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아시아 축구 연맹(AFC) 회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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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대만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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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라오스
레바논
마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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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몽골
몰디브
미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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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레인
방글라데시
베트남
부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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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리아나 제도
북한
브루나이
사우디아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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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시리아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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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예멘
오만
요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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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이라크
이란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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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일본
중국
카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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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쿠웨이트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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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투르크메니스탄
파키스탄
팔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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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호주
홍콩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DPR Korea national football team
정식명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 국가종합팀
FIFA 코드PRK
협회북한축구협회 (DPRKFA)
연맹아시아 축구 연맹 (AFC)
지역연맹동아시아 축구 연맹 (EAFF)
감독욘 안데르센 (Jørn Andersen)
주장리명국
홈 구장김일성경기장, 양각도축구경기장
첫 국제경기 출전VS 중국 (1:0 승), 중국 베이징 (1956년 10월 7일)
최다 점수차 승리VS (21:0 승), 대만 타이베이 (2005년 3월 11일)
최다 점수차 패배VS 포르투갈 (0:7 패), 남아공 케이프타운 (2010년 6월 21일)
별칭천리마 축구단
월드컵출전 2회, 8강 1회 (1966)
아시안컵출전 4회, 4위 1회 (1980)
동아시안컵출전 1회, 3위 1회 (2005)
올림픽출전 1회[1], 8강 1회 (1976)
아시안 게임출전 4회, 금메달 1회 (1978)
유니폼어웨이
상의빨강하양
하의빨강하양
양말빨강하양

북한축구 국가대표팀을 다루는 항목.

1 개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 이탈리아를 깨고 아시아 국가 최초로 8강에 진출한 전적이 있다. 이 경기의 결과는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잉글랜드가 미국에게 0-1로 진 것과 더불어 월드컵 역사상 최대의 이변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본선 진출국이 16개뿐이라 8강이면 지금의 16강이나 마찬가지라고 얼핏 생각할 수가 있는데, 애초에 본선 진출국 수가 현재의 절반이라 지역예선을 뚫기가 몇 배나 힘들다. 이때 북한은 아시아, 오세아니아, 아프리카를 합쳐 고작 1장 부여된 본선 티켓을 잡은 것이었다. 게다가 본선 조별리그에서도 힘든 예선을 뚫은 정예 국가들만 만나게 된다. 실제로 북한이 본선에서 만난 상대가 소련, 이탈리아, 칠레였다. 소련은 유로 우승국에 전설의 골키퍼 레프 야신이 있던 우승후보국으로 지금과는 비교를 거부하는 당대 최강팀 중 하나였고(실제로 이 대회에서 4강에 진출했다.) 칠레 또한 전 대회에서 개최국 어드벤티지에 힘업어 4강에 오른 남미의 강팀. 이탈리아는 카테나치오(빗장) 축구라 불리는 세계 최강의 수비력을 보유하여 당시 펠레의 브라질에 이은 우승후보 2순위 국가였다. 이 대회에서는 브라질과 이탈리아 모두 조별리그 광탈하여 세계 축구 역사의 대이변으로 꼽힌다. 하지만 다음 대회인 1970년 대회에서 두 팀이 결승에서 맞붙는다. 지금도 월드컵에서 러시아, 칠레, 이탈리아를 만났다면 불운의 대진인데, 당시에는 어땠을지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비록 북한이 1966년 당시는 본선에 쉽게 가긴 했으니 조별 리그에서 개발살이 나고 탈락했다면 당시의 북한 축구를 별 것 아닌 것으로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조별 리그에서 한 수 또는 두 수 위인 팀들을 만나서 통과했다는 것이 큰 의미다.

한국은 본선 24강, 32강 체제에서는 쉽게 본선에 진출했지만 본선이 16강 체제였을 때 본선에 간 것은 딱 한 번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잉글랜드를 깬 결과는 미국과 잉글랜드의 동반탈락이였고, 북한이 이탈리아를 깬 결과는 북한은 8강 진출, 이탈리아는 탈락이기에 더 여파가 큰 이변은 후자라고 할 수도 있겠다. 게다가 잉글랜드는 당시 경기 전날 같은 조이던 칠레 관중들이 몰려들어서 잉글랜드 선수들이 잠자던 숙소에서 밤새 소리지르고 시끄럽게 굴어 선수들이 잠을 제대로 못자는 바람에 몸상태가 엉망이었다는 핑계거리라도 있지만 이탈리아 선수들은 그런 것도 없었다. 더구나, 8강전에서 만난 포르투갈에 3-0까지 앞서기까지 했다. 비록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던 에우제비오에게 4골을 허용하며, 어이없이 역전패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러니 이탈리아 관중들이 공항에서 돌아오는 자국 선수들에게 달걀과 토마토를 던지며 더 분노했다. 그런데 이탈리아 선수들도 변명을 내세울 게 있었는데 1949년에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을 앞두고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거의 전부에 해당하는 전력을 갖고 있던 토리노 FC벤피카와 평가전을 치른뒤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 사고를 당해서 몰살당한 일이 있었다. 요즘으로 따지면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이 비행기 사고를 당해서 독일 국대가 약해진 것이라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이탈리아 축구팀의 전력은 듣보잡 약체 수준으로 떨어졌고 1966년 시점에서 이탈리아는 그 때의 충격이 아직 남아있던 시기였다. 이탈리아는 이 사고의 여파를 완전히 수습하는데 20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평균신장이 165cm밖에 안되는 당시의 북한 선수들은 키가 너무 작아서 헤딩이 잘 안되자 동료선수의 어깨를 팔로 디디고 올라서는 일명 사다리 전법을 구사해서 제공권을 장악했고 심지어 FIFA는 북한이 사용한 사다리 전법을 반칙으로 정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퍼졌는데 사실이 아니고 사다리 전법에 대한 설명도 틀리다.

아래 사진이 '사다리 전법'을 이용한 헤딩 사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사실 사다리 전법은 일반적인 공격, 미드필더, 수비진 삼선을 기준으로 4-4-2 같은 포메이션이 아니라, 선을 단 두개만 둔 5-5 혹은 4-6 같은 극단적인 포메이션 전술을 뜻하는 것이다. 아래 사진은 운 좋게도 동료 선수들을 이용하여 시간차 점프하는 것처럼 사진이 찍혔을 뿐, 이것이 사다리 전법은 아니다.

파일:/image/001/2010/06/21/PYH2010062101610001300 P2.jpg
"북한이 1966년 월드컵에서 사용한 사다리 전법은 대충 이런식이었다"고 잘못 알려져 있는 사진. 키가 작아서 혼자 힘으로는 제공권이 어렵게 되자 동료 선수를 들어올리거나 동료 선수의 어깨를 디디고 헤딩을 했다.

그래도 포르투갈을 상대로 처음에는 순식간에 3-0으로 앞질러나가서 승기를 확실히 잡고 있었다. 특히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바로 박승진이 선제골을 넣어서 초반에는 오히려 포르투갈쪽이 충공깽에 빠진 상태였다. 그러나 그 에우제비오가 그라운드에 나타나자 에우제비오는 연달아 4골을 폭발시켜서 북한 선수들에게 헬게이트가 뭔지 가르쳐줬다. 경기결과는 3-5로 포르투갈에게 패했다. 특히 3-0으로 앞서다가 순식간에 5골을 연달아 얻어맞은 당시의 북한 선수들은 패배한 굴욕감보다도 아연실색이 앞섰다.

포르투갈과의 8강전 전날 단체로 사창가에 갔다가(...)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는 카더라가 있다. 사창가 갔다는 얘기는 강철환의《수용소의 노래》(2003)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애초부터 강철환의 이 책에서 곁가지로 다루는, 일종의 카더라이기 때문에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정보는 아닌듯 하다.[2] 하지만 탈북자 출신 주성하 기자는 이 설을 사실상 부인. 사창가가 이유가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당시 갑산파를 둘러싼 숙청에 애꿎은 축구선수들이 휘말렸다는 것이고, 실제로 이들 북한 대표팀이 수용소에 끌려간 것도 월드컵 몇 달 후였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당시 피파 회장이 공격에는 에우제비오, 수비에는 신영규, 골키퍼에는 야신이라고 극찬한 신영규 선수는 지주의 아들이라는 출신성분[3]이 발각되어 런던월드컵 이후 일체의 행보를 알 수 없다고.

당시 북한대표팀 선수단 중에 확실하게 행적이 확인되는 인물은 이탈리아전에서 득점을 기록한 박두익이다. 박두익은 1970년대 북한 대표팀 감독으로 맹활약하면서 대한민국팀과도 여려차례 대결했고, 이후에도 북한 축구계의 대표로 여러차례 모습을 보였다. 차범근의 따뜻한 축구 '北선수들 탄광행?' 그래도 절대 양보할 수 없었다

영국의 다니엘 고든 감독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천리마축구단(The Game of Their Lives)을 보면 당시의 선수들이 멀쩡히 살아서 다시 만나는 장면도 나오고, 그들 중 박두익을 포함한 몇몇은 꽤나 고위층으로 출세한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4] 천리마축구단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인터뷰가 나온다. <천리마축구단>은 영국에서 2002년 개봉했고, 국내에선 2005년도에 상영되었다. 다니엘 고든 감독은 이 후에도 북한 정부의 협조하에 평양시의 두 여학생을 다룬 <어떤 나라>(2004년), 월북미군을 다룬 <푸른 눈의 평양시민>(2006년)을 연달아 제작하였다.[5][6]

당시 우리는 예배당이니 뭐니 그런것 잘 몰랐는데...우리가 원래 우승할 줄을 모르고 주최측에서 예배당에 딸린 숙소를 배정해 놨단 말이예요. 이딸리아 선수들이 묵을 줄 알고. 그 구조가 한가운데에 성모상이 서있고 주변에서 불빛이 아른거려서 숙소 어디에서든 성모상이 보이는 구조였거든요. 그걸 보니까 기분이 묘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더라구. 그래서 잠을 설쳤어요.

― 영화 - 당시 선수들의 인터뷰 중

정확히 말하면 이탈리아팀은 당연히 8강에 진출할 줄 알고 미리 8강전 개최도시에 수녀원을 숙소를 예약해 둔 것이다. 전국민의 대부분이 카톨릭 신자인 이탈리아 선수단 입장에선 주변의 방해가 없는 조용한 숙소로 수녀원을 선택한 것이다. 근데 이탈리아는 광탈했고, 예상치 않게 8강에 진출한 북한팀이 급하게 숙소를 찾다가 그곳으로 간것이다. 당시 북한은 사실상 종교가 말살된 상태였고 기독교인들은 지하로 숨어들어가거나 한국전쟁 중에 대부분 월남한 상황이었다. 여기에 어릴때부터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배워왔던 북한의 젊은이들은 성모상이니 뭐니 하는 종교 시설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고... 이 말만 듣고 판단했을 때는 당시 북한 선수들이 수도원이라는 낯선 환경의 숙소에서 생활하다보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몸 상태가 엉망인 상태에서 경기를 치렀고 거기다 전반 25분 이전까지 3골을 때려 넣으며 오버페이스를 한 탓에 이후에 체력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결국 어이없게 역전패를 당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건 이후 북한 축구는 이후에 별다른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진출하기 이전에는 월드컵 무대에 발도 들이지 못하게 된다. 계속 본선에 못 나가는 것에 뽀글이가 빡쳤는지 1998년, 2002년 월드컵에는 아예 참가 신청을 하지 않았다. [7]

그나마 예선에 참가했던 2010년 월드컵에서 브라질과의 대결에서는 나름대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지만, 또다시 포르투갈에게 40여년 전보다 더욱 처참하게 관광당했다. 그리고 7:0 관광에 힘입어 세븐 갤러리가 털리고 만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엔 본선에 진출했지만 44년만에 다시 만난 포르투갈에게 완전히 떡실신당했다. 북한은 이 대회에서 포르투갈에게 양민학살을 당했는데(0-7) 전반전은 0-1로 잘 버티다가 후반전에서 6골을 내리 먹고 말았다. 이는 그 전대회에서 세르비아몬테네그로가 아르헨티나에게 떡실신을 당했다든지(0-6) 그보다 더 전 대회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독일에게 떡실신당했다든지(0-8) 하는 경기에 비견되는 양민학살이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조 추첨 결과 일본,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8]과 같은 조가 되었다. 그리고 6경기 중 4경기를 치른 결과 타지키스탄 상대로 1승 거둔 거 빼고 일본과 우즈베키스탄에게 모두 져서 일찌감치 광탈이 확정되는 안습신세를 겪어야만 했다.

2015년 동아시안컴 한장 요약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은 아시아 2차 예선에서 일찌감치 탈락했다. 그것도 약체 필리핀에게 2-3으로 패하는 부진을 보였고 이 패배로 22년만에 역대 2번째 외국인 감독을 영입했다. 노르웨이 출신으로 1990년 프랑크푸르트 소속으로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기록한 욘 안데르센(Jørn Andersen)이다. 다만 선수 시절에는 그럭저럭 활약했지만 감독으로서의 능력은 마인츠의 분데스리가 1부 리그 승격을 이끈 것을 제외하면 미미하다. 2015년에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지휘봉을 잡았다가 1년 만에 팀을 떠났다. 참고로 북한 역사상 첫 외국인 감독은 한국(알다시피 1994년 아나톨리 비쇼베츠)보다 1년 더 빨랐는데 1994 미국 월드컵을 앞두고 헝가리 출신의 체르너이 팔(Pál Csernai)에게 지휘봉을 맡겼었다. 당시 북한은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까지 진출했지만, 최종 라운드에서 한국과 일본에게 0-3으로 참패하며 6개 팀 중 최하위를 기록하며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2 역대 전적

2.1 FIFA 월드컵

역대 월드컵 전적 순위 : 55위

년도결과순위승점경기득점실점
1930 우루과이 월드컵없음(일제강점기)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없음(일제강점기)
1938 프랑스 월드컵없음(일제강점기)
1950 브라질 월드컵불참(6.25 전쟁)
1954 스위스 월드컵불참
1958 스웨덴 월드컵불참
1962 칠레 월드컵불참
1966 잉글랜드 월드컵8강8위4411259
1970 멕시코 월드컵기권
1974 서독 월드컵예선 탈락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기권
1982 스페인 월드컵예선 탈락
1986 멕시코 월드컵예선 탈락
1990 이탈리아 월드컵예선 탈락
1994 미국 월드컵예선 탈락
1998 프랑스 월드컵불참
2002 한일 월드컵불참
2006 독일 월드컵예선 탈락
2010 남아공 월드컵조별리그32위03003112
2014 브라질 월드컵예선 탈락
2018 러시아 월드컵예선 탈락
2022 카타르 월드컵?????????
합계8강 1회2/21[9]47115621


총성적 1승 1무 5패, 승점 4점을 기록하여 월드컵 랭킹 55위에 올라있다. 승점이 같은 나라는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쿠바가 있지만 슬로바키아와 쿠바는 1회뿐이라 월드컵 진출 횟수에 앞서고 2회 진출의 슬로베니아와는 최고성적이 앞서 55위에 랭크되어 있다. 아시아에서는 세 번째로 월드컵에 올라 승점자판기가 될 것이란 예상을 깨고 전 대회 4강팀 칠레와 1:1로 비기고 이탈리아를 1:0으로 잡는 대이변을 일으키며 아시아 최초 8강에 진출하는 영광을 누렸다. 8강에 가서도 포르투갈을 상대로 전반 25분만에 3골을 몰아넣으며 4강을 눈앞에 뒀지만 에우제비오가 4골을 몰아넣으며 5골을 허용, 3:5로 역전패해 8강에서 돌풍을 멈췄다. 포르투갈도 월드컵 첫 진출에 펠레가 있는 브라질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헝가리를 누르고 올라온 팀이어서 돌풍 vs 돌풍팀으로 화제가 되었으며, 이런 포르투갈을 상대로 엄청난 성과를 올렸다.

당시 FIFA에서는 아시아, 아프리카, 북중미 팀이 어떻게든 월드컵에 올라오지 못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상황이었다. 1960년 아프리카팀이 대거 독립해서 참가 신청국이 상당히 늘어났음에도 FIFA는 아시아-오세아니아-아프리카를 묶어 단 1장만 부여했다. 12년전 대한민국이 너무 처참한 성적으로 깨지고 돌아갔기에 유럽과 남미 측에서 이들에게 티켓을 주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1958, 1962년에도 대륙 1위를 차지하고도 각각 유럽, 남미와 플레이오프를 하도록 해 결국 한 팀도 오르지 못한 것에도 이미 불만이 있었는데 타대륙까지 같이 묶어버리니 불만이 폭발, 결국 아프리카팀은 전원 보이콧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지난 대회와는 달리 최소 한 팀은 본선에 올려주겠다는 뜻인데 그래서 이 1장의 티켓은 자연스레 아시아에 돌아갔는데, 북한이 아시아에서는 이미 A매치 17승 1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올리고 있어 대한민국과 일본이 이를 피하려고 FIFA에 벌금까지 물어가면 참가신청을 포기한 일화는 유명하다. 호주를 상대로도 6:1, 3:1로 대량학살하면서 올라와 이미 제3대륙에서는 실력을 입증받았던 팀이었다.

이 돌풍 이후로 정치권에 휘말려 끝이 안 좋았다는 썰도 있는데 어디까지나 썰일 뿐이다. 북한 내에서도 소문으로만 돌고 확인된 바는 아무 것도 없으며, 오히려 고위층에서 활동하는 선수들도 많다. 무엇보다 FIFA의 규정 중에 각 국의 정부는 축구 협회의 업무에 개입해선 안되고 외부의 어떠한 세력도 축구 협회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규정이 있어 경기에서 패했다는 이유만으로 선수들을 숙청하는 것은 엄연한 규정 위반이자 자격정지 사유가 된다.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 16강~8강 진출에 실패하자 정부의 간섭으로 축구협회의 간부들을 해고했다가 FIFA의 자격정지를 맞고는 이를 번복하기도 했다.

이렇게 돌풍을 일으킨 다음 대회는 이스라엘의 참가에 반대하며 불참을 선언, 이후로도 월드컵에 뜨문뜨문 참가하며 세계와의 격차를 벌리며 다시 변방으로 떨어졌다. 1994 최종예선에서는 처참히 발리며 꼴지로 추락한 것에 충격을 받았는지 이후 두 월드컵을 또다시 불참했다. 여기에 2002 월드컵이 껴있기도...

2006년부터 다시 참여를 재개하여 2010년 사우디와 이란을 누르고 44년만에 본선에 올랐고 또다시 수수께끼의 팀으로 이번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게 했던 팀이다. 조 추첨 직전 이탈리아에선 북한과 다시 붙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할 만큼 관심을 많이 받았던 팀이었고, 실제로 뚜껑이 열리고 브라질을 상대로 1점차로 분투하면서 발목잡이 역할을 하나 싶었는데 다음 포르투갈전에서 후반전에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광탈. 실력 자체는 좋은 편이 아니지만 그걸 막강한 조직력과 수비력으로 막는 팀이어서 어떻게 될지는 지켜볼 일. 만약 분단이 되지 않고 대한민국과 단일 팀으로 나섰으면 확실한 아시아 넘버원으로 우뚝 섰을지도 모르는 일이어서 다소 아쉽기도 한 애증의 팀이다.

2.2 올림픽

  • 프로축구선수 참가 금지 시절에는 프로가 없는 공산권 국가들은 올림픽대표=국가대표라고 생각하면 된다.
  •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아시아 지역예선 을 겸하는 대회인 AFC U-23 챔피언십에서 조별 리그 3경기 동안 2무 1패를 하였으나 조 2, 3, 4위가 모두 2무 1패로 승점이 2점으로 같아서 다득점을 따져 조 2위로 8강에 진출하였다. 본격 무재배의 팀, 허정무가 좋아합니다.

2.3 AFC 아시안컵

AFC 아시안컵 역대 순위 : 17위

년도결과순위승점경기득점실점
홍콩 1956불참
대한민국 1960출전금지
이스라엘 1964불참
이란 1968불참
태국 1972불참
이란 1976예선 통과 후 기권
쿠웨이트 19804강4위963031012
싱가포르 1984출전금지
카타르 1988예선 탈락
일본 1992조별리그8위1301225
아랍에미리트 1996불참
레바논 2000예선 탈락
중국 2004예선 탈락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2007출전금지
카타르 2011조별리그12위1301202
호주 2015조별리그13위0300327
아랍에미리트 2019?????????
합계4위(1회)4/16111532101426

2.4 아시안 게임

  • 1974년 4위
  • 1978년 대회 금메달(한국과 0-0으로 비기면서 공동우승. 당시에는 아시안게임 축구에 승부차기 제도가 없었고 결승전은 120분 내에 승부가 안 나면 그냥 공동우승 처리.)
  • 1990년 대회 은메달
  • 2014년 대회 은메달

2.5 역대 한국전 성적

6승 7무 1패로 한국이 절대적으로 앞서고 있지만 2000년대 와서는 1승 5무를 기록하며 크게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 유일한 패배는 노태우 정권 때 남북관계가 일시적으로 좋아졌던 시절이었던 1990년, 남북친선경기에서 북한 원정에서 0-1로 진 경기이다. 당시 평양과 서울에서 홈 앤드 어웨이를 치렀으며, 서울에서는 한국이 2-1 승리. 당시 쌍방은 유니폼에 국기, 협회 휘장 등 팀을 상징하는 어떤 표시도 하지 않기로 합의하였고 유니폼 색깔로만 구분했다(남은 빨강, 북은 하양).

2.6 기타

2000년대 이후부터 한국과 비슷하게 유스 연령대에서 꽤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 대회에선 꾸준히 4강 내지 우승까지도 하고, 적어도 토너먼트 라운드까지는 가서 유스 월드컵 진출권도 자주 따간다. 예를들어 17세 이하 대표팀은 2007년 대한민국에서 열린 FIFA U-17 월드컵에 출전해서 16강에 진출하기도 했다. 근데 그 외로는 세계무대에서 성적이 그다지 좋지는 않은 편. 여담으로 북한이 이 레벨에서 잘 하는 이유가 나이를 조작해서 오버에이지 플레이어를 내보내고 있다는 의심도 많은데, 전체적으로 선수들 외모들이 많이 삭아보이기 때문. 실로 예전에 선수 연령을 속여서 징계를 받은 적도 있긴 하다. 허나 삭아보이는건 북한의 형편과 트레이닝 환경이 좋지 않아서 그럴 가능성도 크고, 최근 피파에서도 정밀하게 뼈밀도 검사 등을 하고 있으니 무조건 이런식으로 폄하하는건 곤란하다.

그러나...2015년 FIFA U-20 월드컵에서 헝가리,브라질,나이지리아를 상대로 3전전패에 1득점 12실점을 기록하며 같이 3전전패 당한 미얀마(2득점 13실점)에 골차이로 밀려 24위 꼴지를 기록했다.

북한의 잔인한 현실에 빗대어 한국 웹상에서는 농담조로 남북한과의 경기에서 북한이 지면 "아오지로 끌려간다"는 말을 하곤 한다. 물론 실제로는 그런 거 없다. 물론 그걸 걱정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있는데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에서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0-7이라는 대패를 당하자 그 경기에서 2골을 넣은 티아구 멘데스가 실제로 북한 선수들이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갈까봐 걱정했다.(...) 그리고 아오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재교육을 빙자한 강제노동에 투입된다는 증언도 있는데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따르면 90년대 즘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1993년 10월 21일 일본전이나 1993년 10월 28일 한국전으로 추정) 참패한 북한 대표팀이 귀국즉시 교육농장에 보내져서 감자를 캐는 강제노동을 당했다고 한다

2.7 관련항목

  1. 1964년 올림픽은 본선 진출권은 얻었으나 조선올림픽위원회의 올림픽 불참 선언으로 본선 경기 포기
  2. 만약 정말로 북한 선수들이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간 게 사실이라면 축구에 정치 개입을 엄금하는 FIFA에서 북한에 징계를 내릴 것이다. 실제로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나이지리아가 16강전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패배한 후 대통령이 축구 협회를 직접 개혁하겠다고 나서자 FIFA에서 나이지리아의 국제 대회 출전을 금지하는 징계를 내린 바 있었다.
  3. 북한 신분제도상 구 지주출신은 빼도박도 못하는 적대계층이다.
  4. 그 영화에 출연한 인물은 당시 북한 대표팀 감독이었던 명려현, 골키퍼 리찬명, 수비수 림중선, 미드필더였던 림승휘, 한봉진, 박승진과 공격수 박두익, 양성국 등 8명이다. 그들이 인민복이나 정장을 입고 나온 장면에서 옷에 훈장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북한에서 꽤나 고위층으로 있는 것으로 보인다.
  5. 본래 다니엘 고든 감독이 이런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한 이유는 북한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없을까라는 발상에서였다고 한다. 그런 발상이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의 영화에 나오는 가장 큰 문제점이자 한계는 북한의 일상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평양의 일상을 보여준 것이란 점이다. 평양만 봤을 때는 북한이 우리가 익히 알던 대로 막장 국가라는 사실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저 보통의 국가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 풍경과 비슷비슷하다. 그러니 북한 정부에서도 승인해준 것이 아니겠는가? 평양에 사는 북한 사람들은 대개 특권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절대 잊어선 안 된다.
  6. 물론 이 영화들의 문제점이자 한계점에 대해서도 나름의 할 말은 있다. 북한에 입국하는 외국인들은 활동 반경이 평양 안쪽으로 제한된다. 그리고 항상 뒤에 가이드(라고 쓰고 감시자라 읽는다.)가 따라붙어 다닌다. 그러므로 평양 바깥 쪽 생활상이 어떠한지는 알고 싶어도 알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다니엘 고든 감독이 친북 성향이라든지 하는 문제보다도 그가 외국인이고 북한에서는 외국인을 평양 바깥으로 웬만해서는 못 나가게 하는 상황 때문에 이 같은 문제점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7. 김정일이 빡쳤다는 거는 드립이고, 실질적으로는 1998년은 고난의 행군, 2002년은 한국이 공동개최국이었던 게 이유라 보는 게 타당하다.
  8. 원래 시리아였는데 시리아가 부정 선수 참가를 이유로 실격당해서 타지키스탄으로 변경.
  9. 월드컵 본선 출전 비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