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노미네이션

1 개요

denomination

흔히 통화개혁(화폐개혁)의 외래어로 취급하지만 실상은 화폐개혁의 한 종류. 본래 사전적 의미는 "화폐단위"를 뜻하는 말이지만 대개는 단위를 그냥 갈아엎거나 0의 개수를 깎아낼 때 쓰는 표현이다. 풀려있는 화폐를 다시(Re-) 설정하는 것이므로 대한민국에서는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약칭 "디노미".

일반적으로는 경제규모가 커지면 중앙은행에서 보유정화(正貨)가 그대로라도 유동적으로 쓰라고 돈을 더 풀어주는 경향이 있기에 물가가 상승하는 경향을 띄므로[1][2] 사람들이 사용하는 화폐의 단위 역시 점점 증가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국가에서도 고액권 화폐를 발행하게 되는데 그 단위가 증가할수록 통화팽창이 일어나(= 조금만 발행해도 발행액수가 갑절로 커진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부작용이 있다. 그러다 더 이상 고액권으로 땜빵하기 힘들어지면 국가차원에서 신중한 논의를 거쳐서 화폐단위를 한 번 싹 밀어버리는데 이를 (리)디노미네이션이라 부른다.

불필요하게 (리)디노미네이션을 시행하는 경우에는 그 나라의 화폐 및 금융시장, 더 나아가서는 사회가 막장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너무 자주 시행한다는 것은 그 나라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경우가 될 수도 있다.

리디노미네이션 실행 방식은 2가지가 있다. 보통은 화폐 단위에서 0을 몇 개 지우는 식이다.[3] 순전히 통화팽창으로 인해 풀린 돈이 많아지면 거래시 편의를 위해 고액권 선호에 밀려서 저액권이 등한시 되어버리므로 본의 아니게 묻혀버리는 어둠의 돈(...)이 되는고로, 이를 한꺼번에 정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예를 들어 어제까지는 100원이었는데, 오늘부터는 1원이 되는 식. 이 경우는 구권의 사용기한 및 교환기간을 지정하게 되어 단순한 신권발행[4]과는 차별된다. 물론 정치성을 띠고 의도적으로 벌이는 경우도 있고, 멋모르고 시행했다가 교체비용 때문에 되려 압박되는 주객전도현상도 있다.

다른 하나는 단위를 아예 바꿔버리는 것. 국내에서는 일제강점기 엔→미군정 원(1차개혁)→대한민국 환(2차개혁)→대한민국 원(3차개혁)의 사례가 있다. 해외에서 최근 사례라고 한다면 유로가 있다. 이때는 굳이 인플레이션 해소만이 목적은 아니므로 1:1교환이나 오묘한 교환값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교체비용과 사회적 파장은 단순히 0을 지우는 것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 구권과 신권이 호환이 전혀 안 되기 때문이다.

정말로 막장 초인플레이션 경우엔 몇 차례를 거쳐야 겨우 해소되는 것이 보통이다. 브라질, 페루등의 남미국가가 대표적으로 단순히 0을 지우는 것 만으론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디노미는 어디까지나 국고가 얼마나 남았나를 재검토하는 수단으로 쓰이므로 (쉽게 말하자면 집안에 뭐가 있나 알아보기 위한 집안 대청소.) 인플레를 해결하려면 디노미로 시간을 벌어놓은 상태에서 동반되는 경제개혁 정책이 필요하다. 이 순환반복이 장기화되면 계속 털리기만 하는 국민들은... 매우 불쌍해진다.

하지만 폴란드, 터키처럼 강력한 디노미네이션 한 번으로 인플레이션을 때려잡는 경우도 있다.

극단적인 경우로 어느 나라에서는 디노미 정책으로도 어찌하지 못해서 아예 자국 화폐를 포기하고 미국 달러 등의 외국 화폐의존으로 바뀐 최초의 예시가 되었다. 날잡아서 대청소를 해봤더니 아예 집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라 결국 버리고 셋방 살이를 선택한 꼴.

한 단위(1원)의 지나치게 낮은 가치 때문에 2006년 신권발행 논의당시 대한민국에서도 신권 대신 디노미네이션(4차 통화개혁)을 하자는 논의가 오갔었다.[5]그러나 시기상조 및 교체비용의 압박의 이유를 대며 시행하지 않았다.

2015년 9월 17일,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에게 '현재 경제규모에 비해 화폐단위가 크다[6], 달러대비 환율이 네 자리수인 나라가 거의 없다, 시중에서 이젠 5천원도 5.0단위로 표현[7]한다' 등의 이유로 리디노미네이션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질문을 했고, 이주열 한은 총재도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으나 한국은행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답했다. 한은 총재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인만큼 이 발언이 이슈화되며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 결국 한국은행에서 공식적으로 "리디노미네이션 추진 의사를 표명한 것은 절대 아니다"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참고로 한국은행법 제47조의2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전"이라는 하위단위가 명목상으론 엄연히 존재한다![8] 1원=100전으로 정의되는, 달러센트와 똑같은 개념. 다만 전 단위의 화폐가 발행된 것은 가장 최근 디노미네이션(3차개혁)이 있었던 1962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니 사실상 없는거나 마찬가지. 2016년 10월 현재 1달러 = 1127원, 1센트 = 11.27원 = 1127전으로 단위차가 크다. 그런데 이미 다들 적응해서 잘 쓰고 있고, 일본 엔도 달러 대비 환율이 세 자리수인데 네 자리수라고 안되라는 법 있나 굳이 막대한 비용과 혼란을 감수해가며 화폐개혁을 감행해야 할지는 의문.

다만 액수의 단위가 선진국 치고는 상당히 큰 편인데, OECD/중위 가처분 소득 문서의 표를 보면 대한민국 원화의 단위가 유일하게 천만 단위까지 있어서 제일 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단 단위가 크면 여러가지 애로사항이 많은 것은 사실로 특히 서구권 외국인들이 단위가 너무 커서 읽기가 힘들다고 불편함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일상생활의 불편을 이유로 디노미네이션의 당위성을 피력하는 경우도 있으며, 지하경제 양성화 주장도 나름의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물론 요즘은 실제 화폐를 쓰는 대신 온라인 화폐로 넘어가는 과도기이기 때문에 단위가 큰게 사실상 불편을 초래하지 않고 (오히려 달러-센트같은 이중 단위를 피하는 장점도 있음) 해외 사례에서도 지하 경제 양성화의 효과가 생각만큼 전혀 현실화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필자의 경험 상, 한국을 잘 알지 못하고 막연히 삼성, 북한정도로 들어본 적이 있는 외국인들은 화폐 단위를 들었을 때 북한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지저분하고 후진적인 동남아시아를 연상한다고 한다. 당장 일본의 엔(円)달러 단위를 들었을 때 일본이 세계에서 5손가락 안에 꼽는 경제대국임에도 화폐단위가 큰 데에 의문을 갖는다고 한다.

다만 화폐개혁에도 큰 부작용이 존재하는데 화폐 시스템 교체에 소요되는 막대한 자원과 생활 불편, 경제 불확실성 증가 문제뿐 아니라 부동산 가격 상승과 물가 상승이 대표적이다.한마디로 부동산 쌓아놓은 금수저들은 개이득이고, 가진게 없는 월급쟁이들은 헬게이트가 열리는거다[9]

2 디노미네이션의 사례

시간 순서로 정렬.
100,000 : 1 이상의 비로 교환된 경우나 그 외 중요한 경우에는 굵은 표시.

1923년 독일 1조(!) 마르크 = 1 렌텐마르크
1946년 헝가리 40양(穰)(!)[10] 펭괴 = 1 포린트
1953년 대한민국 100원(구) = 1환
1955년 중화인민공화국 10,000위안(구) = 1위안(신) (중화인민공화국 위안)
1960년 프랑스 100프랑(구) = 1프랑(신) (프랑스 프랑)
1962년 대한민국 10환 = 1원 (대한민국 원)
1967년 브라질 1,000크루제이로(노보) = 1크루제이로(안티고)
1985년 페루 1,000(구) = 1잉티
1985년 아르헨티나 1,000페소 = 1아우스트랄
1986년 이스라엘 1,000세켈(구) = 1세켈(신)
1986년 브라질 1,000크루제이로(노보) = 1크루자도스
1989년 브라질 1,000크루자도스 = 1크루자도스(노보) = 1크루제이로(1990년)
1991년 페루 1,000,000잉티 = 1(신)
1992년 아르헨티나 10,000아우스트랄 = 1페소 (아르헨티나 페소)
1992년 구 소련 국가들
1993년 유고슬라비아 1,000,000디나라(92판) = 1디나라(93판)
1993년 브라질 1,000크루제이로 = 1크루제이로헤알
1994년 브라질 2,750크루제이로헤알 = 1
1994년 유고슬라비아 13,000,000디나라(93판) = 1디나라(신판)[11]
1995년 폴란드 10,000즈워티(구) = 1즈워티(신)
1996년 우크라이나 100,000카르보바네츠 = 1흐리브냐
1998년 러시아 1,000루블(구) = 1루블(신) (러시아 루블)
1999년 불가리아 1,000레프(구) = 1레프(신)
2000년 벨라루스 1,000루블(구) = 1루블(신) (벨라루스 루블)
2002년 유럽연합 ... 유로화를 채택한 국가들 (2007년 이후에도 이루어졌다.)[12]
2005년 터키 1,000,000리라(구) = 1리라(신) (터키 리라)
2005년 루마니아 10,000레우(구) = 1레우(신) (루마니아 레우)
2006년 아제르바이잔 5,000마낫(구) = 1마냣(신) (아제르바이잔 마나트)
2006년 모잠비크 1,000메티칼(구) = 1메티칼(신)
2006년 짐바브웨 ... 그냥 짐바브웨 달러항목을 참고하자.
2007년 가나 10,000세디(구) = 1세디(신)
2008년 베네수엘라 1,000볼리바르(구) = 1볼리바르(신)
2009년 투르크메니스탄 5,000마낫(구) = 1마냣(신) (투르크메니스탄 마나트)

2009년 북한 ... 북한의 화폐개혁을 참고하자.
  1. 웃긴건 경제규모가 작아져도 돌아가는 양상이 비슷하다(...) 이때는 돈은 풀지 않지만 보유정화값이 작아져서 생기는 현상.
  2. 몰론 만성 디플레에 시달리는 예외도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스위스로, 가까운 일본을 예로들면 30년전과 지금의 물가가 거의 비슷하다(!) 여기서 미국은 많이 애매한 입장이다.
  3. 거의 대부분은 1/1000, 가끔 1/10000을 선호한다. 예외도 있지만.
  4. 주로 위조방지를 위한 용도
  5. 김정렴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전직 경제관료 출신 원로들이 이런 주장을 공론화했다.
  6. 근데 경제규모랑 화폐단위의 (타 화폐 대비 상대적) 크기는 상관관계가 없으므로 생각해보면 묘한 발언이다.그냥 "화폐단위가 크다"고 하면 될것을...
  7. 실제로 음식점이나 카페 등에서 이런 식의 표기가 많이 쓰이고 있다.
  8. 뉴스에서 주가를 알려줄 때 '전' 단위를 종종 쓴다
  9. 그런데 이것은 조금 논란이 있는 부분이다. 역사상 거의 유일한 사례긴 하지만 터키는 오히려 리디노미네이션 후 경제가 안정된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10. 1양은 10의 28제곱이다. 즉 40양은 400,000,000,000,000,000,000,000,000,000이다(...)
  11. 그러니까, 2년 만에 13조배의 디노미네이션을 시행한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나라의 10자(秭, 10^24)와는 비교도 안 된다.
  12. 일반적인 개념과 반대로 오히려 신화폐인 유로의 가치가 낮아 결과적으로 역 디노미네이션이 된 나라도 있다. 아일랜드, 몰타, 키프로스 3개국. 몰론 크고 아름답게 시행된 나라도 있었지만. 가령 이탈리아라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