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투헬


2016-17 독일 1. 분데스리가 클럽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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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엘 바움
(아우크스부르크)
카를로 안첼로티
(바이에른)
알렉산더 누리
(브레멘)
토르스텐 프링스
(다름슈타트)
토마스 투헬
(도르트문트)
니코 코바치
(E. 프랑크푸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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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슈트라이히
(프라이부르크)
팔 다르다이
(헤르타 BSC)
율리안 나겔스만
(호펜하임)
마르쿠스 기스돌
(함부르크)
마이크 발푸르기스
(잉골슈타트)
페터 슈퇴거
(쾰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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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 하젠휘틀
(라이프치히)
타이푼 코르쿠트
(레버쿠젠)
마르틴 슈미트
(마인츠)
디터 헤킹
(묀헨글라트바흐)
마르쿠스 바인치를
(FC 샬케 04)
안드리스 욘커
(볼프스부르크)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감독
토마스 투헬 (Thomas Tuchel)
생년월일1973년 8월 29일
국적독일
출신지크룸바흐
신체 조건190cm
포지션수비수
유스팀FC 아우크스부르크 (1988~1992)
소속팀슈투트가르트 키커스 (1992~1994)
SSV 울름 1846 (1994~1998)
지도자VfB 슈투트가르트 유스 코치 (2000~2005)
FC 아우크스부르크 유스 트레이너 (2005~2006)
FC 아우크스부르크 유스 감독 (2006)
FC 아우크스부르크 II 감독 (2007~2008)
1.FSV 마인츠05 감독 (2009~2014)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감독 (2015~)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역대 감독
위르겐 클롭
(2008~2015)
토마스 투헬
(2015~)
현직

1 개요

오트마르 히츠펠트-위르겐 클롭으로 이어지는 도르트문트 명장 반열에 이름을 올려 그 계보를 이을 차세대 지략가.

마인츠 시절부터 클롭의 영향을 받은, 명실상부 클롭이 직접 지목한 공식 후계자.

사이코패스 광규형 자라나라 머리머리

박주호 성애자[1][2]

welcome to hell

토마스 투헬은 2015/16 시즌부터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앞서 지난 시즌의 부진으로 인해 자진 사퇴한 위르겐 클롭이 팀을 떠나면서 구단에게 후임 감독으로 추천한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자연스레 클롭의 전술 영향을 받은 투헬은 마인츠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수없이 다양하고 효율적인 전술로 약체 마인츠를 중위권에 안착시켰다. 이에 클롭은 자신의 제자인 투헬을 믿고 사랑하는 도르트문트를 위해 투헬을 추천한 것. 클롭의 예상대로 투헬은 자리를 잘 이어받아 지금까지 도르트문트를 성공적으로 지휘하고 있다.

2 선수 시절

어린 시절 TSV 크룸바흐의 유소년 팀에 입단하는 것으로 축구 인생을 시작한 투헬은 1988년 FC 아우크스부르크[3]의 유스팀으로 자리를 옮긴다. 1991년과 1992년 DFB 유소년 포칼을 2연패하는 데 기여한 후 투헬은 19살의 나이로 뷔르템베르크 주를 연고지로 한 2부 리그슈투트가르트 키커스(Stuttgarter Kickers)로 이적을 감행하고 이 곳에서 같은 해 여름 성인무대 데뷔식을 치른다. 하지만 데뷔시즌이었던 92-93 시즌에는 불과 8경기에 출장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고 다음 시즌에는 더더욱 실망스러운 폼을 보여주면서 방출되고 만다. 오갈 곳이 없어진 투헬은 3부 리그이자 남부 지역리그(Regionalliga Süd) 소속이었던 SSV 울름 1864로 이적했고 네 시즌 동안 팀의 핵심 수비수로 활동하면서 1998년 2부리그 승격에 힘을 보태지만 고질적인 무릎 연골 부상[4]으로 인해 이 해를 끝으로 2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선수생활을 접어야만 했다.

3 지도자 생활

3.1 FC 아우크스부르크

은퇴 2년후인 2000년, 투헬은 VfB 슈투트가르트의 15세 이하 팀을 지도하기 시작한다. 이후 내부승진을 거친 투헬은 2004년 19세 이하 유소년팀의 감독이 되어 2004-2005 시즌 VfB 슈투트가르트 U-19 팀의 U-19 리그 우승이라는 값진 성과를 이룩한 직후, 자신의 현역시절 친정팀이었던 FC 아우크스부르크로 직을 옮겨 팀의 유소년 육성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된다. 2006년 투헬을 평균 1.4점[5]이라는 점수로 코치 자격증 연수를 마쳤고 2006년 아우크스부르크의 U-19팀을 지휘한 데 이어, 다음해부터 2년 동안 아우크스부르크의 2군을 지도한다.

3.2 1.FSV 마인츠05

이런 투헬에게 1.FSV 마인츠05가 접근했고, 투헬은 2008년 7월 마인츠의 U-19 감독으로 부임한다. 마인츠의 U-19 감독으로 재직한 08-09 시즌에 그는 아우크스부르크 시절과 마찬가지로 U-19 리그 우승을 성취해냈고, 같은 해 분데스리가 승격에 성공[6]한 마인츠 성인 팀은 36살에 불과한 젊은 유소년 코치에게 팀의 지휘권을 맡기는 모험을 감행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 시즌을 팀을 승격시킨 주연이었던 외른 안데르센 감독이 리그가 채 개막도 하기 전이었던 8월 3일에, 구단 경영진과의 의견 불일치 및 DFB 포칼 1라운트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광속으로 사퇴를 해서 마땅한 대안이 없어 울며겨자먹기로 투헬에게 맡긴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게 잭팟. 특히나 감독 2년차였던 2010-2011 시즌이 눈부셨는데 시즌 첫 7경기를 모두 승리로 장식하는 기염을 토했다.[7] 소규모 셀링클럽이라는 팀의 한계상 초반의 기세를 잇지 못한 채 약간의 DTD를 거친 끝에 해당 시즌을 5위로 마감해야했지만, 투헬의 지도력만큼은 독일 전역에서 호평이 잇따랐다. 한편 한국에서도 투헬의 인지도가 꽤나 상승했으니... 바로 박주호구자철을 영입했기 때문..그리고 박주호를 도르트문트로까지 데려갔다. 2013-2014에도 투헬은 마인츠를 유로파 리그 진출 가능 순위인 7위로 이끌면서 훌륭한 지도력을 과시했고, 후반기로 접어들면서부터 투헬과 샬케 04바이어 04 레버쿠젠과 같은 분데스리가 빅클럽 사이의 링크와 관련된 루머가 끊이지 않는다. 마침내 시즌 최종전을 앞둔 5월 14일 투헬이 계약 만료를 1년 앞두고 팀을 떠날 것이라는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 그렇지만 마인츠 구단측은 계약해지를 거부(...)했고 다른 팀이 투헬을 모셔가기 위해서는 위자료를 지불해야만 했다.[8] 그리고 이 투헬을 공짜로 모셔간 팀이 바로 위르겐 클롭의 대체자를 찾던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3.3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클롭 체제 도르트문트의 아이덴티티였던 게겐 프레싱을 수비 전개에만 적용하고[9] 공격 전개에서는 역습보다는 지공을 통해 유연한 운영을 보여주면서 시즌 초반 세 경기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도르트문트 감독으로 부임한 후 첫 뮌헨전에서 5-1 대패를 당했다. 다음날 훈련장에서 화를 내는 영상이 찍히는 등 화가 꽤 많이 났었던 듯. 로테이션이나 교체 같은 경우엔 팬들도 이해가 가지 않는 판단을 보여주곤 하는데[10], 이는 규모가 큰 구단 운영 경험이 전무한 탓으로 보인다. 가끔 클롭같은 골 세레모니를 시전한다 15/16시즌 종료 직전 62% 득표율로 15/16시즌 분데스 공홈 팬 선정 최우수 감독으로 뽑혔다. 출처

4 전술 스타일

축구장을 최대한 활용하여 공간을 만들어내는 공격
수적 우위를 항상 점하는 수비
게겐프레싱에 포제션 한 스푼


공격방식은 전반적으로 '공간의 최대한 활용' 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 마인츠 시절부터 전방의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이 중앙이나 측면을 파고들어 비는 공간이 생기면 이를 다른 선수들이 침투하여 골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즐겨 사용했다. 축구장 전체를 최대한 활용하여 넓게 공격을 펼치고, 수비들이 이를 막기 위해 따라오면 남는 공간을 나머지 공격자원들이 차지하고 패스를 받아서 연결하는 것이다. 마인츠 때는 다이아몬드 형태의 4-4-2를 사용했는데 공격시 때때로 투톱을 맡은 공격수들이 넓게 벌리며 수비를 달고 오면 2선의 공격진들이 그 자리를 파고들고 공격을 전개했다. 이때 수비는 최대한 오버래핑을 자제하고 대신 공격을 지원하는 정도로 대신했다. 도르트문트에서는 4-2-3-1과 4-3-3을 주로 사용하는데 기본적인 전제는 변하지 않았다. 때로는 윙 자원들이 중앙에 집중한 사이 비는 공간을 풀백들이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크로스를 올리고 골 기회를 만들어 내고 때로는 윙과 원톱이 스위칭을 통해 수비를 교란하고 공간을 만들면 이 빈 공간으로 침투하여 골을 만들어 내는 것들이 그것이다.

여기에 포메이션과 선수배치는 유동적이다. 즉 본인이 원하는 '공간의 활용을 이용한 공격' 이라는 대전제 아래 팀의 성향과 선수구성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를 시도하는 것. 마인츠때는 좋은 윙 자원이 없기 때문에 4-4-2를 사용하되 공간 창출하는 것은 투톱에게 맡겼다. 그러면서 중앙은 단단하게 막아놓고 공격 전개를 하였는데, 도르트문트의 선수구성은 마인츠보다는 좋은 편이기에 풀백에게도 적극적으로 공격을 주문하여 아예 상대가 공격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전술은 상대가 대놓고 수비적으로 나온다면 다소 어려워진다 사실 영혼의 텐백을 한다면 어느 팀이 안 어려워지겠냐만서도... 특히 중앙공간을 틀어막는 식으로 나온다면 제대로 공간이 나오지 않아 힘든 경기를 자주 보여주었다.

수비는 '필요하다면 좌우 공간은 내어 주되, 중앙 공간은 철저히 지킨다' 는 식으로 전술을 구성한다. 특히 클롭 감독과 같이 수비에 있어서는 적극적으로 상대에게 붙어 볼을 뺏는데 주력하고 볼을 뺏는 즉시 패스를 통해 빠르게 공격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만 과거 도르트문트와는 달리 공격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압박하지는 않고 중앙의 경우는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상대의 패스를 차단하고 볼을 뺏는데 주력한다. 이때에는 좌우 수비는 최소한으로 하고 수비들간의 간격을 좁혀서 중앙은 내주지 않겠다는 식이다. 이러한 수비방식은 윙 자원이 보통인 팀들에게는 효율적인 방식이나 윙 자원과 2선이 강한 팀들에게는 뮌헨이라든가 도르트문트라든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모습도 보여준다.[11]

5 기타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 중 하나로 점찍기도 했다. 기사에 나온대로 미팅 장소에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분데스리가내의 한국 선수들과 인연이 있는 편이다. 마인츠 시절 구자철, 박주호가 있었고 도르트문트로 이적 후 박주호를 데려오기도 했다.

위르켄 클롭 감독의 뒤를 이어 도르트문트를 지도하게 되었고, 위에 말했듯이 마인츠 시절 U-19감독과 1군 감독으로 지내는 등 유사성이 눈에 띈다. 다만 투헬 감독은 그 전술에 관해서 과르디올라를 많이 참고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더불어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으로 헤어만 바트슈투버(Hermann Badstuber)를 꼽았다. 슈투트가르트 시절 코치와 선수로 만났는데 그때 그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참고로 그는 홀거 바트슈투버의 아버지이기도 하다[12]원문 번역

사람을 보는 눈이 뛰어나다. 현재 호펜하임의 감독 율리안 나겔스만을 발굴한 것도 투헬. 아우크스부르크 2군 감독 시절에 선수로 뛰던 나겔스만이 부상당해 선수생활을 접게되자, 그의 분석 능력을 예의주시하던 투헬이 그를 상대팀 전력 분석관으로 임명시켰다. 당시 나겔스만의 나이는 20세. 나겔스만은 현재 28세의 젊은 나이로 호펜하임의 감독을 맡고 있다.

펩 과르디올라와 사적으로 자주 만나면서 축구 전술에 대하여 많은 토론을 하는 등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과르디올라가 맨체스터 시티 감독으로 떠나면서 바이에른 뮌헨 후임 감독으로 투헬을 강력하게 추천했다고 하나 이미 투헬이 도르트문트와 계약을 맺은 상태였으므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링크 링크

6 감독 기록

임기 시작임기 종료승률
FC 아우크스부르크 2군2007년 7월 1일2008년 6월 30일178950%
1.FSV 마인츠052009년 8월 3일2014년 5월 11일72466439.56%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2015년 6월 29일재임중408772.73
통산[13]96547343.05%
  1. 워낙에 동양인에 대해 거리낌없이 자주 관심을 보이고 적극 기용하는 편.
  2. 다른것보다 투헬이 도르트문트에 부임할때 내건 조건이 박주호의 영입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FM을 해본 사람이면 알탠데, 불만 없이 어느 포지션에 기용해도 평타 이상을 쳐주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3. 당시 FC 아우크스부르크는 4부리그 팀이었다.
  4. 팀의 핵심수비수였음에도 그가 네 시즌 동안 뛴 경기가 68경기 임을 생각하면 얼마나 심각한 부상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5. 독일은 1~5점까지로 점수가 나오고 1이 최우수 5가 낙제이다. 한국의 수우미양가를 생각하면 편하다.
  6. 여담이지만 마인츠 강등의 책임을 지고 마인츠 감독 자리를 떠났던 사람이 바로 위르겐 클롭이다. 클롭은 원래 2부리그 소속이던 마인츠를 2004년 구단 역사상 최초로 1부리그에 승격시키고 몇 시즌을 1부리그에서 보냈지만 나중에 결국 강등, 클롭은 유임이 결정되었으나 다음 시즌 마인츠를 다시 승격을 시키지 못하자 스스로 사임하였다.
  7. 심지어 이 중에는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거둔 승리도 있다. 흠좀무.
  8. 계약해지가 되지 않았으니 연봉도 받을 수 있었지만 투헬은 쿨하게 잔여연봉은 포기한다. 오오 대인배...
  9. 클롭 체제에서의 센터백까지 압박에 가담하거나 쓰로인을 던지는 상대 선수 주변에 8명이 둘러싸는 극단적인 게겐 프레싱보다는 투헬 체제는 좀 더 조직적인 압박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예로 2, 3선의 대각선 배치.
  10. 대표적으로 리가 7라운드 다름슈타트 전에서 선제골을 내준 후 후반전 65분 역전했지만 벤더와 같은 믿음직한 수비 자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몰아붙이다가 후반 종료 직전에 골을 내주며 2-2로 비겼다. 이 경기에선 도르트문트로선 억울할 오심이 꽤 나왔을지라 하더라도 교체를 통해 수비적인 경기 운영을 했다면 지지 않았을 확률이 더 높다. 이 경기를 비기며 뮌헨과의 승점차가 더욱 벌어졌다.
  11. 이는 당시 윙 자원이 부족한 마인츠였기 때문에 썼던 전술일 가능성이 높다.
  12. 헤어만 바트슈투버는 2009년 5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3. 2015년 8월 27일자 기준. 지속적인 수정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