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안첼로티

2016-17 독일 1. 분데스리가 클럽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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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엘 바움
(아우크스부르크)
카를로 안첼로티
(바이에른)
알렉산더 누리
(브레멘)
토르스텐 프링스
(다름슈타트)
토마스 투헬
(도르트문트)
니코 코바치
(E. 프랑크푸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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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슈트라이히
(프라이부르크)
팔 다르다이
(헤르타 BSC)
율리안 나겔스만
(호펜하임)
마르쿠스 기스돌
(함부르크)
마이크 발푸르기스
(잉골슈타트)
페터 슈퇴거
(쾰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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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 하젠휘틀
(라이프치히)
타이푼 코르쿠트
(레버쿠젠)
마르틴 슈미트
(마인츠)
디터 헤킹
(묀헨글라트바흐)
마르쿠스 바인치를
(FC 샬케 04)
안드리스 욘커
(볼프스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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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바이에른 뮌헨 감독
카를로 안첼로티
(Carlo Ancelotti)
생년월일1959년 6월 10일
국적이탈리아
출신지레졸로
신체 조건179cm
포지션미드필더
등번호9번
소속 클럽선수AC 파르마 (1976 ~ 1979)
AS 로마 (1979 ~ 1987)
AC 밀란 (1987 ~ 1992)
감독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1992 ~ 1995, 수석 코치)
AC 레지나 (1995 ~ 1996)
AC 파르마 (1996 ~ 1998)
유벤투스 FC (1998 ~ 2001)
AC 밀란 (2001 ~ 2009)
첼시 FC (2009 ~ 2011)
파리 생제르맹 FC (2011 ~ 2013)
레알 마드리드 CF (2013 ~ 2015)
FC 바이에른 뮌헨 (2016 ~ )
국가대표
(1981 ~ 1991)
26경기, 1골
2014 FIFA 올해의 감독상
수상
요아힘 뢰프
2위
카를로 안첼로티
3위
디에고 시메오네
유벤투스 FC 역대 감독
마르첼로 리피
(1994 ~ 1999)
카를로 안첼로티
(1999 ~ 2001)
마르첼로 리피
(2001 ~ 2004)
AC 밀란 역대 감독
파티흐 테림, 안토니오 디 젠나로
(2001)
카를로 안첼로티
(2001 ~ 2009)
레오나르두 아라우주
(2009 ~ 2010)
첼시 FC 역대 감독
거스 히딩크
(2009)
카를로 안첼로티
(2009 ~ 2011)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
(2011 ~ 2012)
파리 생제르맹 FC 역대 감독
앙투완 콩부아레
(2009 ~ 2011)
카를로 안첼로티
(2011 ~ 2013)
로랑 블랑
(2013 ~ 2016)
레알 마드리드 CF 역대 감독
주제 무리뉴
(2010 ~ 2013)
카를로 안첼로티
(2013 ~ 2015)
라파엘 베니테스
(2015 ~ 2016)
FC 바이에른 뮌헨 역대 감독
펩 과르디올라
(2013 ~ 2016)
카를로 안첼로티
(20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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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 챔피언스 리그 역대 최다 우승을 달성한 명장[1][2]

레알 마드리드의 소망인 라 데시마를 이루어낸 감독

다이아몬드 4-4-2 잡아 주기의 달인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는 말의 훌륭한 반례

FC 바이에른 뮌헨의 최대 천적이자 이제는 그 팀의 수장이 된 감독[3]

1 선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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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 밀란 선수시절, 챔스 전설의 시작

현역 시절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는데, 현역 시절에는 스타 플레이어로서 상당히 화려한 경력을 자랑했다. 지금은 성격좋은 덕장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선수시절엔 꽤 터프한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레졸로와 파르마 유스팀을 거쳐 1976년 당시 세리에 C에 머물렀던 AC 파르마에서 선수 데뷔를 한 카를로 안첼로티는 비록 하부 리그에서였지만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고, 3년 뒤인 1979년부터 명문 AS 로마로 이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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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의 안첼로티

안첼로티는 이적 첫시즌부터 하부리그 유망주였음에도 주전을 보장받으며 맹활약을 펼치게 된다. 특히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에서 토리노 FC를 상대로 역전 결승골을 터뜨리면서 팀은 3-2로 승리하고 안첼로티는 감격의 첫 우승컵을 들어올리게 된다.[4] 안첼로티의 등장이후 로마는 유벤투스의 난적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유벤투스에게 플라티니가 있다면 로마에겐 안첼로티가 있을정도로 매우 큰 전력을 차지하였다. 다만 1982년에 안첼로티가 부상으로 시즌을 날리게 되고 로마는 3위에 그치고 만다. 그러나 안첼로티는 1년만에 돌아왔고 로마는 다시금 살아나 마침내 41년만의 스쿠데토를 얻어낸다. 그렇게 처음으로 유로피언 컵도 출전하여 1라운드와 16강 경기를 뛰며 팀의 승리에 공헌하였지만 유벤투스와의 리그경기에서 부상을 당해 또 시즌을 쉬게 된다. 결국 안첼로티를 또 잃은 로마는 유로피언 컵과 세리에에서 준우승에 그치고만다.[5] 그 후, 로마의 주장 아고스티노 디 바르톨로메이가 은퇴를 하였고 안첼로티는 그의 후임으로 주장에 임명된다. 그러나 그가 주장으로 있던 3년 동안 로마가 얻은 우승컵은 코파 이탈리아 하나에 그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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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첼로티는 1987년 베를루스코니의 타겟이 되어 AC 밀란에 입단하며 밀란 제너레이션의 일원이 된다. 그리고 밀란에서 처음 보내게 되는 1987/88 시즌에 안첼로티는 5년만의 첫 스쿠데토를 획득한다. 1988/89 시즌에는 결승전에서 풀타임을 뛰었고 슈테아우아 부쿠레슈티를 4-0으로 꺾으며 처음으로 빅 이어도 만져보게 된다. 바로 다음 해에는 SL 벤피카를 상대로 1-0 승리를 거두며 다시 타이틀을 따냈고, 밀란을 유러피언 컵에서 2년 연속으로 우승하게한다. 그렇게 황금기를 보내던중에 1992년, 또 부상을 당해 더이상 선수생명을 이어갈 수 없었고 안첼로티는 그대로 밀란에서 현역 은퇴를 선언한다.

승부의 신이라는 책에서 AC 밀란에서 선수로 뛸 당시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팀에서 제외시킨다고 반감을 가진 적이 있어서 이유를 들을 생각도 없었고, 훈련에도 참가하지 않은 적이 있다고 인터뷰한다. 안첼로티가 감독이 되면 이해가 될거라는 카펠로 감독의 말에 지금은 누구보다도 그 말을 잘 이해한다고 한다.

2 지도자 생활

2.1 초기

선수에서 은퇴를 선언한 지 얼마 안 되어 밀란 시절 그의 스승이자 당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아리고 사키 감독의 부름을 받아 바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로 지도자 코스를 밟는다.[6] 스승을 보좌하며 1994 미국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준우승으로 이끈 안첼로티는 그 이후, 1995년 당시 세리에 B에 있던 팀인 AC 레지나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팀을 세리에 A로 승격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 공적을 인정받아 1996년, 자신의 연고 클럽인 파르마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팀을 2위까지 끌어올리며 유명세를 탄다. 이때 파르마의 주전 골키퍼는 바로 잔루이지 부폰. 시즌 전 구단주가 '이 젊은 키퍼는 정말 대단해!!!'라고 하자 안첼로티의 반응은 '그깟 애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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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유벤투스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3년 동안 활약했으나 무관으로 그치며 팬들의 비난을 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당시 유벤투스는 우승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할 만큼 후덜덜한 스타 선수들로 가득찬 팀이었다.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지네딘 지단, 에드가 다비즈, 필리포 인자기, 잔루카 잠브로타, 에드윈 반 데 사르, 다비드 트레제게 등등... 이뿐만 아니라 서포터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매 경기 야유를 들을 정도였다. 야유의 이유도 자신들의 라이벌 AC 밀란의 레전드라는 이유로(...) 결국 유벤투스 보드진은 안첼로티의 후임으로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던 마르첼로 리피를 선임한다.레전드로 따지면 카펠로가 성골 밀란 레전드인데? 근데 수면제라고 욕먹은건 안자랑 00/01 시즌에는 승점 73점을 기록, 75점의 AS 로마에게 우승을 넘기게 되면서 비난이 거세졌으며, 안첼로티 감독은 01/02 시즌 감독이 공석이 된 AC 밀란의 사령탑을 맡으며 유벤투스 생활을 끝낸다.

여담으로 안첼로티가 감독 커리어를 통틀어서 가장 안타까운 실수로 꼽는 실수가 이 시기에 나왔다. 티에리 앙리아스날 FC로 넘긴 것인데 당시 부임 초기였던 안첼로티는 단장이었던 모지에게 앙리가 공격수로 뛸 수 있냐고 물어봤고 모지는 윙밖에 못 뛴다고 대답해 아스날이 좋은 오퍼를 해 오자 넘긴 것. 감독시절 가장 안타까운 실수가 뭐냐는 질문을 받을때 마다 이걸 꼽는걸 보면 어지간히 아쉬운게 아닌것 같다.

2.2 밀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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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명예와 불명예의 역사의 시작
본격 구단주 때문에 영원히 고통받는 시즌1

감독 부임 바로 다음 시즌인 02/03 시즌 챔피언스 리그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거머쥐며 더블을 달성했다. 03/04 시즌에는 드디어 세리에 A 우승을 거머쥔다. 하지만 챔스에서는 데포르티보에개 영혼까지 털리는데 04/05 시즌에는 박지성이 뛰던 PSV 아인트호벤을 격파하고 결승전에 올라갔으나 승부차기 끝에 리버풀에게 패배하여 우승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06/07 시즌에는 칼치오폴리 사태로 인하여 챔피언스 리그 3차 예선부터 시작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살인 일정을 모두 소화해 내며 결승까지 올라가는 근성을 보였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이 끝나고 제대로 된 휴식과 훈련도 없이 이 정도의 성과를 냈다...[7]그리고 결승에서 리버풀과 다시 만나 이번에는 2-1로 꺾으며 2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 안첼로티 감독은 챔피언스 리그 우승 청부사로 자리잡게 된다.

허나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이었다. 03/04 시즌에는 리그 우승에 성공했으나 이후 유벤투스와 인테르에게 번번이 밀리며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팀 내의 선수진의 노쇠화가 심각해짐에도 불구하고 큰 영입 및 세대 교체를 실시하지 않으며 베테랑 선수 영입에 관심을 보여 노인정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2007년 챔피언스 리그 우승으로 잠시 논란을 잠재웠지만 몇년 간의 핵심 선수들의 고령화 및 전력 보강의 미진함은 결국 안첼로티의 발목을 잡게 되면서 07/08 시즌을 챔피언스 리그 16강 탈락과 더불어 리그 5위로 마무리지으며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실패하면서 팀의 몰락을 알렸다.

2.3 첼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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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주 때문에 고통받는 시즌 2
그의 표정에서 그 당시 상황이 설명된다

결국 08/09 시즌, 리그에서 3위에 그쳐 무관을 기록한 이후 AC 밀란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 09/10 시즌부터 첼시 FC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런데 당시 첼시 역시 노인정으로 점점 변해 가고 있던 시점이었다(...). 처음으로 이탈리아 클럽이 아닌 타 국가의 클럽을 맡았기에 능력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으나 이를 불식시키면서 데뷔 시즌을 리그 우승, FA컵 우승으로 더블을 달성하며 사람들의 기대치를 높였다. 다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주제 무리뉴가 이끄는 인테르에게 패배하여 16강에서 탈락.

10/11 시즌에는 리그 초반 6경기에서만 21득점 2실점을 기록하며 디펜딩 챔피언으로서의 위상을 드높였으나 이후 수비진, 미드필더진의 줄부상과 팀원들의 노쇠화 등으로 리그 중반 먹을 수 있는 승점도 모두 놓치며 극도로 부진하게 되었다. 리그 후반에 들어서는 오히려 부상 선수들이 돌아오고 페르난도 토레스다비드 루이스 등의 영입으로 로테이션이 그나마 가동되어 조금씩 부진에서 돌아오고 있지만 리그 우승과는 상당히 멀어지며 3위를 목표로 하고 있는 실태이다. 게다가 챔피언스 리그 8강전에서 맨유에게 덜미를 잡혀 탈락하였고 리그컵과 FA컵도 일찌감치 탈락하면서 10/11 시즌은 무관으로 끝나게 되었다. 덕분에 해임에 대한 소문까지 거론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재 리그 2경기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3위인 아스날을 3점차로 제치고 2위에 올라 있다. 시즌 막판 맨유와의 경기에서 이기면 역전 우승을 노려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아쉽게도 경기 시작 30초 만에 패배하고 말았다. 안첼로티 감독의 경질설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지만 정작 선수들은 그를 지지하고 있으며 다른 감독들 역시 그의 경질은 말도 안 된다며 옹호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2010/2011 시즌이 끝난 후 첼시는 안첼로티를 경질하였음을 발표했다. 부임 첫 해 더블을 이룬 감독을 그 다음 시즌 우승 못했다고 잘라버리는 로만의 위엄.그리고 첼시는 또 한 번...

부각되지 않았지만 이때도 몇몇 선수들의 태업 논란이 있었다. 훗날 인터뷰에서 밝히기를 첼시 시절 죽이고 싶은 선수가 있다고 말할 정도.[8]

2.4 PSG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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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구단주에게 고통받지 않은 시절
표정부터 좋아보인다.

29일 레 퀴프 등 프랑스 주요 일간지에서 일제히 카를로 안첼로티의 파리 생제르맹 감독 부임 기사를 보도했다. 이어 PSG가 콩부아레 감독을 해임하고 안첼로티를 선임하였음을 확정지었다. 신임 단장인 레오나르두의 존재가 PSG로의 부임을 결정지었다고.

이후 PSG를 지휘하면서 2012년 후반기 리그1 우승을 위해 새 출발하였으나 생각보다 부진한 성적으로 몽펠리에 HSC에게 리그 우승을 내주게 되었다. 이후 2012-13 시즌에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티아구 실바 등을 영입하면서 대대적인 선수 보강으로 PSG는 더욱 막강해진 전력으로 압도적인 성적을 써나갔고 챔피언스 리그는 8강까지 진출하였다. 결국 PSG의 프랑스 리그1 우승을 달성하였다.

2.5 레알 마드리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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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주[9] 때문에 고통받는 시즌 3

그렇게 파리 생제르맹 측에 19년 만에 리그 우승을 안겨줬는데 2013/14 시즌부터 레알 마드리드에서 그를 감독으로 영입할 예정이다. 안첼로티도 동의는 했지만 파리 생제르맹 측이 새로운 감독을 영입할 때까지 안첼로티를 내보내는 건 일단 보류했다가, 6월 25일 같은 날에 파리 생제르맹은 로랑 블랑을, 레알 마드리드는 안첼로티를 선임한다는 결정이 공식 발표되었다.

부임 초기에는 전술이 정착되지 못해 헤매는 모습을 보이며 불안불안한 모습을 보여줬지만[10] 점차 전술이 자리 잡기 시작한 뒤로는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여줬고, 특히 디마리아의 중미 포지션 변경이 대박을 치면서 상승세를 달리기 시작했다. 코파 델 레이 4강, 결승에서 라이벌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를 연파하며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조별 예선을 순조롭게 돌파하고, 16강에서 샬케 04를 대파, 8강에서 고전하긴 했지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게 저번 시즌의 복수에 성공하더니만 4강에서 전 시즌 트레블에 빛나는 유럽 최강팀이며 펩 과르디올라가 이끄는 바이에른 뮌헨을 홈 1-0, 원정 4-0[11]으로 완파하면서 레알 마드리드의 12년 만의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또한 이 경기로 안첼로티 본인은 바이에른 뮌헨전 6승 2무라는 ㅎㄷㄷ한 성적을 기록하며 뮌헨 킬러라는 사실을 재입증했다. 결국 라 리가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우승을 내줬지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경기 종료 2분 전 극적인 동점 골을 넣어 연장전으로 가는 드라마틱한 승부 끝에 4-1로 승리를 거두며 마침내 레알 마드리드는 시즌 더블[12]과 함께 라 데시마를 달성했고, 안첼로티는 밥 페이즐리와 함께 챔피언스 리그 최다 우승 감독 반열에 올라서게 되었다.

그동안 이스탄불의 악몽이나 리아소르의 악몽의 희생양이 되었던 안첼로티 감독이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감회가 새로웠을 듯.


레알 마드리드에서 라 데시마를 달성하고 환호하는 안첼로티

그리고,레알 마드리드와의 재계약에 대한 안첼로티 감독의당장 재계약 하자고!열망을(...)표현한 기사가 떳다! 당장 펜과 종이를 달라.그리고 어디에 싸인하면 되는지도 알려달라고 했고 레알 마드리드의 보드진 역시 안첼로티의 지도력에 만족을 표하고 있기에 2017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기사 1980년대 이후 감독의 무덤, 독이 든 성배라 불릴정도로 모가지가 자주 날라가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안정적인 감독 신뢰도를 유지하고 계약 연장까지 이끈 감독으로 기록되었다. 안첼로티는 레알 마드리드를 마지막으로 감독직에서 조기 은퇴하겠다고 노안이라 그렇지 2017년이 되어도 환갑이 안된다 밝힌 것으로 알려졌으나, 완전 은퇴가 아닌 클럽 감독은 그만하겠다로 밝혀졌다. 남은 커리어는 어느나라 던지 간에 국가대표팀을 이끌 생각이라고 한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무대에서 안첼로티를 볼 수 있을지도. 최근에 밝힌 계획은 대표팀에도 관심이 있지만, 이탈리아 세리에 A로 돌아가 지휘봉을 잡고싶은 생각도 있다고 한다.

14-15 시즌 전반기에는 레알 마드리드의 UEFA 슈퍼컵 우승, 클럽 월드컵 우승, 공식경기 22연승등으로 뛰어난 지도력을 보였으나 고질적인 로테이션 부족으로 전반기의 상승세가 오버페이스가 되며 후반기에 결국 리그 선두를 바르셀로나에게 내줬고, 챔피언스리그는 4강에서 유벤투스에게 탈락했으며 코파 델 레이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광탈해 무관으로 시즌을 마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그리고 리그마저 바르셀로나의 우승을 허용하며 14-15 시즌을 무관으로 마쳐야했다. 주전들의 잦은 부상이 원인이었다고 하지만 그 주전들을 관리도 없이 열심히 굴린게 누구였는지 생각하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결국 14-15 시즌을 끝으로 경질됐다. 무관도 무관이지만 무관에 이르는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이 장기적으로 팀에 안좋은 영향을 끼칠게 뻔했기 때문이다.

후에 AS에서 플로렌티노 페레즈를 인터뷰했다. 안첼로티를 경질시킨 이유에 대해 그가 말하길 발렌시아 전에서 안첼로티가 가레스 베일을 교체했는데 그것에 대해 크게 분노해서 안첼로티에게 따졌다고 한다. 당연히 안첼로티는 선수 기용은 감독에게 권한이 있는 것이니 이를 이해하지 못 했고 이 때 페레즈는 안첼로티가 자신에게 반대하려 한다고 느껴 시즌이 끝난 뒤, 그를 경질했다. 이 사람, 페예그리니 때도 그러더니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

경질 당할 당시엔 그의 로테이션 가동의 부재를 비판하는 팬들이 많았지만 흑마법사의 부임 이후, 레알 팬들은 하나 같이 안첼로티를 그리워하고 있다. 특히 0-4 참패 이후 안첼로티의 인스타그램에 'Come back to real madrid'라는 글이 도배가 되어 있다(...). 선수 혹사 문제는 비판 받아 마땅하지만, 레알 마드리드 감독 역사상 유례없이 선수단[13]과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그를 대책 없이 잘라버린 페레즈 회장에 대한 불만이 매우 고조되고 있다. 그래도 흑마법사 짜르고 앉힌 지단이 낸 결과가 좋았으니...

2.6 바이에른 뮌헨 시절

이젠 구단주가 아니라 구단 레전드들에게 잔소리로 고통받을 시절

바이에른 뮌헨 킬러가 바이에른 뮌헨 수장이 되다.

2015년 레알에서의 경질 이후 한 시즌 동안은 쉬고 나서 다시 감독 생활을 재개할 것이라며 인터뷰하였고, 새 시즌 개막 이후로 안첼로티를 데려오기 위해 여럿 빅클럽의 구애를 받아왔다. 그러던 도중 2016년 초,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2016-17 시즌부터 맨체스터 시티의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되었다는 소식이 시즌 중도에 발표되면서 뮌헨 보드진들은 차기 감독을 시급히 선임해야 할 이유가 생기게 되자 이에 안첼로티에게 접근하였고 안첼로티 또한 이를 수락하면서 뮌헨은 발빠르게 과르디올라의 후임으로 안첼로티를 선택하였음을 발표했다. 천적 제거에도 성공했다[14]
부임 후 첫 컨퍼런스에서 뮌헨도 안첼로티를 원했고, 안첼로티 역시 무직 상태에서 뮌헨 급의 명문팀이 제안을 해오자 큰 고민 없이 바로 수락해 협상은 매우 빠르게 진전되었다고 직접 밝혔다. 아직은 독일어를 배우는 단계여서 그런지 부임 기자회견때 독일어로 자기 소개를 하고 소감을 밝히긴 했지만 세부 질문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회화를 영어로 했다.

전임 감독인 펩은 부임 기간 동안 리그 3연패, 컵 2회 우승을 했고 챔피언스리그는 3연속 4강을 기록했다. 바이에른은 전전임 유프 하인케스 시절을 포함해 리그 4연패 중인데 리그에 약하고 챔피언스리그에 강한 안첼로티가 어떤 성적을 낼지가 관심사. (사실 뮌헨 팬들은 리그 우승 한번쯤 못하더라도 챔스 우승에 훨씬 목말라 있을 것이다) 분데스리가는 타 리그보다 경기수가 적고[15] 겨울 휴식기가 길어서 주전 혹사로 유명한 안첼로티에게 좀 더 편한 환경이긴 하다.

기사를 통해서 뮌헨 구단은 안첼로티에게 전임감독들과 같이 감독의 훈련,전술등에 전권을 위임했다고 밝혔다. 그에 대한 감독의 반응은 구단주가 개입을 안한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안첼로티 : ??? 라는건 항상 점심에 밥 먹으면서 전술 설명해줘야 되는게 아니였나?? 그러니까 로테이션을 돌리라고요

부임 후 첫 경기였던 독일 5부리그 립슈타트와의 평가전에서 4대 3으로 승리했다. 4대0으로 앞서다가 후반에 2군 유망주들을 대거 투입했는데 4대 3까지 추격당해 바이언 팬들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었다. 아르연 로번프랑크 리베리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내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나 로번은 전반 30분 경 다시 부상이 악화되었고 6주 아웃 판정을 받고 말았다. 과연 월드글라스(..)

현재 안첼로티는 현 바이에른의 스쿼드에 만족중이며 올 여름 추가적인 영입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거듭 말하고 있다. 레로이 자네율리안 드락슬러와 링크가 몇 번 뜨긴 했지만 로번-리베리와 킹슬리 코망, 더글라스 코스타로 이루어진 유리몸 윙 라인에 티아고 알칸타라, 사비 알론소, 아르투로 비달, 요슈아 킴미히, 마리오 괴체 등포화상태에 이른 중원 스쿼드 상황을 고려하면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유리몸 더블스쿼드 지난 2년간 지독한 부상 악령에 시달린 뮌헨을 보면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백업 공격수와 메흐디 베나티아가 이탈한 센터백 라인에 백업 하나 정도는 필요해 보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다. 2년 뒤 은퇴하는 필립 람의 장기적인 대체자 계획도 아직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는데 킴미히를 풀백으로 쓰려는건지 더 지켜봐야 할 듯 하다.[16][17]

그리고 리가 개막 전에 열린 슈퍼컵과 포칼 1라운드에서 저 걱정은 깔끔하게 사라졌다. 특히 3년 내내 내줬던 슈퍼컵에서 도르트문트를 2:0으로 격파한 경기가 매우 강한 인상을 줬는데 이 경기는 도르트문트가 전반적으로 주도하며 뮌헨을 상대로 처음으로 점유율을 앞선 경기를 펼쳤다. 바이언은 주축 독일선수들의 유로 참가로 인한 컨디션을 고려해선지 내려앉아 묵묵히 공격을 받아내며 역습 위주의 경기를 준비했다. 그 결과는 역습 코너킥 각 각 한번으로 득점하며 4년만에 우승으로 이어졌다. 비교하자면 13-14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바이에른 뮌헨 vs 레알 마드리드와 유사한 경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경기는 뮌헨이 레알 마드리드의 박스 앞에서 볼을 돌리며 주도적으로 이끌었지만 결국 코너킥 2골 역습 1골 프리킥 1골을 내주며 4:0 대패로 마무리됬었다. 이 경기와 스코어만 다를 뿐 거의 유사한 전개를 보여주면서 단 두 경기만에 안첼로티만의 색채를 입히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바이언에서 가장 역습에 특화된 아르연 로번, 더글라스 코스타, 킹슬리 코망이 빠진 것을 감안하면 풀 스쿼드의 경기력이 기대되는 상황이다.아니 우리의 패스마스터 킹갓예로메 보아텐그는...
그리고 대망의 개막전..

첫 홈경기인 베르더 브레멘과의 개막전에서 무려 6:0대승을 이뤄냈다! 펩의 스타일인 패스와 점유율 중심의 축구인건 변함이 없지만 느낌은 펩과 사뭇 다르다.안첼로티도 점유율 압도하는 축구였다 라인을 극단적으로 올리던 펩 뮌헨과는 정반대로 라인을 내리고 중원에서의 압박으로 인한 볼탈취와 이어지는 강한 역습이 이어지는 실로 하인케스 느낌이 나는 전술을 구사중이다. 좌측면에서 리베리가 중앙으로 침투하면 알라바가 측면으로 침투하는 측면 전술도 되살아났다. 로벤이 돌아온다면 하인케스 시절의 로베리와 람라바의 시너지 작용이 되살아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매우 크게 보였다. 지난시즌 뮐러와 레반도프스키만을 의존하는 역습에서 리베리-레반도프스키-뮐러 3톱의 유기적인 역습과 알론소를 십분 활용하는 전술이 돋보이는 완벽한 전술.

3 선수 기용 성향

혹사 대마왕 vs 포메이션 조립가
리그에서의 저조한 성과 vs 챔스에서의 엄청난 업적

무난한 성품의 덕장으로 적을 만들지 않는 부드러운 리더쉽과 탁월한 전술역량을 가진 유능한 감독이지만 검증된 선수만 주야장천 굴려먹는걸 매시즌 반복해 주전들의 혹사가 누적되고 준주전급은 경기감각이 쇠퇴하며 유망주들은 성장할 기회를 박탈하는 바람에 시간이 흐를수록 팀이 약화된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에 대해서는 사실 무리뉴 3년차 징크스와 같이 2년차에 무관에 그치고 해고된 레알 마드리드나 첼시에서의 이미지가 강화시킨 이미지다. 안첼로티가 장기집권했던 팀은 AC밀란뿐이며, 오히려 AC밀란에서는 부임 둘째 해인 02-03 챔피언스리그 우승, 03-04 세리에 A우승, 챔스 4강, 04-05 챔스 준우승, 05-06 챔스 4강, 06-07 챔스 우승, 즉 5년간 유럽 최정상권의 팀을 유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5년간 과연 동일한 선수들이 AC밀란을 지탱하였을까?

실제로, 02-03 챔피언스리그의 결승 스쿼드와, 06-07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 스쿼드를 비교해보면, 4명의 선수가 은퇴나 이적등의 이유로 다르며, 이는 그 기간동안은 훌륭하게 유망주를 키우고 필요한 자리에 준주전급을 주전으로 올리는 과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 졌음을 의미한다.

노인정 스쿼드 구축의 경우 장기집권한 밀란 시절 가장 두드러졌는데 팀의 주전 선수들이 30대 초반을 넘어서기 시작한 07/08 시즌부터 심각해졌다. 07/08 시즌 당시 주전 선수들 중에 30줄에 근접하지 않은 선수가 카카, 알렉산드르 파투, 다니엘레 보네라, 알베르토 질라르디노뿐이었으니 말 다 했다. 이미 30대 중반에 접어든 팀 레전드 파올로 말디니, 필리포 인자기는 기량 쇠퇴가 완연했지만 계속 중용되었고 대체자를 키우려는 시도는 부족했다.

주전 혹사도 심해서 당시 팀의 실질적인 에이스였던 카카를 주야장천 기용했다. 반면 카카와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였던 요앙 구르퀴프는 제대로 된 육성없이 벤치에서 썩히다 그냥 떠나 보냈다. 그렇다고 새로운 선수의 영입으로 카카의 부담을 덜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 반동으로 카카는 혹사를 당해 09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후 다시 한번 부상에 시달렸고 다시는 밀란 시절의 기량을 회복하지 못했다.[18] 브라질의 미래를 이끌 스트라이커로 기대받았던 파투도 08/09시즌의 혹사로 09/10 시즌부터 인저리 프론으로 전락해 유럽무대를 떠나야 했다.

이에 대해서 요앙 구르퀴프의 경우엔 팀원 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멘탈리티 적으로 밀란과는 맞지 않음이 여러 그 당시 멤버들의 증언으로 밝혀지고 있으며, 카카의 경우는 오히려 탈이 난 것은 대표팀 에서의 부상을 숨긴 이유에서이지, 밀란에서의 로테이션 없는 출장이 그 이유가 아니다. 애초에 축구라는 종목 자체가 팀의 에이스 정도 되면, 부상이 있거나 컨디션의 이상이 있지 않는한, 계속 기용되는 종목이란 것을 고려했을 때 이는 합당한 이유가 아니다. 호날두도, 메시도, 리베리도, 레반도프스키도, 정말 엄청 약팀과의 경기거나 승부가 경기 전에 이미 정해져 있는 수준이 아니면 거의 모든 경기에 출장을 한다.

또한 그 당시 30줄이 넘어가는 멤버들이 많았음에도 영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이는 베를루스코니가 총리가 되고 축구단 운영에서 그 의지를 줄이고 비틀면서 일어난 일이다. 애초에 유스 출신들로만 유럽 최정상급의 스쿼드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유스에게 기회를 준다고 해도 필요한 포지션은 외부 수혈을 해야 하는 것이 축구단의 특징이다. 그 바르셀로나 조차도, 메시의 뒷받침을 해줄만한 공격수는 결국 밖에서 계속 수혈을 해왔다. 수비수도 그렇고 수비형 미드필더도 그렇고. 외부 수혈을 통해서 적절한 유망주가 없는 상황에서 유망주를 못키워 냈다고 비판하는 것은 부당한 측면이 없지 않다. 실제로 안첼로티는 윙이나 미드필더를 대체해야 한다는 이유로 리베리의 영입을 요청했었으나, 돌아온 것은 파투였다. 보드진이 감독이 메우길 원하는 선수를, 혹은 빈자리를 메울 가능성이 있는 유망주를 구해주지 않는데, 감독이 어떤 수로 이를 메운단 말인가.

첼시에서도 베스트 11만 꾸준히 돌렸다. 첫 시즌에는 그럭저럭 버텨냈지만 예의 두 번째 시즌에 들어서자 부작용이 발생했다. 램파드의 부상과 맞물려 팀의 공격 라인의 무게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그 결과 리버풀전 패배를 시작으로 팀이 순식간에 무너졌고 간신히 준우승을 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성적만 봤을 때 사실 자를 만한 상황은 아니었으나, 맨유의 퍼거슨이 미드필더진은 철저하게 로테이션 돌리고 어린 선수들을 지속적으로 기용해 키우려고 한 반면 안첼로티는 전술로 퍼거슨을 우위를 점할순 있어도 장기적인 팀 구성에선 많이 서투른 모습을 많이 보여줬고[19] 여기에 여러 번의 병맛 선수 교체 등이 맞물려 2년 만의 조기 하차라는 최악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이 문단 역시 위와 비슷한 논조로서 이야기 할 수 있다. 애초에 그 시즌에 맨유의 퍼거슨과 달리 젊은 유망주를 쓰지 않고 굴릴 선수만 굴렸다는 명제 자체가 잘못된 명제이다. 경질되던 해 첼시의 미드필더 자원의 출장 순서를 보면 말루다, 에시앙, 하미레즈, 존 오비 미켈, 램파드, McEchran, 가쿠타, 베나윤 순이다. 이 때의 하미레즈, 존 오비 미켈은 둘다 25세도 되지 않은 유망주들이였다. 있는 자원을 가지고는 어떻게든 로테이션을 시켰다는 소리. 따라서 위의 문단은 왜곡에 가깝다. 성적이 안나온 것이 주전의 혹사로 인해서라면, 다른 모든팀들 역시 그러한 비판을 똑같이 들어야 한다.

레알 마드리드 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벌어졌는데 첫해는 탁월한 전술적 역량으로 우승을 거두고 그 다음 시즌에는 22연승을 기록하는 등 엄청난 모습을 보이며 트레블 후보로 뽑혔으나 그간 주전만 주야장천 기용한 부작용으로 하나둘 부상신이 강림하고 체력적으로 열세를 드러내며 우승구도에서 밀려났다. 특히 모드리치는 이후 잔부상이 끊임없이 발생해 카카의 전철을 밟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페레즈 탓도 할 수 없는게 이미 젊은 선수들, 다른 팀 가면 주전인 준주전급이 쌓여 있던 레알 마드리드였고 월드컵 이후 토니 크루스와 하메스 로드리게스, 케일러 나바스를 영입해 스쿼드를 더 두텁게 해줬다. 결국 레알 마드리드는 안첼로티를 경질하고 철저한 로테이션 운용으로 유명한 베니테즈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불과 200일만에 짤랐다.

이 역시 사실관계를 왜곡한것에 가까운데, 그 해 레알은 하메스 로드리게즈, 토니 크루스, 케일러 나바스를 영입했으나, 케일러 나바스는 골키퍼 포지션이라 혹사를 분석하는데 있어 별 도움이 안되고, 하메스 로드리게스는, 안첼로티 뿐 아니라 베니테즈에 지단까지도 외면하고만 재능이다. 오히려 위 3명 중에 하메스를 그나마 가장 많이 기용한 것이 안첼로티다. 심지어 BBC와 같이 어떻게든 기용하려고 노력하면서.

애초에 BBC라는 축이 존재하는 레알의 경우, BBC가 모두 존재하는 가운데에서 3미들에서 필요한 성향은 홀딩과 빌드업 능력을 가진 미드필더이다. 그 해에 그러한 능력을 가진 사비 알론소는 팔아버리고, 토니 크루즈가 들어왔으니, 당연히 토니 크루즈는 사비 알론소 만큼 중용될 수 밖에 없었다. 모드리치 역시 마찬가지. 카세미루는 이 시즌에 포르투로 임대를 가있었고, 결국에 공격적인 재능은 넘치나, 미드필더에서 쓸 선수는 모드리치, 토니 크루스 밖에 없었던것. 이는 카세미루가 복귀한 현재도 그렇다. 토니크루스나 모드리치는 부상이 없는한 주전이 확실시 되며, 카세미루는 더한 노예모드로 팀에서 뛰고 있다. 하메스를 영입할때는 센세이셔널 했고 이적료도 많이 지불했으나, 정작 도움이 되는 영입은 아니였던것.

오히려 위 사례들을 종합해보면, 혹사로서 대표되는 감독이라기 보다는 있는 선수들을 어떻게든 잘 조립해보려는 성향이 강한 감독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셰브첸코, 후이 코스타, 히바우두, 셰도르프, 피를로를 한 스쿼드에 조립해 내기도 했다.[20] 결국 혹사와 위에 대한 논란은, 보드진이 영입을 칼같이 하고 분데스리가 재능 전부 모아오기로 유명한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안첼로티의 성적을 통해 확인해볼수 있을 것이다.

4 덕장

인터뷰를 해도 다른 빅 클럽의 감독들과는 달리[21] 상당히 온화하고 부드러운 말을 자주 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첼시 감독 부임 이후에는 무리뉴 감독의 날카로운 독설을 들어왔던 팬들이 안첼로티는 좀 심심하다는 평을 자주 한다.[22] 덕분에 언론이나 선수단과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는편이다. 레알 시절에 일화로 안첼로티의 딸이 디에고 로페즈를 두둔하며 사람들이 카시야스만 신경쓰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논란이 커지기 전에 빠르게 카시야스에게 사과를 전했다. 위 사실은 카시야스가 직접 밝혔다.

덕장으로서 후덕한 외모와 인자한 성격으로 선수들이 잘 따르는 감독이다. 선수 개개인을 존중하고 그들과 속깊은 대화를 나누며 깊은 신뢰를 쌓는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선수와의 불화는 거의 없다. 선수들도 안첼로티를 큰형님처럼 생각해서 미스터 혹은 코치로 부르지 않고 카를로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적지 않게 장난질의 희생양이 되는 감독이다. 특히 레알 선수진은 선수들과의 친화력을 뽐내며 화목하게 지내는 안첼로티에 비해 무뚝뚝하고 단절된 모습을 보이기로 유명한 베니테즈가 감독이 되자 하나같이 입을 모아 안첼로티가 너무 그립다고 말했고 특히 크로스와 모드리치는 이적까지 고민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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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 밀란 시절에는 젠나로 가투소에게 걸핏하면 폭행당했다.영감...이 천재덕분이지??헷헷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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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FC감독 시절 존 테리드록바에게 쓰다듬 당하는 안첼로티 잘 보면 미리 후드를 씌우는 램파드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태업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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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시절. 엘 클라시코를 이기고 모드리치에게 깜놀당하는 안첼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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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장난질을 당해도 무신경했지만, 치차리토윙크 ANG에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5 여담

  • 1959년생으로 아직 60대도 되지 않았지만 60~70줄의 퍼거슨, 벵거 감독만큼이나 나이 들어 보이는 엄청난 노안의 소유자이다.


안선생님

밀란 시절엔 겨우 40대의 젊은 감독이었는데도 안선생님이라고 불리며 할아버지 감독의 대명사처럼 통했다. 대부분 라이트 축구팬들은 파비오 카펠로, 마르첼로 리피, 아리고 사키, 지오반니 트라파토니등과 같은 세대인줄 안다(...). 젊은 감독의 대명사였던 무리뉴보다 꼴랑 4살 많은데 말이다. 심지어 젊은 시절 선수로 활약할 때부터 이미 노안이었다. 사실 요아힘 뢰브보다 한살 형이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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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첼로티의 선수시절 외모 변천사인데, 로마 시절까지는 나름 준수한 외모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AC밀란 입단후에 급노화가 시작된것으로 보인다.(...) 사진의 얼굴을 세로로 나누어 보면 왼쪽과 오른쪽의 표정이 다르게 찍힌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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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른 축구감독들에 비해 유독 흡연장면이 많이 찍히는데 감독이 선수들과 맞담배를 했단 카더라도 있을 정도다. 선수들의 흡연에 대해 크게 신경을 안쓰고, 오히려 자기가 경기장 필드 위에서 피고 다닌다.
  • 음식을 즐기는 많이 먹는식도락이다. 은퇴하고 나서 좋았던 점 중 하나가 토르텔리니를 많이 먹는다고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고.....

6 안첼로티에 대한 말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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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커룸과 팀 미팅에서 봤던 감독 안첼로티는 늘 한결같은 모습이였다. 심지어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도 농담을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우리는 경기에 나서서 승리를 거뒀다." -파올로 말디니
"친애하는 안첼로티 감독님. 나는 승리를 원합니다.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안첼로티, 당신이 필요합니다." -로만 아브라모비치
"카를로, 감독님은 제 아버지입니다." -세르지뉴
"이미 동료들과 안첼로티 감독의 뛰어남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그는 최고의 감독이다. AC 밀란과 레알 마드리드를 지휘하며 챔피언스리그에 큰 족적을 남겼다." -사비 알론소
"과르디올라 감독은 분명 세계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이지만, 단연 최고는 따로 있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는 바로 카를로 안첼로티다." -마르첼로 리피
"안첼로티 감독은 많은 걸 가르쳐주셨다. 그는 매우 따뜻한 사람이다. 나를 비롯해 PSG 선수들은 그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다. 언젠가 다시 안첼로티 감독의 밑에서 축구를 하고 싶다." -마르코 베라티

7 우승 경력

7.1 선수

7.2 감독

7.3 개인 수상

  • 2000/01 이탈리아 세리에 A 올해의 감독
  • 2002/03 판치나 드오르
  • 2002/03 UEFA 올해의 감독
  • 2003/04 이탈리아 세리에 A 올해의 감독
  • 2003/04 판치나 드오르
  • 2003 월드 사커 매거진 선정 올해의 감독
  • 2007 IFFHS 올해의 감독
  • 2012/13 프랑스 리그 앙 올해의 감독
  • 2014 IFFHS 올해의 감독
  • 2014 글로브 사커 어워드 선정 올해의 감독
  1. 2003, 2007년 AC 밀란, 2014년 레알 마드리드
  2. 통산 3회 우승으로 밥 페이즐리와 동률이며, 현역 감독으로는 최다 우승이다.
  3. 안첼로티는 바이에른을 상대로 무려 8전 6승 2무무패를 기록하고 있고, 그 중 3승이 무려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달성한 것이다! 근데 이제는 그 바이에른의 감독이 되었으니 인생사 새옹지마
  4. 특히 이 시절의 안첼로티는 말그대로 토리노 킬러였다. 로마에게 유난히 취약했던 토리노 FC는 물론이고 그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유벤투스도 안첼로티의 로마는 매우 위협적이었을 정도였다.
  5. 코파 이탈리아는 우승
  6. 안첼로티는 선수 시절부터 코칭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그가 선수 시절 코칭에 대해 처음으로 가르쳐 준 상대 역시 아리고 사키라고. 안첼로티의 전술 스타일을 보면 트라파토니식으로 스페셜리스트를 적극 활용하기보다 사키즘의 냄새가 많이 나는 것은 그런 이유일 듯.
  7. 05/06 시즌 밀란의 기존 승점은 88점으로 91점인 유벤투스에 이어 리그 2위였으나 칼치오폴리 연루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30점이라는 페널티를 받게 되어 58점, 리그 3위가 되었고 이에 따라 3차 예선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절대 1차 예선부터 시작한 게 아니다.
  8. 니콜라스 아넬카로 추정된다.
  9. 사실 레알 마드리드는 구단주의 개념이 없다. 타 구단의 구단주와 같은 역할을 하는 플로렌티노 페레즈는 회장이다.
  10. 심지어 리가 전반기 엘 클라시코 더비에서 라모스를 수미로 쓰다가 아무런 재미를 못 보고 1-2로 패배했다.
  11. 참고로 레알 마드리드는 이 경기 전까지 바이에른 뮌헨 원정 성적이 1무 9패였다.
  12. 국왕컵, 챔피언스리그
  13. 레알에서 선수,감독,부회장 까지 온갖 자리를 역임했던 호르헤 발다노도 "레알에서 감독이 라커룸 장악하는게 쉬운줄 아냐? 그거 안첼로티 라서 가능했던 건데?"의 투로 페레즈를 디스했다. 다행히 그게 가능했던 또 한 명으로 인해 운데시마라는 결실을 얻었지만.
  14. 취소선을 쳐 놨지만, 안첼로티는 바이에른 뮌헨에 극상성인 최대의 천적으로, AC 밀란레알 마드리드 감독 시절 바이에른을 숱하게 만나 매번 쥐잡듯 잡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바이에른의 감독이 되었으니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 셈
  15. 분데스리가는 여타 대부분의 리그들이 38라운드까지 진행하는데 비해 34라운드가 끝이며, 독일의 FA컵이라 할 수 있는 DFB-포칼도 홈 앤드 어웨이나 재경기 따윈 없고 무조건 단판제이다. 게다가 EPL은 캐피탈 원 컵처럼 리그컵까지 있다 쉽게 말해 레알 마드리드, 유벤투스 등의 팀이 한 시즌에 60경기 정도 치를 때 뮌헨은 포칼, 챔스에서 모두 결승까지 올라도 불과 53경기만 치른다.
  16. 맨시티 이적설이 무성하던 킴미히를 꼭 지켜내겠다고 공언했던 바 있다.
  17. 게다가 필립 람의 나이를 생각하면....
  18. 다만 부상을 초래한건 안첼로티의 혹사지만 그토록 심화시킨건 구단에 부상을 알리지 않고 월드컵 출전했던 카카 본인의 잘못이었다.
  19. 긍정적 선수 보강으로 이바노비치를 빼고는 이렇다할 플러스 요소가 없었다!
  20. 이것이 얼마나 수비밸런스가 맞지 않는 일인지는 위 선수들의 명단을 보면 알 수 있다. 셰도르프 정도가 그나마 수비 밸런스에 기여하는 선수이다.
  21. 맨유의 퍼거슨, 레알 마드리드의 무리뉴, 아스날의 아르센 벵거 등.
  22. 다만 이 덕장, 보살 이미지도 PSG감독 부임 이후부터는 가끔 인터뷰에서 독설을 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조금씩 깨지고 있고 이에따라 안티도 조금씩 생기고 있다(...)
  23. 그리고 언행이 둥글둥글한 덕장이란 것도 안선생님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