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투(가수)

투투
멤버(가나다 순)
김지훈오지훈유현재황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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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멤버

네가 지색 개성 투투 [1] - 1994년 8월 21일 팬클럽 창단식에서
이름생년월일대표별명포지션상징색
김지훈1973년 5월 5일[2]덕팔이[3]메인 보컬 파란색
오지훈1973년 4월 7일오서방[4]리더, 프로듀서, 키보디스트, 기타리스트 초록색
유현재1973년 6월 6일똘똘이 스머프[5]베이시스트, 드러머 빨간색
황혜영1973년 4월 22일꼬꼬서브 보컬 노란색

2 역사

2.1 1기

오지훈, 유현재 : 너 노래 좀 하냐?

김지훈 : (팔짱끼며 자신있는 표정으로) 응~ 쫌 해!

《1991년 김지훈, 오지훈, 유현재의 첫 만남에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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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오지훈, 유현재, 황혜영, 김지훈

최전성기. 김지훈, 오지훈, 유현재와 객원 멤버 황혜영으로 구성되었으며, 1994년 5월에 'TWO TWO'로 데뷔하였다. 투투라는 그룹의 이름은 우리가 흔히 아는 개구리 왕눈이 캐릭터 투투와는 전혀 관계 없으며, 데뷔 당시 나이가 22살인 동갑내기들끼리 결성한 그룹이라는 의미로 숫자 2의 영단어인 Two를 복수 조합한 것이다. 홍진호?
1973년생인 김지훈, 오지훈, 유현재가 결성당시에 22살 동갑내기이기에 그룹명이 투투였고, 앨범 작업이 끝나고 객원 멤버로 투입된 황혜영도 역시 1973년생인지라 데뷔 이후 인터뷰에서는 4명이 모두 1973년생 동갑 내기여서 그룹 이름을 투투로 지었다고 언급하였다.

오지훈, 유현재의 경우 서울 서운중학교 동기이자 절친한 친구였기에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밴드 공연을 같이 다녔다. 둘이 고3이었던 1991년에는 학교에 나가는 날보다 공연에 나가는 날들이 더 많을 정도로, 둘이 소속된 밴드는 강남 지역의 고등학생 밴드 중에서 잘나가는 밴드였다.

둘이 소속된 밴드에는 1972년생 보컬이 있었으나, 보컬 부모님의 반대로 보컬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밴드활동에 위기가 왔다. 밴드의 보컬이 사정상 나갈 수 밖에 없어도, 공연의 일정들은 남아있었으니 공연을 취소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 유현재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노래방에서 유현재와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선배가 '청소년 가요제에 출전한 적이 있던, 강북 출신의 인창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김지훈'을 소개 시켜주었고 김지훈이 그 밴드의 보컬로 들어가면서 투투의 뿌리가 만들어졌다.

김지훈, 오지훈, 유현재는 고등학교 졸업 후 1992년도에 명지전문대학에 진학 후에도 각자의 소속그룹에서 음악 활동을 하였으며, 셋이서 같이 언더그라운드 록밴드로도 활동하였다.[6] 헤비메탈의 장르를 다루었지만 주로 코믹한 창작곡을 불렀다고 한다.

1993년 여름에 오지훈과 유현재가 제주도로 MT를 가서 그룹 투투에 대한 계획을 구상한 뒤로, 김지훈과 오지훈, 유현재는 프로젝트 그룹으로 투투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오지훈이 자신의 핸드폰을 팔아 마련한 보증금으로 봉천동의 지하 1층의 월세방을 얻어 투투 1집의 작업을 했었다. [7]

그룹 투투는 오지훈(건반/기타), 김지훈(보컬), 유현재(드럼/베이스)로 구성된 3인조 남성밴드로 데뷔 할 예정이었고, 음반의 타이틀 곡은 다른 곡으로 정해져 있었다.
'일과 이분의 일'의 경우 앨범의 다른 곡들을 만든 후에, LP와 테이프에서 A, B면간의 수록곡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만들었던 노래였다. 앨범을 제작하고 난 뒤 수록곡들을 소속사 사장에게 들려주었는데, 소속사 사장이 '일과 이분의 일'을 듣고 난 뒤 타이틀 곡으로 삼을 것을 제안하여 타이틀 곡이 '일과 이분의 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타이틀 곡 '일과 이분의 일'의 퍼포먼스를 위해 객원 멤버로 황혜영을 급하게 영입하였고, 투투 1기는 혼성 4인조 그룹으로 재편되어 1994년 5월 1일에 데뷔했다.[8] 앨범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뒤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오지훈(키보드)과 유현재(베이스)야 그렇다치고 황혜영은 앞에서 춤추는 무희(...) 수준이고[9] 실상 김지훈 원탑그룹[10]이었다.

투투 1집은 황혜영이 들어오기 전에 작업을 마친 앨범이었기 때문에 나머지 수록곡에서 황혜영의 파트는 없었으며,[11] 그 때문에 후속곡 '그대 눈물까지도'에서는 황혜영이 무대에 오를 수 없었으나 뮤직비디오 같은 데는 얼굴마담으로 많이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정규 합작앨범인 1994년 내일은 늦으리 앨범에서는 '아름다운 세상으로'의 내레이션, '용사의 외침'에서는 김지훈과 듀엣으로 불렀으며 룰라와 투투의 크리스마스의 앨범에 보컬로 참여했다.

오지훈의 경우 그룹의 리더로 결성 당시 중심 멤버였으며, 앨범의 프로듀싱 및 전곡을 작사 작곡하는 등 그룹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재수생' 등의 일부 앨범 수록곡에서는 보컬로 김지훈과 함께 양분하기도 했다. 유현재 역시 훗날 유재석과 비슷한 외모로 잠시 회자되었을 뿐만 아니라 투투 1집 백그라운드 보컬 및 베이스 등에도 참여하였다. 베이스 기타 3번 항목 위상에서 언급된 것과 같이, 베이스 기타는 있을 때는 그 존재감 자체를 잊어버리다가 막상 없어지면 가장 큰 허전함과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악기이듯이 투투 내에서 베이스 기타를 맡았던 유현재의 역할도 이와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펑퍼짐하고 귀여운 유치원패션 스타일을 멤버들이 자체적으로 고안하고, 메인보컬인 김지훈의 뛰어난 가창력에 리더 오지훈이 작사/작곡 및 앨범 프로듀싱을 독자적으로 수행함과 더불어 유현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든든히 받쳐주는 등의 삼박자가 고루 어우러져 신인답지 않게 다재다능한 면모를 두루 뽐내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데뷔곡 '일과 이분의 일'은 앨범 출시 후(1994년 4월) 얼마 안 있어 KBS 가요톱10의 6월 첫째 주에 28위로 첫 진입을 하여 넷째, 다섯째 주에는 8위에 올랐고, 7월에는 4위, 2위로 랭크되는 기염을 토했다. 여세를 몰아 SBS 생방송 TV 가요 20에서는 2주 연속 1위를 달성[12] 하고, KBS 2TV 가요톱10에서는 5주 연속 1위를 달성[13]하며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에 이어서 바로 골든컵[14]을 수상하였다.[15] 이 곡 하나로 그 해 방송 3사 대상을 모두 휩쓴 '핑계'의 김건모와 더불어 초콜릿 CF 1 2[16] [17]를 찍기도 했으며 '내 인생의 러시아워'는 KBS2 주말연속극 '딸부잣집'의 분위기에 맞게 개사된 버전으로 OST가 쓰였다.[18] 발라드인 후속곡 '그대 눈물까지도' 역시 상위권에 오르며 성공적인 신인으로 정착했다.[19]

'일과 이분의 일'은 2014년 중국 드래곤 TV에서 방영한 드라마 '일과 이분의 일 여름(一又二分之一的夏天)' 오프닝곡인 '일과 이분의 일 여름(一又二分之一的夏天)'으로 리메이크되었다.[20]

특이한 점이라면 이 당시에는 보편화되지 않았던 뮤직비디오를 앨범 전곡에 걸쳐 제작했다. 투투 1집의 앨범이 1994년 당시 판매량이 10위권 안에 들었을 정도로 인기 있던 앨범이었기에 음반사에서 뮤직비디오의 VCD를 출시하였다. 일과 이분의 일 무대에서 보여주었던 발랄한 분위기 외에도 나름대로 멋진 발라드 곡과 밴드스타일 등 다채로운 색깔을 가진 그룹이라는 점을 뮤직비디오를 통해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뮤직비디오 효과는 별로 보지 못하고 대중들은 거의 '일과 이분의 일'의 깜찍한 이미지만 기억하게 된다.

  1. 일과 이분의 일 버전 1, 버전 2
  2. 내 인생의 러시아워
  3. 너의 눈에 슬픈 비가 내리고 (Ver. 1.0)
  4. 너의 눈에 슬픈 비가 내리고 (Ver. 2.0)
  5. 그대 눈물까지도 [21]
  6. 홀로 지낸 기억
  7. 재수생
  8. 음주운전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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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와 투투의 크리스마스 앨범 재킷 중 단체 사진[23]

1994년 당시 함께 데뷔했던 혼성그룹 룰라는 멤버구성이 남자 셋, 여자 하나로 투투와 동일해서 라이벌로 많이 회자 되었으며[24], 이때는 두 그룹이 멤버 구성뿐만 아니라 연령대도 거의 동갑내기 내지 1~2살차이 밖에 안날 정도로 나이도 비슷했던 까닭에 공통점이 여러모로 많아서 캐럴 앨범을 공동으로 작업해 발매하는 등 교류가 있는 편이었다.[25] 하지만 룰라의 경우 데뷔 초반에 '100일째의 만남' 활동 시에는 데뷔와 동시에 골든컵 기염을 토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던 투투와 달리 당시로서는 대중들에게 생소한 레게라는 음악 장르로 큰 호응을 얻지 못해[26] 소속사 사장님이 매일 밤 12시에 멤버들을 집합시키고 투투의 무대 영상을 녹화한 테이프를 틀어주며 정신교육을 시전하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는데[27], 이 때 가장 스트레스를 받은 멤버는 당시 홍일점이었던 김지현으로,[28] 성숙한 외모 탓에 황혜영 처럼 귀여운 컨셉을 낼 수 없어서 마음고생이 많았다고 한다.[29]

참고영상 1: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룰라 편
참고영상 2: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고영욱, 신동욱, 성대현 편

참고영상 3: 문나이트 90 룰라 편

2008년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에서 룰라의 원년멤버였던 신정환은 데뷔 당시 투투의 멤버 중에 자신의 라이벌로 리더 오지훈을 꼽기도 했는데,[30]

참고영상 4: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옥주현, 김건모 편

사실 오지훈은 리더의 위치도 그렇고 앨범 작업을 전적으로 담당하는 등 음악성과 관련해서 룰라의 리더 이상민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해서 유현재를 신정환의 롤에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두 멤버들을 든든히 받쳐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신정환은 랩과 서브보컬을 담당하였고 유현재의 경우는 악기 연주를 담당하였기 때문에 메인 보컬보다는 덜 돋보일 수 있는 양념 같은 존재로 보일 수 있으나, 둘도 1994년에 활동 당시에는 인기가 상당히 있던 멤버였다. 그리고 밴드로 데뷔한 투투와 레게를 모토로 데뷔한 댄스그룹인 룰라는 음악성과 그룹의 정체성부터 매우 달랐기 때문에, 멤버들 간의 포지션을 비교하는 것은 의미 없지 않을까.

데뷔곡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승승장구 하던 투투는,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는 유현재가 1994년 12월 26일에 입대하고, [31]그룹의 얼굴마담이자 홍일점인 황혜영이 객원 멤버 활동을 마치고 1995년부터 배우로 활동하면서 그룹은 해체하였다.[32] 거기에 보너스로 리더 오지훈이 1995년 5월에 군 입대를 하면서 1기가 완전히 박살나게 된다.

2.2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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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 황혜영, 가운데에 김지훈(위), 김준(아래), 오른쪽에 임성은

소속사를 옮겨 배우로 활동했으나 별 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황혜영이 객원 멤버 형식으로 그룹으로 다시 복귀하였다. 1995년 2집 발매 후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라이벌 룰라의 남자 둘, 여자 둘 멤버 구성을 의식하여, 군 입대한 오지훈유현재 대신에 록 그룹에서 활동한 바 있는 서울 염광여상 출신의 임성은[33]과 서울 광성고 출신의 김준(본명 : 박진성)을 새 멤버로 영입하여 2기가 구성되었고, 1995년 여름에 2집으로 컴백한다. 2집으로 컴백 한 뒤 1995년 8월에는 M.net의 '고 엠넷 고'의 MC를, 11월에는 KMTV '쇼 뮤직탱크' 에서 MC를 맡기도 했다.

1집에서 앨범 프로듀싱을 맡은 전 멤버 오지훈이 1994년 하반기 부터 군입대 직전까지 2집의 음악 작업을 어느 정도 했던 상태였기에[34], 음악적 색깔을 이어가며 비중 있는 댄스 그룹의 인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가요톱텐에서는 1995년 7월 12일에 투투의 컴백 소식을 알렸고, 케이블에서는 7월 15일부터 2집 활동을 하였는데 (가요톱텐 기준으로) 8월 4주부터 10월까지 꾸준히 5위 안에 드는 등 상승세를 이어갔다.[35]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50에서 기록한 순위는 KBS 가요톱텐에서 기록한 순위보다는 낮았지만 소포모어(Sophomore) 증후군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신문 기사들이 보도될 정도로 바람난 여자는 큰 사랑을 받았다.[36]
1995년 10월 첫째주에는 R.ef의 이별공식과 함께 1위 후보에 올랐다. '일과 이분의 일로 골든컵을 탄 뒤 1년만에 1위 후보에 올랐다.'고 리더 김지훈이 1위 후보에 오른 소감을 말하기도 했지만, 이 날에는 R.ef의 이별공식이 1위를 하였다.

그러나 투투는 일부 기성세대들에게 '자기 관리 혹은 내부 단속 못하는 치기어린 그룹' 이미지가 있었다고 한다. 결국 1996년 2기의 리더 김지훈의 군 입대로, 1996년 2월에 해체했다.

2기의 대표곡은 타이틀곡 '바람난 여자'[37]와 더불어 후속곡 '니가 내 것이 되갈수록'이 있다.

니가 내 것이 되갈수록의 경우 김지훈이 완창을 했는데 후대에 리메이크된 걸 보면 여자가 부른다...어설픈 남자보컬로는 소화하기 힘들다. 또 이 곡은 과 라인업이 비슷한 곡이기도 하다. 미성의 남자 메인보컬(김지훈)-여자 서브보컬(황혜영)-랩퍼(김준)....

2.3 3기

소위 뉴투투. 가장 음악이랑 거리가 멀었던 황혜영은 끝까지 투투에 남았고(...) 김진, 김석민, 김재우를 영입하여 재결성 되지만, 투투의 핵심이었던 김지훈이 병역문제로 탈퇴하면서 사실상의 그룹생명은 끝이었던 셈이다. 황혜영이 작사를 하는 등 전면에 나섰으며 음악이 좀 더 무거워졌다. 새로 영입된 멤버였던 김석민의 댄스가 인상적이긴 했다.

뉴투투는 이미지라는 노래 하나만 남기고 투투의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3 멤버들의 근황

안타깝게도 멤버들 모두 과거의 화려한 모습들과 달리, 좋지 않은 상황을 맞이하거나 연예계에서도 잊혀지는 수준이다.

3.1 김지훈

군 복무를 마친 김지훈은 1997년 하반기에 '익숙해진 슬픔' [38] 이라는 락발라드 앨범으로 솔로 데뷔를 하였으나 주목 받지 못하고, 소속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앨범 활동을 접어야 했다.[39] 어느 정도였냐면 그가 2000년대에 듀크로 인기를 끌자, 그의 솔로 활동 경력 사실을 몰랐던 일부 기자들은 군 입대후 3년 이상 활동을 하지 않다가 듀크로 데뷔하였다고 기사들을 쓰기도 했을 정도였다.

듀크의 전성기 때에도 팬들은 '김지훈이 솔로 경력이 있다곤 하는데 노래가 남아 있질 않으니...' 상태였다가 모 유저가 익숙해진 슬픔 MP3를 올리자 충격의 도가니에 휩싸였던 적이 있다. 이때 만난 작곡가 최재은과는 후에 듀크 1,2집에서 함께 작업을 하게 된다.

이후 뉴 투투 멤버였던 김석민과 뭉쳐 듀크를 결성하면서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하다 듀크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이후 시트콤 논스톱 2논스톱3 등 각종 예능 방송에 출연하면서 근근히 모습을 드러내지만, 2009년 약물 문제가 터지면서 방송출연 정지까지 당하고 세간의 관심에 잊혀졌다.
그러다가 뮤지컬에 도전했지만 이혼으로 시끌해지자 자진 하차하고 뚜렷한 활동을 보이지 않았다. 2012년에는 가수 이은하의 재즈 음반에 삽입된 'You don't have to say you love me'를 피쳐링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2013년 12월 12일 서울의 모 호텔에서 목을 맨 채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소생하지 못하고 숨졌다. 소속사 측에서는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추정된다는 공식발표를 한 후 곧바로 장례를 치뤘다. 또한 사망하기 약 1주 전에도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투투 이후 약물복용과 이혼 등 굴곡졌던 삶을 살았던 김지훈이었기에 안타까운 소식이다.

3.2 오지훈

1기의 리더이자 투투의 음악적 기둥이었던 오지훈은 군 복무를 마치고 1997년 유현재와 함께 여성 멤버 이삭을 픽업해 얍(YAB, Young & Alternative Beaux)이란 그룹을 만들었으나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하고 흑역사로 묻혔다. 이후 뮤지션으로 활동하며 태사자 3집 타이틀 곡 '회심가'를 작사하고, 듀크 2집의 '승수야 미안해'를 작사, 작곡하고, 각종 CF 음악도 작곡하는 등 본인의 재능을 나름대로 펼친다. 2001년에는 인터넷방송국 ni21에서 음향 감독을 맡았으며 신인 솔로 가수 뉴리안의 앨범 작업과 프로듀싱, 2003년에는 그룹 퍼니의 제작자 겸 프로듀서로 변신하기도 했으나 별 성과는 얻지 못했다.

2003년부터 갑작스레 살이 빠지기 시작하는 등 건강 이상 징후가 보여 식구들이 살고 있는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현지에서 병원 검사 결과 희귀병 진단[40]을 받았다. 결국 체중이 39kg가 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지만 가족들의 극진한 간호를 통해 3년간 일본에 머물며 병을 치료를 마쳤다. 한 측근의 말에 따르면 죽을 고비도 수차례 넘겼다고 한다.

2007년 완전 회복 진단을 받은 후 오지훈은 작곡 활동과 뮤지컬 제작 등을 하였지만, 2010년에 제작하던 뮤지컬이 무산되자 어머니가 계신 천안으로 이사 갔다. 이후 작사, 작곡을 활동을 계속하면서 음악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막내 누나의 병간호도 하면서 직장인 밴드 교육에도 나간다고 한다.

3.3 유현재

유현재의 경우 투투 1집 활동 막바지에 군입대를 하게 되는데, 위에서 언급했듯이 입대일이 1994년 12월 26일이었고 훈련소 동기가 유재석, 이정재, 좌회전 출신의 김진이었던 점을 봤을 때 이른바 '마지막 방위' 세대였다. 전역 후 오지훈과 얍 활동을 했으며, 연주자로서 여러 밴드도 거쳤고 학교에서 실용음악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가르치면서 구두사업도 병행했다고 한다. [41]

얍 이후로 방송 활동이 없었던 그는 오지훈, 황혜영과 2016년 5월 31일자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 출연하여, 음악계에 종사하고 있다고 근황을 언급하였다. 최근까지도 오지훈과 사회인 야구 회원으로 활동하며 오지훈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3.4 황혜영

황혜영은 뉴투투 이후, 공정환과 함께 오락실이라는 록 그룹으로 활동하였다. 2000년대에는 배우와 방송인으로 얼굴을 비추고 누드 화보집을 발간하는 등의 행보를 이어갔다. 또한 듀크 4집의 타이틀 곡인 '아가씨'의 피처링을 했으며, 김지훈, 김석민과 같이 ‘아가씨’의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 2004년 5월 9일에 듀크의 팬들이 열었던 데뷔 10주년 파티에서도 김지훈, 김석민과 같이 참여하며, 팬들과 만나기도 했다.

2011년에 민주당의 김경록 부대변인(2016년 현재 국민의당 소속)과 결혼하여 현재까지 방송인 겸 정치인의 아내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2007년부터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데, 2012년 여름에 공정거래위원회의 연예인 쇼핑몰 단속에 걸려들어 세일 상품에 대한 교환, 반품 처리 불가 규정 및 고객 사용 후기 34건을 비공개로 돌린 혐의로 적발 및 시정조치 크리를 먹고 고객들에게 공개 사과했다.

2007년 김국진이 진행하던 MBC every1의 쇼프로그램인 '네버엔딩 쇼를 하라'에 김지현황혜영이 1회 게스트로, 김지훈은 프로그램의 고정 패널로 출연해, 김지훈과 함께 추억의 '일과 이분의 일' 무대를 선보였다. 근데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다른 게스트들과 달리 무대에서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서먹해 보이는게 좀 이상해 보인다... 이 프로그램에서 3회의 게스트로 출연했던 R.ef의 성대현에게 패널들이 황혜영과 교제했던 3인조 그룹의 멤버가 누군지 아냐고 묻자, 성대현은 당황해하며 같이 패널로 출연한 김지훈에게 "황혜영과의 연애담을 공개하면 지훈씨가 섭섭해 할 텐데…"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는데, 과거 성대현과 김지훈이 황혜영을 사이에 둔 삼각관계였음을 공개한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김지훈은 무척 당황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과 이분의 일' 무대에서 일회성의 시선 회피로 과도한 해석을 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다. 무대 다음의 질의 응답 시간에서는 서먹하지 않았으며, 김지훈은 생전 인터뷰(2008년 1월)에서도 황혜영에 대해 '몇 년만에 만나도 반갑게 얘기 할 수 있는 친구'로 언급하였다. 황혜영은 김지훈의 결혼식(2008년 6월)에 하객으로 참석하였고, 2008년 11월 7일에 방영된 웃찾사-웅이 아버지 '54화 우정의 무대에 서다'의 엔딩무대에 김지훈과 같이 그룹 투투로 같이 출연하였다. 1995년 당시에도 절친한 친구였던 그들의 잠깐 동안의 일화가, 향수를 목적으로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자극적인 질문에 놀라서 사실보다 과장된 대답을 하게 되었고 거기에 살까지 붙여진 기사가 더해진 것인데, 2007년의 친구관계까지 추측하고 재단하는 것은 과한 해석이지 않을까.

2013년 12월 김지훈의 사망 소식에 빈소를 찾을 지 관심이 집중되었으나 임신 9개월차의 만삭인 관계로 빈소에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고 개인 명의의 화환을 보내는 것으로 대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12월 16일에 쌍둥이 아들을 출산하였다.

2014년 11월에 방영된 tvN 택시에서 김지훈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투투의 멤버 중에서 유일하게 연락하는 친구로, 어딘가에 그 친구가 살고 있는 것만 같다. ‘내가 조금만 더 신경 썼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후회가 들어 미안하다고 혼잣말하게 된다.'고 김지훈에 대해 회상했다.[42]

무표정이 트레이드마크인데, 방송에서 의도한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무표정하다고 한다.22세 아래의 어떤 분도 무표정이 트레이드마크다

3.5 김석민

비보이와 클럽 DJ 출신이던 김석민은 뉴투투 이후 솔로로 대차게 망한 김지훈과 함께 1998년에는 갱(Gang), 1999년에는 듀크를 결성하고 활동하여 인기도 얻는 등 프로듀싱 활동도 하며 음악계에 종사했다. 활동 공백 기간 동안 목수일도 하기도 했고, 솔로로도 활동했다. 듀크 시절이나 솔로 시절 랩을 했지만 랩이 좋은 가수는 아니고 댄스가 좋았으며, 싸움을 잘하는 연예인이라는 풍문도 있다고...

7년 교제 끝에 2015년 9월 그룹 퍼퓸#s-4 출신의 임선영과 결혼했으며 그 인연도 김지훈이 맺어 줬다고 한다. 2015년 인터뷰에서는 낮에는 수프가게를 운영하고 밤에는 공연을 다닌다고 근황을 언급하기도 했다.

3.6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출연

2016년 5월 31일자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 투투 1기 멤버 오지훈, 유현재, 그리고 1기 시절 객원 멤버였던 황혜영이 출연하였다. 세 멤버는 인피니트 멤버 남우현과 함께 '일과 이분의 일'의 복원 무대를 선보이고 투투 그들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황혜영은 MC의 질문에 대해 슈가맨에 출연할 생각이 없었다고 말하면서 "사실 무대 준비를 하면서 많이 다운되었다. 근데 지훈이가 꿈에 나왔는데 너무 밝은 얼굴이더라. 열심히 하라는 응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김지훈에 대해 회상하였다.

오지훈은 '그대 눈물까지도'에 대해 '김지훈이 (투투 1집에서) 가장 아끼는 곡이었고, 유작으로 발매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22세 때 데뷔했고 그래서 팀이름으로 투투라고 지었지만 지금 나이가 44세라며 "포포"라고 자학(...)했다. 그리고 방송이 나간 이후에도 그의 트위터에서 포포라는 단어를 언급하였다.

녹화[43] 이후 5월 26일 오지훈, 유현재, 황혜영은 김지훈이 있는 분당 추모공원 휴에 찾아갔고, 오지훈과 황혜영은 김지훈을 만나고 온 후 소감을 각자의 SNS에도 올렸다고 한다. 둘은 역시 방송이 나간 후 각자의 SNS에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4 앨범

4.1 정규 앨범

음반제목발매일타이틀곡그 외 활동곡
투투 1집TWO TWO1994년 5월 1일일과 이분의 일그대 눈물까지도, 내 인생의 러시아워
투투 2집TWO TWO 21995년 6월 30일바람난 여자니가 내 것이 되갈수록
투투 3집TWO TWO 3(NEW TWO TWO)1996년 6월이미지-

4.2 참여 음반

음반발매일타이틀곡투투 참여곡
'94 내일은 늦으리1994년 11월 6일아름다운 세상으로아름다운 세상으로, 용사의 외침
룰라투투의 크리스마스[44]1994년 12월-Silver Bell, 저 들밖에 한 밤중엔, 동화속의 크리스마스,
석별의 정, White Chirstmas

5 수상 경력

5.1 시상식

연도시상식 명수상 부문
1994년대한민국영상음반대상신인상
제 5회 서울가요대상랩댄스 부문 대상[45]
KBS 가요대상신인상
골든디스크[46]본상

5.2 가요 프로그램

날짜곡 명방송명비고
1994.07.17일과 이분의 일SBS TV가요20첫 1위
1994.07.24SBS TV가요202주 연속 1위
1994.07.27KBS 가요톱텐가요 톱텐 첫 1위
1994.08.03KBS 가요톱텐2주 연속 1위
1994.08.10KBS 가요톱텐3주 연속 1위
1994.08.17KBS 가요톱텐4주 연속 1위
1994.08.24KBS 가요톱텐5주 연속 1위, 골든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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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94년에 팬들이 붙여준, 그들을 상징하는 문구였다고 한다.
  2. 2013년 12월 12일 사망. 김지훈의 실제 생년월일은 1973년 2월 17일(음력)이고, 1973년 5월 5일은 주민등록상의 생일이다. 김지훈이 있는 납골당에서도 생년월일이 1973년 2월 17일(음력)로 기록되어있다.
  3. 투투 시절 그룹 내에서 황혜영의 별명이 덕순이었던 터라, 어느날 매니저가 '떡순아'하고 불렀는데 황혜영과 김지훈이 동시에 "네?"라고 대답해, 소속사에서 김지훈에게 "그럼 넌 남자니까 덕팔이(떡팔이)해라."라고 해서 별명이 덕팔이(떡팔이)가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언론 매체에는 이름이 같은 오지훈과 구별하기 위해서, 유덕화를 닮아서 별명이 덕팔이(혹은 유덕팔)가 되었다고 밝혔다.
  4. 이름이 같은 김지훈과 구별하기 위해 오씨라서 오서방이라고 불렸다.
  5. 아는게 많아서 붙은 별명이라고 한다.
  6. 다만 오지훈은 명지전문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자퇴 후 1994년에 단국대학교에 진학하였다. 그러나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단국대학교도 그만두었다고 한다.
  7. 일과 이분의 일이 1위를 수상한 이후로 청담동으로 숙소로 옮겼다고 한다. 투투 1기는 김지훈, 오지훈, 유현재가 숙소 생활을 하였고 객원 멤버인 황혜영은 서울에 거주하는 사촌 언니 집에 거주했다고 한다.
  8. 투투의 객원 멤버로 황혜영이 들어오기 전에, 남자 멤버 세 명으로 이루어져 팀 이름이 ‘신호등’이 될 뻔했다는 후문이 있다. 관련 기사 당시 세 명 모두 그 팀명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9. 실제로 당시 예능프로그램에서 그들의 대표곡인 '1과 1/2' 중 황혜영이 노래 부르는 시간을 측정했더니 겨우 16초였다. 음반에서 여성 파트는 재즈 음악을 하던 이윤정(1973년생)의 목소리로 녹음되었고, 일과 이분의 일이 인기를 얻고 재발매된 음반과 컴필레이션, 옴니버스 음반에서도 이윤정의 목소리가 녹음된 버전으로 발매되었다. 초판 음반(LP, CD) 은 황혜영이 투입되기 전에 재킷 사진을 찍은 앨범이기에 남성 멤버 셋만 재킷에 등장하였는데, 일과 이분의 일이 인기를 얻은 후 황혜영이 포함된 앨범 재킷 사진으로 재발매 되었다. 투투의 라이브 무대에서는 김지훈 혼자서 라이브로 부르고(오지훈의 코러스는 라이브인적도 있고, 립싱크인적도 있었다.) 황혜영은 립싱크를 했던 터라 1994년 당시 이에 대한 비난 의견도 어느 정도 존재했다. 황혜영이 립싱크를 했던 부분은 음반의 음원을 활용한 경우도 있었지만, 황혜영의 목소리로 재녹음된 AR을 사용하기도 했다.
  10. 황혜영이 방송에서 맡은 롤은 립싱크를 하며, 안무를 선보이는 것이었다. 방송국 관계자들도 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라이브를 요구하던 무대에서도 황혜영의 립싱크는 넘어갔다. 어쨌든 황혜영도 투투 열풍의 큰 역할을 맡았고, 멤버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으며 인지도도 가장 높은 멤버였으니...
  11. 투투 1집의 수록곡 너의 눈에 슬픈 비가 내리고 Ver.1.0은 황혜영이 영입되기 전에 이윤정과 김지훈이 듀엣으로 부른 곡이다.
  12. 1994년 7월 17일, 1994년 7월 24일
  13. 1994년 7월 27일부터 1994년 8월 24일까지 5주 연속 1위를 달성하였다.
  14. KBS 가요톱10의 고유 규정으로, 5주 연속 1위를 하는 경우 이 골든컵을 수상하게 한 후 순위리스트에서 제외시킨다.
  15. 이 때 밀렸던 노래가 바로 김태원이 수시로 자기 과거 말하면서 언급하는 '사랑할수록'. 결국 2주 1위하고 김원준에게 밀렸다. 그러나 SBS 생방송 TV 가요 20에서는 일과 이분의 일은 2주 연속 1위한 뒤로 부활의 ‘사랑할수록’에 밀려 ‘사랑할수록’이 5주 연속 1위를 달성하였다. 김태원이 ‘사랑할수록’을 언급한 예능프로그램에서도 투투와의 1위 대결에서 이긴 장면이 등장하기도 했다.
  16. 롯데제과의 개성파. 튀긴 쌀에 아몬드, 누가땅콩을 넣은 초콜릿이라고 하나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17. 1994년 개성파 CF를 촬영한 직후 투투 멤버와 소속사 관계자, 촬영 스태프들이 참여한 뒤풀이에서 일행 일부가 싸움에 휘말리자 뒤풀이에 참여했던 김지훈과 유현재는 차 안에서 자고 있던 오지훈에게 달려갔다. 오지훈은 김지훈과 유현재를 차에 태우고 운전하려 했으나 스태프와 싸웠던 상대측 일행에게 벽돌로 머리를 맞아 이마를 다쳐, 한동안 무대에서 이마의 상처를 가리기 위해 선글라스와 모자를 쓰고 다녔다. 1994년 당시 싸웠던 사람들 간에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뒷풀이에 참여한 스태프와 싸웠던 상대측 일행 중 한 명이 자신들의 일행들에게 합의금을 제대로 나누지 않았던 터라, 이 사건이 있고 몇 달 후인 1995년 2월에 합의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하였다. 오지훈은 참고인 자격으로 1995년 2월에 경찰서에 갔지만 폭력 사건으로 구속되었다는 오보 기사가 떴었다.(한동안 인터넷에서 이 사건이 오지훈의 입대의 원인이라고 소문이 났었지만, 오지훈이 구속된 것은 사실이 아니며 혐의가 없다고 결론 난 사건이었다. 2016년 6월 기준으로 관련 기사들은 사실이 아닌 오보 기사임이 확인되어 네이버 라이브러리에서 전부 삭제되었다.) 오지훈은 그룹에서 차 운전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뒤풀이에 참여하지 않고 차 안에서 자고 있다가, 싸움이 일어난 클럽에서 맞고 도망간 김지훈과 유현재를 따라온 사람들에게 운전을 방해받고 일방적으로 머리까지 맞았다. 당시 벽돌에 맞아서 생긴 상처는 현재까지도 남아있는데, 오지훈이 2016년에 출연한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33화를 보면 이마의 상처를 확인할 수 있다.
  18. 김지훈이 부른 투투 1집의 '내 인생의 러시아워'와 다르게 드라마 OST인 '딸 부잣집'은 오지훈의 목소리로 녹음되었다고 한다. 투투의 스케줄이 꽉 차 있었던 상태에서 드라마 오프닝 곡 제의가 왔었기 때문에, 드라마 방영 전날에 오지훈만 남아서 녹음에 참여하고 나머지 멤버들은 지방 공연에 갔다.
  19. 과도한 스케줄로 멤버들의 건강이 악화된데다가(남자 멤버 셋은 투투 이전에 방위 판정을 받았고 저체중의 상태였는데, 과도한 스케줄로 김지훈은 산소 마스크를 끼고 다니고 오지훈은 병원에 자주 다녔다.) 1994년 10월에는 리더 오지훈이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한 뒤로, 1994년 11월의 경우 94년 '내일은 늦으리' 콘서트와 가요 톱텐에 몇 번 나온 것을 제외하고는 스케쥴이 거의 없었다. 12월의 경우는 시상식과 극소수의 예능,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만 나갔다. 그런 것에 비하면 '그대 눈물까지도'의 순위(가요톱텐에서 24위로 첫 진입후 최고 5위까지 기록)는 상당히 순위가 높은 편이라고 보면 된다.
  20. 닉쿤이 주연으로 출연한 드라마로 CJ E&M이 투자, 배급을 맡았던 드라마이고 오지훈의 허락 하에 리메이크가 된 것이다.
  21. 그대 눈물까지도는 오지훈이 영화 시나리오를 보고 그 영화의 ost를 생각하며 만든 노래였고 다른 가수에게 주려고 만든 노래였지만, 만들고 보니 노래가 너무 좋아서 투투의 곡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22. 오지훈이 고등학생 때 만든 노래라고 한다.
  23. 사진에 있는 남자들 중에 연예계에서 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투투의 오지훈과 유현재만 빼고 나머지 모두 연예계에서 나름대로 잘 나가다가 좋지 않은 사건들로 인해 방송출연 금지를 당해 연예계에서 퇴출되었다. 흠좀무.
  24. 투투의 LP음반에서는 멤버들 프로필에는 김지훈, 오지훈, 유현재만 기록되어있으나 객원 멤버로 참여한 황혜영도 대중들에게 멤버로 인식되었으므로 1994년에는 룰라와 라이벌로 많이 언급되었다. 투투 앨범이 룰라 앨범보다 2주 정도 먼저 발매되었지만 가요톱텐에서는 투투와 룰라가 같은 날에 첫 무대를 선보였다.
  25. 이후 혼성그룹들 중에 비슷한 경우로 1990년대 후반에 S\#ARP스페이스 에이의 경우 남자둘, 여자 둘로 멤버구성이 동일해서 공중파 가요프로에서 공동무대를 가지는 등의 교류가 있었다.
  26. 투투의 1과 1/2도 당시 레게음악으로 알려졌었다. 물론 투투나 룰라 모두 정통레게가 아닌 리듬만 차용한 레게풍 팝이었지만.
  27. 룰라의 소속사 사장은 소속사 건물 안에서 뿐만 아니라 룰라와 투투가 같이 있던 대기실에서도 투투의 무대 영상을 녹화한 테이프를 틀어주거나, 룰라의 의상에 대해 (투투에 비해) 촌스럽다고 화를 낸 적도 있다고 한다.
  28. 솔직히 미워할 마음도 많았을 텐데 의외로 황혜영과 상당히 절친이라고 한다.
  29. 하지만 후속곡 '비밀은 없어' 부터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하더니, 이듬해인 2집에서는 '날개 잃은 천사'로 완전히 운명이 뒤바뀌게 되었고 김지현은 이 곡으로 1995년 가요계 최고의 핫걸이 된다.
  30. 신정환은 오지훈을 무대 뒤에서 키보드를 쳤던 분이라고 언급했지만 실제로 둘은 절친한 사이였다.
  31. 그래서 1994년 12월의 시상식 무대 중 일부 무대에는 다른 사람이 유현재 대신 무대에 서게 되었다.
  32. 애초에 황혜영은 1994년 12월 31일까지 객원 멤버로 계약된 상태인데다가 배우가 꿈이었던 지라 가수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고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고자 궁여지책으로 투투의 객원 멤버로 끼어들어간 사례였기에, 이런 위기는 어느 정도 예견된 상황이었다.
  33. 1971년생이며, 1995년에는 다른 멤버들과 나이를 맞추기 위해 소속사에서 1973년생이라고 방송상 나이를 기재하기도 했다. 이후 영턱스클럽의 1기 멤버로 활약했으며, 1997년부터 솔로 가수로 활동하였다.
  34. 2집 타이틀 곡인 바람난 여자의 경우 오지훈이 훈련소 가는 날 새벽까지 작업하였다고 한다.
  35. 1995년 8월 4주, 5주, 9월 1주 : 모두 4위 / 10월 1주 2위 / 10월 2주 3위
  36. 물론 전년도의 타이틀곡인 일과 이분의 일보단 신드롬을 일으키지는 못 했고 지상파에선 1위를 하지 못했다. R.ef의 이별공식이 바람난 여자보다 더 빠른 상승세로 1위까지 차지한데다가, 1994년에 라이벌로 언급된 룰라는 날개 잃은 천사가 아주 큰 사랑을 받으면서 1집 후속곡인 비밀은 없어에 이어 골든컵을 받았고 후속곡들도 모두 상위권에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바람난 여자는 주목받지 못한곡으로 인식할 수는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에 곡 발표 2달 이내에 가요톱텐에서 최상위 순위를 기록한 곡들은 흔하지 않다.
  37. 헨리 맨시니(Henry Mancini)의 ‘아기 코끼리 걸음마(Baby elephant walk)’를 샘플링 하였다.
  38. 투투 2집 후속곡 '니가 내것이 되갈수록'을 작곡한 유정연이 작사,작곡 및 편곡을 맡았다.
  39. 김지훈이 예능감을 폭발시켰던 서세원쇼토크박스에서 '주제 파악 못하고 낸 앨범이라 방송 2번 하고 접었다.' 라고 자폭 개그 요소로 써먹었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때 소속사 문제도 있었고 매니저가 홍보비만 받고 홍보를 하지 않아서 방송에 많이 나오지 못했다는 후문이 있다. 사실 노래 자체가 대중의 입맛에 맞지 않았던 이유도 어느정도 있었던 것 같다.
  40. 장 안에 바이러스가 발생해 신체가 허약해지는 병이었다. 수백만 명 중 한 명꼴로 발생하는 병이었던 것.
  41. 출처 기사 : "'슈가맨', 90년대 최고 혼성그룹 투투의 부활 '故 김지훈에 대한 그리움'", 황교덕 기자, 아시아뉴스통신
  42. 관련 기사
  43. 녹화는 2016년 5월 18일에 있었다고 한다.
  44. 총 9곡 중에서 룰라 4곡, 투투 4곡을 불렀으며 석별의 정(Auld Lang Syne)은 두 그룹이 같이 불렀다.
  45. 1994년 서울 가요 대상 수상자 목록 - 트로트 부문 대상 : 임주리, 최유나, 설운도 /팝발라드 부분 대상 : 신승훈, 부활, 신성우 /랩댄스 부문 대상 : 김건모, 투투, 룰라 /신인상 : 구본승 /올해의 가수상 : 김건모 /특별상 : 이애숙 /최고작곡가상 : 김창환 /최고편곡자상 : 김형석 /최고작사가상 : 양인자 /최고인기가요기획상: 사맹석
  46. 2001년에 '골든디스크'로 바뀐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과는 다른 시상식이며, 전국음반도매상연합회가 주최한 행사였다. 유현재의 입대 후 있던 시상식으로, 시상식에는 멤버 3명과 음반기획자가 참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