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폐을 흔들면서 매수라고 조롱하는 알제리의 관중들.
1 개요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나타난 서독 대표팀과 오스트리아 대표팀의 추태.
서독과 오스트리아가 수치스런 승부조작성 플레이로 인해 나란히 2라운드에 진출, 알제리가 다소 석연찮게 떨어지는 충격적인 결과가 발생했다.
하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지라 히혼의 수치(Schande von Gijón), 히혼의 불가침조약(Nichtangriffspakt von Gijón), 오스트리아 병합(Anschluss), 히혼 스캔들(فضيحة خيخون) 등등으로 불린다.
2 상세
당시 FIFA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나라들에게 1~2장의 진출권밖에 주지 않았고, 월드컵에 나가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1][2] 그 와중에 당시 아프리카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알제리가 월드컵 출전권을 따냈고, 흥분한 알제리 국민들은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기대했는데...
하필이면 서독, 오스트리아[3], 칠레[4]와 같은 조가 되어버렸다. 칠레 정도만 상대해 볼만 하고 그 외에는 엄두도 안나는 충공깽한 상황. 특히 서독은 유로 1980 우승이라는 화려한 전적을 갖고 있는 팀이라 장난아니게 강팀이었고 이에 대한 대항마라는 게 오직 디팬딩 챔피언인 아르헨티나밖에 없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의 괴물팀이었다.
그렇게 1982년 월드컵은 막이 오르고...
3 전개
3.1 충격의 서막
히혼에 4만 2천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서독과 알제리의 2조 첫 경기가 열렸다. 예상처럼 서독은 전반 내내 공격을 펼쳤지만 어째 잘 풀리질 않았고, 0-0으로 전반전을 마친 뒤 후반전에 돌입했는데...
알제리가 강호 서독을 2-1로 격파했다!!!
당시 서독의 충격패에 전세계가 충격에 빠졌고, 누군가는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충격 또는 1966년 북한의 충격 이후 최고의 비극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이로써 알제리는 월드컵에서 유럽의 팀을 꺾은 최초의 아프리카 팀으로 등극했다.
하루 뒤 열린 칠레와 오스트리아의 경기는 오스트리아의 1-0 승리로 끝나며, 각각 1경기씩 마친 순위는 다음과 같았다.
팀 | 승점 | 승 | 무 | 패 | 득 | 실 | 차 |
알제리 | 2 | 1 | 0 | 0 | 2 | 1 | +1 |
오스트리아 | 2 | 1 | 0 | 0 | 1 | 0 | +1 |
서독 | 0 | 0 | 0 | 1 | 1 | 2 | -1 |
칠레 | 0 | 0 | 0 | 1 | 0 | 1 | -1 |
뒤이어 열린 2조 두번째 경기. 서독은 칠레를 상대로 분풀이를 하며 4-1 대승을 거뒀다. 다음 날 알제리를 상대로 오스트리아가 고전하다가 후반전에 내리 두 골을 넣으며 오스트리아가 2-0으로 승. 여기서 다시 조 순위를 살펴보자.
팀 | 승점 | 승 | 무 | 패 | 득 | 실 | 차 |
오스트리아 | 4 | 2 | 0 | 0 | 3 | 0 | +3 |
서독 | 2 | 1 | 0 | 1 | 5 | 3 | +2 |
알제리 | 2 | 1 | 0 | 1 | 2 | 3 | -1 |
칠레 | 0 | 0 | 0 | 2 | 1 | 5 | -4 |
뒤이어 열린 알제리와 칠레의 세번째 경기. 주고받는 공방전 끝에 알제리가 3-2로 힘겹게 승리를 따내며 다음날 마지막 서독과 오스트리아 사이의 경기만 남게 됐다. 이 상황에서의 조 순위.
팀 | 승점 | 승 | 무 | 패 | 득 | 실 | 차 |
오스트리아 | 4 | 2 | 0 | 0 | 3 | 0 | +3 |
알제리 | 4 | 2 | 0 | 1 | 5 | 5 | 0 |
서독 | 2 | 1 | 0 | 1 | 5 | 3 | +2 |
칠레 | 0 | 0 | 0 | 3 | 3 | 8 | -5 |
즉, 칠레의 탈락이 확정된 가운데 다음 날 경기에서 서독이 적은 점수차로 이기지 못한다면 알제리가 2라운드로 올라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서독이 오스트리아를 4-0 정도로 이겨버리면 서독과 알제리가 올라가고 오스트리아가 떨어진다. 결국 알제리가 떨어지려면 그 조건은 유일하다. 서독이 1-0 수준으로 적은 점수차로 오스트리아를 이겨야만 알제리가 떨어진다. 그 외에의 모든 경우의 수가 알제리가 2라운드에 올라가는 상황이다.
오스트리아는 2점차 패배여도 2라운드에 올라가며 3점차 패배를 할 경우 계산이 좀 복잡해지는데 0-3, 또는 1-4로 패하면 다득점에서 밀려서 떨어지는 상황이고 2-5로 패하면 오스트리아와 알제리의 득실차가 다득점 여부까지 동일한 득5 실5 차0인데 오스트리아가 알제리를 2-0으로 이긴 바가 있기 때문에 승자승 원칙으로 겨우 올라갈 수 있다.[5] 물론 4점차 이상 패배는 계산할 것도 없는 상황이다.
전력상으로 서독이 더 앞섰지만 당시 오스트리아도 리즈시절이었고, 무실점을 이어가고 있었으며 이전 1978년 월드컵에서 오스트리아가 서독을 3-2로 꺾은 바가 있기 때문에[6] 서독으로서도 심히 우려스런 상황.
서독이 난처해진 가운데, 오스트리아도 같은 게르만 친구들이 올라가길 바라는 눈치였는지 분위기는 점점 오묘해지고... 결국 서독은 대승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진 않았고 오스트리아 역시 패하더라도 3골 이상 먹히면 절대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양 팀은 마음속으로 쓸데없이 무리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알제리도 흥분을 감추지 못한 가운데 알쏭달쏭 싱숭생숭한 분위기 속에서 드디어 2조의 운명을 결정지을 마지막 경기가 다가왔다.
3.2 충격의 끝
다시 한 번 히혼에서 4만 천 관중들이 보는 가운데 서독과 오스트리아의 경기가 열렸다. 승리가 절실한 서독이 파상공세를 이어갔고, 마침내 전반 10분 호르스트 흐루베슈가 골을 넣었다. 하지만 이것은 비극의 시작이었으니... 중간에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두 팀이 80분동안, 의미없는 백패스로만 공을 돌리기만 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기 시작했다.
각 팀은 수비 진영에서 계속 의미없는 백패스로 공만 돌려댔다. 서독의 볼프강 드렘러와 오스트리아의 발터 샤흐너가 경기에 활기를 불어넣어보려고 고군분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80분동안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공돌리기만 계속 이어졌다.
당시의 참상. 영상 1분 20초에 서독이 득점에 성공하고 그 뒤부터 공돌리기만 하고 있다.
당시의 관중들은, 할 말을 잊었으며, 경기가 진행되는 내내 야유와 함께 '꺼져라! 꺼져라!'(Fuera, fuera), '정정당당하게 싸워라!' (Sporting! Sporting!) '뽀뽀해! 뽀뽀해!'(Que se besen, que se besen) '알제리'(Algelia, Algelia)를 외쳤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독일 ARD의 해설자 에베르하르트 슈타니예크는 어느 시점부터 해설을 거부하면서 "경기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말하지 않더라도 이해해달라."면서 "이것은 축구라고 할 수 없다."고 해설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해설자 로베르트 제거는 "시청자들에게 TV를 끄는 편이 낫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뉴욕타임즈 기자 조지 벡시는 "콘서트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심지어, 스페인 일간지 엘 코메르시오는 해당 경기의 결과를 범죄 섹션에다 실었다.
알제리 관중들은 물론이고, 지난 월드컵에서의 코르도바의 기적을 멋진 경기로 되갚아주길 원했던 서독 관중들이나, 다시 한 번 멋진 경기를 기대했던 오스트리아 관중들, 그리고 스페인 관중들 모두가 위 아더 월드로 비난을 하기에 이르렀다. 알제리의 관중들은 위의 사진처럼 돈을 흔들면서 매수라고 선수들을 조롱했으며, 한 독일 관중은 독일 국기를 불태우기까지 했다.
FIFA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져주기 게임 경기가 끝난 뒤, 2조의 최종 순위는 다음과 같았다.
팀 | 승점 | 승 | 무 | 패 | 득 | 실 | 차 |
서독 | 4 | 2 | 0 | 1 | 6 | 3 | +3 |
오스트리아 | 4 | 2 | 0 | 1 | 3 | 1 | +2 |
알제리 | 4 | 2 | 0 | 1 | 5 | 5 | 0 |
칠레 | 0 | 0 | 0 | 3 | 3 | 8 | -5 |
결국 서독과 오스트리아가 사이좋게 쎄쎄쎄를 하며 승점을 나눠가지며 손을 잡고 2라운드에 진출했고, 알제리는 같은 승점을 벌어놓고서도 두 팀의 농간에 당해 떨어졌다.
4 후폭풍
당연하게도 승부조작 의심이 불거졌으며, 알제리 축구 협회는 공식적으로 항의했으나 FIFA로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고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독과 오스트리아 모두 의혹을 부인했다. 이를 두고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두 국가 대표팀을 노벨 평화상 후보라고 대놓고 비꼬았으며, 심지어 서독에서는 "내 조국이 이런 더러운 짓을 하니 도저히 못살겠다!"라고 자살한 사람까지 있었다.
전세계 사람들을 실망시키며 2라운드로 진출한 오스트리아는 결국 프랑스에게 발목이 잡히며 떨어졌다. 서독도 2라운드에서 잉글랜드와 스페인을 뚫고 4강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상당히 더럽고 찝찝한 승리를 거둔 뒤[7] 용케도 결승전까지 진출했지만, 이탈리아와 맞붙어 파올로 로시, 마르코 타르델리, 알레산드로 알토벨리에게 얻어맞으며 1-3으로 대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참고로 이탈리아는 2라운드가 불지옥이었는데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라는 기상천외한 조를 뚫고 올라왔다. 그러고도 4강에서 당시 최고의 리즈시절을 자랑하던 폴란드를 꺾고 결승에 온 상태였다.
이로 인해, 제도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떠올랐고 마침내 유로 1984를 시작으로 각종 국제 대회에서 조별리그의 마지막 경기는 승부조작을 막기 위해서 모든 팀이 동시간대에 경기를 시작하도록 제도가 바뀌게 된다. 하지만 2016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이 제도를 어겼고 마지막 경기도 다른 시간대에 치렀다. 승부조작 없이 넘어가서 망정이지
5 여담
현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 울리 슈틸리케도 선수 시절 이 경기에 출전했었다. 당시에는 독일 대표팀의 스위퍼로 출전했다. 사건 당시의 이야기를 하는 모습(1분 13초부터)
한편, 이 사건에서 골을 넣었던 호르스트 흐루베슈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되면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축구에 출전했다. 슈틸리케는? 그리고 수비에서 불안함을 보여준 대한민국 상대로 무재배를 하는 굴욕을 당하고 말았다.
알제리는 2014년 월드컵에서 독일에게 복수할 절호의 기회인 16강에서 만나 처절하게 싸웠으나 연장 끝에 1-2로 석패했다.[8]
한편,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는 동시간대에 펼쳐진다는 바뀐 제도는 시간이 흘러서 여러가지로 또 다른 충격을 몰고 왔는데...- ↑ 1960~70년대에는 더 힘들어서, 1962년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힘겹게 통과하고 올라온 대한민국은 유럽의 유고슬라비아와 붙어야 했고, 결국 베오그라드 원정에서 1-5로 장렬히 패배했다. 한 달 뒤 서울 홈경기에서도 1-3으로 패, 결국 유고슬라비아가 월드컵에 진출했다.
- ↑ 1974년 월드컵 예선에선 대한민국은 기껏 이스라엘(...)을 이기고 올라왔더니 이번엔 호주(...)와 최종전을 펼쳐 1차전 0-0, 2차전 연장전 2-2로 팽팽히 맞섰으나 홍콩에서 열린 3차전에서 0-1로 패해 안타깝게 호주에게 출전권을 넘겨줘야만 했다.
- ↑ 헤르베르트 프로하스카, 한스 크란클, 발터 샤흐너 등이 이끄는 건실한 팀이었다. 1978년 월드컵에서 2라운드까지 진출.
- ↑ 예선에서 에콰도르, 파라과이를 제치고 올라왔다.
- ↑ 만약 이 상황에서 오스트리아가 서독에게 패했을 경우 오스트리아와 알제리가 서로 비긴 상태에서 득실차는 물론 다득점까지 동일할 경우
동전을 던져서(예를 들면 앞면 오스트리아 진출 / 뒷면 알제리 진출)가 아니라 두 팀이 경기장을 정해 모여서 승부차기만 시전하게 된다. 그리고 그 승부차기로 2라운드 진출을 결정하게 된다. - ↑ 이를 당시 경기가 열렸던 도시 코르도바에서 따와 코르도바의 기적이라 한다.
- ↑ 이 경기에서 서독의 골키퍼 슈마허는 골문을 향해 쇄도하던 프랑스 수비수 바티스통을 무릎 공격으로 쓰러뜨려 끔찍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바티스통은 슈마허의 공격에 이빨과 늑골이 부러지는 중상을 당했음에도 불구, 주심으로부터 반칙을 얻어내지 못했다. 미셸 플라티니는 이를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오심’에 비유하며 불만을 폭발시켰다.
- ↑ 서독 전에서 골을 넣었던 라흐다르 벨루미도 복수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