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톱10

(가요톱텐에서 넘어옴)

1 소개

뮤직뱅크, 엠넷 등 가요 프로그램의 조상

KBS에서 방송되었던 가요 프로그램으로 뮤직뱅크의 전신이다. 상단 사진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가요톱10' 공식 로고에는 '토' 밑의 'ㅂ'받침의 형상 안에 'TOP' 이 들어가 있다.

1981년 첫 방송되어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까지 많은 인기를 얻은 가요 프로그램이다. 1981년 2월 10일 KBS 1TV에서 첫방송됐고 그 해 가을개편 때 KBS 2TV로 옮겼다.



초기 오프닝. 로고를 보면 미국 NBC 로고랑 상당히 많이 닮았다. 표절?[1] 이 로고는 어레인지 되어 2015년 추석특집 '전무후무 전현무쇼'에 로고로 다시 쓰였다.

1995년 5월 후반기 오프닝부터는 초기에 있던 로고가 없어졌으며, 로고는 1위 발표할 때 그래픽으로 등장했다.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처럼 상당히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던 프로그램으로 손범수가 실제 KBS 뉴스센터에서 뉴스처럼 오프닝을 진행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시그널도 KBS 뉴스 9에서 쓰는 시그널의 BGM이다. 그와중에 뉴스센터 뒤에서 깨알 같이 마임하는 사람들과 날씨 진행을 보면 약을 빨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위의 영상은 콩트식으로 송대관과 김원준을 비롯한 당대의 인기가수들을 모아놓고 대사가 있는 드라마처럼 컨셉으로 만든 오프닝이다. 그리고, 손범수 옹이 뉴스(?)를 진행하는 드문 영상을 볼 수도 있다 손범수야 원래 아나운서니까 그렇다치고 룰라 지못미[2] 그 외에도 송승환 씨가 진행하던 시절에는 1위 트로피와 수상 봉투가 없어졌다고 난리를 친 뒤 그거를 전해주는 장면을 콩트 형식으로 내보내는 시도도 있었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난 알아요 무대 장면이다.

1997년 여름 가요톱텐에서 손범수 mc가 진행한 h.o.t 행복 무대 장면이다.

1997년 가을 가요톱텐에서 h.o.t 행복 무대 장면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전설의 본좌급 대중가요 순위 프로그램으로서 탄탄한 입지를 다졌던 가요톱텐은 1997년 말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사태로 온 국민을 충격과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 넣은 1997년 외환 위기가 발생하면서, KBS는 공영방송의 입장에서 급격히 떨어진 국민적 사기와 깊이 침체된 사회적 분위기가 지속되는 당시의 시기 상 브라운관을 통해 웃고 즐기는 연예, 오락프로그램의 편성은 적절하지 않다는 어처구니가 없는 명분을 내세워서 개편 시기와 관계 없이 가요톱10을 비롯한 다수의 연예오락프로그램들을 서둘러 종영시키는 바람에 17년간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음악프로그램으로 명성과 입지를 다져왔던 '가요톱10'은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명분 때문에 1998년 2월 11일 방송을 끝으로 긴 역사의 막을 내리게 된다.[3] 그 뒤 '브라보 신세대'라고 가수들과 함께 예능쇼를 진행하며 노래를 듣는 특이한 형태의 프로로 바뀌어 진행되었지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고[4] 당시 국민 음악프로그램이었던 '가요톱10'을 주인과 마찬가지인 시청자들의 의견 반영도 없이 KBS 멋대로 무리하게 종영한 것에 대한 비난의 여론이 상당히 거셌다.

결국 한 달도 못가서 뮤직뱅크라는 프로그램을 새로 기획하여 '가요톱10'의 명맥을 잇는 KBS 대표 음악프로그램으로 재도약하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현실은 시궁창. MBC에서는 음악캠프를 개설하고 SBS에서는 SBS 인기가요를 재개설해 이전의 KBS 못지않은 인기를 끌었으며 가요톱10의 정통성을 잇는 프로답게 옛날 공정성은 다른 공중파 가요 순위프로보다 높았지만 지금은.....

대체로 방송에 소개되는 순위는 30위부터 10단위로 끊어서 소개되었다. 30~21위까지 소개 후 한두명(팀)의 가수가 나와 무대에서 직접 노래를 소화한 후, 또 다음 턴으로 똑같이. 1위 후보곡은 2곡이냐 3곡이냐에 따라서 10위권 안에 있는 노래는 10~3위 or 10~4위까지 소개되었다. 최종결과는 세대별 득표수를 보여준 다음 총합을 보여준다거나, 총합을 처음부터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5][6]

시청자 코너 및 가요계 뉴스 코너도 있었다. 故 양종철이 거리를 찾아가 시민들에게 어떤 상황에 어울리는 노래는 무엇인지 물어보는 코너 '요리조리 톱 10','요리조리 톱 10' 코너를 토대로한 장두석의 '무조건 메들리' 이 코너는 장두석의 노래와 함께 이창명,유재석 등 당시 신인 개그맨들의 코믹연기가 인상적이었다. 또한 김국진이 매주마다 한 가수를 초대해 질문하는 '피할 수 없어요' 코너도 있었다.

2 역대 MC

역사가 긴 가요프로그램답게 역대 프로그램 MC의 변동 또한 많다.

대수MC기간
1하지훈 & 박혜리1981년 2월 10일 ~ 1981년 9월 3일[7]
2임성훈 & 박혜리1981년 9월 8일 ~ 1982년 1월 27일
3임성훈 & 서동숙1982년 2월 3일 ~ 1984년 3월 4일
4임성훈 & 임화숙1984년 3월 11일 ~ 1985년 4월 21일
5임성훈 & 김혜란1985년 5월 1일 ~ 1985년 9월 4일
6임성훈 & 길은정1985년 9월 11일 ~ 1986년 6월 18일
7손창민 & 예명숙1986년 6월 25일 ~ 1986년 9월 24일
8임성훈 & 故길은정1986년 10월 1일 ~ 1988년 4월 27일
9임성훈 & 서정희1988년 5월 4일 ~ 1988년 8월 3일
10임성훈 & 오영실1988년 8월 10일 ~ 1989년 10월 15일
11임성훈 & 정미정1989년 10월 22일 ~ 1990년 9월 30일
12김병찬 & 이한숙1990년 10월 7일 ~ 1991년 9월 25일
13故 김광한1991년 10월 2일 ~ 1992년 9월 30일[8]
14송승환1992년 10월 7일 ~ 1993년 4월 28일
15손범수1993년 5월 5일 ~ 1998년 2월 11일[9]

가요톱10의 얼굴마담은 임성훈으로 총 8년간 MC를 맡아 가요톱10의 최장수 MC로 군림했으며, 중장년층 뿐만 아니라 위키니트들이 많이들 기억하는 MC는 두 번째로 장수한 MC이자 가요톱10의 후반기를 함께한 손범수 前 아나운서[10]일 것이다. 손범수의 경우 단독 MC로 근 5년간 자리를 지킨 데다 다른 MC들에 비해 세련된 외모와 함께 당시 젊은 세대의 구미에 맞게끔 상당히 맛깔나고 재치있게 진행을 하는 것이 특징이라 가요톱10의 인기몰이에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도 가요톱10에 애착이 굉장했기에 마지막회를 진행 후 화장실 대변기칸에 들어가서 대성통곡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3 공정성으로 대표되는 순위집계

1990년대 까지만 해도 21세기 현재와 같이 인터넷이나 케이블/위성 방송등 공중파 외의 매체들이 아직 크게 발달되지 않았기에 공중파 음악순위방송의 영향력이 무척 컸으며, 특히 공영방송 KBS에서 진행하는 음악프로인데다 당시의 순위 집계 방식이 아날로그틱한 느낌이어도 상당히 체계적이고 공정해서 대중들의 신뢰도가 무척 높았기 때문에 가요톱10에서 집계한 순위는 곧 그 시기의 가요 동향을 파악하는 척도였다고 할 수 있다.

가요톱10의 기본적인 순위 집계 방식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KBS 경영정보센터에 등록된 명단에서 10만명 추출하여 지역별, 연령별 2,800명 선정.

2. 집단 투표 인단(택시, 버스기사, DJ, 노래 부르기 모임, 가요 담당기자 등) 200여 명에게 왕복 엽서 발송, 회수.
3. KBS 가요담당 PD의 기명으로 10곡 추천받음.
4. 전국 투표인단과 가요 PD 추천곡을 80:20 비율로 합산.
5. 경영정보센타에서 200위까지 컴퓨터에 의해 집계된 40위부터 1위까지 순위 선곡 방송.

90년대에 들어서면서 PC통신과 전화 ARS를 통한 시청자들의 실시간 순위 참여 시스템이 도입되는 등, 순위 집계 방식은 차츰 발전해 갔다. 태진아, 설운도, 송대관 같은 트로트 가수들의 곡도 인기가 높아 10~30위권내에서 꾸준히 사랑받았고 특히 손범수 아나운서의 고정멘트 "생방송 가요톱텐 몇월 몇째주 영예의 1위 곡은?"이란 말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방식은 현재 뮤직뱅크 케이 차트 시청자 선호도 점수에 비슷하게 쓰고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한국방송 리서치에서 패널로 선정되고 설문 참여 대상자로 선정되면 음원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TOP 100곡에서 3곡을 선정하여 점수화해서 케이차트에 반영하는 것. 차이점이라면 시청자에만 한정되고 가요담당PD의 추천은 없다는 것이다. 방식 면에서도 인터넷으로 바뀐 것도 덤. 그리고 10% 밖에 반영이 안된다.

가요톱10이 방영될 당시 개국했던 SBS는 '생방송 TV가요 20[11]'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요톱10의 아성에 도전했으며, 1996년부터는 가요톱텐처럼 5주 연속 1위를 하면 '왕중왕'이란 칭호를 주기도 하면서 나름 인기를 얻었지만 역시 가요톱10을 넘어서는데는 실패했다. 그리고 MBC는 가요 순위프로에서만큼은 콩라인도 아닌 완전한 쩌리로 전락(...)하여, 이 당시 MBC의 가요 차트는 "여러분의 인기가요" "결정! 최고인기가요" "MBC 인기가요 BEST 50"[12] 등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잦은 개편의 난맥상을 겪게 되었다. MBC는 서태지가 나올 때만 시청률이 오르지? 어차피 항목이 많으면 많을수록 위키니트들은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일밤과 토토즐은 건재했습니다[13]

4 골든컵 제도

가요톱10의 특별한 규칙이 하나 있는데 바로 '골든컵' 제도다. 원래 가요톱텐은 1위 횟수가 무제한이었다가 특정 한 곡의 인기 쏠림으로 생겨난 제도이다. 최초의 '골든컵' 수상곡은 조용필의 '못찾겠다 꾀꼬리'로서 1982년 8월 18일부터 11월 3일까지 무려 10주[14] 연속 1위라는 기염을 토해내었고, 이를 계기로 1983년 1월 26일 방송분부터 5주 연속으로 1위에 랭크 되면 1위 트로피 외에 '골든컵'이라는 특별 트로피를 수여하고 난 후에 해당 곡은 이 순위제에서 명예 졸업하게 되는 형식이다.

주목할 점은 반드시 5주 연속이어야 하며 만일 중간에 1위를 한 주라도 빼앗기면 다시 카운트된다.[15] 이 점은 통산 3주만 달성하면 트리플 크라운 달성으로 인정하는 요즘 음악 방송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995년에는 외국 음악의 순위를 10위부터 1위까지 발표하는 코너도 있었다.

가요톱텐에서의 1위곡들은 위키백과에서 확인할 수 있다.

4.1 골든컵을 총 3회 이상 수상한 가수

횟수가수노래명
7회조용필못찾겠다 꾀꼬리, 나는 너 좋아, 친구여, 정의 마음, 어제 오늘 그리고, 그대여, 허공
4회이선희J에게, 알고 싶어요, 나 항상 그대를, 나의 거리
신승훈미소속에 비친 그대, 보이지 않는 사랑, 우연히, 그 후로 오랫동안
3회김건모첫인상, 핑계, 잘못된 만남
서태지와 아이들난 알아요, 환상속의 그대, 컴백홈

4.2 한 정규앨범 내에서 골든컵을 2회 수상한 가수

연도가수앨범 집수노래명
1983조용필5나는 너 좋아, 친구여[16]
19857어제 오늘 그리고, 그대여
1989박남정2널 그리며, 사랑의 불시착
1990김민우1사랑일 뿐야, 입영열차 안에서
1992신승훈2보이지 않는 사랑, 우연히
서태지와 아이들1난 알아요, 환상속의 그대
1997임창정3그때 또 다시, 결혼해줘

4.3 한 해에 골든컵을 2회 수상한 가수

연도가수노래명
1984조용필친구여, 정의 마음
윤수일 밴드아파트, 아름다워
1985조용필어제 오늘 그리고, 그대여
1989박남정널 그리며, 사랑의 불시착
1990김민우사랑일 뿐야, 입영열차 안에서
1992신승훈보이지 않는 사랑, 우연히
서태지와 아이들난 알아요, 환상속의 그대
1995룰라비밀은 없어, 날개잃은 천사
1997임창정그때 또 다시, 결혼해줘

이 자료들은 윤수일 밴드를 제외하고 2011년 12월 KBS TV 50년 특집으로 당시 방송영상을 보여주는 식으로 방송된 적이 있었으며, 조용필 자료는 가요톱10 무대가 아닌 당시 단독 콘서트 영상으로 보여주었다.[17]

4.4 연도별 골든컵 수상자

  • ☆는 한 해에 골든컵을 2번 수상한 경우를 뜻한다.
횟수수상자 수수상자
19821조용필
19835혜은이, 김수희, 허영란, 조용필, 방미
19847윤수일 밴드(☆), 조용필(☆), 정수라, 김수철, 최혜영
19858[18]이선희, 이은하, 나미, 전영록, 조용필(☆), 김범룡, 구창모
19866최진희, 조용필, 높은음자리, 이문세, 구창모, 정수라
19876장덕, 이선희, 이재성, 벗님들, 김범룡, 김학래
19883이정석, 최성수, 이선희
19896이치현과 벗님들, 박남정(☆), 이지연, 이선희, 김흥국
19906김지애, 변진섭, 햇빛촌, 김민우(☆), 민해경
19916태진아, 김지애, 이상우, 신승훈, 노사연, 이범학
19927김정수, 신승훈(☆), 이상우, 김국환, 서태지와 아이들(☆)
19935장현철, 노이즈, 이무송, 김수희, 김건모
19947015B, 김건모, 김민교, 마로니에, 투투, 김원준, 신승훈
19956룰라(☆), 김건모, 노이즈, 박미경, 서태지와 아이들
19962김정민, 클론
19974, 양파, 임창정(☆)
19981이현우
합계86[19]

특히 1984년, 1985년, 1992년, 1994년은 골든컵을 수상한 가수가 7, 8명(팀)이 나온 인기명곡 풍작年. 1위의 영예를 한번만 누려도 대단한거늘 이 때는 어째 골든컵을 못 딴 1위 경험 가수들은 상대적으로 초라해보이는(…) 안습한 일이 발생했다.
아래는 1994년의 골든컵 수상자들와 수상곡 목록. 4주째에서 마로니에에게 밀려버린 지못미 이상우

순서가수노래명기간
1015B신인류의 사랑1993년 12월 4째주 ~ 1994년 1월 3째주
2김건모핑계2월 3째주 ~ 3월 3째주
3김민교마지막 승부3월 4째주 ~ 4월 3째주
4마로니에칵테일 사랑6월 3째주 ~ 7월 3째주
5투투1과 2분의 17월 4째주 ~ 8월 4째주
6김원준너 없는 동안9월 2째주 ~ 10월 2째주
7신승훈그 후로 오랫동안11월 4째주 ~ 12월 3째주

반면 1996년 한국 가요계는 별들의 전쟁일 정도로 골든컵 수상곡이 단 2곡 밖에 없었으며, 1위 제조기였던 신승훈도 5집에서는 단 1주만 1위를 했을 정도 정말 경쟁이 치열했다. 이 두 곡의 주인공은 아래에도 언급되었지만 클론의 '쿵따리 샤바라'와 김정민의 '슬픈 언약식'.[20][21]

마지막 골든컵 수상자는 이현우(헤어진 다음날)로 골든컵 수상한 시점이 바로 1998년 2월 11일 가요톱10의 마지막 방송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래 제목이 가요 톱텐 종영 시기를 잘 나타내주는 노래였다.

4.5 역대 가요톱10 최다 1위 수상자

순위가 같은 수상자는 가나다 순으로 정리했다.

순위수상자횟수
1조용필69
2신승훈26
이선희
4정수라21
5김건모19
서태지와 아이들
이상우

4.6 골든컵에 대한 이야기들

  • 1993년 9월 3일 1990년대의 끝판왕 서태지와 아이들 하여가의 5주 연속 1위 골든컵 수상을 꺾은 희대의 이변과 파란을 일으킨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김수희의 '애모'였다. 이 때 김수희는 수상이 확정되자,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고 한다. 급기야 이 곡은 5주 연속 1위를 하면서 골든컵을 수상했으며 이 곡은 공교롭게도 트로트 곡의 마지막 골든컵 수상이기도 하다. 그 뒤 트로트 장르에서 1위를 수상한 곡은 2005년 음악캠프에서 2회 1위를 차지한 장윤정의 어머나와 2007년 9월 2일에 뮤직뱅크에서 시청자 선호도 1위를 차지한 강진땡벌이 있다.
  • 김수희와 마찬가지로 파란을 일으킨 사람이 또 있는데, 바로 클론. 1996년에 그들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냐 하면 당대 최고의 가요프로 가요톱10에서 조용필 이후 4년 연속으로 정규앨범 4장 연속으로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 김건모의 4집곡 '스피드'가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던 솔리드, R.ef, 신승훈 등과의 경쟁을 뚫고 대역사를 쓸 수 있었던 상황에서 사실상의 신인가수이던 클론의 '꿍따리 샤바라'가 저지시킨 것이다[22]. 첫 등장에서는 40위권이었던것이 아무런 홍보도 없어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 방송된 이후 바로 1위 후보곡에 올랐다면 믿겨지겠는가? 요즘에는 소속사만 잘 만나면 1위를 단숨에 할 수 있었던 거와는 달리 옛날에는 한국 가요계 최고의 사건이기도 하다.
  • 가요톱텐에서의 순위들은 다른 방송사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적용되곤 해서 골든컵을 탄 곡들이 다른 방송사에서도 1위를 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에, 반대로 타 방송사에서 1위를 많이 했던 곡들이 1위를 거의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먼저 쿨의 운명은 지상파 3사 가요프로그램의 최고 타이틀을 모두 수상하기도 했으며, 임창정이 골든컵을 탄 곡들은 둘 다 mbc에서 3주 1위(best of best)를 하기도 했다. 반면에 1997년에 sbs와 mbc에서 모두 최고의 타이틀을 획득한 h.o.t의 곡들은(행복, 캔디, we are the future) 1위를 여러 번 하긴 했지만 골든컵까지는 가지 못했다.(캔디 2주, 행복 3주) 그 이유로는 순위 집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sbs와 mbc에서는 1위 선정을 ARS와 PC통신으로 집계해서 1위를 가리는 반면에 가요톱텐은 세대별을 대상으로 순위를 집계한다. 그렇기 때문에 sbs나 mbc에서는 10,20대 위주의 곡들이 1위를 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가요톱텐에서는 세대별로 인기를 얻는 곡들이 1위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 요즘에는 매체들이 다양해져서 한 곡이 1개월 이상 차트 순위권에 있기가 힘든 시대인 반면에 이 프로그램은 1위 뿐만 아니라 다른 곡들도 꾸준히 인기를 얻어서 길면 최대 6개월 간 순위 차트에 오르는 경우도 많았다. 대표적인 예로 1996년 상반기 때는 1995년 9~12월에 쏟아진 명곡들이 10위 안에 많이 있었으며 1995년 10월에 나온 음반이 1996년 6월까지 반 개월간 10위권 이내에 있었다는 점이다.[23] 또한 골든컵을 탄 곡들도 아무리 인기가 좋다하더라도 최소한 3개월 동안 인기를 유지해야 골든컵을 탈 수가 있었다.[24]
  • 참고로 빌보드처럼 몇주 연속 1위 같은 그런 기록에 의한 스릴이 떨어지거나 실제 상황의 순위에 왜곡이 일어난다는 논란은 당시에도 있었다. 예를 들어 경쟁 프로그램인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에서는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 1992년 1월 24일부터 4월 17일까지 11주 연속 1위를 하고 있을 때 가요톱텐에선 골든컵을 받아서 2월 26일에 명예졸업했고 우연히가 골든컵을 향해 전진하는 상황까지 있었다. 같은 시기의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에서는 우연히가 2,3위 정도였다가 결국 5월 29일부터 6월 12일까지 3주 동안 1위는 했지만...
  • 또한 5주연속 1위를 찍은 곡과 3,4주연속 1위를 찍은 곡의 취급이 달라지는 결과가 나오는데 골든컵을 받은 곡은 빠르면 2개월만에 프로그램에서 본의 아니게 명예졸업하기도 했으며 일부 히트곡은 차트에서 수개월 동안 버티다가 역주행도 소소히 해서 다시 1위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었고 연속 5주 1위곡과 비연속 5주 1위 곡의 취급이 서로 다른 경우도 종종 있어왔다.
  • 가요톱텐에서는 골든컵 타기도 힘들거니와 1위를 차지하는 것도 정말 치열한 접전이라서 어떨 때는 1표 차이로 1위가 결정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 사례로 이현우의 <꿈>은 골든컵 도전 직전에 유승범<질투>에게 한 표로 차이로 밀리면서 골든컵 기회를 놓쳤으며(1515:1514)[25], 임창정의 <결혼해줘>는 김경호의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에게> 한 표 차이로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1892:1891)
  • 참고로 가요톱텐에서 공동 1위 수상이 나온 경우는 1991년 12월 25일에 골든컵 수상곡인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와 김정수의 <당신>곡이 유일하다.[26]

5 그 밖의 이야기들

  • 사실 제목 자체는 영국 BBC의 톱 오브 더 팝스와 일본 TBS의 "더 베스트 10"를 적절히 짬뽕한 것 같다. 하지만 위에 적혀 있듯 공신력은 최강 수준이었고, 그래서 타 방송국(이라고 해봐야 MBC와 SBS)의 가요 순위 프로들은 개편철마다 이름이나 진행자를 바꿔대기 일쑤였다. 그나마 MBC의 '여러분의 인기가요'가 약간 롱런한 편이었다. 사실 MBC는 순위프로보다는 토토즐 같은 쇼프로에서 더 강세를 보였으며 이 경우에는 KBS 젊음의 행진이 영원한 콩라인이었다.
  • 가요톱10의 1위 팡파레는 1981년 첫방송부터 17년동안 계속 사용되어 왔으며, 이후 뮤직뱅크 초창기 방송에서도 사용되었다.[27]
  • 1998년 가요톱10 이후에 가요순위 신뢰도 및 권위도는 KBS 중심에서 MBCSBS 등의 다른 공중파 방송들과, 엠넷KMTV 등의 1990년대 중반에 개국한 음악 케이블 방송국들에게도 많이 나누어지는 다변화를 겪게 되며, 순위집계의 공정성은 점차 떨어지고 더욱 상업적으로 변해 갔다. 그만큼 가요톱10의 순위집계는 대중들 사이에서 권위와 신뢰도가 엄청났다고 할 수 있다.
  • 가요톱10 이후 가요 순위 집계에 있어 공정성과 권위에 엄청난 손실을 입었던 KBS는 결국 후속 프로였던 뮤직뱅크에서 가요톱텐의 전통을 살리기 위해 2000년 하반기에 3주 골든컵 제도를 부활했다가 순위집계를 2001년부터 중지하는 등의 수순을 밟기도 했으며 2007년에 K-차트로 순위집계 제도를 부활시키고 다시금 순위집계의 공정성과 권위를 살리고자 많이 노력하고 있지만... 이젠 케이블 방송을 넘어 음원사이트들까지 발달하여 가요순위의 집계 및 흐름의 판도가 더욱 다변화 되는 시대인지라, K-차트가 다른 가요순위 보다도 공정성이 앞선다 해도 과거 가요톱10 시절의 권위와 영향력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신해철은 자기 홈페이지 디자인할 때 이 프로그램의 타이틀 도안을 거유톱10(…)이라고 손질한 그림을 걸어놓기도 하였다. 알고 싶다면 80 Plus(캐릭터) 항목 참조. 이 음악프로그램과 동명 이름인 인디밴드도 있으며 이쪽은 가요톱10이 아니라 가요톱텐이라고 검색해야 한다.
  • 2015년 6월부터 새로 론칭된 케이블 채널 GMTV에서 재방송하고 있다. 하루 한번 오전 12시 50분부터 오전 1시 50분까지 1시간 동안 방송하며, 평일-주말 상관없이 매일매일 본방이다. 즉 일주일에 7주치를 볼 수 있는 셈. 1996년 1월 1주부터 방송되며 특정 출연자들 (룰라 고영욱 개새끼!!스티브 유(유승준))이 나옴 등으로 인하여 중간중간 주차를 건너뛰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PC통신 참여 방법, 방청권 배부, 당첨자 명단 발표 등의 장면은 편집된 채 방송된다. 심지어는 GMTV 로고를 가린다고 1997년 방송분부터 우측 상단에 나오는 립싱크 표시까지 모자이크 처리하고 있다가 1997년 2월분부터는 립싱크 표시가 하단으로 옮겨져서 이에 대한 모자이크는 하지 않고 있다.
  • 국내 TV프로그램 가운데서 가장 먼저 인터넷 다시보기(?) 서비스가 된 프로그램이다, 얼마전까진 KBS에서 회당 3만 3000원씩을 주고 사야했지만 지금은 판매가 중지되었다. 물론 당대 모뎀 속도의 문제로 소리만 들을 수 있었고, 영상은 볼수 없는 반쪽짜리 서비스였다.
  • 가요 톱텐의 종영 이후에는 KMTV의 쇼! 뮤직탱크가 가요톱텐의 골든컵과 비슷하게 5주 연속(통산도 포함) 1위 시에는 '최강자'라는 칭호를 주기도 했다.
  • 90년대 초반까지는 방청객들의 연령층이 다양했다. 10대 방청객부터 애기 엄마, 중년의 방청객까지 있었다. 게다가 연말 결선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투표인단을 초청하여 인터뷰 하기도 했을 때 1990년 연말 결선에 출연한 중년 관객의 인터뷰 내용은 '우리 세대도 좋아하는 가요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 현재 가요 프로그램은 3주제로 제한한다든가 무제한으로 1위를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진행되고 있다.
  • 2016년 3월부터 2016년 8월까지 과거 KBS에서 방송되었던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28]을 서비스하는 동영상 사이트 'tvGEN'에서 일부 회차를 무료로 볼 수 있었다. 단, 로그인 해야 볼수 있었고 광고 15초를 무조건 시청해야 했다. 가요톱10뿐만 아니라 뮤직뱅크 1998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방송분, 1988년에 방송한 젊음의 행진도 서비스하고 있었으나, 2016년 9월 9일에 서비스가 종료되었다.
  • 가요톱10의 곡목 자막은 1995년 5월 이후로 몇개월 단위로 디자인이 바뀌었다. 1994년 이전에는 디자인이 수시로 바뀌지 않았지만 1995년 5월부터 KBS의 자막 폰트가 엑스포체 등 새로운 자막폰트를 도입하면서[29][30] 계절에 따라 디자인이 바뀌었다. 이는 뮤직뱅크에서도 이어져 2001년 말 ~ 2007년까지 방송분에 한해 디자인이 몇개월 단위로 바뀌기도 하였다.
  1. 참고로 NBC 로고의 공작 날개 모양은 6개, 가요 톱텐 로고는 그보다 1개 적다.
  2. 사실 당시 오프닝을 장식 할 수 있다는 것이 인기의 척도인 게, 이 때 1위 후보가 룰라 vs. 신승훈이었으니까 말이다.
  3. 종영 전 1998년 1,2월에는 시대가 그런지 관중소리도 작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4. 당시 MBC도 3년간 방송됐던 인기가요 베스트 50을 종영하고 젊은 그대를 신설하였다가 그 뒤 음악캠프를 신설했다. SBS도 TV가요20을 종영하고 SBS 인기가요를 신설했다.
  5. 예외적으로 1995년 12월 둘째주는 30~18위, 17~6위까지 소개하고 세대별 선호도 순위를 발표한 다음에 5위부터 2위를 소개하고 1위는 직접 무대 공연으로 공개했으며, 초창기에는 시상식 형태, 결과만 알려주는 형식으로 1위를 알려주었다.
  6. 초창기엔 50~31위 곡을 자막으로 보여주었다.
  7. 하지훈은 2000년대 이후로는 거의 잊혀진 이름이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 주택복권 추첨쇼의 MC로 이름을 알린 바 있는 전문 MC다.
  8. 중간에 김현주(이 김현주가 아니다. 1990년 전후로 나름대로 명성이 있었던 방송인. 배철수와 연애 경력이 있다.)가 1992년 1월 8일부터 1992년 5월 27일까지 故 김광한과 같이 진행했다.
  9. 이 시기에 손범수 아나운서가 결혼식을 올려 한 주는 김병찬 아나운서가 대리진행했으며, 1997년 1월에는 방송사 파업으로 인해 유열이 두 주간 대리진행을 했다.
  10. 그가 MC를 맡은 프로그램으로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열전 달리는 일요일 등이 있었다.
  11.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20위부터 소개했으며, 21~50위까지는 자막으로 표시했다.
  12. 여기서는 70위까지 소개했으며, 31위 이하는 자막으로 처리했다.
  13. 참고로 mbc나 sbs는 '왕중왕'이나 'best of best'(mbc 제도 - 3주 연속)가 도입되기 이전에는 한 곡이 무제한으로 계속 1위를 할 수 있었다.
  14. 특집 편성 때문에 중간에 2주간 결방되었다. 사실상 12주나 다름없다.
  15. 그래서 1위를 5번 넘게하고도 골든컵을 수상하지 못한 노래가 있으며, 골든컵 노래 가운데서 5주 넘게 1위한 곡도 있다.
  16. 1984년에 수상했다.
  17. 당시 연말 디너쇼 관계로 출연하지 못하여 인터뷰+공연 영상으로 대신하였다. 1985년 가요톱10 연말결산 영상
  18. 해당 영상에는 이선희가 나오지 않는데, 당시 이선희는 'J에게'로 1984년 11월 넷째주부터 1985년 1월 첫째주에 걸쳐 5주 연속 1위를 차지해 골든컵 수상은 1985년에 한 것이 맞다.
  19. 만약에 첫방송부터 5주 연속 골든컵 제도가 도입되었다면, 6곡이 추가로 골든컵을 수상하게 된다.
  20. 참고로 슬픈 언약식은 1995년 9월에 나온 음반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1996년에 발표된 음반 중에서 골든컵을 수상한 곡은 해당 곡과 1997년 봄에 골든컵을 수상한 쿨의 운명(앨범 발매는 1996년 11월.) 단 두 곡 뿐이다.
  21. 이 때 4주 연속 정상을 차지한 곡도 2곡 밖에 없었으며, 다른 한 곡은 김민종의 귀천도애. 참고로 이 곡은 골든컵 도전하기 직전에 표절시비가 벌어지면서 김민종이 방송에서 이에 대한 사과를 하고 1위 후보에서 하차한 사례가 있다.
  22. 프로듀서 김창환과 결별한 후 첫번째 앨범이었던 김건모 4집을 김창환이 제작한 클론이 저지한 것도 의미있는 사건이었다.
  23. 참고로 1996년 1월 3일 ~ 5월 15일 방송분 내내 1위를 차지했던 곡 모두가 1995년 발매곡이며, 설운도의 삼바의 여인은 발매된지 10개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1996년 10월말까지 가요차트 순위권에 있었다.
  24. 대표적인 예로 이들의 전성기를 열었던 쿨의 운명과 임창정의 그 때 또 다시는 발매된지 3~5개월만에 골든컵을 탈 수 있었다.
  25. 그 대신 6번이나 1위를 차지했다.
  26. 한국 가요프로그램에서의 또 다른 공동 1위 수상곡은 1995년 8월 20일 TV가요20에서 나온 r.ef의 <고요속의 외침>과 솔리드의 <이 밤의 끝을 잡고>이다.
  27. 우승팀 발표는 다른 팡파레를 사용했으며 MVP 발표 때 이 팡파레를 톤을 높여서 사용한 적이 있다.
  28. 어플 설명에서는 KBS, MBC, SBS라고 되어있지만 현재 거의 100% KBS 프로그램이다.
  29. 1994년 말부터 시범적으로 도입하다 1995년 봄개편부터 확대 적용되었고 이는 2000년 중반까지 주로 사용되었다.
  30. KBS뿐만 아니라 MBC, SBS도 1994년을 기점으로 하여 엑스포체 비슷한 폰트를 적용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