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ask, don't tell

성소수자(Sexual mino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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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JJmvYk6.png 나는 당신( 말고)을 원한다!
공공연한 게이? ...저리 가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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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출처

1 개요

1993년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시행을 결정하여 2011년 버락 후세인 오바마에 의해 폐기되기까지 적용된, 미국성 소수자 복무를 위한 병역법 관련 정책. 대략 17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이 정책으로 인해서 강제로 군문을 떠나야 했던 성 소수자들이 13,650명에 달한다. 한국어로 옮기면 "묻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 정책.

처음에는 좀 더 길게 말해서 "Don't ask, don't tell, don't pursue" 였는데, 여기서 뒤에 붙은 표현은 대충 "들추어내지 말라" 정도이며, 나중에는 "Don't harass" 즉 "괴롭히지 말라" 까지 추가되었다. 각각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만일 부하의 동성애적 행위가 확인되거나 커밍아웃이 적발되면, 그에 따른 조사를 거쳐서 전출 및 강제전역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즉 자신의 성적정체성를 숨기는 전제 하에서는 성 소수자들도 얼마든지 군복무를 할 수 있지만, 공공연히(openly) 밝히고 다니는 것만큼은 하지 말라는 뜻.

2 과정

2.1 시행 배경

1993년에 빌 클린턴 임 대통령이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모든 시민들은 성적 지향과 관계없이 군복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는 데서 처음 시작되었다. 그 이전까지 미국의 복무제도는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뿌리깊게 적용되고 있어서, 명시적으로는 1950년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이 승인한 것이 처음이요, 암묵적으로는 1778년에 성적 지향을 이유로 처음으로 군인의 제대 조치가 이루어지는 것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은 어마어마한 반발에 직면했는데, 의회는 1982년에 제정되었던 절대 금지 정책의 맥락을 따르는 규제들을 군대가 준수하도록 압박했고, 당해 국방수권법(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에 이것이 포함됨으로써 클린턴은 사면초가에 몰리게 되었다. 12월, 클린턴은 의회와의 타협을 위해 한 가지 제안을 새로 내걸었다. "적어도 자신이나 타인의 성적 지향에 대해 묻거나 말하지 않는 전제 하에서는, 성 소수자들도 복무할 수 있게 하자."

이는 간신히 의회의 허락을 받기는 했지만, 양쪽 모두를 어느 정도 만족시켰을 뿐이지 결코 온전한 해결책이 된 것은 아니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양쪽 모두 이 정책에 대해서 만족할 수가 없었다. 보수측은 보수측대로 "이 정책은 미군의 도덕과 규율, 질서를 무너뜨려서 군 기강을 해이하게 만들 것"이라고 공격했으며, 진보측은 진보측대로 "이런 수준의 정책으로는 성소수자들이 느끼는 정체감의 혼란이나 괴리감을 해결할 수 없다" 고 비판했다.

이처럼 이 정책의 시행 배경에는 클린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의도는 좋았다 급의 뒷이야기가 있었다. 양쪽 모두를 타협에 이르게 하기 위해 나름대로는 노력했지만, 문제 자체는 해결하지 못하고 불필요하게 사회적 갈등만 촉발시키면서 정작 그 정책이 보호해 주려고 하는 사회적 소수자들 역시 제대로 보호가 될지 의심스러운 모양이 된 것.

그리고 막상 정책이 시작되고 뚜껑이 열리고 난 후, 클린턴은 미국의 성소수자들에게 배불리 욕을 먹기 시작했다.

2.2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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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 "헌법에 위배되는 이 법을 강요하지 마시오!"
행정부 : "나한테 그러지 말고 의회에 법을 바꾸라고 문의하시죠!"
입법부 : "날 보지 말아요! 올해가 선거란 말이오!"
군인 : "다시 말해봐요. 제가 뭘 하면 되죠??"
출처
좌: DADT가 있을 때
우: DADT가 없을 때
출처

처음에는 성 소수자들의 군복무를 보장하기 위해 고안되었지만, 이 정책은 여전히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자신의 성적 지향에 대해 침묵하는 개인들은 복무를 지속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복무의 지속을 위해 그들은 이중생활을 하면서 남모르는 고충을 겪어야 했다. 성 소수자들은 이러한 생활의 차이가 평등권의 침해라고 주장해 왔다.

대표적으로 2010년에는 웨스트포인트 최상위권의 성적을 받으며 모범생이라는 평가가 자자하던 사관생도 캐서린 밀러가 레즈비언 커밍아웃과 동시에 자퇴서를 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 그녀는 2년 동안 상위 1%의 성적을 놓치지 않을 정도의 엘리트였지만 DADT의 존재로 인해 군복을 벗어야만 했던 것. 향후 그녀는 예일 대학교로 입학한다고 밝히면서 DADT의 폐지를 위해 싸우겠다고 공언했다. 그와 더불어 언론사들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호모포비아적 분위기 속에서 없는 남자친구와의 데이트 이야기를 거짓으로 꾸며내면서 자괴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이로 인해 "DADT로 인해서 미군이 유능한 인재들을 너무 많이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세간의 우려도 나타났다.

한편 같은 해에 한 지방법원 판사가 DADT 정책이 위헌이라고 주장했지만, 이에 국방부가 다시 항소하고 다른 지방법원 판사들이 이를 유예하기도 하면서 DADT는 끝끝내 살아남는 듯 보였다.

2.3 폐지되다

"우리나라는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 고 말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여럿으로부터 온 하나'[1] 라고 말하는 나라입니다."

We are not a nation that says 'don't ask, don't tell.' We are a nation that says 'out of many, we are one.'
- 버락 후세인 오바마

2010년 버락 후세인 오바마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성 소수자들이 자신의 성적 지향 등을 숨기지 않고 군생활을 할 수 있게 하겠다고 선언해서 파장이 일었다. 여기에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과 마이크 멀린 미 합참의장이 공개적으로 DADT의 폐기를 주장하고 나섰다. 마이크 멀린은 "저는 1968년부터(임관년도다. 즉 군생활 내내 쭉!) 동성애자들과 함께 군복무를 했습니다"라고까지 말해서 발언을 들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여기에 DADT를 지지했었던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도 폐지 쪽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미국이 DADT의 폐기를 논하고 있는 이유는 동성애자의 인권문제 외에도,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 발목이 잡혀있는 미군의 입장상 인력충원이 꼭 필요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는 해석도 나왔다.

같은 해, 미국 상원은 DADT의 폐기 법안에 대해 찬성 65표, 반대 31표로 가결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2011년 9월 20일, 오바마 대통령이 폐기 법안의 서한에 서명하여 의회로 전달하고, 펜타곤 대변인이 이날 이후로 DADT에 의해 전역했던 군인들은 복무를 희망할 시 다시 군문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밝히면서, DADT는 "성 소수자들에 대한 미국의 억압" 을 상징하는 불명예를 안고 완전히 끝이 났다.

4년 후인 2015년, 미군은 군 내 기회균등 정책의 입안에 있어서 성소수자들에 대한 평등을 포함하기로 결정하였다. 미군 측은 이에 대해 "만인에 대한 평등은 미군이 옹호하는 가치이며, 실력주의(meritocracy)는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다양성을 포함하는 미군은 세계 최고가 될 것" 이라고 밝혔다. 즉 군에 복무할 의지와 능력이 있다면 그 사람이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 등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

3 바깥 고리

  1. 이는 미국 독립혁명 이래 한동안 쓰였던 라틴어 구절인 "E pluribus unum" 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