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군

남유럽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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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군
[GFP 순위]10위 (2016년 4월)
상비군293,202명 (2011년)
예비군41,867명 (2011년)
육군력
3세대 전차[1]200대[2]
전차 총합200대
구축전차300대(+100대)[3]
장갑차(APCs/IFVs)7,739대 (2011년)
견인포162문 (2011년)
자주포262대 (2011년)
MLRS22대 (2011년)
수송 차량6,552대
공군력
4.5세대 전투기[4][5]96기[6]
4세대 전투기[7][8]90기[9]
3세대 전투기[10]14기[11]
지상 공격기69기
조기경보관제기(AWACS)0기
조기경보헬기(AEW)4기
전자전기(SIGINT)0기
공중급유기10기
공군기 총합약 525기
헬리콥터435기 (2011년)
항공기 총합[12]1,004기 (2011년 기준)
이탈리아 해군(해군력)
해군 전투함 총합180척
주력 수상함
7천톤 이상~8천톤 미만 준이지스 전투함2척[13]
6천톤 이상~7천톤 미만 준이지스 전투함4척(+6척)[14]
5천톤 이상~6천톤 미만 구축함1척[15]
3천톤 이상~4천톤 미만 호위함8척[16]
2천톤 이상~3천톤 미만 호위함7척[17]
1천 5백톤 이상~2천톤 미만 초계함4척[18]
1천톤 이상~1천 5백톤 미만 초계함14척[19]
1백톤 이상~2백톤 미만 고속정[20]8척[21]
모함, 상륙함, 수송함
3만톤 이상~3만 5천톤 미만 항공모함1척[22]
1만톤 이상~1만 5천톤 항공모함1척[23] 항공모함 [24]
5천톤 이상~1만톤 미만 LPD3척[25]
잠수함
1천 6백톤 이상~1천 7백톤 미만 재래식 잠수함2척[26]
1천 4백톤 이상~1천 5백톤 미만 재래식 잠수함4척(+2척)[27]
예산
국방비 총합[327억 달러] (2013년


1 개요

이탈리아군대.
이탈리아군은 남유럽에서 해군이 항모를 보유하는 등 강한 전력을 보유했다. 6척의 재래식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으나 원자력 잠수함 같은 전략 병기는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핵전력도 없다. 상대적으로 육군이 약하나 보통 이상의 육군 병기에 대한 기술력은 보유하고 있다. 차륜형 장갑차에 전차형의 포탑을 장착한 센타우로(B1 Centauro)가 유명하다.


2 수뇌부

통수권자국방장관국방참모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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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28]마리오 마루오클라우지오 그라치아노 대장(육군)
육군참모총장[29]해군참모총장공군참모총장국가헌병사령관
150px-Gen-ca-danilo-errico.png150px-Del_Sette_Napolitano.jpg
다니오 엘리코
육군중장
주세페 드 기오르기
해군중장
파스쿠알레 프레치오자
공군중장
툴리오 일 셋테
헌병중장

3 역사

3.1 고대

로마군 항목 참조. 하지만 로마군이 이탈리아군의 직계 조상은 아니다.


3.2 중세

중세 초기는 암흑기라 불린 시절로서 제정 로마의 빛나는 유산들조차 심심찮게 이민족들에게 털려나가서 이미 옛 로마의 영화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특히 이슬람이 생기면서 무슬림들은 그리스도교도들을 베어 넘기는 걸 사명으로 여기고 툭하면 침략하곤 했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후 서방은 정치적 중심점도 없이 각 지방의 영주가 겨우 다스리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조직적인 무슬림들의 해적 행위를 막을 방법은 없었고 가면 갈수록 극성스러운 이슬람 해적들 덕분에 이탈리아 연안지방은 완벽히 진공화 되었다. 지금도 이탈리아 해안가에 가보면 어디서나 수십 개의 감시탑을 볼 수 있는데 전부 해적들을 미리 발견하고 '도망' 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게 중세나 고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근대까지 저랬다. 북아프리카 해적인 코르세어들은 이탈리아 연안을 19세기 초반까지도 약탈하고 주민들을 잡아가서 노예시장에 팔았다. 해적들에 맞서 방어하기 좋도록 길이 미로처럼 건설되어 현대 이탈리아 도시의 모습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단지 몇십 년이 아니라 수백 년간 이슬람에 탈탈 털리고 교황까지 잡아갈려고 로마에 침입한 무슬림들은 그리스도교도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지만 기도로 극복 결국 스스로 국가 조직을 만들어 방어하기로 결정하기까지 끔찍한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빛나던 로마의 유물과 호화찬란한 건물들, 그리고 수많은 재물들이 싹 사라졌으니 레알 암흑기라고 불러 마땅한 것이다.

이때 정치적 구심체가 되었던 것이 베네치아, 아말피, 피사, 제노바의 4대 해양 도시국가. 가장 먼저 이슬람 해적을 격퇴하고 도시를 보호하는 데 성공한 도시들이기도 하며 당시 이탈리아에서 유일하게 국가라고 부를 만한 곳들이었다. 후에 프랑스오스트리아 같은 강대한 군주들이 도시 국가의 한계를 넘어 강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때까지 이탈리아의 정치와 군대는 이 4대 도시국가와 교황령을 중심으로 움직였다고 보면 된다. 중세 중반 프랑스와 스페인이 강대한 상비군을 육성할 때까진 유럽 세력 중 가장 강대한 군대라고 봐도 무방.

중세 초기 암흑기의 이탈리아에는 동로마 세력과 야만족 세력이 항상 자리다툼을 했다. 동로마의 군대는 당시 비잔티움의 군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군대였으니 자세한 논의를 생략하더라도 고트족이나 롬바르드인은 강력한 군사 세력이었다. 고트족은 강력한 보병 위주의 군대를 구성했고 뒤로 갈수록 중기병의 비중이 늘어났지만 동로마에 의해 리타이어했고 그 뒤에 이탈리아로 밀고 내려온 롬바르드인은 중기병 위주의 군대를 구성하여 유럽에 명성을 떨쳤다. 강력한 이탈리아의 기병 전력은 10~11세기 들어와 노르만인이 이탈리아와 시칠리아에 세력을 뻗치기 시작하면서 더더욱 명성을 떨쳤다.

중세의 이탈리아군은 전쟁놀이나 하는 용병 집단으로 보통 간주되지만 이건 마음가짐의 문제지 전투력 문제가 아니었다. 이탈리아의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만든 갑주는 유럽 최고급이었고 석궁[30]기사 같은 용병들은 유럽 전역에서 고용되었다.[31] 병사들 뿐 아니라 장군들의 역량도 막강했고 이들의 우수한 전투력을 입증하는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특히 각 도시의 시민군의 경우는 당시 어떤 도시의 시민군과 비교해봐서도 꿀리지 않는 전력을 구축했다.

  • 12세기,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국가들은 신성 로마 제국에 포함되기를 거부하고 롬바르드 도시동맹을 결성하여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붉은 수염 프리드리히 1세의 군대를 격파, 자치권을 얻어냈다. 12세기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는 훗날과 같은 허수아비가 아니었음에도. 이때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시민군들은 황제의 기사들과 치열한 전투 벌여 결국 공격을 막아내면서 승리에 일조했다.
  • 14세기, 백년전쟁 당시 영국군장궁에 혼이 난 프랑스군이 이탈리아에서 기병과 석궁수를 고용해서 전투에 투입했다. 이탈리아 기사들은 장궁의 화살을 몽땅 튕겨내고 영국군을 발라버... 릴 뻔했다.
일단 이탈리아 기사들이 영국군 측면부대를 패주시키는 데 성공. 그러나 중앙을 내버려둔 채 영국군 본진을 털러 갔다가 프랑스군이 역관광 당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기사들은 적절하게 본진을 털어먹고 한 명의 사상자도 내지 않고 ㅌㅌㅌ.[32]
  • 15~16세기, 이탈리아를 침공한 프랑스나 스페인 왕들은 총사령관으로 이탈리아인 무장을 앉히는 경우가 허다했다. 또한 프랑스군, 스페인군이라고 해도 보통 병력의 절반 이상은 이탈리아 현지에서 모집한 용병이었다. 특히 스페인군에서 이탈리아인 부대는 두번째로 강한 부대였다. 세번째로 강한 벨기에의 왈롱인과 스페인령 부르고뉴 출신 부대만 해도 웬만한 유럽 국가 최정예 보병대와 동급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무진장 강한 거다[33]. 게다가 이 당시 이탈리아 반도에서 나폴리, 시칠리아 같은 남부 전체는 아예 아라곤과 동군연합으로 스페인 왕실의 땅이었고, 밀라노도 그랬으며, 제노바 공화국은 실질적으로 스페인 제국의 은행 역할, 즉 따지고 보면 진정으로 스페인의 영향력에서 명분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독립해 있다고 할만한 세력은 베네치아 공화국 밖에 없었던 지라 스페인 제국 내에서 이탈리아인들의 지분도 굉장히 컸다. 프랑스 왕이 여흥 삼아 12:12의 마상시합을 개최한 적이 있었는데 이탈리아 기사들이 프랑스 기사들을 12:0으로 발라버렸다.[34] 안드레아 도리아, 페라라 공작 알폰소 디에스테, 암브로시오 스피놀라 등 전근대 유럽의 전장을 풍미한 수많은 장군들이 이탈리아 출신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고.
다만 대포가 본격적으로 발달하면서 이탈리아는 점점 대포 기술에서 뒤떨어지게 되었다. 운송 수단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서 광산 인근에서 직접 대포를 만드는 것이 대세였는데 이탈리아에는 구리나 철 등의 광산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탈리아의 총포 제작 능력은 21세기에도 세계구급 역량을 자랑한다. 16세기부터 총 장사를 해온 베레타, 함포로 먹어주는 오토멜라라가 모두 이탈리아 회사다.
다만 전투력과 전투의지는 별개라는 점을 분명히 하자. 이렇게 강력했음에도 이탈리아의 군사적 역량이 높이 평가받지 못하는 것은 이탈리아 용병들이 용병으로서의 입장에 너무도 충실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 용병은 몸이 재산이다. 따라서 이탈리아 용병들은 전쟁터에서 가능한 직접적인 전투를 피했다.그럼 스위스 용병은??
  • 용병은 고용이 안정되어 있지 않다.[37] 이번 전투가 끝나면 해고될 것이 뻔하므로 가능한 전투를 질질 끌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다. 베네치아의 경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급적이면 장기계약으로 용병을 고용해서 사실상 정규군처럼 운용했다고 한다.
  • 이번 전투가 끝나 해고되면 다음에는 혹시 상대편에 고용될지도 모르므로 원한을 살 일을 해선 안 된다. 따라서 가급적 상대편 민간인에 대한 약탈은 피한다. 하지만 적군의 군수품이나 휴대품에 대한 약탈은 기회만 닥치면 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백년전쟁의 사례에서 영국군의 전열을 돌파한 이탈리아 기병들은 흩어진 영국군을 내버려둔 채[38] 영국군의 본진을 털기 시작했다. 벙 쪄서 그 꼴을 보고 있던 프랑스군은 정신을 차린 영국군의 반격으로 또 처발렸고 이탈리아 기병들은 약탈품만 챙긴 채 단 한 사람의 전사자도 내지 않고 유유히 후퇴했다. 한마디로 프랑스군은 다 이긴 전투인데 지고 만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영국, 프랑스 양군에 대한 이탈리아제 갑옷의 판매가 급증했다. 역시 패션은 이태리제 [39]
  • 포로로 잡을 수 있는 적은 절대 죽이지 않는다. 몸값을 받으면 돈을 벌 수 있는데 왜 죽여?
이 때문에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저서 군주론을 통해 군주는 용병을 고용하기보다는 시민군을 꼭 창설하라고 쓸 정도였다. 하지만 마키아벨리가 말한 이탈리아 용병들에 대한 폄하는 과장된 면이 있다. 마키아벨리의 용병에 대한 폄하는 고대 로마의 시민군의 이상에 심취한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측면이 강했으며 이탈리아의 실제 역사는 오히려 시민군이 용병에 밀려 도태되는 과정을 밟았다.[40] 또한 정말로 전투를 피하고 설렁설렁 싸우는 집단이었다면 제대로 된 전투력을 유지할 수 없었겠지만 실제로는 이 시기 이후 16세기를 넘어 17세기에 이르기까지도 이탈리아의 병사와 장군, 무기는 유럽 전역에 인기 있는 수출품이었다. 심지어 나폴레옹의 정복 전쟁에서도 많은 수의 이탈리아인 병사가 포함되어 있었고 러시아 원정에도 많은 수가 참가하여 러시아의 벌판에서 얼어 죽고 굶어 죽었다.[41]


3.3 근대

이탈리아군의 전쟁에 대한 관념이 송두리째 무너지기 시작한 계기는 1494년 프랑스 왕 샤를 8세이탈리아 침공이었다. 가급적이면 적을 포로로 잡는 문화를 가지고 있던 이탈리아 군인들은 눈앞의 적을 모조리 죽여 없애는 프랑스군의 행동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전투가 벌어진 후 이탈리아 측 지휘관들은 "당연히" 포로를 돌려받으려고 몸값을 가지고 프랑스군 진영을 찾았는데 포로가 되었을 줄 알았던 이탈리아 기사들이 전부 학살당했다는 것을 알고 어이를 상실했을 정도.

이탈리아 용병들의 사고방식은 다른 면에서도 유럽과 차이점을 보이는데 1527년의 로마 약탈(사코 디 로마) 때도 이탈리아인 용병들은 집을 약탈하고 여자강간하는 것으로 만족했지만 독일인 용병들은 약탈과 강간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를 꼭 죽이고 집에 불을 지르고 갔다고 한다. 이 문제는 루터파 개신교 신도였던 독일인 용병들의 교황과 가톨릭에 대한 종교적 적대감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16세기 중반 이후 이탈리아 용병들은 이탈리아 내부에서의 전쟁이 강대국들 사이의 세력균형으로 대부분 사그라들면서 이젠 외부로 수출되게 된다.

이 시기에도 이탈리아군은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으며 덕분에 이탈리아군 역시 수출 시장에서 인기가 있었지만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군사적 역량은 갈수록 낮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여기에는 두가지 원인이 있다.

첫 번째는 프랑스나 스페인 등의 통일국가들이 전쟁의 주체가 되면서 점차 전쟁의 규모가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졌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병력에서 여실하게 드러나게 된다. 프랑스, 스페인 등이 전장에 수만명을 일시에 동원할때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비용 문제 때문에 많아야 수천, 보통은 수백명의 용병을 고용하는데 그쳤다. 이러니 프랑스와 스페인이 수만의 대군으로 쳐들어왔을 때 이탈리아가 공포에 질릴 수밖에...

두 번째는 당시의 운반 능력의 문제로 대부분의 대포는 광산 근처에서 제조되었는데 이탈리아는 적절한 광산이 없어서 포병 기술 및 전력 면에서 뒤떨어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두가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것이 위에 언급된 샤를 8세이탈리아 침공이다. 수만 대군을 몰고온 프랑스군에 이탈리아 반도 전체가 패닉에 빠졌고, 성벽을 한번에 박살내는 프랑스군의 대포에 이탈리아 인들은 또 한번 충격에 빠졌다. 샤를 8세는 유유자적 남진해서 손쉽게 나폴리를 점령해버렸다.

물론 이런 문제는 어디까지나 육군에 해당되는 것으로 오랜 시간 지중해의 무역로를 장악하고 있던 베네치아 공화국해군은 달랐다. 베네치아 해군은 혈혈단신으로 오스만 제국이란 수십배 덩치의 강대국의 물량러쉬를 뛰어난 조선 기술, 기나긴 항해 전통에 따른 숙련된 선원, 경제력, 외교력, 군사력이란 나라의 자산은 총동원해서 피말리는 싸움을 하면서 결국 지중해 전체의 오스만 제국 호수화를 막아 내었다.

갤리선 중심의 근세의 지중해 해전이 별로 인기 많은 주제가 아니라서 그렇지, 대오스만 전선에서 해상에서 베네치아가 보여준 감투 정신과 조직력, 군사적 인프라는 적어도 그 해당분야에서는 따라올 만한 동시대 유럽 열강이 없었다고 극찬해 줄만 하다.


3.4 현대

자세한 이야기는 이탈리아 왕국군 문서에 따로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20세기까지의 이탈리아군은 행군이나 사열 등 뽀대를 중시하는 데 반해 전투력이 약하다는 점 때문에 별로 평이 좋지 않은데 이는 통일 과정의 후유증으로 볼 수 있다.

일단 통일국가 이탈리아라는 것이 생겨난 게 겨우 1866년의 일이고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 즉 북부 이탈리아가 주도한 통일이며 국가의 통합이 충분히 진행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정복당한 거나 마찬가지인 남부인들로서는 이 나라에 충성할 이유가 없었다.

이것은 근대화의 과정과도 맞물려 있다. 북부지방은 공업화를 통한 체제구조 변화를 일찌감치 받아들여 근대적 정부 형태 무늬만 를 갖춘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 였지만, 남부는 통일전쟁 시기에도 귀족들이 대부분의 토지를 소유하고 가난한 소작농들을 지배하는 전근대적인 봉건체제였다.[42] 그런 관계로 남부인들은 이런 체제와 구속이 기본으로 배어있는 근대적 군사체제에 적응하기 힘들었고 반강제적인 통합으로 인한 불만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뜬금없이 통일이 되고 이 글을 읽는 위키러가 김정은을 위해 미군과 싸워야 하는 그런 상황... 홈프론트

결국 이런 문제로 이탈리아 군대는 실질적인 전투 훈련보다 단일한 감정을 공유하기 위한 집체 훈련이나 분열 훈련 같은 것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군대의식을 통해 이탈리아인이라는 개념이 성립된 것이 그나마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그보다 중요한 문제는 각 지역별로 기득권에 집착하면서 조직에 지역적 요소가 들어가다보니[43] 효율적인 조직 체계가 자리잡지 못했던 것. 예컨대 2차 세계대전에서는 자주포중대가 전차중대를 지원하기 위해 배속되었지만 지휘권은 개편하지 못해서 자주포중대와 전차중대는 단지 물리적으로만 가까웠을 뿐 각각 서로 다른 연대에 속해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지경이었다. 당연히 상호 협력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사태가 난다.

전차 중대장이 바로 옆의 자주포 중대장한테 "지원 포격 좀!!" 이라고 직접 요청하면 안 된다.

전차중대장대대장한테 "바로 옆의 자주포 중대에게 지원포격 좀 해달라고 해주세염!" 이라고 보고 때리면
대대장이 연대장한테 "우리 전차중대한테 바로 옆에 있는 자주포 중대가 지원포격 좀 해달라고 해주세염!"
전차연대장은 사단장에게 "자주포 중대에게 전차 중대 지원포격하라고 해주세요"
사단장이 자주포 연대장한테 "당신네 자주포 중대한테 전차중대에게 지원포격 좀 하라고 하시게"
자주포 연대장은 대대장한테 "지원포격 해줘라"
대대장은 중대장한테 "지원포격 해"
중대장이 "포격 개시!!"(...)

이런 상태다보니 개별 부대가 아무리 열심히 싸우더라도 군 전체로서의 전투력은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구태의연하고 관료주의에 절어있으며 자기의 특권만을 강조하는 장교들이 지휘하는 군대가 제대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그쪽이 더 놀라운 일일 것이다. 물론 장교들이 이런 꼴이니 안 그래도 부족한 병사들의 충성심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전차나 자주포, 전투기 등의 장비를 잘 갖추고 있었던 것도 (당연히) 아니다. 무기의 성능과 수량 모두 심각하게 부족했으며 그런 와중에도 로비 때문에 유사한 무기를 여러 회사에서 중복해서 개발[44][45]하고 생산하는 실정이었다. 그야말로 막장.

게다가 최근 역사학계에서 1930년대 유럽 각지의 정치적, 사회적 흐름과 2차대전 각국의 경험을 통합적으로 분석하려는 학자들의 연구를 조합해서 보면 개전 당시 이탈리아 나라꼴이 전쟁에 얼마나 준비가 안되 있었는지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당장 2차대전 본판이 터지기 전에 주축국의 국제적 어그로 행위들을 비교분석하자면, 나치 독일에게 있어서 오스트리아 합병뮌헨 협정을 통한 주데텐란트, 나아가 체코슬로바키아 합병은 전쟁 긴장감은 잔뜩 부추겼지만 실제로 군사적 충돌은 없이 스무스하게 결국 해당 국가, 지역을 장악하는데 성공하고 나치스의 위신은 올려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본 반면, 이탈리아의 경우는 생각보다 출혈이 큰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의 손실을 복구하지도 못한 체 바로 스페인 내전에 뛰어들었고, 지원은 해 줘도 생색도 많이 내고, 독일 자체의 전쟁 준비력에는 결코 손실이 되지 않도록 퍼주었던 히틀러와 달리 무솔리니는 차후 프랑코 정권 아래 스페인에게 누가 지중해의 큰 형님인지 보여주기 위해 무려 9만명에 가까운 정규군을 파견하며, 당시 나라 예산의 20%에 가까웠던 8백만 리라라는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46].

당장 에티오피아 전쟁에서만 하더라도 전사자 2만명을 포함한 이탈리아측 사상자도 20만에 가까웠던 생각보다 큰 희생이었고, 무엇보다 에티오피아 전쟁은 무솔리니 본인의 로마제국 부활드립이라는 프로파간다적인 측면만 빼고 이탈리아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47], 그나마 스페인 내전에서의 개입은 2차대전 때 보여줄 졸전의 전주곡을 그대로 보여주면서[48] 그 프로파간다적 승리도 못 건진 100% 쪽박이었다. 당장 국력과 군대를 보전하며 이 시기 나날히 발전하고 있었던 첨단 군사 기술과 군사적 인프라에 꾸준히 투자하면서 역량을 키워도 부족할 바인데 저런 아무런 이득도 없는 정치적 모험에 소중한 자원과 병력을 꼴아박았으니 막상 본편인 2차대전이 터졌을 때 그 꼬라지를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같은 파시스트 동맹인 독일에 의해 이탈리아는 1940년 추축군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때부터 좌익, 반파시스트 성향이 강했던 토리노, 피렌체, 볼로냐 같은 북부와 중부의 공업도시들 위주로 대규모의 반전 여론과 전쟁 피로감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전쟁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장성들도 "어떻게 싸우란 말이냐!!" 란 쌍욕을 하는데도 무솔리니가 억지로 밀어붙어서 전쟁을 벌이다보니 졸전이 많은 거지 착실한 준비만 했으면 비웃음 당할 정도는 아니었을 거다.

다만, 이탈리아가 나은 점을 들자면 폴고레 공수여단과 알렉산드리아 기습, 동부 전선에서의 기병 돌격 등 남자의 로망을 불러 일으키는 개별 부대의 우수한 활약은 대체로 이탈리아가 좀 더 나은 면이 있다. 그 사이 일본군은 반자이 돌격이나 하고 있었으니... [49]

그런데 어차피 이탈리아나 일본이나 전시 상층부의 능력은 말짱 꽝이다. 가령 무솔리니의 대책없는 전쟁 도발, 전선 확대나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이나 뭐... 그래도 전쟁범죄가 거의 없다는 점[50] , 무솔리니가 전쟁 이전까지는 그럭저럭 개념지도자로 통한 점이나 시칠리아 함락 직후 재빠른 항복 정도가 그나마 쳐줄만 할 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자국민을 의미없이 적군 앞에 고기 방패로 던져주는 것보다야... 그리고 사실 이건 그래봤자 윗동네 또라이 콧수염과 마찬가지로 파시스트 전쟁광인 무솔리니를 그나마 개념있다 없다로 치켜 세워줄게 아니라, 파시스트 정권 자체가 이탈리아 인민의 마음을 빠르게 사로 잡은 만큼 깊게 파고들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1930년대 부터 쭈욱 이탈리아에는 활발한 반파시스트 운동이 벌어졌고, 그게 연합군 진주 이후로는 빨치산 투쟁이라는 이탈리아인들 자체의 독립적인 무장투쟁으로 결실을 본 반파시스트 이탈리아인들에게 공로를 돌려야한다. 그나마 자국민을 고기방패도 던져주지 않았다 따위 관대한 평가가 나오려면 무솔리니는 1943년 7월 정권에서 축출 당한 이후 완벽한 히틀러의 꼬붕으로 전락 해 살로 공화국 따위 피비린내 나는 코메디를 찍으며 10만명의 이탈리아인들의 목숨을 추가로 뺏어간 이탈리아 내전 따위를 일으킬게 아니라 곱게 축출 당했을 때 꺼졌어야 했다.

그래도 병사 개개인이 여자라든지 자존심 등의 "싸워야만 할 이유" 가 있을 때, 그리고 유능한 지휘관이 있을 때라면 꽤 괜찮게 싸운 편이다. 그리고 독일군이 이탈리아군에 비해서 허접쓰레기로 취급받는 시절도 잠시지만 존재하기는 했다. 독일군의 확장이 시작된 지 겨우 3년차였던 오스트리아 합병 때가 좋은 예로 이때 독일군의 오스트리아 진주는 갑작스레 이뤄졌기 때문에 행군계획 수립부터 시작해서 장비 정비 상태, 병참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었다. 이 광경을 본 이탈리아군 주재무관이 "우리보다도 형편없다" 고 까댄 것이다. 특히 병사들의 행군 군기에 비판이 집중됐는데 이탈리아군도 어지간히 행군 군기 나쁜 것으로 유명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안습. 당시 프랑스, 영국에서 위험한 인물로 평가받는 인물은 베니토 무솔리니였다!!! 이탈리아 파시즘이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전 유럽을 상대로 전쟁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할 정도였다. 그리고 아돌프 히틀러도 무솔리니와 연대를 생각했을 정도였으니. 심지어는 지구 반대편의 마오쩌둥조차도 무솔리니를 '이 시대의 진정한 로맨티ㅅㅣ스트 마키아벨리스트' 라며 히틀러보다 높게 평가하기도 하였다. 물론 베르사유 조약 때문에 군대가 축소된 후유증이었고 얼마 안 가서 이탈리아군과의 사이에 넘사벽이 생기지만.[51]

전체적으로 체계가 안 잡혀있었지만 개개인이 약병인 것은 아니었고 정예부대는 엄청 잘 싸웠다. 대표적인 것이 폴고레 공수사단, 베르살리에리 연대, 아리에테 기갑사단 등. 그리고 동부전선에 파병된 6백 명의 사보이아 근위기병연대는 2천 명의 소련군을 상대로 기병도를 들고 기병 돌격하여 소련군을 개발살내버리는 위엄 넘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 또한 북아프리카 전역이 열렸을 때 이탈리아 해군 특수부대가 마이알레라는 특수 어뢰를 타고 영국 지중해 함대의 모항인 알렉산드리아 항구에 잠입, 폭탄을 설치해서 전함 발리언트와 퀸 엘리자베스를 대파시키는 공을 세우기도 했다. 이 때 파손이 좀 더 컸다면 영국 해군은 지중해의 제해권을 상실할 뻔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의 이탈리아군은 일부 특수전 부대를 제외하고는 그냥저냥 평범한 군대로 별 화제가 되지 않는 듯하다. 지중해 주변 국가 중 스페인과 더불어 항모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 정도. 물론 정규항모는 아니고 수직이착륙기를 운용하는 경항모. 하지만 2차 대전 이후의 전통은 못 버렸는지 탈레반에게서 돈 주고 평화를 샀다가 애먼 나라가 피박을 쓰게 만드는 사고를 치기도 했다.

냉전 시기엔 NATO 회원국으로 표면적으로는 동서 대립의 한 축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으나 실제 이탈리아군은 유사시 즉각 전선에서 대응하기 보다는 유럽의 내부 체제를 안정시키고 2선에서 지원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는 이탈리아군 자체의 전투력 문제보다는 이탈리아의 대내외 정치 상황에서 기인한다. 당시 이탈리아와 인접한 공산 국가인 유고슬라비아알바니아는 공산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소련과 따로 노는 국가들이라 전시 상황에도 직접 이탈리아군이 접경 지대에서 교전에 참가할 가능성은 낮은 편이었다.

반대로 이들 국가들이 이탈리아군과 군사적으로 충돌할 경우를 가정할 때도 이탈리아군이 직접 국경 지역에 배치될 가능성은 낮은 편이었다. 유고슬라비아와 알바니아, 그리고 이탈리아와 사이에 있는 아드리아 해의 폭은 200km 내외라서 지리적으로 상당히 가까운 편이었고 만일 이들이 침공한다고 하면 당연하게도 아드리아 해의 넓은 해안선 때문에 이탈리아 본토 내에 주력 부대들이 있어야 방어가 가능하였다.

게다가 이탈리아는 비록 공산 국가가 아니었지만 사회당, 공산당 등 좌파 정당의 힘이 강한 편이었고 특히 이탈리아 공산당은 냉전 시절 서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좌파 정당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탈리아군을 함부로 동원했다간 자칫 이탈리아의 정세가 안드로메다로 빠질 수도 있었다.

듣자하니까 1차 걸프전 때 정말 치졸하고 처절할 정도로 연합군 전투력 꼴등을 (사우디군보다도 못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달리던 이탈리아 군대가 옆에 주둔 중인 미 해병대와 알력 끝에 모욕을 참지 못하고 육박전에 돌입, 전투로 다져지고 다져진 거친 미 해병대를 순식간에 발라버렸다고 한다. 역시 여자 아니면 자존심... 올레 비바 이탈리아! 역시 동맹을 맺으면 짐덩이가 되는 군대. 내부의 적인듯

그리고 결국 그런 이탈리아군은 사고를 단단히 쳤다.. 2009년 아프가니스탄의 사루비지역에 주둔한 이탈리아군이 철수하고 나서 바로 프랑스군이 공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전까지 이탈리아군이 공격받지 않았던 전례를 생각해보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조사등이 시작되자 이탈리아군이 지역 탈레반 게릴라들에게 돈을주고 평화를 샀다는 것이 밝혀졌고 09년부터 이 문제가 블랙스캔들로 터져 나왔었다.당시 이탈리아 정부는 이를 부정했지만 2013년에 사실로 밝혀졌고 관계문제를 고려하여 나토 등에서 비공식적 항의를 했다는 증언까지 나오는 막장을 보여줬다.


3.5 찬양받을 만한 역사

이탈리아군이 전투 면에서 수많은 졸전을 저지르긴 했지만 한 가지 정말 칭찬받을 짓을 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유대인을 구한 군대라는 것이다. 그것도 다른 사람 아닌 히틀러의 손 안에서. 다른 의미에서 끝까지 나치 독일의 뒷목을 잡게 한 이탈리아

이탈리아 안의 유대인 사회는 독일에 비해 이탈리아 사회에 잘 녹아들어 있었으며 이탈리아 군부 내에는 수십 명의 유대인 장성들이 있었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많은 유대인들이 이탈리아인으로서 독일군 및 오스트리아-헝가리군과 싸우다 죽었다. 당연히 이탈리아에서는 독일과 같은 반유대주의도 없었고 무솔리니 자신도 유대인에 대한 반대정책 따위는 실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독일이 강력해짐에 따라 이탈리아측의 입장은 약해졌고 반유대정책을 실시하라는 독일의 요구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무솔리니는 전쟁 직전부터 반유대주의 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했으나 어떤 이탈리아 유태인도 이탈리아 정부에 의해 자발적으로 아우슈비츠에 보내지지 않았다.

이탈리아 유대인이 아우슈비츠와 같은 절멸수용소로 보내진 것은 무솔리니 정권의 붕괴로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부가 완전히 독일의 괴뢰정권이 된 이후의 일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도 적지 않은 이탈리아 정규군이 친위대를 중심으로 한 독일군의 유대인 박해를 실력으로 저지하기도 했다. 그 결과 홀로코스트로 인한 이탈리아 유대인 희생은 총인구의 20% 선에서 억제되었으며 이는 추축 가담국 중에서는 핀란드덴마크를 제외하면 제일 낮은 수치였다. 그나마 핀란드는 단 22명만이 1944년 핀란드의 대독 선전포고 때 라플란드에서 탈출하던 독일군에게 보복으로 학살당했을 뿐이고 덴마크는 국가원수의 기지로 수 많은 주민들이 생존했으므로 실질적으로는 이탈리아가 최저다. 헝가리도 비슷한 방식으로 유대인을 수호했으나 본래 민중 차원의 반유대주의가 존재했던 국가라 막판에 대량학살이 벌어져 단 1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무려 60~70%가 희생당했다.

그와 별개로 이탈리아군이 대단한 것은 이탈리아 유대인 뿐 아니라 자기들이 주둔한 점령지에서도 유대인을 보호했다는 것이다. 프랑스, 크로아티아, 그리스, 알바니아, 몬테네그로, 북아프리카 등지의 이탈리아 점령지에서는 독일 점령지에서와 같은 유대인 색출이나 박해가 전혀 없었다. 심지어 이탈리아가 연합군에게 항복하면서 점령지를 독일군에게 인계하고 이탈리아군이 본국으로 철수하게 되자 그 지역에 독일군이 들어왔을 때 유대인들이 처하게 될 운명을 걱정한 나머지 자기들의 철수 열차에 현지 유대인들을 태워 이탈리아 본국으로 함께 데리고 갈 정도였다. 이는 정말 찬양받을 만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런 보답도 없었지만.

또한 독일군이 많은 경우 점령지를 공포로 지배한 것에 비해 이탈리아군은 그냥 주민들이랑 같이 어울려 살았다.[52] [53] 이탈리아군은 온갖 전쟁 범죄로 악명이 자자한 독일군 및 일본군과 달리 대전기간 내내 민간인 학살 등 별다른 중한 전쟁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며 점령지의 현지인이나 연합군 포로를 비교적 정중히 대했다.[54] 이는 이탈리아가 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이라는 크나큰 멍에를 독일일본보다 덜 짊어지게 하는데 확실히 기여했다. 당장 이탈리아 영화 《지중해》나 니컬러스 케이지가 주연한 영화 《코렐리의 만돌린》을 보면 그리스를 독일과 분할 점령한 이탈리아군이 어떻게 지냈는지 잘 나와 있다. 코렐리의 만돌린에서 나오는 독일군의 이탈리아군 학살은 실화로, 1943년 이탈리아가 연합군에게 항복한 후 그리스 케팔로니아 섬에 주둔중이던 이탈리아군 마키 사단이 현지 주민들과 함께 독일군에게 저항한 후 항복했으나 사단장을 비롯한 5000명이 잔인하게 학살당했다. 다른 말로 하면 전투 이외에는 거의 모든 면에서 훌륭했던 군대.

연합군에게 포로가 된 이탈리아군은 대단히 협조적이어서 포로수용소에서 여친을 사귄 사례도 있다. 그래서 전후 전선에서 돌아온 연합군 장병들이 '우리들이 전선에서 싸우는 동안 포로 녀석들은 편하게 여자나 꼬시고 있었다' 면서 불평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탈리아군이 학살자들이 아닌 무능한 자들로 남아있는 것이 어찌 보면 이탈리아로서는 다행한 일일 지도 모른다.

3.6 한국과 이탈리아군

3.6.1 한국전쟁 참전

일반적인 인지도는 낮은 편이지만 한국전쟁에 이탈리아군 의료부대가 파견된 적이 있다. 당시 이탈리아는 참전국 중 유일한 유엔 비회원국으로 조속하게 국제사회에 복귀하고자 하고 있었다. 의료부대 참가 5개국(다른 4개국은 인도,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순서는 파견 의료진 수) 중에서는 가장 소규모였으나 1951년 11월에 한국에 도착하여 바로 경인 지역에 병원을 설치하고 1955년 1월 2일 임무를 종료하기 전까지 유엔군뿐 아니라 한국 민간인들을 상대로도 많은 활동을 했다.

해당 기간 동안 이탈리아 의료진이 치료한 환자의 수는 처음 파송 후 6개월간 진료한 환자만 쳐도 외래진료가 5만 8800명에 이르며 활동 전 기간에 걸친 외래환자는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19만 명에 달한다. 입원 환자의 수만 해도 7041명, 입원 기간의 총합은 13만 1천 513일이다.

이것만 보면 와~ 하고 말 일이지만 당시의 병원 운영 방침을 보면 정말 이탈리아군다운 점이 있다.

환자의 식사는 일정하게 고정되어 있으며 매일 충분한 양의 백반, 어류, 채소 및 과실을 제공하고 있다. 이 환자 식사는 특히 위생에 대한 여러 사항에 유의하면서 환자 본국의 양식에 따라 조리하고 있다.

영국군에게는 헬게이트 오픈 영국군 : 죽...여...줘... 아니 원래 그렇게 먹던 놈들인데 뭘 새삼스럽게

웬만한 병원이라면 전자는 충족할 지 몰라도 후자는 충족하지 않는다. 절대로. [출처1], [출처2]


3.6.2 상록수부대

1993년 유엔평화유지활동의 일환으로 소말리아에 파병된 국군 상록수부대의 경호를 이탈리아군이 맡았다.[55] 당시 한국은 활주로 건설, 국도 및 교량 유지보수 임무를 맡았기 때문에 부대원은 공병이 대부분이었으며, 경비를 위해서 특전사 1개 지역대가 포함되있었다. 그러나 1994년 소말리아 민병대가 공격해오자, 이탈리아군은 도망치기 바빴고 공병이 주력인 상록수부대가 직접 81mm 박격포를 쏘며 민병대를 격퇴하였다.


4 이탈리아의 군수산업

약간 개그삘이 나는 군의 명성과는 전혀 딴판으로 군수산업은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했다. 무솔리니 시절에 대외팽창을 한답시고 중공업도 별로 없는 이탈리아에서 여러가지 군수산업을 육성했는데 그것들이 전후에도 남아서 패션 못지않게 이탈리아의 수출품이 되고 있다. 이탈리아군의 전투력을 생각하면 의외지만 2차대전 때 이들은 소총부터 전차, 비행기까지 자급하고 있었다. 물론 성능이 들쑥날쑥한 게 문제였지만 잘 만든 물건은 세계적으로 쓸 만한 물건이 나온다.

미군의 제식권총인 M9베레타의 베레타사 역시 이탈리아 회사고 샷건의 베넬리도 한동안 미해병대에서 많이 사용하여 유명하다. 전투기로는 한국의 T-50을 번번히 물먹인 M-364의 알레리아 아에르마키사가 바로 이탈리아 회사이다. 이 회사[56]1차대전 때부터 전투기를 생산했고 2차대전에서도 C.200과 같은 유명한 전투기들을 생산했다. 헬리콥터로 유명한 아구스타 웨스트랜드의 아구스타 역시 이곳에 본사가 있다. 라인메탈 사와 함께 세계 최고의 화포 생산 기업 특히 해군용 함포쪽에 있어서는 상당히 유명한 오토멜라라사 또한 이탈리아의 대표적 군수 기업 중 하나[57]. 그 유명한 피아트도 전차 및 전차엔진을 만들었지만 이탈리아의 전차는 대체로 안습. 다만 장륜형 장갑차는 세계적이다. 한국도 수입했었고 현재 센타우로 장갑차는 기갑의 본가 중의 하나인 러시아와 합작한다고 한다.


5 이탈리아군의 무기체계

현대의 이탈리아군 보병장비
개인화기소총돌격소총베레타 AR70/90, 베레타 ARX-160A1/A2
저격소총AW, 사코 TRG-42
기관단총베레타 M12, 베레타 Mx4 Storm
산탄총FP6, SPAS-12, SPAS-15
권총베레타 92
지원화기기관총FN 미니미, 베레타 MG42/59, M2 중기관총
유탄발사기베레타 GLX-160
대전차화기MILAN 2T, TOW II, 판처파우스트 3, 스파이크, 브레다 폴고어
박격포120mm F1, M62 81mm 박격포
맨패즈FIM-92A 스팅어
특수전 화기소총돌격소총M4 카빈, HK416
저격소총AWM, M82A1, M107, 샤이택 M200, K.A.C SR-25, M110 SASS
기관단총프랭키 LF-57, MP5, MP7, FN P90
산탄총베레타 RS202, 베넬리 M4 슈퍼 90
권총글록 17/19, P11
유탄발사기M203, Mk.19, Mk.47
대전차화기M72A5


현대의 이탈리아군 기갑차량
MBT1세대M47R
2세대M60A1R, 레오파르트1A2/A5R, OF-40E
3세대C1 아리에테
장갑차장륜장갑차피아트 CM6614/6616R, VBR NBC, 푸마, B1 센타우로, VBC 프레시아, VTMM Orso MRAP
궤도장갑차VCC80 다르도, AAV7A1, M113 VCCI
차량소형VM-90, AR-90, VTLM Lince
트럭이베코 ACM 80/90 4X4 · ACL 90 4X4 · ACTL 6x6 · HD6
자주포M44R, SP-70, 팔마리아, 오토멜라라 M109L, PzH2000
자주대공포M113 SIDAM-25*, 오토메틱E, 드라코
다연장로켓M270 MLRS
※ 윗첨자R : 퇴역 차량
※ 윗첨차E : 수출용 차량
취소선 : 계획되었으나, 취소된 차량
* : M113 위에 4연장 25mm 기관포탑을 단 자주대공포.



6 총 전력


7 졸전 기록


8 이탈리아군이 등장하는 영화

  • 사하라(1943, 1995) : 전자는 미국에서 만든 선전 영화고 후자는 호주에서 이를 리메이크 한 것이다. 미군 포로로 잡히는 이탈리아군이 등장하고 어느새 매우 친해져서(...) 같이 잡혀있던 독일군에게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디스하는 패기도 보여준다.
  • 지중해(Medditerraneano, 1991): 제2차 세계대전 중 본대와 연락이 끊겨 그리스의 한 섬으로 도피한 이탈리아군 소대원들의 이야기로서 여기서 이탈리아군은 그리스(당시 적국이었다)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잘 지낸다.
  • 사막의 라이온: 1920년대 이탈리아군. 리비아 침공을 주요 이야기로 다루었다.
  • 전장의 초상(원제: 숏 컷, 1989): 니컬러스 케이지 주연.
  • 엘 알라메인 (2002) - 2차대전중 북아프리카의 사막에서 보급도 제대로 못받고 굶주린채 살아가는 이탈리아군의 모습이 나온다.
  • 코렐리의 만돌린(2001) - 니컬러스 케이지가 12년 만에 이탈리아군을 또 연기한다(...) 위에 언급된 이탈리아군의 안습한 면모들이 잘 나온다. 한 예로 그리스의 한 마을을 점령한 이탈리아군이 마을 회관 앞에 와서 항복 의식을 준비하자 마을 촌장이 쪽지 한 장을 내미는데 거기에는 딱 한 줄만 적혀 있었다. 'x까'. 이렇게 '이탈리아 놈들에겐 항복 안 한다!'고 고집을 부려서 인근에 있던 독일군 부대의 장교가 와서야 정식으로 항복한다(...).
  • 코만도스 (1968) - 이탈리아군으로 변장한 미군 특공대북아프리카에서 독일군과 싸운다. 이런 류의 영화는 흔하지만 문제는 이 영화가 이탈리아에서 만든 영화라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군이 미군 무기를 들고 나온다...
  • 폴린(2004) - 2차대전 독일군, 미군, 이탈리아군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 북경의 55일 작품 진행중 열강 8개국중 하나로 해군 육전대가 꾸준히 등장하며, 막판엔 베르살리에리 연대가 구보하며 입장한다.


9 출신 인물

  1. 주력 전차, [전차 분류법] 참고.
  2. [Ariete]: 200대
  3. 전차에 준하는 세력, [B1 Centauro]: 저압 120mm/45 주포, 운용 300대, 비축 100대
  4. [4.5세대 전투기 분류법 참고].
  5. [4.5세대 분류법 (2)]
  6. [이탈리아 공군 전투기 보유 수량].
  7. [4세대 전투기 분류법 참고.]
  8. [4세대 전투기 분류법(2)]
  9. 76기의 파나비아 토네시도(Panavia Tornado) 중 14기는 지상 공격기/14기의 공격기는 표에서 지상 공격기에 포함시킴.
  10. [3세대 전투기 분류법 참고.]
  11. 추가로 2기의 헤리어를 보유하고 있으나 훈련기이다. [이탈리아 해군 항공기 보유 수량].
  12. 항공기 총합은 공군기 총합가 다르다. 유사시 지원 가능한 항공기의 총합을 말한다. 예:경찰소속의 헬기.
  13. 만재 7,050톤 안드레아 도리아(Andrea Doria)급(호라이즌급) 구축함 2척.
  14. 만재 6,500톤 카를로 베르가미니(Carlo Bergamini)급(이탈리아형 FREMM급은 프랑스형보다 배수량이 더 크다) 총 10척 계획.
  15. 구축함 듀란드 드 라 펜급 만재 5,400톤(2척).
  16. 호위함 마에스트랄레급 3,040톤(8척).
  17. 호위함 루포급 [만재 2.986 톤.](7척)
  18. 초계함 코만단티급 [(인도네시아어) 만재 1,520 톤](4척).
  19. 미네르바급 만재 1,285톤(8척)/카시오페아급 1,475톤(4척)/시리오급 1,285톤(2척).
  20. 고속정은 대규모 함대전에서 매우 추약한 전력이다.
  21. 고속정 에스플로라토레급 165톤(8척).
  22. CVH 항공모함 콘테 디 카보우르급 만재 30,000톤(1척).
  23. CVS
  24. 주세페 가리발디급 13,850톤(1척).
  25. 산 조르조급 [8,000톤](3척).
  26. 재래식 잠수함 프리모 롱고바르도급 수상배수량 1,653톤(2척).
  27. 살바토레 펠로시급 수상배수량 1,476톤(2척)/212급 수상배수량 1,450톤(2척)(+추가 2척 중).
  28. 이탈리아의 국가원수는 대통령인데 국왕이나 비슷한 명예직이며 실질적으론 총리가 정부수반으로 기능한다. 2014-01-24 기준으로 총리는 엔리코 레타이다.
  29. Capo di stato maggiore dell'Esercito
  30. 그 당시 이탈리아의 석궁은 유럽에서 최고를 자랑했다. 지금도 이탈리아에서는 석궁 쏘기 대회를 벌인다.
  31. 물론 대부분이 석궁수 같은 보병들이다. 이탈리아는 국토 대부분이 산지라서 말을 많이 키울 만한 목초지가 부족해 군마 생산이 저조했다. 그래서 이탈리아는 항상 스위스, 스코틀랜드처럼 보병 중심이었으며 기병인 기사들은 모두 다른 국가에서 모집한 비이탈리아인 용병이다. 이 기사들은 이탈리아의 도시들에서 용병 생활을 하다가 계약이 끝나면 다른 나라로 가서 용병 생활을 하는 것이다.
  32. 사실 이탈리아 기사들이 영국에도 고용되었기에 괜히 영국과 감정상하면 돈을 벌기가 힘들어 지기 떄문에 일부러 추격하지 않았던 것이다.
  33. 물론 첫번째로 강한 스페인 본토 출신쯤 되면 괴수다. 부르고뉴의 경우 15세기 후반 익히 유명한 용담공 카를이 덜컥 전사한 이후 수도 디종시 일대는 프랑스가 먹었으나, 남쪽 부분은 합스부르크 가문이 먹어 '(중앙인 스페인 왕실에게서 자치를 누리는) 자유 백작령'이란 뜻인 오늘날의 프랑슈콩테 지방이 되었고, 많은 수가 스페인군에 지원했다. 여담이지만 당시 네덜란드 전역에서 주로 싸우던 스페인군에는 잉글랜드, 아일랜드 등에서 카톨릭 신앙의 자유를 찾아 망명온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고, 이들도 저렇게 언어별로 구성 된 부대에 편성 되 상당한 이름을 떨쳤다
  34. 사실 이탈리아의 기사들은 모두 용병이라서 싸움이라면 이골이 난 상태였다. 또한 그때 토너먼트에 참가한 프랑스 기사들은 아직까지 전투 경험이 부족했기에 발릴 수밖에.
  35. 이탈리아식 요새는 당시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포의 포격을 견딜 수 있는 구조의 요새였다. 유럽에서 이탈리아식 요새가 보급된 것은 대포의 시대에 유럽에서만 대제국이 출연하지 않은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36. 아예 본업이 건축가이자 공학자라고 보는 경우도 많다.
  37. 이것은 중세 유럽의 모든 용병들이 마찬가지였다. 용병들은 전쟁이 끝나면 계약만료가 되어 다시 실업자가 되기 쉬워 도적질까지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따라서 전쟁에서 승리한 국가들도 용병 처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38. 전투에 이기려면 적이 흩어졌을 때 몽땅 잡아죽이는 게 정석이다.
  39. 이탈리아 갑주는 방어력에서 최고를 자랑해 유럽에서 인기가 좋았다.
  40. 사실 고대 로마도 용병을 고용했다. 특히 기병 부족에 시달리던 로마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용병을 고용하여 부족한 기병을 충원했다.
  41. 이탈리아인뿐만 아니라 스위스인들도 원정에 참전했다.
  42. 부유하고 공업화된 북부와 가난한 농업지대 남부의 대립은 현재도 이탈리아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다. 남부와 북부간에는 극심한 지역감정이 존재하며, 아예 북부의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지역주의 정당 "북부동맹"이 이탈리아 정치권에서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여 베를루스코니 주도의 우파연립정권에 참여한 적도 있을 정도이다.
  43. 비유하자면 이어지는 예에서 자주포중대는 한국인 부대, 전차중대는 일본인 부대에 속한다고 생각해 보자. 과연 효율만을 이유로 이들의 지휘권을 쉽게 통합할 수 있을까?
  44. 심지어 무솔리니의 자존심 때문에 수랭식 엔진의 개발이 늦춰지기도 했다. 개발자는 "독일 수랭식 엔진이라도 수입해와야 국산화 하는데 용이하다" 다고 했건만 무솔리니는 "자존심도 없나" 라면서...
  45. 이 분야의 압권은 피아트이다. 당시 피아트는 입찰에서 패배한 자사 시제품을 군이 정식채택하게 만드는 막강한 로비력을 보여줬다.
  46. 출처: Ian Walker 2003년작, Iron Hulls, Iron Hearts : Mussolini's elite armoured divisions in North Africa
  47. 당장 체코슬로바키아를 병합하면서 상당히 발전해 있었던 체코 군수 산업을 그대로 접수해 2차대전 중에도 쏠쏠하게 써먹은 독일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48. 아이러니하게도 반대편 공화진영에서 싸운 이탈리아 출신 반파시스트 국제 여단 의용병들은 마드리드 공방전, 코루나 도로 회전, 아라곤 전선, 과달라하라 전투 등에서 종종 같은 이탈리아 출신 파시스트 CTV를 상대로 큰 전과를 세우며 국제여단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부대들이라 칭송 받았다뭉치면 약하고 흩어지면 강하다
  49. 바로 이전 버전의 문서에서는 일본군보다 사정도 못하다고 까댔는데 이탈리아군의 사정은 일본보단 훨씬 나았다. 항공기의 경우 독일도 극찬할 정도였다.
  50. 전쟁범죄도 전투에서 승리해야 저지를수 있지 패배하면 그냥 패주다. 이디오피아 전쟁에서 게다가 국제법상 금지되어 있던 독가스를 쓰던게 이탈리아군이라는것을 감안하면 전쟁범죄를 저지를 의사가 없었던게 아니라 그럴 능력이 없었을뿐이다. 그리고 이거 선량하고 친절한 이탈리아군 신화에 심각하게 가려져서 무시당하는 일이 너무 많은데, 직접적으로 이탈리아의 영토적, 민족적 야욕이 걸려 있었던 발칸 반도전선에서는 이탈리아도 독일군 못지 않게 막장짓 많이 하고 다녔다.
  51. 사실 좀 상태가 나았다는 38년만 해도 독일군은 그 일본군과 동급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52. 주둔지 식단이 맛이 없다면서 현지인의 집으로 쳐들어가서 제값을 치루고 현지 음식을 먹고 나왔다는 일화도 있다. '점령지' 주민 집에 들어가서 제 값을 치뤘다는 게 포인트.
  53. 여담으로 주둔지 식단이 맛이 없었느냐? 싱싱한 야채와 과일, 고기 샌드위치 등등이었다.
  54. (물론 어디까지나 유머이지만) 영국군 장교가 이탈리아군에게 포로로 잡힌 이후 상당히 거창한 식사를 받자 처형을 앞둔 최후의 만찬이라며 낙담하는데, 다음날 이탈리아군 장교가 "어제는 행정 착오로 귀관에게 일반 병사 식단을 제공했다. 앞으로는 장교 계급에 어울리는 식단을 제공하도록 약속하겠다."라며 사과했다는 이야기까지 있을 지경.
  55. 연도를 보면 알겠지만 블랙 호크 다운 사태가 벌어진 모가디슈 전투때 한국 상록수부대도 모가디슈에 주둔하고 있었다. 정작 국내에선 언론보도도 제대로 안했지만.
  56. 원래는 Macchi사인데 후에 여러 회사를 합병해서 현재와 같은 회사가 되었다.
  57. 대한민국 해군의 76mm 함포와 광개토대왕급 구축함에 장착된 127mm 함포가 바로 해당 회사 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