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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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炳珪
1907년 ~ 1984년 2월 17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900년 전라남도 여수군 여수면(현 여수시)에서 태어났다. 여수수산학교(현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를 졸업하였다.

이후 여수군에서 면장, 여수어업조합장을 역임하였다.

8.15 광복 후 한국어민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남도 여수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대한국민당에 입당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국민당 후보로 전라남도 여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2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53년부터 1954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상공위원회(현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김철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5년 지방선거에서 전라남도 여수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전라남도 여수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민주당 정재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남도 참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수당 후보로 전라남도 여수시-여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이우헌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에 같은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이은태에 밀려 탈락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에 전라남도 여천군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김중태에 밀려 탈락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에 전라남도 여수시-여천군-광양군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김상영에 밀려 탈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