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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FC 감독 | |
남기일 (南基一 / Nam Ki-Il) | |
생년월일 | 1974년 8월 17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전라남도 순천시 |
학력 | 순천중앙초-광주북성중-금호고-경희대 |
포지션 | 미드필더 |
신체조건 | 177cm / 69kg |
소속팀 | 부천 SK (1997~2003) 전남 드래곤즈 (2004) 성남 일화 천마 (2005~2008) 천안시청 (2009~2010) |
지도자 | 천안시청 플레잉코치 (2009~2010) 광주 FC 코치 (2011~2013) 광주 FC 감독 (2013~)[1] |
광주 FC 역대 감독 | |||||
여범규 (2012~2013) | → | 남기일 (2013~) | → | - |
2001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
FW 우성용 | FW 산드로 | ||||||||||
MF 신태용 | MF 서정원 | MF 송종국 | MF 남기일 | ||||||||
DF 우르모브 | DF 김현수 | DF 김용희 | DF 이영표 | ||||||||
GK 신의손 |
광주FC 돌풍의 원동력
팀 전력이 약한 팀으로도 재미와 결과를 모두 가져오는 축구를 할 수 있음을 보여준 감독
어리신 분
1 선수 시절
성남일화 천마에서 현역 시절의 사진
경희대학교를 졸업한 뒤 1997년 부천 SK에 입단하면서 프로생활을 시작하였다. 1997년 부천에서 18경기에 출장하며 주전자리를 꿰찼으며 7시즌동안 122경기에 출장해 19골을 기록하였다.[2] 특히, 2001년에는 35경기에 출전해 9골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2004년 김길식과의 맞트레이드 형식으로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하였다. 2004년 전남에서 19경기 1골을 기록하였고, 2005년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하였다. 성남에서 4시즌동안 62경기 13골을 기록하며 소속팀의 2007년 리그 우승에 기여하였다. 당시 성남 일화 감독은 김학범이었다. K리그에서 30-30클럽에 가입한 선수 중에 하나이며 2009년부터는 천안시청 축구단의 플레잉 코치로 이적하여 2시즌 동안 40경기 6골을 기록하며 선수생활을 마감하였다.
2 지도자 시기
잘생겨졌다!
2009년 천안시청 플레잉코치 때부터 하재훈 감독 밑에서 지도력을 쌓아왔고 2011년 광주 FC의 창단 코치로 가담하였다. 팀 지도 방향에 회의를 느껴 2012년 한 해 동안 모든 것을 버리고 “영어 공부와 코칭 연구를 위해” 미국으로 갔다가 2013년 다시 합류하였다.#
2013년 8월 16일 광주 FC의 감독이었던 여범규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퇴하자, 그의 후임으로 감독대행을 맡았다. 초창기에는 새로운 스타일로 갈등을 빚으며 일부 팬들은 사퇴를 바라기도 하였다. 2013 시즌을 3위로 마치며 승격에 실패하였다. 2014 시즌에도 초중반까지는 중위권에 머물렀는데 이후 조금씩 상승하여 정규 시즌을 마친 결과 13승 12무 11패 승점 40점을 기록하였다. 그렇게 턱걸이로 안양FC를 간신히 제치고 4위로 챌린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
그런데 대부분의 전문가 및 팬들의 비관적인 전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챌린지 플레이오프에서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정규리그 3위 강원 FC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1-0으로 승리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고, 정규리그 2위팀 안산 경찰청과의 경기에서 3-0으로 완승하며 두 경기 모두 반드시 이겨야만 다음 단계로 진출할 수 있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상대는 K리그 클래식 11위팀 경남 FC였다. 홈경기인 1차전에서 3-1로 승리하였고, 원정경기인 2차전에서 1-1로 비기며 차기 시즌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시켰다. 1부 리그 승격을 이끈 지도력을 인정받아 대행 꼬리표를 떼고 정식 감독으로 승격했다.
2015 시즌 1위로 클래식에 승격한 대전 시티즌이 시즌 내내 강등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동안 광주는 잠깐이나마 상위 스플릿도 잠깐 들어가 보는 등 호성적을 거두면서 급격하게 평판이 올라갔다. 비록 리그가 진행되면서 얇은 팀 재정과 선수층, 유니버시아드로 인한 연속 원정, 홈구장인 광주월드컵경기장의 안 좋은 잔디 상태 등 수많은 악재로 결국 10위까지 떨어졌으나, 워낙에 상황이 안 좋았던 탓에 클래식에 잔류했다는 것만으로도 선방했다는 의견이 대세다. 15시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광주 FC/2015년 문서 참조. 특히 굉장히 어리고, 얇은 선수단 구성을 가지고 후반기 체력 저하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확고한 축구철학을 관철하는 모습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많이 받았으며, 광주 FC는 하위권 팀임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이고 재미있는 축구를 하는 팀이 되었다.
2016 시즌 전년에 챌린지에서 승격한 수원FC가 전반기 초반의 잠깐 돌풍 이후 잠잠하고 작년에 선전했던 인천 유나이티드 등도 김도훈 감독 퇴진 직전까지 답이 없는 부진을 계속했던 반면, 광주는 묵묵히 작년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은퇴 수순으로 모두가 이해했던 정조국이 부활하고 잘 생긴 김민혁, 이으뜸, 윤보상 등 끊임없이 선수를 발굴하고 있다. 덕분에 선수와 예산이 없다고 하소연해야 하는 감독들은 광주보고도 그런 소리를 하느냐며 팬들의 거센 반발을 사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사실 광주 선수들을 면밀히 따져보면 그렇게 선수층이 얇지도, 선수들의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들이 아니다. 애초에 스쿼드가 얇다는 편견(?)에 젊고 유망한 선수들이 광주를 많이 첫 번째 프로팀으로 선택해왔다. 대표적으로 2016년 입단한 선수 중 윤보상은 대학 시절부터 올림픽 대표인 김동준과 대학 리그 넘버원, 투를 가리던 우수자원이었던데다 2015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대표였고, 올림픽 대표이자 유니버시아드 대표팀 주장이었던 박동진은 여러 모로 매우 유명한 선수. 이민기와 정동윤도 유니버시아드 대표 출신으로 2015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준우승에 기여했다. 또한 호남지역 전통의 명문 유스 중 하나인 금호고 출신 조주영도 대학 리그에서 괴물로 통하던 선수였다. 이름값만 떨어질뿐 상대적으로 알짜배기 신인급 선수들을 많이 데려왔다는 게 축구계의 정설이다. 그러다 보니 K리그 클래식 팀 중 연봉이 가장 낮은 팀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그 탑 수준의 운영비와 연봉에도 거침없이 강등경쟁에 뛰어드는 이른바 전통의 명가들과 감독들이 줄줄이 지휘봉을 놓는 2016 시즌의 클래식 사정으로 인해 절대적으로든 상대적으로든 높은 평가 자체에는 이의가 별로 없어보이는 상황이다.
광주와의 계약이 2016 시즌 이후 만료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도경질이 아닌 이적으로 팀을 옮길 수 있는 K리그 클래식 감독 1순위로 지목받고 있다.
3 사건 사고
주먹감자의 오리지널 되시는 분이다. 2003년 9월 부천 SK 소속으로 전남 드래곤즈와 경기하던 중 골을 넣고 전남 서포터즈들에게 주먹감자를 발사, 흥분한 전남 서포터즈가 난입하는 사태를 빚었다. 그러나 이래놓고 바로 다음해 전남으로 트레이드가 되어서 이적을 하는 얄궂은 운명을 맞는다. 1년 후에 이런 일이 올줄은 상상조차 못했던 남기일은 전남 팬들에게 큰절까지 올리며 사과했지만 전남 팬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1년만에 팀을 떠나버렸다. 지금도 전남 팬들은 남기일을 썩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으며[3], 2015년 6월 3일 K리그 클래식 전남과 광주의 경기에서는 '남기일씨 주먹감자 반납이요'라는 걸개가 걸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전남은 선제골을 기록하고 후반 막판 2골을 허용하며 1:2 역전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