21을 공개하면서 래이쾨넨 전용 스티어링이라는 사진을 올렸는데 버튼들의 기능이 하나같이 비범했기에(?)[9]사진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음소거, 좋아요!, 바나나, 아이스크림, 내비게이션, 앵그리버드 발사, 엄마에게 전화, 최종순위 결정, 트윗, 웅얼거림 번역,오픈 게이트, 스마일, 낮잠모드, 젠슨 버튼
2013년 시즌 첫 그랑프리인 호주 GP에서 7번 그리드에서 출발해 1위에 올랐다. 2007년 이후 호주에서의 첫 1위. 다른 팀이 3스탑을 할 때 2스탑 작전을 성공해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그리고 마크 웨버가 떠나면서 비게되는 레드불로 이적한다는 루머가 무성했지만 2014년부터는 페라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과연 페르난도 알론소와의 번호다툼은 어떻게 될지...[10]
그 후,다른 경기에서 포디움에 들다가,약 1개월 가량 쉬고 벨기에GP서 팬들은 잘할거라 예상했지만 스타트때 부터 있었던 브레이크 문제로 시즌 첫 리타이어를 했다.
이탈리아 에서 11위로 노포인트, 싱가폴에서는 반전을 보여주며 3위[11],대한민국에서는 2위로 꽤 나아진 시즌을 보내고 있을 듯 했으나...
인도에서 키미와 팀의 불화가 더 절정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56랩 쯤,키미와 그로장이 서로 배틀을 하고 있었는데,그로장이 트랙 밖으로 나가 버렸다. 결국 팀은 화났고, 아예 욕을 해버렸다.
(약 8초 부터)
시즌 도중 2014년부터 페라리 머신을 모는 것이 확정되었다는 발표가 났고, 팀원들과의 문제도 있고 등 부상도 있고 해서 로터스 드라이버로서의 마지막 두 그랑프리는 아예 출전하지 않았다. 로터스는 키미의 대타로 같은 핀란드 출신의 헤이키 코발라이넨을 기용했다.
7 페라리(2014~)
2014 시즌부터 드라이버들이 전년도 성적순으로 자신의 번호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알론소와의 번호 다툼을 걱정한 건 기우가 되었다 다른 드라이버들은 카트 시절 쓰던 번호라던지, 데뷔시즌 번호라던지 자신에게 의미있는 번호를 선택했으나... 키미는 7번을 선택했는데 선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의미는 개뿔, 작년에 쓰던거 쓰면되지 뭐하러 번호를 바꿔?
그리고 알론소와의 진검 승부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마싸의 팬들과 함께팬들은 원하고 있었으나, 2014 시즌 중반까지도 팀메이트와의 경쟁에서 승리한 적이 없다.(퀄리파잉에서는 이겨본적이 있지만 결승 레이스에서는 영국 GP까지는 이긴 적이 없다.) 이런 점에서는 2010~2013년까지의 마싸와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며, 아니 오히려 더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물론 알론소도 레이스카가 시망상태이기 때문에 챔피언십 경쟁을 할 성적은 아니긴 하지만 그리고 영국 GP에서는 엄청난 크래시를 내고 절뚝거리며 레이스카에서 내려 팬들의 가슴을 철렁이게 했다. 이 와중에 2015년에 은퇴한다는 루머가 있었으나 본인은 2015년 은퇴설은 부정했다.
결국 좋은 결과 없이 F1 2014 전반기 시즌을 마감했다. 페라리 제발 차좀 좋게 만들자
후반기 벨기에 그랑프리가 시작되자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나 그 뒤로는 적게 포인트를 얻으면서 전체 순위 12위로 마감했다.
2015시즌 개막전, 호주에서는 리타이어 했지만 다음 그랑프리에서 4위에 올랐고, 마침내 바레인에서 포디움에 올랐다.
그러나 그 뒤로는 베텔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에서는 리타이어를 했다. 벨기에에서는 '스파의 제왕'이라는 별명과 달리, 7위를 기록했고, 이탈리아에서는 예선 2위라는 좋은 성적을 내고도 정작 결승에서는 스타트 미스로 인해 꼴찌로 떨어졌다가 겨우겨우 5위로 올라왔다. 그 뒤 싱가포르에서 포디움에 오르지만 러시아와 멕시코에선 동향 후배 발테리 보타스와 컨택을 주고받으며(...) 리타이어 기록. 2015 시즌 마지막 그랑프리인 아부다비에서 포디움에 올라 유종의 미를 거뒀지만 역시나 월드 챔피언 출신 팀메이트들에게 2년 연속으로 크게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드라이버로서의 전성기가 많이 지난 나이인 만큼 2016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한다는 설이 모락모락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2016년 개막전 호주에서 퀄리파잉 4위를 기록했고, 레이스에선 베텔과 함께 로켓 스타트로 2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그러나 에어 덕트에서 불이 나 리타이어. 바레인에서도 역시 퀄리파잉 4위를 기록했는데, 이번엔 비록 스타트가 좋지 않았으나 앞선 드라이버들의 사고로 큰 피해는 입지 않았고, 별다른 위기 없이 2위를 차지하며 시즌 첫 포디움에 올랐다. 중국에선 5위로 레이스를 마무리했지만 러시아에선 3위, 스페인에선 2위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탔다. 그러나 모나코에서 빠르게 퇴근했고 캐나다에선 6위에 그치며 상승세가 한 풀 꺾였고 유럽 GP에선 해밀턴이 레이스카 세팅 문제로 팀 라디오로 짜증을 냈던 것처럼 라이코넨도 세팅 문제로 고생해 상당히 많이 짜증을 내었다. 레이스는 4위로 피니쉬.
이후 오스트리아에서 해밀턴-로즈버그의 컨택이 나오면서 3위로 포디움에 올랐고 영국에선 5위, 헝가리와 독일에서 6위를 기록하면서 전반기를 마쳤다.
후반기의 시작은 본인이 좋은 성적을 내는 스파였으나 초반 베텔과 베르스타펜과의 사고에 얽혀 최하위까지 떨어지는 불운이 있었다. 하지만 추월을 거듭한 끝에 9위로 피니쉬하면서 포인트를 얻어냈고 몬짜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서 연속 4위를 기록했다.
8 일화
- 잠을 매우 좋아한다. 자다가 일부러 일어나려 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잠을 사랑하는데, F1 데뷔전[12]에서 출발 30분전까지 자다가 나왔다.
- 유명한 애주가이다. 포디움에 올랐을 때 샴페인을 뿌리는데 뿌리는 샴페인보다 자기가 마시는 양이 더 많다는 얘기가 있다. 게다가 같은 핀란드 국적인 발테리 보타스 역시 샴페인을 뿌리기보단 거의 마셨기 때문에 핀란드인 샴페인 급유설(...)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에 포디움에 오른 그랑프리들은 샴페인 대신 로즈워터를 준비한 중동 지역의 그랑프리들이 많다(...). 2015년 바레인 그랑프리에서 로즈워터를 마셨고, 싱가폴 그랑프리에서는 샴페인을 마시긴 했으나 아부다비에서는 또 로즈워터를 마셨다(...).
- 2006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경기 도중 차량의 문제로 리타이어를 했는데 피트로 복귀하지 않고 근처에 있던 요트에 올라타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 연습주행 전 트랙워킹을 하지 않는다. 직접 주행하면서 트랙의 특성을 익히는 스타일.
- 2012 시즌 복귀한 이후에는 언론에 대한 반응이 좀 더 친근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과거 말레이시아 GP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이 지적되었는데 2012시즌에는 아예 기자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나눠주는 센스를 보였다.
- 덤으로 아이스하키를 매우 좋아하는 듯. 원래 장래희망도 아이스 하키 선수였지만 체구가 작아 좌절한 듯 하다. [13] 이후로도 아이스 하키를 하는 모습이나 경기장에서 친구와 관람하는 모습이 자주 찍힌다.
- 랠리 혹은 다른 종목의 레이싱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종종 대회에도 참여하곤 하는데, 한번은 친구들과 파워보트 레이스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는걸 꺼려한 나머지 고릴라 분장을 하고 참가했다. F1 복귀 후에도 팀에 랠리 참가 의사를 밝혔으나 로버트 쿠비차의 부상이라는 선례가 있었던 팀은 거부했다. 12년 시즌 시작전인 11년 크리스마스 쯤의 스노우모빌경기에서 손목부상도 팀의 거부에 한몫 한듯(조금 다쳤다고 했으나 수술자국이 4cm 정도). 다만 2013 시즌 말레이시아 GP가 끝난 뒤 3주의 휴식기간 동안 모토크로스에 참가한 것을 보면 팀에서 어느정도의 자유행동은 용인하는 모양.
- 한 팬이 래이쾨넨의 미니어쳐 피규어를 선물했는데 이게 로터스 공식 트위터 담당자의 손에 들어가서 #minikimi라는 해쉬태그를 달고 요긴하게(?) 쓰였다.
- 유니레버의 'Clear' 샴푸의 광고모델이다. 광고에서 마저도 예의 그 표정을 짓고 있어 광고가 정말 심심해보인다(...)#
- ↑ 핀란드어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ä와 ö는 아와 오가 아니라 애와 외로 읽는다. 따라서 라이코넨이 아니라 래이쾨넨이다.
- ↑ 역대 드라이버중 무려 3위로 그를 능가하는건 슈마허와 프로스트 뿐. 이 둘의 레이스 경력과 키미를 비교하면 비교적 단기간에 세운 기록이다.
- ↑ 2012년 복귀해서 이젠 패랩 그만찍나 했더니 2013년 첫 경기인 호주GP에서 2위를 달리는 알론소와의 격차가 무려 10초인데도 혼자 패랩을 찍음...
- ↑ 2005년 독일 GP(당시에는 뉘르부르크링에서 '유러피안 GP'로 열고 있었다)에선 마지막 바퀴 중에 플랫 스팟으로 인해 프론트 서스펜션이 부서져서 다 잡은 우승을 놓친 적도 있다.
물론 우승은 알론소가 했다. 명불허전이다. - ↑ 어느 잡지에선 그의 차가운 이미지와 페라리의 열정적인 이탈리안 레드가 어울릴까라는 말까지 나왔었다.
- ↑ 페라리는 유독 규정이 바뀐 해는 성적이 완전 엉망으로 변하는 징크스가 있다.
- ↑ 팬 뿐만 아니라 본인 또한 우승에 대한 열망이 컸다. 코리아 GP때 SBS에서 해설을 맡고있는 윤재수 위원이 래이쾨넨과의 독점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챔피언쉽 경쟁에 관한 질문을 하자 혼자 'I must win'을 수차례 되뇌이기까지 했다고.
- ↑ 경기 중 팀 라디오에서는 I know what to do
- ↑ 버튼에 붙어있는 것들 대부분이 래이쾨넨의 meme소재다.
- ↑ 물론 2013년 드라이버 챔피언 순으로 번호를 주겠지만 2007년 키미가 페라리에서 월챔을 먹은 이후로 아직까지 월챔이 나오지 않고 있으므로
알론소도 머리를 뜯고 있을듯 - ↑ 이 때 키미는 허리 부상이 있었고,경기 마저 중단될 뻔 했지만 다행히 출전은 했다. 예선 그리드는 꽤 안 좋았던 13위.
- ↑ 당시 FIA의 태클로 슈퍼라이센스가 막판까지 발급이 되지 않아 데뷔 자체가 무산될 뻔 했었다
- ↑ F1레이서는 대체적으로 체구가 작다. 무게나 공기 역학적으로도 작은 체구가 유리. 대체적으로 170cm 전후의 분포. 돈잘버는 루저. 반면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적어도 키가 180cm 이상에 몸무게가 90kg 정도는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