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범

(학범슨에서 넘어옴)
manager_khb2.png
이름김학범 (金鶴範 / Kim Hak-Bum)
생년월일1960년 3월 1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강원도 강릉시
포지션수비수
신체조건174cm / 68kg
유스팀명지대학교
소속팀국민은행 (1980~1992)
지도자국민은행 코치 (1993~1997)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U-23 코치 (1996)
성남 일화 천마 수석코치 (1998~2004)
성남 일화 천마 감독 (2005~2008)
허난 젠예 감독 (2010~2011)
강원 FC 감독 (2012~2013)
성남 FC 감독 (2014~2016.9)
성남 FC 역대 감독
차경복
(1998~2004)
김학범
(2005~2008)
신태용(대행)
(2009)
이영진(대행)
(2014)
김학범
(2014~2016.9)
구상범(대행)
(2016.9~)
강원 FC 역대 감독
김상호
(2011~2012)
김학범
(2012~2013)
김용갑
(2013)
명장 학범슨.
자타가 공인하는 K리그 최고의 지략가.

前 축구 선수 및 前 성남 FC 감독. 별명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오랜 시간동안 지휘한 명장 알렉스 퍼거슨을 빗댄 학범슨. 샤다라빠에 따르면 알렉스 퍼거슨퍼거범이라고 카더라.

2006년 K리그 감독상
장외룡(인천 유나이티드)김학범(성남 일화 천마)파리아스(포항 스틸러스)

1 선수 시절

명지대학교를 졸업하고 1980년 국민은행 축구단에 입단하면서 은퇴할 때까지 국민은행 한 구단에서만 활동한 후 1992년에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다. 활약상은 별로 많지 않았고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던 선수였다. 프로 구단에서도 제의가 들어왔다고 하지만, 불안정한 앞날 때문에 선수생활이 끝나도 직원으로 일할 수 있는 국민은행을 선택했다고 한다.

은행원으로도 성실해서 국내 최초로 운동선수로 활동하는 도중에 대리 시험에 합격하고 진급하였다고 한다. 또한, 1992년 34세의 나이로 은퇴했는데, 당시에는 나이가 30세 정도가 되면 운동을 거의가 관두던 것과 비교한다면 대단히 운동을 오랫동안 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과장까지 승진했다.

2 지도자 생활

2.1 국민은행 축구단

그렇게 은행원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었으나, 1993년 국민은행 축구단에서 김학범을 코치로 선임하여 지도자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무난하게 코치를 수행하던 도중에 1996 애틀랜타 올림픽을 앞두고 조병득 등과 함께 코치진으로 선임, 올림픽대표팀 트레이너를 맡기도 하였다. 당시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과 코치진의 중재 역할을 맡았던 듯하다.

2.2 천안 & 성남일화 천마

1997년 외환 위기로 국민은행 축구단이 해체되자 다시 은행으로 돌아갔다가, 1998년 천안 일화 천마의 코치가 되었다. 은행원의 삶도 좋아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동기들 중에서 은행원으로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었지만, 지금 코치로 들어가면 안 그래도 1997년 외환 위기 시점인데 당시 평생 직장인 은행에서 받는 것보다 훨씬 적은 연봉을 받으면서 코치 생활을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축구는 자진해서 밤을 새워도 아무렇지 않은 직업이었기 때문에, 그런 자세로서 남보다 앞서 나가는 자세로 반드시 살아남겠다는 각오로 축구 코치 커리어를 시작했다고 한다.

3a708004.jpg
코치로 일하기 시작한 당시, 성남의 레전드 차경복 감독을 보좌하면서 성남 일화 천마의 K리그 두번째 3연패에 크게 기여하였다. 당시부터 영상 분석에 열심이었다고 한다.

2004년 AFC 챔피언스 리그 2차전 5-0 대패의 책임을 지고 차경복 감독이 사임하자, 감독 대행을 거쳐서 2005년부터 공식적으로 후임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06년 팀의 7번째 리그 우승을 이끌면서 K리그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2007년에는 K리그 준우승과 AFC 챔피언스 리그 4강을 이끌었다. 그러나, 2008년 11월 27일 6강 플레이오프 탈락 등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그러나, 당시 팬들은 김학범 감독을 경질하는 것에 반대하는 분위기였고, 팀을 계속 이끌어달라는 팬들의 요청이 많았었다. 애초에 일화 프런트진들이 팬들과의 소통은 개나 줘 버린 구단이라서...

2.3 허난 젠예강원 FC

20110401204828_d9051000.jpg
이후 2010년 중국 슈퍼 리그허난 젠예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성적 부진을 이유로 5개월만에 경질되었다. 그러나, 성적에 비해 허난 젠예의 팬들과 지역 여론의 반응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구단 모기업 고위층들의 정치 싸움과 축구단을 둘러싼 음해에 휘말린 것으로 보인다. 2014년 성남 FC를 맡은 김학범 감독을 응원하러 온 허난 팬 그리고 허난 젠예의 후임은 공교롭게도 한국 대표팀 감독을 했었던 조 본프레레였다.

NISI20130428_0008097803_web.jpg
그리고, 2012년 강원 FC의 감독으로 부임하였으나 2013년 강등권 추락 등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다. 2012년 중도에 부임한 김학범 감독은 해당 시즌 간신히 잔류를 성공시켰다. 허나 2013년 강원 FC는 나중에서나 밝혀지지만 프런트의 비리 등으로 재정이 어려운 상황이어서 오재석같은 핵심 선수를 돈이 없어서 이적시키고, 잔류한 선수들은 고향 선수들이거나 나이나 기량의 문제로 타팀에 이적하기 어려운 선수들, 신인급의 선수들로 거의 외인구단에 가까웠다. 당시 강원 FC의 선수층은 얇아서 김학범 감독이 원하는 축구를 실현하기 어려웠고 한 끝 차이로 전술이 성공하지 않는 모습에 선수들은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았다. 김학범 감독 또한 엄청난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이 보였다. 이 상황에서 보궐선거로 새 도지사가 취임하자 새로운 사장을 앉히며 중도 경질되고 말았다.

2.4 성남 FC 시즌 2

IE001796615_STD.jpg

2.4.1 성공적이었던 2014 & 2015 시즌

2014년 여름 대한축구협회의 기술위원으로 선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9월 5일, 6년 만에 시민구단으로 전환된 성남 FC의 감독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슬슬 분위기를 끌어올리며 2014년 11월 23일, 팀을 대한축구협회 FA컵 우승으로 이끈다. 그리고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최종 순위 9위로 K리그 클래식에서 극적인 잔류를 이끌면서 더더욱 칭송을 받는 중이다. 이 우승 직후부터, 사실 퍼거슨이 맨체스터의 김학범이라는 설이 신중하게 지지를 얻고 있다 카더라

더불어, 2015 시즌도 상위 스플릿 진출이 점점 유력해지면서 성남 팬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다. 그리고 2015년 8월 15일, 대전 원정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하면서 성남 FC를 지휘한 이래 통산 100승을 기록했다! 그리고, 9월 23일, 13경기만에 FC 서울 원정 승리를 낚으면서 성남 FC는 3전 4기로 상위스플릿을 달성했다. 스플릿에서 3위를 놓고 포항 및 서울과 각축전을 벌인다. 서울에 패하는 바람(34라운드, 1:2 패)에 아쉽게 4위 안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1] 클래식 출범 후 팀 최고 성적인 5위로 2015 시즌을 마감했다.

2.4.2 한계가 찾아온 2016 시즌

2016 시즌이 시작되었고 개막전에서 라이벌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상대로 2-0 승리를 거두면서 김학범 감독의 전술적인 면모는 더더욱 칭송을 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성남 FC가 재창단된 이후, 처음으로(일화 시절 포함해도 6년만에) 개막전 승리를 기록했다. 이후 홈과 원정을 가리지 않는 경기력으로 11라운드 현재 6승 3무 2패로 3위(승점 21)를 달리며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매 경기 출전하는 통에 주전들의 폼이 저하되면서 성남도 승리보다는 패배에 익숙해지고 있다. 23+1라운드까지의 성적은 9승 7무 8패(5위). 지난해와 별 차이 없는 것 같지만, 올해에는 아시아챔피언스리그를 치르지 않아 체력에 여유가 있었음에도 이렇다. FA컵에서는 수원 삼성 상대로 8강전에서 승부차기 탈락. 탄천에서는 무려 3개월 이상 무승의 굴욕에 시달리고 있다. 한골 넣으면 무조건 걸어잠그고 공격이 활발해져야 할 때 오히려 수비 보강을 하는데, 이게 오히려 팀의 패착이 된다.

시민구단으로 웬만한 기업구단보다 나은 성적이니 대단한거 아니냐는 옹호도 있는데 전북을 제외한 모든 기업구단이 허리띠를 졸라맨 16시즌의 경우 성남의 구단운영비는 전남, 포항 보다 많으며 수원과 엇비슷하다. 시민구단이라는 타이틀에 가려져서 그렇지 성남의 스쿼드도 전북, 서울을 뺀 다른 기업구단과 비교하면 절대 부족한 스쿼드가 아니다. 전북, 서울이야 애초에 넘사벽으로 쓰는 구단들이니 논외로 치고, 그 외 기업구단과는 비슷하게 지출을 한 성남으로서는 어떻게든 ACL 진출이라는 성과를 내야 하는데 티아고 이적 후 10경기 동안 2승3무5패로 처참한 성적을 찍고 있다.

9월 11일 수원 삼성 상대로 홈에서 1:2 패전하며 황기청년단 등의 강성 팬들이 체육회관 앞에서 "감독 나와라"를 시전, 김학범 감독이 팬들에게 '아직 시즌은 끝나지 않았다'며 지켜봐달라고 하며 그럭저럭 마무리되나 싶더니, 결국 2016년 9월 12일. 감독직에서 자진 사임하였다...고 알려졌으나... 김학범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사실은 자진 사임이 아니고 경질이라는 점이 논란이 되고있다.김학범감독 "사퇴? 운동장 갔더니 다 결정됐더라" 이영진 수석코치 이하 코치진 전원도 사직. 다만 2군 코치인 정경호는 유임되었다. 그 공백은 성남의 유소년 사령탑들이 급하게 메우게 되었으나, 단 1승 추가에 그치고 있다. 팬들은 '이런 꼴 보려고 경질했냐'와 '어차피 김학범 감독도 오래가긴 힘들었다'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감독 본인도 티아고 이외의 카드는 없이 무한 체력 훈련만 요구하였고, 결국 붙박이 주전들이 지쳐 나가떨어지며 3위 이상, 최소 6위를 기대했던 팀이 하위스플릿으로 추락하는 계기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2.5 스타일

K리그에서 손꼽히는 지장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광주 FC 남기일 감독[2]과 함께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대한민국 유이한 학구파 감독이다. 지금도 성남 FC의 팬들은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레전드로 존경을 받고 있다.

특히 영상분석 분야의 선구자로, 성남 코치 시절부터 팀에 최신 영상기기를 사달라고 졸랐는데, 기기를 다룰 줄 아는 직원의 추가 고용이 필요하다고 거절하자 내가 할 테니 그냥 사달라고 졸라서 구단에서 기기를 구입한 후, 새벽 3, 4시까지라도 밤을 새면서 영상 분석하고 편집에 매진했다.[3] 그만큼 영상분석에 있어서는 국내에서 거의 최고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으며 선수들 말에 따르면 경기 중에 김학범 감독이 말하는 것처럼 흘러가는 상황이 반드시 찾아온다고 한다.

학범슨이라는 별명이 있지만, 알렉스 퍼거슨과 스타일이 상당히 다르다. 비교하자면 카를로 안첼로티와 가장 비슷한 편이다. 주전술인 4-2-3-1의 완성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며, 이 것이 제대로 돌아간 것이 06~07년의 성남이었다. 일화 시절에는 선수들의 개인 플레이를 상당히 제한하였는데, 이는 꽤 나아졌다. 단점도 안첼로티와 비슷한데 로테이션을 잘 활용하지 않고 베스트일레븐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화 시절에 비하면 그나마 좀 줄어든 편이지만 아직도 로테이션에 적극적이지는 않다. 이 것은 2008년 성남과 2013년 강원에서 경질된 원인으로 작용했던 부분이다.[4]
2016 시즌에도 베스트 11을 고집하다가 결국 6월이 되면서 주전들의 체력 저하와 비주전의 경험 부족이 겹치며 성남의 성적에도 먹구름이 끼어 있다.

3 기타

지독한 헤비 스모커로 알려져 있다. 하루에 3갑 이상 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경기 전 상대 팀의 비디오 분석을 하면서 많은 양을 태운다고. 팬들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 어느 인터뷰에서 어차피 못끊을 담배는 계속 피우는게 스트레스 안 받고 좋겠다고 의사가 말했다고(...) 하셨다.

빛나는 이마 덕에 일화시절부터 상당히 나이가 많아 보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나 1960년생이다! K리그에선 최강희보다 1살 어리며, 유럽에선 라파엘 베니테즈, 요아킴 뢰브와 동갑이고 주제 무리뉴보다 3살밖에 많지 않다. 비슷한 처지의 얼굴 나이대를 가진 카를로 안첼로티보다는 1살 어리다. 2015년 개막전 때 상대 팀인 전북 현대의 최강희 감독과 기싸움을 벌인 적이 있는데, 김학범 감독이 '개막전은 우리 성남의 놀이터다'라고 도발하자 최강희는 '도발하지 말고 머리부터 심고 와라. 도발 노. 가발 이식!'이라고 받아쳤다.

일화 시절에는 경기 내적인 면뿐만 아니라 외적인 면에서도 상당히 외골수적인 면이 강했다. 언론플레이와 팬 서비스에도 인색한 감독이었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경기력에 손실이 생긴다는 이유로 선수나 프런트 차원의 팬서비스도 제한을 가했다. 후임이었던 신태용은 이런 면에서 김학범과 아예 정반대였다. 다만, 본인도 야인이 된 후에는 꽤나 유해졌다. 하지만 성남 FC 감독으로 복귀한 이후에도 그리 달라진 모습을 보이진 않는다. 일설에 의하면 성남FC의 검은 유니폼은 경기력에 지장을 준다는 김학범 감독의 반대로 무산될 뻔하기도 했다.어째 여름에 힘을 못 쓰는 걸 봐서 틀린 이야기는 아닌 듯
  1. 3위 서울이 FA컵을 들어올리며 4위 팀도 아챔에 나갈 수 있게 되었고, 포항이 이 기회를 가져갔다.
  2. 김학범이 성남 일화 감독을 맡던 2005~2008년에 성남 일화 소속 선수로 활동했다.
  3. 이전까지는 경기를 시간순서대로 쭉 돌리면서 분석하는, 집중력 떨어지는 방식이었는데 김학범의 방식이 적용되면서 시간을 2/3는 줄일 수 있어 집중력이 올라갔고, 다른 팀 코치들도 눈치가 보여서 영상분석이 시작됐다고 한다.
  4. 일설에 따르면 연말에는 팀 분위기가 '주전' 대 '비주전'으로 갈린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