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파운더

1 2파운더 대전차포

제2차 세계대전기의 영국군 화포
곡사포25파운더, 3.7인치 산악포
대전차포2파운더, 6파운더, 17파운더
대공포폼폼 포, Q.F 3.7인치 대공포

{{틀:화포 둘러보기}}

화포 둘러보기
2차 세계대전
연합군추축군
미국 나치 독일
영국 일본 제국
소련 이탈리아 왕국
프랑스-
냉전 미국 소련

1.1 제원

width=100%
중량814kg
구경40mm
포신2.08m (L/52)
포탄40×304 mm. R
탄종철갑탄 (기타 탄종 없음)
폐쇄기반자동 수직블록
완충기수압스프링
거치대삼각 플랫폼
상하각도-13° 에서 +15°
좌우각도360° 완전선회가능
발사속도분당 22발
포구초속792 m/s (철갑탄)
유효사정거리914m
조준기No.24b

1.2 개요

Ordnance QF 2 Pounder.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의 초기 대전차포. 같은 시기에 출현한 동급의 대전차포중에서 가장 관통력이 높았지만, 철갑탄만 가지고 있으면 한계가 금방 닥친다는 불운을 입증한 대포다.

1.3 개발

2파운더는 2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전에 영국에서 순항전차 Mk.1의 주포로 빅커스 사에서 개발되었다.

구경 40mm의 전차포로 영국의 전통에 따라서 구경이 아닌 포탄의 중량을 명칭으로 사용했다. 1934년 전차의 주포로 처음 개발이 시작되었으며, 1936년 견인식 대전차포버전이 개발되어 보병의 대전차 대대에서 운용했다.

2파운드 전차포 및 대전차포는 같은시기 다른나라의 37mm급 대전차포 보다도 약간 위력이 높았다. 그래서 대전 초반의 독일군 전차는 1호 전차부터 4호 전차까지 전면 장갑을 관통할수 있었다.

또한 분당 22발이라는 높은 속사성도 가지고 있었고, 중량이 다른 37mm급 대전차포보다는 무겁지만 그래도 814Kg 밖에 안돼서 휴대 및 이동이 간편하며, 마치 88mm 대공포처럼 차륜을 바깥으로 빼내어 자세를 낮추고 360도 선회가능한 포가를 장착했다. 덕분에 방열과정에서 약간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한번 방열하면 적 전차가 사방에서 몰려오더라도 빠르게 대응이 가능하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동급의 대전차포중에서 가장 준수하게 보이지만...

1.4 문제점

실제로 사용하기 시작하자마자 문제점이 슬슬 드러나기 시작했다.

  • 사용할 수 있는 포탄은 철갑탄 뿐. 그것도 철갑유탄같이 내부에 화약이 있는 녀석이 아니라 쇳덩어리 그 자체였다. 덕분에 전차같은 중장갑목표물 이외엔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물론 철갑탄을 쇳덩어리 그 자체로 만들면 관통력은 올라간다. 하지만 이런 탄환을 트럭같은 비장갑목표물이나 장갑차 같은 경장갑목표물에 쏘면 그냥 구멍만 두개 뚫리고 끝. 보병의 경우라도 정확히 명중시키지 못하면 그냥 돌덩어리 한개 던진 것에 불과했다. 원래 보병이 운용하는 대전차포는 전차 이외에도 보병의 진격을 지원하거나 벙커등을 사격해서 무력화시키는 데 사용하는 일이 많은데, 2파운더는 이런 경우에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큰 문제점이었다. 해당 포를 탑재한 전차의 경우에도 적의 대전차포를 제압하지 못해서 동축기관총의 사정거리까지 억지로 진격하다가 불덩어리가 되는 사태가 많이 발생했다.
반대로 독일의 도어 노커인 37mm PaK 36의 경우, 고폭탄수류탄급 위력이라는 불평이 있었지만, 이런 보조 임무는 충실히 수행하였으며, 장갑관통력이 떨어져서 2선급 무기가 된 후에도 완전히 퇴물이 되진 않았다.
  • 이미 2차대전 초기부터 슬슬 관통력에도 한계점이 오기 시작했다. 사실 37mm급 대전차포 자체가 대전 전에 개발된 것이라서 위력부족이었으며, 그 중에서 관통력이 높다고 해도 거기서 거기였다.
  • 2파운더에 채용한 통상철갑탄의 경우, 독일전차의 표면경화장갑에 명중한 경우, 탄환이 부스러지면서 관통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기에 이를 해결하기위해 2파운더용 APCBC(피모철갑탄)이 개발되었다.

게다가,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면서 샤르 B1 bis소뮤아 S-35같이 장갑이 두꺼운 전차를 많이 노획했는데, 이런 전차의 경우에는 2파운더는 말 그대로 무용지물이었다. 물론 영국은 프랑스가 패망하기 전까지 우방국이었으므로 프랑스 전차의 장갑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이 시점에서 2파운더의 대전차포로서의 생애는 쫑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이유는 독일이 노획한 프랑스제 전차를 현역으로 다수 운용했으며, 특히 점령지인 프랑스에서는 숫적으로 주력인 상태라 심지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도 격파된 프랑스제 노획전차를 충분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1.5 말로

결국 보다 위력이 강한 6파운더가 등장하자 여기에 밀려나...는게 정상이었던 2파운더지만 됭케르크 철수작전에서 주요 장비들을 모두 버리고 탈출한 뒤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은 독일군의 본토 상륙이 멀지 않았다고 느끼고 생산 설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6파운더의 양산을 보류하고 생산설비가 일단 잘 돌아가는 2파운더를 증산해서 배치하는 삽질을 시전한다.

하지만 북아프리카 전역에서는 이탈리아군의 기갑전력은 M11/39같은 빈약한 전차로 구성한 상태였으며, 전쟁 초기에 아프리카 군단이 끌고온 전차들도 대부분은 당시 독일군 기준으로도 상당히 뒤쳐지는 1호 전차2호 전차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나마도 부족한 실정이었으므로 여전히 2파운더로 충분히 파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얼마간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탈리아군도 곧 M13/40처럼 공격력과 방어력을 업그레이드한 전차를 투입하기 시작하면서 2파운더로는 손쉽게 격파하기 어려워졌으며, 독일군의 경우에는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장갑을 강화한 3호 전차4호 전차가 등장하면서 2파운더의 효용이 바닥을 쳤다. 더구나 티거가 오면서부터 이 효용이 땅을 뚫고 떨어졌다. 이 때문에 신형 6파운더 대전차포가 배치되기 전까지는 25파운더 야포를 끌어와 대전차포 역할을 떠 맡기기도 했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에서 영국군이 담당한 버마 등지에선 일본군의 전차가 M3 37mm 대전차포에도 숭숭 뚫리는 97식 전차 치하처럼 장갑이 얇고 품질이 조악했기 때문에 현지에선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당장 태평양 전쟁 초반 시기에 일본이 자랑하는 소위 말레이 반도 전격전싱가포르 전투에서도 길가에 매복한 영국군 대전차포들에게 일본군 기갑부대가 전멸하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완전히 퇴역하는 시점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이었다.

1.6 기타

구경감소탄을 발사 할 수 있게해주는 리틀존 어댑터(Littlejohn Adaptor)라는 장치를 장비할 수 있었다고 한다.

2파운더 고폭탄은 존재했다. Anthony G William[1]에 따르면 영국의 노즈타입 퓨즈의 고폭탄과 호주의 베이스타입 퓨즈의 고폭탄이 있었다고한다. 다만 널리 보급이 되었는지는 의문이다. 전자는 장갑차에 주로 사용되었고, 후자는 벙커를 날리는 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1.7 평가

종합하자면, 포탄이 철갑탄밖에 없어서 평가가 필요 이상으로 바닥을 친 대전차포다. 게다가 그것도 기술적으로 40mm급 고폭탄을 만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영국군의 대전차전에 대한 생각의 실수[2]로 인해 벌어진 비극이라는 점이 더 놀랍다.

게다가, 상상외로 빨리 유럽전선에서는 퇴물이 되었고, 태평양 전선에서는 계속 현역으로 활약했지만 미국제 대전차포등 대보병용으로 공격할 다른 화기가 존재하는 바람에 전쟁 끝날때까지 2파운더용 고폭탄이 개발되지 않아서[3] 끝까지 약점을 가지고 간 드문 전력까지 갖추고 있다.

2 2파운더 대공포

QF 2-pounder naval gun. 영국의 '폼폼 포'라고 불리는 대공포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을 참조.
  1. 탄약전문가다. [1]
  2. 오로지 대전차전 상정했다. 북아프리카의 할파야 고개에 배치된 독일군 88mm 대공포에게 중장갑의 마틸다 보병전차들이 털려나간것도 철갑탄 뿐이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탓.
  3. 왜냐면 상기했듯 개발할 가치도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